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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게 잠들었고 역시 늦게 일어났다. 오늘도 정신없이 꿈을 꿨다. 꿈에서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어딘가에 가서 가로로 기다란 창문이 달린 집에 묵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거기는 페테르부르크였고 각도를 잘 맞추면 창문 너머로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이 보였다. 그래서 어서 거리로 나가서 가족들에게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과 네바 강 구경을 시켜줘야겠다고 서둘렀는데 막상 나가니 익숙한 랜드마크들은 전혀 없고 그냥 도시의 뒷골목들만 나왔다. 이런 꿈 패턴이 좀 반복되는 편인데 주로 페테르부르크와 프라하가 나온다. 꿈에서 페테르부르크에 가면 보통 이렇게 네바 강변에 가려다 잘 안되고(혹은 아스토리야나 유럽 호텔에 묵었는데 그곳이 아니거나 이상하거나 하고) 프라하에 가면 로레타 사원과 카페 에벨을 찾아가려다가 잘 안된다. 그런데 이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꿈에서 페테르부르크가 나와도 어딘가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안 좋다. 

 

 

나는 지난주 금요일, 첫날에 사전투표를 마쳤다. 오늘 가족들과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전화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 부모님도 금요일에 사전투표하고 동생네도 마찬가지. 심지어 나는 일하느라 점심 때 갔지만 부모님과 동생네는 새벽 6시인가 7시에 가서 투표를 했다고 한다. 서로에게 독려한 적도 없고 언제 투표할 거냐고 물어본 적도 없는데 이 놀라운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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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대체로 정치성향이 비슷하다. 가족끼리 정치 얘기하면서 싸우는 일이 없으니 나름대로 이쪽으로는 화평하다. 나는 가끔 좀더 왼쪽으로 갈 때가 있고 엄마는 그중 좀 무난하신 편이라 예전엔 가끔 그래도 박근혜가 괜찮다고 하신 적도 있지만 그 정권 들어 내가 정말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기 때문에(이게 상징적인 고통이 아니라 정말 내 삶과 연계되어 실질적으로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시고는 충격을 받으셨다. 그래선지 내가 좀처럼 그 기억이나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정치적 의견이 다른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내 생각이 나서 울컥울컥하신다고 한다. (역시 그 힘들었던 시기를 잘 숨겼어야 했는데 ㅠㅠ 불효를 한 듯...) 

 

 

그간의 과정들과 여론조사 등을 보면서 그냥 포기를 했다. 딱히 정말 지지하는 세력도 없고 바라는 것도 별로 없다. 아니, 사실 가장 정치적으로 가까운 쪽은 있는데 총선이나 지선에는 그 소신대로 가는 편이지만 대선에서는 이게 참 어려워져서 결국은 전략적으로 가면서 마음속으로 큰 가책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들이 생긴다 ㅜㅜ 

 

 

나는 제반 일상생활이야 모두와 비슷하다 치고, 업무 영역으로 한정했을 때 상당히 국가의 정책과 정부의 방향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계에 있다. (그래도 공무원이 아니니 다행)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각각의 색깔에 따라 요구하는 것이 있고 그것은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상당부분 이익에 따라 좌우되며 단발적이고 근시안적으로(이것은 사실 반쯤은 알면서도 그러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일회성 정책과 예산을 남발하고 네 편 내 편 가르는 것도 잘 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일말의 기대도 없다. MB와 박근혜 정부 때 정말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예전 참여 정부, 그리고 촛불 이후 정부에서도 많은 환멸을 느꼈고 한때 진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자들의 타락과 자기 주머니 챙기기, 기득권화되는 과정과 그 뻔뻔함을 그대로 지켜보고 또 겪었기 때문에 상당히 냉소적이 되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그냥 포기하고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아마 이렇게 사람이란 것이 나이를 먹고 노화하고 보수화되고 좋게 말하면 중립적/객관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회색 종자가 되는 건가보다 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곤 했다)

 

 

그러나 막바지로 들어설수록 갈라치기와 혐오를 기반으로 온갖 더러운 잡소리를 해대는 꼬라지를 보니 '아 정말 이것은 좀 심하다. 이것만은 정말 너무 끔찍하다. 이렇게도 부끄러움 없이 혐오와 차별을 대놓고 전시하고 전략으로 삼는 세력이 당당하게 정권을 잡게 된다면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른 거 다 떠나서 그것 하나만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공언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것이 단순히 선거전략에 지나지 않으니 차후 그래도 통합과 보완하려는 적어도 제스처라도 보여주겠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런 프로파간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면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싶어 속이 상했고 답답했다. 

 

 

아마도 그래선지 그냥 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후 늦게부터 갑자기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얹힌 것 같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멍멍했다. 왜 그런지는 대충 알겠다. 지난 정권 때 겪었던 트라우마가 무의식적으로 재발한 것이다. 아마 이건 이성적으로는 제어가 안되는 영역이라 그런 것 같다. 그당시 실질적으로 삶을 영위함에 있어 심적으로 너무 타격을 받고 한동안은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서 거의 넝마가 되어 있었던 터라 무의식적으로 그때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 같다. 스스로를 많이 치유하며 잘 버텨온 편이라 생각하지만 하여튼 아직 온전하게 아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기에는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고 정치에 대해서도 가급적 쓰지 않는다. 그날그날 일상의 메모를 적지만 거기에는 자신이 긋는 선이 있고 정말 사적인 이야기는 적지 않는다. 생각에 대해서도 다 풀어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그냥 간단하게 '일어났다. 잠이 모자란다 혹은 잠을 많이 잤다. 이러이러한 꿈을 꿨다. 차마시고 글쓰고 쉬었다' 라고 적고 일찌감치 자러 가려고 했는데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좀 적어본다. 

 

 

 

 

 

하여튼 늦게 일어났고 아점 챙겨먹고 차 마시고 글을 좀 썼다. 옛날 무한도전을 보며 멍때려 보려 했는데 잘 안돼서 그냥 오늘의 메모를 적고 있다. 글을 조금 더 쓰고 자려고 하는데... 

 

 

그런데 원래 출구조사 결과만 잠깐 보고 아예 신경 끄고 폰도 안 보고 글쓰고 책 보다 자려고 했는데 생각지 않게 박빙이라 좀 놀랐다. 이게 뭐야, 나 정말 그냥 자려고 했는데. 아무 생각 안 하고 푹 자고 내일 일어나 그냥 출근하려 했는데. 잠 안 오면 자꾸 폰을 보게 되니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면을 도와주는 약도 조금 더 먹을까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하여튼 당초 예상했던 결과가 나올지라도 이런 현황을 분석해보면 그 인간들이 설마 그렇게 대놓고 혐오전략을 계속하지는 못하겠지... 라는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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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