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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나가다 찍은 장미. 딱 한송이가 새빨간게 예뻐서)


..



어제 저녁에 레냐가 친척 아주머니와 함께 프라하에 왔다. 료샤가 공항에서 픽업해 먼저 친척을 데려다주고 그 다음에 나를 보러 왔다.


레냐는 두달 반만에 또 큰 것 같았다. 엄마아빠가 둘다 크니 아마 쑥쑥 자랄듯. 내년에 오면 나보다 더 크는거 아니야ㅠㅜ


레냐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체리 없어서 못사왔다고 자기 아빠랑 똑같은 말을 한다. 나=체리 로 부자에게 각인된 모양이다.


어제 료샤네 방에 가서 셋이 윷놀이를 했다. 내가 레냐의 말을 놓아주어서 레냐가 우승했는데 아들에게 지는것조차 삐친 료샤는 내가 도와주는건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이 아니라고 한다 ㅋ


레냐는 계속 놀고 싶어했지만 아홉시가 되자 료샤가 엄격한 아빠 코스프레를 하며 애를 재웠다. 자기가 자면 내가 집에 갈거 아니냐고 찡찡대서 옆에 앉아 노래도 불러주고 재워주었다.


무슨 노래냐면.. 음, 내 주제곡. 깊은 산속 옹달샘 ㅋㅋㅋㅋ 레냐가 무슨 뜻이냐 물어봐서 대충 설명을 해줬더니 '토끼는 세수 안해도 돼서 좋겠다' 하고 폭 잠들었다. 아아고 귀여워라 ㅋㅋㅋ


레냐가 잠든 후 료샤가 나를 데려다주었다. 전날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쳐서 엄청 졸리고 머리가 아팠다. 삼각형 방 언제 나가냐고 물어서 일욜에 구시가지쪽 숙소로 옮긴다 했더니 다행이라 하고는 또 무서운 꿈을 꾸면 그냥 와서 레냐 옆에서 자라고 했다 ㅋㅋ 어머나 내 약혼자 아직 미성년자인데 그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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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악몽은 꾸지 않았으나 두어번 자다 깨다 했다. 늦게 일어나서 둘과의 조식은 놓치고 카피치코 근처의 프랑스식 비스트로에서 오믈렛과 생강차로 아점을 먹었다.



간밤부터 비가 왔고 놀랍게도 선선해졌다. 오늘도 내내 비가 약간씩 오락가락하다 저녁에 쏴 쏟아졌다. 머리를 풀어도 덥지 않았고 방수 윈드브레이커도 한장 덧입어야 했다.








햇살로 눈부시던 파스텔톤 거리는 비에 씻겨나가자 훨씬 진하고 선명한 색채로 젖어들었다. 무거워서 카메라는 두고 폰만 들고 다니며 찍었지만 그래도 흐린날이나 비온날 사진 색감은 확실히 다르다.


오늘은 폰으로 메모 올리고 있어 사진들은 나중에 더.. 티스토리는 해외에서 와이파이 잡아 모바일로 올리면 사진이 잘 안올라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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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치코에서 료샤와 레냐를 만나 차를 마셨다. 예전 카피치코는 동화책과 인형이 많아서 레냐가 더 좋아했을텐데. 그래도 며칠전 본 곰인형 있는 창가에 일부러 앉았는데 레냐가 자기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곰인형 같은건 안갖고 논다고 한다(대신 로보트와 게임임ㅋㅋ)



아쉽게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주인 아저씨 대신 젊은 여점원이 있었다. 역시 친절했다. 레냐는 핫초콜릿, 료샤는 카푸치노, 나는 다즐링을 마시고 오늘은 메도브닉 대신 오레호브이 도르트(월넛케익)를 시켜보았다. 여기 월넛케익은 피칸파이 비슷한 맛인데 훨씬 달고 촉촉하고 안에 시럽 같은 것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내 입맛엔 좀 달았지만 맛 자체는 좋았고 료샤와 레냐도 엄청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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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도 나누고 놀다가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는데 앞에서 따로 쓴대로 레냐가 유리액세서리 샵에서 내게 예쁜 펜던트를 선물하여 나는 감동... 아이고 레냐야... ㅠㅠ


그러나 펜던트 선물후 나의 8세 약혼자는 또래 친척 형들이랑 논다며 근처 흐라드차니에 사는 그 친척 아줌마네로 쪼르르 달려가고.. (무슨 로보트 놀이를 해야 한다 함 ㅋㅋ) 졸지에 버림받은 나는 로보트와 친척 형제보다 못한 약혼녀가 되어 실의에 빠지려다가, 료샤랑 존 레넌 펍에 갔다.






존 레넌 펍은 존 레넌 벽에서 옆골목으로 빠져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가면 나온다. 내가 궁금해하자 전에 가본 료샤는 그냥 레넌이랑 비틀즈 그림 걸어놓고 비틀즈 틀어주는데 별거 아니라 했다.


나 : 나 비틀즈 듣고픈데.. 아까 존 레넌 벽 앞에서 이매진 부르는 아저씨 보고 나니까 거.. 오늘 날씨도 스산하니 그렇고 비틀즈 딱 듣기 좋겠구만...


료샤 : 구식. 비틀즈나 좋아하고. 보위에...


나 : 야! 비틀즈가 어때서! 그리고 보위님 모독하면 용서못해!


료샤 : 하긴 보위는 나도 몇곡 좋아했지. 그래봤자 다 영국놈들.. 너 조지 마이클이랑 로비 윌리암스도 좋아했다며.


나 : 응, 음악은 그쪽 취향이 좀.. 90-2000년대초 브릿팝도 좋아했으니까. 펄프랑 오아시스


료샤 : 윽 오아시스 -.- 지겨워. 영국놈들.


료샤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초에 영국에서 유학을 했다. 근데 영국을 안좋아하고 맨날 영국놈들 하고 짜증내고 영국음식 맛없다고 툴툴댄다 ㅋㅋ 그러면서 나보고 브로큰 잉글리시와 브로큰 러시안을 구사한다고 놀린다 ㅠㅠ 야, 넌 돈의 힘으로 몇년이나 영국에 있었으니 당연히 나보다 백배 영어 잘하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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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우리는 존 레넌 펍에 갔다. 근데 료샤 말대로 나 좀 실망.. 비틀즈 노래가 나오긴 하는데 작게 나오고 히트곡들은 거의 안 나오고.. 게다가 관광객들이 너무너무 시끄러워서 음악이 안들렸다. 난 맥주 마실것도 아니고 노래 들으러 온건데 ㅠㅠ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을 시켜서 료샤는 맥주를 마시고 난 라즈베리 에이드를 마셨다. 버거를 반 갈라 나눠먹었는데 아직도 배가 안 꺼짐...


내가 실망하자 료샤가 비웃었다.


료샤 : 관광지에서 뭘 바라냐. 여기가 리버풀도 아닌데.

나 : 비틀즈랑 존 레넌 걸어놨으면 최소한 헤이 주드나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드 쯤은 듣고 싶었어 ㅠㅠ

료샤 : 왕 구식, 하고많은 비틀즈 노래 중에 그거냐.

나 : 걸이나 미셸도 좋아.. 나 고백하면 오브라디 오브라다도 좋아하고.. 트위스트 앤 샤웃 듣고파 ㅠㅠ


펍에 있는 동안 그 노래들 중 하나도 안 나왔다 ㅠㅠ 나왔어도 소음 때매 안 들렸을 것이다.


펍에서 나와 존 레넌 벽 앞에 다시 갔다. 비가 조금씩 내렸고 오후 늦은 시각이라 관광객들도 거의 없었다. 료샤가 자기 폰에서 뭘 찾더니 스피커로 비틀즈를 틀어주었다.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드가 나왔다.



나 : 어? 앱이야?

료샤 : 내가 다운받았던거.

나 : 비틀즈 구식이라며!

료샤 : 근데 예전에 베스트 선집인가 하나 통째로 다운받아놨었어. 너랑 얘기하다 생각났어.

나 : 와 기특해라. 훌륭하다!

료샤 : 오늘 듣고 지워버려야지. 메모리 잡아먹어.

나 : 비틀즈를 지우다니...



찬연한 존 레넌 벽 앞에서 가랑비 맞으며 방수 후드 둘러쓰고 그것도 스피커폰으로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드부터 예스터데이, 렛잇비, 걸, 미셸, 오브라디 오브라다(ㅋ), 그리고 헤이 주드를 연이어 듣는 게 놀랍게도 기분이 좋았다. 노래가 역시 좋았다.


그리고 지나가던 관광객들 몇명도 우리 옆에 와서 같이 들었고 역시나 헤이 주드는 후렴구가 되면 다같이 흥얼거리게 되었다. 나나나나나나나~~ 헤이 주드~~<



나 : 아이 씐나

료샤 : 왕 구식. 옛날 사람. 뭐냐, 길바닥에서 옛날노래 듣고 좋아하고.

나 : 우리 어릴때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노래 듣던 세대잖아ㅠㅠ

료샤 : 쳇.

나 : 너 빅토르 초이 좋아 안 좋아!

료샤 : 말이라고 하냐 좋지

나 : 그러면서 뭘.


하여튼 레냐는 펜던트를 선물하고(곧 날 버리고 놀러갔지만 ㅋ) 료샤는 비틀즈를 들려줘서 행복하고 고마운 하루였다.





..




저녁에 료샤랑 레냐랑 같이 차를 타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블타바 강변을 돌았다. 야경이 예쁘긴 하지만 비 안 올때가 훨씬 예뻐서 좀 아쉬웠다.


내일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구시가지 쪽으로 옮기기 때문에 좀전에 방에 돌아왔다. 한시간쯤 가방 쌈. 아 정말 싫어 ㅠㅠ


부디 내일 옮기는 방엔 의자가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삼각형이 아니게 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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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