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ce

ты, 발로쟈. 부디 평안하기를

liontamer 2024. 11. 16. 22:41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2019년 11월이었다. 나는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11월에 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갔었다. 그 해 가을에 그는 서울에 와서 유니버설 발레단과 함께 <춘향>의 이몽룡을 췄었다. 공연을 마친 후 사인회에서 인사를 나누며 나는 '11월에 뻬쩨르 갈 거에요, 당신 공연 보러. '젊은이와 죽음' 보러 갈게요' 라고 했고 발로쟈는 웃으면서도 '아, 그거 엄청 심각하고 무거운데..' 라고 했다. '그래도 좋아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발레니까' 라고 대답했고 그는 '꼭 와요, 기다릴게요' 라고 했었다. 얼마 후 나는 페테르부르크에 갔고 젊은이와 죽음을 보러 마린스키에 갔다. 꽃과 작은 선물을 안내원 할머니에게 맡겨드렸다. 친구와 같이 갔던지라 기다리지는 않고 공연 마친 후 호텔로 돌아왔는데 인스타 dm으로 발로쟈가 녹취를 보내왔다. 우리는 그전에도 여러번 잠깐씩 공연 이후나 공항에서 마주쳐 이야기를 짧게 나눴었고 얼굴을 보면 인사하고 포옹을 하는 정도였지만 항상 존대어를 썼다. 당연히 인스타나 디엠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를 보내온 것도 처음이었지만 ты라고 말한 것도 처음이었다. вы에서 ты로, 당신에서 너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행복하고 소중했다. 
 
 
그는 인사를 했고 와줘서 고맙다고, 꽃도 선물도 고맙다고, 혹시 아직 극장에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자기는 다른쪽 방향으로 나왔다고, 너 아직 여기 있느냐고, 있으면 말해달라고, 그러면 잠깐이라도 보자고 말해주었다. 언제나처럼 나직하고 조곤조곤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나는 그날은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며칠 후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갔다. 그는 거기서 지그프리드를 췄다. 가장 훌륭한 왕자, 너무나도 온전하고 귀족적이면서도 완벽한 지그프리드였다. 공연이 끝난 후 그는 나에게 디엠으로 자기는 마린스키 극장 ㅇㅇ번 출구로 나올 거라고, 잠깐 보자고 했다. 운하 옆의 작은 문이었다. 나는 거기서 그의 아내인 마샤와도 재회했고, 잠시 후 발로쟈와도 다시 만났다. 그는 분장을 모두 지워서 창백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을만큼 아름답고 다정했다. 우리는 거기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사진을 찍었고 또 보자고, 꼭 다시 보자고 하며 포옹과 함께 헤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ты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지그프리드. 극장. 운하. 
 
 
그리고는 코로나와 전쟁으로 나는 다시는 그의 무대를 보러 가지 못했다. 전쟁만 끝나면 다시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스타로는 이따금 디엠을 주고받았고 그의 포스팅과 영상들, 사진들에는 언제나 피드백을 했다. 하지만 무대를 직접 보고 또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눈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충만한 무용수였다. 최근엔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수술을 앞두고도 있었지만 그래도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었던 예술가였다. 재능과 매력,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사인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자택 발코니에 잠깐 바람쐬러 나갔다가 실족사했다는 글을 읽었다. 부상 때문에 쉬고 있었고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워낙 미디어나 댓글들로 이상한 추측이 난무하자 측근이 밝힌 것이다. 나도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대해 이것저것 적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제 페테르부르크에 가도 이 사람의 무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그 나직하고 조용하고 조금은 종알거리듯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난 너의 넘버원 한국 팬이잖아, 기억하지?' 라고 웃으며 다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고통스럽다.
 
 
나는 그가 무엇보다도 아름답기 때문에 좋아했다. 왜냐하면 예술은, 무대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이니까.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으니까. 그보다도 더 높이 뛰는 무용수도, 더 테크닉이 좋은 무용수도, 혹은 더 조각같이 잘생긴 무용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처럼 아름다운 무용수는 없었다. 그는 극장이 무엇인지, 무대가 무엇인지 잘 알았고 자신의 춤으로, 혹은, 자신의 불꽃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줄 아는 무용수였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용수였고 진정한 의미에서 배우였으며 예술가였다. 그렇게 춤을 추는 사람은 드물다. 
 
 
발로쟈, 부디 평안하기를. 그런데 아직도 나는 작별인사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그 단어를 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