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엘스카
테이스트 맵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옆으로 꺾어 조금 더 걷고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엘스카가 나온다. 맨처음 엘스카에 갔던 것도 딱 그때였다. 도착한 주의 첫 일요일, 흐린 날. 볼트를 타고 테이스트 맵에 갔다가 나와서 걸어가는 길에 엘스카에 처음 갔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카페였다. 아마도 컬러와 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는 나에게 아마 카페 에벨과 좀 비슷한 느낌으로 남을 것 같다. 에벨보다는 좀더 개방적이고 밝고 쿨하긴 하지만, 여기서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책읽기가 좋았다. 처음에는 스케치도 두번이나 했다. 그 이후엔 책을 읽느라 좀 무거운 아이패드는 안 가지고 다니게 되었지만.
오늘은 하루를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테이스트 맵에서 두시 좀 넘어서 나온 후 숙소로 가는 길에 역시 엘스카에 들렀다. 두시 반 즈음인데도 아직 만석이었다. 1층 입구 테이블에 앉았고 디카페인 플랫 화이트를 시켰다. 오늘은 첨 보는 점원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도 친절하게 잘해주었다. 1층과 바, 주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책을 좀더 읽고, 오늘의 사진도 좀 정리한 후 카페를 나왔다. 시간이 되면 내일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들르고 싶지만 만일 그러지 못한다 해도 섭섭하지 않도록 카페를 많이 보고 천천히 플랫 화이트도 마셨다. 그런데 설탕을 넣었는데도 전보다 쓰네. 디카페인이 더 쓴 걸까? 여기서 디카페인 카푸치노와 플랫 화이트를 시켜봤는데 내 느낌인가 모르겠지만 이것들이 더 쓴 맛인 것만 같음. 테이스트 맵 여파인가? ㅎㅎ
디카페인 플랫 화이트. 설탕 투하 전. 오늘도 이키 설탕이 나를 반겨주었다.
책 표지를 싸놓은 빌니우스 지도가 많이 헐었다. 엘스카에서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세상이 끝나기까지 아직 10억년', 피천득의 '인연', 하루키 잡문집(아니, 이건 여기까진 안 가져왔나 긴가민가. 이 책은 무거워서... 근데 가져왔던 것 같기도 하다. 엘스카는 워낙 자주 와서), 그리고 이 '미운 백조들'을 이어서 읽었다.
이 사거리와 빨간 트롤리버스도 그리울 것 같다.
맨 위 사진보다는 현관 쪽이 더 많이 나온 사진.
쿠야도 인사하렴. 쿠야는 내일 기내 캐리어에 먼저 들어가 있어야 하니 엘스카 한번 더 들러도 못 데려오니까 여기서 인사를 했다. 마치 자기가 이 카페 주인인양 당당하게.
쿠야가 '엘스카야, 번성하거라!' 하고 축복해주는 것 같음.
그런데 이등신조차 안되게 찍어준 이 사진에 쿠야는 좌절하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