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스카와 새 이키 설탕
11시 반이 넘어 느지막하게 방에서 나왔다. 어디를 갈까 고민했는데 몇군데 다시 들러볼까 한 카페들은 모두 브런치를 하고 있어 만석일 것 같았다. 테이스트 맵도 브런치를 한다고 해서 예전의 일요일 오전 기억에 '아 가봤자 장난아니겠는걸' 하는 생각에 일단 가까운 엘스카로 가보았다. 여기도 주말 이 시간대에는 자리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까우니까 혹시나 해서. 만약에 자리가 없으면 카페인이나 뭔가 다른 데 가야지 하면서.
다행히 엘스카 1층에 자리가 있었다. 입구 쪽 테이블과 창가 쪽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있어 얼른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이 자리는 앉아보지 않았던 자리라서. 여기는 창문이 커서 빛이 아주 잘 들어오기 때문인지 거의 항상 차 있다. 나는 2층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이 자리에 빨간 의자가 있어 좋아하며 앉았음.
카푸치노 작은 사이즈를 주문하고 설탕을 가지러 갔다. 오 그런데 드디어 여기 설탕 바뀌었네! 그런데 이키 설탕... 보통 음식점이나 카페는 설탕을 도매로 주문해다 쓸 것 같은데 이건 아무래도 길 건너편에 있는 이키 슈퍼에서 급조해 사온 것 같다. 하긴 그저께까지 갔을 때마다 설탕 봉지를 뜯으면 설탕이 굳어져 있었어... 아마 마지막 남은 오래된 설탕이었던 것 같다. 그 설탕이 다 돼서 급조한 것 같음. 이키 가서 빨리 사오자~ 하면서. 드디어 새로 산 설탕이라 그런가 이건 습기로 굳어져 있지 않고 아주 잘 뿌려졌음. 이 이키 설탕봉지는 <미운 백조들> 책갈피로 활용.
이 자리.
쿠야도 당당하게. 자기가 이 카페 주인인 것처럼. 쿠야야, 이제 한국 돌아가면 카페 자이칙 밖에 없는데 너 만족할 수 있겠니? ㅠㅠ
창가 배경으로도 찍어봄. 여기는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카페라서 계속해 트롤리버스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빨간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렇게... 빨간 버스...
<미운 백조들>을 이어서 읽었다. 흥미진진해지고 있는 파트에서 책을 덮고 일어났다. 오늘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토요일이라 모두가 브런치를 먹으러 왔다. 다들 빨간 번호표를 테이블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카푸치노도 늦게 나왔지만 나보다 먼저 온 남자 손님은 내가 나갈 때까지도 밥이 안 나와서 하염없이 빨간 번호표를 놓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카페가 크지 않은데 브런치를 다들 시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긴 했다. 손님들이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가기도 했다. 엘스카의 브런치를 고대하며 토요일에 찾아온 손님들을 생각해서 나도 마침 카푸치노를 다 마셨기에 한시간 안되어 일어났다. 원래는 오후 2~4시 사이에 왔으면 좀 한적할테지만.
이키 설탕과 카푸치노 풀샷. 설탕봉지가 이쁜 건 아닌데 이키 설탕이란 게 좀 재미있었다. 설탕 떨어졌다고 막 길 건너 슈퍼에 사러 가는 점원들이 상상돼서 그런가보다.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3~4일 전에 왔을 때에도 변기 일부가 좀 떨어져서 덜컥거리고 있었는데 그대로인데다 문구만 추가됨. 근데 이 문구 붙일 시간에 수리를 하면 되지 않을까, 별로 어려운 건 아니고 새로 사서 갈아끼우면 되는 건데... 하긴 쓰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금 불편할 뿐이지. 러시아 같았으면 '기술적 이유로 화장실 못 씀' 이렇게 붙어 있었을지도 몰라. 여기는 쓸 수는 있지만 안 고치고 안내문구를 친절하게... 카페 스티커도 아낌없이 붙여서. 우리나라 같았으면 손님들 민원과 별점 테러가...
(그건 그렇고 나 저 스티커 갖고 싶다 ㅠㅠ 이뻐서가 아니라 엘스카 생각에 ㅎㅎㅎ)
밀려드는 손님들을 생각해서 좀 일찍 일어나 나오며 찍은 사진. 돌아가면 많이 그립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