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룬, 벌룬들
6월의 빌니우스는 밝고 화창하고 작고 귀여우면서도 그늘진 골목들 어딘가에서는 동구권 특유의 미묘한 어둠이 느껴지는 도시였다. 후자는 언덕을 올라 이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골목과 좁은 거리들, 수리를 기다리는 낡은 건물과 낙서들이 휘갈겨진 균열 가득한 벽들, 그리고 바로크식 성당들의 뒤켠을 지날때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분으로, 아마 이것은 가을과 겨울, 빛이 부족해지고 비와 바람, 눈과 어둠이 가득한 계절이 오면 본격적으로 강렬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름이었고 너무나 날씨가 좋은 시즌이었으므로 그런 기분은 가끔, 드물게만 느껴졌다.
이 작고 아늑하고 소박한 도시에서 나를 놀라게 했던 것, 아니 그보다는 웃음짓게 했던 건 바로 벌룬들이었다. 빌니우스의 도시홍보 인스타그램이 줄기차게 자랑하는 소재는 두가지로 하나는 핑크수프(비트와 사워크림으로 만든 냉수프이다. 러시아에도 비슷한게 있는데 하여튼 빌니우스 홍보팀인지 관광청인지에서는 이걸 트레이드마크처럼 내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벌룬들이다. 아니 얼마나 자랑할게 없으면 벌룬 띄우는 걸 이렇게 자랑하지? 하며 우스웠는데(고소공포증 때문에 결코 벌룬을 타지 못하는 인간이라 더 그런지도), 막상 빌니우스의 골목을 걷다가 새파란 하늘 위로 벌룬들이 동동 떠올라 날아가는 것을 보는 기분이란 참 신기했다. 아마 그때 실컷 수다를 떨며(이때 나의 라섹 수술 이야기 등을 했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 ㅎㅎㅎ) 걸어가던 길에 갑자기 영원한 휴가님이 '오, 벌룬! 벌룬 떠가네요!' 라고 하셨기 때문에, 생각지 않은 순간 너무 의외로 동그란 벌룬들이 둥둥 떠오르는 걸 봤기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사진을 두세 장 찍어두었는데 벌룬은 하늘 높이 떠올라 있었고 내 손에는 dslr이 아니라 폰이 들려 있었으므로 줌을 당기는데 한계가 있어 화질이 좋지 않아 아쉽다. 벌룬들은 콩알만하게 나왔다.
2년만에 다시 여행을 나와서 새로운 도시에서 친구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겁게 걷다가 갑자기 하늘에 떠오르는 벌룬들을 보는 것. 그 여름의 빌니우스 여행에는 그런 작은 놀라움과 즐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10월 휴식이 뜻대로 진행된다면 이 도시를 다시 들르게 될텐데,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 시즌엔 이렇게 벌룬이 뜨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