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니우스 카페 6 : 민트 비네투 Mint Vinetu
빌니우스에 다녀온지도 어느덧 4개월이 넘었고, 여름이 지나버리고 가을도 저물어가고 추워지는 계절이 되었다. 틈틈이 여행의 추억과 사진을 올려보려 했는데 바쁘게 일하며 네덜란드 호떡집들을 문어발로 막아내다 보니 심지어 이 포스팅은 한달쯤 전에 사진들을 이렇게 모아놓고는 미루고 미뤄서 지금이 되었다. 한달만에 돌아온 빌니우스 카페 시리즈 여섯번째. 민트 비네투.
민트 비네투는 구시가지에 있는 헌책방 서점이다. 여기는 영원한 휴가님과 재회했을 때 내가 좋아할 곳이라며 데려가주셨던 곳이고 그때는 서점 구경 책 구경 엽서 구경을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오후에 다시 가 보았다. 빌니우스 카페들 중 내가 두번 간 곳이 거의 없는데(피나비야만 예외) 여기가 바로 두번 간 곳이다. 이곳은 내가 빌니우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 중 하나이다. 민트색 간판도 이뻤고 책들도, 여기저기 구석에 숨어 있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창문도 모두 좋았다.
두번째로 갔을 때는 처음 봤을 때 찍어두었던 구석 창가 테이블로 들어가 앉았다. 여름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손님들은 야외 테이블이나 홀 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간 건 나 뿐이었다. 나도 원래 밝은 곳을 좋아하긴 하는데 여기는 꼭 도서실, 서재 같은 느낌이라 안쪽 창가에 앉아보고 싶었다. 거기 앉아 간만에 아이패드 꺼내서 스케치도 하고 즐거웠다. 글을 쓰기 좋은 곳이었다. 아마 내가 빌니우스에서 산다면 여기 종종 글을 쓰러 왔을 것 같다.
단 하나의 단점은, 겨울엔 분명히 추울 거란 점이었다. 여름이었는데도 창가 구석은 싸늘했다.
사진들 많이.
여기는 녹차가 있었다 :) 오전에 홍차를 마신 터라 여기서는 녹차를 주문해 마셨다. 양도 많았다.
아마 이곳이 마음에 들었던 또다른 이유는 오랜 엣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였던 것 같다. 안쪽 테이블에 이렇게 스탠드가 달려 있었는데, 문득 오랜 옛날 페테르부르크에서 지낼 때, 그러니까 맨 처음과 또 2006년 즈음 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연수를 할때 종종 이용했던 학교 독서실 생각이 났다. 물론 이렇게 예쁘진 않았지만.
나는 본관에서도 수업을 들었지만 스몰니의 분관에서도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때로 교통편 때문에 수업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는 적이 있었다. 그러면 1층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다가 나타나는 조그만 독서실로 들어가서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거기서 과제를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다. 당시는 가을과 겨울이었고 당연히 어둡고 스산하고 추웠다. 책상마다 작은 스탠드가 달려 있었는데 이것처럼 반짝반짝한 놈은 아니었고 매우매우 소련/러시아 냄새가 풀풀 나는 연한 법랑질 노란색의 낡은 갓에 백열전구가 한개 꽂혀 있는 놈이었다. 추워서 목도리를 펼쳐 무릎을 덮고 한껏 웅크린 채 그 책상의 백열전구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고 러시아어 동사의 정태, 부정태, 접두사 따위를 구분하며 머리아파했다. 오래된 옥스퍼드 영러 미니사전을 많이 넘기기도 했다. 아마 지금 같으면 그 흐린 불빛 아래 누런 갱지에 인쇄된 깨알같은 단어가 보이지도 않을 것 같다. 거기 앉아서 러시아 고전문학이 아니라 세르게이 루키야넨코의 판타지 소설을 읽기도 했다. 아마 그 추억 때문에 이곳이 더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작은 전등 하나, 겨울이 되면 비슷한 날씨가 찾아올 것이 분명한 어둑어둑한 방.
이 창가. 창 너머로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역시 추울 것만 같다 :)
여기서 스케치를 두 장 그렸다. 위 사진의 스케치는 여기 : moonage daydream :: 바르샤바 토끼 (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