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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기 직전 슈클랴로프님이 꿈에 나오심. 그렇지 않아도 딱 작년 이맘때 슈클랴로프 부부가 유니버설 발레 갈라에 출연하느라 내한했었고 연 사흘 공연 보러 가고 끝난 후 만나 사인도 받고 얘기도 나눴는데 아마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꿈에 나와주심. 꿈속에서 발로쟈는 아내인 마리야와 함께 다시 우리 나라에 왔고 무려 우리집에 놀러와서(!) 배웅하러 나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깼다. 아아 이렇게 엄청난 꿈인데 나는 오늘 로또를 샀어야 했는데 여기는 시골 동네라 로또 파는 곳이 없음 흐흑...



사진은 작년 가을에 갔을 때 마린스키 샵에서 산 이분의 데뷔 15주년 프로그램. 표지는 바이에른에서 췄던 로미오. 블루블랙의 저 깃털 브로치는 마린스키에서 샀는지 다른 가게에서 샀는지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저 브로치가 참 이쁘긴 한데 핀이 좀 허술해서 망가질까봐 실제로 달고 나간 적은 두어번밖에 없음. 저 프로그램 샀던 날 블라지미르 바르나바 안무의 페트루슈카를 보러 갔었다. 슈클랴로프님의 연기도 훌륭했고 춤도 좋았지만 안무 자체는 좀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발로쟈의 표현력 하나만으로도 볼만한 가치는 있었다. 게다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있고. (스트라빈스키 음악들 중 페트루슈카를 가장 좋아함)






그냥 넘어가기 아쉬우니 그날 찍은 커튼콜 사진 두장. 분명 맨 앞줄 가운데 앉아서 봤건만... 역시나 마린스키 신관은 조명도 그렇고 맨 앞줄에서 찍으면 오히려 빛이 다 번진다 ㅠㅠ 게다가 페트루슈카 역의 발로쟈는 하얀옷과 하얀 모자 때문에 더더욱 빛이 번져서 사진 폭망... 그래도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 중 하나는 내가 준 거니까 기념으로 :)







이날 페트루슈카에 대한 아주 짧은 메모와 폰으로 찍은 커튼콜 사진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376


:
Posted by liontamer






첨에 휴가 냈을땐 원래 오늘밤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일이 좀 있어 이틀 연장해 화요일 밤에 떠나게 되었다. 더 있는 거야 나쁘지 않지만 일이 밀리고 있을테고 파트너 후배가 혼자 고생하는 시간이 늘어나는게 미안스럽다. 뭔가 좀 사다줘야겠다.. 흑..



..



맨위 사진은 마린스키 신관 전시실. 1야루스(3층) 홀에 있다. 프티파 200주년이라 올해 행사가 많았는데 전시도 열리고 있었다. 사진의 화려한 빨간 무용화는 발레 라이몬다(영어식으론 레이몬다라고 하는거 같기도)의 여성 무용화.








오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주연의 페트루슈카 공연이 있었다. 뛰어난 무용수인 동시에 탁월한 배우인 이 사람이 추는 페트루슈카가 항상 궁금했었다. 이사람이 추는 포킨 오리지널과 블라지미르 바르나바의 버전 둘다 보고팠는데 오늘 올린 건 후자였다.



아니, 화보에선 그렇게도 인상쓰며 최선을 다해 못생긴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못나게 분장을 해도 조명 받을때마다 타고난 잘생김이 자꾸 스며나왔음!



스트라빈스키 음악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내게 페트루슈카는 글쓰기에 있어 불새와는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한 발레이다. 오리지널 포킨 버전도 마린스키 무대에서 봤었는데 바르나바 버전도 작년에 나왔을때부터 궁금했었다.


맨앞 가운데 앉아서 봄. 슈클랴로프님은 역시 명불허전. 춤도 연기도 모두 아주 훌륭했다. 몸과 눈빛을 참 잘 쓰는 무용수이다. 그리고 간만에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로 듣는 페트루슈카.. 좋았다.



다만 바르나바는 역시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다시금 느낌. 이 사람이 안무한거 이래저래 마린스키 무대에서 여럿 봤는데 항상 어딘가 피상적이란 느낌이었다. 페트루슈카도 그랬다. 많은 상징을 부여하며 근사하게 만들어내려 했지만 정작 의도와 미술과 음악, 페트루슈카라는 존재 자체의 무게에 휘둘려 허덕허덕 쫓아가는 느낌이었다.



무용수들 문제는 아니었다. 슈클랴로프를 비롯해 실라치(차력사. 원작에선 아랍인)와 디바(원작에선 발레리나), 페트루슈카의 죽음(내가 귀여워라 하는 다비드 잘레예프) 등 무용수들은 좋았다. 움직임과 연기도 나무랄데 없었다.



그저 작품 자체가 좀 아쉬웠다. 저런 주제와 미술과 질료들(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라고요! 심지어 비슈뇨바와 세르게예프도 이거 췄음)을 사용했다면 좀더 깊이있는 작품이 나왔을법도 한데.. 내게 있어 바르나바는 아직 좀 치기 어린 안무가인것 같다. 나이도 이제 30살 될까말까 젊지만 이건 꼭 나이 문제는 아니다. 아주 젊은 안무가도 놀랍게도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여튼 쫌 아쉬웠지만 슈클랴로프의 원숙한 연기와 춤을 보는건 역시 반갑고 좋았다. 커튼콜때 내가 맡긴 꽃다발도 등장해서 기쁨 :)) 꽃다발 여럿 받으심. 나는 빨강과 분홍장미 섞어서 줬다. 페트루슈카가 흰색과 회색 계열 의상이라 눈에 띄라고 :))



그의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친구이자 최근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마린스키로 돌아온 안나 라브리넨코가 오른편 사이드 중간줄에 앉은거 발견. 인사하고팠는데 창피해서 망설이다 쉬는 시간에 마침 내 앞을 지나가기에 인사함. 마샤는 눈짓하며 인사받고 갔고(일행이 있었다) 안나와는 아주 잠깐 얘기나눔. 마린스키 돌아온거 축하해요 언제 나오세요 등 묻고 행운 빌어주고 헤어짐.



발로쟈, 한국 또 오세요...





커튼콜 사진 한장. 맨앞줄 가운데였지만 오늘따라 폰이 버벅대서 화질 나쁨 ㅠㅠ 카메라로 찍은건 나중에 집에 가면.. 근데 신관 무대에서 흰옷 입고 나올때 찍으면 맨날 사진 망하므로 기대 안함 ㅠㅠ


발로쟈는 어디에 있을까요~ 가운데 계시긴 한데 페트루슈카 역이라 행색이 초라함.. 그래도 무대 위에서 눈빛이 얼마나 형형하게 살아 있던지.







내가 바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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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예전에 이 폴더에 미샤와 그의 극장 동기 레냐(내 약혼자 아님), 그리고 궁전광장과 백야,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단편 Illuminated wall 전문과 배경 사진들을 올린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3385)



그 단편은 아주 오래 전,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향수를 담아서 썼던 글인데 초창기에 내가 구상했던 미샤가 등장했다. 거기 등장하는 미샤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미샤와는 많이 닮은 동시에 약간은 다른 면도 있다.



그 단편은 1975년 여름, 소련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권력자의 별장에 춤추러 오라는 명령을 받은 미샤는 그것을 어기고 백야의 레닌그라드 거리를 쏘다니고 궁전광장에서 춤을 춘다. 그때 그는 동료인 레냐에게 자신이 푸쉬킨의 원작을 바탕으로 안무를 할 거라고 얘기하고 광장에서 그 춤의 일부를 보여준다. 그 작품은 푸쉬킨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였다. 나의 옛 단편에서 미샤는 루슬란의 적수인 악당 로그다이의 춤을 보여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미샤가 처음으로 안무하게 되는 발레는 그 '루슬란과 류드밀라'였다. 루슬란과 로그다이, 파를라프, 라트미르 4인의 기사들만 등장하는 40분짜리 단막 발레.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고 미샤를 불러낸 후, 나는 장편 하나를 썼다. 미샤의 친구이자 애인인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오는 꽤 긴 소설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미샤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안무하게 했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미샤가 그 작품을 안무하는 과정 일부와 작품을 실제로 무대에 올리는 장면이다. 이 소설은 발레계 인물이 아닌 트로이의 시점에서 전개되므로 안무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여기 나온 정도만 적었다.



...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푸쉬킨이 불과 스무살때 썼던 근사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러시아 동화로 읽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도 잘 읽어보면 그냥 동화는 아니다. 꽤나 멋지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해 아주 간단한 줄거리(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웅 루슬란이 아름다운 왕녀 류드밀라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수염 기른 마법사 체르노모르가 나타나 류드밀라를 납치한다. 류드밀라의 아버지는 비탄에 빠져 루슬란을 탓하고, 류드밀라를 구해오는 남자에게 그녀와 결혼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4명의 기사가 길을 떠난다. 주인공인 루슬란. 음침하고 파괴적인 로그다이. 좀 비겁한 파를라프. 세속적이고 선량한 라트미르. 이야기는 이 네명의 모험을 번갈아 보여주고, 동시에 마법사의 성에 갇혀버린 류드밀라의 모험도 같이 그려낸다(사실 류드밀라 얘기가 제일 재미있고 생기넘친다. 푸쉬킨은 생기 넘치는 씩씩한 아가씨 묘사를 참 잘한다) 이러저러하여 루슬란은 결국 마법사를 물리치고 류드밀라를 구해낸다. 그 와중에 루슬란을 죽이려고 달려들던 로그다이는 결투에 패해서 죽고(물귀신에게 영혼 끌려감 ㅠㅠ), 라트미르는 온갖 여색과 사치를 즐긴 끝에 도를 깨쳐서 소박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고, 비겁한 파를라프는 마녀의 도움으로 막판에 루슬란을 궁지에 몰아넣고 류드밀라를 탈취하려다 결국 실패하게 된다.



미샤는 이 재미나는 이야기 전체를 어린이 발레처럼 안무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가 어떻게 안무했는지는 아래 발췌본에 나와 있다.



...



에피소드 도입부에 언급되는 알렉산더 트로치는 영국 현대 작가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는 전에 올린 적이 있다.



보리스 아사예프는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 이반 노비코프는 볼쇼이 발레단 행정감독이다. 물론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냈음.



...



맨 위 화보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은 David Paitschadse.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런던에 가기 전에 딱 한번 트로이의 집에 찾아왔다. 알렉산더 트로치의 소설과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 때문이었다. 트로치 소설에 대해서는 30분 정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맨 처음 함께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얘기가 잘 통했다. 미샤는 레딩 감옥의 발라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트로이에게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달라고 청했다. 그는 와일드 작품을 가져왔을 때는 항상 그랬다.



 “ 낭송 테이프 구해다줄까? ”




 “ 난 네가 읽어주는 게 더 좋아. ”



 미샤는 잠시 소파에 앉아 트로이가 시를 읽어주는 것을 듣다가 창가로 가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적이 없는 동작이었지만 아마 백야 안무의 일부일 거라고 생각하며 트로이는 계속해서 시를 읽었다.



 한참 읽다가 트로이는 입을 다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큰 소리로 물었다.



 “ 그게 뭐야? 그게 춤이야? ”



 미샤는 그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계속해서 움직였다. 전신을 너무 지독하게 경련하며 바닥에 몸을 굴리고 있어서 트로이는 순간 그가 간질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질렸다.



 “ 어디 아파? ”



 무릎으로 바닥을 찧어대면서 미샤가 말했다.



 “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읽어. ”


 “ 그게 백야야? ”


 “ 아니, 루슬란과 류드밀라야. 그냥 읽어. ”


 “ 왜 와일드를 들으면서 푸시킨 시를 춰? ”


 “ 도움이 돼. 제발 읽어. ” 
 




 그래서 트로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계속 읽었다. 나중에는 아예 등을 돌리고 읽었다. 낭송을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미샤가 소파에 거꾸로 누워 머리를 바닥에 댄 채 손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 일린의 새 작품이야? ”




 “ 내가 만드는 거야. 좀 됐어. ”




 “ 안무를 한다고? ”




 “ 응, 5월에 올릴 거야. ”




 “ 전혀 몰랐다, 그쪽에도 관심 있는 줄은. 일린 때문에 자극받았어? ”




 “ 아니, 작년 여름에 골자는 잡았는데 계속 정신이 없어서 손 놓고 있었어. ”




 “ 지금이 제일 바쁜 거 아냐? ”




 “ 바쁘지. ”




 미샤는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다리를 길게 뻗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셔츠가 말려 올라가며 등이 반쯤 노출되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 사이로 척추 마디들이 가지런하게 튀어 올랐다. 트로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 뼈가 다 불거지네,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잘 챙겨먹고 다녀. ”




 “ 바빠서 그래. 백야 올리고 나면 나아질 거야. ”




 “ 백야에 런던도 모자라서 그 오싹한 춤까지. ”




 “ 별로 오싹하지 않아, 아까 그 부분만 좀 그래. ”




 “ 무슨 장면이었는데? ” 




 “ 비겁한 짓이 일어나는 장면. 그래서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거야. ”




 “ 루슬란과 류드밀라라며? ”




 “ 아, 근데 류드밀라는 안 나올 거야. 아까 그건 파를라프의 춤이야. ”




 “ 뭐, 자고 있는 사람 칼로 찌르고 여자 뺏는 그 놈? ”




 “ 응, 기분 나쁘게 출 만하지? ”
 




 트로이는 창가로 가서 전날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사왔던 치킨 샌드위치와 며칠 동안 굴러다니고 있던 오렌지를 가져왔다.



 “ 좀 먹어라, 맛은 별로 없을 테지만. ”




 
 미샤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포장지를 벗기고 반으로 쪼갰지만 입에 가져가지는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 왜, 변했어? 차가운데 놔둬서 괜찮을 텐데. ”




 “ 있다가 먹을게. ”




 “ 그럼 오렌지라도 먹어. ”




 미샤가 오렌지 껍질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기계적으로 먹는 게 분명했지만 어쨌든 뭔가를 입에 넣고 있었으므로 트로이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얼굴이 더 갸름해져서 얼핏 돌아보면 우물처럼 깊은 눈만 보일 지경이었다. 한동안 가위질도 하지 않았는지 길게 자라난 머리칼이 귀를 덮고 목덜미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구겨진 셔츠와 낡은 청바지를 입고 바닥에 앉아 오렌지를 먹고 있는 그 야윈 모습을 보니 근육질의 클래식 무용수라기보다는 미국 음악 잡지에나 나오는 깡마른 락 가수에나 어울릴 것 같았다. 저질스럽고 별 뜻도 없는 가사로 노래하고 기타를 치고 가죽옷을 입고 그루피들과 난잡하게 뒤엉키고 타락한 자본주의 제국의 소산인 마약이나 찔러 넣는 인간들. 그러나 미샤 뿐만 아니라 그와 갈랴와 이고리, 다른 친구들도, 심지어 알리사까지도 그자들의 음반을 모았다.



 “ 일린과는 그래도 잘 맞는 것 같네. 이제 집에도 잘 들어가고. ”



 트로이는 자신이 왜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스타니슬라프 일린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비이성적인 질투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샤를 볼 때마다 그 조그맣고 사근사근한 남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스탄카는 좋아. 얘기가 잘 통해. ”




 “ 지나가 불편해 하지 않아? ”




 “ 지나는 남자들과 잘 지내. 나하고도 사는데 뭐. ”




 “ 그 사람은 혼자 온 거야? 가족은 없어? ”



 그는 차마 ‘그 자식하고도 같이 자고 있어?’ 라고 묻지 못했다.



 미샤는 그의 소리 없는 질문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하긴 알아차렸어도 내색하지 않을 게 뻔했다.



 “ 혼자 왔어. 공연 날 모스크바에서 애들이 올지도 모르지만. ”




 “ 애들? 결혼했어? ”




 “ 했었지, 두 번. 애들은 첫 부인한테서 난 거고. 큰 애가 벌써 열 살인가 그럴 걸. ” 




 “ 별로 애 아버지처럼 안 보이던데. ”




 “ 뭐 자기가 키우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바가노바에서 특강해주는 거 보니까 어린애들 잘 다루던데. ”




 
 그래서 미샤가 고집을 부려도 잘 받아넘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일린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에 희미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 지금 안무하는 그 춤도 일린이 도와줘? ”




 
 미샤가 반쯤 먹은 오렌지를 남은 껍질에 싼 채 샌드위치 옆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씨앗을 두어 개 뱉더니 바닥에 놓고 무심하게 굴렸다.



 “ 아니. 스탄카와 나는 많이 달라. ”




 “ 잘 맞는 줄 알았는데? ”




 “ 스탄카가 잘 맞춰주는 거지. 춤에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 ”




 “ 일린이 감상적이라는 거야? ”



 미샤가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 아, 예리한데. 어떤 사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다고 했지. ”



 물론 트로이는 마로조프와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백야 자체가 감상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소설이잖아. ”




 “ 음, 스탄카가 그런 쪽을 좋아하긴 하지. 착하고 밝아, 사람을 잘 믿고 포용력도 있고. ”




 “ 그럼 왜 페트루슈카는 그렇게 만든 거야? ”




 “ 나한테 맞춰준 거지. 페트루슈카는 그 사람 원래 작업과는 색깔이 많이 달라. ”




 “ 난 네가 그렇게 우울한 걸 추는 게 싫어. ”




 미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 낯설고 쓸쓸하게 보였다. 종종 그 얼굴에는 따뜻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세공된 짐승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표정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아니라 세월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사원의 유물처럼 보였다. 트로이는 그런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막 트로이가 오한으로 몸을 움츠렸을 때 미샤가 다가와 그의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머리를 쓸면서 뺨을 비볐다. 
 


 “ 런던 갔다 와서 봐. ”



 미샤가 외투를 껴입고 혹한의 거리로 나간 후 트로이는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실 바닥에는 반쯤 먹은 오렌지, 두 개의 매끄러운 씨앗, 그리고 반으로 쪼갠 채 입도 대지 않은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소파 팔걸이에는 미샤가 잊고 간 흰색 울 스카프가 걸쳐져 있었다. 그는 차나 커피도 없이 샌드위치를 모두 먹어치우고 남은 오렌지 반쪽도 먹었다. 그리고 두 개의 오렌지 씨앗도 알약처럼 털어 넣은 후 씹지 않고 삼켰다.



 그날 밤 그는 그 울 스카프를 두르고 잤다. 무겁게 밀려드는 야생 꿀 냄새를 맡으면서. 꿈속에서 그는 암청색 단추가 세 개 달린 흰 스웨터 위로 짙은 녹색 목도리를 느슨하게 늘어뜨린 채 눈보라와 안개 속을 걷고 있는 미샤 야스민을 보았다.




 ...




 5월에 미샤는 안무가로 데뷔했다. 일린이 총연출을 맡아 세 개의 모던 발레 작품을 소개한 ‘새로운 발레의 밤’에서 마지막 순서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올렸다. 막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강력한 후원자들이나 팬들조차도 미샤가 안무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뛰어난 무용수와 뛰어난 안무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전한 데뷔 방법은 유명한 원작을 간단하게 손봐 재안무한다거나 짧고 서정적인 음악을 써서 무용수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가벼운 소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샤 야스민은 4명의 젊은 무용수를 기용해 팽팽한 플롯의 40분짜리 드라마를 만들었다. 가벼운 음악 대신 보로딘과 무소르그스키를 사용했고 순수한 움직임 자체를 위한 동작은 전혀 쓰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모든 움직임은 철저하게 주제와 플롯에 따라 흘러갔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샤의 첫 안무작이 일린의 스타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온 작품은 완급 조절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40분 내내 격정적으로 내달렸다. 그 작품은 잘 짜인 연극처럼 시종일관 관객들의 감정을 철사처럼 죄어대며 흥분 상태로 몰아갔다. 그 무대에서 부드러운 로맨스나 우아한 감상주의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미샤는 젊은 안무가가 빠지기 쉬운 무모하고 비논리적인 실험주의도 피해갔다. 독설가인 루바노프스카야조차 ‘매우 성공적인 데뷔작’이라는 표제와 함께 미샤가 소위 ‘새로운 춤’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의미한 연출가의 자기 독백에 매몰되지 않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맞은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평가했다.



 미샤는 푸시킨의 그 유명한 서사시 전체를 다루지 않았다. 수염 기른 마법사 체르노모르도, 동굴의 은자와 황야의 거대한 머리도, 마녀 나이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가장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제목과는 달리 미샤의 작품에 류드밀라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샤는 오직 네 명의 기사들만을 골랐다. 루슬란, 로그다이, 라트미르, 파를라프. 납치된 류드밀라를 찾아 떠난 경쟁자들. 주인공은 여전히 루슬란이었고 그의 존재는 작품 전체의 축을 이루고 있었지만 미샤는 4명의 인물들에게 동등한 무게를 부여했다. 격정적인 2인무와 4인무, 독무를 통해 발레는 그 인물들에게 내재된 감정의 본질을 그렸다. 전형적인 영웅 주인공인 루슬란의 용기와 고결함, 파멸로 치닫게 될 로그다이의 증오와 분노, 환락에서 벗어나 소박한 삶을 택하는 라트미르의 중용과 우정, 그리고 언제나 도망치면서 기회를 노리는 파를라프의 비겁함과 공포.



 그건 자칫하면 매우 작위적이고 추상적인 묘사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무대를 보면서 트로이는 왜 미샤가 자신은 일린에게 의지하지 않는다고 그토록 단호하게 얘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샤에게는 추상적인 개념과 감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형상화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오랫동안 트로이는 미샤의 그 능력이 자신의 육체와 움직임에 한정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날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보면서 트로이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샤는 인간 내부로부터 실질적인 움직임을 끄집어내고 형식을 부여할 줄 알았다. 그건 창작자의 능력이었다. 관객들은 리브레토가 적힌 팸플릿을 읽지 않고도 루슬란과 로그다이, 라트미르와 파를라프가 왜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지, 그들이 표출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건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날아오는 메시지들이었다.



 미샤는 루슬란을 추지 않았다. 고전적이며 우아한 레오니드 핀스키에게 그 역을 주었다. 2년 선배이자 성격 연기에 능한 안톤 볼로호프에게 까다로운 파를라프 역을 맡겼고 약간 수도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잘생긴 이오시프 본다렌코에게 라트미르를 추게 했다. 미샤 자신은 로그다이를 췄다. 트로이는 그 어둡고 파괴적인 배역이 미샤에게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무대 위에서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역을 출 때마다 관객들이 그토록 강력한 열광에 빠져드는 것이 싫었다. 루슬란과의 격투에서 살해당하는 그 검은 기사의 최후가 너무나 냉혹하고 처참해서 트로이는 가슴 깊이 공포를 느꼈다. 그 두려움이 지나치게 실질적이고 불쾌하게 와 닿았기 때문에 며칠 후 미샤를 만났을 때 왜 너는 항상 무대에서 죽는 역을 고르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 그런 역은 몇 개 없는데... 고전 레퍼토리는 아사예프가 맡기는 거고. ”




 “ 네가 안무한 것도 그랬잖아. 로그다이를 췄잖아. ”




 “ 음, 난 사실 파를라프를 출까 했어. 근데 아사예프가 루슬란을 추든가 로그다이를 추지 않으면 무대에 올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했어. 루슬란은 레냐에게 주기로 약속했었거든. ”




 “ 넌 파를라프를 추기엔 너무 눈에 띄어, 어울리지도 않고. 관객들도 이입이 잘 안됐을 걸,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겁쟁이 야스민은. ”




 “ 언제나 비겁한 자가 끝까지 살아남아. ”



 미샤는 예의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하얀 알약을 꺼내 삼킨 후 덧붙였다.



 “ 하긴 로그다이를 제일 먼저 안무하긴 했어. 가장 쉬웠고. 제일 어려웠던 건 라트미르였어. 이오시프가 아니었으면 스탄카에게 춰달라고 했을지도 몰라. 이젠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서 어려웠겠지만. ”




 발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호소력 있게 표출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흘러갔다. 종반부에서 로그다이는 살해당해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라트미르는 우정의 키스와 함께 루슬란과 작별했다. 주인공 루슬란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류드밀라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한 채 환희에 차 퇴장하고 어둠이 가득한 무대 위에는 슬금슬금 기어나와 주변을 배회하는 파를라프만이 남았다.



 미샤가 류드밀라를 등장시키지 않은 것은 일린이 나스첸카의 첫사랑을 생략했을 때와는 달리 매우 영리한 선택이라는 평을 받았다. 루바노프스카야는 예의 그 평론에서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류드밀라의 존재야말로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썼다. 그녀는 보통 미샤에게 적대적인 입장이었으므로 공연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세레브랴코프는 믿었던 루바노프스카야의 호의적 평에 당황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지적한 것은 미샤가 데뷔작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가끔 과격한 연출을 선보였다는 것뿐이었다.



 관객들은 그 작품에 매료되었다. 젊은 무용수의 첫 안무작에는 과분할 정도로 열정적인 호응이 쏟아졌다. 꽤 많은 사람들이 보리스 아사예프에게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계속해서 키로프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썼다. 아사예프는 그 반응에 흡족해하며 6월말 백야 축제에 그 작품을 다시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반 노비코프는 그리고로비치와 함께 오직 그 공연을 보기 위해 5월에 다시 레닌그라드에 들렀는데, 아사예프를 구슬려 크레믈린 축제와 볼쇼이 무대에서 각각 한 번씩 루슬란을 올리기로 했다. 볼쇼이에서 밀어 넣은 일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보리스 아사예프로서는 ‘우리 골칫거리’가 ‘우리 자랑거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미샤에게 괜찮은 작품을 하나 더 안무한다면 다음 시즌 무대에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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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발췌본은 사실 두가지 장에서 각각 가져왔다. 앞부분의 트로이와 미샤의 대화, 그리고 뒷부분의 미샤의 데뷔 이야기 사이에는 미샤의 런던 공연과 알리사의 이야기, 그리고 일린이 미샤와 지나를 위해 안무해준 백야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여기서는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대한 이야기만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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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안무에 대해서는 전에 세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3385 : 빛나는 벽(illuminated wall) 전문.



http://tveye.tistory.com/5589 : 벨스키와의 면회
(여기서 미샤가 '그 순진하고 무해한 루슬란'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http://tveye.tistory.com/6138  : 별장의 스비제르스키와 미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미샤의 수첩을 훔쳐본 후 그의 춤연습을 보면서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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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와 미샤의 대화에 등장하는 '페트루슈카'는 일린이 미샤의 영국 무대를 위해 안무해준 솔로이다. 포킨의 원작을 각색해 꼭두각시 인형 페트루슈카의 독백 장면만 재안무한 작품인데 물론 이것도 내가 만든 버전임. 미샤가 일린과 함께 이 작품을 연습하는 장면과, 영국에서 이 공연을 보고 알리사가 소회를 밝히는 장면을 각각 발췌한 적이 있다. 링크는 아래.


http://tveye.tistory.com/6544 페트루슈카를 연습하는 미샤와 일린


http://tveye.tistory.com/5178 알리사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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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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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랜만에 본편 일부를 올려본다.


이 에피소드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이전에 각각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네프스키의 유명 디저트 가게인 세베르에 나갔던 트로이는 우연히 미샤와 그의 극장 친구들을 마주치게 된다. 거기에는 미샤의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를 비롯해 동기인 레냐 핀스키, 후배인 니넬,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초빙되어 온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있었다. 일린은 토요일이 자신의 생일이라며 그를 파티에 초대한다.


순서는 반대로 일린의 생일 파티를 먼저 올렸었다. 트로이는 파티에 가서 미샤의 극장 동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미샤는 브이소츠키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 술에 취해 나가떨어진다.


이번에 올리는 에피소드는 그 두 이야기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시간 순서대로 재배열하면 세베르 - 이번 에피소드 - 노래 부르고 나가떨어지는 미샤 이다.




그 두 에피소드 링크는 아래 :


 
http://tveye.tistory.com/6253 세베르에서의 만남, 달콤한 것들, 미샤와 지나 어릴적 스케치 2


http://tveye.tistory.com/5842 생일과 그 다음날, 브이소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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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는 일린의 이름과 부칭이다. 제대로 된 이름은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 일린이고 미샤는 그를 애칭인 스탄카라고 부른다.



미샤와 일린이 논쟁을 벌이는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백야'이다. 나스첸카는 그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내가 쓴 이 소설 속에서 일린은 미샤와 지나를 위해 '백야'를 단막 발레로 안무하고 미샤를 화자였던 남자 주인공, 지나를 나스첸카로 캐스팅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과 부칭이다. 미샤에게는 존경하는 예술가를 이름과 부칭으로 부르는 버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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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토요일 저녁 7시에 트로이는 미샤와 지나이다의 아파트로 갔다. 생일 파티는 8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미샤가 백야 때문에 일린과 이견이 생겼다면서 좀 일찍 와달라고 했다. 트로이는 자신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일찍 갔다.



 지나이다가 문을 열어주더니 반색을 했다.



 “ 제발 쟤 좀 말려요. 저러다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를 잡아먹겠어요. ”



 힐끗 보니 부엌 테이블에는 이미 음식들과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준비해 온 게 틀림없었다. 미샤는 원래 요리를 하거나 잘 차려먹는데 관심이 별로 없었고 지나이다도 가정적인 주부 노릇을 하기에는 너무 여왕님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술 한 잔 권하기는커녕 코트를 벗는 것도 기다려주지 않고 그의 팔목을 잡아끌며 거실로 데려갔다.



 미샤는 피아노 옆에 선 채 일린과 열띠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샤는 평소에는 나직하고 부드럽게 얘기했지만 논쟁할 때는 명료하고 건조한 말투로 변했다. 그는 빠르게 쏟아지는 일린의 설명을 중간 중간 칼처럼 끊어대며 끼어들었다. 검은 눈에서 불꽃이 연달아 튀었다. 처음에 트로이는 그들이 뭘 가지고 그렇게 가열찬 논쟁을 벌이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듣고 보니 주인공이 나스첸카의 첫사랑에게 연애편지를 전해주러 갈 때 무대 어느 쪽에 서야 하느냐, 여자가 그 첫사랑이란 작자에게 달려들어 안길 때 주인공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느냐 아니면 관객들로부터 등을 돌려야 하느냐 등의 트로이로서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듯한 문제들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대체 왜 미샤가 자신에게 빨리 와 달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참 열을 내다가 트로이를 발견한 미샤가 좋아하며 손목을 휙 흔들었다.



 “ 아, 잘됐다. 빨리 스탄카한테 설명 좀 해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이 사람한테 좀 알려줘. 그리고 백야가 주인공과 나스첸카의 연애소설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짝사랑이라는 이론 좀 설명해봐. 구조주의랑 뭐 그런 것도 섞어서. 너 지난번에 세미나에서 발표한 거 있잖아. ”



 “ 구조주의와는 관계가 없는데... ”



 “ 아니, 관계가 있게 설명해줘. 넌 할 수 있잖아. ”



 “ 그거랑 무대에서 등을 돌리고 말고랑 대체 상관이 있어? ”



 “ 있어요. ”



 미샤 대신 일린이 대꾸했다. 역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지만 밝은 회색 눈은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아마 턱수염을 깎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트로이에게 자신들의 이견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미샤의 질문과 주인공의 동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쭉 설명했다. 그는 간결하게 문장을 끊어서 말하는 미샤와는 달리 빠르고 길고 부드럽게 얘기했다. 일린이 어찌나 설득력 있게 조곤조곤 얘기하는지 트로이는 미샤에게 그냥 연출자의 말을 따르라고 충고할 뻔 했다. 하지만 미샤가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할 수 없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페테르부르크 소설들에 대해 얘기를 늘어놔야 했다. 나중에는 미샤가 원하는 대로 구조주의 이론도 좀 섞었다.



 얘기를 마쳤을 때 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음, 그럼 좀 더 생각해봐야겠는데. 이건 내일 다시 맞춰보는 걸로 해. ”




 “ 등 돌리는 거지? ”




 
 한번 파고들면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는 미샤가 집요하게 물었다. 자신이 일린의 입장이었다면 그 고집 세고 버릇없는 젊은 애에게 화를 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린은 소리 내어 웃었다.



 “ 그래, 등 돌리는 걸로 하자. 이제 페트루슈카 좀 맞춰보면 좋겠는데. 좀 있으면 사람들 올 테니까. ”



 소파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지나이다가 일어났다. 피아노 쪽으로 다가오면서 트로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 고마워요, 덕분에 공연이 파탄나지는 않겠네요. ”




 “ 무슨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군요. ”




 “ 그냥 쟤를 얌전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성공이에요. ”




 지나이다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테마를 치기 시작했다. 미샤가 바 앞으로 가더니 목과 팔을 기형적으로 꺾은 채 지푸라기 인형처럼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일린이 박자를 셌다. 중간 중간 동작을 지시하기도 하고 손을 내저으며 음악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백야를 놓고 열띠게 대들던 것과는 달리 미샤는 일린의 모든 지적에 온순하게 따랐다.




 “ 팔을 더 내려야 해. 허리는 좀 더 펴고. 무릎이 더 나가야지. 다시 해봐. 어깨도 내리고. ”




 미샤가 다시 포즈를 취했다. 일린이 뒤로 다가와서 왼쪽 어깨를 아래로 세게 내리눌렀다. 아픈 부위였기 때문에 미샤가 잠깐 얼굴을 찡그렸지만 불평 없이 어깨를 더 내렸다. 일린이 손을 치우자 그는 정말로 꼭두각시 인형 같은 모습으로 허공에 매달린 듯 서 있었다. 트로이는 금방이라도 미샤가 무릎을 꺾고 바닥에 넘어질까봐 오싹했다.



 지나이다가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이제 일린은 박자를 세는 것 외에는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고 피아노 옆에 선 채 미샤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샤는 검은 머리칼을 털실이나 지푸라기처럼 들썩이며 사지를 상하좌우로 흔들었다. 몇 차례 이어지는 도약조차 무릎을 구부린 채 낮게 뛰었다. 발레란 몸을 가능한 한 곧게 펴고 길게 늘이는 것이라고 믿었던 트로이에게 있어 그 춤은 전혀 아름답거나 우아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팔과 어깨 동작이 특히 그랬다. 불협화음과 구슬픈 멜로디가 뒤섞인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속에서 미샤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우울해지고 고통스러워졌다. 얼굴 전체가 일그러지며 외롭고 슬프게 변했다. 두 손을 털실로 감친 인형 손처럼 둥그렇게 뭉쳐서 가슴을 치며 옷을 잡아당기고 어깨를 떨며 이따금 구부러진 다리를 바깥으로 한두 번 찼다. 피아노를 치면서 지나이다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 너무 슬픈데. 꼭 저걸 가져가야 하나... ”




 미샤가 몸을 돌려 일린 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 발레리나 인형이나 독재자 흥행사를 바라보는 것이겠지만 피아노 옆에는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있었고 그 밝은 회색 눈은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았다. 예리한 칼처럼 자기 앞의 무용수를 주시하고 있었다. 미샤는 두 손을 어색하게 뻗더니 삿대질을 하고 턱짓을 했다. 그리고 어깨를 홱 떨구더니 한 바퀴 빙글 돌고 바닥에 넘어졌다.



 일린이 손바닥을 마주쳐 딱 소리를 냈다.



 “ 훨씬 좋아졌네. 어깨 동작만 좀 손보면 되겠어. 런던에서 좋아할 거야. ”




 미샤는 심하게 숨을 헐떡였다. 트로이는 그가 연습하면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게 어려운 동작 때문인지 마음이 산란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면 티셔츠가 땀에 젖어 몸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거실 마룻바닥에 반쯤 엎드린 채 두 손으로 머리와 가슴을 감싸고 숨을 몰아쉬면서 가만히 있었다. 방금 춘 춤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든 것 같았다. 마침내 일린이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씻어야지, 뭘 더 입든가. 런던 가기도 전에 감기 걸리면 안되잖아. ”




 “ 나 좀 놔둬. ”




 미샤가 목쉰 음성으로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머리를 들지 않은 채였다. 지나이다가 일어나더니 모른 척하면서 부엌으로 갔다. 일린은 다른 말을 하는 대신 소파에 펼쳐져 있던 카디건을 가져와 미샤의 머리와 등을 덮었다.



 잠시 후 미샤가 일어났다. 여전히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카디건을 일린에게 휙 던지고 한 손으로 어깨를 누르면서 욕실로 갔다. 스위치를 찾지 못해 한참 문 옆 벽을 더듬었다. 트로이가 다가가서 불을 켜주었다. 미샤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곧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린은 바를 붙잡고 아까 미샤가 하던 동작 몇 개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정확하기는 했지만 나이 때문인지, 무용수에서 은퇴한지 오래됐기 때문인지 미샤보다는 훨씬 뻣뻣했고 우아한 느낌도 적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했다. ‘좀 더 내려야 하는데...’ 하고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트로이는 견디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 더는 아파서 안 될 거예요. 그 어깨 아픈지 반년 가까이 됐어요. ”




 “ 아니, 그 정도예요? 왜 아프다고 얘길 하지 않는 건지... ”




 “ 자존심이 강해서 그래요. ”




 “ 저 정도로 추면 자존심 내세워도 돼요. 아픈 건 별개지만. ”




 “ 백야만 추는 줄 알았는데, 런던은 무슨 얘기죠? ”




 “ 2월 런던 페스티벌 있잖아요. 경쟁부문에도 초청됐어요. 참가진도 꽤 화려하고. 그래서 페트루슈카로 정한 거예요, 누가 뭐래도 러시아 춤이니까. ”




 “ 미샤가 정했어요? ”




 “ 아뇨, 하나 안무해달라고 해서 내가 고른 거죠. 물론 포킨 오리지널에서 가져온 거지만. ”




 “ 그럼 런던에 함께 가요? ”




 “ 글쎄요, 당국에서 나까지 허가를 내줄 것 같지는 않아요. ”




 일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그 정도로 아프다면 동작을 바꿔야겠는데... ”




 “ 미샤에게는 내가 그런 말 했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




 “ 자존심 앞에는 친구도 소용없나 보죠? ”




 “ 자기 춤 앞에서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죠. ”




 “ 그럴만해요. 내가 저렇게 출 수 있었다면 목숨이라도 내놨을 테니까. ”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투명한 회색 고양이처럼 미소를 띠었다. 트로이는 사라토프의 시골에서 할머니가 고양이들을 자루에 넣어 강물에 빠뜨려 죽였던 것을 떠올렸다. 일린을 향해 솟구치는 부당한 증오심에 그는 소스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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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페트루슈카에 대해서는 전에 몇번 올린 적이 있다.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의 초창기 메인 안무가였던 미하일 포킨이 니진스키를 위해 안무한 단막 발레이다. 러시아 전통시장과 놀이문화, 마슬레니차의 흥겨움과 화려함, 거기에 꼭두각시 헝겊 인형 페트루슈카와 독재자 흥행사, 아름다운 발레리나 인형과 폭압적인 무어 인형이 등장한다. 음악은 스트라빈스키. 원체 음악이 유명해서 종종 따로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연주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미샤가 추는 페트루슈카는 포킨 원작이 아니고 일린이 그 원작을 따와서 미샤를 위해 변형시킨 작품이다. 여기 발췌한 적은 없지만 이후 미샤는 안무가가 되었을 때 니진스키를 위한 트리뷰트 작품을 안무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한 페트루슈카를 재등장시킨다.




런던에서 미샤가 춘 페트루슈카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공연을 본 알리사가 트로이에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http://tveye.tistory.com/5178 프라하의 두 개 메모, 문을 여는 사람, 악령과 성모



마린스키에서 본 페트루슈카 무대에 대한 짧은 메모와 사진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15

http://tveye.tistory.com/3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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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포킨의 페트루슈카를 춘 바츨라프 니진스키.






최근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발레 뤼스 디아길레프 갈라에서 페트루슈카의 모놀로그를 추었다. 마린스키에 오리지널 페트루슈카가 레퍼토리로 들어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은 그전까지는 페트루슈카를 춰본 적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려준 연습 영상을 보니 무척 보고팠는데 공연 영상은 올라오지 않았다. 무대 분장 사진을 보니 오리지널 페트루슈카를 그대로 따온 것 같긴 한데... 나에겐 실제 분장 사진보다 이 연습 사진이 더 인상깊었다.


페트루슈카는 남자 꼭두각시 인형이지만 최근 디아나 비슈뇨바가 젊은 안무가인 블라지미르 바르나바가 새로 안무한 작품에서 페트루슈카 역할을 추기도 했다.


리허설 중인 슈클랴로프 사진 몇 장 더.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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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간만에 등장하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번주에 오랜만에 마린스키 가서 청동기사상의 예브게니를 춘다. 그리고 3월 중순엔 런던의 발레 뤼스 기념공연에서 무려 페트루슈카의 모놀로그를 춘다! 새로운 안무인 모양이다.


아아... 그 페트루슈카의 모놀로그에 대해선 나도 몇년 전에 본편에서 썼는데 ㅠㅠ 그때 나는 등장하는 안무가로 하여금 페트루슈카를 재안무해 주인공에게 추게 만들었는데(심지어 그때 본편의 미샤 역시 런던의 어떤 페스티벌에서 이 춤을 췄다) 이번에 슈클랴로프가 딱 그런 식으로 런던에서 춘다니 신기하다.

(* 그 페트루슈카 관련 에피소드 일부를 발췌해 올렸던 적도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5178)



이것이 바로 현실과 허구가 만나는 지점인 것 같다. 사실 페트루슈카의 재해석이라면 안무가나 남성 무용수들이 욕심낼 수밖에 없는 캐릭터가 아닌가...



위의 사진은 물론 페트루슈카는 아니고, 발레 101 추는 슈클랴로프 사진 + 내가 그린 스케치 :) 이 사람 무대는 작년에 마린스키에서 청동기사상과 지젤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바이에른으로 가버린 후에는 이 사람 무대를 보지 못했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잘 모르겠다... 부디 페트루슈카 모놀로그는 영상으로라도 올라왔으면 좋겠다. 최근 이 사람이 공식 홈페이지를 오픈했는데 거기 공연 일정이 좀 나와 있으니 휴가 때 참고를 해보고 싶다만... 내 맘대로 되지야 않겠지 ㅜ



** 이전에 마린스키에서 포킨 오리지널 안무의 페트루슈카 보고 남긴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686, http://tveye.tistory.com/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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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월요병에 시달리는 중.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사진 보며 위안..

이건 2월 20일. 마린스키 극장(오리지널. 구관) 카페. 보통 마린스키에 가면 2야루스 레프트 윙에 있는 카페에 가는데, 이때는 거기 사람이 꽉 차서 평소에 안 가던 쪽으로 갔다. 복도에 있는 좁은 테이블 쪽인데 여기는 의자가 없어서 서서 차 마셔야 함.

그런데 이 테이블이 놓인 복도 난간 너머로는 2층 벨에타쥐 쪽의 메인 홀이 보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괜찮았다.

 

이날은 유리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봄의 예감'과 포킨의 '페트루슈카'를 보러 갔다.

 

물론 후자를 보러 간 거였는데, 페트루슈카는 시각적으로도 화려한 성찬이고 음악도 무척 좋다. 발레 자체는, 아마도 더 어릴 때 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옛날부터 중요한 발레 중 하나였는데(글쓰기부터 시작해서 여러 의미로) 확실히 영상과 무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무대를 보니 페트루슈카라는 주인공에 대해 내가 갖고 있었던 오랜 느낌과 내가 부여했던 상징은 의외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페트루슈카는 언제나 그런 작품이었고 내가 거기에 니진스키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봄의 예감은.. 음... 난 안무가로서의 유리 스메칼로프를 괜찮게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너무 작위적이었고 지루했다. 안무 자체도 그렇고.. 이 무대 보고 나서 느낀 건.. 콘스탄틴 즈베레프가 불쌍하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즈베레프는 여기서 태양신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엄청 기다랗고 무거운 금빛 천을 내내 끌고 다니고 막 휘두르며 빙빙 돌아야 하고.. 하여튼 중노동을 ㅠㅠ

 

흑흑 불쌍한 코스챠... 키 크고 풍채 좋다는 이유로 태양신이 되어 고생하고.. 최근 스메칼로프가 안무하고 슈클랴로프가 주역을 춘 저승세계의 오르페우스에서도 흉칙한 의상과 분장을 한 저승 뱃사공 카론으로 등장하고.. (즈베레프가 그 역이라는 자막을 봐서 망정이지 얼굴도 못 알아볼 지경 ㅠㅠ)

 

이 두 작품 리뷰도 아직 못 썼네. 생각해보니 2월에 가서 6개나 공연을 봤는데 제대로 리뷰 쓴 건 하나도 없고.. 그나마도 미하일로프스키에서 라 바야데르 보고 와서 빅토르 레베제프의 나무토막 연기에 분노해 쓴 게 제일 긴 거네 ㅠ (그 분노의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04)

 

 

 

이땐 아직 오페라 글라스 사기 전이라... (마지막 날 샀다 ㅠㅠ)

코트 보관소에서 빌린 오래된 오페라 글라스. 이거 빌릴 때마다 옛날에 가난한 학생 시절 마린스키 오면 이거 빌려서 윗층으로 올라가 공연 보던 생각이 난다. 메이드 인 USSR!!

 

 

테이블 너머로 아래의 메인 홀이 슬쩍 보인다.

이날은 차를 많이 마시고 가서 차 대신 사과주스랑 티라미수..

 

 

천정의 샹들리에 보너스로 한 컷.

 

아, 다시 가고 싶구나!

 

* 이 날 공연 보고 와서 남긴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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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마린스키 극장(오리지널)에서 단막발레인 '봄의 예감'과 '페트루슈카' 보고 돌아옴. 피곤하니 리뷰는 나중에 따로 올리고 그냥 아주 짧은 메모만.

 

맨 처음엔 왜 성격이 전혀 다른 이 두 작품을 묶었나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지금이 봄을 기원하는 마슬레니짜 축제 기간이라... 전자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이야기를 알레고리로 풀어낸 유리 스메칼로프의 작품이고 너무나 유명한 후자는 마슬레니짜 축제 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미하일 포킨 작품이다. 그래서 두개를 엮은 거였어.

 

 

 

안무가로서의 스메칼로프를 좋아하긴 하지만 봄의 예감은 너무 알레고리에 치중한 나머지 많이 단조로워서 아쉬웠다. 춤도 크게 볼만한 건 없었고... 어쨌든 리뷰는 나중에.

 

자리가 베누아르의 오른편 사이드라... 줌 당겨도 한계가 있었고 비스듬한 구도로밖에 안나옴.

 

스메칼로프 작품은 24일에 올리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진짜 보고픈데. 작년 4월 발레 페스티벌때 슈클랴로프를 주역으로 안무해서 올린 작품인데 영상으로 보고도 정말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콧수염 달고 안 멋있는 중년남자 캐릭터로 나오는 슈클랴로프는 이쁘게는 안나오지만 드라마틱한 연기가 일품이었는데. 꼭 무대에서 보고팠지만 그건 24일이라 불가능이다 흐흑...

 

 

페트루슈카는 포킨의 다른 발레 몇개와 마찬가지로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마린스키 무대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근사했다. 하지만 오늘의 페트루슈카는 옛날부터 내가 의미를 많이 부여했던 페트루슈카 인형의 고뇌와 억압구조에 대한 깊은 생각보다는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알렉산드르 베누아(서구에는 프랑스식 표기인 브누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의 화려한 무대 미술/의상, 그리고 떠들썩하고 화사한 러시아 민속풍경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느낌이었다. 뭐 그건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변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걸수도 있다. 페트루슈카는 언제나 그런 작품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이 리뷰도 나중에. 근데 돌아가서 제대로 다 리뷰 쓰기나 할지 모르겠네. 사실 작년 백야때 와서 본 발레도 마르그리트와 아르망만 리뷰 올리고 두번이나 본 라 바야데르와 돈키호테, 인프라에 대한 리뷰는 흐지부지 안 올렸는데 ㅠㅠ

 

 

커튼콜 사진 한장. 자리가 멀어서 화질 안 좋지만.

무어인 역의 이슬롬 바이무라도프. 발레리나 역의 야나 셀리나. 페트루슈카 역의 안톤 코르사코프.

 

아..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어 엉엉..

내일은 마린스키 신관에서 라트만스키의 안나 카레니나로 공연 마무리. 보고 싶었던 공연이고 로파트키나가 나오니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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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연주회 끝나고 귀가 중. 짧은 메모. 나야 클래식에 대한 전문적인 귀가 없으니 그냥 가벼운 느낌만.

하딩은 날렵하고 귀여웠다.

무소르그스키와 스트라빈스키를 해석하는 런던의 감수성이 궁금했다. 전자는 무난했고 후자는 유려했다.

사실 페트루슈카 들으러 간 거였다. 국내에선 단독 작품으로 연주되는 적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발레가 무대에 올라오기도 어려우니..

스트라빈스키 곡은 가끔 들으면 좋지만 그리 편한 건 아닌데 그래도 난 그의 발레곡들을 좋아하는 편이고 특히 페트루슈카를 좋아한다. 춤도 음악도 브누와의 무대 미술도 모두. 작품 자체는 아니지만 니진스키와의 연계와 상징성도.

쉽지는 않은 곡이다. 하긴 이젠 그렇게 혁명적이거나 난해한 작품이라 할 수 없겠지만 20세기 초에는 그랬다.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곡이고 발레 뤼스가 이 작품 공연을 앞두고 연습할때 오케스트라가 이따위 곡은 도저히 연주할 수 없다고 저항하기도 했고. 디아길레프는 스트라빈스키의 천재성을 추어주며 그들을 나무랐고 결국 잘 진행됐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실 디아길레프야 내심 즐겼겠지. 관객을 놀라게 하고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스트라빈스키의 경우도 이후 봄의 제전 땐 극장을 발칵 뒤집는 스캔들이 또 일어났으니까. 하긴 그땐 니진스키의 안무가 더 큰 이유였을테지만.

어쨌든 그래서인지 유명세 때문인지 스트라빈스키 곡이 연주회 레퍼토리로 올라오는 경우는 대부분 봄의 제전이나 소품이었던 것 같다. 내게도 페트루슈카는 독립적 작품이라기보단 춤곡이다.

하딩과 런던 심포니의 연주는 유려하고 섬세하며 매끄러웠다. 사실 난 좀더 거칠고 툭툭 긁히고 충돌이 세고 더 구슬픈 페트루슈카에 더 익숙한 편이지만 오늘 연주도 나름대로 듣기 좋았다.

계속되는 커튼콜과 3곡의 앵콜.

마지막 앵콜 직전 피곤하기도 하고 갈 길이 멀어서 일어나려다 앉았는데 갔으면 엄청 후회할 뻔 했다. 스타워즈 테마를 연주해줬던 것이다. 도입부 나올때도 설마? 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고 이후 밀려오는 감동 :) 오래된 스타워즈 팬에겐 진짜 기분좋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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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