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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4. 08:15

비오는 날 카피치코 2022-23 praha2023. 2. 24. 08:15

 

 

 

오늘도 매우 일찍 출근해 일하다가, 잠깐 마음의 위안 사진 몇 장. 내가 프라하에 가면 꼭 들르는 카페 중 한 곳인 카피치코. 여기는 신기하게 비오는 날 지친 몸을 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오후보다는 정오 전후의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때 가곤 했다. 십년 전 이맘때 프라하에서 지낼 무렵 처음으로 가게 되어 자주 들르던 곳인데, 지금 말테세 광장 쪽으로 옮겨온 이곳도 좋지만 사실 나는 미셴스카 거리에 있었던 처음 장소가 더 좋다. 인테리어는 대동소이하지만. 몇년 전에 들렀을 때 '없어진 줄 알고 슬펐는데 여기로 옮겨온 걸 알고 기뻤어요. 왜 이사하셨어요?' 라고 묻자 여러 문제로 이쪽으로 옮겨왔다고 주인인 로만이 얘기했었다. 이번에 갔을 때는 로만을 보지 못했다. 어쨌든 여기는 로만 외에도 모든 점원이 친절하다. 

 

 

2018년 겨울에 왔었으니 4년 만에 다시 들렀다. 그 사이 워머와 티포트 대신 차거름망이 든 거대한 컵으로 바뀐 것이 좀 아쉽긴 했다. 내 손목엔 너무 무거웠다. 

 

 

 

 

 

 

곰인형은 십년 전 미셴스카 골목에 있던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란 색지에 손으로 쓴 메뉴판도 여전했다. 그러나 가격은 올랐다. 뭐 몇년 만에 온 프라하는 물가가 상당히 올라 있었으므로(더 이상 '저렴한 여행' 범주에 들어가지 않게 됨)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카페들에 비해 상당히 양호하다. 

 

 

다시 저기 가서 앉아 있고 싶지만, 이제 또 노동의 소용돌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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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2. 00:39

뭔가 먹는 것만 가득 2022-23 praha2022. 11. 22. 00:39

 






오늘 하루 요약~



메모 적기 귀찮은데 이 그림 한 장으로 때우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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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1. 19:43

카피치코, 다시 만나 반가워요! 2022-23 praha2022. 11. 21. 19:43






아침에 트램을 타고 말로스트란스케 광장에 내렸다. 그렇게 자주 다녔는데도 바보같이 길을 잘못 들어 중간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골목에서 꺾어야 할것을 쭉 가서 결국 캄파 공원을 빙 돌아 거슬러 올라옴.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비 때문에 지치고 어이없이 길 헤매서 지친 상태로 카피치코 간판이 나오자 너무 반가웠다!



일찍 와서 손님이 없다. 여기 오면 꼭 시키는 다즐링과 메도빅 :) 그런데 새 컵이 너무 무겁다... 주인 아저씨 로만 대신 여자 점원 한분만 있네. 차 마시고 몸 좀 녹이고 나가야지. 비가 오니 이 날씨도 눈 못지 않게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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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23. 23:01

한낮의 카피치코 창가 2017-18 praha2019. 1. 23. 23:01







매우 힘든 하루였으므로 마음의 위안을 위해 카페 카피치코의 창가 사진 두장. 지난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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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6. 22:23

토끼의 스카프 활용법 2017-18 praha2018. 12. 16. 22:23






무인양품 광고 아님 ㅋㅋ 다른 스카프로도 당연히 가능함. 이 스카프엔 단추가 달려서 3번이 용이한데 일반 스카프는 그냥 두르거나 브로치로 여며 주면 완성 :) 카피치코가 쫌 추워서 3번으로 두르고 이 스케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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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쯤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뒹굴. 조식은 걸렀다. 이 호텔 조식도 작년보다 쫌 부실해져서.



10시 즈음 체크아웃했다. 좁은 방 안녕. 교묘하게 ㄴ자 형태가 안나와서 사진만 보면 별로 안 불편해 보이지ㅠㅠ 담엔 이 호텔은 이제 안 묵는 걸로...



오후 2:30에 두번째 숙소행 택시를 예약하고 가방 맡긴 후 바로 근처의 카페 사보이에 아침 먹으러 감. 전에 무척 맛있게 먹었던 허니버터 프렌치 토스트 먹고파서. 근데 맛있긴 했지만 작년의 그 맛이 아니다. 뭐지ㅜㅜ 내 감각이 퇴색하고 있나.






먹고 나서 우예즈드부터 시작해 말라 스트라나 골목들을 걸었다. 전에 폴란드 도자기 가게에서 우리 나라엔 안 들어오는 이쁜 찻잔을 득템한 적이 있어 거기 가봤는데 그 이쁜 무늬들이 이제 없고 거의가 다 눈에 익은 것들이라 사지는 않았다.



존 레넌 벽, 캄파, 말타 성당 등등 한바퀴 돌고 나서 춥고 배고파서 카피치코에 와서 앉아있다. 2시 10분쯤 일어나면 될것 같다.







아삼 티와 자허 케익 먹고 있음. 맛있긴 한데 아침부터 프렌치토스트에 이어 또 케익 먹고 있자니 너무 달아서 짭짤한게 먹고프다. 단백질하고. 있다 숙소 옮긴 후 단백질 섭취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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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5. 01:29

마음을 위한 카페, 사랑의 방식들 2017-18 praha2018. 12. 15. 01:29





프라하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카페가 세 곳 있는데 카페 에벨, 도브라 차요브나, 그리고 카피치코이다. 카페 에벨은 붉은 색채와 아늑한 분위기,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 때문에 좋아하고 도브라 차요브나는 여러 종류의 홍차를 골라 마실 수 있어서 좋아한다. 그리고 카피치코는, 마음을 위한 카페이다.



카피치코에 처음 간 건 2013년 3월, 프라하에 두어달 머무를 때였다. 그땐 미셴스카 골목에 있었다.



그리고 16년 9월에 다시 프라하를 찾았을 때 카페는 말테스케 광장으로 옮겨와 있었다. 그때 나는 아주, 아주 힘들던 시기였다. 나는 주인 아저씨 로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점원 여인 베트라와도 이야기했다. 그 대화들은 별것 아니고 표피적이었지만 놀랍게도 위안이 되었다. 카페는 나에게 내밀하게 포옹을 하는 것 같았다.



작년과 올해 다시 카피치코를 찾았다. 로만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를 기억한다. 베트라는 보이지 않았다. 물어볼까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그러지 않았다.



아마 카페 에벨이었다면 로만에게 말을 다시 걸고, 베트라에 대해 물어봤을 것이다. ‘로만, 2년전 저에게 태양과 새를 그려주신거 기억하시나요? 더 넓고 볕이 잘 들던 미셴스카 골목에서 이곳으로 옮겨올때 많이 힘들었다고 하셨었죠. 저와 이야기를 나눴고 눈으로 웃으셨죠’, ‘친절한 베트라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하지만 카피치코에선 그러기 어렵다. 물어보기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좀더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린 곳이라서 그렇다. 나는 에벨에서는 글을 쓸 수 있고, 카피치코에서는 그러기 어렵다. 왜냐하면 때로 글쓰기란 자신과의 줄타기이며, 최소한의 객관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에벨은 나에게 그런 장소이며 카피치코는 그렇지 않다. 그냥 그런 것이다. 두 카페가 지니는 소중함과 사랑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오늘 카피치코에선 차를 마시고 메도브닉을 먹고, 이 스케치를 한 장 그린 것이 전부다. 잘 보면 간판이 바뀌었다. 빨간 반바지 그림이 추가되어 있었다. 카페 안에 들어가보니 천정에 빨간 반바지들이 여럿 걸려 있었다. 무슨 뜻인지 물어볼까 하다 역시 그만두었다. 상상하는 쪽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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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4. 23:49

카피치코에서 2017-18 praha2018. 12. 14. 23:49






프라하에서 젤 좋아하는 카페 중 하나인 카피치코에 와서 차 마시고 있음. 주인 아저씨 로만이 여전히 그 유로지브이를 연상시키는 남자와 체스를 두고 있었다. 오늘은 사람이 매우 많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로컬들이다. 체코어도 꽤나 떠들썩하게 들린다.



전과 달라진 거라면.. 흑, 홍차 시켰는데 워머를 안준다. 잊어버렸나ㅜㅜ 근데 티포트도 새것으로 바뀌었네. 전엔 이빠지고 더 투박하고 무거운 거였는뎅.



메도브닉은 여전히 맛있당.







스케치하며 피로를 달래는 중. 해는 8시에 떠서 4시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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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5. 21:29

카피치코, 로만과 이야기했던 날 2016 praha2018. 4. 5. 21:29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의 작고 조용한 카페. 카피치코. 이건 작년이 아니고 재작년인 2016년 9월에 갔을 때. 



이 날 카페 주인 아저씨인 로만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낯을 살짝 가리면서도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따스하게 대해주는 주인 아저씨, 친절한 점원들,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 맛있는 메도브닉, 홍차 티포트 아래 정성스럽게 받쳐져 나오는 워머. 빛이 들어오는 곳.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곳, 카피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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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31. 20:43

초여름 프라하 조각들 2017-18 praha2018. 1. 31. 20:43




작년 6월 5일. 신시가지, 그리고 말라 스트라나를 산책하며 폰으로 찍은 사진 몇 장. 거리. 트램 안에서. 그리고 카피치코. 비를 피해 뛰어들어갈 수 있는 곳. 언제나 아늑하고 따스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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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치코에 앉아 다섯번째 스케치 하고 있을 무렵 옆테이블에 앉아 있던 미국인 커플이 다가왔다. 남자가 눈을 반짝이더니 '우와 정말 근사하네요. 이거 앱이에요?' 하고 물었다. 그래서 '네, 앱이에요' 하면서 바탕화면으로 가서 paper 앱을 보여주었다. '프리 앱인가요?' 하고 물어서 '네. 그런데 제대로 그리려면 펜슬이 필요해요. 애플 펜슬이요' 라고 하자 남자가 웃으며 '애플!!!' 하고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거 물어보는 인상 좋은 남자들은 다 커플로 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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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카피치코에 대한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6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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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즈음에 에벨에 도착했다.



오늘은 비 온 후라서 창가에 볕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드디어 창가 자리에 앉았다. 일주일 동안 안면을 트고 많이 친해진 서글서글하고 눈이 동그란 금발의 점원 아가씨와 밝은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내가 오면 메뉴도 안 줌 ㅋ 그리고 원래 홍차 시키면 우유 저그 주는데 내가 시키면 우유 저그도 안 줌.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거 알아서... 그래서 내가 '오늘은 메뉴 주세요' 라고 했더니 깜놀하는 분위기 ㅋㅋ



어제의 맥주 때문에 빈속에 카페인 마시기는 좀 그래서 속을 따뜻하게 하는 걸 먹어야 할것 같았다. 그래서 꿀을 곁들인 생강차를 시켰고 거기에 모짜렐라 토마토 루꼴라 페스토 베이글을 시켰다. 한국에 돌아가면 이 베이글이 항상 생각난다... 참 맛있는데...










생강차에는 꿀과 레몬을 곁들여 주었고 너무나 센스 있게 레몬짜개에 레몬조각을 끼워주었다. 생강차는 집에서 내가 끓이는 것처럼 토막난 생강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딱 그 맛이다. 거기에 꿀을 전부 넣고 레몬즙도 다 짜 넣었다. 몇모금 마시자 몸이 후끈해지면서 땀이 좀 났다. 베이글도 무척 맛있었다. 숙취와 괴로움, 친구랑 약혼자가 떠난 슬픔에도 불구하고 생강차랑 베이글 맛있게 먹고 좀 힘을 냄.



..




에벨에 오래 앉아 있진 않았다. 내일 떠나야 하니 오늘은 좋아하는 카페들 순례하려는 생각이었으므로. 에벨에서 15분 도보 거리에 있는 도브라 차요브나에 가서 예루살렘의 추억이나 다른 신기한 이름의 차 마시고 바클라바 또 먹어야지 했다. 그런데 두둥!!! 갔더니 아직 오픈 전이었다. 일요일은 두시에 연다는 것이다. 한시간이나 더 기다릴 수는 없었고 심지어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방에 우산을 두고 왔다는 것이 떠올랐다. 악...



..



트램을 타고 다시 말라 스트라나로 갔다. 카피치코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번에 와서는 카피치코에 가지 않았었다. 좀 묘한 이유였다. 카피치코는 무척 내밀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었다. 주인 아저씨 로만과 다정했던 점원 베트라와 나눈 이야기들이 좋았고 내게 위안이 되었지만 그당시 내가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았다. 에벨과는 좀 달랐다. 카피치코에 가는 것이 살짝 부끄러웠다. 또는, 다시 가기보다는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에벨은 언제나 편안하게 드나들며 적절한 익명성과 적절한 친교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카페이지만 카피치코는 조금 더 조용하고 조금 더 내밀하고, 그리고 조금 더 약해지는 곳이다. 아마 빈 테이블들이 많고 또 소음이 거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헬리초바에 내려서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왔다. 바람도 씽씽 불었다. 계속 더웠기 때문에 빨아서 말려놨던 여름 원피스 한장만 걸치고 있었는데 추웠다!!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챙겨나온 얇은 카디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막 뛰었다. 일요일이라 카피치코도 늦게 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함께 뛰었는데 다행히 창문 너머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새까맣고 새하얀 카피치코 간판이 어찌나 반갑던지! 






주인 아저씨 로만이 있었다. '도브리 덴' 하고 인사를 하고 들어가자 메뉴판 두개를 가져오시며 체코어로 '체코 메뉴판 드리면 되죠?' 라고 묻는다. 그래서 '아니요 영어 메뉴 주세요' 라고 말했다. 로만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다 내 스타일도 좀 바뀌어 있었고 이곳은 좀 한적해보이긴 해도 수많은 손님들이 오고 가는 곳이다. 살짝 섭섭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아마 부끄러웠기 때문인 것 같다.



주인 아저씨 로만은 여전히 키가 크고 어딘지 좀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과 다름없이, 오후에 찾아오는 말씨가 어눌하고 다리를 저는 약간 유로지브이 같은 남자가 오자 밝게 웃으며 맞아주었고 테이블에 함께 앉아 체스 비슷한 게임을 했다. 작년에도 그 모습을 보고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진 않지만 친해지면 무척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



나는 다즐링과 메도브닉을 시켰다. 워머에 올려진 투박하고 이 빠진 세라믹 주전자와 손잡이 없는 찻잔, 그리고 52코루나밖에 하지 않지만 너무나 맛있는 이곳의 메도브닉이 나왔다. 나는 본시 투박한 도자기도 좋아하지 않고 이 빠진 그릇을 보면 빈정상하고 손잡이 없는 찻잔을 주면 싫어하는 사람이다(뜨거우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카피치코와는 놀랍게 어울린다...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빗방울이 거세게 쏟아졌다. 카페는 두어 테이블 외에는 비어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차를 마셨고 메도브닉을 먹었고 문을 닫은 도브라 차요브나에 대해, 그리고 카피치코에 대해 낙서를 했다.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부는데 나는 따뜻하고 조용하고 한적한 카피치코 안에 앉아 향긋하고 뜨거운 차를 마시고 달콤한 메도브닉을 먹고 있었다.



이것은 에벨과는 다른 종류의 충만함이며 아마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행복감일 것이다.



..




비가 좀 그친 후 카피치코에서 나왔다. 카피치코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숙소로 갔고 30여분 정도 쉬었다. 그리고 긴 바지와 긴 티셔츠로 갈아입고 스카프를 둘러매고 노트북을 들고 다시 나섰다. 스카프 두장이나 챙겨왔고 트렌치코트도 챙겨왔었지 ㅠㅠ 카디건도 두장이나 챙겨왔어... 그런데 내내 엄청 더웠지... 흑흑... 트렌치코트는 한번도 안 입었고 가방 속에서 부피만 차지하고... 스카프도 오늘 처음 둘렀다. 검은 셔츠를 입기도 했거니와 비오는 우중충한 날씨라 흑백 스카프와 빨강주황 스카프 중 후자를 골랐음.



숙소 바로 근처에 있는 우 크노플리치쿠에 갔다. 가성비 제일 좋은 카페. 젊은 점원 아가씨가 좀 불친절하긴 하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다. 카피치코에서 홍차를 마셨으므로 레드베리 티를 시켰고 목도 말라서 사과주스도 시켰다.









작년에 이곳과 에벨에서 글을 좀 구상하고 조금 쓰기도 했었다. 한동안 바탕화면에 이곳의 빨간 입술 찻잔 사진을 깔아놓기도 했었다. 여기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내부가 은근히 분위기 있고(좀 꽃무늬 시골풍이긴 한데 묘하게 어울림), 화분이 가득 놓여 있는 창 너머로는 빨간 트램 지나가는 게 보여서 좋다.



차를 마시며 글을 좀 썼다. 비가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의외로 글이 잘 써져서 두페이지를 쓸 수 있었다. 작년에 여기서 구상했던 글이지....



..



우 크노플리치쿠에서 나와 살짝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빗방울이 약간씩 떨어지고 있었고 바람이 불어서 꽤 싸늘했다. 스카프를 펼쳐서 숄처럼 어깨와 목 전체를 감쌌다.



추워서 뭔가 따뜻한 것,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한번 갔었던 우예즈드 근처의 중국식당이 생각나서 거기 갔다. 여기 마파두부에는 돼지고기를 빼달라면 빼준다. 베지테리안 메뉴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흰밥과 자스민 차를 시켜서 먹었다. 어제의 맥주와 비프버거가 좀 씻겨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흑... 지난주에 영원한 휴가님과도 얘기 나누었지만 나는 체코에서는 못 살것 같아.. 음식이 너무 입에 안 맞아서... 신선한 야채도 없고 해산물도 별로 없고 짜디짠 소시지와 햄과 돼지고기와 맥주 천국이니...



몇년 전에 프라하에 두어달 살때는 직접 장을 봐서 음식 해먹긴 했지만 그때도 '아아 해산물...' 하고 괴로워했었다. 어디든 바다 있는 나라에 살아야 해...


..



밥을 먹은 후 이제는 반대로 중국음식의 맛을 없애기 위해 안젤라또에 갔다. 오늘은 쌀쌀해서 바깥까지 줄이 늘어서 있진 않았다. 마파두부로 자극된 입안을 씻어내기 위해서는 역시 스트라치아텔라~ 추워서 안젤라또 안에 앉아서 스트라치아텔라 먹음. 역시 맛있었다. 올리브유 바질이 맛있긴 했지만 그래도 스트라치아텔라가 제일 좋다.





.. 그러고 보니 오늘의 이 두번째 파트는 전부 먹고 마신 얘기밖에 없네!!



..



그리고는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내일 오후 공항 가는 택시를 예약했고 방에 올라와서 씻은 후 가방을 쌌다. 이번에는 산 게 별로 많지 않았고 찻잔 몇개도 그때그때 뽁뽁이로 싸놓아서 가방 금방 꾸릴 줄 알았지만 역시나 시간 꽤 걸렸다. 가방 다 싸고 나니 녹초...



아마 돌아가기가 싫으니 가방 싸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듯.. 흐흑..



방에 돌아와 와이파이를 잡아보니 료샤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잘 도착했고 레냐는 자기 엄마에게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그냥 확 집어치우고 내일이라도 그냥 뻬쩨르로 오라고 농담을 하고 있었다. ㅋㅋ 그래서 나는 '프라하는 음식이 맛없고 뻬쩨르는 6월에 눈이 오는데 선택지가 너무 적다...' 고 답을 해주었다.



내일은 조식 먹고 체크아웃한 후 에벨에서 시간 보내다 공항에 가야겠다. 여유가 있으면 도브라 차요브나에 먼저 갔다가 에벨에서 점심 먹어도 되긴 하는데 좀 생각 중...


아아... 휴가가 끝났어어어어...




** 카피치코에서 그린 스케치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6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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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발췌한 글은 몇년 전 쓴 미샤와 트로이의 장편의 1부 3장의 일부분이다. 1부 3장은 트로이란 인물에 대한 짤막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트로이의 본명.

사미즈다트는 지하 자가출판 문학이다. 검열이 횡행하던 소련 시절 작가들이 지하에서 몰래 인쇄하거나 손으로 써서 돌려 읽던 작품들도 포함된다.

브이소츠키는 소련 시절 음유시인이자 가수인 블라지미르 브이소츠키이다. 우리 나라엔 비소츠키 란 번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남몰래 습작을 한다. 10대 소년 시절부터 모눈 공책에 시를 써 왔고 가끔은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완성된 소설은 거의 없다. 피오네르 시절 그는 영웅도시 레닌그라드에 대해, 나치의 폭격에서 청동기사상을 구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날랐던 시민들에 대한 시를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알리사를 제외한 모임 친구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는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될까봐 걱정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의 수많은 시들과 미완성 소설이 적힌 노트들을 들춰보았던 건 알리사 슈로프스카야와 미샤 야스민 뿐이다.


 알리사와는 중고등학교 시절 서로의 습작 노트를 공유하며 토론하던 사이지만 트로이는 항상 알리사가 순수 문학보다는 풍자와 비판을 더 좋아한다는 것과 그녀가 언젠가는 글쓰기를 그만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리사는 대학에 진학한 후 더 이상 습작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서와 토론은 여전히 좋아해서 그와 함께 모임을 시작했다. 그녀는 트로이에게 요즘 쓰는 글이 있으면 좀 보여 달라고 습관처럼 말을 걸지만 그는 번역 필사본과 평론, 영문학 수업과 관련된 메모가 아니면 더 이상 알리사에게도 자기 노트를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이 매우 흐릿하며 끈질기게 노력하고 매달려야만 간신히 조그만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란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불꽃을 가지고 태어나긴 했지만 그건 미지근하고 어둡게 깜박이는 촛불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깊은 우울증에 잠겨 한밤중에 네바 강으로 가서 빠져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미샤 야스민은 알리사와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그때 트로이는 논문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식히려고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미샤는 언제나처럼 불쑥 들렀다가 뒤집혀진 책상 서랍과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상자들 사이에서 펼쳐진 모눈 공책을 발견하고 모든 금서와 사미즈다트 애호가답게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뒤늦게 트로이가 그 재앙을 알아차리고 사색이 되어 뛰어왔을 때 미샤는 유일하게 깨끗한 공간인 부엌 식탁 위에 걸터앉아 공책을 네 권 째 읽고 있었다. 트로이가 얼굴이 붉어져서 심하게 말을 더듬거리며 공책을 빼앗았을 때 미샤 야스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영어로 쓰면 바깥에서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때 미샤가 시의 내용이나 형태에 대해, 그 무엇보다도 재능에 대해 침묵해 준 것에 대해 트로이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움을 느꼈다.


 몇 년 후 미샤 야스민이 드라마 극장 무대에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짜깁기한 15분짜리 모던 발레를 안무해 올렸을 때 그는 트로이의 노트에 적혀 있던 시 몇 편을 제멋대로 해체하고 오려붙여 브이소츠키 풍의 발라드를 만들어 에피그라프처럼 삽입했다. 그건 트로이의 생애에서 분명 가장 영광스런 순간 중 하나였다.



 트로이는 여전히 글을 쓴다. 때로는 자신의 문장과 단어와 인물에 홀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따금 그는 사랑의 시를 쓴다. 밤이 지나고 나면 그 자신조차 다시 읽기 부끄러운 시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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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26. 21:26

다채로운 프라하 카페 간판들 2016 praha2016. 11. 26. 21:26

 

오늘은 프라하 골목의 카페 간판들 시리즈.

 

프라하는 그야말로 카페의 도시이다. 어디를 가나 카페가 있다. 그랑 카페부터 조그맣고 아늑한 카페까지 다양하다. cafe라는 이름을 붙인 곳도 있고 kavarna란 이름을 붙인 곳도 있다(kava가 커피). 우리식으로 하면 카페와 커피숍? 그리고 차를 전문으로 하는 찻집은 보통 cajovna(차요브나)라고 한다. caj(차이)가 차. (체코어 표기대로 하면 c 위에 v가 붙어야 되는데 귀찮아서 그냥 c로 씀 ㅠㅠ 아래 간판 사진 보면 제대로 된 표기를 볼 수 있다~

 

사진들 중엔 내가 가본 곳도 있고 안가본 곳도 있다.

 

맨 위는 말라 스트라나에 있는 카페 라운지. 여기서는 아점을 먹었었다. 괜찮은 곳이다.

 

 

이건 릴리오바 거리에 있는 초코 카페. 여기는 내 추억의 장소 중 하나다. 3년 전 프라하에 두달 살았을때 숙소 바로 옆에 있던 카페였다. 동생이랑 쇼콜라 쇼 마시러 갔었고 종종 케익도 사러 갔었다. 여기 초콜릿 맛있다.

 

 

이건 카페 사보이. 전에 몇번 올린 적 있다. 아르누보식 아름다운 카페이고 케익이랑 프렌치토스트가 맛있다.

 

 

이건 흐라드차니에서 네루도바 거리 내려오다 발견한 카페 간판. 여긴 안 들어가봄.

 

 

여기는 미셴스카 골목에 있는 카페 입구. 예전 카피치코가 있던 곳 맞은편에 생긴 카페인데 저 박스 모양 간판이 귀여워서 한번 가보고팠는데 결국 못 가봄.

 

 

이건 우예즈드와 스미호프 중간 쯤의 어느 골목 산책하다 발견.

 

 

여기도 들어가보진 않았는데 스미호프 쪽에 있는 카페이다. 여기는 애묘카페였다. 고양이 사진들이 많았다.

 

 

그 스미호프 근방. 이쪽에 조그맣고 이색적인 카페 간판들이 많았다.

 

어머나 여기도 카피치코가 있네!

하지만 이건 내가 좋아했던 그 미셴스카의 카피치코가 아니고 역시 스미호프 쪽에서 발견한 카피치코. 잘보면 카피치코 33이라고 되어 있다. 아마 여기가 33번지인가보다. 여기도 한번 가볼까 하고 검색을 해봤는데 내부 공간이 별로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어서 가보진 않았다.

 

 

 

이게 진짜 카피치코~

미셴스카 골목 갔을때 없어져서 매우 슬퍼했지만... 말테세 광장 쪽으로 이전한 것을 발견!!

 

 

여기는 신시가지 바츨라프 광장 쪽에 있는 찻집 도브라 차요브나. 여기도 자주 갔다. 안뜰에 불상이 앉아 있는 찻집 :)

 

 

여기는 구시가지 골목 안쪽에 있는 찻집. 황금수탉건물의 찻집이라고 되어 있는데 간판은 그냥 차요브나라고만 되어 있음. 여기도 두어번 갔었는데 개인적으론 여기보단 위의 도브라 차요브나가 더 맘에 들었다.

 

... 아아 그리운 카페들이여 찻집들이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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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19. 23:04

몹시도 그리운 카피치코 2016 praha2016. 11. 19. 23:04

 

프라하에서 돌아온지도 한달 반이 훨씬 지났다.

 

몹시도 그리운 곳을 딱 두곳만 꼽으라면 역시 카페 에벨과 카피치코이다. 하나 더 꼽으라면 안젤라또(거기 스트라치아텔라 먹고 싶다) 카페와 아이스크림이라니... 역시 게으른 토끼가 아닐 수 없다.

 

몹시도 그리운 카피치코 사진 몇 장. 빛이 스며드는 아늑한 카페라 좋았다. 카피치코는 빛을 받으며 차를 마시고 주인 로만과 얘기하는 게 좋았고 카페 에벨은 여전히 내겐 글을 쓰는 곳이다.

 

카피치코, 다시 가고 싶어요.

 

요즘 계속 늦게 자고 잠을 좀 설쳐서 오늘은 꾹 참고 홍차를 안 마셨다. 그랬더니 이 한밤중에 너무너무 차 마시고프다. 그냥 카피치코 사진 보면서 달래자... (그리하여 오늘은 반드시 좀 일찍 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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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 03:30

잠안와서 깬 김에 프라하 몇장 더 2016 praha2016. 10. 2. 03:30




너무 피곤해서 열한시 안되어 누웠는데 세시간쯤 자고 깨서 다시 잠이 안옴 ㅠㅠ 계속 잠이 모자라니 이제 시차 적응할때도 됐다만 ㅠ 의외로 프라하에 있을땐 그래도 꾸준히 자긴 했는데

한시간반쯤 누워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거실로 왔다. 침대에 누워 있어봐야 잠만 더 달아날거 같아서. 견과와 오플라트키 약간을 먹고 있음. 잔짜 웬만하면 밤이나 새벽에 뭐 안먹는데 어제도 그렇고 못자고 있으면 배가 고파서 ㅠ (그냥 위산과다인가ㅠ)

억지로 자려 하지 말고 그냥 tv든 책이든 좀 보다 졸려로면 자야겠다ㅠ


잠안오는 김에 폰에 있는 프라하 사진들 몇장. 주제 없이 그냥 걸리는대로.


맨위는 어느 골목 갤러리에 있던 그림들. 저 파란 말 그림 좀 갖고 싶었음. 색감 때문에.









여기는 카피치코





역시 카피치코











셰익스피어 앤드 선즈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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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상하게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방에 와서는 그냥 누워 잤다. 폰의 대시보드를 보니 매일 약 4-5킬로쯤 걸어다니고 있는데 이게 별로 긴 거리가 아니지만 원체 저질체력인데다 여기는 돌길이라 발과 다리와 허리가 더 금방 지치는 건 있다.


본래 집에 있을땐 방에서 쿠마와 뒹구는 게으른 집토끼이기 때문에 매일 나돌아다니니 피곤할만도.. 그렇다고 막 돌아다니는것도 아니고 주변 좀 걷고 주로 카페들을 전전하고 있다만.


프라하에 온 큰 이유 중 하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실상 아이디어와 구조 노트는 정리했으나 진득하게 앉아 글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아마 3주는 그냥 돌아다니기에 맞는 기간인것 같다. 생각해보니 3년전에도 첫 한달은 돌아다녔고 4주째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땐 겨울이기도 했고 아예 집을 빌렸으니 안정감도 더 있었고 지금만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도 아니긴 하다.



간밤 꿈엔 회사 인사부서 쪽 간부들이 나왔고 대학 친구도 나왔다. 간부는 돌아올 때가 됐냐고 물었고 난 아직 기간이 남았다고 말했고 꿈속에서도 괴로웠다. 그리고 약에 대해, 울타리에 대해, 콘크리트에 대해 꿨다. 꿈 노트 적었는데 날라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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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엔 춥지만 낮 날씨는 찬란한 완연한 가을 날씨다. 7도에서 20도. 내가 좋아하는 날씨긴 하다. 그래서 오늘은 며칠 안 남았으니 로레타 가서 종소리 다시 듣고 그때 닫았던 샵에 가기로 했다.


일찍 일어났다가도 자다깨다 하곤 결국 조식 포기. 사다놓은 빵과 조식테이블에서 며칠전 가져온 미니사과, 무려 한국에서 좀 싸온 견과와 디카페인티로 아점을 먹은 후 나갔다. 어제 와퍼 먹어서 그런지 얼굴 부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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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드니 트르지다까지 걸어서 트램 22 타고 포호젤레츠에서 내려 로레타 갔다. 샵만 아니면 사실 사원 밖에 앉아 종소리 들어도 되는데 다시 입장권 삼 ㅠㅠ


나는 바로크 미술을 좋아하지만 내게 있어 바로크는 온전하게 예술적 영역인 것 같다. 어떤 경건함이나 종교적 감동을 느끼기엔 너무 아름답고 화려하고 피상적이고 기괴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바로크 교회인 화려번쩍한 로레타는 내게 아름답게 치장한 귀족부인 같지만 성당으로서의 성스러움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인위적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이곳의 종소리는 내게 기독교적 감동이라기보단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들은 종소리 중 가장 아름답고 내 마음을 울리는 소리이다. 아마 내가 '진짜로' 아름답다고 느꼈던 '첫' 종소리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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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을 하고 초를 켰다. 4개. 나, 가족, 친구, 그리고 가족분이 편찮으신 블로그 이웃분이 계셔서 각각 1개씩 켰다.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그리고 평온함을 주세요. 그리고 글과 사람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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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이 열었지만 전보다 물건이 없었다. 팔에 차는 묵주는 하나도 없었어 쥬인아 ㅠㅠ 팔에 차는 건줄 알았던 건 목걸이였는데 나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다만 붉은색이 예뻐서 하나 샀다. 근데 이거 전에 쥬인에게 사다줬던 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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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타에서 나와 스트라호프 수도원에 갔다. 오늘은 어쩐지 내키지 않아 도서관 등 내부를 보지 않고 경내와 주젼의 프라하 전망만 봤다. 보통 이 코스는 흐라드차니 언덕길 따라 산책해 말라 스트라나로 내려가고 덜 힘들면 캄파까지 가는 내가 좋아하는 코스인데 오늘은 배도 고프고 다리아프고 힘들어서(그리고 초장 2-3일째에 그렇게 걸어서) 그냥 도로 포호젤레츠 와서 트램 타고 우예즈드 전 정거장인 헬리초바에서 내림. 여기서 내리면 말테세 광장, 즉 카피치코와 가깝다



배가 고파서 전에 오믈렛 아침 먹었던 비스트로 드 프랑스에 갔다. 거기서 올린대로 리크 감자 수프와 까망배르 크랜베리 바게트 먹음. 고기류는 전부 햄이 들어 있어 포기, 오리 콩피는 피본 적이 있어 포기했더니 메인으로 먹을게 의외로 없었다. 비프 부르기뇽이라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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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나와서 카피치코에 갔다. 오늘은 짧은 금발머리 우아한 여자분 점원 혼자였다. 얘길 나누었다. 접때 그 아저씨가 주인 맞다고 한다. 이름은 로만(어머 우연의 일치.. 내가 쓰는 글에 나오는 바이올리니스트 아저씨 이름이 로만인데 ㅋㅋ). 매우 좋은 보스이며 절대 화를 내지 않고 친절하다고..


카피치코가 특별한 곳이었는데 없어진줄 알고 슬펐다가 다시 찾아서 좋다는 얘기, 이곳이 집을 생각나게 할만큼 아늑하다는 얘기, 최고의 차와 메도브닉이 있고 맘이 편한 곳, 프라하에 무수히 아름다운 명소가 있지만 돌아가서 가장 자주 생각나는곳은 여기와 카페 에벨이란 얘기 등을 나눴다.



그분도 동조했고 여기가 자신에겐 제2의 집이라 했다. 자기도 여행가면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고 그곳에서 아늑함을 느끼는게 매우 소중하다고, 프랑스에 그런 곳이 있다고도 했다.


여러 얘기를 나눴다. 내가 글을 쓰기도 하며 카피치코에서도 썼었고 지금도 노트를 적는다는 얘기, 언젠가 이곳에 대한 글을 쓸지도 몰라요 란 얘기. 내 소개로 여기 와본 사람들도 있고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 등등...


그리고 로만이 내게 그려준 그림과 일본어 아리가또 써준 명함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수첩에 붙여놓은걸 보고 무척 좋아했고 이 그림이 뭘까요 하자 그녀는 아마 sun 같다 하고 나는 동그란 새 bird 같다고 하다 그럼 썬버드에요 :) 라고 웃었다.


계산을 할때 그녀도 내게 그림을 그려주었다. 나는 이거밖에 못그려요 ㅎㅎ 하면서 별과 귀여운 소녀 얼굴을 그려줘서 나도 '저도 이것만 그려요 ㅋ'하면서 토끼 얼굴 그려줌. 떠나기 전에 또 오기로 하고 포옹하고 헤어짐.


작은 카페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고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하나의 공간으로 안해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웃고 포옹하고 키스하고 헤어질수 있다는건 그래도 세상에 축복할만한 일들이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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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 트램 타고 내린 후 걸어서 방에 옴. 5시잔이었고 아직 밝은데다 날씨가 아까워서 원래는 노트북이나 폰 들고 와이파이 되는데 나가려 했으나 너무 피곤해서 이건 정말 오늘 더 나가면 안되겠다 싶어서 씻고 노트북을 켰더니 잠깐 와이파이가 잡히고 로그인이 돼서 사진몇장 올림. 지금은 또 끊어짐. 폰으로는 사진 안올리면 글은 올라가서 불편하지만 폰으로 오늘 메모 남기고 있음. 그래서 이 메모엔 아마 사진이 없을 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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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3. 01:58

카피치코 다시 2016 praha2016. 9. 23. 01:58




로레타와 스트라호프에 갔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카피치코에 다시 갔다. 지난번 만났던 주인 아저씨 로만은 자리에 없었고 대신 다른 여자분이 계셨다. 짧은 커트 머리의 우아한 중년 여자분으로 카페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페라는 공간 하나를 매개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대화를 나누고 나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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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 지나가다 찍은 장미. 딱 한송이가 새빨간게 예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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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레냐가 친척 아주머니와 함께 프라하에 왔다. 료샤가 공항에서 픽업해 먼저 친척을 데려다주고 그 다음에 나를 보러 왔다.


레냐는 두달 반만에 또 큰 것 같았다. 엄마아빠가 둘다 크니 아마 쑥쑥 자랄듯. 내년에 오면 나보다 더 크는거 아니야ㅠㅜ


레냐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체리 없어서 못사왔다고 자기 아빠랑 똑같은 말을 한다. 나=체리 로 부자에게 각인된 모양이다.


어제 료샤네 방에 가서 셋이 윷놀이를 했다. 내가 레냐의 말을 놓아주어서 레냐가 우승했는데 아들에게 지는것조차 삐친 료샤는 내가 도와주는건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이 아니라고 한다 ㅋ


레냐는 계속 놀고 싶어했지만 아홉시가 되자 료샤가 엄격한 아빠 코스프레를 하며 애를 재웠다. 자기가 자면 내가 집에 갈거 아니냐고 찡찡대서 옆에 앉아 노래도 불러주고 재워주었다.


무슨 노래냐면.. 음, 내 주제곡. 깊은 산속 옹달샘 ㅋㅋㅋㅋ 레냐가 무슨 뜻이냐 물어봐서 대충 설명을 해줬더니 '토끼는 세수 안해도 돼서 좋겠다' 하고 폭 잠들었다. 아아고 귀여워라 ㅋㅋㅋ


레냐가 잠든 후 료샤가 나를 데려다주었다. 전날 악몽 때문에 잠을 설쳐서 엄청 졸리고 머리가 아팠다. 삼각형 방 언제 나가냐고 물어서 일욜에 구시가지쪽 숙소로 옮긴다 했더니 다행이라 하고는 또 무서운 꿈을 꾸면 그냥 와서 레냐 옆에서 자라고 했다 ㅋㅋ 어머나 내 약혼자 아직 미성년자인데 그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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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악몽은 꾸지 않았으나 두어번 자다 깨다 했다. 늦게 일어나서 둘과의 조식은 놓치고 카피치코 근처의 프랑스식 비스트로에서 오믈렛과 생강차로 아점을 먹었다.



간밤부터 비가 왔고 놀랍게도 선선해졌다. 오늘도 내내 비가 약간씩 오락가락하다 저녁에 쏴 쏟아졌다. 머리를 풀어도 덥지 않았고 방수 윈드브레이커도 한장 덧입어야 했다.








햇살로 눈부시던 파스텔톤 거리는 비에 씻겨나가자 훨씬 진하고 선명한 색채로 젖어들었다. 무거워서 카메라는 두고 폰만 들고 다니며 찍었지만 그래도 흐린날이나 비온날 사진 색감은 확실히 다르다.


오늘은 폰으로 메모 올리고 있어 사진들은 나중에 더.. 티스토리는 해외에서 와이파이 잡아 모바일로 올리면 사진이 잘 안올라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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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치코에서 료샤와 레냐를 만나 차를 마셨다. 예전 카피치코는 동화책과 인형이 많아서 레냐가 더 좋아했을텐데. 그래도 며칠전 본 곰인형 있는 창가에 일부러 앉았는데 레냐가 자기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곰인형 같은건 안갖고 논다고 한다(대신 로보트와 게임임ㅋㅋ)



아쉽게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주인 아저씨 대신 젊은 여점원이 있었다. 역시 친절했다. 레냐는 핫초콜릿, 료샤는 카푸치노, 나는 다즐링을 마시고 오늘은 메도브닉 대신 오레호브이 도르트(월넛케익)를 시켜보았다. 여기 월넛케익은 피칸파이 비슷한 맛인데 훨씬 달고 촉촉하고 안에 시럽 같은 것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내 입맛엔 좀 달았지만 맛 자체는 좋았고 료샤와 레냐도 엄청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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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도 나누고 놀다가 밖으로 나와 산책을 했는데 앞에서 따로 쓴대로 레냐가 유리액세서리 샵에서 내게 예쁜 펜던트를 선물하여 나는 감동... 아이고 레냐야... ㅠㅠ


그러나 펜던트 선물후 나의 8세 약혼자는 또래 친척 형들이랑 논다며 근처 흐라드차니에 사는 그 친척 아줌마네로 쪼르르 달려가고.. (무슨 로보트 놀이를 해야 한다 함 ㅋㅋ) 졸지에 버림받은 나는 로보트와 친척 형제보다 못한 약혼녀가 되어 실의에 빠지려다가, 료샤랑 존 레넌 펍에 갔다.






존 레넌 펍은 존 레넌 벽에서 옆골목으로 빠져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가면 나온다. 내가 궁금해하자 전에 가본 료샤는 그냥 레넌이랑 비틀즈 그림 걸어놓고 비틀즈 틀어주는데 별거 아니라 했다.


나 : 나 비틀즈 듣고픈데.. 아까 존 레넌 벽 앞에서 이매진 부르는 아저씨 보고 나니까 거.. 오늘 날씨도 스산하니 그렇고 비틀즈 딱 듣기 좋겠구만...


료샤 : 구식. 비틀즈나 좋아하고. 보위에...


나 : 야! 비틀즈가 어때서! 그리고 보위님 모독하면 용서못해!


료샤 : 하긴 보위는 나도 몇곡 좋아했지. 그래봤자 다 영국놈들.. 너 조지 마이클이랑 로비 윌리암스도 좋아했다며.


나 : 응, 음악은 그쪽 취향이 좀.. 90-2000년대초 브릿팝도 좋아했으니까. 펄프랑 오아시스


료샤 : 윽 오아시스 -.- 지겨워. 영국놈들.


료샤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초에 영국에서 유학을 했다. 근데 영국을 안좋아하고 맨날 영국놈들 하고 짜증내고 영국음식 맛없다고 툴툴댄다 ㅋㅋ 그러면서 나보고 브로큰 잉글리시와 브로큰 러시안을 구사한다고 놀린다 ㅠㅠ 야, 넌 돈의 힘으로 몇년이나 영국에 있었으니 당연히 나보다 백배 영어 잘하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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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우리는 존 레넌 펍에 갔다. 근데 료샤 말대로 나 좀 실망.. 비틀즈 노래가 나오긴 하는데 작게 나오고 히트곡들은 거의 안 나오고.. 게다가 관광객들이 너무너무 시끄러워서 음악이 안들렸다. 난 맥주 마실것도 아니고 노래 들으러 온건데 ㅠㅠ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을 시켜서 료샤는 맥주를 마시고 난 라즈베리 에이드를 마셨다. 버거를 반 갈라 나눠먹었는데 아직도 배가 안 꺼짐...


내가 실망하자 료샤가 비웃었다.


료샤 : 관광지에서 뭘 바라냐. 여기가 리버풀도 아닌데.

나 : 비틀즈랑 존 레넌 걸어놨으면 최소한 헤이 주드나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드 쯤은 듣고 싶었어 ㅠㅠ

료샤 : 왕 구식, 하고많은 비틀즈 노래 중에 그거냐.

나 : 걸이나 미셸도 좋아.. 나 고백하면 오브라디 오브라다도 좋아하고.. 트위스트 앤 샤웃 듣고파 ㅠㅠ


펍에 있는 동안 그 노래들 중 하나도 안 나왔다 ㅠㅠ 나왔어도 소음 때매 안 들렸을 것이다.


펍에서 나와 존 레넌 벽 앞에 다시 갔다. 비가 조금씩 내렸고 오후 늦은 시각이라 관광객들도 거의 없었다. 료샤가 자기 폰에서 뭘 찾더니 스피커로 비틀즈를 틀어주었다.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드가 나왔다.



나 : 어? 앱이야?

료샤 : 내가 다운받았던거.

나 : 비틀즈 구식이라며!

료샤 : 근데 예전에 베스트 선집인가 하나 통째로 다운받아놨었어. 너랑 얘기하다 생각났어.

나 : 와 기특해라. 훌륭하다!

료샤 : 오늘 듣고 지워버려야지. 메모리 잡아먹어.

나 : 비틀즈를 지우다니...



찬연한 존 레넌 벽 앞에서 가랑비 맞으며 방수 후드 둘러쓰고 그것도 스피커폰으로 아이 워나 홀드 유어 핸드부터 예스터데이, 렛잇비, 걸, 미셸, 오브라디 오브라다(ㅋ), 그리고 헤이 주드를 연이어 듣는 게 놀랍게도 기분이 좋았다. 노래가 역시 좋았다.


그리고 지나가던 관광객들 몇명도 우리 옆에 와서 같이 들었고 역시나 헤이 주드는 후렴구가 되면 다같이 흥얼거리게 되었다. 나나나나나나나~~ 헤이 주드~~<



나 : 아이 씐나

료샤 : 왕 구식. 옛날 사람. 뭐냐, 길바닥에서 옛날노래 듣고 좋아하고.

나 : 우리 어릴때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노래 듣던 세대잖아ㅠㅠ

료샤 : 쳇.

나 : 너 빅토르 초이 좋아 안 좋아!

료샤 : 말이라고 하냐 좋지

나 : 그러면서 뭘.


하여튼 레냐는 펜던트를 선물하고(곧 날 버리고 놀러갔지만 ㅋ) 료샤는 비틀즈를 들려줘서 행복하고 고마운 하루였다.





..




저녁에 료샤랑 레냐랑 같이 차를 타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블타바 강변을 돌았다. 야경이 예쁘긴 하지만 비 안 올때가 훨씬 예뻐서 좀 아쉬웠다.


내일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구시가지 쪽으로 옮기기 때문에 좀전에 방에 돌아왔다. 한시간쯤 가방 쌈. 아 정말 싫어 ㅠㅠ


부디 내일 옮기는 방엔 의자가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삼각형이 아니게 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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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앞선 포스팅대로 정오부터 맥주와 굴라쉬로 아점을 먹고.. 몽롱하게 좀 늘어져 있다가 오후에 다시 호텔을 나섰다. 어제 료샤랑 폰으로 검색해서 알아낸 결과! 카피치코는 미셴스카 거리에서 말테세 광장 쪽으로 옮긴 것이었다!! 내가 머무는 호텔에선 미셴스카보다 말테세 광장이 좀 더 가깝다.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원래는 료샤랑 오후에 카피치코에 가기로 했지만 다량의 맥주와 돼지무릎 덕에 숙취에 시달린 그는 늦잠을 잤고 미팅 시간도 좀 늦추는 바람에(불쌍한 상대방 ㅜㅜ 내가 상대방이라면 도대체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라 생각할듯) 오후 늦게나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나 혼자 갈게~ 있다가 봐~' 라고 했더니 료샤가 섭섭해했다.


료샤 : 나도 맛있는 커피 마시고 싶은데 ㅠㅠ 오늘 약속 장소는 커피 맛없어. 그래서 안 마시고 있다가 너랑 카피치코에서 마시려고 했는데 ㅠㅠ

나 : 커피 마시지 말고 와. 내가 카피치코보다 더 맛있는 커피 줄게.

료샤 : 다른 카페가 또 있어?

나 : 맥심 아이스 가져왔다!

료샤 : 아흐, 우흐, 오흐, 류블류 찌뱌!!!

(앞의 세 단어는 노어의 감탄사 ㅋㅋ 뒤의 문장은 '사랑해~'임 ㅋㅋㅋ 아재 입맛에게 맥심 아이스를 주면 뜬금없는 사랑고백을 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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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굴라쉬 때문에 배도 덜 꺼졌고 자꾸 졸려서 좀 걸어야 할거 같았다. 그래서 뒷골목 산책을 하고 말테세 광장과 네루도바 쪽 뒷골목, 캄파 쪽을 좀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존 레넌 벽에 갔다. 여기 가면 블로그에 가끔 들러주시는 스밀라님 생각이 난다 :)












역시 오랜만에 왔더니 벽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땐 겨울이라 좀 황량한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해가 찬란해서 그런지 색이 더 선명하고 강렬했다. 그때보다 오늘이 더 좋았다.

(딱 하나 맘에 안 들었던 건 담장 꼭대기 어디에 크게 욱일승천기 무늬가 그려져 있던거 -_- 페인트라도 갖고 와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평화를 노래하던 존 레넌 벽에 전범기 무늬가 웬말이야 ㅠㅠ 뭐 서양애들이야 몰라서 그랬겠지... 그래도 난 기분 안 좋았음. 그래서 벽 전체 사진은 안 올린다. 그 무늬가 나와있어서 ㅠㅠ)


나는 존 레넌 솔로보다는 비틀즈 때가 더 좋았지만... 비틀즈 노래를 들으면 중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처음 산 후 비틀즈 베스트 테이프를 사서 늘어지도록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구석구석 낙서를 구경하고 문구를 읽고 좀 놀았다. 서너명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나는 길 잘 가르쳐주고 사진도 잘 찍어줄 거 같은 이미지인 거야... 길 가르쳐주는 별 아래에서 태어난 토끼인 거야)


심지어 어떤 남자애들은 나에게 '오우, 스컬! 투게더! 롹 스피릿~ 오예~' 라며 락앤롤~ 포즈를 취하며 사진까지 같이 찍었다. (나 오늘 해골무늬 긴팔 티셔츠 입고 있었음 ㅋㅋ) 걔들도 영어권 애들은 아니었는데 대낮부터 병나발 불고 신났다(근데 뭐 나도 낮술 마시고 와서 ㅋㅋ) 훌리간들은 아니었고 그냥 신난 상태에서 해골옷 입은 나를 보고 동질의식을 느낀듯.... (머리 빨강노랑 물들이고 징박힌 재킷 입고 마냥 신난 애들이었음)


그리고는 '굿~ 나이스~ 아우어 오노 요코~'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내가 동양 여자라서 그런거까진 알겠는데! 야! 오노 요코 못생겼잖아! (오노 요코 팬들 미안합니다 ㅠㅠ 근데 제 눈엔 안 예쁘다고요) 나 오노 요코 하나도 안 닮았는데! 차라리 '굿~ 나이스~ 아우어 래빗~' 이러든가 ㅋㅋㅋ 근데 존 레넌 벽 앞에서 오노 요코 소리 들으며 박수받은 건 뭔가 칭찬이라고 믿고 싶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오노 요코 나름대로 스타일리쉬하고 멋있었으니 칭찬이라고 생각하자!


(근데 또 생각해보니 오노 요코랑 존 레넌 누드 사진들이 막 떠오르면서... 잉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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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치코가 정말 있었다. 그것도 내가 몇번이나 지나쳐간 골목 귀퉁이에 있었다. 말테세 광장 한쪽... 예전에 우 말레 벨리비라는 작은 해산물 식당이 있었던 곳에... 가슴이 뛰었다. 반가웠다. 없어진 게 아니었구나... 그냥 이사간 거길 바랬는데 정말이구나... 다행이다.


전보다 좀더 좁아졌다. 그리고 전에는 안쪽 홀에 어린이용 동화책이랑 인형이 많았는데 그것도 많이 없어졌다. 그땐 젊은 여점원이 빵끗 웃으며 맞아줬는데 이번에 갔더니 처음 보는 나이든 아저씨가 문가 테이블에 어떤 손님이랑 같이 앉아 있다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손님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주인이었다. 여기 전에 자주 왔었는데 주인 첨봤다!!!


나 : 안녕하세요. 여기가 미셴스카에 있던 그 카피치코 맞아요?

주인 아저씨 : 맞아요, 그 카피치코에요.

나 : 우와.... 미셴스카 갔었는데 다른 가게가 있어서 진짜 실망했어요. 없어진 줄 알았는데 너무 반가워요. 3년 전에 자주 왔었어요.

주인 아저씨 : 올해 부활절 즈음에 그쪽 닫고 7월에 여기 새로 열었어요. 기억해서 찾아주시다니 고마워요! 전보단 좀 좁아졌죠. 그래도 손님처럼 다시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 기쁘답니다.

나 : 제가 무척 좋아하던 곳이에요!





아저씨가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손으로 쓴게 그대로였다. 3~5코루나씩 오른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저렴했다. 역시 다즐링과 메도브닉이지!!!









카페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괜히 맘이 짠했다. 미셴스카에 있을 때가 더 넓고 복작거렸던거 같아서. 아르바이트 점원 없이 주인 아저씨 혼자 하시나 싶기도 하고. 근데 나중에 또 막 사람들이 왔다. 여기는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그리고 단골이 많아서 들어오면 전에도 점원들과 그랬지만 이번에도 막 주인 아저씨랑 큰소리로 인사하고 반가워한다. 보기 좋다. 젊은 체코 아가씨 한명도 그렇게 밝게 인사하더니 내 앞쪽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워머와 포트에 나오는 잎차 다즐링. 그리고 49코루나(전엔 45코루나였지)의 저렴하지만 정말 맛있는 메도브닉. 여기 메도브닉은 그랜드 카페 오리엔트 메도브닉보다는 조금 더 포실포실하고 가루가 많지만 그래도 참 맛있다. 그 맛은 여전했다. 그리고 창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도 같았다. 행복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수첩을 펼치고 글에 대한 메모를 좀 했다. 몇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올랐다... 에벨과 카피치코, 둘다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일어나서 계산을 했다. 팁과 함께. 그리고는 아저씨랑 잠깐 얘길 나누었다.


나 : 카피치코가 없어지지 않아서, 여기 있어서 너무 기뻐요!

주인 아저씨 : 저도 그래요.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계속 있을 거예요! 지금 유럽 여행 중이신가요?

나 : 프라하만요. 있잖아요, 저 사실 카피치코가 그리워서 미셴스카 거리에 가까운 쪽으로 숙소를 잡았답니다. 그래서 미셴스카에 갔을 때 너무 슬펐어요. 새로운 곳에 전처럼 있어줘서 행복해요.

주인 아저씨 : 진짜 보람있네요. 고마워요!!! 또 오세요 꼭 또 오세요!

나 : 또 올게요 :)



근데 나중에 잠깐 방에 돌아왔을 때에야 아저씨가 내게 준 계산서를 자세히 보고 웃었다 :) 귀여운 카피치코 명함에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계산서를 만들어 주었다. 근데... 맨 아래에 일본말로 뭐라고 써 있었다. 히라가나였다. 히라가나는 몇글자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대충 아리가또 같긴 했다. 일어를 아는 쥬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뭐라고 씌어 있냐니까 아리가또 맞단다. ㅋㅋ 아마 나를 일본인으로 생각하셨나봄... 다시 가면 '저 일본인 아니에요 한국 사람이에요 그래도 고마워요~' 라고 말해주고는 '고마워요'나 '감사합니다'란 단어를 가르쳐줘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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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와서 아이스 맥심을 챙겼다. 기다려라 친구야, 아이스 맥심이 간다 :)



저녁엔 료샤랑 같이 밥먹은 후 아이스 맥심 타주고 보름달 봐야겠다. 지금까진 맑은데... 달이 보였으면 좋겠다 :)



한국은 이미 추석이 지났겠구나... 다들 즐거운 명절 보내셨기를... 그리고 남은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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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