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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티타임의 주인공은 쿠마 ㅇㅅㅇ

(뉴페이스 쿠야 때문에 삐친 쿠마 달래주는 중. 그래서 딸기도 한 알 바침)

 

 

 

 

 

 

 

 

 

 

왼편 뒤에 있는 조그만 체코 도자기는 예전에 카를로비 바리에서 샀던 것이다. 이게 뭐냐면 온천수 담아서 빨아먹는 도자기 병이다. 카를로비 바리가 워낙 마시는 온천수로 유명해서...

 

그 온천수의 맛이란 짭짤한 쇳물 맛이다 ㅠㅠ 몸에 좋다니 첨엔 열심히 받아서 마셨지만 나중엔 몸에 좋아도 이렇게 맛없는 걸 굳이 마실 필요가... 하며 안 마심.

 

하여튼 그래서 카를로비 바리와 그 맛없는 온천수 얘긴 미샤와 스비제르스키의 데이터 구축용 소설에도 등장시킨 적이 있다 :) 마침 생각나서 그 얘기 발췌해 오늘 올려본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6317

 

금요일에 사왔던 흰 장미 분홍 장미는 이제 완전히 활짝 피었다. 저렇게 크게 피어나는 꽃일 거라곤 생각 안했었다.

 

 

 

 

 

 

 

 

 

활짝 피어난만큼 이제 시들기 시작해서... 매일 겉의 시든 꽃잎들을 한두장씩 떼어내 주고 있다 ㅠㅠ

 

 

 

나는나는 집토끼 'ㅅ'

:
Posted by liontamer

   

아래의 메모는 2013년 3월말에 프라하에서 적었던 것이다. 서울로 돌아올 날을 열흘쯤 남겨둔 시점이었고, 며칠전 발췌했던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를 쓰고 있던 때였다. 나는 그 글을 그로부터 한달 전이었던 2월말에 카를로비 바리에 가서 구상했었다. 그리고 이 메모를 적기 며칠 전에는 비엔나에 다녀왔었다. 두 도시 모두 버스를 타고.

 

이 메모는 내가 왜 그 두 도시에 갔는지에 대한 진짜 이유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메모 아래에는 소설에 삽입되었던 두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붙어 있다. 그것은 사실 매우 짧다. 우스울 정도로. 그리고 그 소설은 실지로는 2013년 2월과 3월에 카를로비 바리와 비엔나에 가기 전에 씌어진 것이다. 물론 카를로비 바리는 그 몇년 전에도 두번이나 다녀왔었지만.

 

메모에 나오는 '1월에 끝낸 소설'은 종종 발췌했던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는 그 장편이고 '지금 쓰고 있는 중편'은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이다. 그때는 아직 미샤와 일린의 3부를 쓰기 전이었다(그 3부는 4월에 서울에 돌아온 후에 썼다)

  

..  

   

<2013년 3월의 메모 : 카를로비 바리와 비엔나에 갔던 진짜 이유>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전처럼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겪으며 기뻐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다시 그런 마음가짐으로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지금은 소진되어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최근 몇년 동안 여행이든 출장이든 혼자 다닌 적이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번에 프라하에 올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돌아오면서 파리와 런던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루트를 짜고 예약을 하고 예산을 짜다 보니 너무 힘들고 귀찮았다. 피로감이 열망을 훨씬 넘어섰다. 뭐가 얼마나 다르겠어 싶기도 하고.


 
동생을 데리고 오는 바람에 예산이 초과되어 프라하 체류 일수도 줄였고 파리에 들렀다 가려던 계획도 바꿨다. 실은 예산도 문제였지만 조금만 무리하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보다는 내게 열망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서 모르는 도시에 무거운 짐가방을 끌고 가서 고생하는 것이 지겨웠다.


 
프라하에 도착해서도 그런 마음은 마찬가지였는데, 5시간 거리인 비엔나에는 꼭 가야지 하고 있다가도 막상 기다리던 언니가 못오고(ㅜㅜ) 돌아갈 날은 가까워지고 보니 너무너무 귀찮았다. 카를로비 바리도 사실 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카를로비 바리에 갔던 이유는 사실 친구 때문은 아니었다. 비엔나에 갔던 이유도 로망의 도시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그런 로망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난 이미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에 온전한 애정을 줘버린 것 같다. 그래서 그 도시 이후로는 그 어떤 아름답고 근사한 도시라도 그만큼 사랑할 수가 없다.


 
 
*   *   *
 


 
내가 그 두 도시에 갔던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건 지금 쓰는 시리즈의 주인공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를로비 바리가 그랬다. 그곳에 대한 묘사는 1월에 끝낸 소설의 후반부에서 몇 줄 정도만 언급되는데, 사실 그 도시에서의 일주일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쓰고 있는 중편의 3부로 집어넣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플롯을 짜는 과정에서 그 이야기는 화자의 회상으로만 잠깐 등장하게 될 예정으로 변했다. 구조적으로 볼때 그게 맞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 자체는 이후 독립된 단편으로 쓰려고 하는데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다.


 
왜 카를로비 바리가 중요했을까. 난 프라하에 올 생각을 하기 전부터, 작년에 그 소설을 구상해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미샤가 그곳에 가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도시 자체가 공간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애가 그곳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가 중요했다.


 
그렇다고 그 도시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휴양지답게 그 애는 그곳에 휴양을 하러 간다. 그 애가 그곳으로 가는 것은 1976년 가을, 스물한 살을 앞둔 시점이며 심신이 크게 소진되어 있을 때였다. 커리어 상으로는 큰 성공을 거듭하며 계속해서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외적인 성공이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번에 카를로비 바리에 갔을 때 새 소설의 구조를 잡을 수 있었고 지금 쓰는 중편을 구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애가 76년에 그곳에서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시간을 보냈는지도 알 수 있었다.


 
 
비엔나는 중요성 면에서는 훨씬 덜하다. 이곳에 대한 언급 역시 1월에 끝낸 소설에 등장한다. 시기적으로는 1973년 여름, 그 애가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키로프에 입단하기 직전의 짧은 여름 휴가 기간이다. 소년 시절부터 그를 후원하던 고위직 당 간부인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그 애를 데리고 비엔나에 가는데 그곳에 대해서는 아주 짧은 언급이 전부다. 


 
하지만 난 언제나 궁금했다. 그곳에서 그 러시아 메디치처럼 구는 노멘클라투라 심미주의자 정치가와 건방지고 언제나 홀로 생각하며 걷지만 기묘하게도 그 나이많은 남자 앞에서는 거의 다정할 정도로 예의바르게 구는 미샤가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냈을지.


 
사실은 그래서 비엔나에 갔던 것 같다. 궁금해서. 아주 조그만 예를 들어, 독일어를 모르는 그 애는 비엔나에서 자신의 독립성이 조금이나마 손상되었다고 느꼈을까? 하는 사소한 궁금증 따위까지.

 


 
... 사실 비엔나에서 딱 하나 확신했던 것은 이런 거다. 좀 우습지만.


아무리 식이요법에 철저한 너라 해도 이 케익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었을 걸!! :)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비엔나의 케익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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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카를로비 바리>

 

 

 

 

 그리고 10월 마지막 주에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갑작스럽게 레닌그라드로 왔다. 기차나 버스, 자동차가 아닌 첫 비행기를 타고 안개에 잠긴 풀코보 공항에 내렸다. 그때 미샤는 이콘 복원가 소피야와 함께 자기 집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자고 있었다. 밤새 쉬지 않고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마르크 카라바노프가 지나이다를 깨울까봐 조심하며 침실에서 나와 학교로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일린이 초인종을 눌렀고 작은 여행 가방을 경쾌하게 끌며 안으로 들어왔다. 카라바노프가 반가워하며 약혼녀를 깨우겠다고 하자 일린은 지나이다와는 어제 통화했으니 피로에 찌든 발레리나 아가씨를 조금이라도 더 자게 내버려두라고 만류했다. 그 모스크바 안무가는 곧장 거실로 갔고 소피야의 곁에서 자고 있던 미샤를 흔들어 깨웠다. 그날 학교에서 트로이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면서 카라바노프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 자네도 알지? 아침에 미하일 깨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으니까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이마를 찰싹 갈기던데. ‘그만 일어나지, 잠꾸러기!’ 라고 버럭 소리쳤어. 꼭 피오네르 교관처럼. ”

 

 눈을 뜬 미샤가 멍하게 일린을 쳐다보다가 꿈이라고 착각한 듯 다시 소피야의 따뜻한 몸에 기대며 자려고 했다. 일린은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고 억지로 욕실까지 끌고 갔다. 카라바노프가 도와주기까지 했다.

 

 “ 난 이제부터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를 존경하기로 했어. 15분 만에 다 해치웠어! 깨워서 칫솔을 물리고 머리랑 얼굴에 물을 끼얹게 하더니 가방에 옷만 몇 벌 쑤셔 넣은 후 데려갔어. 보통 때 같으면 두 시간은 걸렸을 걸. 미하일은 잠도 덜 깨고 정신도 못 차려서 신발끈 매다가 두 번이나 넘어졌어. 스카프도 현관에 흘리고 갔어. ”

 

 “ 어디로 갔는지 알아? ”

 

 “ 어디랬더라. 내가 물어봤는데... K로 시작되는 지명이었는데... 키슬로보드스크? 카를로비 바리? 하여튼 온천 쪽이었어.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처음에 미하일을 좀 야단쳤거든. 그 상냥한 사람이 화내는 건 처음 봤어. 별로 무섭지는 않았지만. ”

 

 “ 왜 화를 내? ”

 

 “ 아픈 줄 몰랐었나봐. 휴가 받았다는 것도 안지 며칠 안됐고. 그것도 지나가 전화해줘서 알았던 것 같아. 자기한테 얘기 안했다고 야단치더니 모스크바에 열흘이나 있었으면서 연락 안했다고 또 꾸짖고, 또 뭐라고 했더라. 아, 몸을 혹사시킨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했지. 그러니까 미하일이 자기는 아픈 데도 없고 일주일 후에 다시 극장에 나갈 거라고 했어. 자다 일어나서 뜬금없이 야단맞는 사람치곤 별로 화난 것 같지도 않았어. 와줘서 반가워하는 것 같던데. 그 친구는 심지어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어.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시키는 대로 가방을 싸더니 얌전하게 따라가더라고. 난 미하일이 그렇게 온순하게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 ”

 

 

 .. 2013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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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미샤는 비엔나로 떠날 때 기차역이 아니라 공항으로 갔다. 색소폰 연주자 가릭이 공항까지 그를 태워다 주었다. 레나 때문에 불공평하게 대한 것을 사과하고 싶었던 타냐가 따라갔다. 돌아온 타냐는 흥분한 어조로 뭔가 정부 관료 냄새를 풍기는 젊은 여자가 미샤를 외교관 출구 쪽으로 안내해 데려갔다고 떠들었다.

 

 “ 벌써 후원자가 생겼나봐. 비엔나도 위에서 보내주는 건가봐. 걘 상상 이상으로 출세할 거야. ”

 

 타냐 말이 맞았다. 상상 이상으로 출세할 것이다. 날아가 버릴 것이다.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곁에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 2012년 10월 ... 

 

 

..




카를로비도 비엔나도 발췌한 부분이 거의 전부다. 때로는 저 몇줄 안되는 부분 때문에 카를로비와 비엔나에 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래서 파리와 런던에도 가야 하는데, 특히 파리가 중요했는데 지금은 좀 후회하고 있다.

2013.3.27

 

 

..

 

 

위에 발췌한 카를로비 바리에 대한 이야기는 2006년과 2011년에 다녀왔을 때를 생각하며 썼던 것이다. 그리고 저 메모를 쓰기 며칠 전 다시 카를로비 바리에 갔고, 거기서 나는 수용소 중편을 쓰게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2022 (카페 엘리펀트, 카를로비 바리)

미샤를 카를로비 바리에 데려간 친구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수용소 중편 3부는 얼마 전 발췌한 적이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5551

 

 

비엔나 이야기는 같은 소설의 전반부에 잠깐 언급된다. 전에 발췌해 올린 적이 있는 미샤와 친구들, 레나와 크세니야의 흑해 에피소드 말미에 붙어 있는 짧은 에피소드이다. 그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5389

미샤를 비엔나에 데려간 고위 당 간부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시점으로 씌어진 단편도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최근 발췌 에피소드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469

 

 

..

 

 

저 2013년 당시 짧은 비엔나 여행은 wien 폴더에 사진들과 메모가 담겨 있다. 저때 카를로비 바리 갔던 날들 메모는 2013 프라하 프래그먼트 폴더에 있는데 http://tveye.tistory.com/1897 부터 시작해 몇개 올려놨었다.

 

그때의 카를로비 바리와 비엔나 사진 몇 장

 

먼저 카를로비 바리.

 

 

 

(온천 도시라서 이렇게 강에서 김이 모락모락!!!)

 

 

그리고 비엔나 사진 몇장.

 

 

 

 

 

..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3. 4. 28. 14:12

카페 엘리펀트, 카를로비 바리 about writing2013. 4. 28. 14:12

 

 

 

 

내가 지난 2월 프라하로 떠났던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고 누구에게도 그 모든 이유들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어떤 것은 해결이 되었고 어떤 것은 그대로 남았다. 뭐 겨우 두 달 머물렀으니 그럴만도 하다.

 

글쓰기도 큰 이유 중 하나였는데, 실은 도착해서 거의 한 달 가량 쓰기를 시작할 수 없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나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러다가 친구가 나를 만나러 와줘서 카를로비 바리에 잠깐 갔었다.

 

친구는 일 때문에 늦게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먼저 카를로비 바리에 도착해 거리를 산책하다가 호텔 근처에 있는 저 카페 엘리펀트에 들어갔다.

 

 

사실 저 카페에 들어갈 때만 해도 난 엉망이었다. 몸이 아팠고 열이 나고 정신도 산란했다. 나중에 도착해 숙소에서 날 만난 친구는 아픈 애를 괜히 데려왔다고 미안해했다. (그 친구임. 복지리를 갈망하는 애. 뭐 그래서 얘가 카를로비 바리 있는 내내 날 잘 먹이고 짐도 다 들어주고 보살펴주고 챙겨줬기 때문에 신났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ㅋㅋ)

 

 

그런데 사실 나는 그때 기분이 꽤 좋았었다. 몸은 아팠지만 카페 엘리펀트에서 보낸 한 시간이 지금껏 프라하에서 보냈던 20여일의 시간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카를로비 바리에 갔을 때 나는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따위를 들고 가지 않았다. 오로지 도블라토프의 소설 한 권, 펜 한 자루와 스프링 노트 한 권을 챙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게 전부다. 

 

 

나는 그곳 창가에 앉아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던 글의 전체 흐름을 정리해보았다. 이건 플롯이 아니라 슈젯을 정리하는 편에 가까웠다.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것은 이 글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미 나는 그 글을 쓰려다 두 번이나 포기한 후 워밍업을 위해 다른 글을 두 편이나 썼다. 때로 어떤 글을 시작한다는 것은 사랑을 새로 시작하는 것만큼, 아니,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리는 것만큼 어렵다. 이제 카페 엘리펀트 창가에 앉아 스프링 노트를 가로로 펼치고 펜을 잡은 나는 단순하게 시간적 흐름에 따라 사건과 인물과 내용의 골자를 배열하고 전체적 맥락을 다시 잡았다.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페이지에 걸쳐 기다란 흐름을 정리하고 나자 뭔가가 명확해졌다. 그리고 이 소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인물이 어떤 일을 겪고 그곳에 존재하게 되는지, 이 소설에서 그의 행동 패턴이 왜 변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와 나 둘을 모두 납득시켜야 했다. 그건 단순히 그가 나이를 먹거나 철이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원래 쓰고자 했던 글을 위한 프리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원래는 짧게 툭툭 던져지는 배경으로만 묘사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프라하에 돌아와서 그 글을 시작했고 꾸준히 썼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 글을 끝냈다.

 

 

다음날 아침 호텔의 조그만 식당 창가에 앉아 아침을 먹으면서 친구가 말했다.

 

" 다 나 덕분인 줄 알아라. "

 

" 뭐가? "

 

" 안 아프게 된 거. "

 

" 아직 좀 아픈데. "

 

" 그래도 얼굴이 동그래졌어. 어제 온천 시키고 슈니첼을 먹였더니 이제 사람다워진 거야. 이제 가방 들고 다닐 수 있겠지. 사람 구실을 하겠지. "

 

" 슈니첼 먹고 자서 얼굴이 부은 거야! 좋은 게 아니잖아 ㅠㅠ "

 

" 아니야, 좋아진 거야. 눈에 빛이 돌아왔어. "

 

" 그래, 어떻게 보면 네 덕분이 맞아. 엄밀히 얘기하면 카페 엘리펀트 때문이야. "

 

" 온천보다, 맛있는 음식보다, 좋은 호텔보다 카페 따위가 더 좋단 말이냐! 어딜 가나 널려 있는 카페 따위가! "

 

" 엉... 그게 꼭 그런 건 아닌데... 좀 그래. "

 

" 근데 왜 아직도 결혼을 못했지? 이 여자는 저비용으로 꼬시기에 아주 적합한 타입인데. "

 

" 이 자식이.. 상대를 앞에 두고 3인칭으로 칭하지 마라. "

 

 

사실 친구 말이 맞다. 네 덕분이다. 카를로비 바리에 가자고 꼬셔줬잖아. 세번째 찾는 카를로비 바리였지만 이때가 가장 즐거웠다. 그리고 여기서 카페 엘리펀트에 갔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고맙다 :)

 

 

 

 

 

 

카페 엘리펀트는 카를로비 바리 온천지대를 따라 쭈욱 걸어가다가 이 동네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호텔일 GRAND HOTEL PUPP으로 접어들기 좀 전에 나타난다. (그 호텔엔 전에 출장와서 행사만 들어가봤다. 이번에 묵었던 곳은 다른 곳)

 

휴양지인 카를로비 바리라는 동네 특성이 그렇듯, 이 카페에도 두터운 외투를 벗고 앉아 쉬는 중년이나 노년 부부들이 많았다. 카페는 널찍한 그랜드 카페 스타일이었다. 이른 오후였고 창가에 앉자 싸늘한 바깥 날씨와는 달리 햇살이 스며들어와서 좋았다.

 

점심 먹을 때 차를 마셨기 때문에 평소엔 잘 마시지 않지만 카푸치노를 주문해봤다. 그리고 모양이 예뻐서 마블 케익 주문. 케익은 커스터드가 진했고 꽤 달아서 다 먹지는 못했다. 카푸치노는 부드럽고 맛있었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좀 호텔 커피숍 같은 분위기인가..

 

 

 

 

고맙구나, 카페 엘리펀트. 그리고 카페 에벨도. 친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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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