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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후. 내일도 쉬어서 참 다행이다.

오늘은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기운이 없어서 좀 누워 있었다. 쿠마는 5월 들어 제대로 된 티타임과 간식이 없어 매우매우 뚜떼해진 상태...

쿠마야, 이 기회에 먹는 것만 밝히는 곰팅이가 아니라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지적인 곰둥이가 되어보자!!

 

그리하여 빅토르 바스네초프의 그림 '이반 왕자와 회색 늑대' 앞에서 포즈를 잡고 앉아 보았다.

 

그림은 예전에 러시아 박물관에서 사온 카피본이다. 액자에 들어 있어 흐릿하게 나와서.. 원래 이미지는 이렇다. 아주 좋아하는 그림이다. 러시아 민담 '이반 왕자와 불새'의 한 장면으로, 조력자인 회색 늑대 등에 올라타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미녀 옐레나와 함께 숲속을 달리고 있는 이반 왕자를 그렸다.

 

 

 

이 그림의 원형 민화인 '이반 왕자와 불새'에 대한 얘기는 이 링크를 : http://tveye.tistory.com/16)

(위 링크의 포스팅은 이미지가 많이 잘려서.. 마린스키 발레 '불새'에 대한 리뷰에도 바스네초프는 아니지만 불새에 대한 이미지들이 좀 있으니 그 링크도 : http://tveye.tistory.com/2770)

이반 왕자와 불새는 내게 아주 의미있는 이야기이다. 글 쓸 때도 수차례 중요한 주제나 모티프로 등장했고 지금 쓰는 미샤의 가브릴로프 우주에서도 주인공이 이 이야기를 놓고 춤을 안무하여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어머나, 쿠마야.. 책도 많이 읽고 그림 앞에서 포즈도 잡고..어머나, 노어 원서도 읽는구나!

너 아주 문화적인 곰둥이구나!!

 

 

 

쿠마 : 장난해? 부르르...

 

 

 

토끼 : 쿠마야~ 뱃속의 양식만 탐내지 말고 마음의 양식도 쌓아야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는 거야~

쿠마 : 도스토예프스키가 뭔지 내가 알 게 뭐야! 딸기 케익 엉엉

 

 

 

쿠마 : 원망원망원망...

 

.. 이리하여 쿠마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곰돌이가 되지 못하고 말았다 ㅠ

 

쿠마야 말 잘 들으면 어제 사온 아몬드 전병 한 개 줄게 ㅠㅠ

 

* 그건 그렇고 분류를 어디에 넣어야 할지.. 바스네초프 그림이 나오니 일단 ARTS 폴더에..

:
Posted by liontamer

어제 올렸던 3월 29일 마린스키 극장 '미하일 포킨의 밤' 리뷰 이어서. 두번째 작품이었던 불새에 대한 간단한 리뷰.

 

어제도 언급했지만, 출연진은 아래와 같다.

 

- 율리야 스체파노바(불새), 이반 시트니코프(이반 왕자),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브체바(천상의 미녀 차레브나), 바딤 벨랴예프(불사의 카쉐이)

 

고백하자면 러시아 민화 '이반 왕자와 불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이고 바스네초프의 그림도, 이 발레를 위한 박스트의 무대 미술과 의상도 모두 좋아한다. 그리고 '이반 왕자와 불새, 회색 늑대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썼던 글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전에 러시아 일기를 연재할 때 이 이야기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16 )

 

그래서 옛날에 맨 처음 마린스키에서 이 불새를 보러 갔을 때는 너무 설레서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이미 포킨과 니진스키 관련 서적에서 닳도록 봤고 박스트의 화보 카피도 오려서 간직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마린스키에서 샀던 화보집에 나오는 안드리스 리에파와 율리야 마할리나의 화보도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다.

 

아쉽게도 발레 자체는 그때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이 발레는 무엇보다도 미술과 음악이 더 강력한 작품이었다. 박스트의 미술도 그렇고 스트라빈스키의 음악도 그랬다. (개인적으로야 스트라빈스키가 발레 뤼스를 위해 작곡한 곡들 중에선 페트루슈카를 좋아하지만) 일단 춤이 너무 적었고 이반 왕자와 불새 이야기에 다른 민담들이 결합되어서 그런지 원래 이야기의 강렬한 매력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반 왕자와 천상의 미녀 공주님이 춤추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지루해진다 ㅠ.ㅠ 어쩔 수 없는 나의 아다지오 공포증인가...)

 

이후에도 이 발레는 몇 번 더 봤고 영상도 몇 가지 버전을 가지고 있어서 꽤 많이 돌려봤다. 이 발레는 발레 자체가 매력적이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쓰고 있던 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내 글에서는 소련 시절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주인공이 불새를 새롭게 안무하고 춤추는데 이로 인해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 돌려볼 때마다 음악과 각 인물들의 춤, 무대 등등을 열심히 조각내 보기도 하고 각종 상념에 잠기곤 했다.

 

어쨌든 영상으로야 자주 봤지만 무대를 다시 보는 건 진짜 오랜만이었다. 거의 7~8년은 된 것 같다. 안드리스 리에파가 90년대 중반에 이 작품을 마린스키에 다시 올린 이후 무대 미술과 의상은 거의 변함이 없는 듯 했다.

 

오랜만에 보니 좀 흥분도 됐지만, 안타깝게도 어제 쇼피니아나 얘기했을 때 언급했듯 이때 나는 시차와 졸음으로 너무너무 괴로웠다. 막간에 귤도 까먹고 초콜릿도 먹고 복도를 걸어다니면서 열심히 잠을 쫓았지만 역시나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자 유체이탈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불새가 나올 때는 열심히 봤지만 역시 불새가 사라지고 이반 왕자가 마법에 걸린 천상의 미녀 공주(난 대충 천상의 짜레브나라고 부른다만)와 그 시녀들을 만나 춤추기 시작할 때쯤 되자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나도 마법에 걸렸나, 내 몸도 불새처럼 하늘로 사라지는 것 같구나'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불사의 마법사 카쉐이와 그의 졸개(ㅋㅋ) 괴물들이 나오자 근사한 무대 미술과 카쉐이의 마임 덕에 그때부터는 잠도 달아나고 좀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이 발레는 정말 의상과 무대 미술 하나만으로도 직접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건 나중에 얘기할 라트만스키의 '곱사등이 망아지'도 마찬가지다) 불새의 화려한 의상도 그렇고 황금 사과가 열리는 정원도 그렇지만 최고는 역시 카쉐이와 괴물들, 그리고 우중충하고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무대 조명과 배경이다. (이게 혹시 내 개인적 취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난 언제나 날개를 퍼덕이며 무시무시하게 날아다니는 로트바르트 지지자였기 때문에^^;) 이때쯤부터는 스트라빈스키 음악도 꽤나 박진감 넘치고 근사하게 변환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연주로 들으면 잠도 깨고 꽤 좋아진다.

 

사실 이번에도 유체이탈 가신 후에는 공연 보는 내내 발레 자체라기보다는 음악과 전개 과정에 집중하며 내가 만들어냈던 리브레토와 각 동작들을 연결시켜 보았다. 그건 뭐 리뷰에 적을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고.

 

이건 사족이지만 난 항상 이 발레 마지막 장면이 생뚱맞게 느껴졌다. 불새의 도움으로 이반 왕자가 카쉐이를 처치한 후 막이 내렸다가 다시 올라간다. 어둠이 사라지고 만다라 형태의 햇살이 퍼져나가는 둥글둥글하고 동화적인 꿈의 왕국이 나타난다. 마법에 걸렸던 시녀들이 멋진 보가뜨이르(기사)들과 하나하나 커플이 되고, 러시아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이반 왕자와 천상의 짜레브나가 결혼하며 즉위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것이다 (춤은 전혀 없음) 이 장면은 꽤나 비현실적이고 그 꿈의 왕국은 어딘가 탱화를 연상시킨다. 뭐 원래 박스트가 처음에 불새를 디자인할 때도 여자 불상 같은 느낌이었고, 러시아 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사람의 '고대의 공포'라는 그림을 보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불상이 나오긴 한다. 발레 뤼스도 이래저래 오리엔탈리즘을 응용한 작품이 두어 개 있었고.

 

하여튼 그 마지막 장면이 꽤나 '응?' 하는 느낌이라 전에 썼던 글에서도 내 주인공은 그 장면을 해피 엔딩을 가장한 풍자와 비극으로 전환시켰다. 이번에 볼때는 혹시 다른 느낌일까 했는데 역시나 또 그랬다. 아마 내가 삐뚤어졌나 보다 :)

 

무용수들에 대한 아주 짧은 메모들.

 

불새 역의 율리야 스체파노바는 괜찮았다. 요즘 마린스키의 젊은 무용수들 중 상당히 괜찮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나도 주역 무대는 처음 봤다. 원체 내가 처음 봤던 불새가 마할리나, 니오라제 같은 베테랑 스타들이라 그런 원숙함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신선했고 불새다웠다.

 

이반 왕자 역의 시트니코프는 처음 보는 무용수였는데 사실 이 발레가 이반 왕자 춤은 별로 볼 게 없다... 어쩌면 천상의 짜레브나와 추는 아다지오가 중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나는 안드로메다에 가 있었기에 ㅜ.ㅜ 그리하여 천상의 짜레브나 역의 미하일로브체바 춤도 기억이 잘 안 난다. 미안해요 이반 왕자, 천상의 짜레브나 ㅠ.ㅠ 하지만 고백하자면 그 옛날 꽤나 꽃미남이었던 빅토르 바라노프가 이반 왕자를 춘 걸 봤을 때도 그 아다지오는 기억에 없다고요...

 

솔직히 말해 제일 근사했던 건 불사의 카쉐이, 그로테스크한 노인 마법사 역의 벨랴예프였다. 마임도 좋았고 팔다리를 뒤틀며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작도, 무시무시한 분장 속에서 가끔 드러나는 코미디도 좋았다. 갈채도 많이 받았다. 커튼콜 때도 이 사람은 역시나 느릿느릿, 마법사답게 인사를 해서 더 갈채를 받았다.

 

이 날 마지막 레퍼토리였던 세헤라자데에 대한 리뷰는 또 내일... 이게 보자마자 올렸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아무리 당일 메모를 남겨놨다 해도 휘리릭 한꺼번에 쓰는 게 잘 안되네.

 

사진은 없다. 아깝다, 불사의 카쉐이와 괴물들 사진들 ㅠ.ㅠ 날아간 사진들아.

 

그래서 아쉬우니 이 날 공연은 아니지만 불새 화보들 몇 장.

 

 

이건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 불새 역.

 

 

 

이건 오리지널. 미하일 포킨과 타마라 카르사비나. 물론 지금 공연의 의상은 저 의상들과는 다르다. 저땐 불새 의상이 치렁치렁했지만 지금은 위의 콘다우로바 사진처럼 새빨간 색의 화려한 튀튀로 바뀌었다.

 

 

 

레프 박스트의 불새 의상을 위한 일러스트.

이것보다 더 유명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러스트는 바로 아래.

 

 

아주 좋아하는 그림이다. 너무 좋아해서 작년에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로모노소프 도자기 샵에 이 일러스트를 넣은 (싸지 않은) 찻잔을 발견하고 질러버렸다. 요즘도 가끔 거기 차 마신다 :)

 

*  박스트가 그린 천상의 짜레브나 의상 일러스트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4

 

 ** 참고로 짜레브나는 짜르의 딸, 즉 공주/황녀란 뜻. 짜레비치는 왕자/황자란 뜻이다. 그래서 이반 왕자는 이반 짜레비치라고 한다 :)

 

*  위에 잠깐 언급했지만, 이반 왕자와 불새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16

 

*  마린스키에서 처음 발레 봤던 얘기는 여기(이 얘기 잘 보면 슈클랴로프 처음 봤던 얘기도 나옴. 그땐 예브게니 이반첸코 대신 나왔다고 툴툴댔었음) : http://tveye.tistory.com/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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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