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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토) 저녁 7시 공연.

유니버설 발레단 '지젤'

 

 

캐스팅

지젤 : 김나은

알브레히트 : 이고르 콜브

힐라리온 : 이동탁

페전트 파드 시스 : 홍향기, 송호진, 심현희, 강민우, 민홍일, 샤오 쿤

미르타 : 김애리

 

..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냥 간단한 리뷰만 남긴다.

 

난 항상 유니버설 발레단 버전 지젤을 좋아했다. 국립발레단 지젤은 무대 미술이나 무용수들은 좋지만 내가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를 좋아하지 않는 탓에 무용수들이 아주 춤을 잘 추거나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잘 이어줄 때 좋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뭔가 잘 차려놓긴 했지만 마음 어딘가는 헛헛하다..' 이렇게 돌아오곤 한다. 이에 반해 유니버설 지젤은 조금 더 고전적이고 아기자기하고 마린스키 버전과 흡사해서(어쩌면 이것 때문인지도..) 이입도 잘 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 마음 속 최고의 지젤은 언제나 김주원씨였기 때문에 그녀가 있을 때는 국립발레단 지젤도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김주원씨가 떠난 후 국립발레단 지젤을 보러 가면 거의 언제나 뭔가 아쉬웠다. 이동훈씨의 알브레히트는 좋지만 :)

 

오늘 김주원씨가 나오는데.. 사실 난 캐스팅 공지가 나오기 전에 표를 끊었다. 그래서 김주원씨 나오는 것도 뒤늦게 알았는데 이미 토요일 공연을 끊었고, 평소 같았으면 일요일 것도 예매해서 갔을 테지만 오늘 몸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다. 그래도 콜브의 알브레히트를 봤으니까 만족.

 

전반적으로는 무난하게 봤다. 아쉬운 점 몇 가지를 먼저.

 

1. 페전트 파 드 두가 페전트 파 드 시스로 바뀌었는데 나름대로 이것도 아기자기하고 볼만하긴 했지만 그래도 2인무일 때가 더 좋았다...

 

2. 김나은씨의 지젤은 무난했다. 아무래도 체격이 왜소해서 그런지 선이 곱게 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어 아쉬웠고..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 사로잡는 부분도 없어 살짝 아쉬웠다. 2막에서는 상체와 팔이 조금 구부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지젤 광란 장면에서는 많이 슬펐다. 알브레히트 나쁜놈아 ㅠㅠ

 

3. 미르타는 매우 아쉬움... 미르타의 매력이 무엇인가.. 서릿발 같은 매정함과 카리스마인데 그게 부족했다.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ㅜ.ㅜ) 미르타 등장 씬부터 시작해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아쉬웠다.

 

그러고보니 나는 소수파인가.. 미르타와 힐라리온 지지자 :) 내가 미르타라면 저 나쁜 알브레히트를 가차없이 처단할 것이며 힐라리온은 살려줄 것임!!

 

4. 윌리 군무는 나쁘지 않았지만 숫자가 줄어서 규모도 그렇고 건축학적 아름다움도 조금 손상된 게 아쉽다. 왜 한 줄을 빼버렸지... 페전트는 불렸으면서 ㅠㅠ

 

좋았던 점 몇 가지.

 

1. 문훈숙 단장의 해설

 

유니버설 발레단은 예전에도 지젤 때 자막을 넣어줬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처음에는 '좀 오글거린다, 자막까지..'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막을 보면서 '아니, 내가 그렇게 지젤을 많이 봤는데 여기 이 장면은 이런 뜻이었다는 걸 몰랐네!'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초보자들도 많이 오고 아이들도 많이 오니 자막을 넣어주는 것도 그렇고 단장이 직접 나와 여러 가지 마임과 줄거리를 설명해주는 것도 꽤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리고 지젤을 해설해주는 사람이 바로 문훈숙 단장이라는 것도 딱 어울리고.

 

2. 이고르 콜브~

 

내 입엔 이고리 콜브가 배어 있다만.. 사실 저 이름 이고르는 끝에 연자음 부호가 붙기 때문에 '르'와 '리의 중간 발음이긴 하다.

 

콜브의 알브레히트 무대는 사실 처음이었다. 내게 콜브는 언제나 황금 노예를 비롯해 이국적이고 섹시한 타입의 무용수였다. 지난 3월말 마린스키에 갔을 때 본 곱사등이 망아지에서의 코믹한 악당 시종장 역도 캠피할 정도로 섹시하게 느껴졌고... 그의 알브레히트는 간간이 동영상 클립 몇개를 본 게 전부였고 실제로 무대를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과연 콜브의 알브레히트는 어떨지 궁금했다. 섹시한 유혹자일 것인가, 아니면 번듯한 백작님일 것인가. 이 사람이야 나이도 있고 스타일도 그러니 사춘기 소년 같은 알브레히트일 것 같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반듯한 알브레히트였다. 1막의 유혹자일 때는 적극적인 스킨십 등도 그렇고 외모 때문에 막 청년기에 들어서서 자유를 갈망하는 알브레히트라기보다는 성숙한 바람둥이 알브레히트 같긴 했지만. 이 버전의 1막에서는 알브레히트의 춤이 특히 적기도 했고.

 

이전에도 여러번 얘기했듯 보통 나는 언제나 힐라리온 편이고 알브레히트가 아주 춤을 잘 추거나 아주 예쁠 경우 그를 옹호해주게 되는데.. 콜브의 알브레히트라면 지젤이 죽어도 좀 옹호해주고 싶지 않을까 했지만 1막 알브레히트는 역시 못된 놈이었고 정이 갈만한 짓을 안해서 역시 죽일 놈 모드가 되었다. '콜브고 뭐고 알브레히트 나쁜놈~' 하고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이다 ㅋㅋ

 

콜브의 알브레히트는 사실 2막이 더 좋았다. 1막에서는 매력을 발산할 기회가 너무 없었다. 그의 2막 알브레히트는 내 예상과는 달리 화려하고 섹시하다기보다는 매우 유려하고 반듯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섬세했고 잘 계산되어 있었다. 윌리들 앞에서 죽음으로 치닫는 춤을 출 때도 광란과 격렬함, 화려한 테크닉, 이어지는 앙트르샤 곡예 대신 반듯하고 절제된 춤사위를 보여줘서 의외였다. 그런데 상당히 좋았다. 연기력도 뛰어나고, 상체의 움직임도 역시 좋다.

 

3. 힐라리온~

 

이동탁씨의 힐라리온이 좋았다. 나야 뭐 힐라리온 옹호자니까 웬만하면 그의 입장에 이입한다만.. 연기도 괜찮았고 죽음 씬도 좋았다. 나에게 최고의 힐라리온은 일리야 쿠즈네초프이긴 하지만.

 

대체 왜 힐라리온을 죽이는 겁니까.. 무슨 죄가 있다고.. 흐흑...

 

내가 안무가라면 힐라리온을 주인공으로 해서 지젤을 개작하고 말 것이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주인공도 나중에 안무할 때 힐라리온을 재해석하게 될 거다!! 그렇다고 자기가 출 건 아니고 다른 무용수를 시키겠지만.

(이 주인공은 외모도 그렇고 춤추는 타입도 그렇고 누가 봐도 무대에 올라오면 관객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사람, 누가 봐도 알브레히트! 혹은 왕자! 주인공!이기 때문에 힐라리온을 맡을 수가 없음 ㅠ)

 

** 이 주인공을 내세워 썼던 글 두어 편에 지젤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틈나면 나중에 about writing 폴더에 발췌해 보겠다.

 

...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좋았다. 일 때문에 요즘 피폐해져 있었기 때문에 심신을 단비처럼 적셔 주었다 :) 비극은 지젤, 희극은 돈키호테!!

 

...

 

그리고 사족.

 

지젤 볼 때마다 느끼는 것.

 

1막의 파국 장면에서. 지젤이 죽은 후 알브레히트가 힐라리온에게 삿대질할 때부터 나의 분노는 극강으로 치닫는다.

 

'아니 저놈이 뭘 잘났다고 감히 힐라리온에게 삿대질을 하는거얏! 너 때문에 죽은 거잖아. 네놈이 신분 숨기고 평복 입고 순진한 여자 꼬셔서 농락해 놓고, 그래놓고 약혼녀 나타나니까 손등에 키스하며 나몰라라 하고 지젤이 슬피 울며 날뛰는데 고개 돌리고 있었잖아! 뭘 잘났다고 힐라리온에게 난리야!'

 

이 분노는... 알브레히트가 괴로워하다가 망토를 어깨에 휙 걸친 후 마구 펄럭이며 (아주 멋있게) 무대를 가로질러 달려가 퇴장할 때 다시 업그레이드..

 

'아니 저놈이 뭘 잘났다고 망토까지 펄럭이며 멋있는 척이야! 불쌍한 여자 하나 죽여놓고 퇴장할 때는 나 백작~ 나 왕자님~ 하면서 저렇게 망토 멋있게 펄럭이며 허세를 부리는 거야! 이 나쁜놈! 미르타가 되어 네놈을 처단하고 말리라~!!!'

 

ㅋㅋ 그러나 알브레히트가 멋있는 무용수일 때는 이 마음도 조금 약화되어... 한편으로는 저렇게 분노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머 우리 슈클랴로프는 망토 휘두르는 것도 이쁘기도 하지~'

 '어머 이고르 콜브도 망토 휘두르니 간지가 나네'

 

... 이렇게 모순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

 

** 이전에 올렸던 지젤에 대한 리뷰와 클립들 몇개는 아래를 클릭

2008년 유니버설 발레단 지젤 : http://tveye.tistory.com/180
2011년 국립발레단 지젤 : http://tveye.tistory.com/820
마린스키 지젤 3D 후기(사라파노프/오시포바) : http://tveye.tistory.com/1596
2013 국립발레단 지젤 + 마린스키 지젤 클립들(자하로바, 슈클랴로프, 세미오노바, 콘다우로바 등) : http://tveye.tistory.com/2036
예브게니 이반첸코 지젤 클립 : http://tveye.tistory.com/2071
슈클랴로프와 오스몰키나의 페전트 파 드 두 : http://tveye.tistory.com/2315

 

 

 

:
Posted by liontamer

 

 

곱사등이 망아지 (2014.3.30, 마린스키 극장 신관)

 

음악 : 로지온 쉐드린

 

안무 :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무대 및 의상 디자인 : 막심 이사예프

 

<출연진>

 

바보 이반 : 막심 쥬진

여왕 : 아나스타시야 콜레고바

곱사등이 망아지 : 블라지슬라프 슈마코프

황제 : 드미트리 프이하초프

시종장 : 이고리 콜브

암망아지 / 바다 공주 : 소피야 구메로바

노인(이반의 아버지) : 블라지미르 포노마료프

 

 

벌써 한 달도 더 지나서 그냥 간단하게 리뷰.

 

이 발레는 표트르 예르쇼프의 '곱사등이 망아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 역시 아주 창의적인 건 아니고 수많은 러시아 민담들을 재미있게 결합한 것이다. 바보 막내 이반의 이야기라든가, 불새, 소원을 들어주는 망아지(혹은 늑대 등등 신비로운 동물들),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님, 여러 가지 시련, 마침내 이를 모두 극복하고 성장해 공주와 결혼하고 왕이 되는 주인공 등등... 사실 나도 발레보다는 원작을 먼저 알았다. 발레 자체는 1960년대에 로지온 쉐드린의 작곡으로 볼쇼이에서 초연되었지만... 지금 마린스키에서 공연되는 곱사등이 망아지는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버전이다.

 

지금 마린스키 레퍼토리 중 라트만스키 작품은 곱사등이 망아지, 신데렐라, 안나 카레니나 3가지이다.

앞의 두 개는 무대에서 봤고 안나 카레니나는 영상으로만 봤는데 이것도 무척 무대에서 보고 싶은 작품이다(가능하면 브론스키 백작으로 슈클랴로프 - 안나 카레니나로 로파트키나/테료쉬키나 - 카레닌으로 스메칼로프 버전이면 더 좋겠다만...)

 

내가 무대에서 제대로 본 라트만스키 작품은 곱사등이 망아지와 신데렐라 뿐이고 둘다 희극 발레라서 그의 스타일을 딱 이거다! 하고 규정하기란 어불성설이지만 어쨌든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대 미술이 모던하다는 점. 희극적인 움직임과 마임이 강하다는 점. 춤 자체보다는 배경, 의상, 음악, 코믹한 연기 등 부대적 요인들이 강하다는 점. 실지로 두 작품 모두 진짜 '춤'의 비중은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

 

그나마 신데렐라는 신데렐라와 왕자의 2인무가 상당히 사랑스럽고 감정적 상승 작용을 불러일으키는데(이런 점에서는 일반적 고전 발레의 아다지오와도 흡사하다), 곱사등이 망아지의 경우에는 좀 더 연극적이어서 평소 고전 발레의 우아함과 테크닉 쪽에 더 끌리는 분이라면 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원체 곱사등이 망아지를 무대에서 보고 싶기도 했고 러시아 민담도 좋아하고 알록달록하고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 느낌 물씬 풍기는 의상 보는 것도 괜찮아서 꽤 볼만하긴 했지만.

 

발레는 꽤 재미있었다. 막심 쥬진의 바보 이반은 배역 성격답게 사랑스럽고 생기 넘쳤고 마법을 부려 이반을 도와주는 곱사등이 망아지 역의 슈마코프도 좋았다. 슈마코프는 6일에 본 백조의 호수에서도 광대 역을 맡았는데 망아지나 광대 등 희극적이면서도 운동 능력이 요구되는 캐릭터를 잘 소화하는 것 같았다. 아마 라 바야데르의 황금 신상 역도 잘 췄을 것 같다. 미녀 여왕 역의 아나스타시야 콜레고바는 딱히 춤보다는 미모 덕에 어울렸고. 암망아지 역과 바다 왕국 여왕 1인 2역을 소화한 소피야 구메로바는 베테랑답게 원숙했다.

 

무엇보다도 이 발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역은 주인공 이반보다는 바로 코믹한 악당 시종장 역의 이고리 콜브였다. 그것 때문에 신데렐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거기서도 새엄마 역이 오히려 임팩트가 강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시종장 역의 콜브만 수석 무용수였다.

 

콜브는 비열하고 야비하고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악당 시종장을 천연덕스럽고 코믹하게 잘 소화해 냈다. 전에 영상으로 볼 때도 그랬지만 무대로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빨간 하트 무늬가 그려진 엉덩이 부분이 강조된 의상도 그렇고 낭창낭창한 움직임이라든가 과장된 표현 양태 등 그 시종장 배역은 어딘가 꽤나 캠피했다. 스메칼로프 버전을 좀 보고 싶었지만 콜브의 시종장도 좋았다. 그런데 못된 시종장 치고는 저 사람 너무 섹시한 거 아닌가 ㅠㅠ 저렇게 우스꽝스런 의상을 입고도 어딘가 섹시하다!

 

아무래도 민담을 소재로 한 발레다 보니 관객석에 어린아이들이 참 많았다. 역시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은 바로 곱사등이 망아지! 망아지 역의 슈마코프가 나올 때마다 환호하고 좋아했다 :0  내 앞에도 8~9살 정도 되는 사내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엄마에게 '망아지 언제 나와?' 하고 묻고 있었다 :)

 

그런데 이 발레도 무대 미술이나 의상은 의외로 그로테스크하고 음산할 때가 있다. 특히 후반부의 바다 왕국 씬은 꽤 어두워서 애들 보기엔 좀 무섭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난 제일 맘에 든 장면이었음) 이 바다 왕국 부분은, 예쁜 공주가 나이많은 왕과 결혼을 앞두고 '바닷속 깊이 가라앉은 보석 반지를 결혼 선물로 가져다 주지 않으면 결혼 안 할래요~'라고 하자 시종장이 떠밀어서 할수 없이 바다 왕국에 반지 찾으러 간 이반의 모험 부분이다. 바다 왕국의 여왕이 마음 착한 이반과 곱사등이 망아지의 사연을 듣고 신하들에게 명령해 반지를 찾아주게 한다.

 

맨 위에 첨부한 이미지가 바로 그 바다 왕국. 그것 하나만 보면 아쉬우니 슈클랴로프가 이반 췄을 때의 바다 왕국 사진도 한 장. 내가 여왕이라도 반지 찾아줄 듯. (저 사람이 추는 이반이 귀여워서!!)

 

 

발레는 2막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마지막 장면은 원작과 마찬가지였다. 노인네 대신 젊은이와 결혼하고 싶으니 늙은 왕에게 물 끓는 솥에 들어가 환골탈태해달라는 공주의 요구 때문에 이반이 희생양이 되어 솥에 곤두박질쳤다가 망아지 마법 덕에 근사한 왕자님으로 변신해 나온다. 왕도 혹해서 솥에 들어갔다가 죽어버리고(ㅠ.ㅠ) 공주는 백성들의 동의를 얻어 이반과 결혼해 나라를 다스리며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

 

흑흑, 불쌍한 왕. 원작 때도 그랬고 이거 무대로 볼때도 그랬는데... 발레에서도 늙은 왕은 딱히 악당도 아니고 그냥 노쇠하고 코믹한 인물인데 끓는 물에 삶아져 죽다니 불쌍했다. 그리고 시종장의 경우도 악당이라면 끝까지 못되게 나와야 하거늘.. 왕이 죽은 걸 보고 너무너무 슬퍼하며 통곡한다. 난 항상 악당에게 끌리는 편인지 그 장면은 꽤나 코믹한데도 불구하고 시종장이 너무 불쌍한 거였다. 그리고 워낙 이고리 콜브의 시종장이 캠피하게 나와서 그런지 그 불쌍하게 우는 장면 보고는 '혹시 시종장이 늙은 왕을 사모하는 사이였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하여튼 늙은 왕은 끓는 물에 들어가 죽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팔짝팔짝 뛰며 짠~ 하고 해피 엔딩이다. 이 장면에서 이반이 신나게 점프하며 잠깐 춤을 추는데 그것도 꽤 즐겁다. 다만 무용수별로 그 파이널 소화하는 타입이 달라서 전에 본 영상에서 슈클랴로프는 기세좋게 스플릿 점프를 계속했지만 막심 쥬진은 빠르게 피루엣을 했다. 스플릿 점프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어쩐지 이 발레는 그게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전반적 소회는... 춤 자체보다는 무대 미술과 의상 보는 재미가 더 컸다. 무대 미술은 신데렐라와 마찬가지로 모던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무대 자체에 많은 장치를 넣지 않고 이동 가능한 심플한 소품들을 이용한다. 무엇보다도 이 발레의 특징은 칸딘스키나 말레비치 등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모더니즘 화가들의 스타일을 인용하는 동시에 크레믈린이라든지 소련 정권 등을 살짝 연상시키는 풍자적 그림들을 의상에 변용해 썼다는 것이다. 볼만하고 재미있기는 했는데 또 어떻게 보면 이건 민담을 원작으로 했으니까 좀 더 아기자기한 무대 배경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너무 모던해 버리니까 보기 근사하긴 하지만 살짝 엇나간 느낌이랄까.

 

꽤 재미있게 봤는데 사실 슈클랴로프가 이반을 추는 버전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다... 그 사람이 추는 건 풀 영상도 아니고 군데군데 봐서 아쉽다. 꽤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공연 다 보고 나왔는데 지하 코트 보관소가 터져 나갔다. 어째서 직원이 두 명 뿐인 거냐.. 줄서는데 워낙 이골이 나 있는 러시아인들도 이제는 못 참겠는지 '이해가 안되네 어째 두 명 뿐이냐' 하고 계속 짜증냈다. 한참 기다렸다가 간신히 재킷을 받아 입고 나와 버스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 이날은 앞서 마린스키 신관 포스팅할 때(http://tveye.tistory.com/2784) 얘기했듯 2층 4번째 열이라 무대와 좀 멀어서 커튼 콜 사진은 화질 극악. 전날 후지X가 문제를 일으켜서 니콘 가져갔더니 역시 플래시 엉망.. 그래도 커튼 콜 사진 몇 장 올려본다.

 

 

 

하얀 x자 테이핑 가슴에 붙이고 바지 가운데 새빨간 패치 붙인 사람이 시종장 역의 이고리 콜브. 앞에 나와 인사하는 모자 쓰고 빨간 옷 입은 사람이 늙은 왕 역의 드미트리 프이하초프.

 

 

 

 

 

화질이 너무 안 좋지만.. 가운데 긴 머리 아가씨가 여왕 역의 콜레고바. 그 옆에서 손 흔들고 있는 남자가 바보 이반 역의 막심 쥬진.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 캐릭터. 곱사등이 망아지 역의 슈마코프 :)

 

 

 

다같이 인사...

 

마지막 장면을 제대로 촬영한 예쁜 사진은 아래.

 (당연히 내가 찍은 거 아니고 마린스키 관련 사진에서 얻어옴.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이반, 빅토리야 테료쉬키나가 미녀 여왕. 시종장은 유리 스메칼로프. 이 사진 너무 행복해 보여서 올해 달력 만들 때 12월 사진으로 넣었다)

 

 

.. 그리고 아쉬우니 마린스키 사이트와 슈클랴로프 관련 사이트에서 업어온 곱사등이 망아지 관련 이미지 몇 장들.

 

 

 

미녀 여왕과 불새들. 사진이 작긴 한데 아마 알리나 소모바인 듯.

 

 

포킨 발레 불새와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불새들.

 

 

 

이 사진들부터는 슈클랴로프가 바보 이반 췄을 때 사진들.

 

이건 이반이 망아지 도움으로 미녀 여왕을 데리고 온 후 그녀에게 반해 결혼하자고 엉기는 늙은 왕의 모습. 그러나 이미 사랑에 빠져버린 선남선녀... 늙은 왕을 가운데 두고 둘이 눈 맞추고 있음. 그걸 엿보며 음모를 꾸미는 악당 시종장. 여기서는 스메칼로프.

 

 

이건 초반부. 마법의 암망아지를 잡았다가 놔주는 대가로 훌륭한 말 두 마리와 곱사등이 망아지를 얻은 바보 이반. 두명의 형님이 말을 훔쳐 왕국 시내의 시장에 갖다 팔려는 걸 찾아내 자기가 말 주인이라며 으쓱으쓱.. 그러나 그는 마음만 착하지 머리는 좀 모자랐기에... 왕이 예쁜 모자를 보여주자 그것에 혹해 말 두 마리를 다 내줌 ㅠ.ㅠ

 

전반부에서 이반이 이렇게 상의를 탈의하고 나오는 이유는... 원래 러시아 민담에서도 좀 모자란 막내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셔츠도 안 입은 바보 이반'이란 묘사가 종종 있다 :)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팬 서비스일지도!!! 바보 이반이라 셔츠도 안 입고 마냥 즐거워 헤헤 뛰노는데 이 사람 외모만은 귀족 가문 도련님 ㅠㅠ

 

 

곱사등이 망아지와 함께~

 

 

 

끓는 솥단지에 들어갔다가 왕자로 환골탈태한 이반, 사랑하는 미녀 여왕과 춤추고 있음.

 

그런데.. 이 솥단지에 들어가서 환골탈태..라는 것도.. 실은 이반이 저 화려한 상의를 걸치고 나오는 걸로 '이제 환골탈태해서 왕자님이다~'라는 설정임. 믿어야 함 :)

 

 

뒤에 있는 사각 상자가 바로 끓는 물 담긴 솥단지. 저 안에 들어가서 열심히 옷 갈아입고 나옴. 이건 솥단지 들어가기 직전, 무서워하고 있는 바보 이반. 독려하는 망아지와 미녀 여왕.

 

오른편 시종장의 뒷모습. 맨처음 시종장이 돌아서서 저 빨간 패치 달린 엉덩이를 보여주면 아이들이 와르르 웃는다.

 

 

 

 

마지막 장면. 미녀 여왕이 부추기며 춤 좀 보여줘요~ 라고 하면 부끄러워하다가 폴짝 뛰어오르는 이반.

 

슈클랴로프는 이렇게 스플릿 점프를 했지만 내가 본 무대의 쥬진은 이것 대신 빠르고 격렬한 피루엣 :)

 

 

 

이것도 마지막 장면.

 

에휴.. 늙어빠진 왕은 끓는 물에 빠뜨려 죽여놓고 좋다고 저렇게 춤추고 있는 주인공들 ㅠㅠ

 

하긴 어떤 면에서 이 발레는 내용도 그렇고 무대 의상도 그렇고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풍자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탈린이라든지.. 민중 혁명이라든지... 리브레토 자체도 노어로 된 이야기를 쭉 읽어보면 살짝 그런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거야 그쪽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럴 거고.. 보통은 그냥 재미나는 러시아 민담을 소재로 한 유쾌하고 즐거운 발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저 슈클랴로프 이반은 너무 귀여워서 꼭 저 사람이 추는 버전을 보고 싶긴 하다...

 

.. 내일이나 모레 쯤 이 발레 영상 클립 링크들도 몇개 올려보겠다.

(추가 : 영상 클립 올렸다. http://tveye.tistory.com/2796)

 

다음 리뷰는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본 폴리나 세미오노바와 레오니드 사라파노프의 라 바야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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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