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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10. 09:57

추우면 먹고 싶은 것 2017-19 petersburg2022. 11. 10. 09:57

 

 

날씨가 스산하고 흐려서 사무실이 춥다. 일찍 출근해서 사과도 한 알 먹고 쌀빵도 한 조각 먹어서 배는 안 고픈데, 추워서 그런지 우하(생선수프)가 먹고 싶어서 올려봄. 이건 18년 가을, 아스토리야 호텔 카페 로툰다에서 먹었던 우하. 아마 이 때 우하 먹고 나서 김릿을 마셨던 거 같기도 한데 긴가민가. 

 

 

이것은 크림이 들어간 핀란드 우하가 아니라 맑은 우하이다. 나는 맑은 우하를 더 좋아한다. 우리 식으로는 생선지리랑 비슷한데 맛은 좀 다르다. 우하에는 보통 흰살 생선, 연어, 이따금 조개, 감자나 야채, 그리고 보드카가 들어간다. 레몬즙을 짜서 먹으면 좋다. 먹으면 몸이 따뜻해진다. 전에는 집에서도 이따금 이것을 끓여먹었는데 이제는 너무 귀찮아서 ㅠㅠ 

 

 

아스토리야나 고골에서 우하를 시키면 마늘버터가 들어간 브리오슈 빵(뽐뿌슈까)이 같이 나온다. 저 동그란 것. 

 

 

 

 

 

 

아스토리야는 좀 특이하게 토마토를 가득 썰어서 넣어주었다. 동동 떠 있는 토마토 때문에 막상 생선살은 안보인다. 스푼으로 뒤적이기 전이라서 토마토 맑은 국처럼 보인다. 

 

 

러시아에 여행을 가면 우하를 꼭 한번은 먹게 되는데, 가장 최근이 이미 거의 3년 전인 20년 1월의 블라디보스톡이었다. 거기서 먹었던 우하도 매우 맛있어서 두번이나 갔다. 아이고 추워, 우렁이가 짠 하고 나타나 나한테 우하 한 그릇 끓여다주면 참 좋겠다.

 

 

 

 

 

아스토리야나 고골은 가격대가 있는 레스토랑이라 맨 위 뽐뿌슈까에 이어 곁들임 빵도 여러종류를 가져다주는데, 보통의 식당에서 시키면 흑빵 두 쪽을 같이 준다. 흑빵이랑 같이 먹어도 물론 맛있다. 버터에는 파슬리가 들어가면 더 잘 어울린다. 우렁이가 파슬리버터랑 맛있는 빵, 뽐뿌슈까, 그리고 맑은 우하까지 한 쟁반 가져다주면 참 좋겠다. 거기 김릿 한 잔까지 추가하면 매우매우 좋겠음. 

 

 

이제 또 열심히 빡세게 일해야 하니 우하는 꿈속의 갈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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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식 맑은 생선수프 우하.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래는 우크라이나 쪽 수프이다. 여기 크림을 넣으면 핀란드식 우하가 된다. 얼마 전 써서 이 폴더에 전문을 올렸던 미니단편 '핀란드 우하'에서 미샤가 취한 채 계속해서 '나는 맑은 우하가 좋은데' 하고 알리사에게 찡찡대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이것. 안에 든 연어와 당근, 레스토랑 조명 때문에 좀 붉게 나오긴 했는데 하여튼 맑은 국물이다.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러시아 음식점 '고골'의 우하. 여기 음식이 좀 비싸긴 해도 맛있는데 갈수록 유명해져서 점점 자리 잡기가 힘들어지고 있음. 이제는 가기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흑흑 예전이 좋았는데... 이 사진은 2016년 겨울에 갔을 때. 따끈한 생선 수프 우하를 먹으면 몸이 데워진다.

 

단편에서 미샤가 맑은 우하 타령을 하자 알리사가 '맑은 우하는 노인네 입맛이거나 보드카 마시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거야' 하고 타박을 준다. 근데 사실 나도 미샤랑 입맛이 비슷한 편이라서 크림 넣은 핀란드 우하보단 이 맑은 우하가 더 좋다 :)

 

 

그 미니 단편 '핀란드 우하'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950

 

 

 

 

보드카를 곁들이면 좋겠지만 이때 나는 심신이 많이 힘들 때라 모르스 주스를 마셨다.

 

 

 

 

 

제대로 된 맑은 우하에는 이 '뽐뿌슈까'를 곁들여 먹게 되어 있다. 마늘 브리오쉬인데 폭신하고 마늘향이 감도는 게 무척 맛있다.

 

 

 

 

폰으로 찍었던 클로즈업 사진 두 컷 더.

 

 

 

비밀을 털어놓자면... 사실은 알리사도 크림 넣은 핀란드 우하보다는 이 맑은 우하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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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4. 9. 21:48

크림을 넣은 생선수프와 흑빵 about writing2019. 4. 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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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스케치 한 장. 노동노예 옥토끼나 말썽쟁이 미샤, 빨간머리 지나 대신 음식 스케치. 며칠 전 올린 미니 단편에 나오는 핀란드 우하(크림을 넣은 생선 수프)와 러시아 흑빵 두 조각. 앞발이라 대충 그려서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만 사실 맛있습니다 :) 수프에는 알리사가 말한대로 연어와 대구, 파슬리와 우끄롭(딜), 그리고 감자와 당근이 들어갔습니다. 잘 찾으면 셀러리도 있음. 그리고 크림.

 

핀란드식 생선 수프와 흑빵, 보드카에 대한 그 미니 단편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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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13. 19:17

생선수프 먹고 있음 2016 petersburg2016. 12. 13. 19:17




잠 설쳐서 조식 놓치고.. 마지막 날이라 고골에 점심 먹으러 옴. 여름엔 자리 없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예약 없이도 한적.


생선수프 우하랑 수도원식 생선파이 주문. 여기 우하 맛있네.. 맨날 보르쉬만 먹었는데(여기 보르쉬 맛있다)


파이는 아직 안 나옴. 수프 먹으니 몸이 좀 따뜻해지는거 같다.


아, 내일 돌아가야 하다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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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열흘 동안 머물던 블라지미르 대로의 도스토예프스키 호텔에서 오늘 체크아웃하고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에 있는 호텔로 옮겼다. 아직 찻잔은 사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가방이 꽉 차고 무거운지 모르겠다 ㅠㅠ

 

이 호텔은 마린스키에서 도보로 15~20분쯤 거리에 있는데 네프스키 쪽이 아니고 약간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전자와 가격은 비슷하지만 훨씬 좋다. 그런데 여기는 오늘 하루만 묵고 내일은 또 옮긴다. 이것이 이렇게 된 이유는... 잊고 싶은 회사에서의 안좋은 일 후 갑자기 숙소를 잡고 날아오다보니 방이 없어서... 그리고는 또 며칠 후 다시 이 호텔로 옮겨와 며칠 잘 것이다. 이건 여기 와서 5일 정도 일정을 더 연장해서 그렇다. 이게 뭐야... 힘들고 돈들고... 이래저래 파산이지만 사실 그런 거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날아오지도 않았겠지..

 

여기도 전기 티포트는 없지만(이 동네는 보통 좋은 호텔에도 포트가 잘 없고 달라고 해야 준다) 엘리베이터 앞에 뜨거운 물 나오는 정수기가 있어서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디카페인 홍차 한잔 우려마셨다. 몸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카페인을 기피하는 중이라... 그래도 차 마시니 살것 같았다.

 

..

 

12시에 체크아웃한 후 굶주리고 어지러운 상태로 근처의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에 갔다. 오늘은 도네츠크 스타일의 생선수프를 시켰고(우하인데 이름이 빠흘료바 리브나야 도네츠카야 라고 되어 있어 뭐가 다르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이름만 다르다고 함), 닭고기 샤실릭을 시키려 했는데 오늘따라 참 친절했던 아저씨가(전에는 못보던 아저씨) 그 아래 있는 닭고기 요리 추천. 조금 더 싼데 매우 부드럽다고 해서 귀얇은 나는 또 받아들임.

 

근데.. 수프 나오기도 전에 아저씨가 또 방글방글 웃으며 예쁜 색깔의 주스 같은 걸 갖다주었다. 아저씨 말로는 시음해보라는 거였다. 자기네가 만든 거라고.. 비슈냐(이 동네 체리)로 만든 보드카라면서 '겨우!' 20도밖에 안된다고 했다. 첨에 나는 '2도'로 잘못 알아듣고 '아 가벼운 아페라티프구나~' 하면서 좋다고 고마워하며 한모금 살짝 마셨고..

 

 

끄아악!!! 빈속에 보드카! 40도는 아니지만 20도도 장난 아니야... 나 보드카 마시고 팔각정에 쓰러져 잤는데 ㅠㅠ 안돼애..

 

근데 가져다준 성의가 또 고마워서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수프랑 밥이 나왔을때 좀 마셨다. 3분의 1쯤 마셨나보다. 그 이상은 독해서 못 마시고 아저씨에게 무척 맛있으나 독해서 다는 못마셨다고 했다.

 

혼자 온 여자 손님에게 정오부터 보드카 마시라고 권해주시는 러시아~~ 이것이 러시아 ㅠㅠ

 

우하는 무척 맛있었다. 크림이 든 핀란드식 우하도 좋아하지만 나는 맑은 국물 우하를 더 좋아한다. 집에서도 몇번 끓여먹었는데 오늘 쉬녹에서 먹은 우하가 진짜 맛있어서 레시피를 좀 물어보고 싶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좋았다. 연어와 흰생선 등 3가지 생선, 감자가 들어간다. 보통 제대로 된 우하는 3가지 생선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나야 집에선 항상 연어 아님 대구로 끓이니 맛이 모자랄 수밖에 ㅠㅠ

 

 

우하는 참 맛있었는데 추천해준 메인 닭고기 요리는... 아아, 이것도 크림 소스였어... ㅠㅠ (요즘 자꾸 크림 소스 등 느끼한 음식을 먹게 되어 괴로워하고 있던 차였음) 맛은 훌륭했다. 양송이가 잔뜩 들어가 버섯 크림소스였고 좀 짭짤해서 덜 느끼했다. 비프 스트로가노프의 닭고기 버전과 비슷해서 맛있었는데 내겐 양이 많았고 좀 짰다. 그냥 샤실릭 먹었음 좋았을텐데...

 

 

접시 보고는 '엑, 오이랑 토마토 늘어놓은 거 봐... 역시 이 동넨 아직 플레이팅이 옛날이랑 똑같아...' 했지만... 결국 느끼해서 저 오이랑 토마토 다 집어먹었다 ㅋㅋ

 

..

 

보드카 마시고 배아파서 좀 고생한 후 서점에 가서 도블라토프의 짧은 에세이집 한권과 에코백 따위를 사고, 택시 불러달라고 한 시간까지 40분쯤 남아서 전에 두어번 갔던 호텔 옆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녹차와 에클레어를 먹었다. 그날인데다 속도 안좋으니 차마 홍차는 못마시고 연한 녹차를 마시고 입이 느끼하고 짜서 에클레어 먹었다. 맛있었다.

 

 

..

 

3시에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두번째 호텔인 이곳으로 왔다. 요금 많이 나왔다 -_- 분명히 바가지일 거야. 하지만 짐이 무겁기도 하고 다 귀찮아서 그냥 타고 왔다.

 

새 호텔은 첫번째 호텔보다 위치 빼고는 모든 면에서 더 좋았다. 이럴줄 알았음 첨부터 여기 잡았음 좋았을걸. 마린스키에서도 가깝고 ㅠㅠ 하지만 자본 적이 없는데다 위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예전부터 항상 위시리스트에만 올려놓고 자본 적이 없는 데였다.

 

3시 20분쯤 도착했는데 곧장 체크인하게 해주었다. 트렁크는 거의 풀지 않고 하룻밤 잘때 필요한 옷가지와 세면도구, 화장품 따위만 꺼냈다. 그리고는... 너무너무 졸렸다. 밤잠도 좀 설쳤고... 생각해보니 쉬녹에서 마신 보드카 탓인거 같은데 이제야 깨달음 ㅋㅋ

 

너무 졸려서 침대로 기어들어가 깜박 잠들었는데 4시 반쯤 료샤와 레냐가 왔다. 내가 몇호인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주긴 했는데 내가 거의 비몽사몽 몽유병 환자처럼 '어서 와...'라고 하자 료샤가 혀를 차며 '자라 자!' 하고 날 침대로 밀어넣었다. 레냐가 찡찡거리려고 하는데 료샤가 '쥬쥬 좀 자게 아빠랑 게임하자'라고 해주었다. 료샤는 이럴때 보면 참 착하다. 내가 졸릴 땐 방해하지 않는다.

(전에 료샤에게 '내가 잘 때 안 깨우고 자게 해줘서 고마워'라고 하자 그는 '우리 네바(그의 셰퍼드 ㅠㅠ)도 자는 거 방해하면 싫어해. 토끼도 마찬가지겠지!' 라고 대꾸했었음)

 

그래서 나는 한시간쯤 정신을 잃고 잤고 그동안 료샤랑 레냐는 옆침대인지 의자인지 하여튼 거기 앉아 폰으로 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거까진 참 고마운데 내가 깼을때 료샤가 내 폰으로 도촬한 사진을 보여줌 -_- 정신없이 잠든 토끼의 불쌍한 모습 ㅠㅠ 착하다는 거 취소!

 

내가 너무 피곤해하니 나가지 말고 방에서 놀자며 료샤가 근처 스시 가게에서 롤과 스시, 수프 따위를 테이크아웃해왔다. 내가 요즘 밥먹고 싶어하니까 나름대로 신경쓴 것이다. 그러나 이동네 스시나 롤이나 아시아 음식이 다 그모양이듯 뭔가 어설프고... 일부러 나 먹으라고 '김치 수프'를 사왔다고 했지만 그 김치 수프는 지난번 내가 쇼핑센터 식당에서 먹은 것과 똑같이 미소 국물에 계란과 고춧가루 좀 풀어놓고 김치가 전혀 없는 것이었음 ㅋㅋ 아주 맵다며 별이 세개나 붙어 있었지만 하나도 안 매웠고 짜기만 했다.

 

 

그래도 료샤는 내가 차가운 음식이나 날생선은 안먹는 걸 알기에 나름대로 따뜻하게 익힌 롤을 사옴. 내가 우나기 좋아하는 걸 알고는 우나기 롤을 달라고 했으나 알고보니 저 롤은 장어 소스만 썼을뿐 무슨 새우를 다져서 크림처럼 만들어 올려놓은 것으로 전혀 우나기가 아니었음. 김치 없는 김치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 롤... 뭐냐 ㅋㅋ

 

료샤랑 레냐는 요상망측한 롤과 스시를 맛있다고 먹고(아아 그거 맛있는 거 아니야 이것들아 이 불쌍한 것들아 ㅜㅜ) 나는 김치 없는 김치 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 롤을 먹었다. 그래도 쌀을 먹으니 좀 낫다.

 

앉아서 얘기하고 놀다가 레냐는 깜박 잠들었다. 료샤가 근처에 케익 사러 간 동안 난 이 메모를 남기고 있다. 근데 이 밤중에 케익 사오면 나는 어떡하지 ㅋㅋ

 

하여튼 친구야 고마워.

 

근데 쌕쌕거리며 잠자는 레냐 너무 귀엽다. 역시 내 약혼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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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이번에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을 소개하겠다. 네프스키 대로 근방에 있는 슈베드스키 페레울록에 위치해 있는 '두셰브나야 꾸흐냐'(Душевная кухня)라는 카페이다. 이 이름의 뜻은 영혼의 부엌, 소울 키친 정도 된다.

 

이 날은 눈도 오고 길은 진창이고 무척 음습하고 힘든 날이었다. 러시아 박물관 갔다가 로모노소프 찻잔 사러 갔는데 평소 잘만 찾아다녔던 코뉴셴나야 거리의 그 가게가 이날따라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궂은 날씨 때문인지 길도 잃어서 운하변을 따라 뺑뺑이를 돌고 무척 고생을 했다.

 

이미 찻잔은 포기. 너무너무 피곤하고 춥고 정신이 없고 배도 고프고 멍해서 일단 어디 들어가 몸을 녹이고 밥이라도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길 잃고 헤맬 때 눈에 띄었던 카페가 있어 그곳에 갔다. 스웨덴 대사관 근처에 있는 카페인데 간판도 예쁘지만 대문에 붙어 있는 메모가 어쩐지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

 

대문에 씌어 있는 메모는 찍진 않았는데... 이렇게 씌어 있었다.

 

' 우리 가게 문이 좀 무거워요, 잘 안 열릴 때도 있으니 겁먹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 세게 밀어 보세요!~'

 

어쩐지 그 메모가 위안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웃게 만들기도 하는 거였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다녀도 문이 닫혀 있는 카페에 혼자서 쑥 들어가는 게 사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이렇게 가로등 램프 아래 카페 간판이 걸려 있다.

 

 

 

카페 두셰브나야 꾸흐냐 라고 적혀 있음. 아래 그림들도 아기자기 귀엽다.

 

 

 

이 칠판에는 '두셰브노 이 베셀로', 마음 따뜻하고 즐거운 곳이란 메모가 적혀 있다.

 

 

 

 

 

슈베드스키 페레울록은 말라야 코뉴셴나야 거리와 발샤야 코뉴셴나야 거리를 잇는 조그만 뒷길이다. 스웨덴 대사관이 있는 곳이다. 이 골목으로 꺾어들면 저 안쪽에 있다.

 

문은 정말 무거웠다. 용기를 내어(ㅋㅋ) 밀고 들어갔다.

 

 

안은 따스했다. 카운터에는 젊은 남자 직원 하나가 앉아 있었다. 내가 멍해 하자 방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안내해주었다. 이때 난 눈도 맞고 바람도 맞고 춥고 길도 잃고 하여튼 반쯤 유체이탈 상태라 노어도 잘 안 들리고 정신이 없었다. 점원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걸 알자 약간 당황했으나 아주 친절했다. 손님이 전혀 없었다. 맨 앞 테이블(이 사진에서 왼편에 보이는 주황색 소파 테이블)에 앉을까 했으나 앉아보니 테이블이 내겐 너무 높아서 가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청년이 코트를 받아주러 왔다.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이후 알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데니스였다)

 

데니스 : 너무 추워서 얼었군요?

나 : 어... 네. 얼었어요. 밖이 추워요.

데니스 : 그럼 몸 녹이도록 차나 커피를 먼저 드릴까요?

나 : 아, 네.

 

 

 

데니스가 차를 한잔 먼저 가져다 주었다. 그냥 그린필드 티백이었다. 하지만 따뜻해서 정말 몸이 녹았다.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했다. 이때 너무 추워서 일단 뜨거운 수프가 절실했다. 핀란드식 우하(생선수프)가 있어 그것을 골랐다. 우하는 원래 좋아하지만 여기 우하가 연어로 끓인 거라고 되어 있어 잠시 망설였으나 그냥 주문. 그리고 메인으로는 야채 가니쉬를 곁들인 치킨 필레를 주문했다. 수비드로 쪄서 기름에 살짝 볶고 사과소스를 쓴다고 되어 있었다.

 

데니스는 매우 친절했다. 차를 마시고 나니 몸도 살짝 녹았고 정신도 좀 돌아왔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카페 내부를 좀 구경했다. 아주 아늑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타입의 카페였다. 즉, 서재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아늑하고 살짝 어둡고 살짝 인텔리겐치야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내가 앉았던 창가 자리. 외국어 서적들을 비롯해 러시아 서적들, 사진 관련 도서들이 있었다.

 

책을 저렇게 무심한 듯 근사하게 흩어 놓는 것도 기술이다. 나 같은 정리벽 있는 성격은 절대 저걸 못한다. (결국은 똑바로 정렬하고 있으니 ㅠㅠ)

 

 

 

 

 

이렇게 가장 안쪽에는 책상과 책꽂이, 책들이 있고 근사한 사진들도 많다.

 

그리고 먼저 수프인 핀란드식 우하가 나왔다. 

 

 

핀스까야 우하. 따끈하게 데운 흑빵 한 조각과 함께.

 

나는 러시아에서 우하를 여러 번 먹어봤다. 가끔은 내가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리고 농담 안 하고, 이 우하는 여태껏 내가 먹었던 우하 중 최고였다. 정말이다.

연어는 자잘하게 조각나 있었고.. 아마도 크림이 섞인듯한 수프로 허브가 들어 있었고... 난 평소 우하에 크림을 넣지 않고 맑게 끓이는 편이고 평소에는 크림 들어간 수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우하는... 정말 맛있었다. 난 이렇게 맛있는 우하를 처음 먹어봤다. 몸이 사르르 녹았다. 살짝 간간했지만 짜지도 않았고.. 비린내 전혀 없고 너무나 부드럽고 너무나 담백하고 구수하고 맛있었다. 저 우하 한 그릇을 끝까지 다먹었다. 흑빵도 따스하고 살짝 시큼하고 구수한 것이 정말 맛있었다. 두셰브나야 꾸흐냐가 맞았다. 정말 맛있는 수프였다. 두고두고 생각날 음식이었다.

 

 

사진 보니 생각난다. 다시 먹고 싶다. 정말 맛있었다.

 

 

 

이어 수비드로 요리한 치킨 필레 등장.

 

보통 러시아에서 닭요리를 시키면 기름에 튀겨진 커틀릿이 많이 나온다. 그렇지 않더라도 하여튼 기름기가 많다. 그러나 이 치킨 요리는 전혀 기름기가 없었다. 일단 닭가슴살을 수증기로 찐 후 기름에 구운 거라서 안은 촉촉했고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소스는 식초가 들어간 듯 살짝 새콤하면서도 달콤하고 조금 묵직한데 홀머스터드가 섞여 있어 느끼하지 않고.

 

거기에 가니쉬로 곁들인 저 파프리카가 진짜 맛있었다. 언젠가부터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라 파프리카를 안먹은지 꽤 됐는데 이것은 소스가 어찌나 달콤한지.. 사과와 꿀이 들어간 것 같았다.. 진짜 달콤하고 맛있고 파프리카는 부들부들하고 물컹한게 정말 맛있었다!! 전부 다 먹었다. 

 

이날 이 카페에서 먹은 이 늦은 점심은 이번 페테르부르크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최고였다. 고골의 보르쉬도, 징게르 카페의 근사한 치킨감자 블린도, 심지어 그랜드 호텔 유럽의 비프 스트로가노프보다 더 훌륭했다. 

 

 

 

다 먹고 나니 데니스가 그릇 치우러 왔다. 음식이 입에 맞느냐고 물었다. 아주 맛있었다고 대답.

 

데니스 : 어디서 오셨어요?

나 : 한국이요.

데니스 : 거기 날씨는 어떤가요? 여기처럼 추워요?

나 : 한국도 춥지만 여기가 더 추워요.

데니스 : 거기도 여기처럼 눈 오나요?

나 : 그럼요. 근데 여기가 더 많이 와요. 오늘 날씨 너무 안 좋아요.

데니스 : 여기 춥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안 추워요. 제 친구는 ㅇㅇ에서 왔는데(못 알아들은 지명) 거긴 영하 30도거든요!

나 : 아, 저 옛날에 여기 살았었는데 그때 한번 영하 30도 내려갔었어요. 뜨람바이 타고 가다 엔진 얼어서 내린 적 있어요.

 

우리는 웃었다.

 

계산을 한 후 나오면서 코트를 찾자 데니스는 오해를 하고 화장실을 가르쳐 주었다. 아니요, 코트요~ 하니까 자기도 잊었다면서 웃으며 코트를 가져다 주었다. 아마 내가 외국인이라 그도 살짝 긴장했던 듯 ㅋ

 

나 : 이 카페가 너무 우유뜨나하고 예뻐요. (우유뜨나는 아늑하고 따스하다는 뜻의 노어이다) 정말 우연하게 찾았는데...

데니스 : 우리 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거의 다 그렇게 우연히 들어와요 :)

나 : 너무 좋았어요.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데니스 : 친구들 꼭 데려오세요~

 

이 날 길 잃고 헤매서 너무 힘들고 짜증났는데 맛있는 음식에 친절한 사람, 좋은 분위기 카페 덕에 기분이 완전히 전환되었다. 역시 맛있는 음식과 따스한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은 행복해진다.

 

.. 그래서 페테르부르크 떠나기 전날, 카페에 다시 갔다!

 

 

나 : 저 다시 왔어요.

데니스 : 다시 왔네요~ 물론이죠!!

 

 

 

 

 

이번엔 멋진 새 조각품이 있는 창가에 앉았다 :)

 

메뉴를 보고 이번에는 보르쉬와 생선 크넬리(우리 나라의 전과 좀 비슷한 음식) 주문.

 

 

음식 나오기 기다리면서 귀여운 램프 발견~

 

 

여기저기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다 :)

 

 

 

이번엔 티포트로 차 주문. 첨에 마셨던 차 한 잔은 50루블, 이렇게 포트로 나오는 건 100루블. 환율이 떨어져서 지금 100루블이면 약 1800원 정도이다.

 

 

보르쉬가 나왔다.

 

사실 우하 다시 먹고 싶었는데 이곳 음식이 맛있었으니 보르쉬도 먹어보고 싶어서. 다만 어떤 곳은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쓰기 때문에 물어봤더니 우리는 특이하게 오리고기를 써요~ 라는 대답. 신선한 허브와 스메타나가 같이 나왔다.

 

 

스메타나와 허브 얹어서 보르쉬를 먹었다.

보르쉬도 맛있었다. 내가 스메타나를 좀 많이 넣어서 내 입맛엔 살짝 짠 편이었지만 그것 빼곤 만족!

(그래도 역시 그 우하가 최고였다)

 

 

 

그리고 농어 크넬리가 나왔다. 아마 체코의 크네들리키랑 비슷한 요리가 아닐까 싶은데. 밀가루 반죽 같은 것으로 생선 완자를 감싸서 기름에 구워낸 요리이다. 아래에는 감자 팬케익이 깔려 있다. 이게 양이 상당히 많았다. 맛은 좋았는데 양이 많아서 팬케익은 좀 남겼다. 소스도 그렇지만 감자 팬케익 반죽에는 마늘과 고추가 들어가 살짝 매콤하고 톡 쏘는 맛이 났다. 술을 부르는 맛!!! (하지만 난 차를 마셨지..)

 

맛있게 먹은 후..

 

나오기 전에 데니스와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카페 여기저기에 17-19 라는 메모가 붙어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묻자 이 카페가 예전에는 17-19라는 이름으로 다른 곳에 있다가 작년에 이쪽으로 이사오면서 이름이 바뀌었다고 했다.

 

나 : 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요. 오늘이 삐쩨르(페테르부르크의 애칭) 마지막 날이라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왔어요 :)

데니스 : 영광이에요! 다시 오실 거죠?

나 : 네, 언젠가는. 백야 때 오고 싶은데 아직은 희망사항이에요 :)

데니스 : 꼭 백야 때 오세요!

나 :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데 사진 찍어도 돼요?

데니스 : 그럼요! 우리 약속해요. 백야 때 당신은 친구들을 한 패거리(ㅋㅋ) 데리고 오고 전 차와 커피를 서비스로 드리겠어요~!!

나 : 약속한 거예요 :)

 

그래서 데니스 사진을 두 장 찍었다. 카페 명함도 받았다. 주소와 사이트, 인스타그램 주소 등이 적혀 있었다. 데니스가 자기 이름도 써 주었다. 나도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페이스북 대신 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었다.

 

나 : 근데 제 블로그는 한국어로 되어 있어요 ㅎㅎ

데니스 : 괜찮아요, 이 참에 외국어 공부 좀 하죠. 공부는 좋은 거예요 ㅋㅋ

 

그리하여 우리는 행복하게 웃었고, 나는 그의 따스한 환송 인사를 받으며 카페를 나왔다. 그리하여 나의 페테르부르크 마지막 날은 행복한 하루가 되었다.

 

그럼 우리의 훈남 청년 데니스(Denys) 사진 두 장. 블로그에 올려도 된다고 허락받음 :)

노어로는 '제니스'에 가깝게 발음된다.

 

 

 

정말 친절한 청년이고 미소가 해사했다. 데니스 덕분에 이 카페가 더욱 더 두셰브나야 꾸흐냐가 된 것 같았다 :)

 

그러니 혹시라도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가실 분들은, 시간을 내서 이 카페 'Душевная кухня' (두셰브나야 꾸흐냐)에 꼭 한번 가보세요. 영어 메뉴판도 있음! 그리고 문이 무거워도 겁먹지 마시고 세게 밀고 들어가세요. 혼자 가셔도 겁낼 필요 없어요. 친절한 데니스가 있으니까요.

 

이 카페 지도를 올리고 싶은데 내가 구글 맵 첨부하는 방법을 모르는 컴맹이라.. 카페 사이트 주소들을 아래 첨부한다. 노어 아시는 분들은 아래 주소를 보세요.

 

'Душевная кухня' (Dushevnaya kukhnya)

ШВЕДСКИЙ ПЕРЕУЛОК, 2
(между Малой и Большой Конюшенными, метро «Невский проспект»

전화번호 : 8 911 009 55 48


<인터넷 주소들>

http://17-19.ru/

http://vk.com/club17188019

instagram soul.kitchen

혹은 페이스북에서 'Душевная кухня бывшее 17-19'를 검색해도 나온다. 근데 이게 다 노어로 되어 있다는 함정이 있네..

 

백야 시즌에 꼭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마웠어요 데니스!

 

Спасибо, Денис!

 

** 이 카페 처음 갔던 날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09

** 치즈홍차님 요청으로 크림 넣은 핀란드식 우하 레시피 찾아내 번역해 올림 : http://tveye.tistory.com/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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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