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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목요일 아침. 집중도 잘 안 되고 어쩐지 으슬으슬하다.

심리적 비타민 공급을 위해 마린스키 무용수 사진 몇 장 + 슈클랴로프 사진 몇 장

 

먼저 디아나 비슈네바

5월에 마린스키에서 ‘20’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갈라 무대를 갖는다. 숫자도 그렇고 이 사람 연차를 생각해보니 아마 마린스키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것 같다. 신데렐라 2막을 비롯 모던 발레들을 올린다. 신데렐라는 콘스탄틴 즈베레프와 추고, 그 외에도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등 스타들이 나온다.

 

 

 

그리고 지난 겨울에 미국 투어 간다고 마린스키 앞에서 공항행 버스 타러 가는 무용수 사진 두 장. 위는 알렉세이 튜튠닉,아래는 안드레이 예르마코프. 사진은 둘 다 Svetlana Avvakum.

 

튜튠닉은 아직 연차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짐 들고 분주해 보인다. 이에 비해 관록 넘치는 예르마코프 :) 2월에 갔을 때 이 사람과 로파트키나가 춘 안나 카레니나 봤는데 나름대로 멋진 브론스키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사심 넘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들.

 

 

 

백조의 호수. 알리나 소모바와 함께.

허벅지에 오데트 올려놓기~ (잘한다~ 짝짝짝~)

 

 

 

작년 댄스 오픈 페스티벌 때 흑조 2인무.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사진은 Katya Kravtsova.

 

 

이건 마린스키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사진.

웨인 맥그리거의 인프라 추는 중. 상대는 옥사나 스코릭.

이 작품은 음악도 좋고 무용도 좋았다. 그리고 심리적인 흐름이나 짜임새도 좋은 작품이었다. 슈클랴로프의 솔로, 소모바의 솔로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이건 젊은이와 죽음 리허설 사진. 간명한 포즈 사진 한 장이지만 전신에 넘쳐흐르는 긴장감과 격렬한 표정, 이 모든 것이 금방이라도 시위에서 날아갈 듯한 화살처럼 느껴진다.

사진은 Alex Gouliaev.

 

 

마지막으로 라 바야데르 3막. 니키야를 잃고 괴로워하다 아편을 피우며 환각에 빠져드는 솔로르.

이건 내가 영상에서 캡처했다 :)

이 영상 촬영이 있었을 때 마린스키에서 무대를 봤는데, 아편 피우고 흐느적거리며 괴로워하는 연기를 하는 이 사람이야말로 미의 결정체였다!! 그래서 넋놓고 바라봄... (그러다 료샤에게 또 쿠사리 먹음 ㅜㅜ)

 

:
Posted by liontamer

 

실비아 (2014.4.3 마린스키 극장. 초연)

 

 

 

 

음악 : 레오 들뢰브

안무 : 프레드릭 애쉬톤

재안무 : 크리스토퍼 뉴턴

무대 배경 및 의상 : 크리스토퍼 아이언사이드, 로빈 아이언사이드

조명 : 마크 조나단

 

캐스트

실비아 :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아민타 :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오리온 : 유리 스메칼로프

에로스 : 알렉세이 튜튠닉

디아나 : 타치야나 트카첸코

노예들 : 안드레이 아르세니예프, 올레그 뎀첸코

 

 

1. 이 발레의 간단한 리브레토

 

1막

 

판과 님프들이 뛰노는 신성한 숲. 디아나 여신의 님프 중 하나인 매력적인 실비아에게 반한 순박한 목동 청년 아민타는 에로스 신전에 와서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이후 그는 님프들과 실비아가 춤추는 것을 신전 기둥 뒤에 숨어 바라본다.

 

그러나 아민타의 망토를 발견한 님프들이 수색 끝에 그를 찾아낸다. 아민타는 실비아에게 열렬히 사랑을 고백하지만 디아나의 님프인 그녀는 그를 무시하고 하잘것 없는 사랑을 부추기는 에로스를 마구 욕하며 신상을 조롱한다. 그리고 애원하는 아민타의 심장에 활을 쏴 쓰러뜨린다. 신상처럼 서 있었던 것은 사실 진짜 에로스 신이었고 그는 그 대가로 실비아의 가슴에 사랑의 화살을 쏜다.

 

실비아는 화살을 뽑아내지만 멀쩡한 것을 깨닫고 좋아하며 님프들과 퇴장한다. 지나가던 오리온은 실비아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잠시 후 에로스의 화살 탓에 사랑에 빠져버린 실비아가 등장, 아민타의 시체를 안고 슬퍼하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이때 오리온이 나타나 그녀를 납치한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나와 아민타의 시체를 발견하고 슬픔에 빠지지만 수상쩍은 망토를 뒤집어쓴 인물이 나타나 그를 살려낸다. 그 인물은 바로 에로스 신이었다. 에로스는 아민타에게 오리온이 실비아를 납치해갔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의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에로스 신에게 경배한다.

 

2막

 

오리온의 주거지로 잡혀온 실비아. 호화스러운 옷가지와 보석 등으로 아무리 꼬드겨도 실비아가 넘어오지 않자 오리온은 화가 난다. 그녀가 신주단지처럼 꼭 껴안고 있는 에로스의 화살을 빼앗기까지 한다.

 

실비아는 묘안을 짜내 갑자기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교태를 부리기 시작하여 오리온의 혼을 쏙 빼놓고는 그와 노예들에게 술을 잔뜩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들고 화살을 되찾는다.

 

도망치려고 하지만 출구를 찾을 수 없어 절망하는 실비아의 앞에 에로스 신이 나타난다. 그는 실비아에게 디아나 신전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아민타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여주고 아름다운 배에 그녀를 태워 떠난다.

 

3막

 

디아나의 신전 앞. 다들 디오니소스 축제를 벌이고 있지만 목동 아민타는 애타게 실비아를 그리워한다. 이때 바닷가에 아름다운 배가 한 척 들어오고 거기서 에로스와 실비아가 나타난다. 재회한 연인들은 사랑을 확인한다. 곧 축제와 함께 연인들은 사랑의 춤을 추지만 오리온이 나타나 다시 실비아를 납치하려고 한다. 그녀는 신전 안에 숨고 오리온은 아민타를 밀어붙인 후 신전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때 디아나 여신이 나타나 오리온을 죽인다.

 

여신의 분노는 금지된 사랑을 나눈 실비아와 아민타 커플에게 향하지만 이때 에로스가 나타나 오랜 옛날 디아나가 목동 엔디미온에게 반했던 순간을 환상으로 보여주고 그녀는 옛 추억에 감화되어 연인들을 용서하고 축복한다.

 

 

 

 

2. 공연 보러 가기 전. 로열발레단 영상 감상 후

 

리브레토를 줄줄이 늘어놓은 이유는 내 기억으로 이 발레가 국내에서 공연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어서. 사실 나도 슈클랴로프가 초연에 나온다는 얘길 듣고서야 영상으로 찾아봤다. 로열발레단, 다아시 버셀과 로베르토 볼레 버전인데 유튜브에 올라와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고전 발레인데다 애쉬튼의 안무나 해석도 딱 그런 식이다. 리브레토도 간단하고 춤도 그렇게 많지 않다. 3막까지 있지만 실지로 전체 공연 분량은 90분도 안 될 것 같다.

 

영상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런 거였다.

 

1. 아... 지루하다. 춤도 너무 적다.

 

2. 저 아민타란 놈은 대체 뭐냐... 자기 힘으로 하는 건 하나도 없고 심지어 춤도 별로 없네 ㅠㅠ 로베르토 볼레의 섹시함으로 커버하는 거네 ㅠㅠ

 

3. 제일 중요한 여주인공 실비아가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쟤한테 정이 안 가네... 물론 다아시 버셀이야 예쁘고 춤도 잘 추고 연기도 잘한다만..

 

4. 발레가 춤도 리브레토도 등장인물들도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이라 재미가 없다. 역시 이렇게 반듯한 고전은 내 취향이 아니었어.

 

5. 4와 비슷한 이유로... 프레드릭 애쉬튼도 정통 영국식도 취향에 안 맞았지... 역시 난 드라마틱한 게 좋다고!

 

6. 왜 하필 발로쟈 너는 내가 가는 일정에선 이거 하나 밖에 안 나오는 거냐 ㅠㅠ

 

(.. 나중에 실제로 공연을 보고 나서는 춤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그 얘긴 아래)

 

 

3. 공연 보러 가서, 키가 크지 않은 인간의 슬픔

 

드디어 4월 3일이 되었다. 이날은 마린스키 국제 발레 페스티벌 개막일이었고 실비아는 마린스키에서는 초연이었다. 페스티벌 개막작이자 초연작이니 극장에서도 열심히 홍보를 했고 관객들도 관심이 많았다. 주역은 마린스키 수석무용수들인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였다. 슈클랴로프야 시즌 개막이나 이런 페스티벌 개막이면 보통 주역으로 나오는 인물이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다른 게 개막작이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 그러니까 이날은 작품에 대해 아무런 기대감 없이 그저 슈클랴로프 얼굴이나 가까이서 보자 하고 간 거다.

 

 

 

자리는 좋았다. 파르테르 5째 줄 13번으로 정가운데 앞자리였다. 원래 공연 전체를 보려면 2층 맨 앞줄 가운데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무용수를 가까이서 보고 싶을 땐 그래도 1층 파르테르 앞자리가 좋긴 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으니.. 이곳은 마린스키 구 극장. 계단식 좌석이 아니라 평면에 주욱 늘어선 의자들 때문에 앞에 덩치 큰 사람이나 머리 큰 사람이 앉으면 진짜 재앙이다. 러시아야 분명히 야구공만한 머리에 기다란 비율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쌔고 쌨지만 이상하게도 극장에만 오면, 특히 내 앞에 앉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덩치가 크거나 머리가 크거나, 머리는 작지만 거대하게 부풀린 곱슬머리 헤어스타일을 장착한 경우가 거의 90%였다. 이것도 무슨 법칙이 있나보다. 그래서 옛날부터 마린스키 갈 때마다 외던 주문이 있었으니.. "발샤야 갈라바가 제발 오지 않게 해주세요 ㅜㅜ" (발샤야 갈라바 : 큰 머리 ㅠㅠ)

 

 

1층 파르테르 앞줄... 바로 앞 오케스트라 핏...

이래서 앞줄에 앉으면 무대가 가깝긴 하지만 심지어 지휘자 머리 때문에 또 무대가 가려지기도! 

 

 좌석이 이렇게 일렬 평면으로 늘어서 있다..

 

 

발샤야 갈라바가 앞에 앉으면 무대가 두 동강나 보이는 바로 그런 자리 ㅜㅜ

 

정말이지 이날도 들어가면서 유아용 시트라도 가져와 깔고 앉고픈 마음이 굴뚝이었다. 전날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라 바야데르 보면서도 파르테르 끝열 앉았다가 무대 바닥이 안 보였던 게 생각나서 이날은 책을 두 권 챙겨갔다. 주섬주섬 책을 꺼내 스카프로 싸서 깔고 앉는 나를 보고 동행한 친구는 기절초풍...

 

친구 : 야, 뭐하는 거야! 아기냐?

 

나 : 너는 호빗의 괴로움을 모른다. 바로 너 같은 인간이 앞에 앉는 순간 무대가 안 보인단 말이야! 앞에 발샤야 갈라바가 앉으면 나 정말 하나도 안 보여... 기껏 슈클랴로프 얼굴 볼라고 이렇게 앞자리 끊었는데 안 보이면 어떻게 해 ㅜㅜ

 

친구 : 뭣이, 너 지금 내 머리가 크다는 것이냐! 발샤야 갈라바라니!

 

나 : 너는 왜 본론은 무시하고 쓰잘데없는 말에 집중하는 거야.

 

친구 : 나는 머리 안 커. 키가 클 뿐이야.

 

나 : 어쨌든 둘 다 똑같아. 키 크든 머리 크든 앞을 가린다고... 빨리 기도해라, 내 앞에 머리 큰 사람 안 오게 ㅜㅜ

 

.. 그러나 역시 내 앞에는 덩치 큰 아주머니가 앉고 말았다. 게다가 곱슬곱슬하게 부풀린 거대한 파마머리 콤보였다. 그리하여 책 두 권을 깔고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은 완전히 가려져서 가운데가 안 보였다. 무대가 두 동강나 보였다 ㅜㅜ 결국 공연 보는 내내 양쪽으로 고개를 왔다갔다 하고 봐야 했다... 이게 뭐냐. 비싼 자리도 다 소용없다. 그나마 책 두 권이라도 있었으니 망정이지... 막간에 책을 빼냈더니 진짜 아무 것도 안 보일 지경...

 

친구가 불쌍하다고 자리를 바꿔주려고 했지만 걔 앞에는 더 덩치 큰 곰같은 아저씨가 앉아서 더 안 보였다. 두번째 막간에는 결국 친구가 스카프로 책 싸는 걸 도와주면서 이랬다.

 

친구 : 너 진짜 눈물겹다... 엉덩이 배기지 않냐? 허리 부러지겠다.

 

나 : 시끄러워 ㅠㅠ 유아용 시트 좀 얻어와 ㅠㅠ

 

친구 : 무릎에라도 앉혀주고 싶구나 ㅠㅠ

 

나 : (혹함) 그래도 되니?

 

친구 : 기생오라비 같은 무용수 얼굴 보겠다고 친구의 무릎을 작살낼 생각이냐?

 

나 : 작살이라니... 너무하잖아 ㅠ 좀 많이 저리긴 하겠지. 그렇지만 물리적으로 계산한다면 80kg 이상의 체중을 가진 인간의 무릎이 날 앉혔다고 작살나지는 않을 거야.

 

친구 : 나의 80kg는 대부분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지, 누구와는 다르지~

 

나 : 시끄러. 시작한다!

 

그리하여 결국 계속 발샤야 갈라바에 막혀가며 공연을 봤고 가장 혹했던 수단인 친구 무릎 좌석 활용은 당연히 불가능... 아, 마린스키... 여전히 구 극장이 신관보다 더 좋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여전히 괴롭다...

 

 

4. 긴 서론에 이어, 이제야 본론. 마린스키 실비아 초연. 간단한 리뷰

 

 

극장은 만원이었다. 마린스키 국제 발레 페스티벌 개막작이기도 했고 초연이었기 때문이다.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선보이는 프리미어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오랜만에 진짜 고전 발레를 프리미어로 들고 나왔기 때문인지 사람들도 꽤 관심을 보였다.

 

막간에는 파르테르와 베누아르 좌석 출입구인 1층의 좁은 복도에서 마린스키 발레단 디렉터인 유리 파테예프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친구랑 초콜릿빵 까먹으면서 인터뷰하는 걸 잠시 구경했다. 애쉬튼의 안무, 들뢰브의 음악, 작품의 의미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데 좀 잘 들어보려고 했지만 그때 친구가 마린스키 샵에서 슈클랴로프 엽서를 발견했다고 끌고 가는 바람에 당연히 거기 갔음(ㅜㅜ)

 

인터뷰 중인 유리 파테예프. 가려져서 얼굴의 일부만 보임. 영상으로 봤을 때와 얼굴 똑같음.

 

 

리브레토에 대해서야 1번에서 전부 얘기했으니 그냥 간단한 감상만...

 

로열발레단 영상 후기도 위에 썼지만, 이 작품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워낙 기대를 하지 않고 갔기 때문인지 오히려 생각보다 재미있게 봤다. 아무래도 초연이다 보니 군무나 솔리스트들이 좀 긴장한 기색을 보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신경 쓴 티가 났다. 돈도 많이 들인 것 같고 준비도 많이 한 것 같았다. 영국에서 그대로 가져와 제작했는지 무대 배경이나 의상, 디자인부터 시작해 안무도 그렇고 기존 버전과 크게 다른 구석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오랜만에 이런 고전 발레를 보니 신선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백조의 호수나 지젤, 잠자는 미녀 등등도 클래식이긴 하지만 워낙 여러 버전들이 있고 무대 미술이나 조명도 많이 세련된 스타일로 바뀌어서 그런지 손으로 그린 파스텔톤의 아기자기한 배경들을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묘했다.

 

들뢰브의 음악이 좋았다. 이것도 영상으로 볼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역시 어두컴컴한 마린스키 극장 안을 가득 채우고 울려퍼지는 오케스트라 선율에는 뭔가 마법적인 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리브레토와 화려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은 춤 때문에 기대를 안 했기 때문인지 의외로 볼 만한 춤도 조금 있었다.

 

영상으로 볼 때는 그런 생각 안 했는데 실지로 무대에서 보니 의외로 상당히 까다로운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자주 올라오는 레퍼토리들과는 스텝이나 동작들이 많이 달랐다. 특히 주역인 실비아의 스텝과 동작들이 어려웠다.

 

빅토리야 테료쉬키나는 씩씩하게 잘 췄다. 원래 잘 추는 무용수라 괜찮기는 했는데 어쩐지 저런 실비아라면 굳이 에로스가 구해 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 헤쳐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씩씩했다 :) 이 사람은 외모도 그렇고 춤추는 스타일도 그렇고 가뜩이나 슈클랴로프랑 둘이 있으면 기 센 누나와 귀여운 연하 애인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 레퍼토리에서는 게다가 슈클랴로프가 맡은 목동 아민타가 원체 비실비실해서 더 그런 느낌이었다 :0

 

나중에 테료쉬키나 인터뷰를 보니 역시 실비아 동작들이 어려웠다고 한다. 내 개인적 감상은... 테료쉬키나가 잘 추고 못 추고를 떠나서 실비아의 춤은 기교 넘치는 동작들의 연속이긴 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기교 = 아름다움은 아니니까.

 

 

 

 

이건 슈클랴로프의 아민타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은 혼자 추는 게 별로 없긴 하지만.. 그 얘긴 나중에 하고...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의 아다지오가 상당히 까다로워서 좀 놀랐다. 일반적인 고전 발레 아다지오들은 물 흐르듯 유연하고 부드럽게 전개되고 감정적 고조를 중시하는데 실비아의 아다지오는 성격이 달랐다. 분절적 동작들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남자 무용수가 파트너를 계속해서 들어올렸다 내려놓는 자잘한 동작들이 변형되어 이어졌다.

 

슈클랴로프야 잘 추는 무용수이긴 하지만 파트너를 지지해주는 데 있어서는 A급이라고 하긴 어려운 사람이라.. 사실 보면서 좀 조마조마했다. 살짝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얘가 작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워낙 동작이 까다롭고 처음 춰보는 거라 그런 건가 싶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실수를 한 건 아니다. 아다지오는 끝까지 잘 췄다. 그냥 내가 보는 내내 조마조마했을 뿐이다. '아, 왜 자꾸 들었다 놨다 하는 거니, 애 허리 빠지겠다.. 애쉬튼, 당신 새디스트였던 거요?'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 운동량이나 순간 투여되는 에너지, 격렬함 등이야 물론 요즘 거의 체조 수준으로 전개되는 무용들 쪽이 더 크겠지만 실비아의 아다지오는 생각보다 무척 힘들었을 것 같았다. 성격이나 스타일은 다르지만, 약간 잠자는 미녀에서 로즈 아다지오 볼 때랑 느낌이 비슷했다. 별로 재미는 없지만 보는 내내 '아, 저거 참 추기 까다롭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도 그렇고...

 

나중에 슈클랴로프 인터뷰도 읽었다. 역시 파트너 지지하는 동작들이 무척 어려웠다고 밝혔다. 기존에 춰 보지 않은 동작들이 많았고 상당히 까다로웠다고 했다. 발레에 대해서야 그저 보는 걸 좋아하기만 하는 내 눈에도 까다로워 보였으니 추는 애들은 더 그랬을지도.. 그리고 단순하고 천진한 목동 역이었지만 애쉬튼 안무였고 무엇보다도 테료쉬키나와 췄기 때문에 만족한다고 했다. (..근데 내가 보기엔 넌 이 프리미어 주역보다 나중에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그 단막발레 카메라 옵스쿠라에서 춘 역이 더 좋았어. 콧수염 달고 안 예쁘고 찌질하게 나오긴 했지만^^;)

 

 

뭐라고요? 내가 이렇게 예쁜데 안 이쁘고 찌질하게 나온다는 말을 하다니!

 

 

이 발레는 아무리 봐도 남자 주인공이 아민타라지만 이놈보다는 악당 오리온과 문제해결사 에로스가 훨씬 돋보인다. 심지어 등장씬도 더 많은 것 같다!

 

 

알렉세이 튜튠닉은 코믹한 에로스 역을 꽤 잘 소화했다. 영상으로 볼 때도 그렇고 무대로 볼 때도 화살 쏘는 게 좀 서커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로스가 실비아에게 활 쏠 때 잘 봐야지 싶었지만 문제의 발샤야 갈라바가 가리고 있어 활 날아가는 걸 제대로 못 봤다 ㅠㅠ

 

(사진의 조각상 분장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에로스 역의 튜튠닉.

이 발레는 사전에 내용을 모르고 보면 1막에서 갑자기 저 조각상이 활 쏠 때 깜짝 놀랄 수도...

사진에서는 에로스의 정체가 드러나 다들 경배하고 있음. 서 있는 애가 슈클랴로프의 아민타. 사랑하는 실비아를 구해주세요~ 하고 있음. 출처는 사진에 워터마크로 찍혀 있음)

 

그리고 유리 스메칼로프. 이 사람은 언제나처럼 좋다. 키도 크고 체격도 단단한데다 외모 자체가 강렬하고 에이프만 발레단에서 다져진 훌륭한 기본기와 표현력이 강점이다. 오리온 역에 잘 어울렸다. 오히려 1막보다 실비아랑 오리온만 나오는 2막이 더 재미있었으니 말 다 했다... 곱사등이 망아지에서 시종장으로 안 나온 게 아쉬웠지만 여기서 화려한 옷 입은 오리온으로 등장해줘서 반가웠다. 그리고.. 이 사람은 키가 크기 때문에 발샤야 갈라바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꽤 잘 보였다 ㅜㅜ (발로쟈 너도 저 사람만큼 키가 컸다면 얼마나 좋았겠니 흐흑)

 

디아나 역의 트카첸코는 춤이랄 게 거의 없었다. 원체 이 발레 리브레토 자체가 마지막에 나타나는 디아나는 좀 '잉?' 하는 느낌이라... 아쉽긴 했다.

 

그 외 님프들과 판 등의 춤들이 좀 있었는데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이유는.. 이들의 춤은 주로 1막에 나왔는데 그 때 나는 화살 맞고 무대에 쓰러져 있는 슈클랴로프 보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ㅠㅠ

 

발레 자체는 실비아, 즉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원맨쇼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추가한다면 오리온의 남성적인 춤 + 에로스의 코믹 연기... 그리고 더하기 얼굴만 예쁘지 자기가 하는 건 하나도 없는, 그냥 사랑에 빠진 어린 목동 아민타. 끝. 로열발레단 영상 보면서 내가 아민타에 대해 느꼈던 인상은 역시 변함이 없는 거였다. 이 배역은 그저 얼굴 마담! 거기선 로베르토 볼레가 섹시함으로 커버했다면 여기서는 슈클랴로프가 미모로 커버하고 있는 거였다!

 

 

5.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어쨌든 슈클랴로프 보러 간 거니까 이 사람에 대한 지극히 팬심 가득한 메모 몇 개.

 

정말이지 너무하다. 명색이 남자 주인공인데 너무 조금 나오는 거 아닌가 ㅜ.ㅜ

 

가까운 곳에서 봐서 좋긴 했다. 1막에서 등장할 때도 그렇고. 이 사람은 외모 탓인지 애초에 가지고 있는 밝은 아우라 때문인지 모르곘지만 키도 크지 않고 당당한 체격도 아닌데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이면 시선을 확 사로잡는 능력이 있다. 그게 꼭 외모가 준수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사람보다 잘생긴 무용수들도 많고 더 탁월한 신체 조건을 가진 무용수들도 많기 때문이다. 배우도 그렇지만 발레 무용수들에게도 그런 매력은 아주 큰 힘이다. 관객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없다면 정말 높이 올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무용수들의 그런 매력이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해 왔는데 하나는 빛, 하나는 어둠이다. 슈클랴로프는 전자에 가깝다. 무대에 올라오는 순간 주변이 밝아지는 스타일이다. 물론 이 사람은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연기도 잘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환한 등불을 켜주는 타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에이프만 발레에서 이고리 마르코프의 춤을 볼 때는 후자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쓰는 글의 주인공도 후자에 가까운 인물이고 나 자신의 본성도 그쪽에 더 가깝긴 하지만 실은 빛이 더 어렵다. 그래서 슈클랴로프처럼 무대 위에서 천성적인 기쁨과 빛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을 보면 무척 끌린다.

 

어쨌든. 그건 좀 의미론적인 얘기고. 이제 팬심으로 돌아와서...

 

1막 내내 이 사람은 거의 누워 있기만 하는데 그래도 조금씩 자세를 바꿔가며 똑바로 누웠다 옆으로 누웠다 신상 뒤로 가서 웅크렸다 엎드렸다 여러 가지로 노력한다(ㅜ.ㅜ) 그러나 그의 누워 있는 자태가 너무나 섹시하였기에 이때 췄던 다른 무용수들의 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음. 반듯하고 예쁘장한 외모에 목동 튜닉 차림이라 작고 탄탄한 조각상 같았다. 키 안 크고 8등신이 아니면 어때, 저것은 이미 잠자는 미녀 남성판 :)

 

 

 누나, 제발 내 사랑을 받아줘요 ㅠㅠ

 

아야 ㅜㅜ 난 이렇게 이쁜데 왜 화살로 쏘는 걸까 ㅠㅠ

 

 

화살로 쏴죽여 놓고 뒤늦게 슬퍼하는 실비아 -_-

(자세히 보니 애가 이뻐서 뒤늦게 후회. 어머 내가 굴러들어온 복을 놓쳤네 ㅠㅠ)

 

 

2막에서는 등장도 안 하니 지나가고.. 3막.

 

1막에서야 '제발 내 사랑을 받아주오~' 하고 계속 애원만 하고 결국 화살 맞고 나뒹구느라 애절하게 울상만 짓고 있었지만 3막에서는 사랑을 이뤘기 때문에 마냥 행복해서 그런지 시종일관 빵끗빵끗 웃어서 보기 좋았다.

 

이 무대에서 이 사람이 보여준 장점은 이런 거였다. 환하고 자연스럽게 잘 웃는 것 + 페테르부르크 아카데미 특유의 깨끗한 라인과 포즈 + 몸의 탄성. 이 사람이야 원래 높이 잘 뛰는 걸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 무대도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탄성이 좋았다. 이게 무게 없이 우아하고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과는 좀 다르다. 난 무중력처럼 가볍게 부유하는 댄서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사람의 탄력은 가까이서 실제로 보면 꽤 매력적이다.

 

3막이 좋았던 이유는 이 사람이 드디어 제대로 된 춤을 췄기 때문이다... 아다지오가 까다로웠다고 앞에서 얘기했는데 사실 여성 무용수고 남성 무용수고 이들의 솔로들도 까다로웠다. 실비아의 솔로들이 겉보기에도 화려하고 좀 곡예 같은 동작들이 이어지는 스타일이라면 이 사람이 춘 아민타의 솔로는 좀 달랐다. 보통 파이널 2인무에서 남자 무용수는 화려하고 큰 동작들을 연이어 보여준다. 그랑 주테, 점프, 피루엣 등등등.. 그러나 아민타의 솔로는 상당히 절제되어 있고 동작 또한 작고 반듯반듯했다. 자잘한 카브리올을 비롯해 조그만 동작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나중에 어떤 기사에서 이 사람이 애쉬튼의 영국적 주인공을 추기엔 너무 솔직담백하고 열렬했다는 평을 읽긴 했지만 그래도 난 팬이라서 그런지 이 사람이 보여준 솔로는 마음에 들었다. 작은 동작들을 탁탁 끊으면서 적재적소에 포즈를 박아넣는 게 근사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무대 위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를 올려놓고 저런 작은 점프 밖에 안 주다니 될 말이냐..' 라고 외치고 있었다(ㅜ.ㅜ)

 

 

6. 커튼 콜 + 친구와의 대화

 

 

발레는 1시간 30분도 안 되는 길이였지만 3막까지 있어 10시 좀 안돼서 끝났다. 냉정한 페테르부르크 관객들이지만 이 공연에서는 브라보가 많이 나왔다. 테료쉬키나야 당연히 많이 받았고, 슈클랴로프는 춤이 너무 적어서 브라보까지 많이 받겠느냐 싶었지만 상당히 많이 받았다. 의외로 전자는 여자 함성, 후자는 남자 함성이 더 많았다. 으잉?

 

원체 페테르부르크 관객들이 보수적인 편이고 문화예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긴 한데 오랜만에 진짜 고전발레를 제작해 초연으로 보여줘서 기뻤던 것 같다. 다녀온 관객들 평도 대부분 좋았다.

 

 

 

커튼 콜 사진들은 다음 포스팅에 따로...

 

 

커튼 콜 후 주역 무용수들이 커튼 앞으로 나와서 인사를 했다. 그리하여 나는 파르테르 앞자리임을 적극 활용, 잽싸게 달려나가 오케스트라 핏 바로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그의 미모를 가까이서 보며 행복에 잠김.

 

이때 내 친구는 매우 툴툴거림.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 운운, 나이 값좀 하라는 둥, 쟤가 뭐가 잘생겼냐 내가 훨 잘생겼다는 둥, 저런 스타일은 바람둥이라는 둥... 그게 나랑 대체 무슨 상관인지 -_-

 

급기야...

 

친구 : 야! 나 앞으로는 쟤 나오는 거 같이 보러 가자고 절대 안 할 거야 -_-

 

나 : (아무 것도 안 들림) 아 이뿌다~

 

친구 : 야! 좀 창피하단 말이야, 나만 내버려두고 오케스트라 핏 앞으로 가서 그렇게 사진 찍고... 별로 멋있지도 않고만.. 춤도 조금밖에 안 추고...

 

나 : 쟨 정말 이쁜 것 같아. 얼굴에서 광채가 나~

 

 

서로 좀 진정된 후.. 귀가하면서.

 

 

친구 : 야, 근데 그 나쁜 놈으로 나온 애 있잖아.

(친구는 발레에 별 관심이 없어서 나쁜 놈, 주인공, 예쁜 여자..로 구분함 ㅠㅠ)

 

나 : 유리 스메칼로프? 나 그 사람 옛날부터 좋아했었어. 잘 추지.

 

친구 : 나 좀 닮은 거 같지 않냐?

 

나 : 아니, 전혀. 안 닮았는데. 그 사람 엄청 샤프하게 생겼어.

 

친구 : 키도 크고 풍채도 좋고 잘생긴게 나 닮은 거 같아.

 

나 : 키랑 체격은 좀 닮았지만 그 사람은 꽤 근육질에 샤프하고 섹시한데..

 

친구 : 그러니까 나 닮은 것 같아.

 

나 : 너 전에는 미하일로프스키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보고 이반 자이체프랑 너랑 닮은 것 같다며.

 

친구 : 응?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그래, 작년에 본 그 사람. 음, 그 사람도...

 

나 : 뭔 소리야. 이반 자이체프랑 유리 스메칼로프는 생긴 게 완전히 다른데.. 스타일도 다르고. 어떻게 그 두 사람을 동시에 닮았다고 하냐. 둘 다 안 닮았음!

 

친구 : 너는 외국인이라서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

 

나 : 아니야! 난 심미안이 뛰어나! 이런 건 실수 안해!!

 

친구 : 너는 심미안이 뛰어난게 아니라 그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을 좋아하는 것 뿐이야~

 

나 : 슈클랴로프님을 한번만 더 모독했다간 운하에 처넣겠노라~

 

 

7. 사족

 

어쩌다 보니 발레 얘기보다 친구랑 티격태격한 얘기, 자리 얘기가 더 많은 것 같다만... 하여튼 사족 하나.

 

1막 끝나고 뒷자리 여자들의 대화. 발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는지 한 여자가 프로그램을 뒤적이면서 물었다.

 

여자 1 : 아민타가 누구야?

 

여자 2 : 목동. 

 

여자 1 : 아, 왕자. 걔였구나.

 

여자 2 : 그래, 왕자.


 

... 이게 남자 주인공이라서 관성적으로 왕자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그게 슈클랴로프라서 그런 건지 :0

근데 아무 짝에 힘 없고 쓸모 없는 목동치곤 너무 품위 있고 이뻐서 목동이라기보다 왕자 같긴 했다. 이것도 팬심인가...

 

... 리뷰가 너무 길어져서 이 공연 관련 사진과 화질 별로 안 좋지만 내가 찍은 커튼 콜 사진들, 그리고 영상 클립 몇 개는 다음 포스팅

 : http://tveye.tistory.com/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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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