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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 머물던 블라지미르 대로의 도스토예프스키 호텔에서 오늘 체크아웃하고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에 있는 호텔로 옮겼다. 아직 찻잔은 사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가방이 꽉 차고 무거운지 모르겠다 ㅠㅠ

 

이 호텔은 마린스키에서 도보로 15~20분쯤 거리에 있는데 네프스키 쪽이 아니고 약간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전자와 가격은 비슷하지만 훨씬 좋다. 그런데 여기는 오늘 하루만 묵고 내일은 또 옮긴다. 이것이 이렇게 된 이유는... 잊고 싶은 회사에서의 안좋은 일 후 갑자기 숙소를 잡고 날아오다보니 방이 없어서... 그리고는 또 며칠 후 다시 이 호텔로 옮겨와 며칠 잘 것이다. 이건 여기 와서 5일 정도 일정을 더 연장해서 그렇다. 이게 뭐야... 힘들고 돈들고... 이래저래 파산이지만 사실 그런 거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날아오지도 않았겠지..

 

여기도 전기 티포트는 없지만(이 동네는 보통 좋은 호텔에도 포트가 잘 없고 달라고 해야 준다) 엘리베이터 앞에 뜨거운 물 나오는 정수기가 있어서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디카페인 홍차 한잔 우려마셨다. 몸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카페인을 기피하는 중이라... 그래도 차 마시니 살것 같았다.

 

..

 

12시에 체크아웃한 후 굶주리고 어지러운 상태로 근처의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에 갔다. 오늘은 도네츠크 스타일의 생선수프를 시켰고(우하인데 이름이 빠흘료바 리브나야 도네츠카야 라고 되어 있어 뭐가 다르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이름만 다르다고 함), 닭고기 샤실릭을 시키려 했는데 오늘따라 참 친절했던 아저씨가(전에는 못보던 아저씨) 그 아래 있는 닭고기 요리 추천. 조금 더 싼데 매우 부드럽다고 해서 귀얇은 나는 또 받아들임.

 

근데.. 수프 나오기도 전에 아저씨가 또 방글방글 웃으며 예쁜 색깔의 주스 같은 걸 갖다주었다. 아저씨 말로는 시음해보라는 거였다. 자기네가 만든 거라고.. 비슈냐(이 동네 체리)로 만든 보드카라면서 '겨우!' 20도밖에 안된다고 했다. 첨에 나는 '2도'로 잘못 알아듣고 '아 가벼운 아페라티프구나~' 하면서 좋다고 고마워하며 한모금 살짝 마셨고..

 

 

끄아악!!! 빈속에 보드카! 40도는 아니지만 20도도 장난 아니야... 나 보드카 마시고 팔각정에 쓰러져 잤는데 ㅠㅠ 안돼애..

 

근데 가져다준 성의가 또 고마워서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수프랑 밥이 나왔을때 좀 마셨다. 3분의 1쯤 마셨나보다. 그 이상은 독해서 못 마시고 아저씨에게 무척 맛있으나 독해서 다는 못마셨다고 했다.

 

혼자 온 여자 손님에게 정오부터 보드카 마시라고 권해주시는 러시아~~ 이것이 러시아 ㅠㅠ

 

우하는 무척 맛있었다. 크림이 든 핀란드식 우하도 좋아하지만 나는 맑은 국물 우하를 더 좋아한다. 집에서도 몇번 끓여먹었는데 오늘 쉬녹에서 먹은 우하가 진짜 맛있어서 레시피를 좀 물어보고 싶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좋았다. 연어와 흰생선 등 3가지 생선, 감자가 들어간다. 보통 제대로 된 우하는 3가지 생선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나야 집에선 항상 연어 아님 대구로 끓이니 맛이 모자랄 수밖에 ㅠㅠ

 

 

우하는 참 맛있었는데 추천해준 메인 닭고기 요리는... 아아, 이것도 크림 소스였어... ㅠㅠ (요즘 자꾸 크림 소스 등 느끼한 음식을 먹게 되어 괴로워하고 있던 차였음) 맛은 훌륭했다. 양송이가 잔뜩 들어가 버섯 크림소스였고 좀 짭짤해서 덜 느끼했다. 비프 스트로가노프의 닭고기 버전과 비슷해서 맛있었는데 내겐 양이 많았고 좀 짰다. 그냥 샤실릭 먹었음 좋았을텐데...

 

 

접시 보고는 '엑, 오이랑 토마토 늘어놓은 거 봐... 역시 이 동넨 아직 플레이팅이 옛날이랑 똑같아...' 했지만... 결국 느끼해서 저 오이랑 토마토 다 집어먹었다 ㅋㅋ

 

..

 

보드카 마시고 배아파서 좀 고생한 후 서점에 가서 도블라토프의 짧은 에세이집 한권과 에코백 따위를 사고, 택시 불러달라고 한 시간까지 40분쯤 남아서 전에 두어번 갔던 호텔 옆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녹차와 에클레어를 먹었다. 그날인데다 속도 안좋으니 차마 홍차는 못마시고 연한 녹차를 마시고 입이 느끼하고 짜서 에클레어 먹었다. 맛있었다.

 

 

..

 

3시에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두번째 호텔인 이곳으로 왔다. 요금 많이 나왔다 -_- 분명히 바가지일 거야. 하지만 짐이 무겁기도 하고 다 귀찮아서 그냥 타고 왔다.

 

새 호텔은 첫번째 호텔보다 위치 빼고는 모든 면에서 더 좋았다. 이럴줄 알았음 첨부터 여기 잡았음 좋았을걸. 마린스키에서도 가깝고 ㅠㅠ 하지만 자본 적이 없는데다 위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예전부터 항상 위시리스트에만 올려놓고 자본 적이 없는 데였다.

 

3시 20분쯤 도착했는데 곧장 체크인하게 해주었다. 트렁크는 거의 풀지 않고 하룻밤 잘때 필요한 옷가지와 세면도구, 화장품 따위만 꺼냈다. 그리고는... 너무너무 졸렸다. 밤잠도 좀 설쳤고... 생각해보니 쉬녹에서 마신 보드카 탓인거 같은데 이제야 깨달음 ㅋㅋ

 

너무 졸려서 침대로 기어들어가 깜박 잠들었는데 4시 반쯤 료샤와 레냐가 왔다. 내가 몇호인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주긴 했는데 내가 거의 비몽사몽 몽유병 환자처럼 '어서 와...'라고 하자 료샤가 혀를 차며 '자라 자!' 하고 날 침대로 밀어넣었다. 레냐가 찡찡거리려고 하는데 료샤가 '쥬쥬 좀 자게 아빠랑 게임하자'라고 해주었다. 료샤는 이럴때 보면 참 착하다. 내가 졸릴 땐 방해하지 않는다.

(전에 료샤에게 '내가 잘 때 안 깨우고 자게 해줘서 고마워'라고 하자 그는 '우리 네바(그의 셰퍼드 ㅠㅠ)도 자는 거 방해하면 싫어해. 토끼도 마찬가지겠지!' 라고 대꾸했었음)

 

그래서 나는 한시간쯤 정신을 잃고 잤고 그동안 료샤랑 레냐는 옆침대인지 의자인지 하여튼 거기 앉아 폰으로 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거까진 참 고마운데 내가 깼을때 료샤가 내 폰으로 도촬한 사진을 보여줌 -_- 정신없이 잠든 토끼의 불쌍한 모습 ㅠㅠ 착하다는 거 취소!

 

내가 너무 피곤해하니 나가지 말고 방에서 놀자며 료샤가 근처 스시 가게에서 롤과 스시, 수프 따위를 테이크아웃해왔다. 내가 요즘 밥먹고 싶어하니까 나름대로 신경쓴 것이다. 그러나 이동네 스시나 롤이나 아시아 음식이 다 그모양이듯 뭔가 어설프고... 일부러 나 먹으라고 '김치 수프'를 사왔다고 했지만 그 김치 수프는 지난번 내가 쇼핑센터 식당에서 먹은 것과 똑같이 미소 국물에 계란과 고춧가루 좀 풀어놓고 김치가 전혀 없는 것이었음 ㅋㅋ 아주 맵다며 별이 세개나 붙어 있었지만 하나도 안 매웠고 짜기만 했다.

 

 

그래도 료샤는 내가 차가운 음식이나 날생선은 안먹는 걸 알기에 나름대로 따뜻하게 익힌 롤을 사옴. 내가 우나기 좋아하는 걸 알고는 우나기 롤을 달라고 했으나 알고보니 저 롤은 장어 소스만 썼을뿐 무슨 새우를 다져서 크림처럼 만들어 올려놓은 것으로 전혀 우나기가 아니었음. 김치 없는 김치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 롤... 뭐냐 ㅋㅋ

 

료샤랑 레냐는 요상망측한 롤과 스시를 맛있다고 먹고(아아 그거 맛있는 거 아니야 이것들아 이 불쌍한 것들아 ㅜㅜ) 나는 김치 없는 김치 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 롤을 먹었다. 그래도 쌀을 먹으니 좀 낫다.

 

앉아서 얘기하고 놀다가 레냐는 깜박 잠들었다. 료샤가 근처에 케익 사러 간 동안 난 이 메모를 남기고 있다. 근데 이 밤중에 케익 사오면 나는 어떡하지 ㅋㅋ

 

하여튼 친구야 고마워.

 

근데 쌕쌕거리며 잠자는 레냐 너무 귀엽다. 역시 내 약혼자야 >.<

 

:
Posted by liontamer

이곳에 도착한 후 가장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았고 하늘이 파랬다. 호텔 조식 먹으러 내려가기가 싫어서 한참 누워 있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날씨가 좋으니 네프스키 수도원에 가기로 했는데 일단 배가 고프니 아점으로 근처 식당에서 잘 먹고 가기로 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자고로드느이 대로가 나오는데 그 대로와 루빈슈테인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이 있다. 여기는 작년에 bravebird님이 가셨다가 맛있다고 추천해주셔서 나도 가봤는데 그때 무척 맛있게 먹었던 곳이다. 런치로 먹으면 가격도 저렴하다.

 

이번엔 런치에 내가 먹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제값 주고 보르쉬와 키예프식 치킨 커틀릿을 주문했다. 우크라이나 식당이니까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음식을 먹는다. 보르쉬도 여러 버전이라 돼지고기 없는 것으로 추천을 받아 오데사 스타일의 보르쉬를 주문. 쇠고기와 토마토, 감자, 비트, 파프리카 등이 들어 있었는데 무척 맛있었다. 빵껍질이 덮여 나오고 그 빵을 먹을 수 있다. 고골의 보르쉬가 좀더 진하고 크리미한 맛이라면 여기 보르쉬는 딱! 그 보르쉬 맛이었다. 키예프식 치킨 커틀릿 역시 자르는 순간 기름이 주루룩 흘러나오는 것이 진짜(ㅋㅋ) 키예프 커틀릿이었다. 그러나 별로 느끼하진 않았다. (기름진 거 못먹는 내 입에도 나쁘지 않았음)

 

 

 

 

 

 

 

..

 

따뜻한 보르쉬를 먹으니 땀이 좀 났다. 몸이 많이 힘든 상태인가보다. 그래선지 어제 수프 비노의 치킨 수프와 오늘 쉬녹의 보르쉬가 둘다 몸에 필요했던 것 같다.

 

먹은 후 생각보다 날이 더워서 다시 숙소로 갔다. 트렌치코트와 카디건을 벗고 후드재킷으로 바꿔입은 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수도원에 갔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은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난 언제나 날씨가 좋은 날, 햇볕이 따스한 날 이곳에 온다.

 

먼저 수도원 카페에 가서 얼그레이 티와 사과빵을 먹었다. 보통 여기 오면 수도원 모르스를 마시는데 오늘은 차를 안 마셔서... 사과빵은 여전히 담백하고 맛있었다. 전혀 달지 않았다. 지하 카페는 텅 비어 있었지만 잠시 후 러시아인들이 한둘씩 들어와 차와 빵을 먹고 나가곤 했다. 이 카페를 찾는 것은 거의 러시아인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정교 수도원에 있는 카페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곳에 올땐 정교 신자는 아니지만 잠시 기도를 한다.

 

 

소박한 카페이다. 내가 사랑하는 곳이다. 사진 찍으면 안되는데 마음 속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살짝 찍었다 ㅠㅠ

 

..

 

 

빵과 차로 몸을 데운 후 햇살 아래로 나왔다. 찬란한 오후였다. 하늘은 파랬고 햇살이 눈부셨다. 나는 스카프로 머리를 싸맸고 초를 네개 사서 수도원 내의 교회로 들어갔다. 러시아 정교 사원은 카톨릭이나 개신교 교회와는 많이 다르다. 벽에는 이콘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이콘 앞에는 초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머리를 스카프로 가린 여자들과 허리를 굽힌 남자들이 이콘과 이콘 사이를 오가며 절을 하고 성호를 긋고(카톨릭과는 순서가 다르다) 한쪽에서는 정교 신부가 예배를 보기도 한다. 신도들은 이콘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성호를 긋고 기도하고 이콘을 손으로 만지고 입을 맞추고 다시 성호를 긋고 인사를 한다. 초를 켠다.

 

나도 초를 켰다. 가족과 나를 위해. 우리 집은 개신교니까 엄밀히 말해서 정교 신자는 아니지만 성호도 그었다. 사실 진정한 신앙이 존재한다면 거기 차이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언제나 회의주의자인 내게 그런 믿음이 생기기를 바랬던 것 같다.

 

어두컴컴하고 화려하고 조용하고 촛불이 여기저기 총총 빛나고 있는 사원 안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햇빛 아래로 나왔다. 하늘색과 흰색, 금색으로 칠해진 조그만 천사 이콘을 샀다. 수호천사 이콘이라고 되어 있는데 금발인 것을 보니 가브리엘 같다. 자세히 뜯어보면 좀 조잡한데 그래도 첫눈에 띄었기 때문에 샀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그리고 쓰는 글을 위해. 천사가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 글이니까.

 

 

..

 

수도원 경내를 오랫동안 거닐었다. 햇볕을 받으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걷고 꽃들을 보고 향기를 맡았다. 묘지 사이를 걸었다. 검고 축축한 흙을 밟았다. 묘지의 십자가들과 이름들을 보았고 바람을 맞았고 심호흡을 했다. 햇살이 따스했고 눈부셨다. 하늘이 너무나 파래서 온몸을 깨끗하게 통과해 지나가는 것 같았다. 평온이 찾아왔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이곳에 와야 했다. 내가 이곳으로 날아온 가장 큰 이유가 어쩌면 여기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진까지는 카메라로 찍은 것.

그리고 수도원 경내로 들어가서는 큰 카메라로 촬영하면 안되니(원래는 촬영 자체가 좀 그렇다) 소리 안나는 앱을 사용해 폰으로만 찍었다. 물론 교회 안은 찍지 않았다.

폰으로 찍은 수도원 사진들은 나중에 따로 올려보겠다. 아래 몇 장만.

 

(러시아 와서 올리고 있는 사진들 중 화질과 심도가 좋은 건 카메라로 찍은 거고 얕고 평면적인 건 폰으로 찍은 것들이다. 후자가 더 많다. 아무래도 휴대하기가 편하고 용량이 작아서 업로드도 쉬워서)

 

 

 

..

 

한참 산책을 하고 햇볕을 쬐다가 화단 안쪽에서 한가롭게 조는 고양이를 한 마리 발견했다. 토실토실하고 예쁜 고양이인데다 원체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곳이라 웬만한 소음이나 기척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햇살 받고 조는 고양이를 보니 나도 노곤해졌고 고양이를 바라보며 따뜻한 돌바닥에 한참 주저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보았고 귀찮아하며 도로 졸았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햇살 쬐며 노곤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앙증맞고 따뜻한 어린아이 손이 날 확 껴안았다. 그리고는 '쥬쥬~' 하는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레냐와 료샤가 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는데 레냐가 '쉿! 고양이 깨!' 하길래 나도 꾹 참았다 ㅋㅋ

 

..

 

우리는 원래 내가 산책을 마친 후 수도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근데 둘이 생각보다 좀 일찍 도착해서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한다. 좀 걷다가 보자마자 나인 줄 알았다고 하길래 나는 의아했다.

 

나 : 어떻게 난줄 알았어? 나 머리에 스카프 두르고 있었는데!! 뒷모습만 보고!

 

료샤 : 그걸 모르냐~

 

나 : 또 호빗이라 할라고!

 

료샤 : 아니야! 수건 두르면 뭐해! 땅바닥에 요가 자세로 앉아 있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놀라운 동양의 신비!!

 

나 : (아, 맞다. 나 양반다리 하고 앉아 있었지 ㅋㅋ) 그거 동양의 신비 아니야 이 바보야 ㅠㅠ 나처럼 둔한 사람도 다 하는 거야..

 

레냐 : 아니야! 나는 알아! 뒷모습만 봐도 알아~ 쥬쥬우우우~~

 

..

 

우리는 함께 수도원을 조금 거닌 후 한쪽에서 수도원 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거기도 가보았다. 수도원에서 만들었다는 꿀을 먹어보고 배아플 때 좋다는 꿀을 사고 또 각종 향초가 배합된 차를 이것저것 시향한 후 차를 사고 있자니 료샤가 혀를 찼다. 척 봐도 '상술에 넘어가는 바보 토끼!'라는 눈빛이었지만 나는 '수도원에서 만든 거니까 살 거야!'라는 시선을 마구 쏘아주었다 ㅋㅋ

 

료샤의 차를 타고 걔네 집으로 갔다. 레냐가 피자를 먹고 싶어해서 근처 이탈리안 식당에 갔다. 나는 해산물 리조또를 시켜서 막 먹었다. 료샤가 혀를 찼다.

 

료샤 : 왜 그렇게 정신없이 먹니.. 굶었냐?

 

나 : 쌀밥이라서... 밥 먹고 싶었어... 밥이다 밥...

 

료샤 : 너 왜 이렇게 오늘 불쌍하게 굴어 ㅠㅠ 수건 쓰고 요가자세로 앉아 고양이 보고 있지를 않나, 꿀 찍어먹고 찻잎 냄새 맡고 비닐봉다리에 꿀이랑 차 사지 않나... 쌀이라고 리조또를 막 욱여넣질 않나...

 

나 : 안 불쌍해! 수도원 오면 원래 그런 거야! 그리고 집 떠나오면 원래 쌀밥 먹고픈 거야!

 

료샤 : 불쌍해. 많이 먹어. 한 접시 더 시켜줄까?

 

나 : 내가 돼지냐!

 

레냐 : 아니야! 쥬쥬는 돼지 아니야, 쥬쥬는 토끼야~ 토끼여왕이야~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고 료샤네 집에 가서 허브차를 마셨다. 레냐는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데다 엄격한 엄마 탓에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료샤는 레냐를 먼저 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다음에 나도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료샤는 숙소가 맘에 안 든다며 나에게 도로 자기 집으로 가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그냥 내일 보기로 했다. 얘도 어제 출장에서 돌아와 많이 피곤한 거 안다.

 

내일 우리는 같이 공연을 보러 갈 것이다. 아마 저녁도 먹을 것이다. 레냐랑은 모레부터 만나 다시 놀 것이다.

 

여기 수도원이 있고 햇살이 있고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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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