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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19. 22:51

수용소 면회실에서, 얼룩들, 왜냐하면 about writing2016. 11. 19. 22:51

 

 

 

 

아래 글은 3년 전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해서 서울에서 마무리한 중편이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2부는 프라하에서 썼고 3부는 서울에 돌아와서 썼다. 여기서 나는 나의 주인공 미샤가 체포된 후 레닌그라드 정신교화 수용소와 모스크바 비밀 클리닉, 그리고 면회실에서 겪는 일들을 다뤘다.

 

사실 이 이야기는 원래 쓰고자 했던 가브릴로프 본편에서 간단한 회상 정도로만 처리하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프라하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나에게 옳았다. 그때는 2013년이었다. 지금의 정부가 들어선 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고민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금처럼 잠시 회사를 쉬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었다. 나는 글을 썼고 수면으로 올라왔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때 이 글을 썼던 것이 나에게 필요했듯, 지금도 아마 어떤 다른 종류의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가 됐든 결심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발췌한 내용은 소설의 3부이다. 주인공 미샤의 절친한 친구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모스크바 KGB 비밀병원의 면회실에서 미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나는 일이다. 일린은 전에 발췌한 글들에서 여러번 등장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 토박이, 볼쇼이 극장 무용수 출신의 유능한 안무가이며 미샤의 얼마 안되는 진짜 친구이다. 이전에 일린과 그의 어린 딸 라라, 미샤가 등장하는 부활절 단편을 전문 게재한 적이 있다. 이 면회실에서의 일린과의 대화 역시 토막토막 발췌한 적이 있다.

 

 

내가 왜 지금 이 부분을 발췌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건 얼마 전 내가 소년 시절의 미샤와 심문관 그라도프의 이야기(http://tveye.tistory.com/5348 : 사제 없는 고해. 심문관의 독백, 혼자 다니는 사람, 집단주의) 를 올렸던 이유와 많이 겹치겠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여기가 바로 저곳이며 저때나 다름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중간에 언급되는 라라와 아냐는 일린의 두 딸이다.

 

벨스키는 미샤를 후원하는 공산당 고위 간부 중 하나이다. 전체 이름은 게오르기 벨스키. 정치적으로 온건파이며 미샤를 이후 수용소에서 빼내 소도시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도록 힘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전에 등장했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나 드미트리 마로조프와는 달리 미샤와 사적인 관계로 얽혀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의 3부에서 일린을 클리닉에 보내 미샤를 면회할수 있도록 해준 것도 벨스키이다.

 

지나는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시절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이다'이다. 전에 지나에 대한 얘기도 두어번 발췌한 적이 있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이제 미샤는 왼쪽 어깨를 천천히 여러 번 돌리면서 깊고 불규칙한 호흡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프다고 하지는 않았다. 내 앞에서조차 그는 아픈 것을 제대로 인정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 곁에 앉아 있는 그 야윈 몸으로부터 점점 열기가 퍼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창백한 얼굴에는 사람을 홀리던 아름다움이 여전히 반쯤은 남아 있었는데 어쩐지 그건 인위적이고 비정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아마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뺨과 이마 위로 물감을 끼얹은 듯 번지는 홍조 때문일지도.

 

 나는 그의 오른쪽 손등을 감싸 쥐었고 그 타는 듯한 열기에 놀랐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얼음장처럼 차갑던 손이었다.

 

 

 “ 너 괜찮아? ”

 

 “ 그럼. ”

 

 

 그는 내 앞에서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짧은 단어를 내뱉는데도 숨을 헐떡였다. 나는 그의 목을 칭칭 감고 있는 스카프를 풀어 주었다. 열이 올라 답답한 것 같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조잡한 색깔의 천 조각을 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카프를 풀어서 소파 한켠에 내던져버렸을 때 미샤는 두어 번 기침을 하더니 한결 깊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진작 풀어버릴 걸 그랬다고 말해주려다 나는 잠시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애의 턱 아래와 목덜미 전체에 멍이 가득했다. 짓밟힌 듯, 뭉개진 듯, 끔찍한 색깔과 이상한 모양의 일그러진 얼룩들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었다. 그건 심지어 붉은색도, 보라색도 아니었다. 엉망으로 더럽혀진 진흙탕 같았고 토사물 같았고 빛바랜 잉크, 지저분하게 번진 커피 얼룩 같았다.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쇄골 전체가 라라의 첫 유화 수업 팔레트처럼 우중충하게 뒤섞인 어둡고 음산한 얼룩들로 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미샤는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내가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아직 초점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 시선을 본다기보다는 느낀 것 같았다.

 

 

 “ 왜? ”

 

 “ 다른 데도 그래? ”

 

 

 그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명민하던 애가, 내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금세 눈치 채던 애가 이제는 순진한 어린애처럼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오른쪽 소매를 걷어보았다. 그것들이 팔에도 있었다. 목덜미보다 더 많아서 얼룩이 사슬처럼 서로 겹쳐져 있었다.

 

 

 “ 멍들었잖아. 다른 데도 다 이래? ”

 

 

 팔목을 그렇게 세게 쥔 것도 아니었는데 미샤가 낮게 소리를 질렀다. 아주 짧고 작은 비명이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미샤가 왼손으로 내 손등을 잡아당겼다. 그건 라라보다도, 아니 이제 열 살 밖에 안된 내 조그만 아냐보다도 더 미약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미샤의 팔목을 놔주었다. 이마로 열기가 치솟았다. 가능한 한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그 애를 향해 똑바로 물었다.

 

 

 “ 맞았어? 맞아서 생긴 멍이야? ”

 

 

 나는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나의 지식은 평범한 소련 시민이 솔제니친 류의 소설들, 그리고 각종 수기나 기사 따위를 읽고 주워 모을 수 있는 내용들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30년대도, 50년대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육체적 폭력. 그게 죄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심문 과정에 포함된 것이든, 혹은 양쪽 모두이든 상관없다. 그건 비단 수용소뿐만이 아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폐쇄된 공간에 남자들을 몰아넣었을 때, 그리고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기 위해 굳이 보고서와 수기를 읽을 필요는 없었다. 발레학교 기숙사에서도, 그리고 우아하고 고상할 거라는 오해를 받는 극장의 연습실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은 늘 있었다. 다시금 내 눈 앞에 그 사진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토록 빽빽한 얼룩들을 만들어놓으려면 대체 몇 명이 얼마나 집요하게 두들겨 패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게 충격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샤는 거의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맞아서 그런 거 아냐. 화내지 마. 때리지 않았어. ”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잠깐 한 손으로 가슴팍 쪽을 눌렀다. 그것도 무의식적인 행동 같았다.

 

 

 “ 맞은 게 아니면 뭔데... 너 많이 아팠잖아. 지금도 팔 건드리니까 아파했잖아. ”

 

 “ 없어지고 있어. 이제 괜찮아. ”

 

 

 그 순간 나는 이제껏 왜 그 애의 얼굴에서 인위적이고 기묘한 느낌이 배어나오고 있었는지 퍼뜩 깨달았다. 야위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창백하고 가면 같은 안색과 부드러운 핏기가 도는 뺨과 입술. 그 모든 것이 사기였다. 그 애는 분장을 하고 있었다. 무대에 올라갈 때처럼. 의상을 입고 춤췄을 때처럼. 손수건을 꺼내 광대뼈와 뺨을 문지르자 파우더와 화장품이 잔뜩 묻어났다.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손수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석고처럼 하얗고 완전히 핏기가 없는 피부가 새로운 얼룩처럼 드러났다. 입술조차 거의 아무런 색채가 없었다. 나는 그 애가 발레 무대에 올라가던 때에도 그렇게 화장품을 두텁게 겹쳐 바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미샤는 일반적인 동료 무용수들과는 반대로 피부색보다 짙은 파운데이션과 섀도를 사용한 적이 더 많았지만 결코 무대 메이크업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조금만 손을 대도 강렬하게 눈에 띄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애가 죽은 사람처럼 새하얀 얼굴을 예순 살 노부인들보다 더 두터운 파운데이션으로 빽빽하고 두텁게 칠한 채, 조금 창백하고 아주 조금 아파 보일 뿐 그저 야윈 것에 지나지 않는 척 하며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 애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화장품 팔레트와 붓조차 제대로 들 수 없는 상태였다. 그자들이 공금으로 그 끔찍한 옷을 입혔듯 그 애에게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광대뼈와 콧등에 블러셔와 하이라이터를 문지르고 이마와 턱 가장자리에는 셰이드까지 칠해서 그 애를 무대도 없이 광대로 만들고 자본주의조차 없이 상업화보 모델로 만들었다.

 

 

 그러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의 고함을 지르기 직전이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전혀 괜찮지 않아. 그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더러운 놈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한 거냐구!

 

 

 

 미샤가 발을 한 번 굴렀고 내 옷자락을 붙잡더니 아이처럼 흔들어댔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입술을 움직여 단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도청’, 그 단어를 말도 없이 두 번, 세 번 되풀이했다. 그러더니 오른손을 뻗어 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내 얼굴 앞에서 두 손을 교차해 잠깐 십자 모양을 만든 후 다시 손가락을 내 관자놀이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그건 우리가 청년 극장에서 발표했던 짧은 춤을 위해 발레 마임을 토대로 고안했던 동작들이었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도청당하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마. 널 체포할지도 몰라. 위험해질지도 몰라.

 

 

 상관없어. 들으라고 해. 네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입을 다물 수 있어. 얘기해봐, 미셴카. 그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런 짓 전부 불법이야. 넌 시민권을 박탈당한 것도 추방당한 것도 아냐. 정식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잖아. 네가 지금까지 연방을 위해 해준 일이 얼만데... 어떻게 너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약이야? 그놈들이 마약으로 이렇게 만든 거야? 약물로 고문한 거냐고! 외국에서 떠드는 얘기가 정말인 거야?

 

 

 미샤는 이제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마임을 시도하는 것도 포기했다. 한 손을 뻗어 그대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화장이 반쯤 지워진 그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애는 몸을 떨고 있었다. 왼쪽 팔과 다리에서 시작된 경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는데 꼭 영하 30도의 날씨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얼음 구덩이에 던져진 사람처럼 떨었다. 너무 몸이 떨려서 내게까지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래도 그는 완강하게 내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떼어내는 대신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정수리까지 치솟았던 열기와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폭발할 듯한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심장 한가운데 그대로 고여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그런 분노와 증오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샤는 내가 잠잠해지자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여름이 아니었다면 벗어줄 재킷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스카프를 다시 주워 그 애의 목과 어깨에 둘러 줘야 했다. 마치 자주색의 죽은 뱀을 둘러주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미샤는 추워서 그런지 스카프를 감아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초점이 흐릿한 검은 눈만이 불안하게 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감시자들이 들어와 나를 끌어내 체포할까봐 두려운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의 미셴카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 어떤 권위와 위협 앞에서도 굴복할 줄 모르던 미샤 야스민이 그런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다니, 두려움으로 내 입을 막고 몸을 떨다니. 문득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아주 설득력이 있어서 난 거의 넘어갈 뻔 했다. 그 애의 몸에서 발산되는 불처럼 뜨거운 열기와 죽어 넘어진 페트루슈카를 연상시킬 정도로 심한 경련이 아니었다면 분명 난 꿈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나는 한 팔을 미샤의 팔 아래로 넣어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아 안았다. 다른 팔을 뻗어 허리에 둘렀다. 그러자 경련이 조금 잦아들었다.

 

 

 “ 어깨에 기대. 그럼 좀 편해질 거야. ”

 

 “ 네 어깨는 작은데. ”

 

 “ 그래도 너 하나쯤은 기대게 해 줄 수 있어. 전에도 그랬잖아. ”

 

 “ 그랬지. ”

 

 

 미샤가 순순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짧은 머리칼이 얇은 셔츠를 파고들며 살갗을 찔렀다. 그 애의 이마와 뺨이 닿은 자리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 걱정하지 마. 날 체포하지는 않을 테니까. 벨스키가 보냈다고 했잖아. ”

 

 “ 왜 흥분하는 거야? 제일 안전할 줄 알고 네 이름 댔는데. 좀 무서운걸. ”

 

 “ 난 약과야. 지나가 왔으면 더 소리 지르고 화냈을 걸. ”

 

 “ 지나가 그러는 건 무섭지 않아. 걘 조용한 게 무섭지. 넌 반대잖아. 내 앞에서 화낸 적 없었는데. ”

 

 “ 너한테 화내는 게 아냐. ”

 

 “ 음, 나한테 화를 내면 안되지. 그럼 라라에게 이를 거야. ”

 

 “ 지금 농담한 거야? ”

 

 “ 미안, 여전히 재미없어서. ”

 

 

...

 

 


이 소설 1부에 등장하는 심문관들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48 : 수용소, 심문자들, 유령들, 인체발화, 다시 세 개의 메모

 

역시 이 소설 3부에서 화자인 스타니슬라프 일린과 미샤가 면회하는 장면은 전에 서너번 토막토막 올린 적이 있다. 아래.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을때, 수용소 면회실에서의 조우 : http://tveye.tistory.com/4521

푸에테와 이반 왕자와 불새 : http://tveye.tistory.com/3613

농담에 약한 주인공, 타협,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 http://tveye.tistory.com/4468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 : http://tveye.tistory.com/4341

 

 

일린과 그의 딸 라라, 미샤의 이야기(부활절 단편) Jewels 전문은 여기


1장 : http://tveye.tistory.com/3390
2장 : http://tveye.tistory.com/3391
3장 : http://tveye.tistory.com/3393 
4장 : http://tveye.tistory.com/3394
5장 : http://tveye.tistory.com/3395

 

 

..

 

 

 

 

 

 

맨 위 사진들과 아래 사진들은 모두 프라하 성 비투스 성당, 아녜슈카 성당, 성 이르지 성당에서 내가 찍은 것들.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엄청 피곤하게 뒤척이며 잤다. 아침 9시 다되어 일어나서는 그래도 조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세수만 하고 1층으로 내려가 스크램블드 에그와 토마토, 빵 한쪽과 삶은 브로콜리/당근 따위를 꾸역꾸역 먹었다. 오늘은 프라하 성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이라도 잘 먹고 가야 했다. (프라하 성 한번 갔다오면 엄청 피곤하다)


오늘도 일기예보는 30도.... 여기 와서 겉옷을 입지 않는다... 여름용 옷은 반소매 티셔츠 한장, 미니원피스 한장, 얇은 긴소매 티셔츠 두어장 정도인데 그거 돌려가며 입고 있음. 이게 뭐야 -_- 언제 트렌치코트 입고 언제 랩원피스를 입는단 말이냐~~


날씨가 좋은것까진 괜찮은데 난 사실 가을 날씨를 좋아해서 이것보다 5~6도 정도만 낮았으면 좋겠다... 다니면 해가 너무 뜨거워서 금세 지친다. 본시 토끼는 더위와 습기에 약한 짐승이라고 한다.


..



숙소 앞에서 22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 후문 쪽에서 내렸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IS 때문인지 안으로 들어갈때 간단한 보안 검색을 하고 있었다. 근데 가방 좀 보여주고 들어가는 거라 맘만 먹으면 무기 다 숨기고 들어가겠어... 특히 나같이 만만해 보이는 사람은 '흠, 누가 봐도 토끼로군' 하면서 '들어가시오~' 라고 하기 때문에... 행여 나 같은 인상의 호빗이 무장하고 있으면 어쩔라고...







오랜만에 프라하 성에 왔다. 여기는 누구랑 같이 오지 않으면 혼자서는 잘 오지 않는 곳인데 내겐 너무 관광지 느낌이 나서... 이쪽 동네에 오면 로레타나 스트라호프 수도원쪽으로 갔다가 흐라드차니 언덕길로 산책해 내려오는 편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오기도 했고 황금소로의 도자기가게에도 들를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왔다. 원래는 이번주에 프라하에 오는 료샤를 꼬셔서 같이 갈까 했으나... 료샤는 나보다도 더 프라하 성을 싫어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료샤 : 싫어! 나 옛날에 거기 황금소로에서 소매치기 당했어! 프라하 성 왕 싫어!

나 : 누가 봐도 '나 부자요'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_- 화려번쩍한 시계나 차고 다니고...

료샤 : 하여튼 나 프라하 성 안 가! 황금소로 안 가!


쳇, 그래서 나 혼자 갔다. 여기는 그나마 동행이 있어야 좀 재밌는데 -_-



..



정오쯤 도착했는데 엄청나게 더웠다!! 어찌나 태양이 뜨거운지 선크림을 바르고 온 게 아무 소용없는 듯 드러난 팔이 막 까맣게 타는 것처럼 보였다! 선크림 때문에 끈적거리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ㅠㅠ 그리고 앞머리가 그새 길어서 자꾸 눈을 찌른다. 오늘 밤에 머리 감고 앞머리 잘라야겠어 흐흑


너무 더워서 프라하 성 들어가기 전에 가게에서 레몬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었다. 윽, 역시 호텔 아래 안젤라또의 끝내주는 젤라또를 먹다가 이걸 먹으니 별로긴 별로다... 하여튼 시큼한 맛에 대충 먹었다.



(보기엔 맛있어 보이지만 -_-)




걸어올라오면 정문으로 들어오고 트램 타고 내리면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천천히 걸어서 인포센터에 갔고 입장권을 끊었다. 성당들이나 황금소로, 박물관에 관심이 없으면 굳이 입장권 안 끊어도 된다. 전체 다 보는 건 350코루나, 프라하 성 박물관, 성 비투스 성당, 성 이르지 성당(성 조지), 황금소로에 갈 수 있는 건 250코루나이다. 나는 황금소로 정도만 가도 되는데 ㅠㅠ 전엔 황금소로는 따로 입장권 받더니만... 몇차례나 온 곳이라 굳이 250코루나짜리 티켓 사고 싶진 않았지만 끊은 김에 다시 비투스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내가 프라하 성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인 성 이르지 성당이나 봐야겠다 싶었다.





..




비투스 성당은 원체 거대하고 화려한 성당으로 유명한데 나는 원래 대성당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빈에서도 슈테판 대성당에 큰 감흥이 없었고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이삭 성당 내부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아마 파리에 가도 노트르담 사원에 그리 감명받지 않을 거다. 난 항상 좀더 작고 조용한 사원에 끌렸다. 그래서 프라하 성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사원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돌로 지어지고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균열이 간 성 이르지 사원이다. (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성 조지의 사원이라 더 그런가)


어쨌든 오랜만에 비투스 성당 들어가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바닥에 스며드는 빛을 보니 그건 좋았다. (창문과 스며드는 빛은 원래 좋아하니까...)


성당 내부 전경 사진 하나는 다른 사진보단 좀 큰 사이즈로 올려본다. 원체 거대한 성당이니.






스테인드 글라스란 것을 처음 만들어낸 사람에게 축복 있으라!!






..



나와서 걷다가 성 이르지 성당(성 조지 = 성 게오르기)에 들어갔다.






맨 처음 프라하에 왔던 건 십년 전 겨울이었는데 그땐 외국 여행도 거의 안 해봤고 러시아밖에 모르던 시절, 나이에 비해 참 순진하던 때였다. 그날 이르지 성당 앞 호객꾼에게서 음악회 티켓을 끊어서 저녁에 이 성당에서 열리는 연주회를 들었다. 파헬벨의 캐논과 비발디의 사계 등이었는데 오늘 가보니 곡목이 똑같음!!! 그때 연주회는 좋긴 했는데 돌로 된 옛날 성당이라 너무너무너무 추워서 얼어죽는 줄 알았던 기억만 생생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성당은 내가 프라하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원 중 하나이다. 차갑고 싸늘하고 영적인 기운이 가득한 곳이다. 아주 오래된 돌에서 나오는 냉기와 영기가 스며 있는 곳.







(나와서는 외벽에 새겨진 성 게오르기, 용을 무찔러 이기는 용감한 조지 성인을 볼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인. 흑흑 집에 있는 용감한 조지 생각하고 있음...)



..



그리고는 황금소로에 갔다. 배도 고프고 덥고 피곤하고 화장실에도 가고 싶어서 황금소로에 있는 카페에 갔다. 파니니와 자몽에이드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조금 앉아 있다가 나왔다.



(황금소로는 내가 안 좋아해서 그런지 자신이 찍어놓은 사진 볼때마다 느낀다. 참 성의없이 찍는다.. 근데 좁아서 구도 잡기도 힘들고 관광객이 바글거려서 전체를 예쁘게 잡기 어렵다. 뭐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맘에 안 들어서 성의없이 찍는다 ㅋ)



맨첨 황금소로에 왔을땐 추가요금을 내고 들어가야 했는데 원체 유명한 곳이라 궁금했지만 조그만 집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을 훑어본 후 '사기 당한 거 같아!' 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긴 하지만 난 원래 폐소공포증이 있는 편이기도 하고... 카프카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카프카가 여기 살며 글을 썼다!'란 감동도 별로 없고... 너무 작고 좁고 심지어 기념품가게들이 줄이어 있으니 엄청 상술이다... 이런 생각만 들었던 것이다.



근데 여기도 쥬인이랑 같이 오고 또 나중에 동생이랑 같이 오니 느낌이 달랐고 나름대로 재밌었다. 역시 동행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료샤랑 오면 좀 나을거 같았는데 바부팅이가 소매치기나 당하고 그래서 안온다 하고... ㅠㅠ 네가 같이 와야 이 골목 배경으로 나 사진을 찍어줄거 아니야 -_- 그래서 황금소로에서 찍은 내 사진 없음. (나 도저히 셀카봉 창피해서 못 가지고 다니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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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금소로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게가 딱 두개 있는데 하나는 카프카가 살았던 집에 들어와 있는 서점이고 하나는 도자기 가게이다. 전에는 이 서점에서 프라하 카페 책이랑 체코 음식 책, 아르누보 엽서집 등을 득템했는데 오늘은 가보니 3년 전이랑 똑같은 카페 책이랑 요리책을 팔고 있어 실망...





도자기 가게는 이 골목에서 제일 예쁘다. 도자기 달걀과 새, 종이 매달린 아름다운 리스가 걸려 있고 체코 특유의 핸드페인팅으로 칠해진 파랑 하양 노랑 도자기 장식품들이 가득하다. 이 가게는 구시가지 틴광장에도 하나 있는데 첫날 갔더니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아서 허탕쳤다. 쥬인이 여기서 흰 새와 파란 달걀, 파란 종을 사다 달라 부탁했다. (우리 집엔 흰 종 두개와 흰 새가 있다) 나도 노란 달걀이 갖고 싶기도 해서 이 가게에 다시 갔다.


쥬인에게 '새알종'을 사다주겠다고 했다 ㅋㅋ 이 새 저 새, 이 알 저 알, 이 종 저 종을 다 구경했다. 친절한 남자 점원이 엄청 구경시켜줌. 특히 새를 고르는 게 어려웠다.


나 : 착하게 생긴 새가 필요해요.

점원 : 어떤게 착하게 생긴 새에요?

나 : 남 안 괴롭히고 순하게 생긴 애요

점원 : 다 착해보이는데...

나 : 아니에요! 얘 보세요. 미간이 엄청 좁고 눈이랑 부리가 붙어 있어서 싸납게 생겼어요. 옆에 있는 새를 쫄 거 같아요!!

점원 : 날렵하고 영리해보이는데...

나 : 스마트한 놈보단 착한 놈이 필요해요 ㅋㅋ


그래서 점원은 (에이 이 토끼 까다로워.. 라고 생각했겠지만 꾹 참고 방글방글 웃으며) 새들을 모두 내려주었다. 다들 좀 싸납게 생겼다... 착하게 생긴 애를 하나 발견했는데 얘는 또 눈썹이 처지고 미간이 너무 넓어서 그런지 착하다 못해 좀 띨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나 : 어휴, 얘는 스마트한데 사나워보이고 얘는 착해보이는데 띨해 보여요... 어쩌지...

점원 : 얘는 강아지를 좀 닮았네요

나 : 강아지 닮은 애 할래요 ㅋㅋ


그리하여 착하고 띨하고 어쩐지 강아지 닮은 새를 고름. 쥬인아, 어쩔 수 없어 ㅋㅋ 해달도 좀 닮았네... 착한 애가 더 좋지?


그리고는 나를 위해 노란 달걀 한 알과 파란 종지 한개를 샀다. 종지는 티백 홀더로 쓰려고.



(쥬인의 품으로 가게 될 새알종 ㅋ)



(이것이 바로 그 착하지만 띨해보이는 새... 해달도 닮고 강아지도 닮고 ㅋㅋ

쥬인은 이미 이놈의 이름도 정했다. '새돌이'라고 한다. 이름도 잘 어울려 새돌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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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소로는 달리보르카 탑과 이어지고 여기로 내려오면 성벽 너머로 아름다운 프라하 전망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너무 바글거려서 자리를 잡기가 힘들다. 성벽 아래쪽에는 작은 구멍들(총안이라고 하나? 갑자기 이름이 생각 안나네...)이 뚫려 있어서 호빗인 나는 가끔 그 구멍 너머로도 전망을 본다. 새로운 기분이다.











프라하 전경을 구경한 후 뒷길을 통해 걸어내려갔다. 정문 쪽으로 나가면 네루도바 거리를 거쳐 카를 교가 나오고 이 뒷길로 내려가면 말로스트란스카 지하철역이 나온다. 이쪽이 좀더 한적하고 산책하는 맛이 있다. 물론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게는 없지만... 난 네루도바 거리는 많이 다녔으니까.


엄청 덥고 다리아팠다. 말로스트란스카 지하철역 앞까지 오자 한두정거장이지만 그래도 트램을 타기로 했다. 덥고 다리 뿐질러질 거 같아서.



트램 타고 헬리초바 거리에서 내렸다. 숙소가 있는 우예즈드보다 한 정거장 전이다. 어제 허탕친 그 카페 u zlateho~ (이름 넘 길어서 그냥 이렇게 부른다)에서 메도브닉 먹으려고. 그리고 그 골목 초입에 있는 좀 앤틱한 기념품 가게가 하나 있는데 며칠 전부터 그 가게 진열창에 놓여 있던 찻잔 하나가 계속 눈에 밟혔다. 오늘 새알종을 샀으니 이제 찻잔도 사리라 하면서 그 가게에 갔고 질러버림. 296코루나였다. 15,000원이 좀 안되는 가격이었는데 굉장히 작고 귀엽고 예쁜 크리스마스 찻잔이다.


이건 너무 앙증맞아서 볶음김치와 된장국으로 개시하면 안될거 같아 ㅋㅋ (갑자기 미안해지는 중국찻잔...)







찻잔을 산 후 오늘은 문을 열고 있는 그 카페에 가서 메도브닉과 다즐링을 먹으며 지친 몸을 좀 쉬었다.



생수를 사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잠깐 앉아서 쉰 후 노트북이랑 카메라 메모리카드 등을 가지고 로비의 야외테라스로 나왔다. 방에 의자가 없으니 이제 노트북 작업은 여기서...


근데 여기는 너무 개방되어 있고 좀 덥고 화단 옆이라 날벌레가 있어서 집중해 써야 하는 글은 못 쓰겠다 -_- 어차피 오늘은 프라하 성 다녀오느라 너무 진이 빠져서 글을 쓰긴 힘들 거 같고... 이 포스팅 올려놓고 방에 가서 씻고 뭐 좀 먹어야겠다. 그래도 오랜만에 갔더니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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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인이랑 잠깐 카톡을 하고 새알종 사진을 보여줬더니 맘에 들어해서 나도 좋았다. 근데 경주에 지진이 났다니! 5.8이라니! 서울까지 흔들리다니! 무섭다 ㅠㅠ 남쪽에 원전이랑 석유화학단지 있잖아... 지진 무서워 ㅠㅠ 지진 안 나게 해주세요... 지진 때문에 놀라신 분들 다들 맘 가라앉히시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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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