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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슈클랴로프'에 해당되는 글 225

  1. 2016.11.14 수도관 터진 날, 푸쉬킨,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33
  2. 2016.11.05 미샤의 신입 시절, 싸움의 이유, 붉은 장미와 하얀 눈 44
  3. 2016.11.03 무용수들(비슈뇨바, 레베제프, 츄진, 슈클랴로프, 쉬린키나) 4
  4. 2016.10.25 어둠 속에 머물며, 오래 전의 글, 아스토리아 호텔 42
  5. 2016.10.20 흑해의 여름, 춤추는 아이, 달빛 아래의 레나 46
  6. 2016.10.20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지젤 화보 몇 장(with 쉬린키나) 4
  7. 2016.10.16 무용수들 : 비슈뇨바, 슈클랴로프, 바리쉬니코프, 사라파노프, 아바쇼바 4
  8. 2016.10.12 사제 없는 고해. 심문관의 독백, 혼자 다니는 사람, 집단주의 47
  9. 2016.10.09 최근 슈클랴로프 공연 사진 몇장(황금노예, 장미의 정령, 지젤) 8
  10. 2016.10.05 폭군 파트너 여왕, 병실의 미샤와 지나이다의 대화 38
  11. 2016.09.29 슈클랴로프 흑백화보 (by Alexei Kostromin) 4
  12. 2016.09.24 슈클랴로프, 폴루닌 흑백 화보 몇장 2
  13. 2016.08.29 슈클랴로프 상하이 화보 몇 장 (미남 주의) 8
  14. 2016.08.28 천사가 날개로 쓰다듬고 지나간 사람, 렐랴의 인터뷰 54
  15. 2016.08.27 휘황한 마린스키 극장과 램프들, 카페, 슈클랴로프 지젤 보러 갔던 날 8
  16. 2016.08.25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몇 장(젊은이와 죽음 등) 4
  17. 2016.08.22 미샤의 몇 가지 논리, 다들 똑같아지면 재미없음, 싫지 않은 것과 보통과 별로 사이 48
  18. 2016.08.17 전락, 어둠, 두 개의 메모, 내가 생각했던 세 가지 정점 - 아마 지금도 유효할 듯 40
  19. 2016.08.11 사악한 천사, 마음을 뒤흔드는 악마, 파리의 알리사와 미샤 52
  20. 2016.08.09 펌) 슈클랴로프 인터뷰 Vladimir Shklyarov answers the Gramilano Questionnaire 6
  21. 2016.07.24 백조의 호수 슈클랴로프 & 카르다쉬 영상 클립 몇개(MAMT 공연) 2
  22. 2016.07.19 슈클랴로프 도쿄 공연 사진 몇장, 차이코프스키 파드두 솔로 클립 10
  23. 2016.07.13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 안젤리나 보론초바 돈키호테 짧은 메모와 커튼 콜 사진들(6.11,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4
  24. 2016.07.11 발레 청동기사상 - 슈클랴로프의 예브게니 광란 장면(유튜브 링크) 8
  25. 2016.07.10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Prix BALLET2000' 수상 소식(7.31)

 

 

 

 

 

아래는 이전에 여러번 발췌한 소설의 전반부에 포함된 에피소드이다. 1974년 3월. 미샤는 키로프에 입단한지 일년이 채 안된 시기이다. 우중충한 진창으로 가득한 음습한 3월의 어느날, 한밤중에 미샤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친구인 트로이의 아파트로 찾아온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3월 초였다. 날씨는 좀 풀렸지만 거리는 진창과 감기 환자들로 가득했다. 트로이는 일 년 중 이 시기를 가장 싫어했다. 오후 강의에도 감기로 빠진 학생이 세 명이나 있었다.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 때문인지 그날따라 학생들은 별로 어렵지도 않은 영문법을 따라가지 못해 쩔쩔 맸고 짧은 테스트에서도 무더기로 오답을 냈다. 마침내 트로이는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거론하며 학생들을 협박해야 했다.

 

 강의를 마친 후 트로이는 녹초가 되어 학교를 나왔다. 그는 자신의 수업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나이 차이가 대여섯 살 밖에 나지 않는 젊은 강사를 만만하게 여겨서 그러는 것인지 의문하며 길을 건너 버스를 타러 갔다. 평상시 같으면 다리를 건너 집까지 걸어갔을 테지만 그러기엔 녹은 눈 때문에 길거리가 너무 지저분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지만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사흘 후 모스크바 대학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가야 했는데 아직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다. 몇 시간만 매달리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요 며칠 동안 그는 독감에 걸린 듯 머릿속이 뿌옇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얼마 전 다시 만난 톨랴가 그에게 퍼부어댄 원망 섞인 욕설 때문일 수도 있었다. 톨랴는 아직도 그가 청혼할 거라는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전구가 나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텅 빈 집으로 들어갔다. 지난 여름에 어머니가 재혼해 떠난 후 트로이는 아파트를 혼자 쓰고 있었다. 좁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네프스키 대로 근처였고 방 두 칸과 거실, 부엌과 욕실이 딸려 있었으므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몇 번은 아기가 태어난 갈랴의 집 대신 그의 집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집 주인의 요리 솜씨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갈랴 부부의 집만큼 인기는 없었다.

 

 

 밑단이 흙투성이가 된 바지를 벗어 빨래통에 처박은 후 그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끈끈하고 음습한 레닌그라드의 3월 공기를 씻어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주 진한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며 전날 알리사가 카페에서 사다 준 양귀비씨 빵으로 저녁을 때웠다. 결혼 후에도 알리사는 종종 들러 그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곤 했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린 후 그는 책과 논문 뭉치를 들고 식탁으로 가서 발제 원고를 마저 쓰기 시작했다. 부엌의 조명이 가장 밝았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도 틀지 않고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서너 시간 동안 원고를 썼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려고 손에 닿는 의자에 놓여 있던 푸쉬킨 시집을 집어 아무렇게나 펴고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읽었다.

 

 

지금은 나의 계절, 나는 봄이 싫다.

눈 녹는 철은 지겨워, 악취와 진창도. 봄에는 앓게 되네.

몸 속의 피는 방황하고 감정과 예지는 우수에 사로잡힌다

엄동설한이 내겐 훨씬 좋다.

 

Теперь моя пора: я не люблю весны;

Скучна мне оттепель; вонь, грязь — весной я болен;

Кровь бродит; чувства, ум тоскою стеснены.

Суровою зимой я более доволен,

 

 

 

 악취와 진창을 얘기하는 푸쉬킨은 진정한 러시아인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트로이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곱슬머리의 가무잡잡한 시인이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모를 만나지 않았다면, 리체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래도 위대한 시인이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더 위대하고 더 사랑받는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재능은 유일무이한 것이며 불멸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며 특권이었다. 아무도 그의 곁에 있던 친구들과 이류 시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리 짙지도 않은 어둠 속으로 명멸해 사라진 자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네바 강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없었을까?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모임은 다음 주였고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혹시 알리사가 들른 걸까 싶어 트로이는 현관으로 나갔다.

 

 

 “ 누구세요? ”

 

 “ 나야. 들어가도 돼? ”

 

 

 트로이는 문을 열었다. 미샤가 가방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도 시커먼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

 

 “ 수도관이 터졌어. 집이 물바다야. ”

 

 

 트로이는 미샤를 안으로 들여놓고 가방을 받아 내려놓았다. 미샤가 물을 뚝뚝 흘리며 재채기를 해댔다. 트로이가 타월을 가지고 왔을 때 그는 신발과 재킷과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벗어 현관 바닥에 내팽개치고 있었다.

 

 

 “ 바닥 더러운데 나한테 줘. ”

 

 “ 괜찮아, 어차피 빨아야 돼. ”

 

 

 타월로 머리의 물을 떨어내며 미샤가 거실로 들어왔다. 바지도 엉망이었다. 가방 지퍼를 열어 마른 옷을 꺼내며 그는 다시 재채기를 했다.

 

 

 “ 온수 나와? ”

 

 “ 응, 아직은 나올 거야. 빨리 가서 씻어. 파이프가 터졌으면 잽싸게 튀어나올 것이지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거야? ”

 

 “ 고칠 수 있을 줄 알았지. 반쯤 고쳤는데 레냐가 뭘 잘못 건드렸어. 삽시간에 펑 터지잖아. 집 밖으로 나왔는데 거기서도 또 터졌어. ”

 

 

 졸업하고 기숙사에서 나온 후 미샤는 극장 동료 세 명과 함께 사도바야 거리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하나는 동기였고 둘은 선배였는데 트로이는 미샤가 레냐라고 부르는 레오니드 핀스키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레트니 사드의 아폴로 조각상을 닮은 핀스키는 트로이가 유일하게 아는 미샤의 발레학교 동기였다. 극장에서 좀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해줬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나마 친한 친구와 같이 쓰게 되어 다행일지도 몰랐다.

 

 

 “ 그래서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어? ”

 

 “ 다 짐 싸서 뿔뿔이 피난갔지. 난 그나마 나아, 레냐랑 발로쟈 방은 직통으로 터져서 옷이고 책이고 다 잠겼어. ”

 

 “ 대신 물에 빠진 생쥐가 됐잖아. ”

 

 “ 뭐 몸으로 때우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

 

 

 미샤는 나무 바닥과 카펫 위에 더러운 물을 떨어뜨리면서 욕실로 갔다. 가는 내내 재채기를 했다. 트로이가 등 뒤로 물었다.

 

 

 “ 그런 몰골로 버스를 탄 거야? 같이 있는 애들한테도 차가 없어? ”

 

 “ 아무도 없어. 급료가 짜거든. 버스는 안 탔어. 경찰한테 잡혀갈 것 같아서. ”

 

 “ 그럼 걸어왔어? ”

 

 “ 알잖아, 운하 따라 오면 얼마 안 걸려. ”

 

 

 트로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시궁창에 구른 듯 흠뻑 젖은 상태로 운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오는 게 정신이 제대로 박힌 무용수가 할 만한 짓인지 꾸지람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갈랴처럼 굴고 있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았고 찬장을 뒤져 그나마 깨끗한 컵을 한 개 찾아냈다. 제대로 된 찻잔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모임 때 오랜만에 새 소설을 탈고한 쥬진스키가 신이 나서 찻잔들을 가지고 무슨 퍼포먼스를 하다가 깨뜨렸기 때문이다.

 

 

 식탁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았던 원고와 책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끓는 물과 찻잎을 컵에 붓고 있을 때 미샤가 나왔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방에서 스웨터를 꺼내 티셔츠 위로 뒤집어쓰며 미샤가 투덜댔다.

 

 “ 중간에 더운 물 끊겼어. 우리 아파트만 그런 게 아니었나봐. ”

 

 “ 이쪽으로 와서 차 좀 마셔. ”

 

 진하게 우린 차에 얇게 썬 레몬 두 조각과 설탕을 한 숟갈 부어 넣으며 트로이가 의자를 가리켰다. 미샤는 잠깐 눈썹을 찌푸렸지만 두어 차례 몸을 떨더니 트로이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아 직접 설탕을 더 퍼 넣었다.

 

 “ 더 넣어. 그래야 몸이 녹을 걸. ”

 

 “ 이미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가 심장병을 일으킬 분량인데. ”

 

 

 미샤는 제대로 젓지도 않고 컵을 입에 가져갔다. 뜨거운 차를 연달아 두 잔 마시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식탁 구석에 쌓여 있는 원고와 책들을 보았다.

 

 

 “ 강의 준비해? ”

 

 “ 아니, 금요일에 모스크바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

 

 “ 아, 나도 금요일부터 투어 가. ”

 

 “ 어디로? ”

 

 “ 키예프, 사라토프, 아마 페름까지 갈 거야. 너 사라토프에 할머니 계시다고 하지 않았어? ”

 

 “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우리 할머니 극장 좋아하니까 너 보러 갈지도 모르겠다. ”

 

 “ 그래, 오신다면 내가 앞자리 부탁해 놓을게. ”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끌어왔다. 개켜놓은 옷들 사이를 뒤져 발레슈즈와 작은 천 지갑 같은 것을 꺼냈다. 자세히 보니 지갑이 아니고 바느질 도구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벽에 등을 기대고 식탁에 다리를 걸친 채 능숙하게 발레슈즈에 바늘을 찔러 넣으면서 미샤가 물었다.

 

 

 “ 나 자고 가도 돼? 여자가 오기로 한 거 아냐? ”

 

 “ 무슨 여자? ”

 

 “ 여자 생겨서 바쁘다며. ”

 

 “ 깨졌어. ”

 

 “ 유감이네. ”

 

 “ 그냥 금요일까지 여기 있어. 우리 엄마가 쓰던 방 비어 있으니까. 파이프 터진 건 금방 고친다 해도 물 빠지고 치우는데 한참 걸릴 걸. ”

 

 “ 그래, 친구가 있어 다행이야. ”

 

 

 트로이는 매혹되어 미샤가 발레슈즈를 기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바느질을 할 줄 아는 것도 신기했다.

 

 

 “ 신발은 극장에서 다 대주는 건 줄 알았는데. 스타가 이런 걸 직접 하다니. ”

 

 “ 주긴 하는데 몇 켤레 안 줘. 그리고 아직 스타가 아니야. ”

 

 

 아마 미샤는 인민예술가 정도는 되어야 스타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트로이에게 강의와 모스크바 세미나에 대해 물어보면서 신발 세 켤레를 순식간에 기웠다. 그리고는 세 켤레를 돌아가면서 신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상태를 점검했다. 그 모든 동작은 완벽하게 기계적이고 효율적이어서 군인을 연상시켰다.

 

 

 “ 투어는 며칠 정도야? ”

 

 “ 3주. ”

 

 “ 뭐가 그렇게 길어? ”

 

 “ 버스로 간대. 집단농장들도 들르고. ”

 

 “ 키로프라고 그렇게 화려한 게 아니구나. 버스로 투어 가고 급료도 짜고 직접 신발도 기워야 하고. ”

 

 “ 당연하지, 트로이츠키 동무. 여긴 평등의 사회인걸. ”

 

 “ 크류코바도 같이 가? ”

 

 “ 아니, 니나 정도 되면 계급 위에 존재하지. 그리고 니나랑 같이 가게 되면 더 골치 아파질 거야. ”

 

 “ 왜? ”

 

 “ 더 미움 받게 된다고. 투어에 니나 예전 파트너가 둘이나 같이 가거든. ”

 

 

 미샤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트로이는 극장 내부의 위계질서가 얼마나 엄격하고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타냐에게 조금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수직으로 급상승하고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젊은 신입은 아마 선배들 사이에서 눈엣가시나 다름없을 것이다.

 

 

 “ 쓰던 거 계속 써. 나 연습 좀 할게. ”

 

 “ 테이프 챙겨 왔으면 음악 틀어놓고 해도 돼. ”

 

 “ 괜찮아, 몸만 풀 거야. 근육이 좀 뭉쳤어. ”

 

 

 미샤는 거실 쪽으로 나가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트로이는 다시 원고를 쓰려고 했지만 도저히 미샤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겨 거실에서 등을 돌리고 책과 원고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미샤는 책장과 창틀을 잡고 다리를 길게 뻗으며 트로이에게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동작을 연속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근육만 조금 푸는 동작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완전히 몰입하여 음악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생소한 춤을 추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가도 모를 것 같았다. 트로이는 푸쉬킨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유일무이하고 불멸하는 재능.

 

 그는 고개를 돌렸고 원고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논리가 약해지면서 횡설수설로 변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다른 논문들을 인용하고 논지를 가다듬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주제를 잘못 택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내용을 바꿀 수는 없었다.

 

 

 

...

 

 

얼마 전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시점으로 서술된 이야기를 짧게 발췌한 적이 있었다. 투어에서 돌아온 미샤가 폐렴에 걸린 얘기(http://tveye.tistory.com/5469 )였는데 그것이 위 에피소드에서 미샤가 말하는 '키예프, 사라토프, 페름'의 버스 투어였다. 시간적으로는 위 에피소드가 1974년 3월, 투어에서 돌아와 폐렴에 걸리는 것이 4월로 이어진다.

 

..

 

인용된 시는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가을'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리체이는 소년 시절의 푸쉬킨이 다녔던 기숙학교이다.

 

미샤가 차에 설탕 타면서 얘기하는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는 그의 발레학교 시절 은사이다.

 

..

 

수도관 터져서 난방 끊기고 물벼락 맞고 집에서 달려나온 미샤의 이야기는... 사실 내 경험에서도 좀 가져왔다. 나는 다행히 물벼락까진 안 맞았지만... 예전에 러시아 기숙사에 있을때 동네 수도관이 다 터져서 길바닥에선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하필 혹한이 몰아닥쳐서 얼어죽는 줄 알았었음.

 

그런데 그때 기숙사에는 그저 벽에 '기술적 문제로 난방 안됨'이라고만 씌어 있었고...

'그 망할놈의 기술적 문제! 맨날 저 문구야!' 하면서 덜덜 떨며 뜨거운 물을 끓이면서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뉴스에 어디어디 수도관 터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우리 동네였음 ㅠㅠ


 

그보다도 더 예전에 있을땐 겨울에 온수 안 나올때가 많아서 가스렌지에 물을 끓이기도 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기도 해서 그걸로 간신히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은 적도 있었음. 그러니 소련 시절인 1970년대의 미샤와 트로이네 집은 당연히 더 심했겠지 ㅠㅠ (저 에피소드가 벌어질 당시 미샤는 아직 극장 근처의 좋은 아파트를 얻기 전이었다)

 

..

 

 

페테르부르크 예술광장의 푸쉬킨 동상.

 

 

 

루돌프 누레예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은 alex gouliaev.

이번 뮌헨 바이에른 극장 무대에서 데뷔했던 존 크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 사진.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이 에피소드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5783

 

:
Posted by liontamer

 

 

 

 

전에 이 about writing 폴더에 트로이의 관점에서 기술된 미샤의 첫 시즌과 그의 돈키호테 무대 데뷔, 폐렴으로 인한 입원 등에 대한 에피소드를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 이야기는 같은 사건에 대한 미샤의 오랜 후원자이자 애인인 고위직 당 간부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회상이다.

 

물론 트로이와 마로조프는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고 또 다른 식으로 미샤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이 해프닝을 마주한다. 트로이가 아는 것을 마로조프는 모르고 마로조프가 아는 것을 트로이는 모른다. 미샤는 당사자이므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처럼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다 그럴테지만.

 

시간적 배경은 1974년 4월. 미샤가 키로프 극장에 들어간지 반년이 조금 넘은 시기이다. 그는 이미 해적의 알리와 지젤의 알브레히트로 공전의 성공을 거두고 이른바 원더키드로 관객들과 평론가들을 사로잡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키로프 발레단의 유명 무용수들은 소련 각 도시를 도는 국내 투어를 떠나고 미샤도 거기 합류한다. 아래 이야기는 투어에서 돌아온 미샤를 레닌그라드 근방의 도로에서 자기 고급차에 태워주는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세레브랴코프와 마할린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세레브랴코프와 미샤의 악연에 대해서는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니나 크류코바 역시 가상의 인물로 당시 키로프 극장의 톱스타 프리마 발레리나이다. 옛날로 따지면 나탈리야 두딘스카야나 갈리나 울라노바, 요즘으로 따지면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나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디아나 비슈뇨바처럼 극장을 대표하는 발레리나인데 소련 시절이라 지금의 자하로바나 로파트키나보다 위상이 더 높았다.

율리야 야스미나는 미샤의 어머니이다.

 

 

맨 위 사진은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 드리워진 막. 아래 사진은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를 추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를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것. 돈키호테 사진들은 전에 많이 올려서.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다리 좀 뻗어도 되나요? 누워도 되면 더 좋겠는데... ”

 

 

 그건 미샤의 키로프 첫 시즌 봄이었다. 그때 그는 키예프와 사라토프를 거쳐 페름까지 이어진 3주 동안의 국내 투어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레닌그라드 진입로에서 미샤를 태웠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린 그 아이의 옷은 먼지투성이에 온통 구겨져 있었다. 투어 도중에 독감에라도 걸렸는지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발레학교 시절부터 그 아이는 대놓고 자존심을 세우며 내가 보낸 차를 타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날만은 예외였다. 물론 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넓고 푹신한 뒷좌석에 몸을 눕히더니 두 다리를 쭉 뻗고 두 손으로 무릎을 이리저리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 꽤 지쳤나보군. ”

 

 “ 3주 내내 버스로 끌려 다녔거든요. 엔진이 세 번 고장나고 타이어가 네 번 터졌어요. 페름에선 공연 30분 전까지도 그 고물 버스 안에 처박혀 있어야 했죠. ”

 

 “ 어쩌겠나, 인민예술가 정도 되면 대우가 좀 나아지겠지. ”

 

 

 건방진 꼬마는 코웃음을 치려고 했지만 꼴사납게 밀려오는 기침 때문에 때를 놓쳤다.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머리는 이미 까치집처럼 헝클어져 있었고 뺨은 열에 들떠 사과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왼쪽 광대뼈 언저리는 파랗게 멍이 들어 부풀어 있었다.

 

 간신히 기침이 멎었을 때 나는 그에게 손수건을 주었다. 미샤는 눈과 코를 닦은 후 손수건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 그 버스 안에는 인민예술가 한 명에 공훈예술가 두 명이 있었다고요. ”

 

 “ 그럼 불평하지 말아야지. ”

 

 

 더워서 벗어놓았던 캐시미어 스웨터를 그 아이의 목과 가슴 위로 덮어준 후 나는 광대뼈의 상처에 대해 물었다. 이미 반쯤 졸고 있었던 미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차에서 내릴 때가 되었을 때에야 내키지 않는 어조로 대꾸했다.

 

 

 “ 존경하는 인민예술가께서 남겨주신 흔적입니다. ”

 

 “ 이런 짓을 할 만한 건 세레브랴코프인 것 같은데. ”

 

 “ 그깟 공훈예술가 따윈 그럴 배짱이 없죠. ”

 

 

 싸움을 건 쪽은 세레브랴코프였다. 단순한 선배들의 위계 잡기일 수도 있었고 들어온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주역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경쟁 상대에 대한 질투일 수도 있었다. 미샤는 선배 무용수의 도발에 모욕적인 발언으로 맞섰고 과히 우아하지 못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을 떼어놓은 건 대선배인 알렉세이 마할린이었다.

 

 

 “ 마할린이 자넬 쳤다고? 그 온순한 친구가? ”

 

 “ 발레단에 온순한 인간 같은 건 없어요. ”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 어쨌든 불평하지 말아야겠군. 인민예술가에게 맞은 거라면. ”

 

 “ 불평 같은 건 안 해요. 별로 아프지 않았거든요. ”

 

 

 그날 밤 미샤는 스몰니의 내 아파트에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돌아갈 때는 내 스웨터를 입고 갔다. 모자까지 받아 썼다. 아마 외투를 줬다면 그것도 망설임 없이 입고 갔을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산책을 하려고 나왔다가 현관에서 몇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아이를 발견했다. 이른 봄이었지만 변덕스러운 레닌그라드 날씨답게 새벽부터 폭설이 쏟아졌기 때문에 미샤는 발목까지 차오른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미끄러져 넘어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새하얀 눈 위로 새빨간 핏방울이 루비처럼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페름에서 싸움이 붙었을 때 마할린은 그 아이의 코와 광대뼈 사이를 가격했던 것이다. 요행히 코뼈가 부러지거나 내려앉지는 않았다. 심지어 콧등이 부어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눈 위에 앉아 코피를 펑펑 흘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 이런데도 아프지 않았다고? ”

 

 “ 아프지는 않아요. 숨쉬기가 불편할 뿐이지. ”

 

 

 그나마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물론 알렉세이 마할린에게는 더욱 더. 며칠 동안 나는 그 작자를 고별 공연도 없이 은퇴시키고 말겠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오전 연습에 가야 한다고 우기는 미샤를 기사의 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 간단한 치료로 끝날 줄 알았지만 검사가 이어졌고 병원에서는 그 자리에서 미샤를 입원시켰다. 마할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코 때문이 아니라 폐렴 때문이었다.

 

 이틀 째 되던 날 그는 간호사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병실에서 기어나가 리허설과 정례 수업에 참석하고 그 다음날 밤에는 예정대로 무대에 올라가 춤을 췄다. 돈키호테였고 파트너는 니나 크류코바였다. 그녀는 미샤의 표현대로라면 ‘존경하는 인민예술가’였고 오랫동안 세레브랴코프의 파트너였다.

 

 

 무용계에서는 한동안 크류코바가 미샤를 낙점한 것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그날 돈키호테 공연에서 그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 밤 관객들의 환호와 충격 어린 열광을 기억한다. 그랑 파이널의 코다 무렵에는 천둥처럼 울려대는 갈채와 신음 소리, 숨이 멎는 듯한 비명들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미샤가 솔로를 마쳤을 때 무대로 날아든 꽃들 때문에 크류코바는 하마터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커튼콜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야 했다.

 

 

 극장 밖은 꽃다발과 편지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진창으로 부츠를 더럽히며 줄지어 있는 팬들로 가득했다. 주차장 한켠에는 얇은 봄 코트를 입고 머리를 스카프로 감싼 율리야 야스미나가 그 열광적인 남녀들을 힐끗거리며 서 있었다. 아들을 보러 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를 서류의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흐릿한 가로등 램프 불빛 아래에서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과 빛나는 검은 눈, 길고 미끈한 목과 호리호리한 실루엣, 초조함과 행복감이 뒤섞인 표정.

 

 

 그날 밤 팬들도 율리야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투우사를 췄던 동료가 분장실에 갔다가 고열로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뒹굴고 있는 미샤를 발견했다. 그 고집쟁이는 40도까지 열이 치솟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러 올라갔던 것이다. 혼비백산한 다닐로프가 자기 차로 그를 병원에 싣고 갔다고 들었다.

 

 

 나는 다음날 병원에서 율리야를 보았다.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나도 굳이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복도에 선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감싸고 있는 긴 손가락 사이로 결혼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나는 그녀에게 세르게이 야스민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침묵했다. 그녀가 과거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그건 미샤가 얘기하는 어둠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샤는 폐렴으로 입원해 있던 열흘 동안 일곱 번 병원을 빠져나가 연습과 수업에 참석했고 심지어 지젤 무대에도 예정대로 올라갔다. 단 한 번도 너그럽다는 평을 들어본 적이 없는 크류코바는 자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간 어린 파트너를 질투하기는커녕 지젤을 비롯해 이후 백조의 호수까지 같이 췄다. 광대뼈의 멍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고 콧대는 멀쩡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나는 그에게 대체 왜 세레브랴코프의 도발에 화를 내며 싸움으로 맞섰느냐고 물었다. 고분고분하거나 얌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상대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는 적이 거의 없는 애였으니까.

 

 

 “ 제가 배역을 얻으려고 니나와 잤다고 몰아붙여서요. 정말로 화가 났던 건 아니에요. 화를 내야 정상인 상황이라 그랬던 거죠. ”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에게 정말 크류코바와 잤느냐고 물었다.

 

 

 “ 파트너와 자면 신뢰가 깨져요. 그런 식으로 춤추고 싶지는 않아요. ”

 

 “ 신뢰 대신 다른 게 생길 수도 있지. 이를테면 사랑이라든가. 키로프에도 커플 무용수들 여럿 있지 않나. ”

 

 “ 전 사랑으로 춤추는 인간이 아니에요. ”

 

 

...

 

 

 

폐렴에 걸린 미샤가 병실을 빠져나가 돈키호테 무대에 올라갔다가 쓰러져 도로 실려간 이야기와 세레브랴코프와의 싸움 얘기는 트로이의 이야기에 다른 식으로 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94 (미샤의 첫 번째 시즌, 돈키호테, 축구팀과 군대처럼 등)

 

여기 발췌한 에피소드의 일인칭 화자인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미샤의 이야기는 전에 두어군데 다른 내용을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 나는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고 미샤를 되살려내면서 바로 이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했었다. 그래서 이 단편은 내겐 좀 특별하다.

 

전에 발췌했던 마로조프의 이야기들은 아래 :


마지막 동작이 완성되지 않은 춤, 운하를 건너는 미샤 : http://tveye.tistory.com/4485 

그가 읽었던 불가코프의 문장, 비행기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 :  http://tveye.tistory.com/4572

 

..

 

 

 

마린스키 극장(소련 시절 키로프 극장)

 

 

 

난 사실 여기 발췌한 저 소설을 쓸때 이런 이미지로 시작했다. 그건 아주 붉은 장미와 하얀 눈이었다.

하얀 눈 위에 쏟아진 붉은 피에 대해 쓸때도 마찬가지였고 저 단편 전체를 쓰는 내내 나는 장미에 대해 생각했다. 장미와 눈. 그래서 원래 이 단편의 에피그라프를 장미나 눈에 대한 시로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하얀 눈 위에 핀 빨간 장미 사진은 찍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 페테르부르크 갔을때 찍었던 이삭 광장의 붉은 장미 사진으로... :)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은 nina alovert.

 

 

돈키호테를 추는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오랜만에 아름다운 무용수들 화보 몇 장.

 

디아나 비슈뇨바.

 

 

빅토르 레베제프.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프린시펄.

이 사람은 아름다운 외모로 나를 매혹시켰으나.. 막상 무대를 보러 갔을땐 발연기로 나를 매우 실망시켰던 전적이 있다(흐흑...)

그래도 그때 그 무대(라 바야데르)에서 니키야를 췄던 보론초바가 망령의 왕국에서 갑자기 부상당해 막판에 대타로 나왔던 아나스타시야 소볼레바와 러시아 방송의 '볼쇼이 발레'(big ballet)에 출연하더니만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골인함. 내가 그때 뭔가 그 계기가 된 무대를 본 건가 ㅋ

(근데 그 라 바야데르 무대는 한마디로 재앙이었음 ㅠㅠ 레베제프의 발연기 솔로르. 얼굴만 예쁘고 춤은 딸리는 보론초바-심지어 막판 부상, 엉망인 군무, 막판에 대타로 나와 휘청거리던 소볼레바 ㅠㅠ)

그래도 이 라 실피드 복장 입고 부츠 신고 포즈 취하고 있는 레베제프는 근사해보여서 (또 외모에 혹해서) 한컷.

사진 출처는 victor levedev의 instagram.

 

사진은 Jack Devant.

세묜 츄진.

 

빠질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사진 몇 장.

발레 101.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넘겨도 마냥 근사하심

 

최근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바이에른 무대에 올랐던 지젤.

사진은 Jack Devant.

 

 

 

지젤 커튼콜. 역시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사진은 Jack Devant.

 

6월에 마린스키에서 이 사람의 알브레히트를 10년만에 다시 봤다. 이 사람은 정말 타고난 알브레히트였다. 로미오가 그랬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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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미샤와 트로이, 그들의 친구들이 여름에 여럿이 모여 기차를 타고 흑해에 놀러가는 장면을 발췌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기차 안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을 마신다.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놀러간 이 친구들은 이 장편의 도입부에서부터 함께 등장하는데, 모두들 비밀 문학 서클의 일원이다. 이 서클은 트로이와 그의 절친 알리사, 그리고 두어명이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금지된 외국 문학을 번역해 돌려 읽거나 반체제 작가, 지하출판물 등을 읽는 모임인데 주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와 여타 다른 대학들의 외국어 전공 학생, 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샤는 지인의 소개로 이 서클에 들렀다가 트로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중 소설에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트로이와 친한 친구들로 료카와 갈랴(둘은 부부이다. 주로 둘의 집에서 모임이 개최된다), 이고리(영화학교 출신. 렌필름 촬영기사), 코스챠, 스베타(미샤를 처음에 데리고 온 친구), 타냐(발레 애호가) 등이다. 그리고 미샤의 팬이라서 억지로 서클에 끼어든 레나라는 소녀가 있다. 이 친구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다같이 썰매타러 가서 논다든지, 표절작가 쥬진스키에게 이고리가 시비를 걸어 싸우는 이야기라든지, 갈랴와 료카의 어린 딸이 메밀죽 먹기 싫다고 트로이에게 떠넘긴다든지...

 

여기 올리는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흑해 가는 기차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의 주역은 미샤를 짝사랑하던 소녀 레나와, 물론, 주인공인 미샤이다. 그리고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이야기 속에서.

 

 

시간적 배경은 1973년 여름. 미샤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해 데뷔를 앞둔 시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흑해에 헤엄치러 놀러 갔을 때이다. 흑해는 예로부터 러시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였다.

 

 

** 위의 사진은 흑해가 아니고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강변 풍경이다. 작년 여름에 내가 찍은 것이다. 흑해는 안 가봐서 ㅠㅠ

 

 

** 이 에피소드는 아주 약간 15금 정도의 묘사가 있는데 그나마 그것도 여기 올리면서 내가 자체검열로 좀 수정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들은 알리사 아버지의 인맥으로 해변 근처의 방 세 개 달린 아파트를 싸게 빌렸다. 임신한지 얼마 안 된 갈랴와 료카 부부에게 방을 하나 주고 나머지는 기차를 타고 왔을 때처럼 남녀로 나눴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고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레닌그라드에서는 백야의 여름 중 운 좋은 며칠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찬란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다들 실컷 헤엄을 치고 일광욕을 했다. 알리사는 약한 피부를 보호하려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산 선크림을 발랐지만 별 소용이 없어서 사흘 째 되는 날 코끝이 홀딱 벗겨지고 어깨와 팔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갈랴가 속상해 하는 알리사를 욕실로 데려가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시장에서 구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미샤는 알리사만큼 피부가 흰 편이었지만 선크림 덕분인지 타고 난 것인지 조금 그을렸을 뿐 아무리 햇볕을 쬐고 다녀도 전혀 화상으로 고생하지 않아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긴 금발의 인형 같은 레나는 해변에서 인기가 좋았다. 또래 소년들부터 2~30대 남자들까지 다채로운 유혹이 쏟아졌다. 레나는 밀려드는 데이트 신청을 도도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가끔은 보란 듯이 잘생긴 남자를 골라 팔짱을 끼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한번은 적어도 서른 살은 된 것 같은 콧수염 기른 남자의 추근거림을 받아들여 바에서 시끄러운 재즈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그 바에는 트로이 일행도 모두 와 있었다. 물론 미샤도 있었다. 레나가 왜 그러는지는 뻔했고 타냐와 갈랴는 애가 타서 미샤를 들들 볶았다. 네가 리드를 하지 않으니 레나가 저런 사기꾼 같은 남자와 춤을 추고 있지 않느냐, 분명 유부남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수다스러운 어미새 두 마리처럼 떠들어댔다. 트로이는 그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미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적이 없는 애였지만 몹시 귀찮았는지 입술이 가느다랗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행은 미샤가 콧수염 기른 남자로부터 레나를 데리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장 연주자들 곁에 앉아 있던 거구의 여자에게 가서 춤을 청했다. 여자는 짙은 화장에 유행이 지난 얼룩덜룩하고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적어도 마흔 살은 넘어 보였다.

 

 

 친구들이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동안 미샤는 그 여자와 시끄러운 재즈 연주에 맞춰 키로프 무대에서는 결코 볼 일이 없을 춤을 췄다. 알고 보니 여자는 연주자들의 매니저였고 몇 년 전까지 바와 클럽을 전전하며 춤을 췄던 경력이 있었다. 자신들의 매니저가 오랜만에 젊은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연주자들은 신이 나서 모든 박자를 무시하고 씽씽 달리는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라 소러시아 민요와 고파크와 소련 군가를 합쳐놓은 듯한 미친 소음으로 변했고 홀은 귀를 찢는 음악과 마루를 걷어차는 발소리와 박수와 휘파람과 고함 소리로 광란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샤는 90킬로는 너끈히 나갈 것 같은 거구의 여자를 발레리나 파트너를 다루듯 가볍게 빙글빙글 돌렸고 서너 차례는 공중으로 띄웠다. 감탄과 비명, 환호와 갈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 윤곽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든 여자는 연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미샤의 리드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한참 춤이 격렬해졌을 때 여자의 구두 한 짝이 벗겨져 트로이가 앉아 있는 의자 앞까지 날아왔다. 갈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트로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 그만, 그만하라고 해. 빨리 데리고 나와. ”

 

 

 트로이는 갈랴가 레나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나는 이미 테이블에 돌아와 있었고 타냐의 팔에 안긴 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광란의 춤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콧수염 기른 남자는 어디론가 쫓아버린 후였다.

 

 

 “ 왜? 잘 추고 있는데. ”

 

 “ 잘 추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소릴 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저런 늙은 여자랑... 레나 때문에 저러는 거잖아. 이제 됐으니까 빨리 끌고 나와. ”

 

 “ 레나 때문이라니, 쟤는 그냥 춤을 추는 거야. 가만히 놔둬. ”

 

 

 트로이는 미샤를 끌고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취해 있었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광녀처럼 웃고 소리치며 홀에서 춤추고 있는 그 거구의 여인이 되고 싶었다. 저 여자는 자기 손목을 낚아채 회오리처럼 빙빙 돌리고 허공으로 밀어붙이는 저 낯선 상대가 누구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춤의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알량한 연주단 매니저 따위, 공동아파트의 방 몇 칸 따위, 배급표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아깝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리사가 트로이의 뺨을 가볍게 찰싹 때리고 물을 한 잔 주었다.

 

 

 “ 너 완전히 취했어. 물 좀 마셔. ”

 

 

 트로이는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리컵이 소리를 내며 깨졌지만 이미 다른 테이블 손님들 몇몇도 취해서 술잔을 내던져 깨며 흥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거구의 여자가 차오르는 숨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미샤는 여자가 자빠지지 않도록 재빨리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더니 공주님을 모시듯 피아노 옆 의자로 데려갔다. 연주자들이 색소폰으로 흐느끼는 듯한 신파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그는 여자를 의자에 앉히고 두툼한 손등에 열성적으로 키스를 했다. 휘파람과 박수와 고함 소리가 더 커졌다. 화장이 다 녹아내려 얼굴이 온통 시커멓고 새빨갛게 얼룩진 여자가 미샤를 껴안고 입술이 달아날 정도로 세게 키스를 퍼부었다. 트로이는 여자가 그 자리에서 미샤의 무릎에 올라앉아 치마를 걷어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가 알리사가 준 물을 마셨었나? 아니, 컵을 떨어뜨려 깨버렸지.

 

 

 여자가 미샤를 놔주었다. 그녀는 욕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황홀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에 겨워서. 트로이는 여자가 미샤를 다시 한 번 끌어당겨 안았을 때 귓가에 하염없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 착하기도 해라... 고마워. 정말 고마워. ”

 

 

 미샤가 녹초가 된 여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홀에서 걸어 나왔다. 테이블 쪽으로는 오지도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레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

 

 

 

 트로이는 그 날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데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던 것이다.

 

 

 그는 너무 목이 말라서 새벽에 깨어났다. 트윈 침대 위에 코스챠와 료카가 신발도 벗지 않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카펫 위에는 담요로 몸을 둘둘 만 이고리가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자신은 소파 위에 누운 채 바닥에 다리를 반쯤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그가 너무 커서 침대에 눕히기에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샤는 없었다.

 

 

 그는 물을 마시러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나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통약이라도 한 알 삼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갈랴를 깨워야 했다.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주스 팩을 뜯어서 단숨에 마시고 나자 갈증과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 쪽으로 나왔다가 그는 반쯤 열려 있는 안쪽 방문 사이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갈랴와 료카의 방이었다. 혹시 임신 초기의 갈랴에게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녀는 바에서도 안색이 좋지 않았었다. 걱정이 된 트로이는 문가로 다가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그는 료카가 자기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료카는 갈랴와 함께 있지 않은 거지?

 

 

 그는 문 뒤에 멈춰 섰다. 갈랴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건 레나였다. 작은 침실 한가운데,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마루 위에 서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커튼이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램프를 켜놓은 듯 환했다. 침대 곁 의자에 미샤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갈랴는 아픈 것이 아니었다. 료카와 짜고 방을 내준 것이다. 레나와 미샤를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는 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딱 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가려진 채 열린 문 너머로 멍하게 침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나는 하얀색의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따금 밀려나오는 울음 때문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트로이는 레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미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샤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뒤엉켜 검은색으로 물들인 월계관이라도 씌워놓은 것 같았다. 바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과 목은 시커멓게 번진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바에서 춤췄던 여자가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그 얼굴을 닦지도 않고 어디를 쏘다니다 들어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겨진 얇은 셔츠 소매는 어깨 바로 아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레나는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화를 내다가 울다가 또 낮게 웃기도 했다. 트로이는 레나가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렇게 달빛 아래 하얀 잠옷을 입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으면 인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도. 그 침실 마루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작은 소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빨간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의 지나이다 세도바조차도 아무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얇은 잠옷 사이로 날씬한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레나에게 뭐라고 한두 마디 했지만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달려가 미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팔을 허리에 두르며 몸을 밀착시켰다. 다른 손을 들어 미샤의 지저분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화장품 얼룩을 닦아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레나는 어깨를 세차게 튀기더니 반쯤 뛰어오르듯 발끝으로 서서 그의 턱을 감싸 쥐고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절망적이고 서툰 키스였다. 레나는 키스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애였다. 하지만 미인이었고 인어였다. 미샤는 레나를 떠밀지 않고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트로이는 그 애가 여자를 품에 안고 제대로 된 키스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로미오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순진해빠진 소년은 절대로 그런 키스를 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뗀 후 미샤는 레나의 포옹을 풀지도 않고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뭐라고 속삭였다. 레나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팔을 풀고 미샤에게서 두 발짝 물러났다. 날카롭게 숨을 몰아쉬더니 발을 한번 굴렀다. 그리고 긴 머리채를 두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격하게 외쳤다.

 

 

 “ 나도, 나도 다른 애들 못지않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사귀어 달라는 것도 아냐. 그래달라는 게 아니라구! ”

 

 

 레나가 숨을 쌕쌕거리면서 팔을 들어 올려 잠옷을 벗었다. 하지만 단추가 머리에 걸려 잘 벗겨지지 않았다. 흐느껴 울면서 레나는 머리에 걸린 잠옷 단추를 거칠게 잡아 뜯었고 술 취한 여자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옷을 벗어 내팽개쳤다. 달빛 때문에 작고 날씬한 레나가 은백색 조각상처럼 반짝거렸다. 트로이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레나가 조그만 체구치고는 몸매가 좋다고 생각했다.

 

 

 레나는 다급한 나머지 부끄러움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발레리나라도 된 양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미샤에게 다가가 목을 감고 매달렸다. 어깨와 가슴을 미샤의 셔츠 앞자락에 문지르며 귀 아래와 목덜미에 뜨겁게 입을 맞췄다. 트로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타들어갔다.

 

 

 그때 미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러지 마, 후회하게 될 거야. ”

 

 “ 아니야. 그렇지 않아. ”

 

 “ 크세니야. 그 여자 이름이야. 아까 홀에서 춤춘 여자. 같이 있었어. 내일도 같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 ”

 

 

 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갑작스럽게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 여자? 그 코끼리 같은 여자? 그 늙은 여자? 같이? 같이 있었다니? 그 여자랑 뭘 어쨌는데? ”

 

 “ 크세니야랑 잤어. 내일도 갈 거야, 그 여자가 원하면. ”

 

 

 레나가 미샤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두 손으로 가슴팍을 떠밀며 발로 걷어찼다.

 

 

 “ 나가! 꺼져버려!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잠옷으로 몸을 가리며 비극 여배우처럼 울부짖었다.

 

 

 “ 그냥 싫다고 할 수도 있었잖아! 왜 그런 지저분한 말을 하는 거야? 넌 감정도 없어? 끔찍해! 끔찍하고 더러워! ”

 

 

 미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연민이나 미안함, 혹은 분노 따위의 감정이 전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으므로 설령 울고 있다 해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는 한숨조차 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해. ”

 

 

 그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

 

 

재즈 밴드 매니저이자 옛 댄서 크세니야와 미샤의 이야기는 이 흑해 에피소드 후반부에 좀더 이어지는데 레나의 이야기와는 좀 별개라서 올리지 않았다.

 

..

 

 

(가엾은) 레나가 등장했던 이야기들은 아래 링크. 소설 속에서 아래 순서대로 전개된다.

 

http://tveye.tistory.com/4050 :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그리고 친구들

http://tveye.tistory.com/4947 미샤와 지나이다의 졸업 무대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가는 기차, 새로 온 인간, 새로 온 천사

 

 

 

..

 

 

무용수들 사진 몇장.

 

 

 

아르춈 옵차렌코

 

 

디아나 비슈뇨바

 

이반 바실리예프

 

 

아래 세장은 밴드 즉흥 연주에 맞춰 신나게 팔짝거리며 춤추는 미샤와 크세니야를 생각하며 올려봄. (하긴 크세니야는 많이 팔짝거리진 못했겠지만 ㅠㅠ)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게 위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된 고파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 민속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예브게니야 오브라초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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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얼마 전 독일 바이에른에서 첫 시즌을 시작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그의 바이에른 무대 데뷔작은 지젤.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췄다.

 

6월에 마린스키에서 이 사람이 추는 지젤의 알브레히트를 보았다. 내가 제일 처음 봤던 이 사람 무대도 지젤이었다. (10년 전!) 이 사람의 알브레히트는 정말 매혹적이다!

 

사진은 모두 Jack Devant. 캡션에도 있음.

 

 

 

 

 

 

 

 

:
Posted by liontamer




마음의 위안을 위한 무용수들 사진 몇장
디아나 비슈뇨바. 마린스키 앞에서. 사진은 Mark Olich.

아아 나도 여기 자주 갔는데.. 역시 세계 최고 발레리나의 자태는 넘사벽... 너무 아름답구나 ㅠㅠ (난 여기서 사진 찍어도 그저 운하 앞의 토끼 한마리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황금노예. 사진은 alex gouliaev.

발로쟈, 요즘 복근 운동 열심히 하더니 보람 있구나 :)






젊은 시절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당신때문에 러시아어 전공하게 됐는데 부디 꼭 한번만 실제로 볼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해적의 알리.
어머 이 사람 이렇게 멋있게 나온 화보 드문데...





마리야 아바쇼바. 에이프만 발레단 간판 발레리나.
안나 카레니나 출때 봤는데 딱 에이프만의 페르소나 무용수였다. 늘씬하고 길고 낭창낭창하고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
Posted by liontamer

 

 

 

 

(사진은 프라하 로레타 사원에서 내가 찍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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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가끔 발췌했던 트로이와 미샤가 등장하는 장편의 중반부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지난번에 지나이다가 병실의 미샤를 면회하러 온 이야기(http://tveye.tistory.com/5309)를 올린 적이 있는데 이 에피소드는 그 이야기 직전에 있었던 일과 미샤의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샤는 사적인 일로 운나쁘게 부상을 입고 트로이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트로이는 그를 보살펴주고 발췌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미샤의 오랜 애인이자 주치의인 유리 아스케로프(미샤가 부르는 애칭은 유라)가 들러서 그를 치료해주고 돌아간 직후이다. 트로이는 진통제 약물에 취한 미샤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기억들을 들춰낸다. 그리고 미샤가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 발레학교를 졸업하기 몇달 전 겪었던 일에 대해.

 

..

 

 

나는 이 소설을 2012년 겨울부터 2013년 초까지 썼다. 당시 나는 몸이 아파서 잠시 일을 쉬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좀 힘든 일들이 있기도 했다. 물론 지금과는 좀 다르지만. 그리고 2012년 겨울은 '그' 2012년 겨울이었다. 

 

이 소설을 마친 후 얼마 있지 않아 잠시 프라하에 가 있었다. 거기서 이 소설과 현재의 가브릴로프 본편을 잇는 프리퀄을 구상해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아래 에피소드 중 후반부에서 KGB 심문관 그라도프의 독백 일부를 발췌하며 이런 메모를 남긴 적이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집단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여행을 비롯해 교련, 운동회, 매스 게임 등등을 모두 싫어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주의의 횡포를 견딜 수가 없다. 아니, 이게 꼭 횡포가 아닐 수도 있다. 순기능적인 면이 강조될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횡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겐 그게 횡포였다.

 

직장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우리 회사는 그런 면이 꽤 덜한 편이라 다행이지만. 그래도 부임해오는 임원에 따라 가끔 주말 산행이 생겨나기도 했다. 나는 '조직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단체행동이 사실은 강압이며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주말이 아니라 해도, 본래 회사에서 봄이나 가을에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체육대회나 산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게을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난 줄을 서서 다 같이 뭔가를 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집단 행동을 함으로써 단결력이 강화되고 '우리'라는 끈끈한 정이 생겨난다는 말을 믿지도 않는다. 그래본 적이 없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며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집단 행동을 통해 '우리'라는 이름의 뜨거운 결속력을 획득하고 팀으로서 거듭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쪽에 포함되지 않았다. 단 한번도. 아마 내가 소련 시절에 태어났다면 정치 이념이나 먹고살기 힘든 사회나 그런걸 다 떠나서 그 망할 놈의 집단주의 때문에 미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을 것 같다.

 

작년부터 쓰고 있는 시리즈의 주인공에게도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물론 그는 나와는 꽤 다른 인물이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주의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래서 보안위원회의 어느 인물은 어느 날 그 애를 불러다놓고 이런 말을 한다. '애'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이 저 당시 주인공은 아직 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다.

 

 

... 그런데 내가 아주 미워하는 애들이 있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이토록 선량하고 교양 있는 나조차도 그런 녀석들은 아주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그건 말이지, 혼자 다니는 놈들이야. 모두가 노래할 때 혼자 침묵하는 녀석, 다같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릴 때 혼자 뒤돌아 서 있는 녀석, 동지들끼리 모여 차를 마실 때 길거리로 사라지는 녀석. 가끔 가다 보면 꼭 그런 인간이 있어. 차라리 떠들고 선동하는 놈들이 나아,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여럿이 모여 있으니까. 그리고 무리 짓는 인간들은 언제나 소비에트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야. 문제는 바로 혼자 다니는 애들이야. 도무지 집단에 끼어들지 않는 놈, 미제 자본주의자들의 타락한 정신을 따라가는 놈. 줄을 서는 게 싫다는 이유로 빵과 우유를 사러 가지 않고 꼬박 며칠 동안 처자식을 굶기는 놈, 존경하는 레닌 동지와 레오니드 일리치 동지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건방진 놈들. 차라리 소리 높여 욕하는 놈들이 훨씬 나아. 언제나 혼자 있으려고 하는 놈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이 세상에서 혼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놈들, 그런 놈들이 제일 나빠....

 

 

저 자의 장광설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물론 저 설교가 주인공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저때 꽤 혼이 나고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 애는 여전히 '혼자 다니는 놈'으로 남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날 메모의 전문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1948 (2013.3.22 금요일 저녁 : 여행 준비 중, 혼자, 우리, 집단, 샐러드 등등)

 

 

..

 

 

내가 왜 지금 이 에피소드를 발췌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에피소드는 이 소설에서 가장 우울한 파트 중 하나이고, 또 내밀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블로그에 올리거나 타인에게 공개하는 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이 이야기가 그때도, 지금도, 아마 이후에도 내겐 중요하다. 여러 측면에서 그렇다. 아마 나는 의사에게 그냥 이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어주고 싶었던 적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한번쯤은.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글쓰기란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올리고 있는지, 솔직히 나도 머리 아프다.

 

모범적으로 말해보자면, 아마 글쓰기가 양날의 검이며 사적인 행위인 동시에 타인을 향한 외침이기 때문이겠지.

 

 

..

 

 

 

언급되는 이름 순서대로. 여기서 표트르 일리치와 레오니드 일리치를 빼고는 모두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루뱐카와 프시후슈카는 실재했고.

 

표트르 일리치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이다. 미샤는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을 이름과 부칭을 붙여 부르는 버릇이 있다.

 

루뱐카는 모스크바의 KGB 본부 속칭이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몇차례 언급되었고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도 등장했던 공산당 고위 간부이다. 모스크바 쪽 의원이며 KGB 출신으로 미샤의 후원자이자 정부이다.

 

베리야는 스탈린 시절 비밀경찰의 권력자로 온갖 횡포와 수탈, 어린 소녀들에 대한 농락 등 각종 범죄를 자행한 인물이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마로조프는 레닌그라드 쪽 의원으로 역시 고위 당 간부이며 미샤가 소년 시절부터 관계를 맺어온 사람이다. 이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된 단편을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그라도프가 그를 추기경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진짜 추기경은 당연히 아니고 정치계에서 그가 가진 별명 중 하나이다. 서리의 왕도 마찬가지이다.

 

니콜카는 미샤의 정부 중 하나이다.

 

레오니드 일리치 동지는 당시 소련 최고 권력자인 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이름이다.

 

세르게이 야스민은 미샤의 아버지이다.

 

프시후슈카는 정신교화 수용소이다.

 

 

..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30분 쯤 후 미샤가 깨어나 부엌으로 왔다.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남아 있던 식은 차를 정신없이 마셨다. 갈증이 가시지 않는 듯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보드카 병을 움켜쥐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트로이는 술병을 뺏지도 않고 놔두었다. 이미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지치고 취해서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미샤가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려고 했기 때문에 의자에서 일어나 저지해야 했다.

 

 

“ 더 토하고 싶어? ”

 

“ 석회질이 마약을 걸러내 줄 거야. ”

 

“ 대신 누가 좋아하는 작곡가처럼 콜레라에 걸려 죽겠지. ”

 

“ 내 앞에서 표트르 일리치를 모독하면 안 되지. 그리고 이건 운하 물이 아냐, 권위 넘치는 레닌그라드 수도국에서 틀어주는 물이야. ”

 

 

트로이는 싱크대를 자기 몸으로 가로막았다.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이면서 두통을 견디지 못해 보드카를 한 병 더 땄다. 이고리와 코스챠가 지난번에 싸들고 왔던 술이었다. 미샤가 손을 뻗지 못하게 하려고 손을 높이 쳐들어 병째로 마셨다. 미샤는 술에 흥미를 잃은 듯 끓인 물을 컵에 따르고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평소처럼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이른 새벽이었기 때문에 부엌에 깔려 있던 어둠 위로 푸르스름한 빛이 스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을 마신 후 미샤가 의자 옆 바닥에 앉았다. 트로이의 무릎에 기대면서 생각난 듯 말했다.

 

 

“ 좋지 않아, 그렇게 많이 마시는 건. ”

 

“ 많이 마시는 게 아니야. 네가 술이 약한 거지. ”

 

“ 충분히 많이 마시고 있어. 이고리보다 더 심해. ”

 

“ 난 걔들처럼 매일 마시지 않아. ”

 

“ 곧 매일 마시게 될지도 몰라. ”

 

“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게다가 난 춤을 추는 인간도 아니잖아. ”

 

“ 아... ”

 

 

미샤가 침묵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기댄 채 두 팔로 의자 다리와 그의 무릎을 끌어안았을 뿐이었다. 그 포옹이 너무 세차고 부드러워서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갑자기 울고 싶었다.

 

“ 그때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

 

 

그는 차마 루뱐카라고 묻지 못했다.

 

 

미샤가 대답해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약 기운에서도 어느 정도 풀려나 있었고 평소 같으면 결코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을 드러낸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조금 전에 던졌던 그의 정부들에 대한 쓸모없는 질문들처럼. 차라리 그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쇼이에 갔었어, 계약하자고 해서. 문화국에서도 불렀고... 스비제르스키도. ”

 

“ 스비제르스키는 그때부터 알았어? ”

 

“ 아니, 71년인가 콩쿠르 때부터. 그때 후원자였거든. 그래서 그 개자식이 콩쿠르 출신 애들을 모아서 크레믈린 궁전 강당에서 춤을 추게 만들었어. 이틀 연속으로. 문화국 간부들이랑 자기 서클 패거리들 앞에서. 자기 집에서 파티도 하고. 거기서도 춤추게 시키고. ”

 

“ 왜 집에까지 데려가서 그런 걸 시키는 거야? ”

 

“ 그놈들 많이들 그래. 요즘도 가끔 가, 별장들에. 나만 그런 거 아냐, 극장에 있으면 그런 일이 많아. ”

 

“ 베리야 같은 놈들. ”

 

“ 꼭 그런 건 아냐. 그냥 여흥이 필요해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아. 다행히 난 여자가 아니니까 같이 자야 하는 일은 훨씬 덜하지만. ”

 

“ 그럼 볼쇼이는 잠깐이고 내내 당 간부들에게 끌려다닌 거야? ”

 

“ 음, 그래야 했는데 두 번째 날 크레믈린 무대에 안 갔어. "

 

“ 뭐라고 핑계를 대고? ”

 

“ 무슨 핑계가 필요해, 난 학생이었는데. 아직 발레 단원도 아니었는데. 그놈들에게 그럴 권리가 어디 있어. ”

 

“ 그럼 말도 안하고 그냥 숨었어? ”

 

숨지는 않았어. 트레치야코프에도 가고 전에 알던 사람들도 만나고 아르바트에서 놀았어. 내가 어디 있는지 다 알았을 걸. 어두워지니까 누가 나타나서 스비제르스키 집 파티에 데려갔으니까. 심지어 내가 제일 빨리 도착했어. ”

 

“ 그럼 파티에서는 춤춰야 했겠네. ”

 

“ 안 췄어. 도망쳤어. ”

 

 

미샤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막았다. 다시 역겨워지는 것 같았다.

 

 

춤추는 것도 모자라서 그 위선자들 옆에 앉아 귀염 받으며 밥 먹고 헛소리 듣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의상으로 갈아입으러 갈 때 빠져나와서 정원사 자전거 훔쳐 타고 시내로 돌아왔어. 레닌그라드 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가방이랑 지갑을 전부 거기 놔두고 와서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간 거야. 그때 무임승차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자전거를 팔아치울 수도 있었는데 그날 밤에는 생각을 못했어. ”

 

“ 그래, 가방 챙겨다 준 사람은 있었어? ”

 

“ 없었어. 아침에 자전거를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나서 역으로 가려고 하는데 경찰이 들이닥쳐서 차에 태웠어. ”

 

“ 자전거 훔쳐서? ”

 

 

미샤가 그의 무릎을 더 꽉 끌어안았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 이제 그만하자. 졸려. ”

 

“ 얘기해봐. 그럼 훨씬 나아질 거야. ”

 

“ 뭐가? 얘기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는데. 기분이? ”

 

“ 그래, 기분이. ”

 

“ 글쎄. 그냥 다시 기절하게 해줘. ”

 

“ 원한다면 귀 막고 있을게. 저쪽에 가서 얘기해. ”

 

“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해야 돼? ”

 

“ 그럼 네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

 

“ 교회에 가서 고해하는 것처럼? ”

 

“ 그래. ”

 

“ 사제도 없이 종탑에 대고? ”

 

“ 어차피 무신론자라며. ”

 

“ 문학적 표절인데. ”

 

“ 난 푸쉬킨이 아니니까 좀 봐줘. ”

 

“ 난 푸쉬킨보다 널 더 좋아해. ”

 

 

 

트로이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미샤의 머리를 감싸안고 성한 쪽 뺨에 입을 맞췄다. 한 손으로 어깨와 등을 쓸자 손바닥에 붕대가 만져졌다. 니콜카를 죽여버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유리 아스케로프도. 스비제르스키도. 그리고 마로조프, 이름과 부칭으로 불리는 그 도살자를.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던 다른 무수한 정부들과 애인들을. 그들 모두가 미래에서 온 살인자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를 파괴하고 상처 입히고 마침내 울게 만들고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영영 도망쳐버리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샤가 코끝으로 그의 귀를 가만히 비볐다. 때로 그에게는 그런 조그만 동물 같은 면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트로이는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강렬하게 밀려오는 보호 본능을 느꼈다. 그건 애정보다 더 원시적이고 깊은 감각이었는데 어쩌면 결코 생겨나지 않을 그 자신의 아이와 마주하게 될 때에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미샤가 딱딱한 부엌 바닥에 길게 누웠다. 여전히 트로이의 귀와 목덜미 사이에 머리를 묻은 채 몸을 꼭 밀착시켰다. 두툼하게 감겨진 붕대가 와 닿았다, 비정상적인 열기가 발산되는 맨몸도. 잠옷을 찢어 내던진 후 그는 짧은 복서 팬티 하나 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트로이는 담요를 가지러 일어나는 대신 자기가 입고 있던 제니트 티셔츠를 벗어 그에게 덮어씌웠다. 미샤는 셔츠를 입혀주도록 잠깐 머리와 팔을 들었을 뿐 다시 그에게 바짝 기댔다. 다치지 않은 쪽 다리로 그의 다리를 감았다. 한순간 트로이는 아스케로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 같으면 할 거야, 그것도 오늘. 그래서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때 아스케로프의 그 말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미샤의 부어오른 입을 자신의 키스로 막고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그 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다시 몰아넣었을 것이다. 그 열기가 깊게 찔린 상처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애의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안았을 것이다. 오로지 위안과 평온을 위해. 그것도 미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위안을 위해, 귓가에 웅웅거리는 니콜카의 고함 소리들을 잠재우고 전신으로 부드럽게 스며들 이기적 평온함을 위해서. 그건 그와 어둠 속의 그림자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마침 유리 아스케로프의 말이 떠올랐고 그는 그 타오르는 애의 몸을 취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들도 함께 정지했다.

 

 

 

*    *    *

 

 

 

거긴 일반적인 사무실이나 다름이 없었어.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었어. 서랍과 캐비닛이. 회색 벽이 있었어. 그림도 걸려 있었지. 말레비치 모사품이. 거기 그자가 기다리고 있었어. 성은 그라도프. 이름은 몰라. 직위도 계급도. 채찍을 몇 갈래로 꼬아서 맨 위에 이콘 후광처럼 둥그런 머리를 얹어놓은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그 실루엣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 키도, 체격도, 얼굴도, 아무 것도. 기억나는 건 채찍 위의 이콘 후광뿐이야. 건드리면 굴러 떨어질 것처럼 보였어.

 

 

심지어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아. 그는 낮고 툭툭 긁히는 어조로 말했는데 그 모든 말들은 타자기로 찍어내는 단어들처럼 하나하나 튀어나와 지루한 공산주의 선언문처럼 눈앞의 잿빛 벽에 등사되는 것 같았어. 나는 그의 말을 듣는다기보다는 읽었어. 어쩌면 그건 주사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자의 사무실에 들어오기 직전에 비서실에 앉아 있던 어떤 여자가 내 소매를 걷더니 바늘을 찔러 넣었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검역이나 예방접종 같았어.

 

 

그는 맨 처음에 내게 왜 볼쇼이와의 계약을 망설이느냐고 물었어.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대답했어. 아직 졸업식도 하지 않았고 다른 극장들과의 면담도 많이 남아 있다고. 그러자 그자가 말했어. 레닌그라드에 남고 싶은 이유가 드미트리 마로조프 때문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어. 모스크바로 온다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기꺼이 새 후원자가 되어줄 거라고 했어.

 

 

그때 난 그자를 한 대 치려고 했던 것 같아. 내게 그런 이름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난 결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에게 내 무대를 봐달라고 한 적이 없어. 만일 그 서리의 왕이 단 한번이라도 학교나 극장에, 콩쿠르에 내 이름을 비추며 압력을 가한 적이 있었다면 난 다시는 그를 보지 않았을 거야. 나와 춤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없었어. 스비제르스키는 또 뭐란 말야, 그자가 크레믈린 무대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자기 파티에 와서 춤추게 강요한다고 해서 거기 끌려간 애들 전부가 그자의 노예가 되는 건 아니잖아. 걔들은 그저 명령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야. 그 역겨운 인간이 지폐와 금붙이를 쌓아놓고 꼬드긴다 해도 결코 그런 놈을 후원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거야.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내 주먹은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날아갔어. 그라도프는 웃기만 했어. 그리고는 캐비닛을 열고 서류철을 꺼냈어. 상투적이지, 안 그래? 꼬박 10분 동안 그는 내 서류를 읽었어, 라디오 방송처럼. 별로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었어. 그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한 부분은 읽지 않았어, 어쩌면 아예 적혀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유라에 대해서는 단 한 줄, 시립병원의 외과의라고 언급했어.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 수 있을 거야. 그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한 인간을 서류에서 지워버릴 수 있어. 그리고 서류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은 인생에서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지.

 

 

나는 그들이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라도프는 그저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내 행적을 짜맞추고 있을 뿐이었어. 그래서 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처럼 굴었어. 내게는 여자 친구들이 많았어. 학교 파트너들도. 그라도프도 그걸 알고 있었어. 그는 별로 흥분하거나 동요하지도 않고서 나중에 확인해보자고 했어. 그런데 그 ‘나중에’란 말이 갑자기 너무 무섭게 느껴져서 난 깜짝 놀랐어. 난 협박에 민감한 편이 아니야,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그런데 그 순간에는 너무 무서워서 기절할 것 같았어.

 

 

그건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야.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지고 있었어. 그제야 난 내가 그라도프의 말을 듣고 있지 않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의 얼굴은 이콘 후광처럼 단번에 그려 넣은 하나의 원에 지나지 않으며 그 원은 여러 갈래로 꼬인 채찍 위에 얹혀서 좌우로 까딱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난 다시 한 번 손을 들어올려 보려고 했어. 하지만 팔이 너무 무거워서 아래로 축 처지기 시작했어.

 

 

그라도프가 내게 의자에 앉으라고 했어, 자기 사무실에서는 누구나 서 있어야 하지만 내겐 특별히 허락해주겠다고 했어. 그런 말을 듣고 의자에 앉을 놈은 세상에 없을 거야. 그런데 난 앉았어. 마치 내 몸이 나와 분리되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어.

 

 

그자가 서랍을 열더니 다른 서류를 꺼냈어. 낡고 오래된 종이 뭉치를. 그는 직인이 찍힌 그 서류 앞장을 내게 잠깐 보여주었어. 그리고 내 출신 성분에 대해 말했어. 12년 전 오늘 체포되어 사라진 세르게이 야스민의 서류를 읽었어. 그의 죄목과 재판정에서의 그의 항변, 수용소에서의 불복종과 징계, 치료, 그리고 죽음에 대해 연대기를 읽듯 기술했어. 그때쯤 난 이미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엎드려 있었어.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그라도프가 다가왔어. 의자에 앉았어. 이콘 후광이 이제 위아래로 까딱거리며 여러 겹의 원으로 변했어. 서류 뭉치로 내 머리를 건드렸어.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바스락거렸어. 난 아마 영원히 그 빛바랜 종이 위에 떠올라온 글자들을 기억하겠지, 갈색의 둥근 커피 얼룩이 핏자국처럼 번져 있는 그 조서의 맨 윗줄에 씌어 있는 이름을. Е 모음이 반쯤 비스듬하게 걸려 있고 М의 끝부분이 반쯤 잘려나간 형태로 타이프된 세르게이 야스민이란 이름을.

 

 

후광을 얹은 채찍이 천천히 몸을 흔들면서 노래하듯 말하기 시작했어. 그건 장조였어, 그것도 4분의 2박자짜리 경박한 춤곡이었어.

 

 

 

 

아,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동지. 난 언제나 당과 사회를 비판하고 선동을 일삼는 놈들에겐 연민을 느끼지. 뭐 그놈들을 미워해본 적은 없어, 왜냐하면 그런 놈들 대부분은 구제불능의 알콜 중독자이며 수탉처럼 제 잘난 맛에 취해 사는 얼간이들이기 때문이지.

 

물론 그놈들은 몽땅 잡아들여야 해, 대부분은 재판에 회부할 필요조차 없어. 많은 경우 술병을 빼앗으면 얘기는 끝나. 어떤 놈들은 두들겨 패주면 되고, 어떤 놈들은 좀 귀찮긴 하지만 수용소에 처넣어 버릇을 고쳐주면 돼. 다들 정신을 차려. 선동자들이 가장 쉬워. 나사를 반대로 돌려주기만 하면 최고의 프로파간다 기술자가 될 수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내버려둔다 한들 큰 문제도 없어. 가끔 몇 놈을 붙잡아 들여 본보기를 보여주면 될 뿐, 그냥 떠들게 내버려둬도 괜찮아. 골치 아프게 굴면 그냥 미국 따위 제국주의자 놈들에게 추방해버리면 돼.

 

 

그런데 내가 아주 미워하는 애들이 있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이토록 선량하고 교양 있는 나조차도 그런 녀석들은 아주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그건 말이지, 혼자 다니는 놈들이야. 모두가 노래할 때 혼자 침묵하는 녀석, 다같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릴 때 혼자 뒤돌아 서 있는 녀석, 동지들끼리 모여 차를 마실 때 길거리로 사라지는 녀석. 가끔 가다 보면 꼭 그런 인간이 있어. 차라리 떠들고 선동하는 놈들이 나아,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여럿이 모여 있거든. 그리고 무리 짓는 인간들은 언제나 소비에트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야.

 

문제는 바로 혼자 다니는 애들이야. 도무지 집단에 끼어들지 않는 놈, 미제 자본주의자들의 타락한 정신을 따라가는 놈. 줄을 서는 게 싫다는 이유로 빵과 우유를 사러 가지 않고 꼬박 며칠 동안 처자식을 굶기는 놈, 존경하는 레닌 동지와 레오니드 일리치 동지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건방진 놈들, 차라리 소리 높여 욕하는 놈들이 훨씬 나아. 언제나 혼자 있으려고 하는 놈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이 세상에서 혼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놈들, 그런 놈들이 제일 나빠.

 

그런데 그런 놈들 중에서도 더 악질적인 애들이 있어. 그건 바로 뭔가 내세울 게 있는 인간이야. 혼자 다니는 놈들 대부분은 병신들이야,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울증 환자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 가끔 가다 뭔가 잘못된 경우가 있어. 누가 봐도 잘난 놈인데, 미래에 소비에트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당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난 놈인데 궤도를 잘못 탄 거지.

 

난 그런 놈들을 오랫동안 유심히 관찰했어. 애초부터 우리 안에 끼어 있어야 정상인데 가족이나 환경을 잘못 만나면 그렇게 되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어. 예를 들어, 당원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교육을 잘 받고 콤소몰 경력도 나쁘지 않았던 남자가 당과 서기장과 국가 정책을 비방하며 선동을 일삼는 거야. 맨 처음엔 알콜 중독자가 아닌가, 나사를 조여주면 우리 쪽으로 돌아올 선동가 타입이 아닌가 의심을 해보지만 재판과 심문 결과 그자는 혼자 다니는 놈에 더 가깝다는 게 밝혀지지. 그런 인간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수용소의 강제 노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그래서 그자는 프시후슈카로 후송되지.

 

그럼 그런 인간을 아버지로 두고 자란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운 좋게 어릴 때 아버지가 체포되었으니 완전한 악영향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분명히 영향이 있었을 거야. 이미 얼룩이 튀어버린 거야. 그래서 엇나가기 시작하지. 이탈을 반복하고 춤을 핑계로 피오네르 활동과 이념 교육은 완전히 무시하지. 아마 콤소몰에도 가입하지 않으려고 버티겠지. 집단의 신성함 자체를 무시하고 언제나 혼자 생각하고 혼자 머리를 쳐들고 걸어가지. 그런데 재능이 있어, 그것도 눈을 의심할 만큼 분명하고 강력한 재능이. 그런 애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애들이라면 평생 영광으로 생각할 크레믈린 무대와 의원님의 초청을 헌신짝처럼 무시하고 달아나는 젊은이는 과연 우리에게 필요하기나 한 존재일까?

 

혹은, 이 건방진 녀석은 그저 자기를 후원하는 어마어마하게 높은 자리에 계신 각하의 위세를 믿고 까불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일은 간단하지, 각하들은 도처에 존재하며 언젠가는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높으신 분들이야 그런 꼬마들이 조금만 나이를 먹거나 미모가 손상되자마자 다른 애들로 갈아타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야스민 동지. 네가 어느 쪽인 건지. 아, 넌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한다면서. 볼쇼이에 낸 서류에도 이름을 줄여 기재했던데. 부칭은 약자조차 쓰지 않았더군, 미샤 야스민. 그 볼품없이 짧은 이름이 전부였어. 그게 반동으로 체포되어 죽은 아버지 이름과 연관되는 게 싫어서라면 칭찬할 만한 일이겠지.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래, 널 뭐라고 불러야 할까. 미샤라고 부르기는 싫은데. 내가 아는 수많은 미샤들은 전부 모범적이고 착하고 순종적인 남자들이었지. 그건 보수적이고 영웅적인 소련 인민들의 이름이야. 차라리 미하일루슈카나 미슐랴는 어때? 그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는 어떻게 부르나, 귀여워하며 미셰츠카라고 부를까? 상투적으로 꼬마 비둘기, 작은 태양? 아니면 무대 위의 천사라고? 그래, 아마도 천사라고 부르겠지, 그게 높으신 분 성향에 더 맞을 테니까. 하긴 이름 따윈 아예 부르지도 않을 수도 있어. 그 얼음의 제왕은 자길 놀라게 하는 애들을 좋아하지. 그중 예쁜 애들은 데리고 자고. 계집애든 사내애든 관계없이.

 

오해하지 마, 미하일루슈카. 난 추기경 각하에겐 전혀 악감정이 없어. 우리도 그런 분은 건드리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받들어 모신다고 해서 너까지 가만히 내버려둘 거라고 믿는다면 그건 오산이야.

 

 

 

 

그라도프가 내 팔을 잡아 일으켰어. 분명 발이 땅에 닿는 게 보였어, 내 발로 걷고 있는데도 다리에 감각이 하나도 없었어. 잿빛 벽 구석에는 문이 하나 더 있었어. 그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어. 작은 직사각형 문이 열리자 냉기와 어둠이 뻗어 나왔어. 그 어둠이 너무나도 농밀하고 새까매서 냄새와 질감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어. 왜 내 발이 바닥을 딛는 것은 느껴지지 않으면서 그 어둠의 촉감은 그토록 생생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 그러나 그 어둠은 내게 낯익었어.

 

 

내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어. 잠시 어둠 속에 잠겼을 때 그라도프의 숨결이 오른쪽 귓가에 와 닿았어.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 같은 숨결이었어. 그는 내게 혼자 움직여 보라고 했어. 걸어보라고, 무대 위에서처럼 회전하고 뛰어올라보라고 했어. 그럴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 난 물론 그 개 같은 놈의 말을 무시하려고 했지. 그런데 내가 움직이지 않은 건 그놈의 명령에 불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난 말 그대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어. 심지어 내 힘으로 서 있는 것도 아니었어. 그라도프가 내 양쪽 어깨를 꽉 잡은 채 벽에 기대어 세워 놓고 있는 거였어.

 

 

도처에 어둠이 있었는데 그 어둠은 안팎에서 밀려나오고 있었어. 그때 그라도프가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켰지. 그 방은 먼젓번 사무실보다 작았고 정방형이었어. 그건 끔찍한 방이었어.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방. 바닥조차 흰색이었어. 벽에는 결박 도구가 고정되어 있었고 이상한 모양의 의자가 하나 있었어. 스위치들과 전선들이 보였어. 방 한가운데에는 크롬으로 도금된 듯한 직사각형의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어. 그리고 또다시, 그 어둠이 밀려들었어. 눈부신 형광등 빛과 정방형의 흰색들 사이에 그 어둠이 있었어.

 

 

안드레이, 나는 그게 뭔지 잘 알아. 그 어둠이 뭔지. 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 어쩌면 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런데 그라도프가 그걸 알았던 걸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놈은 그저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관료에 지나지 않아. 그놈이 협박에 사용한 문구들은 모두가 이전에도 신물 나게 써먹었던 표현에 지나지 않아, 분명 그놈들에게는 복사해 돌리는 심문 매뉴얼이 있을 거야. 그라도프는 그 어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그 작자는 그저 약물을 썼을 뿐이야. 날 겁주기 위해. 길을 들이기 위해. 혹시라도 미래에 드러날지도 모르는 반항의 싹을 꺾기 위해. 그게 전부야. 하지만 왜 그런 공력을 들이는지 알 수가 없었어, 아직 졸업조차 하지 않은 내게, 극장 계약도 하지 않은 내게. 아마도 내 행동에 꼭지가 돌아버린 스비제르스키가 친분이 두터운 KGB 심문관을 매수해 내 버릇을 고쳐주라고 했던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를 실각시키기 위한 무수한 시도들의 일부였을지도.

 

 

그라도프가 약물에 대해 말했어. 우리 아버지에 대해 말했어. 프시후슈카에서 아버지에게 놓은 주사에 대해, 정신 교정 약물에 대해 설명했어. 우리 아버지는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어, 시체를 발견한 간수는 심장 발작이라고 보고했지. 그때 그는 이미 한쪽 다리와 두 팔을 쓰지 못했어. 정신은 완전히 나가 있었어. 그라도프는 그게 약물 때문은 아니었다고, 그저 우리 아버지가 특이 체질이었을 뿐이며 그건 아마도 심장 발작이 아니라 정신병으로 인한 자살이었을 거라고 했어.

 

 

볼쇼이에 대해 대답한 이후 처음으로 난 입을 열었어. 그 개자식에게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했어. 우리 아버지를 죽인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잘난 당과 소비에트 권력이라고 말했어.

 

 

그라도프는 화를 내거나 꾸짖지도 않았어. 단지 여전히 툭툭 긁히는 목소리로 자기는 여전히 우리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는다고 했어. 스스로 목을 매거나 뛰어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타살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세르게이 야스민은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것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했어. 자신은 언제나 그 약물의 효과에 감탄하곤 했다고 말했지. 만일 그 약물이 듣지 않았다면 그건 우리 아버지의 체질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고. 내가 믿지 않는 것 같은데 한번 실험을 해보자고 했어.

 

 

그리고 그자가 다시 주사를 놨어. 이마에. 그는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고 했어. 내게 기분이 어떤지 물었어.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했어, 원한다면 눈이라도 깜박여 보라고 했어.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이콘 후광과 겹쳐진 채찍이 점점 사악하고 거대한 그림자로 변하고 있었어. 입술도 혀도 움직이지 않았어. 살아있는 박제가 된 것 같았어. 정말 박제가 맞았던 건지도 몰라. 그라도프가 나를 벽에 세워놓은 채 짐승 껍질을 벗기듯 옷과 신발을 모조리 벗겼는데 맨살에 공기가 와 닿는 순간 온몸이 그 자리에서 불타 없어지는 것 같았어. 너무나도 아프고 쓰라려서 견딜 수가 없었어.

 

 

 

 

 

...

 

 

 

미샤의 회상은 조금 더 계속되는데 일단 여기까지만... (좀 우울한 얘기들이라)

 

 

그라도프에 대한 미샤의 회상 중 아주 짧은 문단을 먼저 발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브릴로프 본편 프리퀄인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와 함께 발췌했다(나의 이 우주에서 미샤는 여기 발췌된 그라도프와의 기분나쁜 심문 이후 약 8년만에 정신교화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때 발췌했던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48  수용소, 심문자들, 유령들, 인체발화, 다시 세 개의 메모

 

이 수용소 프리퀄에 대해서는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링크는 아래.


<2부 : 게오르기 벨스키와의 면회>

불과 바람, 물과 돌 : http://tveye.tistory.com/4502

 

<3부 : 스타니슬라프 일린과의 면회>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을때, 수용소 면회실에서의 조우 : http://tveye.tistory.com/4521

푸에테와 이반 왕자와 불새 : http://tveye.tistory.com/3613

농담에 약한 주인공, 타협,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 http://tveye.tistory.com/4468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 : http://tveye.tistory.com/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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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무용수 사진 몇장.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은 nina alo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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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최근 마린스키 시즌 오프닝의 포킨 작품 공연과 바이에른 발레단의 지젤 공연에서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몇장.

출처는 거의 vladimir shklyarov instagram과 그의 팬페이지.

먼저 마린스키 시즌 오프닝. 포킨의 밤에서 그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세헤라자데를 췄다. 아아, 나도 이 사람의 황금노예를 보고 싶다. 이 사람도 예전에 비해 훨씬 원숙해져서 이젠 덜 소년같고 '진짜' 황금노예 느낌이 날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사진은 alex gouliaev

 

 

역시 세헤라자데의 황금노예. 사진은 alex gouliaev

 

 

조바이다 역 테료쉬키나와 함께.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victor nikanorov

예전 이 공연 영상을 보면 팜므파탈 센 언니 테료쉬키나의 조바이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소년 노예같았는데 이번 무대 사진들을 보니 슈클랴로프가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라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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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장미의 정령.

 

정말 이 사람이 추는 장미의 정령을 무대에서 보고프다. 이 역이 쉬워보여도 사실 남자 무용수가 이 역을 근사하게 추는게 정말 쉽지 않고 잘못하면 꽃달린 빨간내복 입고 춤추는 근육질 남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미의 정령은 블라지미르 말라호프의 정령이었는데, 물론 루지마토프의 정령도 좋지만 말라호프가 좀더 육체적으로 어울렸다. 그런데 슈클랴로프가 정령을 춘 영상을 보니 이 사람은 또 다른 의미로 잘 어울렸었다.

 

이 사람이 추는 황금노예와 장미의 정령, 이반왕자 등 포킨 스페셜 패키지를 보고싶다(근데 쇼피니아나는 췄어도 이반 왕자는 안 췄지...)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victor nikanorov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victor nikanorov

 

 

 

이건 바이에른 발레단의 지젤.

7년만에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다시 지젤 무대에 오른 슈클랴로프. 바이에른의 지젤은 알브레히트 의상이 꽤 다르다. 머리도 훨씬 단정하게 빗었네... 그런데 바이에른 버전 지젤의 알브레히트는 외모가 좀 지그프리드와 비슷... 역시 의상 때문인가.

 

 

 

공연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다정하게 사진 찍은 발로쟈. 7년만이라 반가웠다고 한다. 출처는 이 사람 instagram

 

 

사진은 캡션대로 jack devant

이것도 지젤. 이건 슈클랴로프와 그의 아내 마리야 쉬린키나. 둘의 바이에른 데뷔 무대. 가운데는 이고르 젤렌스키... 아아, 젤렌스키 많이 나이먹으셨네..

그건 그렇고 나는 예전 영상이나 심지어 실제 무대 볼때도 젤렌스키가 그렇게 크다고 생각 안했는데 작년인가 재작년 마린스키에서 젤렌스키 전시할때 저 사람이 입었던 솔로르 의상 보고 생각보다 커서 깜짝 놀랐었다. 근데 이 사진 보니 젤렌스키 정말 크네. 아무리 슈클랴로프가 180이 안되는 걸로 추정된다지만.. (괜찮아 발로쟈 넌 예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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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사진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습하고 있는 볼쇼이의 아르춈 옵차렌코와 마린스키의 디아나 비슈뇨바)

 

..

 

 

전에 본편 중 몇가지 이야기를 발췌하면서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시절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이다와의 이야기를 두어번 소개한 적이 있다.

(지나이다와 미샤의 수첩 대화 : http://tveye.tistory.com/4924
지나이다와 미샤의 졸업 무대 : http://tveye.tistory.com/4947)

 

트로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인 알리사가 있듯 미샤에게는 파트너인 지나이다가 있는데 물론 서로의 관계는 각각 다르다. 알리사와 지나이다의 개인적 성격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그런데 그 소설을 쓰면서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친구를 사귄다면 지나이다 같은 애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발췌한 이야기는 1975년 9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샤가 키로프에서 세번째 시즌을 막 맞이했을 때 즈음이다. 그는 생각지 않은 부상으로 잠깐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파트너인 지나이다가 이 소식을 듣고 병실에 찾아와 그를 들들 볶는다.

 

* 다닐로프와 아사예프는 소설 속 키로프 극장의 행정감독과 예술감독, 아스케로프는 미샤와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병원 의사이다. 폴리나와 세레브랴코프는 발레단 동료 무용수들이다.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는 발레학교 시절 미샤와 지나이다의 은사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부상을 입은 것을 극장 관계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기 어머니에게도 숨겼다. 물론 극장에도 사실대로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넘어져 다쳤다고 둘러댔는데 세레브랴코프를 비롯한 그의 적들은 기뻐했고 나머지 동료들은 걱정했으며, 무대 외의 공간에서 미샤 야스민이란 이름이 거론되기만 하면 머리를 감싸쥐는 가엾은 다닐로프는 아스케로프가 내려준 면회 금지령 때문에 이틀 동안 속을 태우다가 병실로 들이닥쳤다. 풋내기처럼 넘어져서 다치다니 믿을 수가 없다면서 조심성 없는 행동과 자기 관리 부족에 대해 꾸짖기도 하고 그간의 징계가 좀 심했다는 것은 자기도 인정하지만 어쨌든 이제 조치가 다 풀렸으니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운이 없느냐며 탄식하기도 했다.

 

 

 보리스 아사예프를 설득해 개막 공연 배역을 핀스키에게 넘긴 장본인으로서 가책을 느꼈기 때문인지, 미우나 고우나 저 골칫거리가 극장의 간판스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다닐로프는 미샤에게 자기가 타던 차까지 주고 갔다. ‘네가 예뻐서 주는 줄 아느냐, 어차피 오래되어 바꿔야 하는 참에 잘됐다, 곧 수석무용수가 될 인간이 걸어 다니고 버스를 타고 다니다 넘어져서 다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극장의 명예를 이렇게 실추시킬 셈이냐’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물론 미샤는 퇴원 후 곧장 다닐로프에게 차를 돌려주러 갔다. 다닐로프는 예의를 모르는 놈이라고 그를 호되게 야단친 후 갑자기 급료를 인상해 주었고 한 달 후에는 수석무용수로 승급시켰다. 타마라의 정보가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다닐로프를 비롯한 극장 관계자들은 의심을 품지 않았지만 지나이다는 달랐다. 그녀는 미샤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찾아왔다. 아스케로프가 면회 금지라며 쫓아내려고 하자 파트너는 보호자나 마찬가지라며 버럭 소리를 질러서 의사 선생을 당황하게 만든 후 당당하게 문을 밀어젖히고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미샤는 수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잠들어 있었고 트로이도 옆자리의 빈 침대에 누워 졸고 있었다. 지나이다는 붉은 머리의 여왕처럼 불쑥 들어오더니 트로이는 본 척도 않고 미샤의 뺨을 톡톡 쳐서 깨웠다. 눈을 뜨고 지나이다를 발견한 미샤는 놀라지도 않았다.

 

 

 “ 지나, 안녕. ”

 

 “ 얼마나 있어야 돼? ”

 

 “ 음, 일주일? ”

 

 “ 거짓말하지 마. 어깨에 금 갔잖아. ”

 

 “ 아,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

 

 “ 방금 엑스레이 나온 거 보고 왔어. ”

 

 

 미샤는 지나이다의 정보력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처럼 보였다. 트로이는 옆 침대에 앉아 그 유명한 커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구경했다. 미샤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는 지나이다를 먼발치에서 볼 때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곤 했고 정상적인 남자들이라면 모두가 그녀에게 목을 매달 거라고 생각했다.

 

 

 “ 그럼 열흘? 걱정 마, 10월까진 괜찮아질 거야. ”

 

 “ 바야데르 말고 딴 것도 있잖아! 백조는 어떻게 할 건데! 그게 더 먼저잖아. ”

 

 “ 그건 너랑 추는 거 아니잖아. 폴리나 리보브나야. ”

 

 “ 멍청하긴, 차라리 내가 낫지. 폴랴가 얼마나 뚱뚱한지 몰라? 그 여잔 백조가 아니고 거위야! 아까 보니까 그 와중에 더 찐 것 같던데. 그 어깨로는 못 들어. 월말까진 어림도 없어. ”

 

 “ 폴리나는 키가 큰 거지 뚱뚱한 게 아냐. 테크닉도 좋아. ”

 

 “ 그래, 180짜리 여잘 한번 잘 들어봐. 남편 위세로 아직까지 무대에 남아 있는 여자 따위. ”

 

 “ 봄에도 같이 춘 거 기억 안나? 괜찮았어. ”

 

 “ 지금 어깨만 다친 게 아니잖아. ”

 

 

 지나이다가 모포를 휙 걷더니 수혈의 여파로 아직도 핏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환자복과 목에 감긴 붕대를 발견했다. 녹색 눈이 화학 약품이라도 쏟아부은 것처럼 확 불타올랐다.

 

 

 “ 너 넘어진 거 아니지? ”

 

 “ 왜? 넘어졌어. 버스에서 밀려서 떨어졌어. ”

 

 “ 내가 바보야? 10년이나 널 봤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남한테 떠밀려서 이렇게 다칠 수 있다는 걸 믿으라고? ”

 

 “ 무슨 일에든 처음이 있기 마련이야. ”

 

 “ 수혈 받았잖아! 누가 넘어졌다고 수혈을 받아! 그렇게 많이!

 

 

 지나이다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트로이는 그녀가 병원의 누구를 닦달해 이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인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스케로프조차도 그녀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샤는 서릿발 같은 파트너 앞에서 변명을 늘어놔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전략을 바꿨다.

 

 

 “ 비밀로 좀 해줘, 지나. 안 그러면 다닐로프가 나 자를 거야. ”

 

 “ 언제 그런 거 신경이나 썼어? 그때도 페테르고프에 안 가서 이렇게 된 거잖아. 개막도 뺏기고, 너 때문에 나도 같이 밀렸잖아. ”

 

 “ 잘못했어. ”

 

 “ 월말까지 못 나오면 나 울리얀하고 춰야 될지도 몰라! 그 인간이 이번 솔로르 역 얼마나 눈독 들였는지 알아? 아사예프한테 얼마나 작업하고 다니는지 아냐고! ”

 

 “ 나간다니까. 절대로 네가 세레브랴코프와 출 일은 없을 거야. ”

 

 “ 당연하지, 날 그 병신하고 같이 추게 만들면 넌 진짜 끝장일 줄 알아.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그 수탉 같은 자식. ”

 

 “ 극장에선 그런 말 쓰지 마, 아가씨가 그러면 더 미움 받을 테니까. ”

 

 “ 자기 걱정이나 하시지. ”

 

 

 지나이다가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대에 앉았다. 모포를 다시 끌어당겨 목 아래까지 덮어준 후 이제 얼굴을 보며 갑자기 걱정스럽게 물었다.

 

 

 “ 입술에 흉 지는 거 아니지? ”

 

 “ 실밥 뽑으면 괜찮을걸. ”

 

 “ 목은? ”

 

 “ 잘 안보일 거야. ”

 

 “ 모스크바에 진짜 괜찮은 의사 있어. 전화해 줄게. 흉터 안 생기게 해 줄 거야. ”

 

 “ 대충 파우더로 가리지 뭐. ”

 

 

 트로이는 그 프로 의식이 결여된 대답에 지나이다가 다시 폭발하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가방에서 얇은 노트와 복사본 테이프 몇 개를 꺼냈다.

 

 

 “ 자, 어제 맞춰보다 만 거.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가 동선 다시 짜줬어. ”

 

 “ 이렇게 가는 거 싫다며. ”

 

 “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의견이니까 그렇게 가 줄게. ”

 

 “ 왜 내 의견은 안 받아줘, 같은 건데. ”

 

 “ 그땐 네가 재수 없게 말했잖아. ”

 

 “ 넌 문 잠갔잖아. ”

 

 “ 그렇다고 그냥 가는 게 어디 있어!

 

 

 지나이다는 잠깐 발칵 화를 냈다가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어제 나가다가 그런 거야? 내가 문 안 잠갔으면 이런 일 없었을지도 모르겠네. ”

 

 “ 아냐, 절대로. ”

 

 

 미샤가 지나이다의 손을 잠깐 잡아 흔들었다. 그때 트로이는 미샤가 왜 파트너와 친구를 같은 선상에 두면서 신뢰에 대해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문득 알리사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지나이다는 알리사처럼 울음을 터뜨리거나 포옹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에메랄드 녹색 눈을 반짝이면서 한동안 자기 파트너를 책망과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내려다보다가 가방을 집어들고 일어났다.

 

 

 “ 참, 12월에 파리에 투어 간대. 브뤼셀이랑 암스테르담도. 제발 이번엔 말썽피우지 마. 말 잘 들으면 백조랑 지젤 둘 다 줄지도 몰라. ”

 

 “ 누구 말을 잘 들으란 거야? 아사예프? ”

 

 “ 전부 다. 특히 내 말을 잘 들어야 돼. ”

 

 “ 그건 별로 어렵지 않네. ”

 

 “ 우리 일린이랑 작업하게 될지도 모른대. ”

 

 “ 누구, 볼쇼이의 그 일린? ”

 

 “ 그래, 그 일린. 그러니까 제발 착하게 굴어. 나 정말 일린이랑 일해보고 싶었어. ”

 

 “ 어떻게 아사예프가 일린을 받았지? ”

 

 “ 아직 안 받았어. 다닐로프가 구워삶고 있는 중이야. 일린이 오면 새 작품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 ”

 

 “ 올해 듣는 유일한 희소식이군. ”

 

 

 미샤가 처음으로 웃었다. 지나이다는 안심한 듯 그의 머리를 살짝 두들기더니 나가버렸다.

 

 

 “ 연습실에서 내쫓길 만하네. 진짜 여왕님 같은데. ”

 

 “ 폭군이야. 화내면 아무도 못 건드려. ”

 

 “ 그래도 네 편 들어주잖아. ”

 

 “ 파트너니까, 열 살 때부터 알았어. ”

 

 “ 파트너 되기 전에 지나 사귄 적 없어, 정말? ”

 

 “ 왜 그런 걸 물어? ”

 

 “ 모두가 궁금해 하는 사실인걸. ”

 

 “ 없어. 지나는 동료야.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여자애들과 사귄 적이 없어. 그런 건 못해. 속이기 싫어. 걔들도, 나도. ”

 

 “ 어릴 땐 잘 모르잖아. 난 여자애들을 먼저 만났어. ”

 

 “ 난 어릴 때부터 알았어. ”

 

 

 미샤는 진통제 때문에 다시 속이 울렁거리는 듯 심호흡을 하더니 베개에 얼굴을 반쯤 파묻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그가 자는 줄 알고 침대에 흩어진 노트와 테이프를 치우기 시작했다.

 

 

 “ 넌 아마 결혼을 하게 될 거야, 안드레이. ”

 

 “ 그게 무슨 뜻이야? 왜 그런 말을 하지? ”

 

 “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 하니까. ”

 

 

 트로이는 미샤의 얼굴에서 베개를 치웠다. 반쯤 감겨 있는 눈을 노려보면서 격하게 말했다.

 

 

 “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의사 선생 말이 맞아, 넌 사람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

 

 “ 미안. 화내지 마. ”

 

 

 미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다리의 상처 부위를 누르며 다치지 않은 쪽으로 돌아누웠다. 트로이는 병원 밖으로 나가 저녁이 될 때까지 네프스키 뒷길 구석구석을 걸었다.

 

 

 

..

 

 

결국 미샤는 지나이다의 말을 잘 들었을 것이다. 이후 파리 투어에 가기 때문이다 :0 일린도 볼쇼이에서 오게 된다. 그 이야기들은 중후반부에서 펼쳐진다. 이 소설을 비롯해 또다른 소설들에 나오는 일린의 이야기는 이 폴더에 몇번 따로 발췌한 적이 있다. 일린에 대한 얘기들은 여러번 올렸으니 링크는 생략.

미샤의 파리 투어에 대한 서구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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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이다가 미샤에게 너때문에 개막 공연 밀렸다면서 페테르고프 얘기를 하는 부분은 전에 올렸던 단편 illuminated wall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 단편에서 미샤는 페테르고프 권력자의 별장에 초청을 받아 춤을 추러 가야 하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행동했다. 전체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385

그리고 그 단편에 대해 지난 여름에 카잔 성당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레냐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레냐의 반응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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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무용수들 사진 몇장.

 

 

황금노예를 추는 파루흐 루지마토프. 조바이다 역의 상대 발레리나는 언뜻 얼굴 윤곽을 보면 일제 리에파나 이르마 니오라제를 닮았는데 정면 얼굴이 아니라서 좀 긴가민가하다... 마할리나와 아실무라토바는 아니고... 자하로바도 아니고...

(고백하자면 루지마토프에 눈이 멀어 상대역이 분간 안갑니다 흐흑 ㅠㅠ)

 

 

 

라 바야데르를 추는 파루흐 루지마토프와 율리야 마할리나(..옆얼굴과 체형, 키로 추정...)

 

위의 이야기에서 지나이다가 개막 공연 밀렸다고 다 너때문이라고 하는 공연이 바로 라 바야데르 얘기다. 이 소설에서는 예술감독 아사예프가 라 바야데르를 좀 다른 식으로 리메이크해 시즌 개막공연으로 올리는데 미샤와 지나이다가 주역인 솔로르와 니키야로 낙착되었다가 지나이다의 비난대로 미샤의 말썽 때문에(ㅜㅜ) 다른 날로 공연일정이 밀려버린다...

 

(내가 지나이다였으면 미샤 얼굴 세번은 할퀴었을듯 ㅋ)

 

 

 

한동안 뜸했기에... 이제부터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스페셜

사진은 모두 alex gouliaev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와 함께 젊은이와 죽음 리허설 중.

 

 

 

사진은 alex gouliaev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와 함께 젊은이와 죽음 리허설 중.

 

 

캡션대로 사진은 alex gouliaev

라트만스키 발레 신데렐라를 연습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이 발레는 우리나라에도 dvd로 나와있습니다. 라트만스키와 두 무용수의 팬들이라면 추천~

 

 

역시 캡션대로 사진은 alex gouliaev

라트만스키 발레 신데렐라를 연습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이것도 alex gouliaev.  

라트만스키 발레 신데렐라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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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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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9. 29. 22:07

슈클랴로프 흑백화보 (by Alexei Kostromin) dance2016. 9. 29. 22:07

페테르부르크의 문화잡지 Собака.ru (사바까.ru)에 이번에 실린 슈클랴로프 인터뷰를 위해 Alexei Kostromin이 찍어준 근사한 흑백 화보 몇장.

인터뷰는 어제 사바까.루 페이지와 sns에 올라와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바이에른으로 완전히 이적할 생각도 있었으나 마린스키에서도 계속 추게 된 경위에 대한 얘기도 있었고... 링크는 여기 http://www.sobaka.ru/city/theatre/49209#vk

(노어로 되어 있음. 맘같아선 번역해 올려보고 싶은데-내용이 어렵진 않음- 여독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과연 그렇게 할지 잘 모르겠어 ㅠㅠ)

 

 

발로쟈! 이제 바이에른 갔으니까 화보도 많이 찍고 그래라 제발 ㅠㅠ 뭘 찍어도 그림인데 다른 애들은 패션지 화보도 잘만 찍고 여기저기 잘 찍히고 다니더구만 흐흑 ㅠㅠ 무용수이자 배우이자 탁월한 피사체잖아...

 

 

 

 

 

 

:
Posted by liontamer
2016. 9. 24. 04:09

슈클랴로프, 폴루닌 흑백 화보 몇장 dance2016. 9. 24. 04:09





세르게이 폴루닌.


발레계의 Bad Boy로 소문난 인물인데 사실 이사람은 온전한 발레 무용수라기보다는 전체를 아우르는 엔터테이너 예술가가 되고 싶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여튼 나는 이 사람의 춤 자체보단 오히려 화보에서 더 매력을 느낀다. (화보 자체에서도 나 멋있지 나 카리스마 있지 하는게 좀 과잉이긴 해) 개인적으로 이 사람은 춤도 모던쪽이 더 어울린다.





반대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 화보 무척 맘에 드는데 댓글에 이 사람 지인이 '그 길고 근사한 무용수의 다리를 어케 이리 짧아보이게 찍었을까!'하고 투덜대는 얘기가 있어서 좀 웃었다. 구도를 위에서 잡아서 그런듯. 나도 그건 좀 아쉽다만 이 사람의 풍부한 표정과 웃을때 온몸에서 번져나오는 빛이 좋다.





위의 화보 연작 중 하나. 사진사는 Alexei Kostromin.


이 사람 9.30에 마린스키 개막인 포킨의 밤에서 황금노예 춘다 ㅠㅠ 나 그때 저 공연 보러 가고팠지만 어차피 슈클랴로프도 뮌헨 가서 없으니 프라하에만 가자.. 했는데 엉엉.. 저날 나는 한국에 있지ㅠㅠ 미워 발로쟈 좀 빨리 알려주지... (표는 이미 예전에 매진 ㅠ)

:
Posted by liontamer

 

 

최근 상하이 무대에 출연했던 슈클랴로프.

china ballet magazine 인터뷰 때 Gao Shang이 찍은 멋진 화보 몇장.

 

발로쟈 너 라떼인지 카푸치노하고 티라미수를 먹는구나!! 단거 좋아하는구나 :)

 

나도 저 머리색깔로 바꾸고 싶다.. 예전부터 저 색깔 해보고 싶었는데 잘못하면 머릿결이 다 녹아날듯...

 

 

 

 

 

 

 

여기까지가 Gao Shang이 찍은 인터뷰 화보들. 대체 이 사람은 무대 분장도 안 했는데 이렇게 화사하면 이건 정말 사기 캐릭터 아닌지... ㅠㅠ

 

 

 

이건 상하이에서 갈라 공연 올라갔을 때 커튼 콜. 복장은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결혼식 의상인데... 아래 상대역인 야코블레바의 의상을 보면 이건 해적에서 알리와 메도라의 춤인 듯. 솔로르라면 위에 흰색 탑도 입고 있어야 하는데 안 입었고. 알리와 솔로르는 탑의 유무만 다를 뿐 같은 파란 바지랑 깃털머리띠를 돌아가면서 매고 있어서... 근데 여기선 파란 옷 대신 하얀 옷 입고 나왔네, 상하이 관객들 계 탔다!!! (라 바야데르에서 저 흰색 결혼식 의상 입고 2막 출때가 제일 예쁘고 멋있음. 저 하얀 의상은 나의 로망의 의상.... 실제로 보면 정말 근사함)

 

 

 

 

 

역시 상하이 갈라 공연에서. 이건 돈키호테 2인무. 이 사진도 china ballet magazine 화보라고 함.

 

 

6월에 이 사람이 이거 췄던 무대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귀여움과 생기의 결정체 바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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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새로운 글을 구상하면서 원래 써오던 글인 가브릴로프 본편은 잠깐 미뤄두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글인 건 변함이 없다. 그래서 새 글 구상을 하면서 동시에 이전에 좀 써둔 가브릴로프 본편을 훑어보고도 있다. 많이 쓰진 않아서 총 4개 장으로 이루어진 1부를 마치고 2부 첫장을 쓰다 중단되어 있다(그 다음부터는 이것의 패러디 외전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만 줄창 써서 ㅠㅠ) 

 

어제 본편 훑어보다 1부 3장에서 잠깐 생각을 돌이켜보았다. 3장에서는 지방 소도시 가브릴로프 극장에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미샤가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뤘었는데 이 장의 후반부는 이 도시의 특권층(노멘 클라투라)이자 나름대로 유력한 문예지 편집장인 렐랴가 미샤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렐랴는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도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이라 아마 서무 시리즈를 보신 분들은 친숙하실 것이다(미샤를 사모하여 맨날맨날 과자랑 케익 구워다 바치고 잼 만들어주고... 막상 실속은 없는 가브릴로프 최고 미녀로 등장했음) 렐랴의 성인 비슈네바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무용수 디아나 비슈뇨바에게서 따왔는데 액센트 위치만 바꾸어서 비슈뇨바 대신 비슈네바로 만들었다. 본편의 렐랴는 서무 시리즈에서처럼 코믹한 인물은 아니고... 이 인물을 데리고 전에 가브릴로프 추리외전도 쓴 적 있다. 거기선 무려 주인공으로 탐정 역할도 했었다만...

 

기존에 쓴 본편 우주의 여러 글에서 미샤가 자신의 예술관이나 관객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한 것은 매우 드물다. 물론 단편 하나와 장편 하나에서 그가 서방/소련 언론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두어번 쓴 적은 있지만 그 맥락은 달랐다. 그때까지 미샤는 안무가라기보다는 무용수였다. 그리고 안무가이자 감독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 가브릴로프 본편이 처음이고 훨씬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직접적'이라는 것이 언제나 '더 솔직한', 혹은 '더 자세한'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렐랴의 인터뷰 장면을 발췌해 본다. 관객을 대하는 미샤의 자세가 좀 나온다. 이 글을 쓸때 나는 작가이자 관객이었는데 그 둘 중 어느쪽이 우선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 쓴다고 해서 그가 '이렇게' 믿는다고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위험한 일이다.

 

초반에 언급되는 '먀흐킨'은 가브릴로프 극장의 극장장이자 시 의회 의원이며 렐랴의 외삼촌이다. (렐랴는 집안이 매우 좋다) 이 먀흐킨도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몇번 등장했다. 제일 큰 비중으로 나왔던 건 34편의 딸기 아가씨들과 바자회 에피소드였음. '비슈네브이 사드'는 벚꽃 동산이란 뜻으로(체호프의 유명한 희곡 제목이기도 함) 소설 속에서 렐랴가 편집장으로 있는 문예지 제목이다. 류다는 미샤의 비서인 류드밀라이다(이 사람도 서무 시리즈에 꾸준히 나왔음)

 

 

위의 사진은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내가 찍은 것.

 

 

 

이건 마린스키 브 콘탁테 페이지에 올라왔던 사진. 마린스키 극장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광경. 가운데 거대한 것은 샹들리에!!

 

 

사진사는 캡션에 있듯 Podorozhny. 볼쇼이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바라본 무대 연습 장면.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물론 렐랴는 자신이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이며 문화예술 애호가라고 생각했다. 예술계 인사를 인터뷰할 때는 정치적 문제나 이념, 사생활 등으로 인한 선입견은 배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샤 야스민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마치 생일 선물을 받으러 가는 어린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원래 취임식 당일에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미샤가 일정이 빠듯해서 겨우 두 개의 인터뷰에만 응한 데다 문예지보다는 텔레비전 방송사와 연방 홍보국의 입김이 더 셌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리고 렐랴에게 필요했던 것은 겨우 2~3분짜리 홍보 인터뷰가 아니라 비슈네브이 사드 10월호 커버스토리에 어울리는 심도 깊은 대담이었다. 그 인터뷰는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절반은 렐랴의 생각대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오후 2시에 그녀는 사진사 한 명을 대동한 채 녹음기와 노트를 들고 미샤를 만나러 갔다. 극장은 썰렁했다. 사람도 없었다. 비서실조차 비어 있었다. 처음에 렐랴는 다들 젊은 감독에 맞서 파업이라도 하는 건가 하고 깜짝 놀랐지만 곧 그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극장 휴일이었다. 약속 날짜를 착각했나 하는 불안감도 잠깐, 렐랴가 노크를 하자 미샤가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렐랴는 무대의 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조명과 의상, 메이크업의 트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았다. 달리 배우들에 대한 기사에서 ‘ㅇㅇ는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와는 달리 사석에서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먀흐킨조차도 첫날 미샤와 만나고 돌아온 후 호기심에 가득 찬 렐랴의 질문에 약간 마뜩치 않은 어조로 대꾸했다.

 

 

 “ 그렇게 눈에 띄는 친구는 아니었어. 생각보다 작아, 자작나무처럼 야윈 게 데니스 체격의 반 밖에 안 될 거 같더라니까. 전에 무대에서 봤을 때는 꽤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애가 어떻게 발레리나들을 들고 돌렸는지 모르겠더구나. 게다가 너무 어려 보여서 깜짝 놀랐단다. 데뷔한지 7~8년이 다 됐으니 스물다섯은 넘겼을 텐데 학생처럼 보였어. 렐렌카 너보다 더 어려보이더구나. 하긴 우리 수석 남자애들보다 더 젊지. 류다가 옆에서 보더니 새 감독님은 인형처럼 곱상하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어. 생긴 것도 그렇고 말수도 적은 게 기 센 극장 사람들을 어떻게 휘어잡을지 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단다. 뭐 나름대로 강단 있는 친구라니까 지켜보긴 해야겠지... ”

 

 

 눈앞에서 미샤 야스민을 마주 대했을 때 렐랴는 먀흐킨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반쯤 이해했다. 그녀의 외삼촌은 여러 극장들을 거쳐 온 데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시 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를 평가할 때 당당한 풍채와 큰 목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복 차림의 미샤는 극장장의 말대로 앳된 대학생처럼 보였지만 그건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렐랴는 그가 움직이는 방식에 매료되었고 레닌그라드 액센트와 차분한 말투에 대해서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렐랴는 비슈네브이 사드의 특집 기사를 다음과 같은 거창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곁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는 민첩하고 유연한 짐승처럼 보인다. 그는 삐걱거리는 복도와 낡은 사무실, 낙엽이 쌓여 있는 좁은 길, 일상적인 모든 공간을 순식간에 극장 무대로 변형시킨다. 그가 입을 열면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과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결코 충돌 관계에 놓여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마치 칼날에 벨벳을 두른 것처럼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그의 무대를 연상시킨다. ’

 

 

 미샤는 비교적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했지만 렐랴의 모든 질문에 답변한 것은 아니었다. 키로프와 볼쇼이 시절 무대에 대해, 기존 안무작에 대해서는 그래도 성실하게 답했지만 발레 팬인 렐랴는 이미 예전 인터뷰를 통해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렐랴는 해외 유명 극장들에서의 공연과 뉴욕 발레단과의 협업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미샤는 무용수로서든 안무가로서든 좋은 경험이었다는 대답 한 마디로 피해갔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어차피 검열국에 넘어가기 전에 자신이 모두 편집할 테니 너무 조심스러워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초면부터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꾹 참았다.

 

 

 그래서 그녀는 화제를 바꾸었다. 레닌그라드에서 살다가 지방 소도시로 옮겨와서 답답하지 않은지, 가브릴로프의 첫 인상이 어떤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미샤는 나무가 많고 강이 아름다워서 좋다고 대답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한 렐랴는 첫 번째 질문을 되풀이했다.

 

 

 “ 음, 여기는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와는 물론 완전히 다르죠. 전 지금까지 조용한 곳에서 지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숲이 많은 곳에서도. 전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고무되곤 해요. 답답함을 느낄 겨를이 없죠. 도처에 모르는 것들이 가득하니까요. 지금은 할 일도 굉장히 많고요. ”

 

 “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가브릴로프에는 싸움꾼과 성자 밖에 없다는 옛말이 있거든요. 아주 다혈질에 공격적인 성미거나 아예 온순하거나 둘 중 하나고 중간은 없다고요. 전형적인 시골 사람들의 특징이죠. ”

 

 “ 그런가요? 전 사람들은 어디나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차이를 잘 모르겠던데. ”

 

 “ 레닌그라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의를 차리고 외교적인 미사여구를 구사한다던데 사실인 것 같네요. ”

 

 

 미샤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렐랴의 말을 부정하려 들지는 않았다. 렐랴가 새로 맡은 감독직에 대해, 극장에 대한 전반적 의견과 발레단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는 원론적이고 짤막한 답변만 했다. 렐랴가 신임감독의 어려움이나 극장 내부 인사들의 텃세 여부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아직 2주도 안돼서요. 지금으로서는 할 얘기가 별로 없군요. ”

 

 “ 하지만 매일 공연을 보고 계시잖아요. 그것도 백스테이지가 아니라 관객석에서. 사실 그 소식도 꽤 신선했거든요. 이제껏 그런 예술감독은 없었어요. ”

 

 “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하니까요. 아마 제가 무용수였다면 다른 식으로 행동했을지도 모르죠. ”

 

 “ 무대는 백스테이지에서도 볼 수 있잖아요. 감독이나 연출가들은 보통 그렇게 하지 않나요? ”

 

 “ 시간이 좀 지나면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

 

 “ 왜 지금은 그렇지 않죠? 아직 우리 극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셨다는 건가요? 볼쇼이나 키로프 같은 큰 극장 무대에도 작품을 올리셨잖아요. 그에 비하면 가브릴로프 극장은 규모도 작고 레퍼토리도 단순한데. 연출도 여러 번 해보셨으니 무대의 구조나 동선은 한두 번만 봐도 전부 파악하실 수 있지 않나요? ”

 

 “ 제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것 같군요. 전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한다고 말했죠. 그건 관객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어요. ”

 

 “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지? ”

 

 “ 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공연을 보는지. 극장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야기하고 보고 느끼는지. 그 모든 것이 중요해요.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무대는 절반만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극장은 예술가의 자기만족과 독백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

 

 “ 좀 의외네요. 전 당신이 엘리트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렇죠. 관객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보통 하지 않잖아요. 관객들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이성의 영역이죠. 이해하지 못하고도 사랑할 수 있고 슬퍼할 수도 있어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고요. 그들로 하여금 뭔가를 느끼게 만들 수 없다면 그건 실패한 공연이에요. ”

 

 “ 백조의 호수나 지젤이라면 모르지만 관객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어떤 감정적 고양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

 

 “ 하지만 즐거워하죠. 아기자기한 무대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발레리나들의 화려한 의상과 움직임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감정적 고양이란 꼭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만은 아니에요. 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끔 빠져드는 함정이 있죠. 장엄하고 영웅적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지 않으면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 그건 일종의 도그마예요. 기본적으로 예술이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거기에는 진정성이 필요해요. ”

 

 “ 호두까기를 보면서 웃는 어린아이들과 잠자는 미녀를 보면서 그 구조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발레 애호가들이 원칙적으로는 동일하고 평등한 관객이라는 것인가요? ”

 

 “ 네. ”

 

 “ 그건 가브릴로프 극장 예술감독으로서의 가치관인가요, 아니면 무용수이자 창작자인 미하일 야스민의 믿음인가요? ”

 

 “ 감독으로서의 저와 예술가로서의 저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관객에 대한 제 태도는 전자든 후자든 변함없을 거예요. ”

 

 “ 그것이 당신이 무대에서 그 수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밀인가요?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는 것? ”

 

 “ 조금은요. ”

 

 “ 그럼 나머지는 뭐죠? ”

 

 “ 그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

 

 “ 그런가요? 보통 그런 힘을 가리켜 재능이라고들 하죠. 우리 가브릴로프에서는 천사가 날개로 쓰다듬고 지나갔다고 해요. ”

 

 

 미샤는 다시 소리 없이 웃었다. 렐랴는 그가 재능에 대한 칭찬 앞에서 점잔을 빼거나 겸손한 척 고개를 젓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긴 학창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을 얘기일 것이다.

 

 

 그녀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오디션에 대해서도 물었다. 미샤는 레베진스키에게 했던 대답을 짧게 되풀이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극장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나갈지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레퍼토리를 다양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15년에 달하는 파벨 쿠즈네초프의 재임 기간 동안 극장이 정체 상태에 빠졌고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많은데 이를 어떤 식으로 타개할 생각인지, 키로프를 가브릴로프 극장의 이상적인 발전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미샤는 잠깐 침묵했다가 천천히 대꾸했다.

 

 

 “ 그건 아직 모르겠군요. 시즌이 좀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극장은 키로프와는 다르죠. 역사도 문화도, 무용수들의 성장 배경이나 기질도 달라요. 같은 도시가 어디에도 없듯이 극장도 마찬가지예요. 극장을 빵 찍어내듯 똑같이 만들 수는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

 

 “ 사람들은 어디서나 같다고 생각하신다면서요, 도시와 극장은 어째서 다른가요? ”

 

 “ 글쎄요. 어쩌면 사람들이 결국 같지 않은지도 모르죠. ”

 

 

 미샤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공식적인 인터뷰를 끝낸 후 렐랴는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개 던졌다. 좋아하는 색깔이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작가라든지, 이상형이라든지, 혹시 레닌그라드에 연인이 남아 있는지도 살짝 떠보았다. 미샤는 대부분의 질문을 침묵이나 미소로 넘겼다. 그가 사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렐랴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농담을 섞어 물었다.

 

 

 “ 사무실로 절 안내하신 이유는 접견실 문이 잠겼기 때문인가요? 월요일이라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극장장이나 감독 인터뷰는 항상 접견실에서 했었거든요. 아니면 접견실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전 항상 거기 들어가면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테리어도 그렇고 좀 제정 시대 느낌이... ”

 

 “ 아뇨. 전 어디든 별로 상관없는데 어제 세탁 때문에 접견실 커튼을 모두 벗겨냈다고 해서요. 햇빛도 강하게 들어오고 살충제도 잔뜩 놨으니 오늘은 들어가지 말라고 류다가 당부해서요. 운 나쁘면 바퀴벌레들을 밟게 될 거라고 경고하더군요. ”

 

 

 렐랴는 하마터면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농담인지 진지하게 얘기하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 유명한 스타를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사진사 주보프의 간곡한 부탁으로 무대와 발코니 좌석에서 추가로 사진을 찍느라 15분 정도가 더 소요되었다. 주보프는 요청이나 지시도 없이 그저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을 뿐이었다. 심지어 미샤는 별다른 포즈를 취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세묜 주보프는 시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사진사였지만 예술가적 자존심이 센데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심지어 유명 인사들에게조차 이렇게 앉아라 저렇게 머리를 돌려라 하며 들들 볶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주보프는 술에 취한 듯, 필름 구입예산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댔다. 꼭 기관총 사수 같았다. 나중에 현상된 사진들을 보고서야 렐랴는 주보프가 왜 미샤에게 그렇게 관대했는지 이해했다.

 

 

 “ 그런 피사체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지. ”

 

 “ 하긴 그 사람 진짜 미남이긴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20페이지 쯤 늘려서 이 사진들 전부 컬러로 싣고 싶네요. ”

 

 “ 그런 것과는 좀 달라. 외모가 아무리 잘 나면 뭘 하나, 당장 우리 극장에도 얼굴만 예쁘고 나머지는 나무토막 같은 애들이 태반인데. 이 친구는 특별한 경우야. 그건 타고 나는 거지. 가뭄에 콩 나듯 그런 사람이 있어. 렌즈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사람. 춤추는 걸 찍었어야 했는데... ”

 

 

 주보프는 못내 아쉬워했다.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해달라는 그의 유일한 부탁을 미샤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 전 이제 춤을 추지 않아서요. ”

 

 주보프는 그 유명한 포즈를 찍기 위해 당장이라도 미샤의 발아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지만 렐랴는 키로프 시절 사진을 한 장 가져다 쓰면 된다고 그를 부드럽게 진정시켰다. 사실 그녀도 실망했지만 콧대 높은 예술가의 변덕에 간섭해봤자 좋을 일이 없다고 마음을 달랬다.

 

 

 

 

...

 

 

 

무용수들 사진 몇 장.

먼저 루돌프 누레예프. 주보프는 이 사람 앞에서도 넋을 잃고 셔터를 눌러댔을 것이다.

 

 

루돌프 누레예프. 햄릿 중에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이 사람의 포즈도 정말 아름답다.

 

 

 

 

90년대 키로프-마린스키 시절의 율리야 마할리나. 마린스키 극장 좌석에 앉아서.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역시 사진은 nina alovert

피사체로서의 매력이 넘치는 무용수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카리스마를 내뿜는 젊은 시절의 파루흐 루지마토프.

 

위의 누레예프, 말라호프, 루지마토프 모두 각각 서로 다른 면에서 무용수로서의 미샤에게 조금씩 영감을 준 인물들이다.

 

 

 

파루흐 루지마토프 한 장 더.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팬심으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도 한 장.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이건 내가 이번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찍은 사진들 몇장. 관객으로서 찍은 사진들 :)

 

 

 

 

 

 

 

 

이 사진은 볼쇼이 무용수인 아르춈 옵차렌코와 디아나 비슈뇨바. 몇달 전 마린스키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함께 췄는데 이건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리허설 장면이다.

 

 

 

프리드리만 보겔.

 

 

 

이건 내가 폰으로 찍은 사진. 여기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예전에 맡은 업무 때문에 하루종일 여기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찍음... 여러 모로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기억은 지우고 싶다만... 덕분에 백스테이지와 분장실, 음향, 조명 등 이것저것 많이 훑었고 그것만으로도 내겐 수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렐랴와 먀흐킨, 미샤 등이 코믹한 패러디 버전으로 등장해 복작거리는 외전 에피소드들이 궁금하시면 서무의 슬픔 시리즈 폴더를 보세요~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6월 24일. 이날 운좋게 매진됐던 표를 득템하여 마린스키 구관에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춘 지젤을 보러 갔었다. 근 10년 전 슈클랴로프의 첫 무대를 본 게 바로 지젤이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그날 찍었던 휘황하고 아름다운 마린스키 극장 샹들리에와 램프, 그리고 내부 사진 몇 장.

 

세상에 극장은 많다. 아름답고 호화스런 극장들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극장들도. 그러나 그 많은 극장들 중 나의 첫 극장이자 내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극장,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극장은 바로 이곳, 마린스키 극장이다. 신관도 좋지만 역시 구관이 가장 매혹적이다. 리노베이션을 한다 해도 제발 저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신관과는 달리 마린스키 구관에는 여기저기 카페가 숨어 있다. 처음 가는 사람들이야 다들 2층 벨에타쥐 쪽에 있는 카페로 몰리지만 공연 많이 보러 온 사람들은 보통 2야루스(4층) 양쪽 윙에 딸려 있는 조그만 카페를 선호한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입장 가능한 시간에 딱 맞춰가서(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가능) 프로그램을 산 후 잽싸게 2야루스 쪽 카페로 달려간다. 나는 좀더 편안한 레프트 윙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바로 여기... 층계와 복도 사이의 조그만 귀퉁이에 카페가 있다. 테이블이 몇개 없기 때문에 빨리 가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 자리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러시아 관객들. 특히 비싼 표 대신 4~5층(2야루스, 3야루스) 표 끊어서 자주 보러 오는 진짜 애호가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내가 료샤를 여기 데려가기도 했음 ㅋㅋ)

 

작년에 마린스키 숍에서 사서 잘 쓰고 있는 오페라 글라스와 이 날의 지젤 프로그램.

 

 

 

 

이 날은 빨리 가서 제일 좋아하는 층계 옆 테이블 득템... 옆으로는 기다란 층계가 있고 거대하고 화려한 거울이 있어서 저 계단 올라오는 여인들마다 모두 저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고치고 미모를 뽐낸다.

 

 

 

내가 좋아하는 이곳의 티라미수 :)

 

 

 

옆으로는 이렇게 층계가 보이고...

마린스키의 색깔인 푸른색... (볼쇼이는 붉은색이다. 이건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색채이기도 하다)

 

 

 

 

 

나도 러시아풍으로 꾸미고 갔음 :) 목걸이와 브로치.

 

 

 

이때 내가 득템한 자리는 1층 칸막이 좌석인 베누아르. 시작 전 첫번째나 두번째 벨이 울린 후 직원 할머니가 오셔서 열쇠로 저 칸막이 문을 하나하나 열어주면 그때 들어갈 수 있다.

 

 

복도의 램프들.

 

 

 

샹들리에.

 

오래된 극장들의 샹들리에들은 굉장히 아름답다. 마린스키 샹들리에도 예외는 아닌데, 전에 마린스키 페이지에서는 연중행사로 저 샹들리에 내려서 청소하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해서 무척 재미있었다.

 

 

 

 

좌석 칸막이 위의 램프.

 

 

 

 

 

 

 

 

 

이날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 몇장과 테미르카노프의 호두까기 인형 지휘 cd 득템. 그런데 저 비닐봉지가 더 가슴 설렘. 항상 그렇다. 그래서 여기서 받아온 비닐 봉지는 하나도 안 버리고 차곡차곡 모아놨음 :)

 

 

그냥 이걸로 끝내면 아쉬우니 이날 춤춘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커튼 콜 사진도 한 장.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명불허전...

(이때 찍은 사진 몇장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35)

:
Posted by liontamer



바이에른에서의 새 시즌을 위해 최근 가족과 함께 뮌헨으로 옮겨간 슈클랴로프...

그래도 마린스키 시즌에서 10번 내외 출연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다니 다행이다...


간만에 이 사람 화보 몇 장.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Mark Olich.


몇번 얘기한 적 있지만 3년 전 마린스키에서 이 무대를 보고 이 사람을 무용수로서 재평가하게 되었다... 가슴을 미친 듯이 뛰게 하는 무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역시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Mark Olich.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Mark Olich.





청동기사상. 안무는 유리 스메칼로프.


사진은 alex gouliaev


이번에 가서 본 공연 중 이게 최고였다. 이 사람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라 바야데르.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미워할 수 없는 드문 솔로르!





이건 china ballet magazine의 사진. 최근 상하이 갈라에서 돈키호테 바질 췄을 때.


이 사람의 바질은 그야말로 귀여움과 생기의 절정.



그러고보니 오늘 올린 사진들은 운좋게도 전부 이 사람의 무대를 직접 본 작품들이다.



마지막은 얼마전 글린카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했을 때 그쪽 무용수들과 찍은 연습실 사진. 보통 이런 사진은 미녀들 4명과 함께 찍었으니 남자가 복 터졌다고 할텐데 아무리 봐도 이 사진은 꽃돌이를 둘러싼 저 4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복 터진 것으로 보인다... 나의 팬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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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약 2년쯤 전에 나는 가브릴로프 본편을 시작했다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 본편에 삽입될 에피소드 하나를 독립된 단편으로 먼저 썼다. 지방 소도시인 가브릴로프의 시립극장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나의 주인공 미샤가 그곳 오케스트라의 실력자이자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로만 코즐로프와 의견 충돌을 일으킨 후 하룻밤을 보내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코즐로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코즐로프는 이 본편의 외전 격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 때문에 어린 애인에게 폭 빠진 다혈질의 흑염소 아저씨(ㅜㅜ)이자 바이올린 깡패로 등극하게 되었지만 원래 본편에선 그런 막가파 캐릭터는 아니었다(아무래도 서무 시리즈 때문에 코즐로프가 제일 웃기게 변한듯... 손해봤어 ㅠㅠ)



하여튼 그 에피소드는 생각보다는 좀 길어서 실제 본편이 씌어졌을 때는 좀 손을 봐야 할테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독립적인 단편으로 존재하고 있다. 제목은 매우 단순하게도 '밤'(night) 이었는데 다른 제목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밤을 보내고 사랑에 빠지는 무수한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니까. 우습지만 이 이야기를 처음 발췌했을 때 후반부에 둘이 사과파이 먹는 장면을 인용했기 때문에 종종 '사과파이 단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다. (서무 시리즈에서 왕재수가 사과파이를 좋아하는 걸로 설정된 건 사실 이 단편 때문이다)



이 단편은 전에 사과파이 에피소드나 미샤가 백조 솔로를 추는 씬, 그리고 전반부 1~2장 전체를 발췌한 적이 있다. 그냥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술을 못 마시는 미샤가 보드카를 실컷 퍼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코즐로프의 집에서 밤을 보내는 얘기다. 어떤 이야기들이든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간단해지는 법이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거의 후반부이다. 이 이야기 앞뒤 에피소드도 전에 발췌한 적 있다. 그 링크들은 이야기 아래에 따로...



 초반에 언급되는 게오르기 벨스키는 미샤를 후원하는 공산당 고위 간부로 예전에도 종종 언급된 적이 있다. 수감된 미샤를 빼내 가브릴로프로 보내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중간에 언급되는 아르카지는 이 이야기에서 극장 카페 매니저로 등장하는 인물이고(서무 시리즈에도 나왔다. 보르쉬에 물타는 사람. 이 이야기에서는 보드카에 물을 탄다. 물타기 전문가 ㅋㅋ), 나중에 언급되는 딤카 아르부조프는 물론 가상의 인물로 내가 만들어낸 사람이다.



맨 위의 사진은 연습실의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사는 캡션대로 marina bakanova.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옷을 입은 후 미샤는 거실로 갔다. 내겐 묻지도 않고 티 테이블을 옆으로 밀어놓더니 스트레칭을 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유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득 자식이 춤을 추는 걸 보고 싶어졌지만 춰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얼간이처럼 보일 테니까.

 


  그 애는 단 한번, 왼쪽 발끝으로 선 채 오른쪽 다리를 길게 내뻗었을 뿐이었다.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포즈였다. 지금껏 그런 깨끗하고 근사한 동작을 본 적이 있나 싶었다. 하긴 오케스트라 핏에 들어가 있으면 연주자는 무용수의 동작을 볼 수 없다. 그건 지휘자의 몫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빌어먹을 저 꼬마는 나에게 연주를 바꿔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더 이상 부아가 치밀지 않았다. 그깟 연주 바꿔주면 그만이다. 저런 동작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 그럴 자격이 있는 놈이었다. 분명 바닥을 딛고 있는데도 자식은 날아오르는 새처럼 보였다. 왜 양키들과 유럽 부르주아들이 자식을 낚아채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우리 연방 관객들이 그 애를 볼 때마다 천사라고 불렀던 이유도.

 


 나는 이제 벨스키가 그 아이를 구해내려고 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게오르기 벨스키. 이 촌 동네에서 자라나 어마어마하게 출세한 남자. 우리 극장 발레리나를 어머니로 둔 남자. 그래서 극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정치국 의원. 미샤가 그 대단한 의원님의 침대를 데워주는 노리개였든 아니든 그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아름다움은 흔한 것이 아니다.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것이다. 그런 희귀한 재능을 가진 아이가 눈앞에 있다면, 정신병자들이 득실거리는 수용소에서 죽어가게 된다면 내가 벨스키라 해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무대를 직접 본 것도, 제대로 된 연속 동작을 본 것도 아니면서, 그저 완전히 정지한 채 날아오르는 그 포즈 하나밖에 보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용서했다. 순식간에 홀려버렸다. 숭배하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아무리 유명하고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들었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나는 음악가가 아니라 그저 연주자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 회전. 푸에테라고 하나? 그거 보고 싶은데. ”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불쑥 입 밖에 내버렸다. 미샤는 왼쪽 허리와 허벅지를 주무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 미안. 이제 못해. ”


 “ , 무대 안 올라가서 몸이 굳어서? 방금 아라베스크는 좋았는데. ”


 “ 중심이 여기 와야 하거든. 힘이 안 들어가. ”

 


 그 애의 손이 왼쪽 골반 위에 놓였다. 바지와 허리끈과 셔츠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 뱀처럼 부풀어 오른 상처가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끔찍한 살인 충동을 느꼈다. 그자들 전부. 상처를 만들어 놓은 자들, 저 몸을 망가뜨린 놈들, 저 꼬마를 체포하고 더러운 짓을 자행한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 충동이 너무나 뜨겁고 격렬해서 나는 몸을 떨었다.

 

 미샤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심하게 덧붙였을 뿐이었다.

 


  “ 몸이 굳기도 했지. 오래 안 췄어. 2월에 은퇴했으니까. ”


  “ 오래는 무슨. 그래봤자 반 년 밖에 더 돼?


  “ 부상당했을 때도 그렇게 오래 쉰 적 없었어. ”


  “ 나으면 굳은 것도 다 풀리겠지. 그럼 우리 무대에 올라갈 거야? ”


  “ 아니. 은퇴했다니까. ”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잘도 떠드는군. 음악도 못 따라가는 우리 무용수들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 아니야? 그 꼴을 한 달만 더 보면 열 받아서 직접 올라가겠다고 나서겠지. 그 성깔에 그러고도 남을 게 뻔해. ”


  “ 걔들 헐뜯지 마. 도와주면 나아질 거야. ”


  “ 그럼 다들 너처럼 출 수 있게 되나? 그렇게 믿는 건 아니잖아. ”


  “ 다들 나처럼 추면 재미없잖아. ”


  “ , 혼자 잘나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 ”


  “ 당신은 옆에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똑같이 연주하면 좋아? ”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내겐 드문 일이었다. 미샤는 내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았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완벽하게 일직선으로 뻗었다. 나는 언제나 남자 무용수들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동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오른쪽 무릎을 꺾어 다리를 옆으로 들어올렸다. 왼쪽도 반복했다. 다섯 번쯤 반복했을 때 낮게 신음하며 한 손으로 다시 그 왼쪽 골반의 상처를 가볍게 눌렀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다시 무릎을 구부렸다 폈고 연속으로 스트레칭을 몇 개 했다.


 

  “ 매일 그렇게 해? ”


  “ 일어나면. ”


  “ 은퇴했다면서. ”


  “ 그거랑 달라. ”


  “ 글쎄, 다른 것 같지 않은데. 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


  “ 그냥 운동하는 거야. 움직여야 하거든. 많이. ”


  “ 그건 우리 의사 선생의 처방인가? ”


  “ 절반쯤은. ”

 


 미샤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기껏 샤워까지 해놓고 도로 땀을 흘리는 짓을 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무용수였던 놈이니까 나와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다른 동작들을 더 보여주기를 기다렸다. 춤을 추지 않는다 해도 좋았다. 최소한 그 아라베스크라도 한 번 더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미샤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몸을 길게 뻗은 채. 두 팔을 옆으로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자식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스트레칭과 기본 동작만으로도 힘이 든다는 사실에 화가 난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 일어나는 게 좋을 걸, 그 카펫 더러워. ”


  “ 괜찮아, 당신 옷이니까. ”


  “ 그렇게 힘들어? 하긴 빈속에 몸을 그렇게 많이 움직였으니 힘들기도 하겠군. ”


  “ 아니, 어지러워. 다 깬 줄 알았는데. 역시 밀주였어. ”


  “ 아르카지가 물 탔다고 몇 번을 말해. ”


  “ 또 토하면 당신 화낼 거야? ”


  “ 언제 남이 화내는 거 신경이라도 썼나? 자기밖에 모르는 애송이가. ”


  “ 당신이 화내는 건 별로야. ”


  “ ? ”


  “ 화나면 팰 거잖아. 아팠다니까. ”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자식은 농담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제대로 된 러시아 놈이 아니었다.

 


  “ 어차피 가는 데마다 더럽힌 거 여기 토한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


  “ 카펫은 여분 없을 거 아냐. ”


  “ 난 부르주아가 아니라서. ”


  “ , 낡은 단어. ”

 


 미샤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이제 토하려나보다 싶어 티 테이블 위에 있던 쟁반을 낚아채 입가에 대 주었지만 자식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 바이올린 켜, 로만. ”


  “ 내가 왜. ”


  “ 듣고 싶으니까. ”


  “ 미안하지만 여긴 극장이 아니라서, 감독님 명령은 안 통해. ”


  “ 부탁하는 건데. ”


  “ 삼류 연주 들어서 뭐해. ”


  “ 왜 그런 식으로 말해? 싫지 않았다니까. ”


  “ 싫지 않다는 건 보통이란 얘기고 그건 별로란 뜻이야. ”


  “ 난 별로인 사람한테는 부탁 안 해. ”



  나는 바이올린을 가져왔다. 활을 잡다가 자식이 바이올린을 켤 줄 아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 조금. 학교 다닐 때 키로프 연주자한테 배웠어. ”


  “ 누구? ”


  “ 딤카 아르부조프. ”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잘 아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아르부조프, 키로프 오케스트라 수석. 역시 놀던 물이 달랐다.


 

  “ 화려한 이름이군. 그래서 그렇게 잘난 척 한 거야? 그냥 전업하시지. 내 자리 내줄까? ”


  “ 기본만 배웠어. ”


  “  , 음악도 잘 안다고 뻐기더니. 연주 쪽 재주는 없었나? ”


  “ 활 쓰는 건 안 맞더라고. 춤 출 때 쓰는 근육이랑 달라서 연습하고 나면 어깨가 많이 당겼어. 피아노는 좀 나았어. ”


  “ 끝까지 못한다는 말은 안 하는군. ”


  “ 못해, 바이올린은. 그래도 들을 줄은 알아. ”



  나는 뒷골이 띵하도록 부담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차피 차원이 다른 놈이니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삼류로 들릴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홧김에 아무 거나 켜기 시작했다.






...




전에 발췌했던 이 이야기의 여러 토막들에 대한 링크는 아래. 포스팅 순서가 아니라 이야기 속의 시간 순서에 따라 재배열함.



맨 앞 부분(Night : 코즐로프와 미샤의 이야기 중에서) : http://tveye.tistory.com/4118

 

숙취로 고생하는 미샤와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대화 : http://tveye.tistory.com/3253

 

발췌본 바로 앞 이야기(아침, 여분의 수완, 바느질) : http://tveye.tistory.com/3465

 

발췌본 바로 다음 이야기(백조 솔로를 추는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46

 

사과파이를 먹는 코즐로프와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65

 



..



아라베스크를 비롯한 무용수 화보 몇 장.





미샤의 움직임이나 육체적 특성을 지닌 모델 중 하나인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역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빈사의 백조 추는 중.





프리드리만 보겔.

이 사람은 연기력이 별로라 딱 내 취향의 무용수는 아닌데 포즈나 몸의 선이 아름다워서 화보는 항상 근사하다.




프리드리만 보겔 한 장 더. 연습실.




이고리 콜브.




그리고 팬심으로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두 장. alex gouliaev의 사진. le parc




슈클랴로프.

절친인 유리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나르키소스를 위한 레퀴엠 중.


마지막은 궁극의 백조,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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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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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래 발췌한 두 개의 메모는 몇년 전 썼던 각각 다른 두 가지 글에 대한 노트이다.


첫번째 메모는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해 서울에 돌아와 완성했던 가브릴로프 프리퀄의 후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소설은 나의 주인공 미샤가 체포되어 수용소와 클리닉, 면회실에서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었다. 이 소설의 일부는 이전에 여러번 발췌했는데 주로 3부에서 미샤와 그의 친구 일린이 나누는 대화 부분들이었다.


두번째 메모는 저 글을 마친 후 본편으로 들어가기 전에 데이터와 캐릭터 구축을 위해 썼던 2차 소설 중 한 장면에 딸린 노트였다. 그 장면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맨 아래에 다시 발췌했다(사실 그 부분도 이전에 한번 올린 적이 있긴 하다)


두 개의 메모는 서로 다른 이야기와 배경을 다루지만 어쩌면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건 쓰는 사람이 동일했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인물을 중심축에 놓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때도 나는 실은 매우 실망했고 떠나려고 했었고 그러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평생 하나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 그러나 그것을 변주하고 변형하고 마침내 그런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것.







* 이 글들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첫번째 메모 : 2013. 5월>




 이 글을 쓰는 내내 난 전락과 치욕, 수치심에 대해 생각했다. 소중한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더럽혀졌다는 자각,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원칙이 무너진 순간의 고통에 대해.

 

  성적으로 분방한 사생활과 복잡하게 뒤엉킨 권력자들과의 관계, 체제로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지적과 징계,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보안위원회 서류에도 불구하고 미샤는 일종의 순결함에 대한 강박적 수호 욕구를 가진 애였을 것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춤에 대한 것이었을 테지만 동시에 집단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 의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벨스키의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 그는 수백 수천 명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게 짓밟히는 것보다 더 속속들이 더럽혀졌으며 그건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더러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스타니슬라프 일린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이 사진은 내가 러시아 박물관 전시실에서 찍은 것이다. 작가는 미상. 러시아 민중들의 정교 예술작품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리스도 조각상이다.





...

 



 <두번째 메모 : 2013. 6월>






 가브릴로프 장편에서 미샤는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는다. 이미 더 이상 무대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후인데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 도시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춤을 출 만한 몸 상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그 애를 처음으로 만들어냈을 때 미샤는 무용수가 아니라 안무가였고 감독이었다. 그땐 '그 애'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 내가 그려냈던 미샤는 이미 3~40대에 접어든 나이였고 결코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수수께끼 같고 독립적이며 유능한 인물, 당시 구상했던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일종의 멘토이자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 안티 히어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인물에 대한 나의 관점은 변화했고 나는 미샤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구상했던 소설의 중심과 구조도 변형되었다. 이후 나는 그 애에 대한 단편을 몇 개 썼고 작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 꽤 긴 단편과 장편, 경장편을 썼다. 그 세 편의 소설에서 미샤는 이미 안무가가 되어 있었지만 내게 그 애는 그보다도 무용수에 가까웠다.


 가브릴로프에 유배된 후 그 애는 처음으로 완전하게 무대를 버리고 온전히 안무가와 예술감독의 역할을 맡게 된다. 타고난 무용수가 존재하듯 안무가로서의 타고난 재능이란 것도 분명 있다. 전자는 육체의 재능이며 후자는 창작자로서의 재능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갖는다는 건 아주 드문 축복이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은 분명 그런 축복을 받은 존재다. 그게 그 애의 어둡고 뒤틀린 영혼을 위해서도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샤는 'Frost'에서 마로조프와 대화할 때나 'The dark dances alone'에서 훨씬 친한 상대인 일린과 얘기할 때 한결같이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을 거라고 아주 단호하고 강력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그게 정말로 그렇게 쉬운 일일까? 나는 일린의 입을 빌어 그 애에게 무용수로 태어난 인간이 춤을 추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거라고 얘기했다. 게다가 그 애는 너무나 뛰어난 무용수였다.


 며칠 전 아래에 발췌한 부분을 쓸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그 애와 스비제르스키의 관계. 성과 권력의 복잡한 역학. 그리고 두번째는 무용수로서의 그 애가 갖는 어떤 특질.


 나는 모든 위대한 예술의 정점에는 세 가지 중 하나가 있다고 믿는다. 사랑. 죽음. 그리고 삶이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해답을 찾고 싶어 몸부림치고 계속해서 뛰어오르고 날고 움직이고 넘어졌다. 그 애는 자신의 춤과 무대에서 언제나 죽음과 조우한다. 그건 어떻게 보면 불행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한 정점에 오른다 해도 그건 자기파괴와 부정을 불러오는 음울한 마약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그 애가 춤을 그만 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믿는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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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메모가 딸려 있었던 2차 소설의 그 장면은 여기. 사실 이 내용은 전에 발췌했던 글에 포함되어 있다. 카를로비 바리의 별장에서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의 지시에 따라 춤을 추는 미샤의 이야기였다.





 스비제르스키는 밖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마룻바닥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 애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샤는 가끔 그를 힐끗거리며 쳐다보았지만 스비제르스키가 말을 걸거나 곁에 다가오지 않자 점차 그의 존재를 잊었다. 연습에 완전히 몰입해 음악과 파트너도 없이 2인무와 3인무, 솔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췄다. 검은 머리칼이 짧고 부드러운 벨벳 커튼처럼 펄럭였고 두 팔이 단단하고 유연한 채찍처럼 물결쳤다. 그 애가 아무런 무게도 없는 도약을 서너 번 반복했을 때 스비제르스키는 담배를 잘못 내려놓다가 손가락 끝을 데었다. 하지만 뜨거움이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샤가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스비제르스키가 입을 열었다.

   

 “ 그건 놀라운데. 무대에서도 꽤 높이 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군. 일부러 높이를 낮추는 건가? ”

 

 “ 서커스가 아니니까요. ”

 

 “ 흠, 니진스키처럼 얘기하는군. 다른 애가 그런 말 했으면 건방지다고 해줬을 걸. 대단한 도약인데. 혹시 피루엣도 더 빨리 돌 수 있는데 억지로 늦추는 거야? ”

 

 “ 음악에 맞추는 거예요. ”

 

 “ 오케스트라가 네 움직임에 맞춰줄 걸. 한번쯤 그렇게 해봐, 갈라 무대에서는 그렇게 해도 무방하니까. 할 수 있는 최대로 뛰어오르고 돌아봐, 그럼 관객들이 심장 발작으로 줄줄이 실려 갈 테니 안 되려나. 지난번 공연 때도 여자 두어 명 기절했었지. ”

 

 

 미샤는 바를 붙잡고 무릎을 구부리며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 이런, 피루엣을 빼먹는군. 취기도 가셨으니 까먹은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런 말 들으니까 부끄러워? 너 춤에 대해서는 전혀 겸손하지 않잖아. 프로페셔널답게 끝까지 해야지. 해봐, 연속 회전. 푸에테. ”

 

 

 미샤가 잠깐 동안 타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두 눈에 뜨겁고 격렬한 분노가 일었다. 자기 춤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듣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스비제르스키는 흥미롭게 그 시선을 맞받았다. 과연 그 애의 춤에 대한 자존심이 공포를 넘어설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미샤는 스비제르스키의 눈빛을 오랫동안 동요 없이 받아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전 기계가 아니에요. ”

 

 “ 기계가 아니니까 그런 춤을 출 수 있겠지. 키로프 애들 절반 이상은 다 기계야. 세레브랴코프가 왜 그렇게 널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인지 정말 몰라? 그놈은 스텝과 회전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추지. ”

 

 “ 당신들이 임명한 공훈예술가예요. ”

 

 “ 아, 본심이 나오는 건가? 걱정 마, 넌 그놈보다 훨씬 빨리 공훈예술가가 될 테니까. 20대 다 넘기기 전에 인민예술가 달아줄 수도 있을 걸. 그러니까 춰봐, 피루엣. 연습은 제대로 끝내야지, 토요일 공연이라면서. ”

   

 미샤는 바를 놓고 홀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잠깐 스텝을 밟은 후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은 프로펠러처럼 빠르고 힘차게 돌았다.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회전 때문에 양쪽으로 쭉 뻗은 두 팔이 날개처럼 펼쳐져 퍼덕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빠르게 연속 회전하면서도 몸의 축이 전혀 기울어지지 않았다. 두 눈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가속도가 붙자 이제 그 불길이 몸 전체로 옮아가는 것 같았다. 한순간 스비제르스키는 미샤가 빙글빙글 돌다가 모터 달린 바람개비처럼 하늘로 휙 날아오를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이미 50번을 훌쩍 넘겼지만 그 애는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마침내 스비제르스키는 그 애를 저지해야 했다. 

 

 “ 이제 그만하지. 그 근육 풀어주려면 한 시간은 스트레칭해야 할 걸. ”

  

 미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애는 계속해서 돌았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곧게 뻗어 있던 두 팔이 점점 아래로 처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돌았다. 스비제르스키는 무용수든 서커스 단원이든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100번은 예전에 지났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정신 나간 짓을 무력으로 끝내려고 했을 때 미샤가 멈췄다. 무릎을 꿇는가 싶더니 끔찍할 정도로 가쁜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옆으로 누웠다. 두 팔을 부러진 날개처럼 꺾은 채 다리를 길게 뻗고 물에서 막 건져낸 사람처럼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검은 머리칼이 축축하게 젖어 이마와 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


저 글의 앞뒤 내용이 좀 더 붙어 있는 버전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4620 

<별장의 미샤와 스비제르스키, , 레닌그라드 아이, 뒤틀린 관계>







 아르춈 옵차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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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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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지난주에 나는 몇년 전 쓴 소설에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출신인 트로이와 알리사가 나눈 대화와 알리사가 런던으로 떠난 과정을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그때 트로이는 레닌그라드에 남았고 알리사는 런던에 있는 소련 대사관으로 떠났다.

(http://tveye.tistory.com/5016 : 알리사는 기계벌레와 도스토예프스키, 불가코프에 대해 무슨 말을 했나, 항의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불멸입니다!)



아래 발췌한 이야기는 그로부터 몇달 후의 일이다. 미샤가 키로프 발레단의 유럽 투어에 참여한다. 그는 파리와 암스테르담, 브뤼셀에서 공연을 한다. 그리고 일 때문에 파리에 들른 알리사와 잠깐 조우한다. 돌아온 미샤는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이다. 디나 로쉬도 마찬가지이다. 런던 댄스 페스티벌도 여러가지 페스티벌과 콩쿠르를 조합해 내가 만든 것이다.



맨 위의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은 아니고 웹에서 얻은 것인데 분위기가 좀 이 에피소드와 어울려서 올려봤다. 어스름에 잠긴 궁전광장에서 이삭 성당과 네프스키 거리 입구를 바라본 풍경이다. 내 글에서는 저런 어둠 속에서 미샤와 트로이가 걷는 장소가 고로호바야 거리라서 여기는 아니고 그저 좀 가까운 곳이긴 하다만. 


..



나는 몇주 동안 많이 힘들었고 특히 최근 며칠 동안은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심신을 주워모으는 중이다. 예전 글도 읽고 이번에 페테르부르크 다녀와 조금 구상한 글에 대한 생각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이 방법으로 숨을 쉬고 다시 물 위로 올라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12월 초에 미샤는 프랑스 등 유럽 3개국 투어를 떠났다. 별 문제 없이 투어에 합류하고 백조의 호수와 지젤 두 개 작품을 모두 추게 된 것을 보니 지나이다의 말을 잘 들었던 게 틀림없었다. 파리 첫 공연이 끝나고 며칠 후 런던으로부터 잠시 들어온 알리사의 동료가 타냐에게 조그만 상자를 전해 주었다. 실크 스카프와 초콜릿 캔디들 아래 이중바닥에 공연에 대한 프랑스 뉴스 녹화 테이프와 신문, 잡지 기사가 숨겨져 있었다. 알리사는 특유의 조그맣고 깔끔한 글씨로 짧은 메모를 남겼다. 안부 인사도 없이.



회의 때문에 파리 갔다가 지젤 봤어.
극장이 발칵 뒤집혔지.
콧대 높은 파리 사람들 넋을 완전히 빼놨어.




 타냐의 집에 모여든 친구들에게 프랑스어를 전공한 스베타가 뉴스와 기사를 번역해 소리 높여 읽어주었다. 열광과 칭찬 일색이었다. 트로이는 ‘사악한 천사, 마음을 뒤흔드는 악마’라는 다분히 뜨겁고 감상적인 표현을 발견하고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건 파리 오페라 극장의 스타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인 디나 로쉬가 한 말이었는데 그녀는 공연 다음날 아침 키로프 발레단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와 미샤와 한 시간 동안 직접 인터뷰를 했다. 물론 관계자들과 보안요원들이 동석한 자리였고 전문이 다 실려 있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터뷰는 무척 생생한 열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로쉬가 미샤한테 완전히 반했나봐. 자기가 조직위원으로 있는 런던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했어. ”


 “ 언젠데? ”


 “ 2월. ”


 “ 와, 근데 보내줄까? ”


 “ 기자들 다 있는데서 제안해서 다닐로프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나봐. ” 


 “ 그럼 런던에 가겠네. 코스챠한테 트렁크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다. ”




 그들은 이고리의 편집실로 몰려가 녹화 테이프도 돌려보았다. 뉴스 클립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공연 모습과 커튼 콜 장면, 파리 오페라 극장에 천둥처럼 울려 퍼진 갈채와 함성만으로도 꽤 볼만했다. 디나 로쉬와 미샤의 인터뷰 필름도 있었다. 기사에는 빠져 있던 부분이었다. 인터뷰는 러시아 대사관 쪽 통역을 통해 진행되었지만 로쉬가 어떤 질문을 던지자 미샤가 통역을 기다리지도 않고 재빨리 프랑스어로 길게 대꾸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고리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 뭐라고 하는 거야? 쟤 어떻게 프랑스어를 저렇게 해? ”


 “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어. ”


 “ 배워봤자 발레 용어였을 텐데. 네가 영어도 가르쳤잖아. ”


 “ 음, 영어도 나쁘지 않아. ”


 “ 그래, 준비 잘하고 있구나. 다행이다. ”



 트로이가 노려보자 이고리는 입을 다물었다. 애가 탄 타냐가 스베타를 쿡쿡 찔렀다.



 “ 무슨 얘기였어? 우리 쪽 사람들 얼굴이 완전히 굳었잖아. ”


 “ 어... 좀 민감한 질문이었어. ‘키로프는 확실히 고전 발레 쪽에서는 최고의 극장이지만 예술가로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지 않느냐, 파리나 서방 국가의 무대에서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 처음엔 이렇게 물었어. ”


 “ 그래서 뭐라고 대답한 거야? ”


 “ 디나가 부른다면 물론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했어. 모든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예술가가 아니라 급료를 받는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어. ”


 “ 급료를 받는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노동자를 그렇게 깎아내렸단 말야? 대사관 사람들과 요원들 앞에서? ”
 


 트로이는 공포에 질려 신음을 토했다. 이고리는 고개를 저으며 스베타에게 물었다.



 “ 그 다음엔? 또 다른 질문 있었잖아. ”


 “ 아, 음... 파리에 처음 온 것 같은데 레닌그라드와 어떻게 다른지, 여기 좀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지 물었어. ”


 “ 그 여자 너무한데, 망명을 부추기는 질문처럼 들리잖아. 저 사람들 앞에서 그런 걸 물으면 미셴카가 난처해지지. ”


 “ 파리는 레닌그라드만큼 춥지 않고 길에 진창이 별로 없어서 신발이 덜 더러워지는 게 좋대. 그 말 때문에 로쉬랑 둘이 웃은 거야. 로쉬가 애한테서 눈을 못 떼는 걸 보니 진짜 반했나봐. 아, 그리고... 자기는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오래 머물고 싶다고 했어. ”


 “ 알만하네, 저 인터뷰 끝나고 불려갔을 거야. 그냥 통역이 적당히 잘라서 옮기게 놔둘 것이지... 아, 우리 로미오를 어떻게 하지. 평소엔 그렇게 침착한 애가 자기 춤 앞에선 성격이 불같이 변해. KGB 놈들이 가만히 안 놔둘 거야. ”



 타냐가 탄식하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고리가 휘파람을 불었다.



 “ 그래도 레닌그라드로 소환 안하고 브뤼셀이랑 암스테르담에 보내줬잖아, 별 일 없을 거야. ”


 “ 런던엔 못가겠네. ”


 “ 두고 봐야겠지 뭐. 그건 그렇고 프랑스 사진사가 우리 쪽보다 실력이 훨씬 좋네, 자다가 일어나서 내려온 애를 모델처럼 찍어 놨으니. 나도 이런 구도로 찍어봐야지. ”


 “ 이고리 넌 멀쩡한 애를 왜 자다가 일어났다고 폄하하고 그래, 원래 잘난 애를. ”


 “ 저 까치집 같은 머리 좀 봐라, 눈도 풀려 있고. 셔츠 단추도 위는 하나도 안 잠근 거 안보여? 다닐로프가 또 펄펄 뛰었을 게 뻔해, 극장 명예가 어쩌고저쩌고. ”


 “ 그래도 사진은 근사한데. 파리 아가씨들이 너도나도 스크랩하겠어. ”



 타냐와 스베타, 이고리가 잡지 사진을 보며 감탄하는 동안 트로이는 좁고 답답한 편집실을 빠져나와 비상구로 갔다. 차디찬 바람을 쐬며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벨트 아래를 눌렀다. 그저 펄프와 잉크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데 어째서 그 보잘것없는 사진 한 장마저 그토록 격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고리의 말이 맞았다, 그건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모습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그 모습을 잘 알았다. 흐트러진 머리와 무겁게 처져 뒤엉킨 속눈썹, 평소의 예리함이 사라진 부드러운 눈매. 아무리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해도 소용없었다. 잠에서 깨어나 한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항상 그랬다. 온통 느릿느릿하고 어눌하고 거의 어린 아이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그 짧고도 긴 시간만큼 안드레이 트로이츠키가 그를 온전히 자기 것처럼 느끼는 순간은 없었다. 미샤는 그런 무기력한 시간을 아주 싫어했다. 자신의 몸이 대체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빨리 정신을 차리려고 일어나자마자 찬물로 얼굴을 씻고 차가운 우유나 진한 차를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며 온갖 애를 다 썼지만 완전하게 또렷해질 때까지는 언제나 한 시간이 필요했다.



 “ 그냥 받아들여. 넌 잠에서 깨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일 뿐이야. ”


 “ 유라가 그러긴 하더라, 아침에 활동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


 “ 학교 다닐 땐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수업을 받았어? ”


 “ 춤이나 음악 수업은 괜찮았는데 다른 건 힘들었어. 다행히 1교시가 주로 강령이랑 공산주의 교육이어서 자주 제꼈어. ”




 
 그 한 시간만큼 트로이를 강렬하게 감동시키고 애정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는 미샤가 잠에서 깨어난 후 곧장 침대에서 내려가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썼다. 잠든 척하며 거미처럼 기다랗고 무거운 자신의 사지로 그의 몸을 반쯤 덮고 있을 때도 있었고 아예 애무를 하거나 섹스를 할 때도 있었다. 사랑을 나누고 나면 미샤는 평소보다 일찍 제정신을 차렸다. '온몸에 피가 잘 돌아서' 라고 농담을 했는데 트로이는 그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희미하게 흥분을 느꼈다.



 그런데 마로조프도 그 모습을 알까? 니콜카도, 아스케로프도, 스비제르스키도, 그리고 그 외의 이름 모를 정부들도 모두 그 한 시간을 알고 있을까? 갑작스럽게 트로이는 칼로 파고드는 것 같고 불타는 듯한 질투심과 분노를 느꼈다. 심지어 편집실에서 그 사진을 보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잡지를 펼쳤다가 미샤의 모습을 봤을 무수한 프랑스 남녀에 대해서도 비이성적이며 무자비한 증오가 치솟았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와 희미한 졸음에 취해 있는 길고 부드러운 눈매, 반쯤 벌려진 입술과 칼라 아래 단추 여러 개가 풀려 있는 검은 실크 셔츠와 어린 아이처럼 무방비 상태로 소파에 늘어뜨리고 있는 팔과 다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마치 인생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하고 비밀스런 그 무엇을 순식간에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너희들은 그냥 무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잖아. 이건 그냥 놔둬!’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불을 지르고 싶었다. 칼이라도 휘두르고 싶었다. 그런 자신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오랫동안 그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  *  *





 큰 성공을 거둔 유럽 투어에서 돌아온 직후 미샤는 모임에 찾아왔고 파리에서 만난 알리사에 대한 소식을 짧게 전해주었다. 대사관 리셉션에서 자기가 직접 찍은 그녀의 사진도 한 장 가져왔는데 트로이에게 주려고 했지만 코스챠가 열광하며 빼앗아가 버렸다.



 “ 여전히 예쁘구나, 알랴는. 근데 많이 야위었네. ”



 사진을 들여다보며 갈랴가 혀를 찼다. 알리사는 어깨를 드러낸 암청색 드레스 차림이었고 여전히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을 소년처럼 짧게 자른 채 비스듬하게 몸을 틀고 있었다. 솟아오른 광대뼈 위로 커다란 갈색 눈동자가 깊고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



 코스챠가 미샤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절하게 물었다.



 “ 알랴 혼자였어? 아니면 파트너가 있었어? 누구 사귄대? ”


 “ 런던 쪽 동료들과 같이 왔어. 사귀는 사람은 잘 모르겠네, 5분밖에 못 봤거든. 다들 보고 싶다고 전해 달래. ”


 “ 걔랑 저녁이라도 같이 먹지 그랬어. 런던에서 엄청 외로웠을 텐데. ”


 “ 그러지 않겠냐고 했는데 알리사가 시간이 안 된다고 했어. ”


 “ 알리사가 네 공연 기사랑 뉴스 클립 보내줬어. ”


 “ 아, 의외네. ”


 “ 뭐가? ”



 미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트로이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파리에 가기 전에 트로이가 알리사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런던에도 가게 된다면 알리사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더니 미샤는 ‘알리사는 날 싫어하는데 보러 올까?’ 하고 물었었다. 




 
 그날 갈랴의 집에 모여든 친구들은 끊임없이 미샤에게 투어와 공연에 대해, 파리와 브뤼셀과 암스테르담, 이름만으로도 한없이 자유롭고 멋지게 느껴지는 그 도시들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다. 미샤는 평소처럼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들로 대답했지만 트로이는 그의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늑한 거실 안에서, 따뜻하고 열광적인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샤는 홀로 길을 잃은 것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마침내 트로이는 다음날 오전 리허설이 있지 않느냐는 핑계로 미샤를 갈랴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코스챠가 자기 차로 데려다 줄 테니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고 붙잡았지만 다들 네 음주 운전에 친구들의 생명을 저당 잡힐 수는 없다고 심하게 야단쳤다.




 차디찬 밤거리로 나와 버스를 타러 갔을 때 미샤가 말했다.



 “ 알리사가 네게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어. ”


 “ 무슨 뜻인지는 얘기 안해? ”


 “ 네가 알 거라는데. ”



 물론 알았다. 그는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약속을 지키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리사는 그가 진정한 시인처럼, 진짜 작가처럼 쓰기를 원했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오로지 열망만이 존재했다. 그것도 충분히 뜨겁지도 못한 열망.



 “ 또 다른 말은 없었어? ”


 “ 없었어. 알리사는 외롭고 불행하게 거기 있었어. ”


 “ 거기는 어딜 말하는 거야? 파리? 런던? ”


 “ 글쎄, 둘 다. 똑같은 거야, 안드레이. 파리나 런던이나 둘 다. 어쩌면 여기와는 다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알리사가 찾는 건 거기 없을 거야. ”


 “ 알랴가 왜 런던에 갔다고 생각해? ”


 “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고 싶어서. ”


 “ 서로 싫어하는 사이치곤 꽤 날카로운 얘긴데. ”


 “ 난 알리사 싫어하지 않아. 사실은 꽤 좋아해. ”



 버스가 고로호바야 거리 근처에서 멈추었다. 미샤가 트로이의 뒤를 따라 내렸다. 별 말도 없이 어두운 거리를 건너 아파트 안뜰로 들어섰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어왔고 미샤의 머리에서 모자가 벗겨져 멀리 날아갔다. 미샤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로이는 투덜거리며 뜰 저편으로 모자를 주우러 갔다.



 돌아왔을 때 미샤는 엘리베이터를 붙잡아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릿한 전구 불빛 아래에서 검은 눈동자가 두세 겹의 불타는 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트로이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그를 밀어 넣었다. 등 뒤로 문이 닫혔을 때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 와락 끌어당기며 키스를 했다. 지금껏 트로이가 집 바깥에서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샤가 잠깐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를 쳐다보았다. 거기 다시 그 시선이 있었다. 길 잃은 것처럼 멍하고 우울한 눈빛. 그는 더 이상 그런 눈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술로 그 눈 위를 덮었고 혀끝으로 눈꺼풀과 속눈썹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핥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는 앞집 사람이 나와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미샤를 아플 정도로 꽉 끌어안은 채 복도를 지나 자기 집 문 앞으로 갔다. 열쇠를 두 번 잘못 돌리자 미샤가 그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아 직접 열었다.




....



잠에서 깨기 힘들어하는 미샤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44







12월, 눈오는 마린스키(구 키로프) 극장 풍경. 이것도 웹에서 가져온 것. 아래 사진 네장은 내가 이번에 갔을때 찍은 것들.





이건 트로이와 미샤가 버스를 탔던 곳은 아니고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의 버스 정류장. 이 글에서 그들은 바실리예스프키 섬에 있는 날리츠나야 거리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그 정류장은 전에 사진 올린 적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4421 )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 어느 건물 문.





전에 몇번 올린 적 있지만, 페테르부르크에는 이런 안뜰(드보르)이 있는 형태의 건축물이 많다. 트로이가 살고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의 아파트도 이런 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가면 사방을 둘러싼 건물이 나오고 그중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다.





어스름에 잠긴 고로호바야 거리.


여기는 트로이의 아파트가 있는 곳이라 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이 거리는 꽤나 길어서... 트로이의 아파트는 위의 사진에 나온 곳과는 꽤 떨어져 있음.



어쨌든 미샤는 발레 투어를 갔다왔으므로 그가 주역을 췄던 지젤과 백조의 호수 사진 몇 장. 물론 미샤는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므로 사진은 다른 사람들 :)





안드리스 리에파 & 율리야 마할리나. 지젤.





아르춈 옵차렌코. 지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백조의 호수




그리고 리허설 중인 슈클랴로프 사진으로 마무리...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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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8월 7일에 www.gramilano.com에 올라온 인터뷰 내용인데 재미있다. 이 사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할까. 원문 링크는 아래. 영어와 노어 버전이 있다.

 

제일 좋아하는 배역이 로미오란 건 알았지만 아직 못 춰서 꼭 추고 싶은 배역이 마농 남자주인공이란 건 처음 알았다. 하긴 초창기에 거기서 조역만 췄지.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란 것도 처음 알았다. 이 녀석, 너 문학을 좀 아는구나.

그리고 타란티노를 좋아한다고 함 ㅋㅋ

제일 두려운 게 뭐냐니까 피루엣이요! 라고 하는데 농담도 섞여 있겠지만.. 나 왜 이게 이해되지.. 얘가 공중회전은 아주 잘하는데 사실 땅을 딛고 하는 피루엣은 가끔 좀 위태위태할 때가 있다고 맘속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인가... (왜 하늘에선 잘 돌면서 땅에선 위태한 거야!) 그래도 요즘은 다시 좋아진 것 같다.

 

http://www.gramilano.com/2016/08/vladimir-shklyarov-answers-the-gramilano-questionnaire-dancers-edition/

 

 

When did you start dancing?

Ive suffered since childhood my Mum wanted me to do it.

 

Why did you start dancing?

Because I was forced toI didnt want to!

 

Which performers inspired you most as a child?

Soviet cinema performers Yuri Nikulin and Andrei Mironov.

 

Which dancer do you most admire?

Vladimir Varnava.

 

Whats your favourite role?

Romeo.

 

What role have you never played but would like to?

Des Grieux in Manon.

 

Whats your favourite ballet to watch?

Don Quixote with Mikhail Baryshnikov.

 

Who is your favourite choreographer?

Yuri Smekalov.

 

Who is your favourite writer?

Fyodor Dostoyevsky.

 

Vladimir Shklyarov-04Who is your favourite theatre or cinema director?

For movies, Tarantino for the theatre, Lev Dodin.

 

Who is your favourite actor?

Danila Kozlovsky.

 

Who is your favourite singer?

Zemfira.

 

What is your favourite book?

The one Im reading.

 

What is your favourite film?

Django Unchained.

 

Which is your favourite city?

St Petersburg.

 

What do you like most about yourself?

Ill leave that for others to say

 

What do you dislike about yourself?

I am very impulsive.

 

What was your proudest moment?

Creating my family!

  

When and where were you happiest?

I am happy when I happen to make those close to me happy.

 

What or who is the greatest love of your life?

My wife and my son!

 

What is your greatest fear?

Pirouettes!

 

If you could change one thing about yourself, what would it be?

My lazinessIm bad at waking up in the morning!

 

What do you consider your greatest achievement?

I hope its still to come.

 

What is your most treasured possession?

Faith in God.

 

What is your greatest extravagance?

It is difficult to remember which one

 

What do you consider the most overrated virtue?

In this sense, I always agree with my friend Yura!

 

On what occasion do you lie?

I never lie.

 

Vladimir Shklyarov-08If you hadnt been a dancer what would you have liked to be?

A guard.

 

What is your most marked characteristic?

Stubbornness.

 

What quality do you most value in a friend?

Loyalty.

 

What quality do you most value in a colleague?

Diligence.

 

Which historical figure do you most admire?

Spartacus.

 

Which living person do you most admire?

My son Alec.

 

What do you most dislike?

Lies.

 

What talent would you most like to have?

To be able to fly.

 

Whats your idea of perfect happiness?

The health of my family

 

How would you like to die?

So that life was not lived in vain.

 

What is your motto?

A beetle crawls, a spider crawlsbut a hawk, flies!

 

 

 

  ....

 

 

이 사람이 마린스키에서 마지막으로 춘 공연인 7월말 청동기사상 사진들이 alex gouliaev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아내인 쉬린키나와 춘 사진들인데 지난번 무대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사진 몇두장만.

 

사진 모두 alex gouliaev.

 

 

  ..

 

아래는 노어 버전 인터뷰.

 

 

Вопросы и ответы

 

Когда вы начали танцевать?

Мама хотелаМучаюсь с самого детства

 

Почему вы начали танцевать?

Заставляли! Я не хотел

 

Кто из артистов повлиял на вас больше всего в детстве?

Юрий Никулин и Андрей Миронов

 

Кем из артистов (балета, современного танца) вы восхищаетесь?

Владимир Варнава

 

Ваша любимая роль?

Ромео

 

Какую роль вы никогда не исполняли, но хотели бы сыграть?

Де Грие ( Манон )

 

Какой балет вы смотрите с удовольствием?

Дон Кихот с Михаилом Барышниковым

 

Ваш любимый хореограф?

Юрий Смекалов

 

Ваш любимый писатель?

Достоевский Ф.М.

 

Ваш любимый кино- и театральный режиссёр?

Кино Тарантино, театр Лев Додин

 

Ваш любимый актёр (театра, кино)?

Данила Козловский

 

Vladimir Shklyarov-03Ваш любимый певец, певица?

Земфира

 

Ваша любимая книга?

Та, которую читаю

 

Ваш любимый фильм?

Джанго освобождённый

 

Ваш любимый город?

Санкт Петербург

 

Что вам нравится в себе больше всего?

Пусть об этом лучше говорят другие

 

Что вам не нравится в себе больше всего?

Я очень импульсивен

 

Ваш момент для гордости?

Моя семья!

 

Когда и где вы были самым счастливым?

Я счастлив тогда, когда у меня получается сидеть счастливым близких мне людей

 

Что или кто любовь всей вашей жизни?

Моя жена и мой сын!

 

Чего вы больше всего боитесь?

Пируэтов

 

Если бы вы могли изменить в себе что-то одно, что бы это было?

Мою лень! ( плохо просыпаюсь по утрам )

 

Ваше самое большое достижение?

Надеюсь, оно впереди

 

Самая большая ценность, которой вы обладаете?

Вера в Бога

 

Самая большое расточительство, которое вы совершили?

Сложно вспомнить какое из J

 

Какая добродетель, по вашему мнению, переоценена?

В этом смысле я всегда солидарен с моим другом Юрой! J

 

По какому случаю вы можете солгать?

Я никогда не вру

 

Если бы вы не были танцовщиком (балериной), кем бы вы хотели быть?

Охранником

 

Ваша самая характерная черта?

Упрямый

 

Vladimir Shklyarov-12Какое качество вы больше всего цените в друзьях?

Верность

 

Какое качество вы больше всего цените в коллегах?

Трудолюбие

 

Ваш любимый исторический персонаж?

Спартак

 

Ваш любимый герой в реальной жизни?

Мой сын Алекей

 

Что вы больше всего ненавидите?

Ложь

 

Каким талантом вы хотели бы обладать?

Летать

 

Что для вас счастье?

Здоровье моих близких

 

Как бы вы хотели умереть?

Так, чтобы жизнь была прожита не зря

 

Ваш девиз?

Жук ползёт, паук ползёт, а ястреб лети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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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모스크바의 스타니슬라프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 극장, 혹은 МАМТ(Московски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Музыкальный театр 모스크바 국립 음악 극장)의 백조의 호수에 옥사나 카르다쉬와 함께 출연했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당시 공연 클립 몇개 올려본다.

 

이 극장의 백조의 호수는 블라지미르 부르메이스테르 버전을 따르고 있다. 음악도 오리지널 차이코프스키 스코어를 혼용하고 있어 2막의 흑조 2인무에서 쓰는 음악도 요즘 마린스키 버전과는 다르다. (발란신의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를 생각하시면 될듯) 그리고 파이널도 마법에 걸린 백조가 실제 인간 아가씨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끝난다.

 

나는 사실 마린스키 버전처럼 지그프리드가 화끈하게 로트바르트 날개를 북 뜯어죽이는 게 속시원하고 좋긴 한데.. 아니면 아예 확 비극이 되어버리거나...

 

그래서 개인 취향에 따르자면 이 버전은 좀 지그프리드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허우적거리다 어찌어찌 잘되는 분위기라 딱히 좋아했던 적은 없지만... (파이널 클립 보시면 아실 거예요. 이게 뭐야 왕자 죽니? 어? 어? 하다가 이상하게 잘되는 분위기 ㅋㅋ) 그래도 허우적거리고 울고불고하는 슈클랴로프 지그프리드는 귀여우므로...

 

파트너는 옥사나 카르다쉬... 인데 나의 팬심으로 인해 여기 올리는 클립들은 파이널 빼곤 슈클랴로프 지그프리드 위주입니다(미안해요 ㅠㅠ 근데 이 백조의 호수는 지그프리드 분량이 별로 없음)

 

많이들 보시는 마린스키나 볼쇼이 버전과는 조금씩 다른 안무입니다~

 

 

 

1막의 지그프리드 솔로. 머리 말끔하게 빗어넘기고 '나는 왕자요~' 하고 나타나 으쓱으쓱 춤추는 지그프리드 슈클랴로프. 석궁 꼭 쥐고...

 

 

 

2막 무도회. 흑조 오딜에게 속아 헤벌레해서 좋다고 솔로 추고 있는 바보 라고 쓰고 귀엽다고 읽는다 지그프리드...

 

발란신은 이 음악을 뽑아내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를 안무했는데, 잘 보시면 발란신 안무와는 좀 다릅니다~ (http://tveye.tistory.com/4945 의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 솔로 클립 참조)

 

 

 

역시 2막. 바보 지그프리드, 오딜에게 청혼했다가 홀랑 속은 것을 알게 되어 두둥! 충격! 우왕좌왕... 엄마한테 달려가 울고불고 하다가 그래도 내 여자 내가 찾으리 하고 후다닥 달려나감. 이게 슈클랴로프니까 귀엽지 다른 지그프리드였으면 한대 패주고 싶었을지도 :)

 

나는 원래 백조의 호수에서 이 장면을 매우 좋아하는데 슈클랴로프 지그프리드의 귀여움과는 별개로 이 부르메이스테르의 안무 버전은 좀 맘에 안 든다. 극적인 효과도 너무 약하고 로트바르트도 안 무섭고 갑자기 진상이 확 밝혀져야 더 드라마틱한데 이건 중간에 너무 뜸을 들이는 경향이 있음...

 

 

 

 

이것이 파이널.

 

백조의 호수야 워낙 버전이 많긴 하지만 국내에서야 보통 두어가지 파이널을 많이 보시므로... 약간 다른 MAMT 파이널을 한번 보세요~

 

나의 불만은... 여기서 왕자가 너무 하는 일이 없다는 것임 -_- 아예 화끈하고 멋있게 죽든가... 아니면 멋있게 영웅이 되든가... 뭐야 이게... 뭐 했다고... 같이 죽고자 하여 진정한 사랑으로 마법을 물리쳤다..인 것 같다만...

 

(나는 그냥 백조 들어올리고 두다다 득달하고 로트바르트 날개 뜯는 네가 더 좋아 ㅠㅠ 아니면 장엄하게 전사해버리거나... 이건 뭐 전적으로 드라마틱한 걸 좋아하는 내 취향 탓입니다)

 

 

 

 

하여튼, 빵끗 웃으며 춤추는 지그프리드 슈클랴로프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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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 마무리된 도쿄 공연. 슈클랴로프와 사라파노프, 다닐 심킨을 비롯한 유명 남성 무용수 몇명 및 사라 램 등 발레리나 2명이 참여했고 주제는 무려 '왕자님'..과 '공주님'.

 

일본은 발레 애호가들이 많아서 부럽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조합에 도저히 볼 수 없는 작품들.. 슈클랴로프는 발레101, 에튀드, 5탱고 등을 췄다... 아, 좋겠다... 심지어 사라파노프 심킨 슈클랴로프가 한자리에...

 

도쿄 쪽 무용수들과 다같이 찍은 사진. 제일 한가운데 왕자님처럼 서 있는 꽃돌이 슈클랴로프. 그리고 그 옆에 옆에 서 있는 사라파노프 ㅋ

 

 

사진사는 캡션대로 kionori hasegawa

맨 오른쪽 발레 101 숏팬츠 복장이 슈클랴로프.

 

 

이건 프로그램 중 슈클랴로프 페이지. 일본 팬이 캡처해 올린 사진.

 

 

 

아악, 오글오글... 이게 이 공연 제목... 아, 으.... 어어...

아무리 그래도 이거 좀 오글오글..

그와중에도 슈클랴로프는 왕자님 같긴 하다 ㅋㅋ 옆의 심킨이랑..

근데 이 포스터 정말 미치겠다...

 

 

꽃분홍 포스터의 환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연습실의 왕자와 공주들 ㅋㅋㅋ

빨간 덧신 신고 면도 안한 슈클랴로프, 맨 오른쪽.

 

이건 발레 101.

이 사람이 추는 무대로 보고 싶어 ㅠㅠ

 

 

사진만 올리면 아쉬우니..

얼마전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갈라 공연에서 차이코프스키 2인무를 춘 슈클랴로프의 솔로 영상 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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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1일에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사라파노프가 바질, 보론초바가 키트리로 나오는 돈키호테를 보고 왔었다. 보고 온 날 리뷰를 썼지만 티스토리가 먹통이 되면서 글을 다 날리는 바람에... 그날도 대충 몇줄만 남겼다(http://tveye.tistory.com/4802) 다시 못 쓸것 같아 ㅠㅠ

 

그래서 그냥 사라파노프 바질에 대한 메모만 다시...

 

원래 6월 9일에 그것도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의 돈키호테를 봤는데 연달아 미하일로프스키 돈키호테를 볼 이유는 없었다. 작년에 바실리예프가 춘 돈키호테를 여기서 봤었고... 그때도 느꼈지만 바실리예프 하나 덕에 볼만했고 원래 미하일로프스키야 고전발레 쪽은 마린스키보다 딸리니까.. (특히 군무...)

 

그러니까 내가 연달아 이걸 끊은 유일한 이유는 사라파노프 때문이었다!!!! 여기 라 바야데르를 전에 끊어서 본 것도 첫번째는 사라파노프, 두번째 봤을땐 레베제프 때문이었지(이때 레베제프의 발연기에 너무 열받아서 니키야 차라리 해독제 먹고 브라만에게 가라! 하고 소리쳤음)

 

라 바야데르의 사라파노프는 괜찮았었다. 그리고 워낙 이 사람이 옛날부터 바질을 잘 추던 사람이니 난 당연히! '사라파노프=바질=최고'로 생각하고 간 것이다. 그나마도 슈클랴로프만큼 좋아하는 무용수가 아니라서 이건 1야루스(3층) 앞줄을 끊었는데 이 극장은 작으니 나름 잘 보이는 편이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나마 3층 끊어 다행. 1층 앞줄 끊었음 돈아까웠을뻔...

 

이날 사라파노프가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지, 아니면 나이 때문인지(그렇다고 별로 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슈클랴로프랑 두어살 차이밖에 안남) 별로여서 나를 충격에 빠뜨림 ㅜㅜ 원래 보론초바야 기대를 안하니 '얼굴 예쁜 키트리'로 그냥 넘어간다지만..

 

앗, 사라파노프! 너 어찌 이럴수가!! 어떻게 키트리를 한손 번쩍 드는 데서 약한 모습을 보인단 말이냐... 저 가냘픈 보론초바를 한손으로 들자마자 급하게 내려놓다니... 슈클랴로프조차도 근육질 마트비옌코를 한손으로 번쩍번쩍 들고 흔들어줬건만... 바질의 그 여유는 어디로!!!

 

게다가 선술집에서 키트리가 달려오는 걸 확 잡아채 안아주는 리프팅 때도.. 원래 능청스런 바질은 딴 여자들이랑 수작부리는 척 하다가 키트리가 달려오면 순간 홱 돌아서서 잡아주는 것이 백미이거늘... 사라파노프 옛날에 안 그랬는데, 보론초바가 달려오는 걸 매의 눈으로 계속 관찰하다 확 잡고 그나마도 금방 놔줌...

 

파트너 리프팅부터 시작해 이것저것 좀 '으잉? 내가 아는 사라파노프 맞아?' 였다. 심지어 솔로들조차 그냥 그랬다... 이 사람이야 워낙 피루엣이 깔끔하니 그건 여전했지만 그 나머지는...

 

팬심 다 떠나서 난 솔직히 사라파노프를 슈클랴로프보다 무용 테크닉이나 파트너쉽으로는 더 윗급으로 치고 있었는데(발로쟈 미안해 ㅠㅠ) 이날 바질 보고 너무 실망했다... 이틀 전 본 슈클랴로프 바질이 어느 모로 보나 훨씬 나았다.

 

아직도 안 믿어짐... 분명 저날 사라파노프가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일 거야... 라고 믿고 싶음 ㅠㅠ

 

... 그리고 저 바질은 역시 안 귀여워... 내가 키트리 아빠라도 저 바질 대신 가마쉬한테 딸 시집보낼라 할 거 같아...

안 귀엽지만 춤을 너무 잘 추니까 보러 간 건데... 사라파노프 이러기야 엉엉...

 

오히려 투우사가 생각보다 괜찮았음 -_-

 

안젤리나 보론초바는... 으음... 파워가 딸린다. 이틀 전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의 키트리 보면서 좀 아쉬웠는데 보론초바 키트리를 보니 갑자기 마트비옌코 키트리가 엄청 괜찮았다는 후광효과마저...

 

사진은..

 

내가 이날 3층 앞줄에 앉았기에 줌 당긴 최대가 이 정도..

 

그리고 슈클랴로프가 아니라서... 오케스트라 핏 앞으로 뛰쳐나가 사진 찍는 정성은 들이지 않았습니다 ㅠㅠ 춤이라도 잘 췄으면 그래도 사라파노프니까 커튼콜 할때 1층으로 내려가 찍어볼까 했다만... 빈정 상했음... 너 이러기냐... 돈키호테의 백미는 투우사 망토돌리기 & 바질의 키트리 한손 번쩍들기 이거늘..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 취향에서 나온 겁니다... 마린스키 백조의 호수 백미를 지그프리드 허벅지에 오데트 올려놓기와 로트바르트 날개 멋있게 뜯기로 우기는 것처럼... ㅎㅎ)

 

그냥 그런 화려한 기술을 차치하고라도... 이날 사라파노프는 전반적으로 별로였다. 그냥 이날만 그런 거였다면 좋겠다 ㅠㅠ 옛날에 본 사라파노프 바질 무대 좋았었는데... 세월무상인 거니ㅠㅠ

 

하여튼 그래서.. 별 성의 없는 커튼 콜 사진 몇 장 투척.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거라 감안하시길...

 

 

 

 

 

 

 

 

 

... 다시 생각해도 아쉬워서..

 

슈클랴로프 바질과 마트비옌코 키트리 커튼 콜 사진 마지막으로 보너스 한 컷!!!

 

 

 

아 이뿌다...

 

근육질 키트리 들어주느라 수고했어 발로쟈... ㅠㅠ

 

이것은 진정 콩깍지 때문이 아님... 이때 바질은 얘가 사라파노프보다 나았음 흐헝..

 

(슈클랴로프 돈키호테 본 날 메모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98. 이것도 그냥 짧은 메모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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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오는 새벽. 유튜브에 지난 6.15 슈클랴로프가 춘 청동기마상 중 3막 클라이막스인 광란씬이 올라와서 유튜브 링크 걸어본다. 홍수로 연인 파라샤를 잃은 후 그녀의 환영 속에서 미쳐가는 예브게니의 춤인데 실제 무대 봤을때 다들 숨도 못쉬고 봤다. 중간에 브라보를 할수도 없었다.


예브게니 역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연인 파라샤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안무는 유리 스메칼로프. 원작은 푸쉬킨의 청동기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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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페이스북 슈클랴로프 팬페이지 및 인스타그램 : https://www.facebook.com/VladimirShklyarov1985


Vladimir Shklyarov has been chosen to be the awardee of the BALLET2000 Prize. He will also dance at the gala on July 31st, just one day after his performance in "The Bronze Horseman" at Mariinsky Theatre. Here is the information in the flyer, I will write it down here, since the photo is too small to read.

"Cannes, Palais des Festivals, July 31st 2016.
In 2004, the first edition of the Prix established by BALLET2000 (at the time called "Les Etoiles de Ballet2000), the "Life-time Achievement Prize" went to Maya Plisetskaya. Not content with merely receiving the award on stage, the great artist (who was 79 at the time) dance the "Ave Maya" solo created for her by Maurice Béjart. Her husband Rodion Schedrin (one of the greatest Russian composers of his generation) had accompanied her to Cannes. A grand piano for Schedrin was found at the Palais des Festivals and he played the notes of Gounod's Ave Maria on stage (with cellist Luis Felipe Serrano) while Maya, extremely elegant in a coustume designed for her by Pierre Cardin, danced simple steps adorned by her magnificent ports de bras as she waved two Japanese-like fans.

On the very same stage at the Palais des Festivals in Cannes on 31 July this year, the Prix Ballet2000 will be dedicated to the memory of Maya Plisetskaya who passed away last year. Rodion Schedrin will be the guest of honour at the event.
The Prizes are given out to artists chosen from nominees which is made up to some of the world's most famous dance critics and specialists, all of whom contributors to BALLET2000.

The focus is on the "Prix a la Carriere" (Life-time Achievement Prize) that goes to a celebrity who has had an extraordinary significant career. This year in Cannes it is to be given to Hans van Manen, the great Dutch choreographer, whose vast and varied oeuvre, rigorous and open at the same time, has had a deep influent on European ballet during recent decades.

Three special "Prix MAYA" will be handed out this year, respectively to: Diana Vishneva, star of Mariinsky Ballet, St. Petersburg and of American Ballet Theatre, New York; Aurélie Dupont, etoile of the Ballet de l'Opéra de Paris and the new director of the company (by a strange coincident, July 31 will be her last day as a freelance ballerina, while the following will be her first as director); Friedemann Vogel, principal dancer of the Stuttgart Ballet as well as guest star of major companies around the world.

The BALLET2000 Prizes are however essential for dancers who have shone with major international companies during recent seasons. This year awardees are: Oscar Chacon and Kateryna Shalkina (Béjart Ballet Lausanne), Victoria Tereshkina and VLADIMIR SHKLYAROV (Mariinsky Theatre, St. Petersburg), Osiel Gouneo (English National Ballet, with his partner Jem Choi), Virna Toppi and Jacopo Tissi (Teatro alla Scala), Sergio Bernal Alonso (Ballet Nacional de España), Davide Dato (Wiener Staatsballett), Maëva Contion and Alessio Passaquindici (Ballet Nice Méditerranée, Opéra de Nice), Anjara Ballesteros (Les Ballets Trockadero de Monte Carlo, with her partner Lucien Postlewaite).
Furthermore, a specia medal will be awarded to Forceful Feelings, an unusual all-male group of American dancers, all of whom principals with international trouples but committed to raising an awareness, around the world, of ballet in their country. They will be performing in Cannes with partners of various origins. Their names are: Sarah-Jane Brodbeck, Arman Grigoryan, Vahe Martirosyan, Arsen Nehrabyan, Galina Mikhaylova, Tigran Mikayelyan, Mia Rudic

The aforementioned artists will all dance at a gala performance (under the artistic director of former Mariinsky principal Irma Nioradze, on stage at the Palais des Festivals (Grand Auditorium), Cannes, the climax of which will be the prize-giving."


..


축하, 발로쟈!


근데 7.30 밤에 마린스키에서 청동기사상 추고(아마 이게 이번 시즌 마지막 공연, 한동안 마린스키 마지막 공연)일텐데 다음날 프랑스로 날아가 곧장 갈라 공연이라니 피곤하겠다..





이쁜 발로쟈 사진 한컷. 얼마전. 보석디자이너 악쇼노프, 아내 쉬린키나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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