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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슈클랴로프'에 해당되는 글 225

  1. 2019.03.05 오랜만에 발로쟈, 꿈에 나와 주신 기념 + 페트루슈카 커튼콜 사진 두 장
  2. 2019.02.09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3. 2018.11.11 젊은이와 죽음 : 슈클랴로프 & 샤프란 (18.11.3) 6
  4. 2018.11.08 마르그리트와 아르망(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나탈리야 소모바) 2
  5. 2018.11.04 젊은이와 죽음(슈클랴로프 & 콘다우로바 : 2013년 마린스키 공연 클립)
  6. 2018.10.30 도약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4
  7. 2018.07.16 천사같은 꽃돌이님 2
  8. 2018.06.18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한컷
  9. 2018.06.13 오후
  10. 2018.06.12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데뷔 15주년 축하해요
  11. 2018.04.12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세 장 + 마샤랑 셋이 사진 찍었을 때 기억 4
  12. 2018.03.03 3.2 금요일 밤 : 슈클랴로프님 부부 무대 보고 옴, 유니버설 발레단 스페셜 갈라 6
  13. 2018.02.20 콩쥐토끼는 죽어라 일해서 꽃돌이님을 보러 갈거야 ㅠㅠ 8
  14. 2018.02.09 생일 축하해요 블라지미르 & 알료샤, 친절한 꽃돌이님
  15. 2017.12.17 로마에서 돌아온 미샤, 빨강, 소련 군가, 우주비행사 11
  16. 2017.11.26 일요일 오후, 2집에서 차 한 잔 + 슈클랴로프님 등 6
  17. 2017.10.22 열받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샤 + 춤과 담배와 알콜 14
  18. 2017.10.15 미샤의 안무 데뷔 - 루슬란과 류드밀라 20
  19. 2017.09.24 2집의 일요일 오후 + 오전의 별다방 4
  20. 2017.09.10 일요일 오후 차 마시며, 부활절 찻잔, 노어바보ㅠㅠ 18
  21. 2017.08.27 여름 블라디보스톡 시내 + 마린스키 분관 사진 몇 장 6
  22. 2017.08.19 붉은 수탉 티포트, 체코슬로바키아랑 중국 애들과 함께, 토요일 오후 6
  23. 2017.08.06 블라디보스톡 공연 떠올리며, 슈클랴로프 화보와 사인으로 2집 장식 + 티타임 2
  24. 2017.08.05 면회 - 발광 페인트 토마토 수프 24
  25. 2017.07.31 슈클랴로프 커튼 콜 :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 아주 짧은 메모 + 좀 아쉬운 오시포바 + 꽃 2



아침에 깨기 직전 슈클랴로프님이 꿈에 나오심. 그렇지 않아도 딱 작년 이맘때 슈클랴로프 부부가 유니버설 발레 갈라에 출연하느라 내한했었고 연 사흘 공연 보러 가고 끝난 후 만나 사인도 받고 얘기도 나눴는데 아마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꿈에 나와주심. 꿈속에서 발로쟈는 아내인 마리야와 함께 다시 우리 나라에 왔고 무려 우리집에 놀러와서(!) 배웅하러 나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깼다. 아아 이렇게 엄청난 꿈인데 나는 오늘 로또를 샀어야 했는데 여기는 시골 동네라 로또 파는 곳이 없음 흐흑...



사진은 작년 가을에 갔을 때 마린스키 샵에서 산 이분의 데뷔 15주년 프로그램. 표지는 바이에른에서 췄던 로미오. 블루블랙의 저 깃털 브로치는 마린스키에서 샀는지 다른 가게에서 샀는지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저 브로치가 참 이쁘긴 한데 핀이 좀 허술해서 망가질까봐 실제로 달고 나간 적은 두어번밖에 없음. 저 프로그램 샀던 날 블라지미르 바르나바 안무의 페트루슈카를 보러 갔었다. 슈클랴로프님의 연기도 훌륭했고 춤도 좋았지만 안무 자체는 좀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발로쟈의 표현력 하나만으로도 볼만한 가치는 있었다. 게다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있고. (스트라빈스키 음악들 중 페트루슈카를 가장 좋아함)






그냥 넘어가기 아쉬우니 그날 찍은 커튼콜 사진 두장. 분명 맨 앞줄 가운데 앉아서 봤건만... 역시나 마린스키 신관은 조명도 그렇고 맨 앞줄에서 찍으면 오히려 빛이 다 번진다 ㅠㅠ 게다가 페트루슈카 역의 발로쟈는 하얀옷과 하얀 모자 때문에 더더욱 빛이 번져서 사진 폭망... 그래도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 중 하나는 내가 준 거니까 기념으로 :)







이날 페트루슈카에 대한 아주 짧은 메모와 폰으로 찍은 커튼콜 사진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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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2. 9. 14:46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dance2019. 2. 9. 14:46





오늘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님 생일이다 :)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백스테이지에서 찍힌 사진도 멋있는 발로쟈~







작년이 이 사람 데뷔 15주년이었다. 기념 공연(로미오와 줄리엣) 때 나온 프로그램. 일하느라 그 공연엔 못 가고 대신 9월에 가서 득템. 그날 이 사람은 바르나바가 안무한 페트루슈카를 췄다. 위의 사진의 왼쪽 화보가 그 페트루슈카.


..


인스타에 축하 포스팅 올린 직후 확인하고 하트하트 달아주신 발로쟈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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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지난 11월 3일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와 크리스티나 샤프란이 춘 젊은이와 죽음 영상 클립. 유튜브에 올라왔음. 며칠 전에 슈클랴로프의 2013년 이 공연 클립을 올린 적이 있는데(http://tveye.tistory.com/8564) 그때와 비교해서 보면 더 좋다. 관객이 폰으로 찍었는지 화질은 이게 좀 더 떨어지지만 대신 클로즈업이 많다. 이 사람은 5년 사이에 좀더 성숙해져서 무용수이자 배우로서의 정점에 달해 있는 것 같다. 역시나 가슴이 쿵쾅쿵쾅...  

 

 

위의 링크로 가면 이 발레에 대한 메모와 5년 전 클립을 볼 수 있고, 거기서 또 다른 링크를 따라가면 그 전에 올린 메모를 볼 수 있다.

 

 

크리스티나 샤프란은 전체적으로 좀 미숙하다. 춤과 움직임, 파워의 부족함을 특유의 관능미로 벌충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슈클랴로프와 함께 출 때는 좀 나은데 독무를 추면 부족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사람이 제1솔리스트가 되어 있는 것도 좀 과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하긴 티무르 아스케로프도 프린시펄이지 ㅠㅠ 뭐 샤프란과 티무르 아스케로프는 관능적인 Le Parc에서 같이 출땐 괜찮았다. 그리고 투덜거리고는 있지만 이 젊은이와 죽음에서의 샤프란이 클래식 발레보다는 낫다. 해적의 메도라 등등은 좀 재앙...

 

 

 

 

..

 

근데 발로쟈 너 왜 머리 짧게 잘랐니 ㅠㅠ 짧아도 원체 미남이니 잘 어울리긴 하지만 난 너 머리 더 긴 게 좋은데 흑...

 

..

 

 

 

 

 

 

이 공연 사진 두 장. 슈클랴로프님이 인스타에 올린 것. 사진사는 빅토르 바라노프스키. V. Baranov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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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프레드릭 애쉬튼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원래 마고트 폰테인과 누레예프를 위해 안무했던 작품이고 둘이 추는 영상을 보면 정말이지 이것은 누레예프를 위한 발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슈클랴로프는 몇년 전 마린스키에서 이 작품에서 아르망을 췄는데 나는 감격스럽게도 그의 아르망 데뷔 무대를 직접 보았고 무지무지 감명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르그리트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가 췄다. 데뷔 무대에서 그의 아르망은 누레예프의 공작새 같고 도도하고 허세 넘치는 청년이 아니라 좀더 로미오 같고 낭만적인 스타일이었다. 작년에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도 그는 이 작품을 가져와 오시포바와 함께 췄는데 난 운좋게 이것도 직접 봤다. 시간이 지나고 그간의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그의 아르망은 훨씬 성숙해져 있었다. 오시포바가 묻히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시포바보다는 테료쉬키나의 마르그리트가 훨씬 마음에 들었었다.

 

아쉽게도 테료쉬키나와의 무대나 오시포바와의 무대는 영상 풀 클립이 없는데 나탈리야 소모바와 함께 춘 무대는 영상이 있다. 그래서 올려본다.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아르망... 애쉬튼의 아르망이라기보단 러시아의 아르망이란 느낌이 드는데 나는 원래 애쉬튼의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슈클랴로프의 해석이 더 취향에 맞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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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이 클립은 전에 올린 적 있긴 한데 그땐 유튜브 링크여서 지금은 막혀 있어 다시 올려본다.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가 마린스키에서 춘 것이다. 내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를 '정말로' 좋아하게 된 첫 작품이기도 했다. 그를 무대에서 처음 본 것은 2006년이었지만 그의 춤과 무대에 온전히 빠져들게 되었던 건 2012년 가을, 마린스키에서 그가 이 작품을 췄을 때였다. 그때도 콘다우로바와 췄다. 콘다우로바도 이 역에 정말 잘 어울린다.

 

위의 영상은 그로부터 몇달 후, 2013년에 그가 데뷔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췄을 때 관객 중 누군가가 찍은 것이다. 슈클랴로프는 그때 라 바야데르 3막의 망령의 왕국, 발란신의 jewels 중 '루비', 그리고 이 젊은이와 죽음을 골랐다. 그러니까, 완벽히 마린스키다운 클래식, 발란신,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작품까지 셋을 골랐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은 발란신에는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루비보다는 차라리 다른 걸 췄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만.

 

 

하여튼 난 그 기념공연은 못봤지만 작년에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 이 사람의 특별 공연은 봤다. 그때 이 사람은 스메칼로프가 안무해준 '날 버리지 마', '발레 101', '고팍', 그리고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췄다. 아주 근사한 무대였고 이 사람의 매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작품들이었다. 아무래도 앞의 세개는 혼자서 추는 거라 별다른 세트가 필요없어 솔로 무대 보여주기 적합하니 고른 것도 있다. 하여튼 그때 젊은이와 죽음도 다시 춰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건 무대 세트에 공이 좀 들어가니 더 어려웠겠지.

 

 

젊은이와 죽음은 항상 나에게 특별한 발레였다. 미하일 바리쉬니코프의 영화 백야가 바로 이 작품으로 시작된다. 내가 러시아어를 전공한 이유 두가지 중 하나가 이 영화인데, 이 영화는 동시에 나에게 발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작품이기도 했다. 이 영화 비디오(!)를 보았던 당시는 중학생이었고 발레에 대해선 역사나 이론들 정도밖에 몰랐고 당연히 롤랑 프티가 누군지도 몰랐다. 심지어 바흐의 파사칼리아도 여기서 처음 들었다. (바흐는 지금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악가는 아닌데 그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것 딱 두곡만 꼽으라면 이 곡과 '인류의 기쁨 되신 주'이다)

 

 

화질 나쁜 비디오 화면으로 어둠과 붉은색과 죽음의 여인, 그리고 격렬하고 처절하게 춤추는 바리쉬니코프를 보았을 때 난 충격을 받았고 거의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이 작품의 드라마와 파사칼리아, 콕토의 리브레토와 주인공 청년의 절망적인 춤, 이 모든 것이 나를 온전하게 사로잡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무수한 발레를 보고 아주 많은 예술작품들을 접하면서 나의 시선과 감각은 변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나를 잡아흔든다. 사실 아주 내 취향이다. 취향이란 변하기 마련이지만 본질적인 무언가는 변하지 않고 남는다. 젊은이와 죽음은 나에게 그런 발레이다. 여러 무용수들이 춘 무대를 보았지만 직접 본 무대에서는 슈클랴로프의 춤이 가장 좋았다. 내게 최고의 '젊은이'를 꼽으라면 바리쉬니코프, 누레예프, 그리고 슈클랴로프이다. 비록 전자의 두개는 영상으로만 보았지만.. 

 

 

며칠 전 이 사람이 마린스키에서 이 작품을 다시 췄다. 상대역은 크리스티나 샤프란이었다. 짧은 영상 클립과 사진들을 보니 샤프란은 역시 아직 죽음의 여인을 추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만... 아아 나 정말 이 사람이 추는 이 무대 다시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 흐흑... 발로쟈... 엉엉 다음에 갈때 꼭꼭 이 작품 다시 춰줘요...

 

 

이 작품을 너무나 좋아했고 또 나에게 특별한 발레였기 때문에 몇년 전 글을 쓸 때 미샤가 이 춤을 (좀 자기 맘대로) 추는 장면을 집어넣기도 했다. 슈클랴로프의 이 무대를 보러 갔을때 마침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때였고 미샤와 춤에 대해 상상하던 무렵이라 더욱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무대를 보면서 이 작품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미샤와 딱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강렬하고 비극적이고 격정적이고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고, 젊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바닥 없는 절망을 표출할 수 있는 작품. 그것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불러올리고 있던 미샤와 깊게 공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이 춤을 추는 것을 세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소설에서는 미샤가 이 작품을 추는 장면이 아주 짧게, 그의 문학 서클 동료였던 알리사의 회상으로 묘사될 뿐이다. 전에 발췌해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건 여기 : http://tveye.tistory.com/2390

 


 

 

 

영상 클립만 올리면 좀 아쉬우니 젊은이와 죽음을 추는 슈클랴로프님 화보 한컷. 전에도 올린 적 있다만 좋아하는 화보라서 다시 올려본다. 사진은 alex gouliaev가 찍은 것.

 

극장과 발레의 특성이 그렇듯 실제 무대와 영상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동영상 클립은 슈클랴로프의 실제 무대에서 느껴진 에너지와 드라마, 불꽃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해 좀 아쉽다. 무대는보다 격하고 보다 묵중했다. 불꽃이 이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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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0. 30. 23:21

도약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dance2018. 10. 30. 23:21





오랜만에 슈클랴로프님 화보 한 장. 얼마 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열렸던 갈라 공연. 해적의 알리 추는 중.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은 @cositore_photographer (인스타그램)



그러고 보니 지난 9월에 뻬쩨르 갔을 때 찍은 이 사람의 페트루슈카 커튼 콜 사진도 몇장 있는데 그거 올린다는 것도 까먹었네. 하긴 조명 때문에 많이 번져서 제대로 건진 사진이 별로 없긴 했다. 맨 앞줄 가운데였는데도 흐흑..



발로쟈, 한국 또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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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7. 16. 23:07

천사같은 꽃돌이님 sketch fragments 2018. 7. 16. 23:07




결국 오늘 마린스키 메일로 29일 슈클랴로프님의 신데렐라 발레 티켓 취소신청서를 보냈다. 페테르부르크의 본진 마린스키는 항상 서비스가 좀 늦는데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은 현지 서비스도 그렇고 뭐든 더 빠르고 친절한 편이다. 최근에 생기기도 했고 아무래도 분관이다 보니 고객만족도에 더 신경쓰는듯. 메일 보낸지 한시간만에 당신의 취소요청이 승인되었습니다 하고 답멜이 오고 표가 취소되었다 엉엉...



아이고 슬퍼라 엉엉...





엉엉 발로쟈 엉엉... 



그런데 인스타에 위의 그림을 올렸더니 슈클랴로프님이 너무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팬심은 또 두근거리고... 정말이지 이분은 춤도 잘추고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마저 천사가 아니더냐~ ​



(댓글 달아줬다고 또 금세 맘의 위안을 얻고는 캡처 떠놓고 있는 나는나는 넘버원팬 ㅋㅋㅋ)



흑흑 고마워요 발로쟈... 월말 블라디보스톡 공연은 못가지만 그래도 언제가 됐든 무대 보러 다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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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6. 18. 23:36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한컷 dance2018. 6. 18. 23:36





피곤한 월요일 하루는 슈클랴로프님의 얼마전 이탈리아 갈라 공연 화보 한컷으로 마무리. 출처 등은 위의 캡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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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6. 13. 14:26

오후 tasty and happy2018. 6. 13. 14:26




선거일이라 회사 안 감. 사실 지금 예산심사 때문에 바쁜 시즌이라 오늘 출근해야 할수도 있다고 각오했었다. 다행히 쉰다. 주중이라 화정 안 가고 2집임. 부디 이번 주말에도 출근안해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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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어느덧 마린스키 데뷔 15주년이 되어 내일 기념공연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추는 발로쟈. 축하축하축하해요!!! 재능과 열정, 매력을 모두 갖춘 최고의 무용수!!

















인스타에 올리자마자 확인하고 고맙다는 답을 달아준 천사같은 꽃돌이님 :)) 발로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춤을 춰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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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간만에 꽃돌이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세 장.



로미오와 줄리엣. 디아나 비슈뇨바와 함께.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사랑의 전설 리허설 중. 정말이지 둘이 같이 있으니 사랑스러움이 두배가 되는 다정하고 이쁜 커플이었음 :) 발로쟈와 마샤 둘다 무지 친절하고 상냥했다!!!!



지난번 유니버설 발레 갈라 공연 첫날, 끝나고 기다리다 만났을때 '마샤랑 당신이랑 셋이 사진 찍어도 돼요?' 라고 묻자 '그럼요 그럼요' 하더니 저쪽에서 노보셀로프랑 얘기 중이던 아내에게 '마셴카~ 일루와 같이 사진 찍어~' 하고 부르던 발로쟈. 목소리에서 사랑이 퐁퐁 느껴졌음. 마셴카라는 애칭을 얼마나 다정하게 부르는지 :) 마샤 좋겠다~~~





이건 최근 바이에른에서 데뷔했던 존 크랑코의 오네긴. 나는 이 사람이 오네긴보단 렌스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뭐 사실 내가 렌스키를 좋아하고 오네긴을 싫어하기 때문이지 ㅋ) 화보도 그렇고 짧은 영상 클립도 그렇고 역시 이 사람은 탁월한 무용수일 뿐만 아니라 원체 드라마틱한 배우이기 때문에 엄청 멋있는 오네긴이었다!!!!!



아악 이런 오네긴이라면! 내가 타치야나라면 이 사람의 오네긴 앞에서 나는 편지 따위 조각조각 찢지 않을 것이야! 늙은 장군 남편 따위, 명예 따위 내팽개치고 '오오 오네긴님 드디어 이제서야 나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하며 기뻐 날뛰며 와락 안길 것이야!!!! (이렇게 푸쉬킨의 명작을 난도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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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한국 와줘서 고마워요 발로쟈, 마샤!!! 멋진 무대는 더더욱! 그의 발레 101은 정말 역시 다시 봐도 명불허전이었고(전에 봤던 무대보다 더 코믹해졌다!~) 둘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말로 로미오와 줄리엣 자체~

 

유니버설 발레단 스페셜 갈라 공연 자체도 상당히 좋았다. 보통 갈라 공연은 좀 가볍게 이것저것 짜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유니버설 갈라는 묵직한 모던도 들어 있고 그게 또 꽤 좋아서 살짝 의외였다. 기분 좋은 의외 :) 하긴 돌이켜보니 유니버설은 이제껏도 그랬고 예전 갈라 때도 꾸준히 꽤 괜찮은 모던 무대를 보여줬었다.

 

리뷰는 나중에 몰아서 써보겠음(근데 과연 ㅠㅠ)

 

 

두 분이라 꽃다발도 두개 :)

 

 

공연도 늦게 끝났는데 정신나간 퇴끼는 기다리고 기다려 두분께 인사도 하고 사인도 받았습니다 :) 꽃돌이님에게 '저 기억하세요?' 하니까 '그럼요~' 라고 해주셔서 감격으로 거의 승천^^;

 

 

 

 

(오늘 프로그램이 까만색이라... 거기 대신 예전 마린스키에서 본 라 바야데르 프로그램에 꽃돌이님 사인 받음. 두분이 같이 나온 사랑의 전설 엽서에도 받았는데 그건 나중에~)

..

 

늦게 돌아와서 이제 자려는 중인데 설레서 잠이 잘 안 올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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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공지한 공연 일정을 보니 슈클랴로프님 부부가 3.2~3.4 사흘 연속으로 출연하신다!!! 언제 나올지 몰라 일단 사흘 다 끊어놨는데... 이제 꼼짝없이 사흘 내내 공연 보러 가야 할 거 같다! 



그런데... 쌓여 있는 일들이 발목을 잡는다... 아앜 나는나는 콩쥐토끼 ㅠㅠ 신데렐라 부엌데기... (노동노예로 혹사당하는 것까지만)



괜찮앗! 두꺼비도 황소도 요정대모도 없지만 나는나는 넘버원 코리안 팬이니까 꼭 가야지~



... 발레 관심있는 분들은 꼭 가보세요. 슈클랴로프님 부부가 아니더라도 갈라 구성이 꽤 좋습니다. (최근 몇년 동안 국립발레단보다 유니버설 발레단 공연을 더 좋아해온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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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월 9일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꽃돌이님의 생일이다. 그리고 귀염둥이 아들 알료샤도!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

 

인스타에도 축하포스팅 올렸는데 친절하고 다정하신 꽃돌이님이 답글도 달아주셔서 팬의 가슴은 녹아내림 :)

 

 



 

생일이랑 최근 오네긴 데뷔 축하해요, 글고 서울 오시는 거 기다립니다~ 라고 했더니 또 친절하게 답글 :) 아아 꽃돌이님은 너무나 좋다~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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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의 이야기는 트로이와 미샤가 나오는 장편 후반부에서 발췌했다. 4부 19장 앞부분에 일어나는 일이다. 1976년 7월. 소련 레닌그라드. 미샤는 키로프 극장 수석무용수이며 몇달 전에는 안무가로도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7월에 키로프 발레단이 유럽 투어를 떠나고 미샤도 거기 포함된다. 동베를린과 마드리드, 로마.




그의 친구이자 애인인(정작 그 누구도 이 관계를 확언한 적은 없다만) 트로이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트로이의 소꿉친구 알리사는 이미 런던으로 떠난 후이다.




발췌한 이야기는 간단하다. 미샤가 유럽 투어를 다녀온다. 로마에서 돌아온 미샤는 자기 집이 아니라 트로이의 집으로 향한다. 트로이는 귀가했을 때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는 미샤를 발견한다.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조금 더.




이 이야기의 앞부분은 전에 조금 떼어내 발췌한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5222  빨간 페인트, 자고 났을 때 옆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그때 서두에 올렸던 짧은 인물 소개 메모를 다시 붙여본다. 둘의 대화에 언급되는 인물들이 좀 있어서.




언급되는 아사예프는 당시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 알렉세이 파블로비치는 발레학교 시절 미샤의 은사, 카라바노프는 미샤의 발레 파트너인 지나이다의 약혼자이자 트로이의 학교 동료 교수이다.


니나 크류코바는 키로프 발레단의 오래된 최고 스타 발레리나(현재의 울리야나 로파트키나나 옛날의 갈리나 울라노바 같은 급), 마할린은 그녀의 동료 파트너이자 인민예술가이다. 딤카 아르부조프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물론 이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위의 메모에 이어, 일린(미샤는 스탄카 라고 부른다)은 jewels와 dolls,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 등에 쭉 등장했던 볼쇼이 극장 안무가이자 미샤의 친구이다.



미샤가 못마땅하게 언급하는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주에 발췌한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7411 (두 남자의 대화, 미샤의 재판과 유배에 대한 경위, 커피의 비밀)




미샤가 얘기하는 유라는 유리 아스케로프라는 의사이다. 그의 오랜 애인이기도 하다. 유리 아스케로프는 서무 시리즈에도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about writing 폴더에도 이 사람이 등장하는 글을 몇차례 발췌한 적이 있다. 주로 미샤 때문에 골치썩는 장면이었음 ㅠㅠ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일린이 떠난 후에도 미샤는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징계를 받았던 것은 시즌 막바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영향은 없었다. 그는 백야 축제로 복귀해 호평을 받았으며 새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7월에는 지나이다와 함께 크레믈린 궁전 무대에 올라갔다. 그건 전적으로 모스크바 축제였고 볼쇼이가 주관하는 행사였지만 이반 노비코프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고 미샤와 지나이다를 레닌그라드의 특급 스타로 조명했다. 그들은 볼쇼이 출연진들과 함께 백조의 호수를 췄고 일린은 지나이다에게 나타샤 왈츠를 맡겼다. 모스크바 관객들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매우 좋아했고 미샤를 볼쇼이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행사 개막일에는 브레즈네프가 당 위원들과 함께 나타나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고 리셉션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트로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미샤에게 최고 권력자에 대해 물었다. 이미 전에도 다른 행사에서 브레즈네프를 본 적이 있었던 미샤는 별다른 관심 없는 어조로 대꾸했다.



 “ 텔레비전에 나올 때와 똑같아. 멍청하고 따분한 늙은이야. ”




 “ 공연에 관심은 있어? ”




 “ 그럴 리가. ”



 미샤는 정치인들 얘기를 할 때마다 짓는 딱딱한 가면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벨스키는 좀 의외였어. 어머니가 가브릴로프 극장 무용수였대. 극장에 대해 잘 알더라구. 계속 놔주지 않아서 정말 좀이 쑤셔 죽을 뻔 했어. ”




 “ 왜 도망 안 쳤어? ”




 “ 다른 테이블엔 스비제르스키가 있었으니까. 호랑이를 피해 악마 소굴로 갈 수는 없잖아. ”




 트로이는 게오르기 벨스키가 마로조프의 지지를 업고 세력을 키운 인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비제르스키와는 자동적으로 정적 관계에 놓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 어떻게 그 둘이 함께 조직위원회에 들어 있었던 거야? ”




 “ 그 행사가 극장이나 관객을 위한 게 아니니까. 둘 다 뭔가 지저분한 속셈이 있었겠지. 알고 싶지 않아. ”




 적어도 두 명의 고위 관료와 잠자리를 갖는 인물의 입에서 나올만한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샤가 스비제르스키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입을 다물었다. 벨스키야 워낙 가정적인 정치인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도 일린과 다시 만나서 반갑긴 했겠네, 간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




 “ 스탄카? 지나와 최종 리허설 할 때 밖에 못 봤어. 10분 정도. ”




 “ 축제 끝나고 모스크바에 며칠 더 있다 왔잖아. ”




 “ 그 사람은 폐막한 날 애들 데리고 소치에 갔어. 나름대로 괜찮은 아빠야. ”




 미샤는 일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크레믈린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열흘 만에 그는 다시 해외 투어를 떠났다. 동베를린과 마드리드, 로마였다. 아사예프는 그를 뉴욕을 비롯한 북미 투어 팀에 넣고 싶어 했지만 당국에서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유럽 투어를 떠나기 사흘 전 미샤는 보안위원회 지부에 불려가 온종일 사상 재교육을 받았고 다음날은 근교의 집단농장에서 개최된 콤소몰 행사에 끌려갔다. 그런 일에 동원될 때면 언제나 그렇듯 우울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미샤에게 트로이는 그가 도망치지 않고 행사를 견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분이 가득한 뭔가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달랬다. 미샤는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의 이름을 운운하는 대신 트로이가 주는 대로 설탕을 녹인 차를 마시고 견과가 올라간 모코 케익을 두 조각 먹은 후 매일 밤마다 하던 운동과 스트레칭도 모두 거르고 시끄러운 락 음악을 좀 듣다가 자버렸다. 





 

*   *   *




 
 미샤는 해외 투어를 마치고 공항에서 곧장 트로이의 집으로 왔다. 카라바노프에게 집을 구하는 동안 자신과 지나이다의 아파트에 와 있으라고 얘기해두었기 때문이다. 카라바노프의 질투심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트로이가 새로 쓰는 논문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잔뜩 껴안고 돌아왔을 때 미샤는 이미 아파트에 와 있었다. 커다란 트렁크와 소파 사이의 카펫 바닥에 모로 누운 채 둘둘 말린 재킷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재킷 외에는 옷도 벗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운동화도 한 짝은 그대로 신고 있었다. 트로이는 그를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얇은 담요만 덮어 주었다. 뭔가 이상해서 자세히 봤더니 머리 색깔이 바뀌어 있었다.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제대로 된 미용사의 손을 거친 것이 아니고 꼭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재킷과 카펫 바닥 위에도 붉은 얼룩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공연용 스프레이를 뿌린 후 머리를 감지 않은 건가 싶었다.




 30분 쯤 후 미샤가 일어났다. 기계적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소파에 앉아 자료를 뒤지고 있는 트로이를 뒤늦게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눈에 띄게 좋아하는 표정이라 트로이는 웃었다.




 “ 그렇게 반가워하는 얼굴은 처음 봐. ”




 “ 자고 일어났을 때 네가 옆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좋아. ”




 “ 왜? ”




 “ 좋은데 이유가 필요해? ”




 미샤가 트로이의 무릎에 쌓여 있는 책과 논문 뭉치들을 흥미롭게 내려다보았다. 그는 언제나 트로이의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문학 이론서나 논문을 직접 읽지는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너무 어려워, 네가 얘기해주는 게 더 좋아’ 라는 말을 주문처럼 사용해 트로이가 그것들을 설명해주도록 만들었다. 아마 이콘 복원가나 딤카 아르부조프, 그 외 수많은 지인들에게서도 그런 식으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얻어낼 것이다.




 잠시 후 미샤는 그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한 후 샤워를 해야겠다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트로이가 머리를 어루만지자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 아, 손대지 마. 빨간 거 묻을 거야! ”




 “ 벌써 묻었어. 이게 뭐야? 염색약이야? ”




 “ 페인트. 다행히 유성은 아니야. ”




 “ 왜 머리에 빨간 페인트로 물을 들였어? ”




 “ 로마 호텔에서 나오는데 공산주의 반대자가 달려들어서 끼얹었어. ”




 “ 너한테? 하고많은 단원들 중에 왜 하필이면 널? ”




 “ 차라리 나였으면 좋았게. 니나를 노린 거였어. 오토바이로 칠 뻔 했어. 상상이 돼? 니나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




 미샤는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떨었다. 정부에게 칼을 맞고 앙숙 무용수와 치고받고 싸워서 어깨가 반쯤 내려앉고도 자기 몸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에 크류코바가 페인트를 뒤집어쓸 뻔 했다고 분노하는 미샤를 보니 좀 우스웠다. 규정된 남성성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애였지만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이 너무 뿌리 깊었기 때문인지 미샤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깍듯했고 소위 기사도에 가까운 태도를 지켰다. 항상 아웅다웅하면서도 지나이다가 원하는 것은 전부 들어주곤 했다.




 과격한 이탈리아 민주주의자 청년은 오토바이에 ‘소련 공산당을 추방하라’로 추정되는 글귀가 적힌 깃발을 매달고 호텔 앞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애초부터 공격 대상은 니나 크류코바였는데 그건 전날 뉴스에서 키로프 발레단의 공연을 다루면서 인민예술가이자 대스타인 그녀와의 인터뷰를 짧게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크류코바는 마할린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고 있었고 미샤는 아사예프와 함께 바로 뒤에 있었다. 그 이탈리아 청년이 선동적인 구호를 외치며 오토바이를 크류코바 쪽으로 곧장 몰고 왔을 때 미샤가 잽싸게 그녀를 낚아채 사고를 면했다. 공격자는 분노로 으르렁거리며 미리 준비해 온 빨간 페인트를 한 통 가득 퍼부었는데 크류코바를 감싸고 넘어진 미샤와 급하게 그를 부축하려고 했던 마할린이 그 희생자가 되었다.




 “ 그래서 그자는 잡혀갔어? ”




 “ 호텔 경비원들이 끌고 간 것 같아. ”




 “ 너 안 다쳤어? ”




 “ 범퍼에 살짝 들이받혔어. 멍만 좀 들고 괜찮아. ”




 미샤가 바지를 내리고 오른쪽 허벅지를 보여주었다. 시퍼렇게 퍼져 있는 멍을 보고 트로이가 한숨을 쉬었다.




 “ 오토바이에 받히고서 한다는 말이 멍만 들고 괜찮다고? 내일 병원에 꼭 가라. ”




 “ 괜찮아, 가벼운 타박상이야. 니나가 받혔으면 뼈가 박살났을 거야. 완전히 정면이었거든. 나쁜 자식. ”




 “ 그래, 니나는 페인트 세례에서 무사했어? ”




 “ 다행히! ”




 뿌듯한 듯 활짝 웃는 그 얼굴을 보니 더 이상 화도 낼 수가 없었다. 트로이는 대체 왜 보통 사람에게는 평생 한두 번 생길까 말까 한 나쁜 일들이 자기 앞에 있는 애에게는 그렇게 연이어 일어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래도 머리에만 묻었네. ”




 “ 아냐, 온몸에 다 뒤집어썼어. 진짜 빨갱이가 따로 없었어. 그 인간 목표가 반쯤 달성된 거지. 그나마 마할린은 등짝에만 뒤집어썼고. 비행기 시간이 빠듯해서 씻지도 않고 공항까지 갔어. 차에서 얼굴은 좀 닦았지. 난 그냥 탑승하려고 했는데 아사예프가 욕을 하면서 날 붙잡는 거야. 그 꼴로 어떻게 비행기를 탈거냐고. 그래서 ‘왜요, 적위군 같잖아요.’ 라고 했다가 더 욕먹었어. ”




 “ 그럼 감독한테 그런 말을 하고도 욕을 안 먹을 줄 알았어? ”




 “ 이상하군, 서방 제국주의자의 공격에 저항한 진짜 공산주의 애국자로 표창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내 서류도 좀 나아질 텐데. ”




 “ 그런 걸로 나아질 거였으면 애초에 뉴욕에 보내줬겠지. 그래도 옷은 갈아입었네. ”




 “ 트렁크를 부쳐버려서 옷이 없었어. 그래서 아사예프가 로마 공항에서 한 벌 사줬어. 그 인간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와서 내가 얼굴을 씻는지 안 씻는지 감시했어. 머리도 감으라고 닦달했는데 탑승 시간이 다 돼서 그것까진 못했어. ” 




 “ 용케 비행기 화장실로 끌고 가지는 않았네. ”




 “ 그러려는 낌새가 보였어. 자기 옆자리에 끌어다 앉히는 거야! 타자마자 자는 척 했지. 비행기 화장실은 너무 좁단 말야. 물도 잘 안 나오고. ”




 트로이는 말썽쟁이 수석무용수를 챙겨야 하는 아사예프가 안됐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밀려나왔지만 꾹 참았다. 미샤가 옷을 다 벗고 돌아섰다. 뒷목덜미와 팔꿈치와 손목 뒤에도 빨간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 너 왼쪽에 아직 운동화 신고 있어. ”




 “ 아, 어쩐지 불편하더라니. ”




 “ 얼마나 피곤했으면 신발도 다 안 벗고 바닥에서 잤어? ”




 “ 공항에 내려서 약을 좀 잘못 먹었어. 노란 건 한 알만 먹어야 했는데.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어. ”




 한동안 끊었던 진통제를 다시 먹은 것을 보니 오토바이에 들이받힌 게 아프긴 했던 모양이었다. 트로이는 욕조에 그를 밀어넣고 물을 틀었다. 온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더운 여름이었기 때문에 미샤가 레닌그라드 수도국을 향해 퍼붓는 현란한 비난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좀 안타까웠다.




 “ 놔둬, 내가 씻을 수 있어. ”




 “ 뒤통수는 잘 안 지워질걸. 두피까지 빨갛게 물들었어. ”




 “ 적위군 맞네. ”




 트로이는 어린 시절 길에서 주운 흙투성이 강아지를 씻겼을 때와 비슷한 집중력을 발휘해 미샤를 씻겼다. 머리에서 붉은 물이 끝도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뒷목과 팔꿈치, 손목 등 노출된 부위 외에도 생각지도 않았던 곳 여기저기에 페인트 얼룩이 스며들어 있었다. 심지어 눈썹과 속눈썹에서도 붉은 물이 흘러내렸다. 욕조는 금세 온통 새빨갛게 변했다. 눈에 들어간 비누 거품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아내며 미샤가 무심하게 혼잣말을 했다.



 “ 피 같아. 유라가 그랬지, 앞으로는 더운 물을 채워놓고 하라고. 잘 드는 칼을 고르라고 했지, 안 그러면 고생만 하고 병신처럼 깨어날 거라고. ”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 어, 근데 정말 보기 싫은걸. 욕조가 엄청 더러워. 왜 유라가 화냈는지 알 것 같아. ”





 
 트로이는 호스를 내려놓았다. 미샤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자기 쪽으로 돌렸다. 왼쪽 어깨 때문에 미샤가 낮게 비명을 질렀다.



 “ 아파! ”




 “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생각 하지도 마. ”




 
 미샤가 그의 손에서 어깨를 빼내려고 잠깐 몸부림쳤다. 트로이가 놔주지 않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 농담이야, 유라는 의사잖아. ”




 “ 농담이라도 안돼. 내 말 들어, 절대 그런 말 하지 마! 한번만 더 그런 얘길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기억도 하지 마. 생각조차 하지 마. ”




 “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 안드레이. ”




 트로이는 미샤가 끝까지 잡아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샤는 이고리가 얘기했다는 것도, 그가 아스케로프와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것도 모를 테니까.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부터 미샤의 어깨를 거세게 잡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약속해, 무조건. 그런 짓 안 할 거라고. 상상도 안 할 거라고. ”




 “ 어... 약속할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약속할게. 안드레이, 제발 그만해. 멀미가 나려고 해. "



 미샤가 그의 팔에 코와 뺨을 비볐다. 심하게 놀랐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트로이는 흔드는 것을 멈췄지만 어깨를 놔주지는 않았다. 미샤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부르르 떨면서 속삭였다.




 “ 그만해, 안드레이... 네가 화내면 정말 무서워. ”




 “ 설마. 넌 사람들이 화낸다고 무서워한 적이 없어. ”




 “ 네가 화내는 건 무서워. 이제 그만해. 뭐든 약속할게. ”




 트로이는 미샤를 놔주었다. 욕조 전체가 새빨간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몸서리를 치며 호스로 물을 끼얹었다. 미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펀지로 박박 문지른 후 다시 물을 부었다. 마침내 더 이상 붉은 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미샤에게 타월을 건네주었다. 미샤는 욕조에서 나오지도 않고 타일 벽에 바짝 기대선 채 머리와 몸을 오랫동안 닦았다. 젖어서 뒤엉킨 속눈썹 아래로 동그래진 눈을 치켜뜨면서 이따금 트로이를 쳐다보았다. 정말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까맣게 팽창된 눈동자 아래로 커다란 물방울들이 고여 뺨을 타고 목덜미로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트로이는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젖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옷장을 뒤져 미샤의 옷을 가지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미샤는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욕조 안에 서 있었다. 손등으로 눈과 뺨을 누르고 있었다. 이제 가장할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물방울이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꽉 깨문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트로이는 여전히 그게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라고 착각하기로 하며 옷을 내밀었다.



 “ 빨리 입고 나와, 찬물로 씻었잖아. ”




 미샤가 고개를 돌린 채 옷을 받아 입었다. 티셔츠 위로 다시 물방울이 떨어지며 둥글게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트로이가 욕조로 들어가 그를 데리고 나왔다. 허리를 끌어당겨 안으며 머리를 쓸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타월로 닦아냈는지 물기가 별로 없었다.



 “ 미안해, 미셰츠카. ”




 “ 이제 화 안내? ”




 “ 화가 났던 게 아냐. 그냥 놀랐던 거야. 이제 그러지 않을게. ”




 “ 아니, 화났었지. 소리, 소리도 지르고. ”




 미샤가 몸을 떨었다. 얼굴과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트로이는 그가 모르핀에 취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앞에서 그렇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 미안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




 “ 그래, 잘못 생각한 거야. 뭔지는 모르지만. ”




 
 그 와중에도 미샤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고집스럽게 잡아뗐다. 트로이는 더 이상 그를 추궁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애가 우는 순간만큼 불행하고 비참한 느낌이 드는 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타일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미샤를 데리고 침실로 갔다. 조금이라도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셔츠의 젖은 부위도 말려주었다. 그는 미샤가 의식적으로 손목 안쪽을 등 뒤로 감추는 것을 보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그 애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부어오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척 했다. 드라이어를 껐을 때 미샤가 침대에 누우면서 목쉰 음성으로 말했다.



 “ 책 읽어, 안드레이. ”




 “ 무슨 책? ”




 “ 아무 거나. 내가 잠드는 동안 책 읽고 있어. 논문이라도. ”




 “ 자고 일어났을 때 읽고 있는 게 좋다면서. ”




 “ 둘 다 같아. ”




 트로이가 지루한 이론서와 논문집을 가지고 와 침대에 앉자 미샤가 그의 무릎 위로 머리를 디밀었다. 졸음 때문인지 몸이 벌써 따스해지고 있었다. 하긴 언제나 쉽게 뜨거워지는 몸을 가진 애였다. 트로이는 별 말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여분 쯤 지났을 때 미샤가 무겁게 잠에 취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우리 아버지도 그랬지. 자고 일어나면 책을 읽고 있었어. 뭐든 많이 읽었어. 어떨 때는 날 무릎에 뉘어 재우면서도 책을 읽었지. 자장가를 부르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어. 존경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




 “ 무슨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




 “ 소련 군가. 봉쇄 시절 전방에 계셨거든. ”




 “ 군인으로 키우고 싶으셨나보네. ”




 “ 글쎄, 한 번도 못 물어봤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느냐는 얘기, 한 번도. ”




 “ 넌 뭐가 되고 싶었는데? ”




 “ 우주 비행사. 가가린. 당연하잖아. ”




 그 말을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미샤의 머리가 시트 위로 툭 떨어졌다. 눈이 가로로 긴 선을 그리며 감겨 있었다. 트로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이론서와 논문집을 읽었다. 가끔 소련 군가 중 아는 노래가 있는지 기억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생각나는 거라곤 피오네르 행진곡 뿐이었다. 그것도 후렴구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









중간에 트로이가 '이고리가 얘기한 것'에 대해 떠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전에 따로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 링크.


http://tveye.tistory.com/3825 표절에 대해, 춤추는 푸쉬킨에 대해 트로이와 이고리가 나눈 대화




맨 위 사진부터 오늘 포스팅에 올린 사진은 모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에서 예브게니의 광란 장면 추는 중. 촬영은 alex gouliaev.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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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침 기차로 2집 내려옴.


낮잠 자기 전에 애프터눈 티까지 성공...






기분전환 하려고 슈클랴로프님 화보 액자도 다른 사진으로 교체. 기념으로 바가노바 발레학교 그려진 찻잔 꺼내서...











오늘 별다방에서 아점 먹고 나오면서 사본 제주 감귤 치즈케이크. 흑, 기대 안 했지만 역시나 별로였음. 맛없고 느끼하고... 결국 남겼다.





지난번 러시아 갔을 때 얻어온 사바까.루 잡지. 디아나 비슈뇨바가 표지에 있어서 :)




오늘 바꾼 슈클랴로프님 화보. 왼편은 신데렐라의 왕자, 오른편은 돈키호테의 바질.




얼마전 별다방에서 샀던 빤짝이 티코스터. 빨간색도 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사야지 했더니만 품절됨 흑...



..





이건 오늘 아침 10시. 2집 동네 최고 핫스팟 별다방...


귤은 내가 챙겨온 것임 ㅠㅠ




:
Posted by liontamer


 

 

오늘 발췌하는 글은 a4 3장 정도로 꽤 짧은 장면이다. 에피소드 전체가 아니라 일부이고 실질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트로이와 미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에 이 장면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따로 올렸던 적이 있다. 그 링크는 글 아래에 달아보겠다.

 

 

배경은 1976년 초. 소련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트로이의 작은 아파트 안이다. 예전에 여러번 등장했던 볼쇼이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키로프 극장 게스트 안무가로 초빙된 직후이다. 일린은 문화국과 윗분들이 키로프로 밀어넣은 '모스크바' 안무가이므로 키로프 윗선에서는 당연히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사실 일린이 온 것은 미샤와 지나이다를 위한 작품을 안무하라는 미션을 받았기 때문인데 소설에서는 자세히 묘사하진 않았다. (..사실은 미샤를 모스크바로 낚아가려는 그쪽 윗분들과 볼쇼이 측의 밑밥깔기....)

 

 

하여튼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미샤는 일린과 그의 작품, 그가 무용수를 대하는 태도 등에 감명을 받는다.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미샤에게는 극장 내부 적들도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울리얀 세레브랴코프 라는 남자 무용수이다. 정통 소련 무용수, 고전적이면서도 늘씬하고 근육질이고 강건한 왕자님/혁명영웅 스타일의 미남자이다. 미샤보다는 10여년 이상 선배이고 공훈예술가인데 미샤가 입단했을 때부터 그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해 많이 괴롭혔다. (저수지에도 빠뜨리고...) 열받은 지나가 그의 여자친구인 옥사나의 허리를 비틀어 쥐어짠 적도 있음.

 

 

발췌된 부분은, 일린이 새로 안무해주는 작품인 '백야' 연습을 하다가 트로이의 집에 들른 미샤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

 

 

위의 화보는 아르춈 옵차렌코. 볼쇼이 무용수.

 

 

..

 

스탄카는 미샤가 일린을 부르는 애칭이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여기서 일린이 안무하는 춤은 유명한 나타샤의 첫 무도회 장면이다.

 

 

고리키는 그 '막심 고리키'이다.

 

 

프로파간다 발레는 말 그대로 프로파간다 목적을 띤 발레이다. 소설도 그림도 발레도 연극도 영화도 이런 거 많았다. 소련 시절 유명한 발레들 중에도 많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고개를 젖히며 어깨를 한쪽으로 돌렸다. 작년에 다쳤던 곳이 계속 아픈 것이 분명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몇 차례 어깨를 돌리더니 손가락으로 아픈 부위를 꾹꾹 눌렀다. 트로이는 끓는 물을 채운 보온병을 스팀 타월로 둘둘 말아 그에게 건네주었다. 미샤는 티셔츠를 벗더니 어깨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수증기 때문에 흰 살갗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트로이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붉게 달아오른 어깨와 팔 위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미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오늘 스탄카가 세레브랴코프를 자기 세션에 출입 금지시켰어. ”

 

 


 “ 무슨 세션? 백야에 그 작자도 나와? 그 나스첸카 첫사랑 역이야? ”

 

 “ 아니, 백야가 메인이긴 한데 45분 정도 밖에 안돼. 하루 공연 무대로는 모자라지. 짧은 거 두 개가 더 있어. 하나는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지. 그건 나타샤의 독무야. 나머지 하나는 고리키의 인생을 모자이크한 프로파간다 발레고. 어쨌든 당국의 비위를 맞춰주긴 해야 하니까 스탄카가 끼워넣은 거야. 오늘 그 두 개 오디션을 봤거든. 연차와 급수에 관계없이. ”

 

 “ 백야는 너와 지나이다로 정해진 거야? ”

 

 “ 응. 오디션 없이. ”

 

 “ 세레브랴코프는 왜? ”

 

 “ 그 고리키를 추고 싶어 했으니까. 그자는 스탄카를 싫어하지만 어쨌든 포노마레바가 밀어주고 있으니까 같이 작업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 게다가 고리키 역이라면 구미가 당겼을 거고. 얘기했잖아, 프로파간다 발레로 뜬 놈이라고. ”

 

 “ 그럼 일린에게 건방지게 굴 리가 없잖아. 왜 출입 금지당한 거야? ”

 

 “ 백야 때문에 나도 그 방에 같이 있었거든. 오디션 보러 온 세레브랴코프는 그것 때문에 꼭지가 돌았지. 난 이미 역을 받았으니까. 그 작자는 해석도 괜찮았고 춤도 꽤 잘 췄어. 아마 곱게 나갔으면 스탄카가 고리키를 줬을 거야. 근데 그 얼간이가 나가면서 내 쪽으로 왔지. ”

 

 “ 그리고? ”

 

 “ 백야 하나로는 성이 안 차느냐, 나타샤 역 때문에 온 것 같은데 굳이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역을 받을 거라고 비아냥댔지.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토슈즈를 신을 수 있을 테니 좋겠다고 하던데. 넌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고 했지만 그자는 아주 상상이 잘되는 모양이었어. ”

 

 

 미샤가 휘파람을 불었다.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 재수 없게 스탄카가 그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정색을 하면서 세레브랴코프를 내쫓았어. 앞으로 자기 세션에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했지. 고리키는 레냐에게 줬고. ”

 

 “ 나타샤는? ”

 

 “ 니넬한테 줬어, 아마 넌 걜 모를 거야. 작년에 들어온 애라서. 설마 스탄카가 정말 그걸 나한테 줬을 거라고 생각했어? ”

 

 “ 추고 싶지는 않았어? ”

 

 “ 글쎄, 백야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드레스는 더 싫지만. 솔직히 말하면 추고 싶긴 하지. 그 작품 모스크바에서 봤었거든, 아주 재미있는 역이야. 하지만 세레브랴코프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스탄카가 아니었다면 난 그때 화를 내야 했을지도 몰라. 그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

 

 “ 그럼 화가 나지 않았단 말야? 그렇게 비열하게 구는 놈한테? ”

 

 “ 좀 열받긴 했지. 근데 어차피 난 그놈을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니까 크게 다를 것도 없었어. 내가 열받는 것과 대놓고 화를 내는 건 좀 다른 거야.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으면 입장이 아주 이상해져. ”

 

 “ 일린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싸웠겠네. ”

 

 “ 한 대 갈겨야 했겠지. 포노마레바와 놀아나서 역을 따냈다는 것과 계집애 역을 추려고 안달이 났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

 

 

 타월로 싼 보온병을 어깨 위로 굴리면서 미샤가 바닥에 벗어놓았던 코트 주머니를 한 손으로 뒤져 담배를 꺼냈다.

 

 

 “ 끊었던 거 아냐? ”

 

 “ 어차피 세 개비 이상 피우지도 못하는데 끊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알콜이랑 똑같아. ”

 

 “ 몸에서 안 받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 건강에 좋지 않을 테니까. 춤에도 방해가 될 거야. ”

 

 


 “ 춤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몸을 학대하는 거야. 발끝으로 서고 근육을 비정상적으로 잡아 늘이고 뼈가 부러질 만큼 휘어대는 거라구. 그깟 술 몇 잔, 담배 몇 개비 따위 더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어. ”

 

 


 “ 춤 때문에 머리가 아프거나 필름이 끊기지는 않잖아. ”

 

 


 “ 춤도 가끔 그래. ”

 

 

 

 미샤가 보온병을 내려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광대뼈 아래로 뺨이 살짝 패이며 콧대가 두드러지게 솟아올랐다. 트로이는 라이터와 보온병을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 미간과 콧등에 입술을 가져갔다. 미샤는 잠시 호흡을 멈췄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연기를 훅 뿜어버렸다.

 

 

 “ 미안, 간접 흡연시켜서 ”

 

 


 “ 전혀 미안한 것 같지 않은 표정인데. ”

 

 


 “ 어차피 넌 나보다 열 배쯤 더 마시잖아. ”

 

 

 트로이는 그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카펫에 구멍이 나든 말든 개의치 않고 한 모금 밖에 피우지 않은 담배를 비벼 꺼버렸다.

 

 

 

...

 

 

 

이 다음 이야기를 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은 바로 다음은 아니고... 위의 분위기대로... 트로이와 미샤의 19금 장면이 조금 있는데 그부분 지나간 후.... 세레브랴코프와의 언쟁이 생각보다 깊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미샤가 평소에 잘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를 토로하고 자신의 춤과 교조주의, 강령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다. 그 링크는 아래 :

 

http://tveye.tistory.com/4720 : 교조주의, 강령으로서의 예술, 세 개의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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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얀 세레브랴코프와 미샤의 악연에 대해서는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 세레브랴코프 쪽에서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편이긴 했다만... 하여튼 페름에서의 싸움과 저수지 사건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 링크를 각각 아래. 하나는 트로이와의 대화, 나머지 하나는 미샤의 후원자인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었던 단편에서 가져왔다. 둘다 같은 페름 투어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미샤는 트로이에게는 저수지 사건만 얘기하고 마로조프에게는 치고받고 싸운 얘기만 한다.

 

http://tveye.tistory.com/3594 미샤의 첫 번째 시즌, 돈키호테, 축구팀과 군대처럼

 

http://tveye.tistory.com/5469 미샤의 신입 시절, 싸움의 이유

 

 

맨날 당하는 미샤가 답답해서... 세레브랴코프의 여자친구이자 역시 미샤의 적인 옥사나가 패악을 부리자 발끈해 그녀를 혼내주는 정의의 여자사람 친구 지나이다의 이야기도 있었음. 그건 아래

 

http://tveye.tistory.com/6176 의리 넘치는 파트너 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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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한 장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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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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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예전에 이 폴더에 미샤와 그의 극장 동기 레냐(내 약혼자 아님), 그리고 궁전광장과 백야,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단편 Illuminated wall 전문과 배경 사진들을 올린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3385)



그 단편은 아주 오래 전,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향수를 담아서 썼던 글인데 초창기에 내가 구상했던 미샤가 등장했다. 거기 등장하는 미샤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미샤와는 많이 닮은 동시에 약간은 다른 면도 있다.



그 단편은 1975년 여름, 소련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권력자의 별장에 춤추러 오라는 명령을 받은 미샤는 그것을 어기고 백야의 레닌그라드 거리를 쏘다니고 궁전광장에서 춤을 춘다. 그때 그는 동료인 레냐에게 자신이 푸쉬킨의 원작을 바탕으로 안무를 할 거라고 얘기하고 광장에서 그 춤의 일부를 보여준다. 그 작품은 푸쉬킨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였다. 나의 옛 단편에서 미샤는 루슬란의 적수인 악당 로그다이의 춤을 보여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미샤가 처음으로 안무하게 되는 발레는 그 '루슬란과 류드밀라'였다. 루슬란과 로그다이, 파를라프, 라트미르 4인의 기사들만 등장하는 40분짜리 단막 발레.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고 미샤를 불러낸 후, 나는 장편 하나를 썼다. 미샤의 친구이자 애인인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오는 꽤 긴 소설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미샤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안무하게 했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미샤가 그 작품을 안무하는 과정 일부와 작품을 실제로 무대에 올리는 장면이다. 이 소설은 발레계 인물이 아닌 트로이의 시점에서 전개되므로 안무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여기 나온 정도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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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슬란과 류드밀라는 푸쉬킨이 불과 스무살때 썼던 근사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러시아 동화로 읽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도 잘 읽어보면 그냥 동화는 아니다. 꽤나 멋지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해 아주 간단한 줄거리(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웅 루슬란이 아름다운 왕녀 류드밀라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수염 기른 마법사 체르노모르가 나타나 류드밀라를 납치한다. 류드밀라의 아버지는 비탄에 빠져 루슬란을 탓하고, 류드밀라를 구해오는 남자에게 그녀와 결혼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4명의 기사가 길을 떠난다. 주인공인 루슬란. 음침하고 파괴적인 로그다이. 좀 비겁한 파를라프. 세속적이고 선량한 라트미르. 이야기는 이 네명의 모험을 번갈아 보여주고, 동시에 마법사의 성에 갇혀버린 류드밀라의 모험도 같이 그려낸다(사실 류드밀라 얘기가 제일 재미있고 생기넘친다. 푸쉬킨은 생기 넘치는 씩씩한 아가씨 묘사를 참 잘한다) 이러저러하여 루슬란은 결국 마법사를 물리치고 류드밀라를 구해낸다. 그 와중에 루슬란을 죽이려고 달려들던 로그다이는 결투에 패해서 죽고(물귀신에게 영혼 끌려감 ㅠㅠ), 라트미르는 온갖 여색과 사치를 즐긴 끝에 도를 깨쳐서 소박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고, 비겁한 파를라프는 마녀의 도움으로 막판에 루슬란을 궁지에 몰아넣고 류드밀라를 탈취하려다 결국 실패하게 된다.



미샤는 이 재미나는 이야기 전체를 어린이 발레처럼 안무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가 어떻게 안무했는지는 아래 발췌본에 나와 있다.



...



에피소드 도입부에 언급되는 알렉산더 트로치는 영국 현대 작가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는 전에 올린 적이 있다.



보리스 아사예프는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 이반 노비코프는 볼쇼이 발레단 행정감독이다. 물론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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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화보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은 David Paitschad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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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런던에 가기 전에 딱 한번 트로이의 집에 찾아왔다. 알렉산더 트로치의 소설과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 때문이었다. 트로치 소설에 대해서는 30분 정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맨 처음 함께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얘기가 잘 통했다. 미샤는 레딩 감옥의 발라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트로이에게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달라고 청했다. 그는 와일드 작품을 가져왔을 때는 항상 그랬다.



 “ 낭송 테이프 구해다줄까? ”




 “ 난 네가 읽어주는 게 더 좋아. ”



 미샤는 잠시 소파에 앉아 트로이가 시를 읽어주는 것을 듣다가 창가로 가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적이 없는 동작이었지만 아마 백야 안무의 일부일 거라고 생각하며 트로이는 계속해서 시를 읽었다.



 한참 읽다가 트로이는 입을 다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큰 소리로 물었다.



 “ 그게 뭐야? 그게 춤이야? ”



 미샤는 그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계속해서 움직였다. 전신을 너무 지독하게 경련하며 바닥에 몸을 굴리고 있어서 트로이는 순간 그가 간질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질렸다.



 “ 어디 아파? ”



 무릎으로 바닥을 찧어대면서 미샤가 말했다.



 “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읽어. ”


 “ 그게 백야야? ”


 “ 아니, 루슬란과 류드밀라야. 그냥 읽어. ”


 “ 왜 와일드를 들으면서 푸시킨 시를 춰? ”


 “ 도움이 돼. 제발 읽어. ” 
 




 그래서 트로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계속 읽었다. 나중에는 아예 등을 돌리고 읽었다. 낭송을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미샤가 소파에 거꾸로 누워 머리를 바닥에 댄 채 손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 일린의 새 작품이야? ”




 “ 내가 만드는 거야. 좀 됐어. ”




 “ 안무를 한다고? ”




 “ 응, 5월에 올릴 거야. ”




 “ 전혀 몰랐다, 그쪽에도 관심 있는 줄은. 일린 때문에 자극받았어? ”




 “ 아니, 작년 여름에 골자는 잡았는데 계속 정신이 없어서 손 놓고 있었어. ”




 “ 지금이 제일 바쁜 거 아냐? ”




 “ 바쁘지. ”




 미샤는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다리를 길게 뻗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셔츠가 말려 올라가며 등이 반쯤 노출되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 사이로 척추 마디들이 가지런하게 튀어 올랐다. 트로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 뼈가 다 불거지네,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잘 챙겨먹고 다녀. ”




 “ 바빠서 그래. 백야 올리고 나면 나아질 거야. ”




 “ 백야에 런던도 모자라서 그 오싹한 춤까지. ”




 “ 별로 오싹하지 않아, 아까 그 부분만 좀 그래. ”




 “ 무슨 장면이었는데? ” 




 “ 비겁한 짓이 일어나는 장면. 그래서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거야. ”




 “ 루슬란과 류드밀라라며? ”




 “ 아, 근데 류드밀라는 안 나올 거야. 아까 그건 파를라프의 춤이야. ”




 “ 뭐, 자고 있는 사람 칼로 찌르고 여자 뺏는 그 놈? ”




 “ 응, 기분 나쁘게 출 만하지? ”
 




 트로이는 창가로 가서 전날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사왔던 치킨 샌드위치와 며칠 동안 굴러다니고 있던 오렌지를 가져왔다.



 “ 좀 먹어라, 맛은 별로 없을 테지만. ”




 
 미샤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포장지를 벗기고 반으로 쪼갰지만 입에 가져가지는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 왜, 변했어? 차가운데 놔둬서 괜찮을 텐데. ”




 “ 있다가 먹을게. ”




 “ 그럼 오렌지라도 먹어. ”




 미샤가 오렌지 껍질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기계적으로 먹는 게 분명했지만 어쨌든 뭔가를 입에 넣고 있었으므로 트로이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얼굴이 더 갸름해져서 얼핏 돌아보면 우물처럼 깊은 눈만 보일 지경이었다. 한동안 가위질도 하지 않았는지 길게 자라난 머리칼이 귀를 덮고 목덜미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구겨진 셔츠와 낡은 청바지를 입고 바닥에 앉아 오렌지를 먹고 있는 그 야윈 모습을 보니 근육질의 클래식 무용수라기보다는 미국 음악 잡지에나 나오는 깡마른 락 가수에나 어울릴 것 같았다. 저질스럽고 별 뜻도 없는 가사로 노래하고 기타를 치고 가죽옷을 입고 그루피들과 난잡하게 뒤엉키고 타락한 자본주의 제국의 소산인 마약이나 찔러 넣는 인간들. 그러나 미샤 뿐만 아니라 그와 갈랴와 이고리, 다른 친구들도, 심지어 알리사까지도 그자들의 음반을 모았다.



 “ 일린과는 그래도 잘 맞는 것 같네. 이제 집에도 잘 들어가고. ”



 트로이는 자신이 왜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스타니슬라프 일린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비이성적인 질투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샤를 볼 때마다 그 조그맣고 사근사근한 남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스탄카는 좋아. 얘기가 잘 통해. ”




 “ 지나가 불편해 하지 않아? ”




 “ 지나는 남자들과 잘 지내. 나하고도 사는데 뭐. ”




 “ 그 사람은 혼자 온 거야? 가족은 없어? ”



 그는 차마 ‘그 자식하고도 같이 자고 있어?’ 라고 묻지 못했다.



 미샤는 그의 소리 없는 질문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하긴 알아차렸어도 내색하지 않을 게 뻔했다.



 “ 혼자 왔어. 공연 날 모스크바에서 애들이 올지도 모르지만. ”




 “ 애들? 결혼했어? ”




 “ 했었지, 두 번. 애들은 첫 부인한테서 난 거고. 큰 애가 벌써 열 살인가 그럴 걸. ” 




 “ 별로 애 아버지처럼 안 보이던데. ”




 “ 뭐 자기가 키우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바가노바에서 특강해주는 거 보니까 어린애들 잘 다루던데. ”




 
 그래서 미샤가 고집을 부려도 잘 받아넘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일린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에 희미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 지금 안무하는 그 춤도 일린이 도와줘? ”




 
 미샤가 반쯤 먹은 오렌지를 남은 껍질에 싼 채 샌드위치 옆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씨앗을 두어 개 뱉더니 바닥에 놓고 무심하게 굴렸다.



 “ 아니. 스탄카와 나는 많이 달라. ”




 “ 잘 맞는 줄 알았는데? ”




 “ 스탄카가 잘 맞춰주는 거지. 춤에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 ”




 “ 일린이 감상적이라는 거야? ”



 미샤가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 아, 예리한데. 어떤 사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다고 했지. ”



 물론 트로이는 마로조프와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백야 자체가 감상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소설이잖아. ”




 “ 음, 스탄카가 그런 쪽을 좋아하긴 하지. 착하고 밝아, 사람을 잘 믿고 포용력도 있고. ”




 “ 그럼 왜 페트루슈카는 그렇게 만든 거야? ”




 “ 나한테 맞춰준 거지. 페트루슈카는 그 사람 원래 작업과는 색깔이 많이 달라. ”




 “ 난 네가 그렇게 우울한 걸 추는 게 싫어. ”




 미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 낯설고 쓸쓸하게 보였다. 종종 그 얼굴에는 따뜻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세공된 짐승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표정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아니라 세월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사원의 유물처럼 보였다. 트로이는 그런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막 트로이가 오한으로 몸을 움츠렸을 때 미샤가 다가와 그의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머리를 쓸면서 뺨을 비볐다. 
 


 “ 런던 갔다 와서 봐. ”



 미샤가 외투를 껴입고 혹한의 거리로 나간 후 트로이는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실 바닥에는 반쯤 먹은 오렌지, 두 개의 매끄러운 씨앗, 그리고 반으로 쪼갠 채 입도 대지 않은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소파 팔걸이에는 미샤가 잊고 간 흰색 울 스카프가 걸쳐져 있었다. 그는 차나 커피도 없이 샌드위치를 모두 먹어치우고 남은 오렌지 반쪽도 먹었다. 그리고 두 개의 오렌지 씨앗도 알약처럼 털어 넣은 후 씹지 않고 삼켰다.



 그날 밤 그는 그 울 스카프를 두르고 잤다. 무겁게 밀려드는 야생 꿀 냄새를 맡으면서. 꿈속에서 그는 암청색 단추가 세 개 달린 흰 스웨터 위로 짙은 녹색 목도리를 느슨하게 늘어뜨린 채 눈보라와 안개 속을 걷고 있는 미샤 야스민을 보았다.




 ...




 5월에 미샤는 안무가로 데뷔했다. 일린이 총연출을 맡아 세 개의 모던 발레 작품을 소개한 ‘새로운 발레의 밤’에서 마지막 순서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올렸다. 막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강력한 후원자들이나 팬들조차도 미샤가 안무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뛰어난 무용수와 뛰어난 안무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전한 데뷔 방법은 유명한 원작을 간단하게 손봐 재안무한다거나 짧고 서정적인 음악을 써서 무용수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가벼운 소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샤 야스민은 4명의 젊은 무용수를 기용해 팽팽한 플롯의 40분짜리 드라마를 만들었다. 가벼운 음악 대신 보로딘과 무소르그스키를 사용했고 순수한 움직임 자체를 위한 동작은 전혀 쓰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모든 움직임은 철저하게 주제와 플롯에 따라 흘러갔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샤의 첫 안무작이 일린의 스타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온 작품은 완급 조절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40분 내내 격정적으로 내달렸다. 그 작품은 잘 짜인 연극처럼 시종일관 관객들의 감정을 철사처럼 죄어대며 흥분 상태로 몰아갔다. 그 무대에서 부드러운 로맨스나 우아한 감상주의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미샤는 젊은 안무가가 빠지기 쉬운 무모하고 비논리적인 실험주의도 피해갔다. 독설가인 루바노프스카야조차 ‘매우 성공적인 데뷔작’이라는 표제와 함께 미샤가 소위 ‘새로운 춤’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의미한 연출가의 자기 독백에 매몰되지 않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맞은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평가했다.



 미샤는 푸시킨의 그 유명한 서사시 전체를 다루지 않았다. 수염 기른 마법사 체르노모르도, 동굴의 은자와 황야의 거대한 머리도, 마녀 나이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가장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제목과는 달리 미샤의 작품에 류드밀라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샤는 오직 네 명의 기사들만을 골랐다. 루슬란, 로그다이, 라트미르, 파를라프. 납치된 류드밀라를 찾아 떠난 경쟁자들. 주인공은 여전히 루슬란이었고 그의 존재는 작품 전체의 축을 이루고 있었지만 미샤는 4명의 인물들에게 동등한 무게를 부여했다. 격정적인 2인무와 4인무, 독무를 통해 발레는 그 인물들에게 내재된 감정의 본질을 그렸다. 전형적인 영웅 주인공인 루슬란의 용기와 고결함, 파멸로 치닫게 될 로그다이의 증오와 분노, 환락에서 벗어나 소박한 삶을 택하는 라트미르의 중용과 우정, 그리고 언제나 도망치면서 기회를 노리는 파를라프의 비겁함과 공포.



 그건 자칫하면 매우 작위적이고 추상적인 묘사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무대를 보면서 트로이는 왜 미샤가 자신은 일린에게 의지하지 않는다고 그토록 단호하게 얘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샤에게는 추상적인 개념과 감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형상화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오랫동안 트로이는 미샤의 그 능력이 자신의 육체와 움직임에 한정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날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보면서 트로이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샤는 인간 내부로부터 실질적인 움직임을 끄집어내고 형식을 부여할 줄 알았다. 그건 창작자의 능력이었다. 관객들은 리브레토가 적힌 팸플릿을 읽지 않고도 루슬란과 로그다이, 라트미르와 파를라프가 왜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지, 그들이 표출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건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날아오는 메시지들이었다.



 미샤는 루슬란을 추지 않았다. 고전적이며 우아한 레오니드 핀스키에게 그 역을 주었다. 2년 선배이자 성격 연기에 능한 안톤 볼로호프에게 까다로운 파를라프 역을 맡겼고 약간 수도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잘생긴 이오시프 본다렌코에게 라트미르를 추게 했다. 미샤 자신은 로그다이를 췄다. 트로이는 그 어둡고 파괴적인 배역이 미샤에게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무대 위에서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역을 출 때마다 관객들이 그토록 강력한 열광에 빠져드는 것이 싫었다. 루슬란과의 격투에서 살해당하는 그 검은 기사의 최후가 너무나 냉혹하고 처참해서 트로이는 가슴 깊이 공포를 느꼈다. 그 두려움이 지나치게 실질적이고 불쾌하게 와 닿았기 때문에 며칠 후 미샤를 만났을 때 왜 너는 항상 무대에서 죽는 역을 고르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 그런 역은 몇 개 없는데... 고전 레퍼토리는 아사예프가 맡기는 거고. ”




 “ 네가 안무한 것도 그랬잖아. 로그다이를 췄잖아. ”




 “ 음, 난 사실 파를라프를 출까 했어. 근데 아사예프가 루슬란을 추든가 로그다이를 추지 않으면 무대에 올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했어. 루슬란은 레냐에게 주기로 약속했었거든. ”




 “ 넌 파를라프를 추기엔 너무 눈에 띄어, 어울리지도 않고. 관객들도 이입이 잘 안됐을 걸,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겁쟁이 야스민은. ”




 “ 언제나 비겁한 자가 끝까지 살아남아. ”



 미샤는 예의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하얀 알약을 꺼내 삼킨 후 덧붙였다.



 “ 하긴 로그다이를 제일 먼저 안무하긴 했어. 가장 쉬웠고. 제일 어려웠던 건 라트미르였어. 이오시프가 아니었으면 스탄카에게 춰달라고 했을지도 몰라. 이젠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서 어려웠겠지만. ”




 발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호소력 있게 표출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흘러갔다. 종반부에서 로그다이는 살해당해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라트미르는 우정의 키스와 함께 루슬란과 작별했다. 주인공 루슬란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류드밀라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한 채 환희에 차 퇴장하고 어둠이 가득한 무대 위에는 슬금슬금 기어나와 주변을 배회하는 파를라프만이 남았다.



 미샤가 류드밀라를 등장시키지 않은 것은 일린이 나스첸카의 첫사랑을 생략했을 때와는 달리 매우 영리한 선택이라는 평을 받았다. 루바노프스카야는 예의 그 평론에서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류드밀라의 존재야말로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썼다. 그녀는 보통 미샤에게 적대적인 입장이었으므로 공연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세레브랴코프는 믿었던 루바노프스카야의 호의적 평에 당황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지적한 것은 미샤가 데뷔작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가끔 과격한 연출을 선보였다는 것뿐이었다.



 관객들은 그 작품에 매료되었다. 젊은 무용수의 첫 안무작에는 과분할 정도로 열정적인 호응이 쏟아졌다. 꽤 많은 사람들이 보리스 아사예프에게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계속해서 키로프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썼다. 아사예프는 그 반응에 흡족해하며 6월말 백야 축제에 그 작품을 다시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반 노비코프는 그리고로비치와 함께 오직 그 공연을 보기 위해 5월에 다시 레닌그라드에 들렀는데, 아사예프를 구슬려 크레믈린 축제와 볼쇼이 무대에서 각각 한 번씩 루슬란을 올리기로 했다. 볼쇼이에서 밀어 넣은 일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보리스 아사예프로서는 ‘우리 골칫거리’가 ‘우리 자랑거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미샤에게 괜찮은 작품을 하나 더 안무한다면 다음 시즌 무대에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




위의 발췌본은 사실 두가지 장에서 각각 가져왔다. 앞부분의 트로이와 미샤의 대화, 그리고 뒷부분의 미샤의 데뷔 이야기 사이에는 미샤의 런던 공연과 알리사의 이야기, 그리고 일린이 미샤와 지나를 위해 안무해준 백야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여기서는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대한 이야기만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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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안무에 대해서는 전에 세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3385 : 빛나는 벽(illuminated wall) 전문.



http://tveye.tistory.com/5589 : 벨스키와의 면회
(여기서 미샤가 '그 순진하고 무해한 루슬란'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http://tveye.tistory.com/6138  : 별장의 스비제르스키와 미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미샤의 수첩을 훔쳐본 후 그의 춤연습을 보면서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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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와 미샤의 대화에 등장하는 '페트루슈카'는 일린이 미샤의 영국 무대를 위해 안무해준 솔로이다. 포킨의 원작을 각색해 꼭두각시 인형 페트루슈카의 독백 장면만 재안무한 작품인데 물론 이것도 내가 만든 버전임. 미샤가 일린과 함께 이 작품을 연습하는 장면과, 영국에서 이 공연을 보고 알리사가 소회를 밝히는 장면을 각각 발췌한 적이 있다. 링크는 아래.


http://tveye.tistory.com/6544 페트루슈카를 연습하는 미샤와 일린


http://tveye.tistory.com/5178 알리사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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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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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2집에 내려왔다. 오후의 차 한 잔.







지난주에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이 깜짝선물했던 빨간 장미꽃다발이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2집에 들어가면 장미가 있다는 사실 덕에 들어올 때 덜 우울했다.



장미꽃다발이 꽤 컸기 때문에 줄기 아래를 잘라내고 시든 잎사귀들도 쳐낸 후 3등분 해서 각각 꽃병과 페리에 병과 아주 조그만 푸딩 유리병에 나누어 꽂았다. 2집은 원룸이지만 책상 위에도, 침대 곁 테이블 위에도, 텔레비전 옆에도 붉은 장미가 자리잡고 있게 되었다. 붉은 장미는 신이 내린 완벽한 선물 같은 존재이다.







기분 전환하고 싶어서 초여름에 프라하 갔을 때 에벨에서 사왔던 조그만 잔 꺼냈음. 원래는 에스프레소 잔이지만 난 그냥 찻잔으로도 쓴다. 조금씩 조금씩 부어서 마신다.


















장미꽃과 꽃돌이 슈클랴로프님은 항상 잘 어울림 :)





이건 오전에 별다방 들렀을 때. 무료 음료 쿠폰 기한이 오늘까지라 들렀다.





집에서 싸온 빵 약간과 바나나, 그리고 차이 티로 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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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진하게 차 우려 마셨다. 간밤에 유혹에 빠졌지만 안 먹고 지켜낸 녹차 쉬폰 케익이랑 같이 ㅎㅎ



지난 달력에서 뜯어낸 슈클랴로프님 화보로 액자 장식. 백조의 호수(파트너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그 옆은 Le Parc. 사진은 alex gouliaev.







2집에도 틈날때마다 찻잔을 좀 갖다놓긴 했지만 역시 한계가 있어서 몇개 없음. 오늘은 부활절 찻잔 꺼냄. 이쪽 면에 그려진 게 러시아 정교 부활절 과자인 파스하.






이건 정교 부활절 케익인 쿨리치. 위의 파스하와 쿨리치 모두 예전에 썼던 부활절 단편 Jewels에서 어린 라라와 아냐가 좋아하며 먹었던 것들이다 :)



접시에 그려진 건 알록달록 부활절 달걀들 ㅇㅇㅇㅇㅇ
















오늘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유익한 일을 했음. 얼마전 사놓고 방치해놓고 있던 요즘 러시아어 주요 생활 표현들 50개 정도 열심히 읽어보았음. 모르는 거 많음!!! 역시 흐흑 나는 책상물림... 괜히 료샤가 나보고 '노어바보' 라고 하는게 아니었다... 간만에 소리내서 노어들 읽어보는데 우다례니예(강세)도 다 엉키고 어버버버...



러시아어 공부하는 분들 중 현지 친구들이 있거나 여행갈 일 있으신 분들, 이 책 추천합니다. '네이티브가 가장 많이 쓰는 러시아어 표현 300'. '핸드폰 배터리 다 나갔어' 등등 유용한 표현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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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톡에 다녀온지 한달 반 정도가 지났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짧은 일정이기도 했고 주로 슈클랴로프 공연 보느라 별로 돌아다닌 데도 없고 사진도 많이 안 찍었다.



폰 사진들 정리하다 그때 찍은 것들 몇장 추려 올려본다. 위의 몇장은 엄청 덥고 뜨거웠던 날 시내 나갔을 때 찍은 거리 구석구석들. 아래 몇장은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프리모르스키 분관.
















이건 슈클랴로프님 곱사등이 망아지 보러 간 날, 극장 카페에서 주문해 먹었던 케익. 슬프게도 맛은 별로였다.







리플렛. 맨위에 진하게 적혀 있는 그분의 이름 :)








봐도봐도 멋있는 그분~








공연 다 보고 나와서, 극장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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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앙증맞은 붉은 수탉 티포트도 7월에 블라디보스톡 갔을 때 로모노소프 샵에서 건져온 것이다. 이것으로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온 도자기들은 끝. 티포트가 자그마하고 거름망이 들어 있지 않아 2집에 가져다 놓고 방치하다 오늘 처음 썼다. 수탉 찻잔들은 전부 화정 집에 있다만 어차피 그 수탉 찻잔들은 이 포트와 크기가 비등비등해서 차 마실 때는 모양 빼곤 어울리지 않을 듯해서...












티포트가 너무 작으니까 찻잔도 앙증맞은 미니 사이즈 꺼냄. 이건 프라하의 앤티크샵에서 건져온 오래된 '체코슬로바키아' 찻잔. 에스프레소 잔 크기라서 진짜 작다.







찻잔 색깔이랑 분위기에 맞추려고 중국 찻잔 받침 접시 꺼냄 ㅋㅋ 작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샀는데 러시아 찻잔인 줄 알고 샀으나 알고보니 중국제품이라 툴툴대며 '중국 찻잔!' 하고 부르고 있음. 그러나 꽤 예쁘긴 하다. 가끔 이렇게 받침접시만 따로 꺼내 디저트 접시로도 활용.








별다방이 너무 시끄러워서 일찍 귀가해 창가 테이블에 앉아 차 마시고 스케치를 좀 하고 글도 약간 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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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더워서 2집 tv 곁에 있던 액자의 사진을 바꾸었다. 원래 슈클랴로프와 비슈뇨바의 신데렐라 흑백 화보였는데 더우니까 곱사등이 망아지에서 슈클랴로프의 바보 이반이 깊은 바다로 들어가 반지 찾아오는 씬으로 바꿈.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보면 시원하게 느껴진다.






차 마실 땐 창가 테이블로 잠시 이동 :) 더위 쫓는 중. 이번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인받아온 프로그램도 같이.







더우니까 시원한 파란색의 비류자(터키석) 찻잔. 진짜 터키석으로 된 게 아니고 그냥 이름이...




















이건 2년 전에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신관에서 곱사등이 망아지 파이널 막 내릴 때 내가 직접 찍은 사진. 이때는 파트너가 알리나 소모바였음.









아아 일요일이 다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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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5. 22:25

면회 - 발광 페인트 토마토 수프 about writing2017. 8. 5. 22:25

 

 

 

 

 

며칠 전 이 폴더에 글쓰기와 시점에 대한 메모를 올린 적이 있다. 몇년 전 쓴 미샤의 수용소 단편에 대한 글쓰기 메모와 일기였다. 제목은 '1인칭 시점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 링크는 http://tveye.tistory.com/6836

 

 

그 수용소 단편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용소 간수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는 3인칭의 1부, 미샤의 후원자였던 공산당 고위간부 게오르기 벨스키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는 3인칭의 2부, 그리고 미샤의 절친한 벗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1인칭으로 전개된 3부인데 각 파트별로 꽤 여러 토막을 이 폴더에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오늘 발췌하는 부분은 2부. 게오르기 벨스키가 모스크바 비밀클리닉에 입원한 미샤를 후원하러 가서 나누는 대화의 일부이다. 이 파트 바로 앞부분을 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여기 발췌문 맨 앞 미샤와 벨스키가 재판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 몇 문단은 그때 발췌문 맨뒤와 겹치는데, 그걸 잘라버리면 너무 흐름이 끊겨서 그냥 살려두었다.

 

 

 

이 폴더에야 거의 항상 글을 토막토막 잘라 올리고 있으니 이 부분만 독립적으로 읽어도 크게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앞의 상황이 궁금하시다면 http://tveye.tistory.com/6068 (모스크바 요양소, 재판)를 먼저 읽고 이 파트를 읽으면 된다.

 

 

..

 

 

 

게오르기 이바노비치 벨스키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이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80년대 초반의 소련 공산당 고위 간부이다.

 

파나예바는 모스크바 비밀클리닉에서 미샤를 담당하고 있는 주치의이다.

 

글루크, 슈스코프는 미샤가 1부에서 갇혀 있었던 수용소의 원장과 정신교화 책임자이다.

 

게르만 알렉세예비치 스비제르스키는 역시 미샤의 오랜 후원자인 공산당 고위 당 간부이자 옛 KGB 고위직 출신이다. 이전에 jewels에서 미샤를 파티에 불러낸 인물이기도 하고 이 본편 우주에서 미샤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마로조프 역시 미샤의 오랜 후원자이자 애인인 당 간부이다. 스비제르스키는 모스크바 의원이고 마로조프는 레닌그라드 의원이다. 그는 이 2부의 심리적 화자인 게오르기 벨스키를 정치적으로 발굴한 대부이기도 하다.

 

 

아사예프는 미샤가 춤췄던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의 발레단 예술감독, 지나는 미샤의 발레학교 동기이자 발레리나 파트너이다. (지나와 말썽쟁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그 두둥실 지나 ㅋㅋ) 울리얀 세레브랴코프와 옥사나 셰먀코바는 극장 동료 무용수들이다.

 

 

...

 

 

위의 사진은 alex gouliaev가 찍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젊은이와 죽음' 화보.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왜 오셨어요, 게오르기 이바노비치? ”

 

“ 파리 때문에. 그 외 다른 문제도. ”

 

“ 파리? 모스크바라고 하셨잖아요. ”

 

 

벨스키는 언제까지 미샤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머릿속에 간단하게 정보들을 밀어 넣기로 했다.

 

 

“ 여기 오기 전에. 글루크가 있는 수용소에 가기 전에. 파리에 갔었잖아. 그 니진스키 트리뷰트 때문에. 그 전에는 뉴욕에 갔었고. 자네 그 파리에서 도망쳤었잖아. 그래서 문제가 생겼지. 돌아와서 재판 받았잖아, 그래서 그 수용소로 보낸 거고. ”

 

 

미샤가 오른손을 뻗어 허공을 두어 차례 휘저었다. 눈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기억을 되살리려는 듯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가볍게 흔들자 거무스름한 멍들로 뒤덮인 목덜미가 드러났다. 맞아서 생긴 상처 같지는 않았다. 그곳을 맞았다면 쇄골이 부러졌을 터였다.

 

 

“ 도망치지 않았어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러 갔었을 뿐이에요. ”

 

 

갑작스럽게 미샤가 아주 또렷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 비공개 재판에서도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를 변호하려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미샤는 직접 변론을 했다. 극장 동료들 몇몇이 유리한 증언을 해주려고 자원했지만 모두 자격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참석을 금지 당했다. 벨스키는 그 재판의 일지와 보고서를 훑어보았지만 중간 쯤 읽다가 그만두었다. 미샤의 변론 대부분에는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나마 끝까지 이어지지도 않았다. 재판관이 그의 발언을 중단시킨 후 휴정을 선언했고 30분 만에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벨스키는 그런 종류의 재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정말 도망친 거였다면 지금 여기 있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기억이 되살아난 것 같군. 자네 소환됐을 때 파리에서 시끌시끌했던 건 생각나나? 호텔 앞부터 공항까지 피켓 시위자들이 몰렸었지. 기자들도. 자네 가고 나서 그 시위가 좀 커졌거든. 게다가 이상한 오해가 생겼지. 헛소문이 퍼져서 상황이 좋지 않았어. ”

 

 

“ 무슨 소문이요? ”

 

 

“ 뻔하잖아. 자넬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 처박았다는 얘기. 벌써 루뱐카에서 총살했다는 얘기. 제국주의자들 입맛에 맞는 얘기들. ”

 

 

“ 그게 제국주의자들 입맛에 맞는 얘기예요? ”

 

 

 

미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몸을 가누기가 힘든 듯 점점 어깨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볼품없이 들쭉날쭉 잘린 검은 머리칼이 한 움큼 이마 위로 흘러내려왔다.

 

 

 

“ 그 얼간이가 이상한 소리를 했는데... 누굴 소환한다고. 하지만 걘 아무 것도 몰라요. 절 좋아한 적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걘 놔주세요. 그 여자 정말 아무 것도 몰라요. ”

 

 

“ 누구 얘길 하는 거지? 그 여자가 누구야? 얼간이는 누구고? ”

 

 

“ 아, 소환 같은 건 없었군요. 어차피 허풍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진짜 역겨운 놈이었어. ”

 

 

벨스키는 그가 글루크나 슈스코프 중 한 명을 언급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파나예바가 정해준 10분은 이미 흘러가버렸고 미샤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론부터 말해주기로 했다.

 

 

“ 자네 석방될 수도 있어, 회복되면. ”

 

 

미샤는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무관심한 표정으로 오른손 손가락들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왼팔을 들어 올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손목이 3센티미터 쯤 올라갔다가 무겁게 툭 떨어지자 짜증도 내지 않고 계속해서 그 무익한 시도를 반복했다.

 

 

“ 왜, 믿지 않아? 내 말인데도? ”

 

 

“ 믿어요. 의원님이 제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

 

 

“ 그런데 별로 관심이 없나? 수용소가 좋아? 자네 7년형 받았잖아. 다시 돌아가고 싶어? 그 약물 치료 다시 받고 싶을 리가 없잖아. ”

 

 

“ 전 선언문 안 읽을 거예요. 인터뷰도. ”

 

 

미샤가 툭 끊어지듯 거친 음성을 내뱉더니 무겁게 처져 있던 어깨와 허리를 억지로 다시 세웠다. 이마와 목에 파란 핏줄이 돋아 오르며 아랫입술이 덜덜 떨렸다. 벨스키는 파나예바의 경고를 어기고 그의 가슴에 손을 얹어 가볍게 뒤로 밀었다. 미샤는 저항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벨스키가 조금 힘을 실어 누르자 다시 베개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인터뷰 할 필요 없어. 그리고 선언문 수준도 아냐. 몇 줄만 읽으면 끝나. ”

 

 

“ 당신들 다 똑같아. ”

 

 

미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돌려 기침을 했다. 베개에 피가 튀었다. 가슴에서 짐승들이 내는 듯 낮게 끓어오르는 소리가 났다. 이제 기침은 하지 않았지만 오른손으로 목을 감싸 누른 채 다시 한 번 피를 토했다. 베개에 쏟아진 피는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발광 페인트처럼 새빨간 색이라 벨스키는 파나예바를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 파나예바를 부른다면 그녀는 면담을 완전히 중지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벨스키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조그만 타월을 미샤에게 건네주었다. 병실에 있는 물품들은 모두 소독을 마쳤을 테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샤가 타월로 입과 턱에 흘러내린 피를 닦는 동안 그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 어쩔 수 없잖아. 최소한의 명분은 있어야지. 나나 스비제르스키도, 아니,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라도 마찬가지야. 서기장이라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어. ”

 

 

“ 무슨 명분이요. 거짓말해서 풀려나라고요? 아니면 창녀짓해서? 다른 이름들도 얘기하시지 그래요. ”

 

 

미샤가 몸을 떨었다. 벨스키는 그가 그렇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폭발적 열기와는 달리 사석에서의 미하일 야스민은 아주 침착하고 서늘한 인물이었다. 훨씬 어렸을 때도 그랬다. 하긴 그는 미샤가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 자네 지금 아파서 제대로 생각이 안 되고 있어. 그냥 내 제안대로 해. 원한다면 문구도 자네가 써. 싫으면 내가 써서 보여줄 테니 고쳐도 좋아. ”

 

“ 정치국 위원님은 바쁘실 텐데... ”

 

 

벨스키는 온건한 개혁파 의원이었지만 나이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나는 애에게서 그런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미샤가 구겨진 타월 위로 다시 피를 뱉은 후 몸을 심하게 떨면서 완전히 옆으로 누웠기 때문이다. 수척한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지, 많이 아프잖아. 자네 정말 죽을 뻔 했어. 스비제르스키 의원이 들르지 않았다면 아마 죽었을 거야. 난 자네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망가지는 것도. 내가 왜 여기까지 직접 왔겠어. 내가 자네 아꼈던 거 몰라? 3분만 자존심 버려. 그러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

 

 

“ 지금 보내주실 수 있어요? 리허설에 가야 해요. ”

 

 

 

벨스키는 그를 뚫어지게 내려다보았다. 미샤는 오른쪽으로 몸을 튼 채 창문과 벽 사이의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완전히 달라진 어조로 간청하듯 속삭였다.

 

 

“ 제발 보내주세요. 다시 올 테니까. 이 방으로 다시 오면 되잖아요. 지금은 안돼요. 저한테 약속하셨잖아요, 말 잘 들으면 다시는 그 약 안 먹일 거라고. 주사도 안 놓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게르만 알렉세예비치, 제발 놔주세요. 너무 아파요. 내일, 내일 다시 올게요. ”

 

 

“ 정신 좀 차려, 난 그 사람이 아니야. 아무래도 파나예바를 불러야겠군. ”

 

 

미샤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손이 타들어가는 듯 뜨거웠지만 여섯 살짜리 어린애처럼 미약해서 슬쩍 움직여도 털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안 가. 난 말을 들었는데. 시키는 건 다 했는데. 당신 말은 다 들었어, 하나 빼고. 내가 그랬잖아. 당 이름으로 창녀 짓 하는 건 못한다고. 이제 상관없어. 그거 계속 놔도, 가둬도, 못 움직이게 해도. 그냥 죽여주면 좋을 텐데 당신 절대 그런 짓은 안 해. 자꾸 날 막아. 이제 그만 가. ”

 

 

게오르기 벨스키는 군 출신이었고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동문 서클과 그 도시의 실권자인 드미트리 마로조프를 통해 정치계에 들어온 인물이었다. 그 냉철한 마로조프가 그를 실질적 후계자로 점찍고 모스크바 권력의 중심지까지 단숨에 밀어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벨스키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데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점진적 개혁파에 속했고 결코 정적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모함과 숙청이라는 자연스러운 무기를 대놓고 쓴 적도 없는 온건한 인물이었지만 그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충격을 가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마로조프는 벨스키를 정치국으로 입성시켰고 놀랍게도 그의 오랜 정적이었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조차도 거기에 방해 공작을 펼치지 않았다. 스비제르스키는 사석에서 벨스키에게 ‘당신 뱃속은 쇠망치로 두들겨 패도 충격을 전부 흡수해버릴 쿠션들로 꽉 차 있다니까’ 라고 노골적인 농담을 건네기까지 했다. 그만큼 그를 놀라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게오르기 벨스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서 자기 앞에 누워 있는 젊은 죄수, 한때 그가 열렬하게 후원했던 무용수를 한동안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그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미샤가 다시 기침을 했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반 숟갈 가량의 피가 밀려나왔다. 괴로운 듯 베개에 이마를 부딪쳐댔다. 벨스키는 그의 머리를 가볍게 감싸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미샤가 오른손을 들어 벨스키의 손목을 쳐냈다.

 

 

“ 만지지 마. 제발 내 몸에 손대지 마. 나 좀 놔둬. ”

 

 

벨스키는 더 이상 면담을 계속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파나예바를 부르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곧장 들어왔다. 파나예바는 미샤를 보더니 벨스키에게 책망하는 시선을 던졌다.

 

 

“ 심문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

 

 

“ 잠깐 얘기를 나눴을 뿐이야, 소장이 너무 낙관적으로 얘기했던 것 아닌가 모르겠군. 전혀 회복이 안된 것 같은데. ”

 

 

“ 의원님께서 그 면담을 고집하지 않으셨으면 훨씬 나았을 거예요. 10분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이상은 집중을 못 해요. ”

 

 

파나예바가 미샤의 자세를 바꿔주고 출혈이 멎도록 조치를 취하는 동안 벨스키는 병실에서 나가는 대신 창가에 선 채 생각에 잠겼다. 주로 자신의 스케줄을 한 번 더 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지만 미샤가 파나예바의 손길은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뒤섞였다. 어쨌든 그는 5년 이상 미샤를 알았고 가장 강력한 후원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올가 파나예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걸었다. 벨스키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샤의 대답은 잘 들렸다. 체포되기 이전처럼 또렷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 아니, 그건 부다페스트에서였어요. 아사예프가 저와 지나의 호흡을 점검해보고 싶어서 투어 무대에 먼저 올라가게 했죠. 키로프 첫 무대는 12월이었어요. 74년. 폴랴코바가 테라스 장면에서 배경을 바꿨는데 아사예프가 무대가 죽어 보인다고 화를 냈어요. 그 사람 그때 공연 직전까지 계속 화만 냈죠. 진짜 이유는 저와 지나가 금발로 염색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집시 로맨스를 출 작정이냐고 한 시간 동안 설교를 늘어놓았어요. 지나가 빨간 머리 줄리엣이 뭐가 문제냐고 발끈하더니 저에게 아사예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집시 분장을 하고 추자고 했어요. 걔는 화를 내면 무섭기 때문에 잠깐 집시 의상까지 입어봤는데 그걸 보고 지나가 포기했어요. ”

 

 

 

파나예바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다시 뭐라고 속삭이자 미샤가 대꾸했다.

 

 

 

“ 아, 다른 건 다 됐는데 피부색을 바꿔야 했어요. 집시처럼 보이려면 진한 파우더가 필요했는데 마침 다 떨어졌거든요. 그러고 있는데 아사예프가 들어와서 기겁을 하더니 염색 얘길 더 이상 안 했어요. 그래서 원래대로 췄죠. 이후에도 그거 출 때 금발로 물들인 적 없었어요, 단 한 번도. ”

 

 

‘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해 얘기하고 있군. ’

 

 

 

벨스키는 잠시 매혹된 채 파나예바와 미샤 쪽에 시선을 던졌다. 자신이 췄던 작품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미샤는 완전히 정상처럼 얘기했다. 파나예바가 백조의 호수에 대해 묻자 미샤는 니나 크류코바와 췄던 첫 무대나 크레믈린, 해외 투어 무대가 아니라 헝가리 춤을 추고 들어간 발레리나가 떨어뜨렸던 머리장식을 밟고 미끄러질 뻔 했던 무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뒤엉킨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최고의 찬사를 받은 무대가 아니라 실수를 할 뻔 했던 무대라는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스키는 미샤가 얘기하는 공연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옥사나 셰먀코바가 고의적으로 장식을 떨어뜨렸다는 소문이 무용계에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당시 셰먀코바는 미샤의 오랜 반대파였던 울리얀 세레브랴코프의 연인이었고 그 서클에서는 끊임없이 각종 방법을 동원해 그를 괴롭히고 있었으므로 꽤 신빙성 있는 소문이었다. 실제로 미샤는 이듬해 볼쇼이로 옮겼는데 벨스키는 세레브랴코프 서클이 그를 조금만 더 심하게 볶아댔으면 더 빨리 옮겨오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벨스키는 자신도 모르게 파나예바가 지젤이나 라 바야데르에 대해 물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샤 야스민의 알브레히트나 솔로르를 따라갈 무용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무수한 팬들이 미샤의 무게 없는 도약과 고속 회전, 화려한 테크닉에 푹 빠졌지만 벨스키는 항상 그의 진정한 강점은 드라마 배우로서 타고난 연기력과 음악에 대한 완벽한 감각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서방 관객들과 전문가들이 그 젊은 무용수 앞에서 넋을 놓았던 것도 당연했다. 그자들이 어디에서 그런 춤을 볼 수 있었겠는가. 볼쇼이나 키로프에서도 그렇게 춤추는 무용수는 없었다. 그런 재능은 유일무이했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온전한 재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재능이, 그 완벽했던 육체가 부서지고 찢어진 채 반쯤 마비되어 있었고 무용수답지 않게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명료한 이성은 으깬 토마토 수프처럼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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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면회의 후반부 대화를 일부 발췌한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589 (체제의 이름, 비행사, 천사 이름 붙은 도시)

 

 

이 링크에 발췌된 이야기에는 이 단편의 다른 파트들에 대한 링크들도 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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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췌문에 붙인 제목은 그냥 충동적으로 여기 나오는 단어들을 조합했음. 원래 이 단편은 1부 1~3장, 2부 1~3장, 3부 1~3장으로만 되어 있어 이런 소제목 같은 건 없기 때문에 여기 발췌해 올릴 때 내 맘대로 대충 붙이고 있다. 주인공이 피 토하고 정신 흐릿해진 상태이니 뭐 어울리는 듯... (미샤 : 뭐 임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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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지난 7월 18일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극장에서 열린 An evening with Vladimir Shklyarov 공연. '발레 101', '고팍', '날 버리지 마'에 이어 휴식시간 후 프레드릭 애쉬튼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공연. 파트너는 나탈리야 오시포바.



나는 슈클랴로프의 아르망을 2년 전 마린스키에서 보았는데 그때도 무척 좋았지만 이번 공연도 참 좋았다. 춤이 좀 더 원숙해졌고 예전보다 '로미오'보다 '아르망'에 더 가까웠다. 아름답고 정열적이고 격렬했다.



다만 마르그리트 역의 나탈리야 오시포바는... 뭐랄까, 그냥 내가 오시포바가 딱히 취향에 안 맞는 무용수라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아름다워야 할만큼 아름답지가' 않았다. 이게 외모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예전에 슈클랴로프와 춘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역시 흔히 말하는 '미인' 무용수는 아니지만 처연한 마르그리트였는데 오시포바는 마르그리트 배역의 춤도 꽤 잘 추고 드라마틱한 연기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마르그리트 역을 연기하는 오시포바'란 느낌이 들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녀는 지젤을 출 때도 '처절한 지젤을 연기하는 오시포바' 느낌이긴 했다.



그리고... 사실 맨처음 마르그리트가 입고 나오는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는 오시포바랑은 좀 안 어울렸다 ㅠㅠ 그 드레스는 우아하면서도 고혹적이고 화려한, 그리고 산전수전 다 겪은 화류계와 사교계의 여왕에게 어울리는 의상인데 오시포바가 입자 '뭔가 우아하지 않다...' 란 느낌이 들어서 살짝 아쉬웠다.



뭐 오시포바가 우아한 스타일의 무용수는 아니니까... 그래도 설정상 마르그리트의 원숙한 아름다움 앞에 모두가 조아려야 하는데 처음 파티 장면을 보면 '안 예쁜데 다들 조아린다...' 란 생각이 들고, 새파란 프록코트 차림 아르망 역의 슈클랴로프가 나타나 공작새처럼 춤을 추기 시작하면 '진짜 예쁜 애는 여기 있네, 얘한테 다들 조아려야겠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드니 이것은 팬심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만큼 오시포바가 좀 눈에 안 찼다. 오시포바 팬들 죄송합니다. 저는 테료쉬키나 마르그리트가 더 나았어요. 그래도 보금자리 장면과 마지막 죽음 장면에선 오시포바도 특유의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연기력으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여튼 커튼 콜 사진 몇 장. 이때도 맨앞 가운데 앉긴 했는데 플래쉬 안 터뜨렸더니 다 번져서 건진 사진 거의 없음 ㅠㅠ 그래도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는 관객들이 박수치면 나중에 따로 하늘색 커튼 앞으로 나와주기 때문에 그때 사진 많이 건지는데 여기는 그런게 없고 그냥 무대 위의 모습만 찍어야 해서... 솜씨없고 렌즈 나쁜 나는 그냥 망했음.



맨 위 사진은 흔들렸지만... 내가 바친 꽃을 안고 있어서 :) 저 꽃다발 중 새빨간 장미다발이 내가 바친 것이다~~



아래 커튼 콜 사진 몇 장 더. 화질은 기대하지 마세요 ㅠㅠ













와아 꽃다발 드리는 시간~~










꾸벅~~


저 새빨간 장미 꽃다발이 내가 바친 것 :)





하지만... 바가노바와 마린스키에서 트레이닝받은 기사도 넘치는 슈클랴로프님은 언제나처럼... 자기가 받은 꽃다발을 파트너 발레리나에게 바치고 ㅠㅠ 흐흑..



으앙 오시포바 좋겠당! 뽀뽀도 받고 :)


(실제로 둘이 절친한 사이이다. 사실 오시포바는 한두달 전에 로열발레단에서 처음으로 이 역으로 데뷔했는데 그때 원래 연인인 세르게이 폴루닌과 추기로 했다가 공연 직전에 폴루닌이 갑자기 부상당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연락해 슈클랴로프가 급하게 날아와 아르망을 춰주었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자체가 지금 로열발레단과 마린스키 정도에서만 공연하고 있어 이 배역을 출 수 있는 무용수들이 귀하고 특히 오시포바는 그때가 첫 무대라서 호흡이 맞는 파트너가 필요했는데 슈클랴로프가 선뜻 가서 춰준 것이다. 그래서 이번 슈클랴로프 무대에 오시포바가 보은으로 와서 춰준 것도 조금 있긴 한듯. 훈훈~~~ 기자간담회할 때랑 사인회할때도 둘이 꽤나 친하게 조잘거리며 얘기 나눴다)





그래도 내 꽃 오시포바에게 준 건 조금살짝 아깝긴 해 ㅎㅎㅎ








빼먹지 않는 손등 키스~~~





오시포바도 웃음 가득 :)))








마지막은 다시... 멋있게 절하시는 슈클랴로프님으로...



아흑... 공연 볼 땐 너무 좋았는데 지금은 다시 시골에서 일하고 있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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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