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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못 보고 있는데다 특히 슈클랴로프님 무대를 못본지 어언 일년이 훨씬 넘어버려서 아쉬운 마음에 예전에 갈무리해두었던 영상 클립 세개 올려본다.

 

 

먼저 발레 101. 이제 상당히 명성을 갖추게 된 작품이다. 나레이션 지시에 따라 무용수가 발레 동작 101개를 시연한다. 그리고... 

 

 

2020년 초에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마리스 리에파 기념 공연 갈라 무대에서. 출처는 리에파 프러덕션. 슈클랴로프님은 몇년 전 내한해 유니버설 발레단 갈라 공연에서도 이 작품을 췄는데 그때도 반응이 아주 좋았다. 나는 이분의 이 무대를 여러번 봤는데 볼때마다 기절 :)) 다른 무용수들 무대도 몇번 봤지만 이 사람 무대야말로 나의 원픽(팬심이 한몫 하겠지만 이 사람의 유머와 능숙함이 갖는 매력이란 정말이지 거부할 수 없다) 

 

 

 

 

 

 

이건 2020년 1월 29일, 마린스키에서 공연된 라 바야데르. 2막 결혼식 2인무. 감자티는 옥사나 스코릭. 내가 좋아하는 하얀색 결혼식 의상 :)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렇게 이쁜 솔로르가 호랑이를 잡아오는 귀족 무사라니 ㅎㅎ 감자티와의 결혼은 사랑 없는 결혼이라 춤추는 내내 솔로르의 얼굴에는 미소 하나 없음. 

 

 

 

 

 

 

 

위와 같은 공연. 3막 망령의 왕국에서 솔로르의 마지막 솔로. 이 클립은 전에 한번 올린 적이 있다. 발레 무대가 다 그렇긴 하지만 특히 이 사람의 솔로르는 정말이지 무대로 봐야 한다. 영상에서 절대 담아낼 수 없는 드라마틱함과 온전한 열정이 3막의 말미로 가면 정점에 다다르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무대를 가로질러 도약할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영상만 있으면 버벅거리니 꽃돌이님의 발레 101 화보 한 장으로 마무리. 이건 위의 공연 때는 아니고 2016~17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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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도 유니버설 발레단 갈라, 슈클랴로프님 부부의 무대 보고 이제 지하철 타고 귀가하는 중.



오늘도 남아서 인사하고팠지만 몸이 넘 피곤하기도 하고 사실 오늘 또 기다리고 있으려니 쫌 부끄러워서(ㅋㅋ) 꽃만 따로 창구 통해 전달해드렸음.



오늘 무대도 좋았다. 유니버설 무용수들도 오늘 좀더 몸이 풀린 느낌이었다. 마지막의 화이트 슬립은 공연시간 때문인지 어제 보여주었던 인트로 영상 파트를 삭제했다.



발로쟈의 발레 101은 볼때마다 정말 즐겁다. 무대를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가지고 논다. 그리고 그와 마샤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너무나 섬세하고 사랑스럽고 청순해서 봐도봐도 물리지 않는다. (팬심 대폭발 중 ㅋㅋ)



극장에서 블로그 이웃님과 막간에 조우해서 엄청 반가웠다. (참으로 놀라운 공통점! 많이 뵙진 않았으나 여태 내가 블로그 통해 만난 여자분들은 하나같이 이뿌시다!!! 신기방기!!!!)



성공한 팬이 되신 걸 축하드려요, 우리 내일 뵈어요!!!







앞으로 가서 찍긴 했지만 화질은 매우 엉망 ㅜㅜ



흐흑 낼이 벌써 마지막 공연이야 우엉엉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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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7. 23. 21:06

슈클랴로프 '고팍' 커튼 콜 + 발레101 화보 dance2017. 7. 23. 21:06






7월 18일 화요일, An evening with Vladimir Shklyarov 공연. 이 사람은 여기서 발레 101, 고팍, 날 버리지 마,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추었고 중간중간에 마린스키 동료들의 잠자는 미녀 그랑 파, 돈키호테 그랑 파, 러시안 댄스 갈라가 들어갔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연속으로 네개의 넘버를 쭈루룩 소화하는 건 육체적으로 너무 어렵기도 하고, 의상도 갈아입어야 하고 집중도 해야 하니까.



발레 101은 흰 셔츠에 검은 숏팬츠 차림이라 빛이 너무 번져서 커튼 콜 사진 한장도 못 건지고, 고팍도 건진 거 이거 한장이다. 그나마도 흐리게 나옴 ㅠㅠ 흐흑.....



고팍 정말 끝내줬다. 이거야말로 도약이 훌륭한 남자 무용수를 위한 테크닉 뽐내기용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흰 루바슈카에 펄럭이는 빨간 바지의 슈클랴로프는 정말이지 근사하게 공중을 훨훨 날아다녔다. 전에 찍은 고팍 화보를 보면 굉장히 소년 같았는데 이때 무대에서는 제대로 된 성숙하고 강인한 남자의 춤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하나 더 건진 것. 이건 더 흔들렸어 흐흑...







그래서 마린스키 블라디보스톡 분관 측에서 제공한 화보 한장 추가. 저렇게 계속 폴짝폴짝 뛰고 날아오르시는데 어찌 환호하지 않으리오.






아쉬우니까 역시 마린스키 블라디보스톡 쪽에서 제공한 발레 101 무대 사진 한 장 더. 영상으로 볼때도 즐거웠지만 정말이지 무대는 더 끝내줬다. 이 사람의 유머가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 :) 발레 101은 테크닉 위주의 소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용수로서의 자신감과 무대 장악력과 여유가 필요한 작품이다. 다른 무용수들의 무대를 몇번 보았는데 그런 여유와 유머와 자신감을 드러내는 게 사실 그리 쉽지 않다. 스텝 하나하나를 클리어하기에 바쁜 것이다. 이 사람은 그런 면에서는 도가 텄다!!!! 그리고 댄서의 육체 하나와 스피커, 마네킹(이건 스포일러인가)만 있으면 되니 무대 준비하기도 쉽고 이 사람의 매력이 팡팡 터지는 작품이라 해외 투어 때 종종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발로쟈, 당신은 최고에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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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다음주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 슈클랴로프가 곱사등이 망아지 무대 주역을 추고, 그 이틀 후에는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비롯한 4개의 레퍼토리를 보여주는 특별 무대를 준비한다. 이 사람이 바이에른으로 떠난 후 무대를 직접 보지 못해서 근 일년 만이다. 일년 동안 얼마나 더 원숙해졌을지 기대가 많이 된다.

 

그래서 오랜만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프로모와 무대 영상 몇개 올려봄.

 

위의 사진은 발레 101.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레퍼토리에도 들어 있다.

 

 

먼저 이번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 공연 소개 프로모. 흑백 영상은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신관 옥상에서 찍은 것.

 

 

이 사람이 빵끗 웃으며 러시아어로 하는 말은 :

 

"친구들 안녕하세요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에서 16일에는 곱사등이 망아지, 18일에는 저의 특별공연이 있답니다. 꼭 보러 오세요~"

 

 

흑.. 낚였어 ㅠㅠ 너 때문에 그래 간다...

 

 

심장폭격 주의~

 

 

 

 

 

..

 

 

이건 바이에른에서 리허설할 때 찍은 영상. 상대역은 예카테리나 본다렌코. 독일에 가버린 후에는 그쪽 영상은 거의 볼 수가 없어 무척 아쉬웠는데 이걸로나마 약간 갈증을 달램. 두 무용수의 워밍업과 리허설 장면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초반부는 예카테리나 본다렌코 옷차림 때문에 좀 아디다스 광고 같아 ㅎㅎ

 

 

 

 

..

 

 

이건 조지 발란신의 jewels 중 다이아몬드 일부. 상대역은 옥사나 스코릭.

 

 

 

 

..

 

 

마지막은 잠자는 미녀 그랑 파 드 두.  상대역은 알리나 소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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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추운 러시아에 잠시 와 있다 보니 이렇게 추웠던 날 썼던 추운 날에 대한 이야기 조금. 아래 에피소드는 종종 조금씩 올렸던 트로이와 미샤의 장편 후반부에서 발췌했다.


에피소드의 앞부분에 생략된 배경은 이렇다. 12월의 추운 겨울날 미샤의 공연을 보러 갔던 트로이는 그날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던 지나이다(미샤의 룸메이트이자 꾸준히 파트너로 춤춰온 발레리나)를 만나고 안면이 있는 그녀의 초대를 받아 집에 놀러간다. 즉, 미샤와 지나이다가 함께 사는 아파트이다.

아파트에는 지나이다의 약혼자이자 트로이의 친구(트로이가 영문학과 강사로 일하는 학교의 같은 학과 부교수)인 마르크 카라바노프가 기다리고 있다. 카라바노프는 보드카가 있는데 같이 마실 사람이 없다고 슬퍼하다 트로이를 보고는 반색한다. 그리고...


..


스톨리츠나야는 보드카 상표 중 하나.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는 전에 종종 등장했던 미샤의 절친한 친구이자 볼쇼이 안무가인 스타니슬라프 일린.

트로이츠키는 트로이의 원래 성. 트로이의 원래 이름은 안드레이라서 미샤는 단둘이 있으면 그를 안드레이라고 부름.

넬레츠카는 지나와 미샤의 극장 후배 발레리나.

벨스키는 전에 수용소 이야기에 잠깐 등장했던 정치가이자 미샤의 후원자이다.


..


맨 위 사진은 젊은이와 죽음을 추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카라바노프는 지나이다가 트로이를 데리고 들어오자 무척 좋아했다. 트렁크 몇 개에 약혼녀의 책과 여름 옷을 챙겨넣던 것도 내팽개치고 부엌으로 달려가더니 반짝거리는 스톨리츠나야 보드카 유리병을 양 손에 움켜쥐고 나와 보란 듯이 흔들었다.


 “ 하늘이 자넬 보내준 거야! 아니, 레닌이 보내줬다고 해야 하나? 저녁에 이게 두 병이나 생겼는데 같이 마실 사람이 없잖아. 지나는 보드카 입에 안 대고, 미하일은 술을 아예 못 마시니... 딤카도 없고 루벤도 없고... 연말이라고 다들 바빠서 들를 생각도 안해. 섭섭한 마음에 모스크바에 전화해서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를 부를 생각까지 했다니까! 스톨리츠나야를 앞에 놓고 뚜껑을 따지 않는 건 죄악이야! 동의하지, 트로이츠키 동지? ”



 “ 어, 그래. 죄악 맞아. ”



 지나이다가 약혼자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



 “ 당신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얼마나 술이 센 줄 알아? 대작할 생각 꿈에도 하지 마. 밤새 마셔도 절대 안 취하니까. 딤카도 나가떨어졌어. ”



 “ 그러니까 부르려고 한 거지. 끝까지 안 취하고 남아서 우릴 돌봐줄 사람이 하나 필요해. 당신은 안해 줄 거잖아. 미하일은 옆에서 냄새만 맡아도 취해서 기절할게 뻔하고. 아니, 세 잔까지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나? 트로이슈카, 자네 조금만 참아줘. 우리 이거 미하일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자. 그래도 남자들의 의리가 있는데 한 잔은 권해야지. 안 그러면 그 친구 섭섭해 할 거야. 게다가 난 미하일한테 신세진 게 진짜 많아. 새 집 구하는 것도 도와줬고 주택관리국 등록도 빨리 받을 수 있게 도와줬어. 지나랑 편하게 지내라고 자리도 많이 비켜줬고... ”



 “ 안돼, 그 바보한테는 한 방울도 따라줄 필요 없어. 그냥 지금 따. 내가 한 잔쯤 마셔줄게. ”



 “ 지나샤, 파트너를 바보라고 부르는 건 참 무례한 것 같아. 미슈카가 착해서 넘어가는 거지 사실은 별로 기분 좋지 않을 거야. ” 



 “ 바보를 그럼 뭐라고 불러. 얼간이나 멍청이보단 그래도 바보가 어감 상 나아. 꽤 신경써서 불러주고 있는 거야. ”
 


 “ 전혀 몰랐네, 그게 신경써서 불러주는 거였는지. ”



 소리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미샤가 말했다. 카라바노프는 깜짝 놀라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 아니, 미하일. 농담이었어. 스톨리츠나야가 생겨서 좋아하다 그런 거야. 기분 나쁜 거 아니지? ”



 “ 기분 나쁘긴. 신경써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돼서 감동했는데. ”



 지나이다는 어깨를 으쓱하며 파트너에게 곧장 다가가서 코트를 받아주었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 어쩐지 말도 안 되게 빨리 집에 왔다 생각했어. 분장도 안 지웠네. 가방도 안 가져오고. ”



 “ 분장실에 안 들어갔어.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고 넬레츠카가 알려줘서 곧장 뒷문으로 나왔어. 가방이야 안나 미하일로브나가 따로 챙겨놨겠지. ”



 “ 이 코트는 뭐야! 소매가 왜 이렇게 짧아, 이거 케이프야? 여자 코트 아냐? ”



 “ 분장실에 못 들어갔잖아. 넬레츠카가 자기 거 벗어줬어. 아, 결국 그 단추 두 개나 떨어졌군. 치수 큰 거라더니 역시 무리였어, 이오시프 걸 뺏으려고 했는데 안 벗어주잖아. 이 옷 새 거라고 했는데. 단추 달아줘야겠다. ”



 “ 잘한다, 여자 후배 코트나 벗겨 입고 오고 단추도 떨어뜨리고. 그나마 케이프라서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어깨 솔기 다 터졌을걸. 다닐로프가 끝나고 면담하자고 했던 거 아니었어? ”



 “ 내일 다시 얘기하기로 했어. ”



 미샤는 트로이를 발견하고 잠깐 눈짓을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나이다와 카라바노프 때문인지 코트를 벗은 것 외에는 얌전하게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트로이는 그 애가 고로호바야의 집 현관에서부터 옷을 하나하나 벗어 내팽개치며 샤워를 하러 가던 것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현관의 황금색 불빛 아래에서 분장을 지우지 않은 그 애의 얼굴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또 가면처럼 낯설어 보였다. 헐렁하게 늘어진 스웨터 아래로 이바누슈카 무대 의상이 힐끗 보였다.



 ‘ 그때도 그랬지, 지나이다에게 내쫓겨서 레오타드 위에 동료가 빌려준 옷을 입고 우리 집까지 왔었어. 그때 그 살인자가 왔었지. ’



 카라바노프는 의리를 지켜 꿋꿋하게 보드카를 따지 않고 버텼다. 대신 꽤 질이 좋은 캐비아가 담긴 병을 꺼냈고 지나이다를 위해 그루지야 와인도 한 병 가져왔다. 접시에 흑빵과 피클, 살얼음이 껴 있는 훈제 연어 몇 조각과 치즈를 늘어놓았다. 보드카 잔 세 개와 와인 잔 한 개도 꺼냈다. 지나이다는 카라바노프가 테이블을 차리는 동안 별 거리낌도 없이 미샤의 침실로 들어갔다.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욕실 문 앞에 서서 미샤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지나이다가 나오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구급상자를 가지고 나와 트로이를 불렀다.



 “ 바보한테 약 좀 발라줘요. 내가 해줘도 되는데 마르크가 삐칠까봐. ”


 “ 어디 또 다쳤어요? ”



 “ 좀 긁혔어요. 바보 정도면 아주 양호한 호칭이란 걸 이제 알겠죠? ”




 트로이가 등 뒤로 욕실 문을 닫고 들어갔을 때 미샤는 거품을 채운 욕조 안에 비스듬하게 누워 있었다. 부글거리는 하얀 거품 때문인지 분장을 모두 지운 얼굴이 해쓱해 보였다.



 “ 어디 긁혔어? ”



 “ 아, 지나가 얘기했구나. 별 거 아닌데. ”



 미샤가 물속에서 몸을 돌려 반쯤 엎드렸다. 견갑골 사이에 길게 벤 상처가 나 있었다. 물에 씻겨나가서 피는 맺혀 있지 않았지만 피부가 양 옆으로 슬며시 벌어져 안쪽의 연한 붉은빛 살갗이 드러나 있었다.



 “ 이게 긁힌 거라고? 벤 거잖아. 누구야? ”



 “ 누구라니? 넌 왜 누구라고 생각해? 커튼 콜 끝나고 내려오다가 무대 장치에 벤 거야. 원래는 톱니를 천으로 씌워놓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었나봐. 끝나고 베어서 다행이야. 의상도 찢어졌거든. ”




 
 트로이는 그의 말을 절반도 믿지 않았다. 미샤도 그의 시선을 눈치 챈 듯 고개를 저었다.



 “ 안드레이. 넌 정말 런던에 안 가길 잘 했어. 요원은커녕 아마추어 탐정도 못 될걸. 내가 아무리 유연해도 이런 각도로 찌르진 못해. ”



 “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왜 앞장서서 변명해? ”



 “ 하고 있는데? 눈으로. ”




 
 트로이는 대꾸하지 않고 버튼을 눌러 물을 틀었다. 천정에 달린 샤워기에서 갑자기 물이 쏟아져 내리자 미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 엄청 뜨거워! 말도 없이! ”



 “ 거품을 닦아내야 약을 바를 거 아냐. ”



 “ 오늘 공연 보러 왔었어? ”



 미샤가 욕조에서 일어서며 화제를 돌렸다. 어깨와 등의 물기를 닦아내고 벤 상처를 소독하면서 트로이가 대꾸했다.


 
 “ 그래. ”


 “ 얘기하지 그랬어. 연말이라 표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


 “ 타마라가 구해줬어. ”


 “ 아, 귀여운 무샤. 그 아가씨 없으면 우린 아무 것도 못해. ”


 “ 벨스키는 왜 온 거야? ”


 “ 게다가 수다쟁이지. 뭐 그게 매력이지만. ”


 “ 난 벨스키에 대해 물었는데, 타마라가 아니고. ”


 “ 무슨 회의 때문에 왔다가 들렀어. 크레믈린 축제 때 지나에게 그랬거든, 레닌그라드에 오게 되면 식사나 같이 하자고. ”


 “ 지나에게? ”


 “ 아, 정말 까칠해졌네. 지나랑 나에게. 됐어? ”


 “ 넌 정치가들과 친한 게 불편하지 않아? 콤소몰에는 발도 들여놓지 않으면서 고위층 인사들과는 잘 지내네. 문화국 쪽도... ”


 “ 전제부터 틀렸네. 친하지 않아, 전혀. 이제 그런 얘긴 그만하지. ”


 “ 친하지 않다고? 고르차긴이 자기 집안에 들여놓고 싶어 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


 “ 너 정말 왜 그래? 넌 이 바닥을 잘 몰라. 내가 싫다고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인간들이 아냐.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밉보이면 무대에 올라갈 수도 없게 만드는 놈들이야. ”


 “ 그것 때문에 친하게 지내? 무대 뺏길까봐? ”


 “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 거야? 얻어 걸리는 고위직들과 다 잔다고? 내가 여자야? 그런 짓 꿈에도 생각 안하는 인간들이 더 많아, 내가 자달라고 매달려도 절대 안 해 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그 자리에서 수용소로 보낼 걸. 넌 동의 안하겠지만, 차라리 자는 게 나아. 솔직하고 깨끗하게. 그냥 자고 끝내는 게 낫다고. 그 인간들 파티에 가고 웃어주고 공연 얘기, 극장 얘기 하고 행사에 끌려 다니는 것보다 백배 낫단 말야. ”


 “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었어. 흥분하지 마. ”


 “ 그래, 그런 뜻이 아니었겠지. 위선자처럼 군다고 하고 싶었을 테니까. 나도 알아, 잘 아니까 제발 놔둬.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는 나도 아니까, 네 입에서까지 듣고 싶지 않아. 다시는 그 인간들 얘기하지 마. 그 살인자들에게 내가... ”



 미샤가 주먹으로 타일 벽을 꽝 쳤다. 살갗이 터지면서 핏방울이 튀었다. 트로이는 거울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기를 빌었다. 그는 목욕 가운을 잡아채 미샤의 어깨에 뒤집어씌우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 난 한 번도, 한 번도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 넌 위선자가 아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런 놈이라 해도 너만은 아니란 말야. 그런 바보 같은 생각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 ”



 미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욕조에서 나왔다. 거울 앞에 선 채 기계적으로 토너와 로션 따위를 얼굴에 부드럽게 문질렀다. 손의 상처 때문에 뺨 위로 피 얼룩이 조그맣게 번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트로이는 젖은 타월로 그의 손을 감싸 피를 닦아냈다.


 “ 너 옷 다 젖었어. 내 거라도 입고 있어야겠다, 마르크는 나보다 더 작으니까. 방에 가서 줄게. ”



 미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말하고는 타월로 머리를 닦은 후 드라이어로 몇 분 동안 맹렬하게 물기를 말렸다. 침실로 나왔을 때 미샤는 옷장을 뒤지더니 좋아하면서 치수가 큰 스웨터와 바지를 찾아냈다.



 “ 이건 레냐한테 빌렸던 거니까 좀 나을 거야. 좀 짧겠지만 품은 맞을 걸. ”


 “ 동료고 후배고 가리지 않고 옷을 빌려 입고 오는구나. ”


 “ 공산주의 사회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지. 나도 내 옷 많이 빌려줬어. 아무도 안 돌려줬지만. 그러니까 나도 갖고 있는 거야. 그래도 넬레츠카 건 내일 갖다 줘야지. 단추 달아서. ”


 


 트로이가 젖은 옷을 벗어 라디에이터에 널어놓고 레냐 핀스키의 옷을 걸쳐 입는 동안 미샤는 옷을 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가운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갛게 씻긴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 뭐해, 옷 안 입고. 마르크가 눈 빠지게 기다려, 저 보드카 빨리 안 따면 저 친구 울지도 몰라. ”


 “ 너희 집이면 좋겠다. 그럼 지금 그냥 잘 수 있을 텐데. ”


 “ 졸리면 그냥 자. 어차피 넌 거의 못 마시잖아. ”


 “ 난 네가 옷 입는 걸 보는 게 좋아. 머리 위로 윗도리 뒤집어쓰면서 팔을 빼는 거. ”


 “ 다 똑같잖아, 너도 그렇게 입잖아. ”


 “ 넌 팔이 끝없이 뻗어 나오는 것 같은걸. ”



 미샤가 일어나 다가왔다. 그의 기다란 두 팔을 뒤로 엇갈려 끌어당기면서 의심할 수 없는 부드러운 저음으로 말했다.



 “ 우리 그냥 방에 있자, 나가지 말고. 마르크는 혼자서도 잘 마셔. ”


 “ 의리를 지켜줘야지. 너 때문에 기다렸는데. ”


 “ 내 파트너 뺏아간 도둑놈에게 무슨 의리. ”


 “ 농담이라도 마르크 앞에선 그렇게 얘기하지 마라, 정말 질투하니까. 한동안 너 의심하느라 잠도 못 잤을 걸. ” 


 “ 아, 하긴. 마르크는 지나가 쓰다듬는 강아지까지 질투하지. ”




..




 

루돌프 누레예프.


신나게 보드카 마시는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왜 또 이 미샤란 놈은 심각하게 구느냐 하고 크레믈린 흑토끼 운운하시는 분들을 위안하고자...

마르크 카라바노프는 지나이다가 쓰다듬는 강아지까지 질투한다고 해서... 강아지 사진 :)

(소설에서 카라바노프는 처음엔 미샤와 지나이다 사이를 엄청 의심했음... 파트너이자 같이 살기까지 해서ㅠㅠ)


 


그리고 '내가 바보라고?' 하는 미샤의 표정과 오버랩되는 듯한 슈클랴로프의 눈 똥그란 사진. 발레 101 :)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어제로 마무리된 도쿄 공연. 슈클랴로프와 사라파노프, 다닐 심킨을 비롯한 유명 남성 무용수 몇명 및 사라 램 등 발레리나 2명이 참여했고 주제는 무려 '왕자님'..과 '공주님'.

 

일본은 발레 애호가들이 많아서 부럽다. 국내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조합에 도저히 볼 수 없는 작품들.. 슈클랴로프는 발레101, 에튀드, 5탱고 등을 췄다... 아, 좋겠다... 심지어 사라파노프 심킨 슈클랴로프가 한자리에...

 

도쿄 쪽 무용수들과 다같이 찍은 사진. 제일 한가운데 왕자님처럼 서 있는 꽃돌이 슈클랴로프. 그리고 그 옆에 옆에 서 있는 사라파노프 ㅋ

 

 

사진사는 캡션대로 kionori hasegawa

맨 오른쪽 발레 101 숏팬츠 복장이 슈클랴로프.

 

 

이건 프로그램 중 슈클랴로프 페이지. 일본 팬이 캡처해 올린 사진.

 

 

 

아악, 오글오글... 이게 이 공연 제목... 아, 으.... 어어...

아무리 그래도 이거 좀 오글오글..

그와중에도 슈클랴로프는 왕자님 같긴 하다 ㅋㅋ 옆의 심킨이랑..

근데 이 포스터 정말 미치겠다...

 

 

꽃분홍 포스터의 환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연습실의 왕자와 공주들 ㅋㅋㅋ

빨간 덧신 신고 면도 안한 슈클랴로프, 맨 오른쪽.

 

이건 발레 101.

이 사람이 추는 무대로 보고 싶어 ㅠㅠ

 

 

사진만 올리면 아쉬우니..

얼마전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갈라 공연에서 차이코프스키 2인무를 춘 슈클랴로프의 솔로 영상 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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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7. 3. 17:08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몇 장 dance2016. 7. 3. 17:08

 

자리 비운 동안 넷에 올라온 슈클랴로프 화보들 몇 장.

나도 저렇게 잘 찍고 싶다 ㅠㅠ 흰 옷 입어 번져버린 커튼 콜 사진들이 눈앞에 어른어른..

 

최근 글린카 극장에서 고팍과 발레101을 춘 슈클랴로프. 먼저 고팍.

아아, 루바슈카와 빨간 바지 입고 고팍 추는 슈클랴로프를 보고 싶다!!! 얼마나 훨훨 날아다닐 것인가. 얼마나 경쾌하고 생기 넘칠 것인가...

 

 

저 헐렁한 루바슈카와 빨간 바지를 보니 너무 귀엽다.. 애 아빠 맞느냐..

 

 

발레 101.

7월에 도쿄에 와서 에튀드와 이 발레101을 춘다는데 이제 나는 파산이라 도저히 도쿄까지는 못 가겠네..

이 사람이 추는 발레 101 진짜 무대에서 보고프다. 영상만 봐도 유머와 생기가 철철 넘치는데..

 

 

 

 

이건 스메칼로프의 '녜 빠끼다이 미냐"(나를 버리지 마)

사진은 Jack Devant

아아, 내가 이번에 가서 찍은 커튼 콜 사진은 흰옷 입은 유령으로 나왔건만..

좋은 작품이었다... 조금만 더 길었으면 싶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스메칼로프의 초기 안무작이자 역시 슈클랴로프가 나왔던(그땐 오브라초바와 췄지) parting의 보다 원숙하고 고통스러운 버전 같은 느낌도 드는 작품이었다. 아마 둘다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적의 알리를 춘 슈클랴로프

아무리 봐도 콘라드가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예쁜 알리...

 

 

악, 그렇게 웃으면 관객들 다 쓰러진다...

 

 

얼마전 아내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춘 라 바야데르. 사진은 캡션대로 elena lekhova

 

 

이 사진 보니 다시 이 사람의 라 바야데르 무대를 보고 싶다. 이 사람은 1막부터 3막까지 점점 사람을 휘어잡는 솔로르로 변해간다. 그러니까, 1막은 좀 철딱서니 없지만 사랑스러운 연인, 2막은 안절부절 못하는 비겁한 배반자, 3막은 참회와 회한으로 몸부림치는 알브레히트 같은 남자인데 이 사람의 연기와 춤은 3막에서 가장 빛을 발하곤 한다.

 

3막에서 이 사람이 스카프를 휘날리며 무대로 뛰어나와 선회하고 망령들의 그림자 앞에서 니키야를 향해 뛰어오를 때면 간혹 숨을 죽이게 된다. 그만큼 사람을 매료시킨다. 2막 결혼식의 화려한 2인무보다는 이 3막의 2인무와 솔로가 훨씬 잘 어울린다.

 

 

청동기사상.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최근 내가 본 공연들 중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와 춤과 무대였다.. 비단 슈클랴로프 뿐만 아니고 스메칼로프와 무대 미술, 음악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분명 광란의 예브게니를 혼신을 바쳐 연기해낸 이 사람이 있었다. 아직도 3막에서 이 사람이 테료쉬키나의 환영을 보며 허우적거리고 미쳐 웃고 청동기사상을 향해 손가락질하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당신은 좋은 무용수이고 동시에 좋은 배우예요.

 

 

 

백조의 호수.

사진은 natalya knyazeva

만일 내가 오데트인데 지그프리드가 저런 표정으로 달려와 '오데트야 미안해 오딜한테 깜박 속아버렸어...' 라고 하면 나는 용서해줄 것 같아... ㅠㅠ

 

잠자는 미녀. 테료쉬키나와 함께.

사진은 두 장 모두 karina edwards

내가 딱히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이 사람은 데지레 왕자 역에 맞춤이나 다름없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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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