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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올린 마린스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리뷰(http://tveye.tistory.com/3002)에 이어.

 

1. 루돌프 누레예프와 마고트 폰테인의 오리지널.

화질은 별로 좋지 않고 영화식으로 편집되어 살짝 아쉽긴 하지만.

 

 

 

2. 그리고 이건 내가 리뷰 올렸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가 춘 버전,

앞부분(마르그리트의 환영, 첫 만남, 교외 보금자리 약간) 발췌 클립. 아마 관객 중 누군가가 캠으로 찍은 듯...

 

확실히 캠 버전에는 한계가 있어서 원 무대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 좀 아쉬운 게, 이들의 무대는 뒤로 갈수록 근사했기 때문에 앞보다는 뒤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쨌든 링크 올려본다. 위의 오리지널과는 느낌이 꽤 다르다.

 

 

 

유튜브에는 세르게이 폴루닌이나 자하로바, 로파트키나, 타마라 로요 등 다른 무용수들이 춘 버전도 올라와있으니 비교해 보시면 좋을 듯. 감상자의 취향에 따라 잘 맞는 무용수들이 있을 것 같다.

 

 

3. 이번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공연 관련 마린스키 사이트에 올라왔던 화보들 몇 장. 슈클랴로프와 테료쉬키나만 발췌. 로파트키나와 아스케로프가 궁금하신 분들은 마린스키 페이스북이나 브 콘탁트 사이트 참조.

 

 

 

 

 

 

 

 

 

 

 

 

 

 

 

 

 

이 마지막 사진은 'neznaika' 라는 러시아 팬이 찍은 것. 교외 보금자리 사랑의 듀엣 장면.

 

** 내가 찍었던 커튼 콜 사진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2973, http://tveye.tistory.com/2966

 

 

** 다음 리뷰는 테료쉬키나 & 슈클랴로프 & 마트비옌코의 라 바야데르...

 

:
Posted by liontamer

 

(사진 출처는 모두 마린스키 사이트. 이 포스터에서는 왼편이 아스케로프와 로파트키나, 오른편이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

 

 

바쁘고 피곤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뒤늦게 올리는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리뷰. 별로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인 건 아니고, 그냥 감상 위주.

 

이 날 프로그램은 3개의 단막 발레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순서대로 미하일 포킨의 '쇼피니아나', 제롬 로빈스의 'in the night',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 프레드릭 애쉬튼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이었다. 전자 두 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마린스키에서 몇 번 봤고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은 무대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쇼피니아나와 인 더 나잇은 나중에 따로 짧은 메모 올려보고 오늘은 일단 마르그리트와 아르망만..

 

먼저 간단한 공연 정보는 다음과 같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음악 : 프란츠 리스트

안무 : 프레드릭 애쉬튼

무대 미술 및 의상 : 세실 비통

 

<주요 배역>

마르그리트 :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아르망 :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아르망의 아버지 : 안드레이 야코블레프

 

<시놉시스>

 

동백꽃 아가씨(마르그리트)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죽어가는 중이다. 마지막 순간 그녀는 자신의 비극적 삶에서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을 반추한다.

 

<극 순서>

프롤로그 - 만남 - 교외의 별장 - 모욕 - 마르그리트의 죽음

 

 

..

 

1. 누레예프와 폰테인, 오리지널, 애쉬튼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이라는 작품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마고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의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애쉬튼은 이들을 위해 이 작품을 안무했고 생전에는 다른 무용수들에게 역을 내주지 않았다. 망명한 젊은 누레예프가 마고트 폰테인에게 끼친 영향과 둘의 듀엣이란 워낙 유명한 이야기여서 따로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리지널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얘기 전에.. 나는 누레예프를 아주 좋아한다. 오래 전 맨 처음 발레를 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명의 인물이 있다면 그건 너무나 전설적인 니진스키와 누레예프였다. 그의 춤도, 그라는 인물도, 그의 치열했던 삶도 모두 내게 큰 감명을 주었다. 지금도 그에 대한 나의 경의는 변함이 없다. 니진스키도 마찬가지이지만, 루돌프 누레예프란 이름 없이 20세기부터 지금까지의 남성 발레 무용수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리지널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은 전에도 필름으로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옛날에 맨 처음 누레예프 화보집 샀을 때 사진으로 먼저 봤는데, 그때는 작품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둘의 화보가 너무 아름다워서 한참 넋을 빼앗겼던 기억이 난다.

 

그것과는 별개로, 필름으로 보면서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흠, 난 애쉬튼과는 어딘가 맞지 않아...

 

그러니까.. 폰테인은 너무나 우아하고 애처롭다. 누레예프의 성적 자력은 굉장하다. 그러나 애쉬튼의 안무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발레는 매우 드라마틱하고, 리스트 음악도 마찬가지이고, 두 무용수는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애쉬튼 안무는 내 취향보다는 너무 젠체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건 개인적 취향이긴 한데, 난 애쉬튼의 다른 작품들을 볼 때도 거의 항상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는 드라마틱하면서도 감정적이든 육체적이든 유연하게 따라가며 이입할 수 있는 안무를 좋아하는 편인데 애쉬튼은 내겐 좀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건 지난번에 본 실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연미복 재킷과 흰 타이츠를 차려입고 춤을 춘다는데, 심지어 여자에게 지폐를 흩뿌리는 분노의 연기를 보여준다는데 여기 애쉬튼의 안무고 취향이고 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분명 타임머신을 타고 60년대로 가서 누레예프와 폰테인의 이 무대를 봤다면 그때도 애쉬튼이고 안무고 간에 누레예프의 춤을 보느라 넋놓고 있었겠지. 무용수가 그만한 자력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재능이자 축복이다.

 

 

2. 마린스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전체 리뷰

 

 

 

 

마린스키에 공연을 보러 갔다. 그간 내가 여러 가지 일로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을 가엾이 여긴 료샤가 나를 위해 앞자리 표를 끊어주었다. 앞에서 세번째 줄 가운데 자리로 꽤 좋은 자리였지만, 역시나 앞자리 발샤야 갈라바(큰 머리)로 괴로워하다가 In the night 부터는 비장의 필살기 책 깔고 앉기를 다시 시전.. 그리하여 그나마 덜 가리고 봤다.

 

초연이었고(비록 로파트키나와 예르마코프가 '13년에 이미 추긴 했지만), 첫 날은 울리야나 로파트키나와 티무르 아스케로프, 둘째 날이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였다. 물론 나도 로파트키나가 추는 걸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르망을 슈클랴로프가 춘다는데.. 당연히 그게 우선(ㅜ.ㅜ)  게다가 난 티무르 아스케로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중에 관객들 평을 보니 의외로 둘째 날이 더 좋았다는 얘기가 훨씬 많았다. 훨씬 절절하고 이입이 잘됐다는 평이었다. 첫날 걸 안봐서 모르겠지만 나도 동의한다.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는 워낙 호흡을 많이 맞춰본데다 드라마틱한 연기력이 좋기 때문에 감정선이 살아 있었다.

 

발레의 내용이야 익히 잘 알려진 소 뒤마의 춘희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여타의 각색 버전들과 다른 것은 길이가 30분 이내로 매우 짧고 주요 사건들만 스피디하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무대 디자인이나 의상 등은 오리지널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실비아와 마찬가지로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아르망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눈호강은 실컷 하겠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의외로 애쉬튼 안무를 그리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몰입해서 보았다. 물론 영상과 무대의 차이도 있고, 두 무용수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해서 마치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허구가 아니라 실재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이라면 이미 그들의 춤이나 테크닉, 다른 디테일들에 대한 사항들은 뒤로 밀려난다. 허구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무대가 더 이상 '연기'나 '공연'으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진짜 현실처럼 관객을 사로잡는 순간 그 무대는 '진짜'가 된다. 그만큼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의 감정선은 강렬하게 살아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무척 몰입해서 봤다. 사실 맨 처음 무도회장 장면에서 슈클랴로프 아르망이 파란 연미복을 입고 등장해 붉은 드레스의 테료쉬키나 마르그리트와 춤추기 시작할때는 나도 모르게 누레예프와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뒤로 갈수록 둘의 눈빛과 움직임, 서로를 향한 갈망과 고통, 슬픔이 절절해지면서 그런 생각은 멀리 달아났다.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고 아르망이 마르그리트를 거칠게 붙잡아 돌려세우고 목걸이를 잡아채고 지폐 뿌리는 장면에서는 관객들 모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몰입했다. 종반에 마르그리트의 숨이 끊어지고 아르망이 슬픔에 젖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은 열띤 갈채와 브라보를 보냈다. 같은 애쉬튼 작품이었고 초연이었던 실비아와 비교해보면 두세 배는 더 뜨거웠다. 이쪽 관객들도 감정적으로 이입되는 드라마틱한 비극에 더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커튼 콜도 수 차례 계속되었고 불도 켜지고 다들 나가는 가운데에도 열혈 팬들은 끝까지 남아 끈질기게 박수를 쳤다. 나도 나가려다 반응이 재미있어 남아 있었는데 정말 둘이 다시 나와서 무척 좋았다 :)

 

내 옆에 있던 중년 아주머니는 나에게 '박수쳐요, 계속 박수쳐~" 하고 부추겼는데 너무 몰입하고 흥겨워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무대와 무용수들에게 그렇게 사로잡혀 행복한 열기를 발산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좋았다. 이날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 팬들이 많이 왔는데 2~3층에 포진한 채 계속해서 브라보~ , 벨리꼬레쁘노~(위대하고 근사하다는 뜻의 노어)를 우렁차게 연발. (이 분들은 라 바야데르 때도 오심)

 

전반적으로 무척 몰입해서 봤다.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가 추는 버전이라면 다시 볼 의향이 있을 정도로. (실비아는 그렇지 않았다!)

 

리스트의 음악도 그렇고 사실 이 작품의 안무는 꽤 허세 넘치고 작위적이란 느낌이 좀 든다. 아마 내가 누레예프가 추는 오리지널 생각을 해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애쉬튼이 누레예프에게 준 솔로는 특히 그런 느낌이다. 누레예프란 무용수의 카리스마와 성적 자력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의 아르망은 상당히 수탉 같고 공작새 같은 인물이었다.(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누레예프란 무용수에겐 이런 특질이 있다. 그만큼 화려하고 도도하고 오만하고 자력 넘친다는 얘기다) 그런데 누레예프의 이런 특질과 애쉬튼의 젠체하는 안무, 리스트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내겐 좀 'over the top'이란 느낌을 주곤 했다. 폰테인의 마르그리트는 참으로 애처롭고 청순하긴 한데 또 너무 청순하다는 느낌이었고. 아마 그래서 내가 오리지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나보다.

 

마린스키 버전은 사실 '진짜' 애쉬튼 팬들이라면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전에 실비아 때도 그런 얘기가 좀 있긴 했지만, 애쉬튼을 제대로 구현했다기보다는 꽤 러시아적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선도 그렇고 둘을 해석하는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도 그랬다. 물론 러시아적인 작품들도 over the top인 경우가 무지 많다. 그런데 난 이쪽의 과잉은 또 취향에 맞는 것 같다.

 

 

3.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마르그리트

 

 

슈클랴로프 얘긴 아래 따로 하고.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에 대해 잠깐.

 

테료쉬키나는 좋은 무용수이다. 테크닉과 연기 양쪽 모두 더할 나위 없다. 물론 이 사람에게도 특질은 있다. 외모도 그렇고 춤추는 스타일도 여리여리하고 청순하기보다는 강렬한 쪽이다. (오데트보다는 오딜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캐릭터가 지닌 속성보다도 훨씬 세 보이거나 강력해보여서 몰입이 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사람과 슈클랴로프의 듀엣은 거의 언제나 좋은 편이지만, 그래도 바로 이런 속성이 슈클랴로프의 소년다운 속성과 만나면서 둘이 가끔 '기 센 누나와 연하의 온순한 애인' 느낌을 자아낼 때가 있다. (그래서 이 둘의 조바이다와 황금노예 페어는 좀 내 취향과 어긋났다)

 

마르그리트 역의 테료쉬키나는 무척 좋았다. 물론 그녀의 마르그리트는 폰테인처럼 툭 건드리면 눈물이 똑똑 떨어질 것처럼 청순하고 연약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마르그리트가 아주 강단있고 전투적인 타입도 아니었다. 테료쉬키나의 마르그리트는 그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고 고통받은 여인이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온몸을 던져 아르망의 아버지에게 애원하고 사랑하는 아르망을 향해 매달리는 그녀의 연기는 한없이 애처롭다기보다는 무척 고통스러웠다. 처절하게 울부짖고 몸부림치고 마침내 죽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너무 슬퍼서 나도 모르게 '죽지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에게 그런 간절한 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건 성공한 무대인 것이다.

 

며칠 후 라 바야데르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테료쉬키나는 생각보다 더 좋은 무용수구나.. 적어도 니키야 역에는 아주 잘 어울리는 무용수였다.

 

 

4.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아르망

 

이 부분은 팬으로서의 사심이 넘치는 애기들이라.. 좀 오글거려도 그러려니 해주시길.

 

슈클랴로프의 팬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무대였다. 그 이유는..

 

1. 미모의 절정 :)

2. 목걸이 잡아채고 지폐 뿌리는 슈클랴로프 (!!)

3. 이 사람의 강점인 드라마틱한 연인 배역!

 

이 사람이 깨끗한 포즈와 훌륭한 도약, 탁월한 연기력에 비해 몇 가지 테크닉이나 파트너링 부분에서 결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테료쉬키나와는 호흡이 잘 맞아서 그런지 이 무대에서는 별로 그런 면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슈클랴로프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무대에서 뿜어내는 자력이다. 물론 그건 (아쉽게도) 루돌프 누레예프 같은 성적 자력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로잡는 뭔가는 분명 갖고 있다. 앞선 쇼피니아나와 in the night 무대에서는 남자 무용수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물론 조명이나 하이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작품들이 아니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아우라가 있다. 이 사람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눈에 확 띄는 타입이다. 그게 또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 덕을 보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 요즘 마린스키 남자 무용수치고는 키도 크지 않고 따라서 체격도 당당하지 않은데다 비율도 완벽하지 않은 편이라 그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는 건 재능이다. 

 

세실 비통이 디자인했던 아르망의 의상이 무척 잘 어울렸다. 파란 프록코트, 검정 프록코트, 그리고 흰색 루바슈카 셔츠와 타이츠 모두가 이 사람을 위한 듯 딱 들어맞았다.

 

슈클랴로프의 아르망은 누레예프의 공작새 같고 살짝 이기적이면서도 섹시한 아르망과는 달랐다. 이게 취향에 따라 부정적 평을 받을수도 있는 부분인데, 이 사람의 아르망은 좀 로미오 같았다. (어떤 관객은 폴루닌의 아르망과 비교하면서 너무 귀엽고 철없는 왕자님 같은 아르망이라고 했었다) 원체 외모부터 시작해 소년다운 특질이 있는 무용수라서 드라마틱한 연인에는 매우 잘 어울리지만 어딘가 청순한 구석이 있다. 특히 흰색 루바슈카와 타이츠 차림으로 교외 보금자리에서 마르그리트와 춤출땐 더 로미오 같았다. (그래도 소파에 누워 마르그리트와 키스할 때는 너무 근사해서 여성 관객들의 혼을 뺏음)

 

절정부의 무도회장에서 돈 뿌리는 씬인데. 이때 검은 재킷으로 갈아입은데다 입술을 붉게 칠하고 나타났다. 그 효과란 대단한 것이어서 테료쉬키나도 안 보이고 이 사람의 창백한 미모만 광채를 발함(분명 경고했음. 내가 오글거릴 거라고 했잖아요 ㅠㅠ) 게다가, 이 사람이 이렇게 확 타올라서 부르르 떨고 여자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이며 그녀를 거칠게 잡아끌고 밀어붙이고 목걸이를 휙 잡아채 내던지고 지폐를 내던지는 모습을 또 어디서 보겠나... 거의 언제나 이 사람은 완벽한 왕자님이나 장난스런 바보 이반, 아니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연인인데..

 

슈클랴로프의 춤은 뒤로 갈수록 좋았다. 아무래도 앞부분에서는 내가 아직 누레예프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사람이 해석한 아르망의 움직임은 오리지널의 그 분절적이고 허세 넘치고 공작새 같은 움직임과는 좀 달랐다. 좀 더 부드러웠고 어떤 측면에서는 살짝 여성적이었다. 어쩌면 그의 소년다운 매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초반의 아르망과 교외 보금자리에서의 아르망은 사춘기 소년 느낌이 났고(그러니까 조금 로미오..) '남자'라는 느낌은 덜했다. 그러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이라는 제목부터 그렇듯, 이 작품은 무엇보다 남녀 주인공의 듀엣이 중요하다. 그리고 테료쉬키나와의 듀엣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종반의 비극적인 2인무는 정말 눈물을 자아냈다.

 

내가 이 무대에서 가장 감명받았던 순간은 바로 마지막, 마르그리트가 숨이 끊어진 직후였다. 연인이 세상을 떠나자 망연자실한 채 무릎을 꿇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슈클랴로프의 연기가 훌륭했다.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표정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생생하게 볼 수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이 사람이 두 손을 미세하게 계속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섬세하고 훌륭한 연기였다. 둘의 감정선도 그렇고 마지막에 슈클랴로프가 보여준 슬픔은 너무나 진실하고 애절했다. 그런 진정성 있는 무대를 외면할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브라보가 나왔겠지.

 

 

 

 

.. 그리고 커튼 콜.

 

앞자리에 앉아있기도 했고.. 나중에 커튼 앞으로 테료쉬키나랑 나왔을땐 역시나 오케스트라 핏 앞으로 가서 그의 미모를 열심히 구경 :) 여기 미모의 결정체가 있구나.

 

변명하자면 나만 그런 거 아니었다.. 앞에 매달려 그의 미모에 넋나간 팬들 꽤 있었다. 아저씨 팬들도 있었다. 나중에 라 바야데르 리뷰 때 얘기하겠지만 어떤 아저씨는 대놓고 그의 미모를 칭찬했다 ㅋㅋ

 

 

5. 사족 : 초심자의 놀라운 이입

 

의외로 같이 보러 갔던 발레 초심자이자 예쁜 남자 무용수와 타이츠 혐오자(http://tveye.tistory.com/2979)인 내 친구 료샤는 엄청 감명을 받았다. 이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뜨겁고 뜨거운 러시아인의 심장을 가진 남자!

 

그는 뒤마의 춘희를 읽어본 적도 없고 라 트라비아타도 카멜리아 레이디도 이것도 저것도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라 바야데르 보며 졸았던 얘기도 전에 쓴 적 있듯이.. 발레는 진짜 거의 모른다.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한 리브레토만 알려줬다. 그리고는 '졸리면 그냥 자라'고 했다. (이미 앞의 쇼피니아나와 in the night 때 푹 주무심)

 

놀랍게도 그는 한순간도 졸지 않았다. 엄청나게 이입해서 봤다. 슈클랴로프의 아르망에 이입했다가 심지어 테료쉬키나의 마르그리트에게도 잠깐 이입했다. 처음엔 좀 정신없어 하다가(암전과 무대 배경 전환이 스피디하게 이루어지니 초심자는 첨에 좀 우왕좌왕할 수도 있다), 무도회장에서 아르망이 나타나 여자에게 반하고 춤추는 장면부터 시작해 마르그리트가 던지고 나간 꽃을 아르망이 아무에게도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서 집어드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혹하고 말았다.

 

교외 보금자리로 배경 전환되면서 암전됐을 때 료샤가 속삭이며 물어봤다.

 

" 여자 기침하는 거 많이 아픈 거야? 진짜 죽어? "

" 응, 죽을 거야. 원작이 그래. "

" 아, 안되는데. 안 죽었으면 좋겠다. "

 

이것은 괄목할만한 발전!!! 뿌듯한 마음과 함께 계속 봤다. 이때부터 난 무대에 폭 빠져서 얘 상대를 거의 해주지 않았는데 얘도 나름대로 열심히 보고 있었다. 무도회장에서 슈클랴로프 아르망이 나타나 마르그리트를 모욕하고 목걸이 잡아챌 때는 너무 놀라서 숨을 소리내 들이쉬더니만 지폐 뿌리는 장면에서는 '안돼, 그러면 안되지 ㅠㅠ' 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아, 보람 있다!!! 이건 진짜 성공한 무대다!! 얘를 이렇게 집중하고 이입하게 만들다니! 고마워요 빅토리야, 블라지미르!

 

마지막에 테료쉬키나 마르그리트가 죽고 슈클랴로프 아르망이 슬픔을 토로하자 이 친구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서 투덜댔다. '아, 진짜 죽어버렸어 ㅠㅠ 남자는 어떻게 해...'

 

.. 이때는 너무 이입해서 봤는지 슈클랴로프의 순백색 타이츠에 대해서도 아무 말 안 했다 :) 내가 오케스트라 핏 앞으로 가서 그의 미모에 집중하고 있을 때도 쿠사리 안 줬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힘!!!!

 

 

...

 

 

어쩌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졌네...

동영상 클립이랑 오리지널 영상 링크는 내일.. 그리고 마린스키 측 화보들도 내일..

 

** 추가 **

 

슈클랴로프&테료쉬키나의 공연 클립 + 누레예프와 폰테인 오리지널 영상, 화보 : http://tveye.tistory.com/3006

 

** 내가 찍었던 커튼 콜 사진들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2973, http://tveye.tistory.com/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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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