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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근 5년 전에 개인 홈피에 적었던 글쓰기 관련 노트이다. 당시 나는 몸이 좋지 않아 잠깐 휴직을 하고 두어달 동안 프라하에서 지내고 있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반년 쯤 지난 후였다. 나는 프라하에 가기 전에 워밍업으로 미샤에 대한 단편 하나와 장편 하나를 썼다. 그리고 원래 쓰려고 했던 가브릴로프 본편을 시작하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아 한달 가까이 끙끙대다가 프리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글을 시작했다. 그게 가끔 이 폴더에 발췌해 올렸던 수용소 이야기이다. 총 3부로 되어 있는데 1~2부는 프라하에서 썼고 3부는 한국에 돌아와서 썼다. 프라하에서는 당시 빌려서 머물던 아파트의 창가 책상과 카페 에벨에서 썼다. 돌아와서는 화정 집에서 썼다. 



아래 메모는 그 글을 쓰기 시작한 직후 남긴 것이다. 긴스버그와 와일드의 시를 각 장마다 에피그라프로 썼는데 그 파트들을 다 고른 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적었던 기억이 난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홈피 대문 문구를 바꾸었다. 꽤 오래 걸어두었던 장 주네의 문구 대신 앨런 긴스버그의 Howl 1장 후반부의 3행을 가져왔다. 정렬 때문에 조금 손을 댔지만 원래는 행이 이렇게 배열된다.
 
 


ah, Carl, while you are not safe I am not safe, and
     now you're really in the total animal soup of
     time

 



마야코프스키와 마찬가지로 긴스버그의 시에서도 행 배열이 중요하다. 그래서 전에 이 시 3장 번역할 때도 나름대로 배열에 맞게 해봤었는데 역시 시를 번역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Howl은 3장을 가장 좋아하지만, 1장도 꽤 좋다. 특히 북받치는 감정으로 내달리다가 저 후반부의 칼 솔로몬을 향한 부드러운 독백 3행에 맞닥뜨리게 되면 어쩐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이 구절로 대문을 바꾼 이유는 어제부터 새로 시작한 글의 마지막 파트에 삽입될 에피그라프이기 때문이다. 전체 글의 에피그라프는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 중 다음 연이다.




It is sweet to dance to violins
When Love and Life are fair:
To dance to flutes, to dance to lutes
Is delicate and rare:
But it is not sweet with nimble feet
To dance upon the air!


.. Oscar Wilde, The Ballade of Reading Gaol ..





 
인용구들을 보면 알겠지만 꽤 슬프고 무겁다. 그 이유는 새로 시작한 글이 원래 쓰고자 했던 가브릴로프 장편의 프리퀄이며(파트 0 정도 되는데, 본편에 삽입하기에는 내용이 무겁고 분위기가 좀 달라서 독립적인 단편이 된다) 수용소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는 'Frost' 직후를 다룬다. 즉 무단이탈과 반체제 행위 때문에 파리에서 레닌그라드로 소환된 미샤가 1981년 7월~ 8월 동안 겪는 일을 다루는데 실지로 미샤는 총 3장으로 구성될 이 단편에서 별로 말이 없다. 행동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각 파트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기술된다. (그렇다고 전부 1인칭으로 서술되지는 않는다. 1인칭은 아마도 3장에서만 등장할 것이다)
 



원래는 각 장마다 에피그라프를 따로 두려고 했다. 레딩 감옥의 발라드 중에는 가슴을 찌르는, 그리고 지금 쓰려는 글과 정서가 잘 맞는 연들이 몇개 있다. 그것들은 아래와 같다.
 



He does not sit with silent men
Who watch him night and day;
Who watch him when he tries to weep,
And when he tries to pray;
Who watch him lest himself should rob
The prison of its prey.

 
 
..
  



For strange it was to see him pass
With a step so light and gay,
And strange it was to see him look
So wistfully at the day,
And strange it was to think that he
Had such a debt to pay.

 



.. 원래는 순서대로 1장, 2장에 삽입하고 전체 에피그라프로 넣은 연을 3장에 삽입할 생각이었지만 Howl의 저 글귀가 더 어울려서 전체적으로 바꿨다. 



 
새 글에서 미샤는 춤을 추지 않는다. 이미 그가 몇달 전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기도 했고 그가 처해 있는 상황 상 춤을 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 에피그라프를 와일드의 저 구절들로 선택했듯 이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단편에서도 춤과 움직임이 갖는 이미지는 여전히 강렬하게 등장할 것이다.



 
근 한달 만에 다시 글을 시작해서 좋긴 한데, 등장인물을 괴롭힐 생각을 하니 마음이 그렇게 가볍지는 않다. 나이든 게 분명하다, 옛날에는 주인공을 괴롭히고 마구 고통을 가해도 별로 가책을 느끼지 않았는데.





(... 후기 : 그런데 저런 메모를 남기긴 했지만 하여튼 그 수용소 이야기에서 미샤를 실컷 괴롭히긴 했음^^;)



사진은 맨 위와 아래 둘다 이번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은 것. 메모와는 큰 상관은 없다만 느낌 닿는 대로 두 컷 갖다 붙임





:
Posted by liontamer
2018. 3. 24. 16:32

오스카 와일드 :) sketch fragments 2018. 3. 24. 16:32





요 며칠 틈틈이 와일드 작품들 읽으며 보내고 있음. 텔레니는 아껴가며 자기 전에 조금씩 읽고 있고, 전에 읽었던 작품들도 다시 읽는 중.


근데 내가 그린 건 와일드 하나도 안 닮았다 ㅋ 미안합니다 ㅠㅠ 헤어스타일만 같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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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니콜라이 야로쉔코, 죄수

생기넘치는 여학생 초상화 두점을 소개해드렸던 야로쉔코의 또다른 작품입니다. 느낌이 많이 다르지요?
과로와 스트레스와 쉼없는 야근 때문에 저 그림에 한없이 감정이입되고 있습니다 ㅠㅠ

이 그림을 보면 제가 무척 사랑하는 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장시 '레딩감옥의 발라드'가 생각납니다.
동성애 죄목으로 레딩감옥에 투옥되었던 와일드가 그곳을 배경으로 쓴 장시인데 이 시는 정말 너무나 아름답고 슬퍼서 가끔 가만히 몇 소절을 되뇌고 있으면 가슴을 후비는 것 같아요.

위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특히 1장의 이 소절이 생각나죠

I never saw a man who looked

With such a wistful eye

Upon that little tent of blue

Which prisoners call the sky,

And at every drifting cloud that went

With sails of silver by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1장과 마지막장에 되풀이되는 이 부분

Yet each man kills the thing he loves,

By each let this be heard,

Some do it with a bitter look,

Some with a flattering word,

The coward does it with a kiss,

The brave man with a sword!


Some kill their love when they are young,

And some when they are old;

Some strangle with the hands of Lust,

Some with the hands of Gold:

The kindest use a knife, because

The dead so soon grow cold.


Some love too little, some too long,

Some sell, and others buy;

Some do the deed with many tears,

And some without a sigh:

For each man kills the thing he loves,

Yet each man does not die.


시가 좀 길지만 정말 아름다운데, 분량 때문에 전부 올릴 수가 없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The Ballade of Reading Gaol, Oscar Wilde 로 구글링하시면 텍스트 전문을 찾아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옛날만큼 와일드에 빠져 있진 않지만, 그래도 전 여전히 그의 아름다운 글들을 좋아해요. 특히 이 레딩감옥의 발라드는 그 특유의 유미주의적인 작품들과는 조금 느낌이 달라요. 훨씬 절절하고 훨씬 더 사실적이면서도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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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