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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구상하는 글은 미샤가 등장하는 본편이나 외전 우주에 속해 있지 않으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약간은 연관되는 것 같기도 해서... 사진과 메모들 뒤지다가...

 

종종 발췌해 올렸던 본편 우주 장편(미샤의 친구이자 애인인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옴) 중반부에는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아주 인기많았던 제과점(..이자 지금도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사랑하는 옛날식 제과점) 세베르와 그곳에서 파는 케익에 대한 얘기를 두어번 썼다.

 

세베르랑 거기서 내가 좋아하던 까르또슈까(위의 저 초콜릿 경단 같은 디저트)에 대해 떠올리다가... 아래 부분을 발췌해본다. 세베르와 케익에 대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고... 미샤와 파트너 발레리나 지나이다의 티격태격 메모도 있고 미샤의 아파트 묘사도 있다. 그리고 미샤도 물론 등장한다.

 

미샤는 단 걸 안 먹지만... 그러나 그 역시 좋아하는 케익이 있긴 있었으니... ㅠㅠ

 

그리고 파트너이자 한 아파트 동거인인 지나이다와의 관계는 이러했으니...

 

소설 중반부. 배경은 1975년 말. 미샤는 스무살이고 키로프 수석무용수로 잘 나가고 있으며 지나이다와는 최고의 파트너쉽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알리나 소모바의 연습실 장면. 파트너들의 연습실 느낌이 좋아서 여기 올려본다. 사진은 alex gouliaev.

 

..

 

 

'세도바'는 지나이다의 성, 맨앞에 나오는 '크류코바'는 당시 키로프 최고의 발레리나로 신입이었던 미샤를 전격 자기 파트너로 발탁했던 인물이다(두딘스카야 같은 존재였음. 물론 내가 만들어낸 인물)

'코무날카'는 공동아파트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12월 하순부터 미샤는 한동안 극장 근처의 자기 아파트에 머물렀다. 크류코바의 부상으로 지나이다가 비엔나와 프라하, 바르샤바 투어에도 투입되었기 때문에 집이 비었고 호두까기 인형에 캐스팅되어 연습 때문에 바빴기 때문이다. 미샤는 그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역을 추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열심이었다.

 

 

그날은 공연이 없는 월요일이었다. 미샤가 아침에 극장에서 트로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침이라는 것과 전화를 했다는 것 둘 다 드문 일이었다. 그는 혹시 아파트에 자신의 노트와 파란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필름,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초기 단편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트로이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부엌 식탁과 책장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노트랑 케이스는 찾았고, 책은 없어. 너 그 책은 우리 집에 가져온 적 없었던 것 같은데? ”

 

“ 너 혹시 ‘백야’ 있어? ”

 

“ 아, 그건 있어. 극장으로 가져다줄까? ”

 

“ 아니, 괜찮아. 금방 집에 들어갈 거라서. 저녁에 들를게. ”

 

급하게 필요한 거라면 집으로 갖다 줄게. 어차피 강의 때문에 나가야 해. ”

 

“ 아, 그럼 부탁해. 고마워. ”

 

 

트로이는 책장 구석에서 ‘백야’가 수록되어 있는 19세기 단편 모음집을 찾아냈다. 오래된 책이라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뜬금없이 왜 그 소설을 찾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샤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해서 학창 시절에도 종종 트로이와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지만 그 대상은 주로 유형 이후 발표한 작품들이었다. 백야는 그의 취향에 비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그는 가방에 책과 필름 케이스, 그리고 표지가 반쯤 접힌 노트를 챙겼다. 미샤는 항상 노트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리허설 중인 춤의 동선을 짜고 리브레토를 재구성하는가 하면 오선도 생략한 채 음표와 기호를 휘갈겨 놓았다. 소설이나 시의 구절 몇 개를 불쑥 적어 놓을 때도 있었고 가끔은 오로지 숫자들만 써내려갔다. 트로이의 눈에 그 노트들은 2차 대전 암호 해독서나 이사악의 물리학 강의 메모보다도 더 복잡하게 보였다.

 

 

가방에 집어넣기 전에 노트를 넘겨보니 춤과 관련된 예의 그 수수께끼 같은 수많은 메모들이 빽빽했지만 중간 중간에 녹색 볼펜으로 휘갈긴 다른 사람의 글씨도 등장했다. 필체와 색깔이 계속해서 같은 것을 보니 동일인이었다. 내용을 보니 파트너인 지나이다가 분명했다. 그녀는 미샤의 메모에 동그라미를 쳐놓기도 하고 커다랗게 가위표를 슥슥 그어놓기도 했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돼,네가 계속 포앙트를 고집하면 아사예프가 혈압으로 쓰러질 거야,그 잘난 앙트르샤 횟수 좀 줄이시지! 따위의 메모가 힘찬 필체로 따라나왔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메모도 등장했다.

 

 

 아까 누가 세베르에서 모코를 한판 사다줬어. 빨리 끝내고 먹자 라는 어쩐지 간절하게 느껴지는 녹색 글씨 아래 평소와는 달리 인쇄체로 또박또박 적어 놓은한조각도 아니고 한판! 몸매 관리 안하시나, 여왕님? 이 이어졌다. 미샤의 반짝거리는 까만 눈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녹색 글씨가 다시 이어졌다. 한판 다 해치우고 10킬로 쪄서 누구 허리를 분질러버릴 테야!

 

메모의 마지막은 다 먹지 말고 나도 한조각만 줘라는 하소연으로 끝났다.

 

 

 

파트너들의 대화에 매료된 트로이는 페이지를 더 넘겨보았다. 평소에 별로 장난기도 없고 애교는 더욱 없는 미샤가 지나이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어쩌면 10여 년 동안 쌓여온 친밀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생리 첫날이니까 알아서 잘해.

 

내가 피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다른데 피나게 해주겠어!

 

 

 

 

제발 넥타이 매고 와, 파리에 가고 싶으면 내 말 들어 !

 

타이 잃어버렸어

 

나가서 사와, 정 안되면 레냐 거 빌려.

 

정장 싫어

 

.. 들어.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주 짧게 휘갈겨 쓴 메모가 있었다.

 

 

일린 오는 걸로 결정. 기뻐?

 

아주!

 

 

 

또 다시 그 이름이 있었다. 일린. 짧고 명료하게 울리는 이름.

 

 

 

그는 강의 자료도 함께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극장 거리까지는 가까웠으므로 걸어갈까 했지만 다시 눈보라가 치고 있었으므로 버스를 탔다.

 

 

잠시 그는 네프스키로 나가 세베르에서 모코를 한조각 살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미샤는 케익이나 초콜릿을 기피하는 편이었지만 트로이는 라리사의 집에 가서야 그가 단 것을 정말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제어하는 것뿐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모코는 별로 달지도 않았다, 버터크림과 견과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케익 한조각이 아니라 한판을 그 자리에서 다 해치워도 전혀 문제가 없을 몸을 가진 애가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운다는 게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릴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여섯 살 이후로는 썰매도 타러 간 적이 없고 스케이트나 스키는 더더욱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축구를 해보기는커녕 제니트와 스파르탁조차 구분 못할 것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해진 스트레칭을 마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음식이 싱겁더라도 결코 소금을 더 치지 않았다. 그처럼 자기 제어에 뛰어난 사람이 어째서 규율이 관련된 일이나 애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미샤 야스민을 샅샅이 이해해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   *   *

 

 

 

 

미샤는 아직 극장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파트 문은 잠겨 있었지만 트로이는 예비 열쇠를 한 벌 가지고 있었다. 미샤가 어머니도 아니고 자신에게 그 열쇠를 건네줬다는 데 트로이는 남몰래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미샤와 지나이다의 아파트는 19세기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완전히 최신식으로 수리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넓은 집이라면 적어도 서너 가구가 들어와 사는 코무날카여야 정상이었다. 다닐로프가 주택관리국에 수완을 발휘한 것인지, 지나이다의 막강한 부모가 실력을 행사한 것인지, 아니면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배후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원래 스타들에게는 그 정도 대접을 해주는 건지도 몰랐다. 널찍한 거실 벽에는 바와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고 나무 마루가 깔려 있었다. 지나이다가 가져온 소형 피아노도 한 대 있었다.

 

 

잠시 트로이는 몇 년 전 타냐의 생일에 미샤가 늦게 도착한 벌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아마 72년이었던 것 같았다, 미샤가 학교에 다닐 때였으니까. 그때 그는 지겨운 생일 축하곡 대신 타냐가 좋아하는 데이빗 보위의 불경스러운 노래를 불렀는데 기억은 흐릿하지만 ‘The man who sold the world’ 였던 것 같았다. 기타 대신 피아노를 치면서 불렀는데 그때 트로이는 그 애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노래를 하는 것도 처음 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는지 피아노를 꽤 잘 쳤다. 노래는 말투와 똑같았다, 나직하고 또렷하고 시를 읊는 것처럼 근사하게 불렀다. 타냐는 좋아서 반쯤 울었고 다른 친구들은 반주자를 찾아낸 게 기뻐서 족히 한 시간 가까이 미샤에게 각종 로큰롤 연주를 시켰다. 그때 트로이는 그 애를 향한 은밀한 갈망으로 몸을 태우고 있었고 한동안 보위 노래만 들으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타냐의 집에 들르면 피아노 쪽은 쳐다볼 수도 없었다.

 

 

미샤와 지나이다는 양쪽 끝에 있는 침실을 쓰고 있었다. 호화스런 아파트답게 각각 욕실이 딸려 있었다. 두 침실 사이에도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손님용 침실로 쓸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지나이다의 의상과 각종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미샤는 현관에서 제일 가까운 쪽에 있는 방을 그런 용도로 썼다. 그는 기사도를 발휘해 지나이다에게 남향의 넓은 방들을 내주고 아파트 내부도 그녀의 강렬하고 화려한 취향대로 꾸미도록 내버려두었다. 하긴 집에 제대로 머무는 적이 없으니 신사답게 행동한 거라기보다는 그저 귀찮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천정이 매우 높은 집이었는데 나선계단을 따라 조그맣게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고 평소에는 비워두는 손님용 침실이 하나 있었다.

 

 

부엌은 넓고 밝았으며 거실 한쪽에는 조그만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거실의 바를 제외하고는 둘이 유일하게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었는데 일종의 서재였다. 세 개의 책장에 발레와 음악, 미술, 극장 관련 서적들과 레코드, 테이프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가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는 장식 술이 달린 꽃무늬 숄이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고 나머지 의자에는 낯익은 노트 두 권이 놓여 있었다. 지나이다와 미샤가 그 조그만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자 이해할 수 없는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애 감정이나 성적 긴장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하긴 그는 지나이다의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므로 속단할 수도 없었다.

 

 

 

거실의 티 테이블 위에 노트와 필름 케이스, 책을 내려놓고 막 나가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미샤가 들어왔다. 극장에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현관에서 모자와 코트를 벗어 눈을 대충 털어냈다. 눈썹과 속눈썹, 입술 위에도 눈과 얼음이 붙어 반짝거렸다. 뺨과 턱에는 붉은색 얼룩이 있었다.

 

 

“ 목도리는 어쨌어? ”

 

“ 극장 나오는데 처음 보는 여자애들이 달려들어서 벗겨갔어. ”

 

“ 그나마 모자는 지켰네. ”

 

“ 머리 뜯길 뻔 했어. 단추는 몇 개 뜯겼어. ”

 

“ 얼굴에 묻은 건 뭐야, 립스틱이야? ”

 

 

미샤가 현관에 붙어 있는 거울을 힐끗 보더니 짜증도 내지 않고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 다닐로프가 차 줬을 때 그냥 받지 그랬어. 얼굴 다 알려졌는데 그렇게 걸어 다니다간 팬들한테 진짜로 봉변당한다. ”

 

“ 그래, 차를 사긴 해야겠다. ”

 

 

순순히 동조하면서 미샤가 하품을 했다. 욕실 쪽으로 걸어가면서 스웨터를 벗고 나머지 옷들을 하나하나 벗어 떨어뜨렸다. 왼쪽 어깨와 등 사이에 달걀만한 멍이 들어 있었다. 색깔을 보니 새것이었다.

 

 

“ 등은 왜 그래? ”

 

“ 아까 스텝이 꼬여서 자빠졌어. ”

 

“ 호두까기가 그렇게 어려워? ”

 

“ 아니, 그거 말고. 나 혼자 뭐 좀 연습하다가. ”

 

“ 너도 그렇게 넘어지는구나. ”

 

연습할 땐 많이 넘어져. 그래도 지나를 떨어뜨린 적은 없어서 다행이야. ”

 

“ 지나 말고 다른 여자들은 떨어뜨린 적 있어? ”

 

음, 그때 이바누슈카 리허설 하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옥사나를 제대로 놓친 적이 있어.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었지. 그래서 옥사나가 날 별로 안 좋아해. ”

 

의외네, 그 여잔 지나보다 더 조그맣잖아. 난 폴리나일 거라고 생각했어. ”

 

“ 폴리나는 테크닉이 좋다니까 왜 아무도 안 믿는지 모르겠네. 키가 180센티인 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닌데. ”

 

“ 어쨌든 어깨 다쳤잖아. ”

 

“ 폴리나 때문이 아냐, 연습할 때 내가 균형을 잃어서 그랬어. ”

 

 

어깨를 한쪽으로 돌리면서 미샤가 욕실로 들어가려다 트로이 쪽을 돌아보았다.

 

 

“ 강의 언제야? ”

 

“ 아, 지금 가야 해. 티 테이블 위에 책이랑 다 놔뒀어. ”

 

“ 고마워. ”

 

“ 넌? 다시 극장에 갈 거야? ”

 

“ 아니, 연구해볼 게 있어. 좀 자고 나서. ”

 

“ 그래, 눈 좀 붙여라. 며칠 못 잔 얼굴이네. ”

 

“ 얼굴은 그 아가씨들이 쥐어뜯어서 그런 거야. ”

 

“ 그래도 다 네 관객들이니 받아들여. 네 무대를 좋아하잖아. ”

 

“ 글쎄, 그건 그냥 가수나 배우 사진을 모으는 것 같은 거야. 대부분의 관객들은 극장에 꿈을 꾸러 와. 환각을 보러 오는 거지. 원하는 걸 주지 않으면 돌변할 거야. ”

 

“ 설마 무대에 불이라도 지르겠냐. ”

 

“ 괜찮은 관객들이라면 배우를 찢어죽이겠지. ”

 

“ 그런 말 하지 마. 관객들 무시하지 말고. 어쨌든 널 보러 오는 거니까. ”

 

“ 무시하지 않아. 내가 그랬잖아, ‘괜찮은’ 관객들이라고. ”

 

 

이제 옆으로 번져버린 붉은 얼룩과 눈 아래 깊게 패인 그림자 너머 아직도 그 황폐하고 어두운 표정이 남아 있었다. 잠시 그는 강의를 빼먹고 이곳에 남아 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미샤가 너무 피곤해 보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도록 내버려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공연 목요일이지? 타냐랑 보러 갈게. ”

 

“ 응, 그때 봐. ”

 

 

미샤가 욕실로 들어간 후 트로이는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옷가지들과 가방을 주워서 소파에 올려놓았다. 지퍼가 열린 가방에서 리본 달린 곰 인형과 캔디 상자들과 향수를 뿌린 예쁜 편지 봉투 몇 개가 쏟아졌다. 봉투에 들어 있지 않은 카드도 한 장 있었는데 호기심에 펼쳐보니 피처럼 새빨간 잉크로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세도바와 당장 헤어져요!

안 그러면 그년한테 황산을 끼얹을 거야!

 

 

 

그 끔찍한 카드를 내려놓은 후 그는 코트를 입었다. 왜 그 메시지를 읽었는데도 지나이다가 아니라 미샤가 걱정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지나이다는 그런 협박을 두려워하기에는 너무나 당당한 여왕님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니콜카 이후 그는 미샤가 어디선가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무서운 일이 생긴다면 정부들 중 하나의 짓이겠지만 카드를 보고 나니 극성팬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파트너들의 연습실 사진 두 장 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신데렐라 리허설.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도로테 질베르의 라 바야데르 리허설 사진.

 

 

 

**

 

 

미샤가 트로이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가져다달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 챕터에서 볼쇼이에서 온 안무가 일린이 미샤를 위해 이 작품을 안무해주기 때문이다. 일린에 대한 이야기는 이 writing 폴더에서 여러번 발췌했으므로 생략.

 

 

**

 

 

마지막 부분에서 인용되는 극성팬의 카드 협박에 대한 얘기는, 사실 세르게이 필린 황산투척 사건보다 이전에 쓴 것이다. 광팬들이 많은 미샤의 특성상 저런 협박편지를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볼쇼이에서 필린 황산 테러 사건이 일어나서 깜짝 놀랐다. 심지어 황산까지 똑같다. 역시 저 동네 무섭구나!!!

 

 

**

 

 

제니트는 페테르부르크 축구팀, 스파르탁은 모스크바 축구팀이다.

 

 

**

 

트로이가 '라리사의 집'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은 전에 발췌한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라리사는 트로이의 아버지가 재혼한 리가의 여인이다. 트로이와 미샤는 그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는다.

그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156

 

 

**

 

 

지나이다와 미샤가 주고받은 메모와 트로이의 상념 속에 등장하는 세베르와 모코에 대한 메모는 아래... 몇년 전 따로 글에 등장하는 장소나 주요 소재에 대해 정리할때 개인용 블로그에 썼던 메모이다.

 

 

 

<'세베르'와 '모코'에 대한 메모 : 2013년 9월>

 

 

 

 

 

 

 

러시아어로 세베르(СЕВЕР), 즉 북쪽이라는 뜻의 유명한 디저트 카페이다. 올해 110년이 되었으니 소련 전환 이전에 생긴 곳인데 지금도 유명하다.
 

네프스키 대로 한복판의 어느 건물 반지하에 위치한 세베르는 딱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디저트들과 빵, 케익, 쿠키가 가득한 곳이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널찍하고 쾌적한 카페로 바뀌었지만 내 기억 속 90년대말 세베르는 어두컴컴한 조명과 불친절한 점원들, 높은 원탁을 둘러싸고 선 채 종이접시에 얹힌 조각 케익(삐로즈노예)이나 파이, 까르또슈까를 먹고 종이컵에 담긴 싸구려 티백 홍차나 진한 커피에 설탕을 부어먹는 러시아인들로 득실거리던 아주 소련답고 러시아다운 카페였다.
 


 

지금은 페테르부르크에도 워낙 세련되고 현대적인 카페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리모델링을 했어도 세베르는 좀 아날로그 풍이고 '옛날 카페'란 느낌이 난다. 파는 케익이나 과자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여전히 중년 부인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는다. 


 

나는 이 소설의 중반부에서 세베르를 한번 등장시켰다. 트로이가 할머니를 위해 까르또슈까를 사러 갔다가 카페 구석 원탁에 모여 차를 마시며 얘기 중이던 미샤와 그의 극장 동료들과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물론 트로이와 미샤는 레닌그라드 토박이였으므로 세베르는 아주 친숙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세베르에서 미샤는 트로이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그가 좋아하는 메도빅과 커피를 권해준다. 이곳에서 트로이는 그에게 아주 불편한 존재로 각인되는 볼쇼이 출신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을 소개받는다.

 

 

 

 

 

 

 

 

요즘은 이렇게 환하고 널찍한 카페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 훨씬 좁고 어두웠으며 의자도 없이 둥글고 높은 테이블들만 몇개 늘어서 있어서 사람들이 그걸 둘러싸고 와글거리며 케익과 차를 먹었다.

 



이 사진은 작년(2012년)에 내가 갔을 때. 까르또슈까랑 홍차 먹는 중. 이젠 종이접시도 종이컵도 아니다!

 

 

 

 



이것은 모코. 세베르에서 유명한 케익 중 하나. Mokko(모코)라는 케익으로 버터크림, 커피, 코냑, 초콜릿 등이 들어간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꽤 투박하고 촌스러운 옛날 아날로그 풍 케익인데 의외로 아주 맛있다. 90년대 페테르부르크에 살 때 가끔 조각케익으로 사먹었고 생일날에는 통 크게 조그만 케익을 한 판 사기도 했다.


 
이번에도 사와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더 이상 모코는 조각 케익으로는 팔지 않고 저렇게 한 판 단위로만 팔고 있었다 ㅠㅠ

 

소설에서 미샤와 지나이다는 둘 다 이 케익을 좋아하는데 단 것을 일단 먹고 보자 주의의 지나이다와 달리 미샤는 스파르타식으로 '단거 안먹어!' 하고 끝끝내 안 먹고 버티는 타입이다. (하지만 저 모코를 매우 먹고 싶어하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이 사진들은 지금 세베르에서 팔고 있는 케익들.


 
물론 티라미수 같은 '서구식', '요즘' 케익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련 시절부터 팔던 전통적 케익들이다. 모양도 그렇고 맛도 꽤나 소박하고 달콤한데 먹을수록 정감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버터크림이 주종을 이룬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딱 '옛날; '아날로그' 맛이 난다.

 

 

 

 

** 위의 메모에서 언급되는 세베르에서 트로이가 미샤의 친구들과 일린을 만나는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발췌해 보겠다 **

 

 

...

 

 

** 미샤가 타냐의 생일에 불렀던 데이빗 보위의 노래 'The man who sold the world’ 실제 노래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681

 

 

:
Posted by liontamer
2015. 9. 14. 21:03

이삭 성당이 보이는 창가에서 차 한 잔 russia2015. 9. 14. 21:03

 

 

이건 몇 년 전 사진이다. 2012년 9월.

페테르부르크.

앙글레테르 호텔 창가.

이때 앙글레테르 호텔에 처음 묵었는데 빨간색 쿠션과 나무 바닥, 그리고 이삭 성당이 보이는 창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무료 와이파이도 안 되고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삭 성당이 그대로 보이는 전망만큼은 정말 근사한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예세닌이 자살했던 곳이다. 지금이야 외국계 체인에서 인수해서 싹 리노베이션했지만...

 

찻잔이 눈에 익은 것 같다고 하신다면.. 맞습니다. 집에서 종종 차 마실 때 쓰는 로모노소프 찻잔이다. 이때 네프스키 대로의 가게에 가서 샀던 것이다. 호텔 근처의 맛있는 빵집 부셰에서 사온 삐로즈노예(조각케익)인 '률류 끌류끄벤노예'라는 나무열매 무스 케익 곁들여 차 우려마신다고 이때 처음 개봉... 그래서 받침접시엔 케익이 올라갔기에 찻잔은 방에 있던 종이 컵받침으로 받쳐놓음...

 

 

 

그래서 이삭 성당이 보이는 창가에서 차를 마셨었다.

 

 

 

이렇게... 왼편으로 보이는 것이 이삭 성당이다.

 

..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구나 ㅠㅠ

 

** 태그의 앙글레테르 호텔을 클릭하면 이 호텔 방과 창문 등에 대한 이전 포스팅과 사진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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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나는 별로 아기자기한 편도 아니고 상세한 정보 제공 블로그를 쓰는 성격도 아니어서 '여행 가서 여기여기여기를 다녔어요'나 '뭐뭐뭐를 사왔어요..' 하고 하나하나 올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갔을 땐 큰 수퍼마켓에 가서 사온 것들을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은 게 있어서 한번 올려본다.

 

페테르부르크 도심에는 큰 수퍼마켓이 별로 없어서 잘 뒤져야 한다. 거대한 수퍼마켓이나 마트는 좀 외곽으로 나가야 많이 있다. 최근에는 주로 네프스키 대로나 이삭 성당 근처에서 며칠만 묵다 보니 근처의 조그만 식료품 가게를 이용하는데 그치곤 했는데 이번에는 료샤네 집에 가면서 찜닭과 계란말이 해주려고 큰 수퍼에 들렀다. 블라지미르스카야 지하철역(도스토예프스키 호텔과 연결되어 있음)에 있는 커다란 수퍼마켓 'Land'라는 곳이다.

 

나중에 호텔 방에 돌아와서 침대 위에 우르르 쏟아놓고 뭘 샀는지 점검 중.. 별다른 건 없다. 되게 평범한 것들이다. 주로 홍차. 그리고 버터나 치즈 따위.. 국내에서는 러시아 식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다만 그렇다고 딱히 러시아 식재료라고 하기에도 마땅치 않네.

 

 

 

우리 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린필드 홍차. 러시아 홍차로 저렴한 편이고 질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만, 여기서 나온 것들 중에 내가 꽤 좋아하는 게 바로 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이다. 맛은 대략적으로 트와이닝의 차이 티나 voyage와 비슷하다. 향신료 냄새가 섞여 있음. 러시아에 가도 이건 진열대에서 요즘 찾기가 힘든데 수퍼에 갔더니 이게 있어서 세 팩 사왔다. 목이 간질간질할 때 마시면 좋다.

 

 

 

이것은 러시아산 허브 버터. 파슬리 등 허브와 마늘 등이 섞여 있다. 이건 충동구매했음. 페테르부르크에서 가끔 가는 식당에서 굉장히 맛있는 파슬리 버터를 내주는데 그거 생각이 나서. 근데 역시 버터라서.. 돌아와서 가방을 열어보니 많이 녹아 있었다 ㅠㅠ 냉장고에 넣어서 단단해지긴 했지만 선도는 확 떨어졌겠지.. 아직 안 먹어봤다.

 

원래는 스메타나를 좀 사오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약한 용기에 들어 있어서 도저히 운반해 올 수가 없어 포기했다.. 여기서 사워크림 사려면 구하기도 힘들고 대용량만 팔아서 비싸기만 하니 조금씩 먹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살 수가 없어 ㅠ

 

 

이것이 바로 뜨보록!!!!

일종의 코티지 치즈이다. 리코타 치즈에는 생크림이 들어가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 지방 함량이 매우 적고 시큼한 맛이 난다. 옛날엔 안 좋아했었지만 요즘은 러시아 가면 꼭 먹는다. 이것도 아직 안 뜯었다. 유통기한이 있어 빨리 먹어야 하는데 아까워 ㅠ

 

참고로 레냐의 강아지 뜨보록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다 :) 하얗고 몽글몽글해서 뜨보록이다.

 

 

 

뜬금없는 핀란드 크래커 :)

 

이 호밀 크래커를 좋아해서 옛날 페테르부르크 머물던 시절이나 프라하에 있을 때, 헬싱키 놀러갔을 때도 가끔 사다놓고 치즈나 버터, 과일 얹어서 먹었는데 우리 나라에선 구하기가 힘들다. 백화점 수입코너에 가면 있을법도 한데 우리 동네 근처에는 없어서, 반가워서 하나 사옴. 우스운 건 이거 부서질까봐 뽁뽁이로 싸옴... 크래커 주제에 로모노소프 찻잔과 유사한 대접!!

 

 

 

이것은 '수하리'

일종의 러시아식 빵가루이다. 우리 나라에서 파는 빵가루와는 질감부터 시작해 꽤 다르다. 이것을 사온 이유는 러시아식 디저트를 만들 때 수하리를 쓰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까르또슈까를 만들려면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오긴 했는데 과연 언제 만들지... 전에 사다놓은 블린 가루도 그대로 있다.. ㅠㅠ

 

 

 

이건 러시아산은 아니고. 각종 고춧가루들을 배합한 것. 사실 파프리카 가루를 사고 싶었는데 아무리 향신료 코너를 찾아도 없어서 그냥 각종 고춧가루 조합을 샀다. 나중에 요리할 때 쓰려고..

 

 

 

다망에서 나온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 티백.

 

이것을 산 이유는.. 딱히 다망을 아주 좋아해서가 아니고 마린스키 극장 카페에서 내주는 차가 이 다망이라서.. 마린스키 생각하려고 :)

 

 

마가렛의 호프 다원에서 나온 다즐링 티백.

 

 

 

이것은 에스트렐라 감자칩.

과자를 즐겨 먹는 편은 아닌데 옛날에 러시아에서 지낼 때 이 에스트렐라 감자칩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 요즘도 페테르부르크 가면 이 브랜드가 있으면 꼭 한두개씩 산다. 이것은 스메타나와 양파맛. 이 에스트렐라는 바베큐맛이 제일 맛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맛이 안 나오고.. 다른 맛들은 다들 너무 짭짤하다 ㅠ 이것도 꽤 짭짤해서 슬프다. 소금 간 좀 안하고 나오면 좋겠구먼..

 

하여튼 이것은 챙겨왔는데.. 한국에 돌아온 날 너무너무 배가 고프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어서 이걸 먹어버렸음.

 

 

 

이건 체리. 세르비아산이다.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미국식 검은 체리가 아니고 훨씬 조그맣고 동그랗고 새콤한 맛이다. (근데 난 검은 체리가 더 좋아 ㅠ) 이게 제일 작은 용량이었는데 양이 많아서 결국은 남겼다.

 

 

 

이것은 수퍼 빵 코너에서 팔던 메도빅과 까르또슈까. 유명하고 오래된 베이커리 브랜드 세베르에서 각 수퍼마다 납품하는 것이다. 모양은 저렇지만 꽤 맛있다!! 저 까르또슈까 만들어보려고 수하리 사옴. 까르또슈까는 촉촉한 초콜릿맛 경단 같은 맛이고 저 메도빅은 차갑게 식혀서 먹으면 꽤 맛있다. 물론 고스찌 같은 베이커리 카페의 근사한 메도빅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아주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맛이라 이것도 좋아한다. 이 세베르의 메도빅과 까르또슈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맛이다.

 

 

 

그래서 메도빅과 체리와 까르또슈까는 새로 산 로모노소프 접시에 올려놓고 먹었다 :) 이렇게 차려놓으니 귀엽네.. 차려놓자 잠시 후 레냐가 와서 나랑 앉아서 홀랑홀랑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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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설 연휴 당시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겨울에는 페테르부르크 직항이 없어서 모스크바에서 경유를 해야 되기 때문에 참으로 불편하다.. 이때도 모스크바 공항에서 4시간쯤 기다렸다가 페테르부르크로 갔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업무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갈때도 경유가 너무 힘들었다. 뭐 비행기 자체를 무서워하니 다 힘들지만 거기 경유까지 겹치면.. 으윽..

 

어쨌든 설레는 마음으로 페테르부르크 들어가던 날, 모스크바 공항에서 아에로플롯 뜨기를 기다리며 잠시 카페에 앉아 먹었던 메도빅. 당시 여기 앉아서 와이파이 잡아서 핸드폰으로 올리긴 했지만.. (http://tveye.tistory.com/3498)

 

이건 카메라로 찍은 것. 그러나 dslr은 트렁크에 넣어 부쳐버렸으므로 역시나 똑딱이 디카라 화질은 별로다..

 

여기 메도빅은 크림이 많이 시큼한 편이었다. 모스크바까지 9시간 가까이 날아온 후 입국심사를 하고 짐을 찾아서 도로 페테르부르크로 부치느라 땀 빼고(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짐도 다시 부쳐야 했음) 미로처럼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서 환승하러 온 후... 가뜩이나 전날 잠을 한숨도 못 자서 머리도 아프고 눈도 붙는 것 같고 온몸이 무겁고 뜨끈뜨끈하고.. 목도 너무 마르고... 작년에 왔을 때 쓰고 남은 루블이 좀 있어서 그걸로 자판기에서 물 한병 뽑고 카페에 앉아 차 한잔, 메도빅 하나 시켰었다.

 

문제는 저 물병!!! 아무리 해도 마개가 안 열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ㅠㅠ 젖먹던 힘을 다 짜내도 안 열렸다. 결국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착해보이고 힘세보이는 남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근데 왜 찾으면 없는지.. 다들 우악스런 외모의 아주머니들과 아예 하늘하늘한 아가씨들 뿐 ㅠㅠ 결국 남자에게 부탁하는 것을 포기하고 물을 하나 새로 살까 고민하다가(극소심..) 막판에 어떻게어떻게 간신히 열었다...

 

하여튼 저기 앉아서 메도빅을 먹고 당분을 섭취하여 힘을 조금 충전한 후, 9시인가 좀 넘어 출발하는 페테르부르크행 아에로플롯을 탔다...

 

아에로플롯이야 뭐.. ㅠㅠ

 

그래도 페테르부르크 들어갈땐 비행기가 안 흔들렸는데, 나중에 돌아올 때 모스크바로 나오는 비행기가 어마어마하게 흔들려서 나는 비행공포증 발작으로 정말 아주아주 힘들었다.

 

 

 

이것은 돌아오는 날. 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의 카페 쇼콜라드니짜.

풀코보 공항은 옛날엔 무지무지 작고 후진 시외버스 터미널 같았으나 작년에 신청사가 개관해서 아주 깔끔해졌다.

 

이상하게 이날도 밤에 잠을 못 자고 나와서 무지 피곤...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롯 탈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국내선 구역의 카페에 왔다. 국제선 구역엔 스타벅스가 있는데 국내선 타는 쪽엔 러시아 브랜드인 쇼콜라드니짜가 있었다. 사실 먹을 건 이쪽이 더 많다. 핫 초콜릿도 맛있고 차 종류도 더 많고 케익을 비롯 배 채울 것들도 더 많다. 그리고 여기는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옴.

 

 

 

카운터는 이렇게 생겼음.

 

 

 

돌아가는 날이라 매우 우울했다.

홍차 한 잔. 그리고 메뉴판을 뒤적이다 첨 보는 케익이 있어 주문. 쁘띠치예 말라꼬(직역하면 새의 우유, 새의 젖)란 케익인데 아마 소련 시절부터 있었던 케익인 듯. 먹어보니 많이 달긴 했지만 우유 맛이 강해서 맛있었다. 달아서 다 먹진 못했다.

 

여기서도 이전에 이 구도로 사진 한 장 올렸던 기억이.. : http://tveye.tistory.com/3518

 

 

 

 

 

 

 

귀여운 설탕 봉지!!

설탕 안넣는데 이거 귀여워서 두어개 챙겨옴~ 친구한테도 기념으로 하나 주고.

 

 

 

양띠 해라고 양이 그려져 있는 냅킨! 옆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씌어 있음

(러시아는 연말-새해-정교 성탄절의 12월~1월에 저렇게 트리 장식을 한다)

 

그건 그렇고 러시아 양 그림은 뭔가 기다랗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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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0. 16:11

고스찌의 꿀케익 메도빅 russia2015. 2. 10. 16:11

 

 

러시아나 프라하에 가면 내가 꼭 먹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꿀케익 메도빅. 체코에서는 메도브닉이라 부른다. 견과와 꿀이 가미되어 여러 겹 겹쳐 만드는 맛있는 케익이다. 이것은 정말 맛있다 :)

 

맨처음 이걸 먹은 건 오래 전 러시아에서 공부할 때였다. 그때 이걸 사먹었던 가게에서는 '묘도보예 삐로즈노예', 즉 꿀 조각케익이라고 해서 난 내내 '묘도보예'란 이름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러시아에선 '메도빅', 체코에서는 '메도브닉'이라고 불렀다. 재작년 프라하에 머물 때 그 동네 메도브닉 진짜 여러 종류 먹어봄 :)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체코 메도브닉이 좀 더 맛있었다 ㅎㅎ '메드', '묘드'는 꿀이란 뜻이다.

 

여기는 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레스토랑/디저트 카페인 고스찌. 전에 몇번 포스팅한 적 있다. 음식도 괜찮지만 디저트 케익이 일품이다. 특히 이 메도브닉은 크림도 풍부하고 정말 맛있다!~

 

계속 잠도 모자라고 입맛도 없고 몸도 피곤해서 훌륭한 메도빅 사진 올려본다 :0

 

 

 

 

 

가게 안은 이렇게 생겼다.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 여긴 반지하 1층이고, 레스토랑은 2층에 있다.

 

 

진열장 안에 근사한 케익들이 가득가득!!

 

 

흔들리고 번졌지만..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 다이어트 따위에 낭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

훌륭하다!!!

 

* 태그의 고스찌 를 클릭하면 이곳에 대한 이전 포스팅들을 볼 수 있다

* 태그의 메도브닉을 클릭하면 아마 전에 체코에서 시도했던 여러 메도브닉이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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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을 먹고 나갔었는데 찬 바람을 쐬며 걸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걸려온 후두염이 악화되어 그런 건지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오후에는 쉬고 있다. 세베르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까르또슈까와 메도빅과 함께 :)

 

이제 뻬쩨르에도 근사한 카페와 디저트 샵들이 생겼지만 그래도 추억과 향수 때문인지 여전히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바로 오래된 세베르이다. 소련 시절부터 변함없이 사랑받아온 저 까르또슈까와 체코 메도브닉에 비하면 훨씬 달고 물컹하고 크리미한 메도빅을 입에 넣으면 아주 소박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이거 먹고 지난주에 다 썼던 글 퇴고하다가 감기약 먹고 일찍 자야겠다...

 

 

메도빅은 이것보다 세배 정도 큰데 양이 많아서 잘랐다. 남은 거 냉장고에 넣어놔야 하는데 미니 바에 워낙 호텔쪽 음료가 꽉 차 있어서 들어갈 자리가 없네 ㅠ.ㅠ

 

까르또슈까는 언제나 그 맛. 까르또슈까 :)

 

 

이렇게 보잘것 없는 투명 박스에 넣어주는데 테이크 아웃을 하면 상자 값을 받는다. 무려 10루블 -_-; 우리 나라는 오히려 자리값 때문에 테이크아웃해 가면 5백원 깎아주는 카페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 시절 물자가 귀해서 그랬던 걸까 하고 혼자 맘대로 생각하며 나왔다. 생각해 보니 프라하에서도 테이크아웃해 가면 상자 값을 받았다. 유럽 다른 나라들도 그런가? 잘 모르겠네. 많이 가 본 것도 아니고 그나마 갔던 곳들은 거의가 출장 때문에 가서 뭔가 상자에 포장해 테이크아웃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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