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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나 비슈뇨바'에 해당되는 글 49

  1. 2020.03.08 월요병을 달래는 슈클랴로프님 화보 몇 장 2
  2. 2019.08.31 오래된 발레 화보집 뒤적이며 : 바리쉬니코프에서 비슈뇨바까지 + 첫사랑 무용수
  3. 2018.09.12 디아나 비슈뇨바(디저트) 2
  4. 2018.07.16 천사같은 꽃돌이님 2
  5. 2018.04.12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세 장 + 마샤랑 셋이 사진 찍었을 때 기억 4
  6. 2017.11.26 일요일 오후, 2집에서 차 한 잔 + 슈클랴로프님 등 6
  7. 2017.07.08 옥사나 본다레바의 근사한 화보들 + 슈클랴로프, 비슈뇨바 2
  8. 2017.06.09 바로 이것이 아름다움이다 - 디아나 비슈뇨바 화보들 4
  9. 2016.11.03 무용수들(비슈뇨바, 레베제프, 츄진, 슈클랴로프, 쉬린키나) 4
  10. 2016.10.20 흑해의 여름, 춤추는 아이, 달빛 아래의 레나 46
  11. 2016.10.16 무용수들 : 비슈뇨바, 슈클랴로프, 바리쉬니코프, 사라파노프, 아바쇼바 4
  12. 2016.10.05 폭군 파트너 여왕, 병실의 미샤와 지나이다의 대화 38
  13. 2016.08.28 천사가 날개로 쓰다듬고 지나간 사람, 렐랴의 인터뷰 54
  14. 2016.07.16 세베르 제과점, 그가 먹고 싶었던 모코 케익, 파트너들의 대화, 보위, 미샤의 아파트, 팬과 관객들 51
  15. 2016.07.09 잠시) 미샤의 로미오와 이바누슈카, 정장에 샴페인 엎지르기 39
  16. 2016.06.06 마음의 위안 : 슈클랴로프 + 비슈뇨바 + 페테르부르크 + 고양이
  17. 2016.06.02 무용수 #4. 디아나 비슈뇨바 4
  18. 2016.05.15 잠시 : 교조주의, 강령으로서의 예술, 세 개의 메모 - 쓰던 순간, 1년 후, 3년 반 후 55
  19. 2016.05.05 발레 화보들 : 비슈뇨바, 테료쉬키나, 김기민, 바리쉬니코프, 트와일라 타프, 루지마토프, 이반첸코, 레베제프, 슈클랴로프 10
  20. 2016.04.06 마음의 위안 3) 빠질 수 없는 슈클랴로프 + 페테르부르크의 두 남녀 4
  21. 2016.03.25 금요일 밤의 슈클랴로프 사진 몇 장 2
  22. 2016.03.17 마음을 끄는 사진 한 장 : 메트로폴 호텔 방의 디아나 4
  23. 2016.03.13 간만의 무용수 화보 몇 장 : 비슈뇨바, 루지마토프, 아실무라토바, 옵차렌코, 슈클랴로프, 테료쉬키나, 쉬린키나 6
  24. 2016.02.17 백조의 호수 오데트 솔로(디아나 비슈뇨바)
  25. 2016.01.21 오랜만의 무용수 화보 몇 장 : 누레예프, 말라호프, 비슈뇨바, 슈클랴로프

 

 

 

주말이 다 지나갔다. 월요병을 달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님의 아름다운 화보 몇 장. 대부분 최근에 올라온 사진들인데 예전 것도 있다. 본 사람들이 많긴 하겠지만 그래도 예쁜 건 모아놓고 한번에 :)

 

 

먼저 Darian Volkova의 사진. 이번에 개막하는 3월 마린스키 발레 페스티벌의 주요 화보 중 하나. 발로쟈 슈클랴로프님과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이거 조그맣게 프로모 영상도 올라왔는데 예쁘고 생기 넘친다. 영상도 나중에 한번 올려보겠다.

 

 

3월 13일에는 스페셜 이브닝 무대로 젊은이와 죽음, 다이아몬드, 그리고 스메칼로프가 특별히 재안무해준 Palimpsest를 추고 그 전날인 12일엔 스메칼로프의 사회로 팬들과 함께 하는 토크 프로그램도 준비한다고 함. 흑흑, 나도 뻬쩨르에 있고 싶다...

 

 

 

 

최근 모스크바에서 사마라 오페라(samara opera) 발레단이 뜨리 마스끼 까롤랴(제왕의 세개 가면) 공연을 했다. 유리 스메칼로프가 작년에 거기서 안무한 작품이고 초연의 주역을 슈클랴로프님이 췄는데 이번 모스크바 공연에서 간만에 다시 올라갔다고 한다. 나는 스메칼로프가 이렇게 웅장하고 장대한 작품을 만들면 살짝 취향에 안 맞고 좀더 드라마틱하고 감정적인 소품들이 더 잘 맞는 편이어서 이 작품 자체는 '아 되게 보고프다' 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발로쟈가 추는 건 당연히 보고 싶다.

 

 

사진은 Anton Senko. 모스크바에서 리허설할 때 찍은 사진.

 

 

 

 

 

사진은 Sila Avvakum.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최고의 귀염둥이 바질~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춘 지젤. 이건 몇년 전 화보이다. 사진은 Alex Gouliaev.

 

 

 

역시 Alex Gouliaev의 사진. 디아나 비슈뇨바와 함께. 신데렐라.

 

 

 

 

 

빵끗 웃는 알리 화보로 마무리. 작년의 마리스 리에파 기념공연 때. 사진은 Elena Pushk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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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은 차를 마시면서 아주 옛날에 마린스키 극장 샵에서 샀던 니나 알로베르트(Nina Alovert)의 발레 화보집을 다시 뒤적여 보았다.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21세기가 되기 전에 나온 얇은 사진집이다. 그래서 제목도 저렇게 되어 있고, 이 화보집에서 말하는 today는 90년대의 마린스키이다. 6~70년대 키로프에서부터 90년대 후반까지를 아우르는 흑백 화보집인데 지질도 얄팍하고 좋지 않지만(90년대에 나온 책이니...) 내로라하는 무용수들이 다 담겨 있다. 속표지의 저 우아한 여인은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여왕님' 율리야 마할리나. 

 

 

 

 

이건 미래의 발레리나들, 즉 당시 한창 떠오르던 신진들이다. 파 드 카트르를 추고 있는 네명의 젊은 발레리나들인데 순서대로 소피야 구메로바,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마야 둠첸코, 그리고 디아나 비슈뇨바이다. 이 당시엔 로파트키나랑 비슈뇨바는 유명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풋풋하던 시절이었다.

 

 

 

 

표지는 유일무이한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망명 전에 찍은 사진.

 

 

 

당시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파루흐 루지마토프.

 

 

 

 

이건 발레리나 찻잔이 아니고, 예브게니 오네긴의 타치야나가 그려진 찻잔. 근데 의상이 쫌 발레리나 같아서 오늘은 이 찻잔에 마심.

 

그리고 나의 첫사랑, 예브게니 이반첸코. 이 당시엔 아주 젊었던 데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신성이라 무대 사진도 아니고 연습실 사진 :) 그런데 나는 이 사진을 보고는 '아아 해골 머리띠까지 정말 너무 멋있다.... 역시 멋있다...'하고 눈에 콩깍지가 끼어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지금 봐도 멋있음. 쥬인은 '거봐 얘는 막내라서 무대 화보도 못 얻고 우아한 극장에서 해골이나 두르고 이러고 있다' 하고 나를 놀리곤 했음.

 

 

사실 이 당시에도 이 사람은 키 크고 체격도 근사하고 딱 왕자 스타일이라 맨날 아다지오만 추고 왕자님을 춰서 발레 관람 초짜이던 나는 '잉잉 바질은 왜 안 춰주는거야, 왜 넌 맨날 졸린 아다지오만 추는 거야 엉엉' 하고 슬퍼했었다. 이제는 나이가 꽤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린스키 무대에 올라와주고 있어 너무 좋다. 아무래도 첫사랑이니까! 그래서 마린스키 갔다가 이 사람과 발로쟈 슈클랴로프가 같은 무대에 올라오는 날이면 나는 그야말로 더블로 계 타는 날이다 :)

 

 

그건 그렇고.. 다시 봐도 저 해골 머리띠 완전 내 스타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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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9. 12. 23:08

디아나 비슈뇨바(디저트) 2017-19 petersburg2018. 9. 12. 23:08






이 아름다운 자태의 주인공은 보석함이 아니고 디저트이다. 이름은 디아나 비슈뇨바. 정말이다 :)



올초였던 것 같은데 아스토리야 호텔에서 비슈뇨바 이름을 붙인 이 디저트를 신메뉴로 내놓았다. 비슈뇨바를 뮤즈로 헌정한 디저트인데 실지로 첨 나왔을때 비슈뇨바랑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사진만 봐도 너무 예뻤다. 디아나도 너무 아름다운데 그녀 이름 단 디저트도 아름답다니 꼭 먹어봐야지 했었다.



(사실 더 레파에도 전에 나온 비슈뇨바 디저트가 있는데 그것도 먹어보고픔)





사실 난 여기서 머랭과 딸기, 크림으로 만든 안나 파블로바에 덴 적이 있다. 좋아하는 디저트긴 한데 아스토리야에선 바질과 올리브유를 뿌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머랭과 크림 특성상 이쁘게 먹을수가 없다 ㅋ



오늘 여기로 숙소 옮기고 나서 카페 내려와 디아나 비슈뇨바 시킴. 으아 이거 비싸다.. 디저트 중 젤 비싸.., 950루블!! 만오천원 넘어! 아무리 아스토리야 호텔이라지만 여기 디저트 보통 8-9천원 내외인데.. (물론 일반 카페는 훨씬 싸다)



그런데 일단 나오자 예쁜 자태에 반하고, 또 생각보다 커서 놀라고, 이 정도 양과 다양성, 정성과 맛이라면 이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다!







뚜껑과 케이스도 먹을 수 있다는데 일단 맨나중으로 미룸. 너무 많아보여서 이걸 어케 다먹나 남은건 싸줄수 있나 고민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정말 선물상자 같았다. 하나하나 수수께끼같은 이쁜 것들이 먹을때마다 새로운넘이었다!



하얗고 얇게 슈가코팅한 베리들, 흰 머랭 쿠키들, 마스카르포네 치즈볼, 새콤한 과일절임이 숨겨진 방울토마토 모양 핑크볼, 견과 플로랑틴(아 이거 이름 맞나 모르겠어 헷갈리), 게다가 맨아래 숨겨진 시나몬 뿌린 사과절임까지.. 어느것 하나 과하게 달지 않은데다 뭔가 쫌 달거 같으면 새콤한 베리와 과일핑크볼이 있어 금세 입안이 정리된다.



오오 이것은 비슈뇨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근사한 디저트다! 다양한 종류의 단것들이 놀랍게도 잘 어우러진다. 어느것 하나 너무 세지 않아서 정말이지 조화로운 발레를 보는 기분! 이렇게 여러가지를 요렇게 이쁘게 플레이팅하다니... 정말 많은 정성이 들어간 걸 먹는 기분이라 좋다. (러시아에서 아름다운 다저트 플레이팅이라니 정말 놀랍구나 ㅋ)



애프터눈티세트 시키면 맨날 제대로 못먹는 나로선 이거야말로 애프터눈티세트 완벽한 대용 디저트다! (가, 가격도 ㅠㅠ)



맛은 별 기대 안했고 그저 비슈뇨바에게 헌정된 디저트니까 먹어보고픈 거였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디저트 본연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줌. 둘이 와서 이거 하나 시켜서 먹으면 가격도 그렇고 양도 그렇고 딱 좋을 거 같다.



.. 쓰고 나니 디저트 얘기가 책이나 발레 리뷰보다 더 길어!!



..



하여튼 아스토리야는 좋다. 그랜드 호텔 유럽에서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체크아웃했는데.. 오오 방도 6층의 스튜디오룸으로 업그레이드해주었다(작년처럼), 글고 디저트 디아나 비슈뇨바도 근사하다.



오늘은 여기 와서 첨으로 발레 보러 간다. 시즌이 막 시작되는 시기라 발레가 거의 없다 ㅠㅠ 마린스키는 말미에 딱 하나 끊었고(그래도 슈클랴로프님 나옴), 앞의 두개는 미하일로프스키다. 흑..



오늘은 신데렐라인데 미하일로프스키의 새 버전 궁금하긴 하다. 여기는 의상 등에 돈을 많이 쓰고 화려하니.. 문제는 빅토르 레베제프가 왕자인데 이넘 예전에 나무토막 연기로 날 넘 실망시켜서... 그치만 얘랑 아내인 아나스타시야 소볼레바 페어가 나오니 케미를 기대해보련다.



남은 차 마신 후 방에 가서 좀 쉬다가 극장에 가야겠다.


..



거의 다 먹은 후 연분홍 토슈즈 색인 케이스 귀퉁이 톡 깨서 먹었는데 화이트 초콜릿이었다. 이거 뭐야 나 화이트 초콜릿 안좋아하는데 맛있어...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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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16. 23:07

천사같은 꽃돌이님 sketch fragments 2018. 7. 16. 23:07




결국 오늘 마린스키 메일로 29일 슈클랴로프님의 신데렐라 발레 티켓 취소신청서를 보냈다. 페테르부르크의 본진 마린스키는 항상 서비스가 좀 늦는데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은 현지 서비스도 그렇고 뭐든 더 빠르고 친절한 편이다. 최근에 생기기도 했고 아무래도 분관이다 보니 고객만족도에 더 신경쓰는듯. 메일 보낸지 한시간만에 당신의 취소요청이 승인되었습니다 하고 답멜이 오고 표가 취소되었다 엉엉...



아이고 슬퍼라 엉엉...





엉엉 발로쟈 엉엉... 



그런데 인스타에 위의 그림을 올렸더니 슈클랴로프님이 너무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팬심은 또 두근거리고... 정말이지 이분은 춤도 잘추고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마저 천사가 아니더냐~ ​



(댓글 달아줬다고 또 금세 맘의 위안을 얻고는 캡처 떠놓고 있는 나는나는 넘버원팬 ㅋㅋㅋ)



흑흑 고마워요 발로쟈... 월말 블라디보스톡 공연은 못가지만 그래도 언제가 됐든 무대 보러 다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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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꽃돌이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세 장.



로미오와 줄리엣. 디아나 비슈뇨바와 함께.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사랑의 전설 리허설 중. 정말이지 둘이 같이 있으니 사랑스러움이 두배가 되는 다정하고 이쁜 커플이었음 :) 발로쟈와 마샤 둘다 무지 친절하고 상냥했다!!!!



지난번 유니버설 발레 갈라 공연 첫날, 끝나고 기다리다 만났을때 '마샤랑 당신이랑 셋이 사진 찍어도 돼요?' 라고 묻자 '그럼요 그럼요' 하더니 저쪽에서 노보셀로프랑 얘기 중이던 아내에게 '마셴카~ 일루와 같이 사진 찍어~' 하고 부르던 발로쟈. 목소리에서 사랑이 퐁퐁 느껴졌음. 마셴카라는 애칭을 얼마나 다정하게 부르는지 :) 마샤 좋겠다~~~





이건 최근 바이에른에서 데뷔했던 존 크랑코의 오네긴. 나는 이 사람이 오네긴보단 렌스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뭐 사실 내가 렌스키를 좋아하고 오네긴을 싫어하기 때문이지 ㅋ) 화보도 그렇고 짧은 영상 클립도 그렇고 역시 이 사람은 탁월한 무용수일 뿐만 아니라 원체 드라마틱한 배우이기 때문에 엄청 멋있는 오네긴이었다!!!!!



아악 이런 오네긴이라면! 내가 타치야나라면 이 사람의 오네긴 앞에서 나는 편지 따위 조각조각 찢지 않을 것이야! 늙은 장군 남편 따위, 명예 따위 내팽개치고 '오오 오네긴님 드디어 이제서야 나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하며 기뻐 날뛰며 와락 안길 것이야!!!! (이렇게 푸쉬킨의 명작을 난도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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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차로 2집 내려옴.


낮잠 자기 전에 애프터눈 티까지 성공...






기분전환 하려고 슈클랴로프님 화보 액자도 다른 사진으로 교체. 기념으로 바가노바 발레학교 그려진 찻잔 꺼내서...











오늘 별다방에서 아점 먹고 나오면서 사본 제주 감귤 치즈케이크. 흑, 기대 안 했지만 역시나 별로였음. 맛없고 느끼하고... 결국 남겼다.





지난번 러시아 갔을 때 얻어온 사바까.루 잡지. 디아나 비슈뇨바가 표지에 있어서 :)




오늘 바꾼 슈클랴로프님 화보. 왼편은 신데렐라의 왕자, 오른편은 돈키호테의 바질.




얼마전 별다방에서 샀던 빤짝이 티코스터. 빨간색도 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사야지 했더니만 품절됨 흑...



..





이건 오늘 아침 10시. 2집 동네 최고 핫스팟 별다방...


귤은 내가 챙겨온 것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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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간만에 아름다운 발레리나 화보들로 심신의 정화.

 

 

마린스키 발레리나 옥사나 본다레바 화보들 몇 장.

 

 

본다레바는 원래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주역을 추다가 몇년 전 마린스키로 옮겨왔다. 세컨드 솔리스트인데 미하일로프스키에서는 꽤나 인기가 많았던 무용수였다. 미모가 뛰어나고 열정적인 스타일이라 화보들이 아름답다.

 

 

다만 내 기준으로 볼 때는 고전 발레에는 확실히 덜 어울린다. 일단 체격 조건이 맞지 않는다.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긴 한데 좀 영화배우나 모던 댄서처럼 아름답고 체형은 클래식 발레리나에는 어울리지 않는 편이다. 목선이나 상체 조건 때문에 날씬한 무용수임에도 불구하고 길쭉하고 늘씬해보이지는 않는다. 근육질의 강건하고 자그마한 무용수 느낌이라서... 나탈리야 오시포바도 내겐 좀 그런 느낌인데, 본다레바가 좀 더 그런 편이다. 그래서 본다레바의 무대는 실제로 몇번 보았을때도 그다지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마린스키 타입 발레리나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화보들은 정말 매력적이다. 좀 고양이 같은 외모이고 광대뼈가 넓고 눈이 큰 러시아 미녀 특징도 잘 살아 있다. 그래선지 무대 화보보다는 패션 화보가 더 잘 어울리고 아름답다.

 

사진 출처는 옥사나 본다레바의 instagram : bondareva.oksana.f

 

 

야외 화보는 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가와 에르미타주 쪽에서 찍은 것들인데 분위기가 근사하다.

 

 

 

 

 

 

 

 

 

 

 

 

 

 

 

 

 

 

 

 

 

 

 

 

 

 

 

 

 

..

 

 

 

 

 

그래도 안 나오면 섭섭하니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두 장 :))

 

얼마 전 마린스키 신관 옥상에서 찍은 화보 두 장.

 

너는 어쩌면 야자나무 앞머리를 해도 멋있는 거니...

 

 

 

 

 

 

마지막은 아름답고 우아한 디아나 비슈뇨바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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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하는 페테르부르크 잡지 사이트인 sobaka.ru에서 오늘 트윗에 디아나 비슈뇨바 스페셜을 올려줌. 시차 때문에 일찍 일어나 괴로워하다 그야말로 안구정화!~

 

거의가 비슈뇨바의 이전 패션화보들이다.

 

뭐 무슨 말이 필요한가, 디아나 비슈뇨바인데!!!

 

아름다움 주의!!!!! 화보들 좌라락!!!!

 

출처는 sobaka.ru. 근데 거기서 직접 찍었던 화보도 있고 다른데서 찍은 화보들도 섞여 있다.

 

 

그럼 디아나의 아름다움에 취해 봅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진. 마린스키 구관과 신관 사이 운하 교각 난간에 기대어 있는 비슈뇨바. 나도 이 난간에 무수히 기대어 봤지만.. 비슈뇨바니까 이렇게 아름답게 사진이 나오는 거야 흑흑..

 

 

 

하지만 무용수일 때가 가장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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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름다운 무용수들 화보 몇 장.

 

디아나 비슈뇨바.

 

 

빅토르 레베제프.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프린시펄.

이 사람은 아름다운 외모로 나를 매혹시켰으나.. 막상 무대를 보러 갔을땐 발연기로 나를 매우 실망시켰던 전적이 있다(흐흑...)

그래도 그때 그 무대(라 바야데르)에서 니키야를 췄던 보론초바가 망령의 왕국에서 갑자기 부상당해 막판에 대타로 나왔던 아나스타시야 소볼레바와 러시아 방송의 '볼쇼이 발레'(big ballet)에 출연하더니만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골인함. 내가 그때 뭔가 그 계기가 된 무대를 본 건가 ㅋ

(근데 그 라 바야데르 무대는 한마디로 재앙이었음 ㅠㅠ 레베제프의 발연기 솔로르. 얼굴만 예쁘고 춤은 딸리는 보론초바-심지어 막판 부상, 엉망인 군무, 막판에 대타로 나와 휘청거리던 소볼레바 ㅠㅠ)

그래도 이 라 실피드 복장 입고 부츠 신고 포즈 취하고 있는 레베제프는 근사해보여서 (또 외모에 혹해서) 한컷.

사진 출처는 victor levedev의 instagram.

 

사진은 Jack Devant.

세묜 츄진.

 

빠질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사진 몇 장.

발레 101.

 

머리를 말끔하게 빗어넘겨도 마냥 근사하심

 

최근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바이에른 무대에 올랐던 지젤.

사진은 Jack Devant.

 

 

 

지젤 커튼콜. 역시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사진은 Jack Devant.

 

6월에 마린스키에서 이 사람의 알브레히트를 10년만에 다시 봤다. 이 사람은 정말 타고난 알브레히트였다. 로미오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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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미샤와 트로이, 그들의 친구들이 여름에 여럿이 모여 기차를 타고 흑해에 놀러가는 장면을 발췌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기차 안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을 마신다.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놀러간 이 친구들은 이 장편의 도입부에서부터 함께 등장하는데, 모두들 비밀 문학 서클의 일원이다. 이 서클은 트로이와 그의 절친 알리사, 그리고 두어명이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금지된 외국 문학을 번역해 돌려 읽거나 반체제 작가, 지하출판물 등을 읽는 모임인데 주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와 여타 다른 대학들의 외국어 전공 학생, 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샤는 지인의 소개로 이 서클에 들렀다가 트로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중 소설에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트로이와 친한 친구들로 료카와 갈랴(둘은 부부이다. 주로 둘의 집에서 모임이 개최된다), 이고리(영화학교 출신. 렌필름 촬영기사), 코스챠, 스베타(미샤를 처음에 데리고 온 친구), 타냐(발레 애호가) 등이다. 그리고 미샤의 팬이라서 억지로 서클에 끼어든 레나라는 소녀가 있다. 이 친구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다같이 썰매타러 가서 논다든지, 표절작가 쥬진스키에게 이고리가 시비를 걸어 싸우는 이야기라든지, 갈랴와 료카의 어린 딸이 메밀죽 먹기 싫다고 트로이에게 떠넘긴다든지...

 

여기 올리는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흑해 가는 기차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의 주역은 미샤를 짝사랑하던 소녀 레나와, 물론, 주인공인 미샤이다. 그리고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이야기 속에서.

 

 

시간적 배경은 1973년 여름. 미샤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해 데뷔를 앞둔 시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흑해에 헤엄치러 놀러 갔을 때이다. 흑해는 예로부터 러시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였다.

 

 

** 위의 사진은 흑해가 아니고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강변 풍경이다. 작년 여름에 내가 찍은 것이다. 흑해는 안 가봐서 ㅠㅠ

 

 

** 이 에피소드는 아주 약간 15금 정도의 묘사가 있는데 그나마 그것도 여기 올리면서 내가 자체검열로 좀 수정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들은 알리사 아버지의 인맥으로 해변 근처의 방 세 개 달린 아파트를 싸게 빌렸다. 임신한지 얼마 안 된 갈랴와 료카 부부에게 방을 하나 주고 나머지는 기차를 타고 왔을 때처럼 남녀로 나눴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고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레닌그라드에서는 백야의 여름 중 운 좋은 며칠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찬란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다들 실컷 헤엄을 치고 일광욕을 했다. 알리사는 약한 피부를 보호하려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산 선크림을 발랐지만 별 소용이 없어서 사흘 째 되는 날 코끝이 홀딱 벗겨지고 어깨와 팔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갈랴가 속상해 하는 알리사를 욕실로 데려가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시장에서 구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미샤는 알리사만큼 피부가 흰 편이었지만 선크림 덕분인지 타고 난 것인지 조금 그을렸을 뿐 아무리 햇볕을 쬐고 다녀도 전혀 화상으로 고생하지 않아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긴 금발의 인형 같은 레나는 해변에서 인기가 좋았다. 또래 소년들부터 2~30대 남자들까지 다채로운 유혹이 쏟아졌다. 레나는 밀려드는 데이트 신청을 도도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가끔은 보란 듯이 잘생긴 남자를 골라 팔짱을 끼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한번은 적어도 서른 살은 된 것 같은 콧수염 기른 남자의 추근거림을 받아들여 바에서 시끄러운 재즈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그 바에는 트로이 일행도 모두 와 있었다. 물론 미샤도 있었다. 레나가 왜 그러는지는 뻔했고 타냐와 갈랴는 애가 타서 미샤를 들들 볶았다. 네가 리드를 하지 않으니 레나가 저런 사기꾼 같은 남자와 춤을 추고 있지 않느냐, 분명 유부남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수다스러운 어미새 두 마리처럼 떠들어댔다. 트로이는 그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미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적이 없는 애였지만 몹시 귀찮았는지 입술이 가느다랗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행은 미샤가 콧수염 기른 남자로부터 레나를 데리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장 연주자들 곁에 앉아 있던 거구의 여자에게 가서 춤을 청했다. 여자는 짙은 화장에 유행이 지난 얼룩덜룩하고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적어도 마흔 살은 넘어 보였다.

 

 

 친구들이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동안 미샤는 그 여자와 시끄러운 재즈 연주에 맞춰 키로프 무대에서는 결코 볼 일이 없을 춤을 췄다. 알고 보니 여자는 연주자들의 매니저였고 몇 년 전까지 바와 클럽을 전전하며 춤을 췄던 경력이 있었다. 자신들의 매니저가 오랜만에 젊은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연주자들은 신이 나서 모든 박자를 무시하고 씽씽 달리는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라 소러시아 민요와 고파크와 소련 군가를 합쳐놓은 듯한 미친 소음으로 변했고 홀은 귀를 찢는 음악과 마루를 걷어차는 발소리와 박수와 휘파람과 고함 소리로 광란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샤는 90킬로는 너끈히 나갈 것 같은 거구의 여자를 발레리나 파트너를 다루듯 가볍게 빙글빙글 돌렸고 서너 차례는 공중으로 띄웠다. 감탄과 비명, 환호와 갈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 윤곽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든 여자는 연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미샤의 리드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한참 춤이 격렬해졌을 때 여자의 구두 한 짝이 벗겨져 트로이가 앉아 있는 의자 앞까지 날아왔다. 갈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트로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 그만, 그만하라고 해. 빨리 데리고 나와. ”

 

 

 트로이는 갈랴가 레나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나는 이미 테이블에 돌아와 있었고 타냐의 팔에 안긴 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광란의 춤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콧수염 기른 남자는 어디론가 쫓아버린 후였다.

 

 

 “ 왜? 잘 추고 있는데. ”

 

 “ 잘 추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소릴 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저런 늙은 여자랑... 레나 때문에 저러는 거잖아. 이제 됐으니까 빨리 끌고 나와. ”

 

 “ 레나 때문이라니, 쟤는 그냥 춤을 추는 거야. 가만히 놔둬. ”

 

 

 트로이는 미샤를 끌고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취해 있었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광녀처럼 웃고 소리치며 홀에서 춤추고 있는 그 거구의 여인이 되고 싶었다. 저 여자는 자기 손목을 낚아채 회오리처럼 빙빙 돌리고 허공으로 밀어붙이는 저 낯선 상대가 누구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춤의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알량한 연주단 매니저 따위, 공동아파트의 방 몇 칸 따위, 배급표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아깝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리사가 트로이의 뺨을 가볍게 찰싹 때리고 물을 한 잔 주었다.

 

 

 “ 너 완전히 취했어. 물 좀 마셔. ”

 

 

 트로이는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리컵이 소리를 내며 깨졌지만 이미 다른 테이블 손님들 몇몇도 취해서 술잔을 내던져 깨며 흥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거구의 여자가 차오르는 숨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미샤는 여자가 자빠지지 않도록 재빨리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더니 공주님을 모시듯 피아노 옆 의자로 데려갔다. 연주자들이 색소폰으로 흐느끼는 듯한 신파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그는 여자를 의자에 앉히고 두툼한 손등에 열성적으로 키스를 했다. 휘파람과 박수와 고함 소리가 더 커졌다. 화장이 다 녹아내려 얼굴이 온통 시커멓고 새빨갛게 얼룩진 여자가 미샤를 껴안고 입술이 달아날 정도로 세게 키스를 퍼부었다. 트로이는 여자가 그 자리에서 미샤의 무릎에 올라앉아 치마를 걷어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가 알리사가 준 물을 마셨었나? 아니, 컵을 떨어뜨려 깨버렸지.

 

 

 여자가 미샤를 놔주었다. 그녀는 욕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황홀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에 겨워서. 트로이는 여자가 미샤를 다시 한 번 끌어당겨 안았을 때 귓가에 하염없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 착하기도 해라... 고마워. 정말 고마워. ”

 

 

 미샤가 녹초가 된 여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홀에서 걸어 나왔다. 테이블 쪽으로는 오지도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레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

 

 

 

 트로이는 그 날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데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던 것이다.

 

 

 그는 너무 목이 말라서 새벽에 깨어났다. 트윈 침대 위에 코스챠와 료카가 신발도 벗지 않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카펫 위에는 담요로 몸을 둘둘 만 이고리가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자신은 소파 위에 누운 채 바닥에 다리를 반쯤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그가 너무 커서 침대에 눕히기에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샤는 없었다.

 

 

 그는 물을 마시러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나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통약이라도 한 알 삼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갈랴를 깨워야 했다.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주스 팩을 뜯어서 단숨에 마시고 나자 갈증과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 쪽으로 나왔다가 그는 반쯤 열려 있는 안쪽 방문 사이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갈랴와 료카의 방이었다. 혹시 임신 초기의 갈랴에게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녀는 바에서도 안색이 좋지 않았었다. 걱정이 된 트로이는 문가로 다가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그는 료카가 자기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료카는 갈랴와 함께 있지 않은 거지?

 

 

 그는 문 뒤에 멈춰 섰다. 갈랴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건 레나였다. 작은 침실 한가운데,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마루 위에 서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커튼이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램프를 켜놓은 듯 환했다. 침대 곁 의자에 미샤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갈랴는 아픈 것이 아니었다. 료카와 짜고 방을 내준 것이다. 레나와 미샤를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는 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딱 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가려진 채 열린 문 너머로 멍하게 침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나는 하얀색의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따금 밀려나오는 울음 때문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트로이는 레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미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샤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뒤엉켜 검은색으로 물들인 월계관이라도 씌워놓은 것 같았다. 바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과 목은 시커멓게 번진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바에서 춤췄던 여자가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그 얼굴을 닦지도 않고 어디를 쏘다니다 들어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겨진 얇은 셔츠 소매는 어깨 바로 아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레나는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화를 내다가 울다가 또 낮게 웃기도 했다. 트로이는 레나가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렇게 달빛 아래 하얀 잠옷을 입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으면 인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도. 그 침실 마루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작은 소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빨간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의 지나이다 세도바조차도 아무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얇은 잠옷 사이로 날씬한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레나에게 뭐라고 한두 마디 했지만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달려가 미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팔을 허리에 두르며 몸을 밀착시켰다. 다른 손을 들어 미샤의 지저분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화장품 얼룩을 닦아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레나는 어깨를 세차게 튀기더니 반쯤 뛰어오르듯 발끝으로 서서 그의 턱을 감싸 쥐고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절망적이고 서툰 키스였다. 레나는 키스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애였다. 하지만 미인이었고 인어였다. 미샤는 레나를 떠밀지 않고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트로이는 그 애가 여자를 품에 안고 제대로 된 키스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로미오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순진해빠진 소년은 절대로 그런 키스를 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뗀 후 미샤는 레나의 포옹을 풀지도 않고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뭐라고 속삭였다. 레나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팔을 풀고 미샤에게서 두 발짝 물러났다. 날카롭게 숨을 몰아쉬더니 발을 한번 굴렀다. 그리고 긴 머리채를 두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격하게 외쳤다.

 

 

 “ 나도, 나도 다른 애들 못지않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사귀어 달라는 것도 아냐. 그래달라는 게 아니라구! ”

 

 

 레나가 숨을 쌕쌕거리면서 팔을 들어 올려 잠옷을 벗었다. 하지만 단추가 머리에 걸려 잘 벗겨지지 않았다. 흐느껴 울면서 레나는 머리에 걸린 잠옷 단추를 거칠게 잡아 뜯었고 술 취한 여자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옷을 벗어 내팽개쳤다. 달빛 때문에 작고 날씬한 레나가 은백색 조각상처럼 반짝거렸다. 트로이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레나가 조그만 체구치고는 몸매가 좋다고 생각했다.

 

 

 레나는 다급한 나머지 부끄러움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발레리나라도 된 양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미샤에게 다가가 목을 감고 매달렸다. 어깨와 가슴을 미샤의 셔츠 앞자락에 문지르며 귀 아래와 목덜미에 뜨겁게 입을 맞췄다. 트로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타들어갔다.

 

 

 그때 미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러지 마, 후회하게 될 거야. ”

 

 “ 아니야. 그렇지 않아. ”

 

 “ 크세니야. 그 여자 이름이야. 아까 홀에서 춤춘 여자. 같이 있었어. 내일도 같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 ”

 

 

 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갑작스럽게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 여자? 그 코끼리 같은 여자? 그 늙은 여자? 같이? 같이 있었다니? 그 여자랑 뭘 어쨌는데? ”

 

 “ 크세니야랑 잤어. 내일도 갈 거야, 그 여자가 원하면. ”

 

 

 레나가 미샤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두 손으로 가슴팍을 떠밀며 발로 걷어찼다.

 

 

 “ 나가! 꺼져버려!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잠옷으로 몸을 가리며 비극 여배우처럼 울부짖었다.

 

 

 “ 그냥 싫다고 할 수도 있었잖아! 왜 그런 지저분한 말을 하는 거야? 넌 감정도 없어? 끔찍해! 끔찍하고 더러워! ”

 

 

 미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연민이나 미안함, 혹은 분노 따위의 감정이 전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으므로 설령 울고 있다 해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는 한숨조차 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해. ”

 

 

 그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

 

 

재즈 밴드 매니저이자 옛 댄서 크세니야와 미샤의 이야기는 이 흑해 에피소드 후반부에 좀더 이어지는데 레나의 이야기와는 좀 별개라서 올리지 않았다.

 

..

 

 

(가엾은) 레나가 등장했던 이야기들은 아래 링크. 소설 속에서 아래 순서대로 전개된다.

 

http://tveye.tistory.com/4050 :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그리고 친구들

http://tveye.tistory.com/4947 미샤와 지나이다의 졸업 무대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가는 기차, 새로 온 인간, 새로 온 천사

 

 

 

..

 

 

무용수들 사진 몇장.

 

 

 

아르춈 옵차렌코

 

 

디아나 비슈뇨바

 

이반 바실리예프

 

 

아래 세장은 밴드 즉흥 연주에 맞춰 신나게 팔짝거리며 춤추는 미샤와 크세니야를 생각하며 올려봄. (하긴 크세니야는 많이 팔짝거리진 못했겠지만 ㅠㅠ)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게 위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된 고파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 민속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예브게니야 오브라초바. 돈키호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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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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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마음의 위안을 위한 무용수들 사진 몇장
디아나 비슈뇨바. 마린스키 앞에서. 사진은 Mark Olich.

아아 나도 여기 자주 갔는데.. 역시 세계 최고 발레리나의 자태는 넘사벽... 너무 아름답구나 ㅠㅠ (난 여기서 사진 찍어도 그저 운하 앞의 토끼 한마리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황금노예. 사진은 alex gouliaev.

발로쟈, 요즘 복근 운동 열심히 하더니 보람 있구나 :)






젊은 시절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당신때문에 러시아어 전공하게 됐는데 부디 꼭 한번만 실제로 볼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레오니드 사라파노프. 해적의 알리.
어머 이 사람 이렇게 멋있게 나온 화보 드문데...





마리야 아바쇼바. 에이프만 발레단 간판 발레리나.
안나 카레니나 출때 봤는데 딱 에이프만의 페르소나 무용수였다. 늘씬하고 길고 낭창낭창하고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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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사진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습하고 있는 볼쇼이의 아르춈 옵차렌코와 마린스키의 디아나 비슈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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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본편 중 몇가지 이야기를 발췌하면서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시절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이다와의 이야기를 두어번 소개한 적이 있다.

(지나이다와 미샤의 수첩 대화 : http://tveye.tistory.com/4924
지나이다와 미샤의 졸업 무대 : http://tveye.tistory.com/4947)

 

트로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인 알리사가 있듯 미샤에게는 파트너인 지나이다가 있는데 물론 서로의 관계는 각각 다르다. 알리사와 지나이다의 개인적 성격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그런데 그 소설을 쓰면서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친구를 사귄다면 지나이다 같은 애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발췌한 이야기는 1975년 9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샤가 키로프에서 세번째 시즌을 막 맞이했을 때 즈음이다. 그는 생각지 않은 부상으로 잠깐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파트너인 지나이다가 이 소식을 듣고 병실에 찾아와 그를 들들 볶는다.

 

* 다닐로프와 아사예프는 소설 속 키로프 극장의 행정감독과 예술감독, 아스케로프는 미샤와 오래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병원 의사이다. 폴리나와 세레브랴코프는 발레단 동료 무용수들이다.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는 발레학교 시절 미샤와 지나이다의 은사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부상을 입은 것을 극장 관계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자기 어머니에게도 숨겼다. 물론 극장에도 사실대로 얘기한 것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넘어져 다쳤다고 둘러댔는데 세레브랴코프를 비롯한 그의 적들은 기뻐했고 나머지 동료들은 걱정했으며, 무대 외의 공간에서 미샤 야스민이란 이름이 거론되기만 하면 머리를 감싸쥐는 가엾은 다닐로프는 아스케로프가 내려준 면회 금지령 때문에 이틀 동안 속을 태우다가 병실로 들이닥쳤다. 풋내기처럼 넘어져서 다치다니 믿을 수가 없다면서 조심성 없는 행동과 자기 관리 부족에 대해 꾸짖기도 하고 그간의 징계가 좀 심했다는 것은 자기도 인정하지만 어쨌든 이제 조치가 다 풀렸으니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운이 없느냐며 탄식하기도 했다.

 

 

 보리스 아사예프를 설득해 개막 공연 배역을 핀스키에게 넘긴 장본인으로서 가책을 느꼈기 때문인지, 미우나 고우나 저 골칫거리가 극장의 간판스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다닐로프는 미샤에게 자기가 타던 차까지 주고 갔다. ‘네가 예뻐서 주는 줄 아느냐, 어차피 오래되어 바꿔야 하는 참에 잘됐다, 곧 수석무용수가 될 인간이 걸어 다니고 버스를 타고 다니다 넘어져서 다치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극장의 명예를 이렇게 실추시킬 셈이냐’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물론 미샤는 퇴원 후 곧장 다닐로프에게 차를 돌려주러 갔다. 다닐로프는 예의를 모르는 놈이라고 그를 호되게 야단친 후 갑자기 급료를 인상해 주었고 한 달 후에는 수석무용수로 승급시켰다. 타마라의 정보가 사실로 판명된 것이다.

 

 

 다닐로프를 비롯한 극장 관계자들은 의심을 품지 않았지만 지나이다는 달랐다. 그녀는 미샤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찾아왔다. 아스케로프가 면회 금지라며 쫓아내려고 하자 파트너는 보호자나 마찬가지라며 버럭 소리를 질러서 의사 선생을 당황하게 만든 후 당당하게 문을 밀어젖히고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미샤는 수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잠들어 있었고 트로이도 옆자리의 빈 침대에 누워 졸고 있었다. 지나이다는 붉은 머리의 여왕처럼 불쑥 들어오더니 트로이는 본 척도 않고 미샤의 뺨을 톡톡 쳐서 깨웠다. 눈을 뜨고 지나이다를 발견한 미샤는 놀라지도 않았다.

 

 

 “ 지나, 안녕. ”

 

 “ 얼마나 있어야 돼? ”

 

 “ 음, 일주일? ”

 

 “ 거짓말하지 마. 어깨에 금 갔잖아. ”

 

 “ 아,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

 

 “ 방금 엑스레이 나온 거 보고 왔어. ”

 

 

 미샤는 지나이다의 정보력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처럼 보였다. 트로이는 옆 침대에 앉아 그 유명한 커플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구경했다. 미샤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는 지나이다를 먼발치에서 볼 때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곤 했고 정상적인 남자들이라면 모두가 그녀에게 목을 매달 거라고 생각했다.

 

 

 “ 그럼 열흘? 걱정 마, 10월까진 괜찮아질 거야. ”

 

 “ 바야데르 말고 딴 것도 있잖아! 백조는 어떻게 할 건데! 그게 더 먼저잖아. ”

 

 “ 그건 너랑 추는 거 아니잖아. 폴리나 리보브나야. ”

 

 “ 멍청하긴, 차라리 내가 낫지. 폴랴가 얼마나 뚱뚱한지 몰라? 그 여잔 백조가 아니고 거위야! 아까 보니까 그 와중에 더 찐 것 같던데. 그 어깨로는 못 들어. 월말까진 어림도 없어. ”

 

 “ 폴리나는 키가 큰 거지 뚱뚱한 게 아냐. 테크닉도 좋아. ”

 

 “ 그래, 180짜리 여잘 한번 잘 들어봐. 남편 위세로 아직까지 무대에 남아 있는 여자 따위. ”

 

 “ 봄에도 같이 춘 거 기억 안나? 괜찮았어. ”

 

 “ 지금 어깨만 다친 게 아니잖아. ”

 

 

 지나이다가 모포를 휙 걷더니 수혈의 여파로 아직도 핏자국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환자복과 목에 감긴 붕대를 발견했다. 녹색 눈이 화학 약품이라도 쏟아부은 것처럼 확 불타올랐다.

 

 

 “ 너 넘어진 거 아니지? ”

 

 “ 왜? 넘어졌어. 버스에서 밀려서 떨어졌어. ”

 

 “ 내가 바보야? 10년이나 널 봤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남한테 떠밀려서 이렇게 다칠 수 있다는 걸 믿으라고? ”

 

 “ 무슨 일에든 처음이 있기 마련이야. ”

 

 “ 수혈 받았잖아! 누가 넘어졌다고 수혈을 받아! 그렇게 많이!

 

 

 지나이다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트로이는 그녀가 병원의 누구를 닦달해 이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인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아스케로프조차도 그녀 앞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샤는 서릿발 같은 파트너 앞에서 변명을 늘어놔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전략을 바꿨다.

 

 

 “ 비밀로 좀 해줘, 지나. 안 그러면 다닐로프가 나 자를 거야. ”

 

 “ 언제 그런 거 신경이나 썼어? 그때도 페테르고프에 안 가서 이렇게 된 거잖아. 개막도 뺏기고, 너 때문에 나도 같이 밀렸잖아. ”

 

 “ 잘못했어. ”

 

 “ 월말까지 못 나오면 나 울리얀하고 춰야 될지도 몰라! 그 인간이 이번 솔로르 역 얼마나 눈독 들였는지 알아? 아사예프한테 얼마나 작업하고 다니는지 아냐고! ”

 

 “ 나간다니까. 절대로 네가 세레브랴코프와 출 일은 없을 거야. ”

 

 “ 당연하지, 날 그 병신하고 같이 추게 만들면 넌 진짜 끝장일 줄 알아.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그 수탉 같은 자식. ”

 

 “ 극장에선 그런 말 쓰지 마, 아가씨가 그러면 더 미움 받을 테니까. ”

 

 “ 자기 걱정이나 하시지. ”

 

 

 지나이다가 가까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대에 앉았다. 모포를 다시 끌어당겨 목 아래까지 덮어준 후 이제 얼굴을 보며 갑자기 걱정스럽게 물었다.

 

 

 “ 입술에 흉 지는 거 아니지? ”

 

 “ 실밥 뽑으면 괜찮을걸. ”

 

 “ 목은? ”

 

 “ 잘 안보일 거야. ”

 

 “ 모스크바에 진짜 괜찮은 의사 있어. 전화해 줄게. 흉터 안 생기게 해 줄 거야. ”

 

 “ 대충 파우더로 가리지 뭐. ”

 

 

 트로이는 그 프로 의식이 결여된 대답에 지나이다가 다시 폭발하는 게 아닌가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가방에서 얇은 노트와 복사본 테이프 몇 개를 꺼냈다.

 

 

 “ 자, 어제 맞춰보다 만 거.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가 동선 다시 짜줬어. ”

 

 “ 이렇게 가는 거 싫다며. ”

 

 “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의견이니까 그렇게 가 줄게. ”

 

 “ 왜 내 의견은 안 받아줘, 같은 건데. ”

 

 “ 그땐 네가 재수 없게 말했잖아. ”

 

 “ 넌 문 잠갔잖아. ”

 

 “ 그렇다고 그냥 가는 게 어디 있어!

 

 

 지나이다는 잠깐 발칵 화를 냈다가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어제 나가다가 그런 거야? 내가 문 안 잠갔으면 이런 일 없었을지도 모르겠네. ”

 

 “ 아냐, 절대로. ”

 

 

 미샤가 지나이다의 손을 잠깐 잡아 흔들었다. 그때 트로이는 미샤가 왜 파트너와 친구를 같은 선상에 두면서 신뢰에 대해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문득 알리사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

 

 

 지나이다는 알리사처럼 울음을 터뜨리거나 포옹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에메랄드 녹색 눈을 반짝이면서 한동안 자기 파트너를 책망과 걱정이 섞인 표정으로 내려다보다가 가방을 집어들고 일어났다.

 

 

 “ 참, 12월에 파리에 투어 간대. 브뤼셀이랑 암스테르담도. 제발 이번엔 말썽피우지 마. 말 잘 들으면 백조랑 지젤 둘 다 줄지도 몰라. ”

 

 “ 누구 말을 잘 들으란 거야? 아사예프? ”

 

 “ 전부 다. 특히 내 말을 잘 들어야 돼. ”

 

 “ 그건 별로 어렵지 않네. ”

 

 “ 우리 일린이랑 작업하게 될지도 모른대. ”

 

 “ 누구, 볼쇼이의 그 일린? ”

 

 “ 그래, 그 일린. 그러니까 제발 착하게 굴어. 나 정말 일린이랑 일해보고 싶었어. ”

 

 “ 어떻게 아사예프가 일린을 받았지? ”

 

 “ 아직 안 받았어. 다닐로프가 구워삶고 있는 중이야. 일린이 오면 새 작품을 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 ”

 

 “ 올해 듣는 유일한 희소식이군. ”

 

 

 미샤가 처음으로 웃었다. 지나이다는 안심한 듯 그의 머리를 살짝 두들기더니 나가버렸다.

 

 

 “ 연습실에서 내쫓길 만하네. 진짜 여왕님 같은데. ”

 

 “ 폭군이야. 화내면 아무도 못 건드려. ”

 

 “ 그래도 네 편 들어주잖아. ”

 

 “ 파트너니까, 열 살 때부터 알았어. ”

 

 “ 파트너 되기 전에 지나 사귄 적 없어, 정말? ”

 

 “ 왜 그런 걸 물어? ”

 

 “ 모두가 궁금해 하는 사실인걸. ”

 

 “ 없어. 지나는 동료야. ”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여자애들과 사귄 적이 없어. 그런 건 못해. 속이기 싫어. 걔들도, 나도. ”

 

 “ 어릴 땐 잘 모르잖아. 난 여자애들을 먼저 만났어. ”

 

 “ 난 어릴 때부터 알았어. ”

 

 

 미샤는 진통제 때문에 다시 속이 울렁거리는 듯 심호흡을 하더니 베개에 얼굴을 반쯤 파묻었다. 한동안 말이 없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그가 자는 줄 알고 침대에 흩어진 노트와 테이프를 치우기 시작했다.

 

 

 “ 넌 아마 결혼을 하게 될 거야, 안드레이. ”

 

 “ 그게 무슨 뜻이야? 왜 그런 말을 하지? ”

 

 “ 정상적으로 살고 싶어 하니까. ”

 

 

 트로이는 미샤의 얼굴에서 베개를 치웠다. 반쯤 감겨 있는 눈을 노려보면서 격하게 말했다.

 

 

 “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의사 선생 말이 맞아, 넌 사람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

 

 “ 미안. 화내지 마. ”

 

 

 미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다리의 상처 부위를 누르며 다치지 않은 쪽으로 돌아누웠다. 트로이는 병원 밖으로 나가 저녁이 될 때까지 네프스키 뒷길 구석구석을 걸었다.

 

 

 

..

 

 

결국 미샤는 지나이다의 말을 잘 들었을 것이다. 이후 파리 투어에 가기 때문이다 :0 일린도 볼쇼이에서 오게 된다. 그 이야기들은 중후반부에서 펼쳐진다. 이 소설을 비롯해 또다른 소설들에 나오는 일린의 이야기는 이 폴더에 몇번 따로 발췌한 적이 있다. 일린에 대한 얘기들은 여러번 올렸으니 링크는 생략.

미샤의 파리 투어에 대한 서구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040

 

..

 

지나이다가 미샤에게 너때문에 개막 공연 밀렸다면서 페테르고프 얘기를 하는 부분은 전에 올렸던 단편 illuminated wall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 단편에서 미샤는 페테르고프 권력자의 별장에 초청을 받아 춤을 추러 가야 하는 상황에서 제멋대로 행동했다. 전체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385

그리고 그 단편에 대해 지난 여름에 카잔 성당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레냐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레냐의 반응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38

 

 

..

 

파트너 무용수들 사진 몇장.

 

 

황금노예를 추는 파루흐 루지마토프. 조바이다 역의 상대 발레리나는 언뜻 얼굴 윤곽을 보면 일제 리에파나 이르마 니오라제를 닮았는데 정면 얼굴이 아니라서 좀 긴가민가하다... 마할리나와 아실무라토바는 아니고... 자하로바도 아니고...

(고백하자면 루지마토프에 눈이 멀어 상대역이 분간 안갑니다 흐흑 ㅠㅠ)

 

 

 

라 바야데르를 추는 파루흐 루지마토프와 율리야 마할리나(..옆얼굴과 체형, 키로 추정...)

 

위의 이야기에서 지나이다가 개막 공연 밀렸다고 다 너때문이라고 하는 공연이 바로 라 바야데르 얘기다. 이 소설에서는 예술감독 아사예프가 라 바야데르를 좀 다른 식으로 리메이크해 시즌 개막공연으로 올리는데 미샤와 지나이다가 주역인 솔로르와 니키야로 낙착되었다가 지나이다의 비난대로 미샤의 말썽 때문에(ㅜㅜ) 다른 날로 공연일정이 밀려버린다...

 

(내가 지나이다였으면 미샤 얼굴 세번은 할퀴었을듯 ㅋ)

 

 

 

한동안 뜸했기에... 이제부터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스페셜

사진은 모두 alex gouliaev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와 함께 젊은이와 죽음 리허설 중.

 

 

 

사진은 alex gouliaev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와 함께 젊은이와 죽음 리허설 중.

 

 

캡션대로 사진은 alex gouliaev

라트만스키 발레 신데렐라를 연습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이 발레는 우리나라에도 dvd로 나와있습니다. 라트만스키와 두 무용수의 팬들이라면 추천~

 

 

역시 캡션대로 사진은 alex gouliaev

라트만스키 발레 신데렐라를 연습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이것도 alex gouliaev.  

라트만스키 발레 신데렐라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새로운 글을 구상하면서 원래 써오던 글인 가브릴로프 본편은 잠깐 미뤄두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글인 건 변함이 없다. 그래서 새 글 구상을 하면서 동시에 이전에 좀 써둔 가브릴로프 본편을 훑어보고도 있다. 많이 쓰진 않아서 총 4개 장으로 이루어진 1부를 마치고 2부 첫장을 쓰다 중단되어 있다(그 다음부터는 이것의 패러디 외전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만 줄창 써서 ㅠㅠ) 

 

어제 본편 훑어보다 1부 3장에서 잠깐 생각을 돌이켜보았다. 3장에서는 지방 소도시 가브릴로프 극장에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미샤가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뤘었는데 이 장의 후반부는 이 도시의 특권층(노멘 클라투라)이자 나름대로 유력한 문예지 편집장인 렐랴가 미샤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렐랴는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도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이라 아마 서무 시리즈를 보신 분들은 친숙하실 것이다(미샤를 사모하여 맨날맨날 과자랑 케익 구워다 바치고 잼 만들어주고... 막상 실속은 없는 가브릴로프 최고 미녀로 등장했음) 렐랴의 성인 비슈네바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무용수 디아나 비슈뇨바에게서 따왔는데 액센트 위치만 바꾸어서 비슈뇨바 대신 비슈네바로 만들었다. 본편의 렐랴는 서무 시리즈에서처럼 코믹한 인물은 아니고... 이 인물을 데리고 전에 가브릴로프 추리외전도 쓴 적 있다. 거기선 무려 주인공으로 탐정 역할도 했었다만...

 

기존에 쓴 본편 우주의 여러 글에서 미샤가 자신의 예술관이나 관객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한 것은 매우 드물다. 물론 단편 하나와 장편 하나에서 그가 서방/소련 언론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두어번 쓴 적은 있지만 그 맥락은 달랐다. 그때까지 미샤는 안무가라기보다는 무용수였다. 그리고 안무가이자 감독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 가브릴로프 본편이 처음이고 훨씬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직접적'이라는 것이 언제나 '더 솔직한', 혹은 '더 자세한'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렐랴의 인터뷰 장면을 발췌해 본다. 관객을 대하는 미샤의 자세가 좀 나온다. 이 글을 쓸때 나는 작가이자 관객이었는데 그 둘 중 어느쪽이 우선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 쓴다고 해서 그가 '이렇게' 믿는다고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위험한 일이다.

 

초반에 언급되는 '먀흐킨'은 가브릴로프 극장의 극장장이자 시 의회 의원이며 렐랴의 외삼촌이다. (렐랴는 집안이 매우 좋다) 이 먀흐킨도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몇번 등장했다. 제일 큰 비중으로 나왔던 건 34편의 딸기 아가씨들과 바자회 에피소드였음. '비슈네브이 사드'는 벚꽃 동산이란 뜻으로(체호프의 유명한 희곡 제목이기도 함) 소설 속에서 렐랴가 편집장으로 있는 문예지 제목이다. 류다는 미샤의 비서인 류드밀라이다(이 사람도 서무 시리즈에 꾸준히 나왔음)

 

 

위의 사진은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내가 찍은 것.

 

 

 

이건 마린스키 브 콘탁테 페이지에 올라왔던 사진. 마린스키 극장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광경. 가운데 거대한 것은 샹들리에!!

 

 

사진사는 캡션에 있듯 Podorozhny. 볼쇼이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바라본 무대 연습 장면.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물론 렐랴는 자신이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이며 문화예술 애호가라고 생각했다. 예술계 인사를 인터뷰할 때는 정치적 문제나 이념, 사생활 등으로 인한 선입견은 배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샤 야스민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마치 생일 선물을 받으러 가는 어린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원래 취임식 당일에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미샤가 일정이 빠듯해서 겨우 두 개의 인터뷰에만 응한 데다 문예지보다는 텔레비전 방송사와 연방 홍보국의 입김이 더 셌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리고 렐랴에게 필요했던 것은 겨우 2~3분짜리 홍보 인터뷰가 아니라 비슈네브이 사드 10월호 커버스토리에 어울리는 심도 깊은 대담이었다. 그 인터뷰는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절반은 렐랴의 생각대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오후 2시에 그녀는 사진사 한 명을 대동한 채 녹음기와 노트를 들고 미샤를 만나러 갔다. 극장은 썰렁했다. 사람도 없었다. 비서실조차 비어 있었다. 처음에 렐랴는 다들 젊은 감독에 맞서 파업이라도 하는 건가 하고 깜짝 놀랐지만 곧 그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극장 휴일이었다. 약속 날짜를 착각했나 하는 불안감도 잠깐, 렐랴가 노크를 하자 미샤가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렐랴는 무대의 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조명과 의상, 메이크업의 트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았다. 달리 배우들에 대한 기사에서 ‘ㅇㅇ는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와는 달리 사석에서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먀흐킨조차도 첫날 미샤와 만나고 돌아온 후 호기심에 가득 찬 렐랴의 질문에 약간 마뜩치 않은 어조로 대꾸했다.

 

 

 “ 그렇게 눈에 띄는 친구는 아니었어. 생각보다 작아, 자작나무처럼 야윈 게 데니스 체격의 반 밖에 안 될 거 같더라니까. 전에 무대에서 봤을 때는 꽤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애가 어떻게 발레리나들을 들고 돌렸는지 모르겠더구나. 게다가 너무 어려 보여서 깜짝 놀랐단다. 데뷔한지 7~8년이 다 됐으니 스물다섯은 넘겼을 텐데 학생처럼 보였어. 렐렌카 너보다 더 어려보이더구나. 하긴 우리 수석 남자애들보다 더 젊지. 류다가 옆에서 보더니 새 감독님은 인형처럼 곱상하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어. 생긴 것도 그렇고 말수도 적은 게 기 센 극장 사람들을 어떻게 휘어잡을지 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단다. 뭐 나름대로 강단 있는 친구라니까 지켜보긴 해야겠지... ”

 

 

 눈앞에서 미샤 야스민을 마주 대했을 때 렐랴는 먀흐킨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반쯤 이해했다. 그녀의 외삼촌은 여러 극장들을 거쳐 온 데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시 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를 평가할 때 당당한 풍채와 큰 목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복 차림의 미샤는 극장장의 말대로 앳된 대학생처럼 보였지만 그건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렐랴는 그가 움직이는 방식에 매료되었고 레닌그라드 액센트와 차분한 말투에 대해서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렐랴는 비슈네브이 사드의 특집 기사를 다음과 같은 거창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곁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는 민첩하고 유연한 짐승처럼 보인다. 그는 삐걱거리는 복도와 낡은 사무실, 낙엽이 쌓여 있는 좁은 길, 일상적인 모든 공간을 순식간에 극장 무대로 변형시킨다. 그가 입을 열면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과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결코 충돌 관계에 놓여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마치 칼날에 벨벳을 두른 것처럼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그의 무대를 연상시킨다. ’

 

 

 미샤는 비교적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했지만 렐랴의 모든 질문에 답변한 것은 아니었다. 키로프와 볼쇼이 시절 무대에 대해, 기존 안무작에 대해서는 그래도 성실하게 답했지만 발레 팬인 렐랴는 이미 예전 인터뷰를 통해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렐랴는 해외 유명 극장들에서의 공연과 뉴욕 발레단과의 협업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미샤는 무용수로서든 안무가로서든 좋은 경험이었다는 대답 한 마디로 피해갔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어차피 검열국에 넘어가기 전에 자신이 모두 편집할 테니 너무 조심스러워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초면부터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꾹 참았다.

 

 

 그래서 그녀는 화제를 바꾸었다. 레닌그라드에서 살다가 지방 소도시로 옮겨와서 답답하지 않은지, 가브릴로프의 첫 인상이 어떤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미샤는 나무가 많고 강이 아름다워서 좋다고 대답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한 렐랴는 첫 번째 질문을 되풀이했다.

 

 

 “ 음, 여기는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와는 물론 완전히 다르죠. 전 지금까지 조용한 곳에서 지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숲이 많은 곳에서도. 전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고무되곤 해요. 답답함을 느낄 겨를이 없죠. 도처에 모르는 것들이 가득하니까요. 지금은 할 일도 굉장히 많고요. ”

 

 “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가브릴로프에는 싸움꾼과 성자 밖에 없다는 옛말이 있거든요. 아주 다혈질에 공격적인 성미거나 아예 온순하거나 둘 중 하나고 중간은 없다고요. 전형적인 시골 사람들의 특징이죠. ”

 

 “ 그런가요? 전 사람들은 어디나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차이를 잘 모르겠던데. ”

 

 “ 레닌그라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의를 차리고 외교적인 미사여구를 구사한다던데 사실인 것 같네요. ”

 

 

 미샤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렐랴의 말을 부정하려 들지는 않았다. 렐랴가 새로 맡은 감독직에 대해, 극장에 대한 전반적 의견과 발레단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는 원론적이고 짤막한 답변만 했다. 렐랴가 신임감독의 어려움이나 극장 내부 인사들의 텃세 여부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아직 2주도 안돼서요. 지금으로서는 할 얘기가 별로 없군요. ”

 

 “ 하지만 매일 공연을 보고 계시잖아요. 그것도 백스테이지가 아니라 관객석에서. 사실 그 소식도 꽤 신선했거든요. 이제껏 그런 예술감독은 없었어요. ”

 

 “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하니까요. 아마 제가 무용수였다면 다른 식으로 행동했을지도 모르죠. ”

 

 “ 무대는 백스테이지에서도 볼 수 있잖아요. 감독이나 연출가들은 보통 그렇게 하지 않나요? ”

 

 “ 시간이 좀 지나면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

 

 “ 왜 지금은 그렇지 않죠? 아직 우리 극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셨다는 건가요? 볼쇼이나 키로프 같은 큰 극장 무대에도 작품을 올리셨잖아요. 그에 비하면 가브릴로프 극장은 규모도 작고 레퍼토리도 단순한데. 연출도 여러 번 해보셨으니 무대의 구조나 동선은 한두 번만 봐도 전부 파악하실 수 있지 않나요? ”

 

 “ 제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것 같군요. 전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한다고 말했죠. 그건 관객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어요. ”

 

 “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지? ”

 

 “ 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공연을 보는지. 극장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야기하고 보고 느끼는지. 그 모든 것이 중요해요.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무대는 절반만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극장은 예술가의 자기만족과 독백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

 

 “ 좀 의외네요. 전 당신이 엘리트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렇죠. 관객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보통 하지 않잖아요. 관객들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이성의 영역이죠. 이해하지 못하고도 사랑할 수 있고 슬퍼할 수도 있어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고요. 그들로 하여금 뭔가를 느끼게 만들 수 없다면 그건 실패한 공연이에요. ”

 

 “ 백조의 호수나 지젤이라면 모르지만 관객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어떤 감정적 고양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

 

 “ 하지만 즐거워하죠. 아기자기한 무대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발레리나들의 화려한 의상과 움직임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감정적 고양이란 꼭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만은 아니에요. 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끔 빠져드는 함정이 있죠. 장엄하고 영웅적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지 않으면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 그건 일종의 도그마예요. 기본적으로 예술이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거기에는 진정성이 필요해요. ”

 

 “ 호두까기를 보면서 웃는 어린아이들과 잠자는 미녀를 보면서 그 구조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발레 애호가들이 원칙적으로는 동일하고 평등한 관객이라는 것인가요? ”

 

 “ 네. ”

 

 “ 그건 가브릴로프 극장 예술감독으로서의 가치관인가요, 아니면 무용수이자 창작자인 미하일 야스민의 믿음인가요? ”

 

 “ 감독으로서의 저와 예술가로서의 저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관객에 대한 제 태도는 전자든 후자든 변함없을 거예요. ”

 

 “ 그것이 당신이 무대에서 그 수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밀인가요?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는 것? ”

 

 “ 조금은요. ”

 

 “ 그럼 나머지는 뭐죠? ”

 

 “ 그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

 

 “ 그런가요? 보통 그런 힘을 가리켜 재능이라고들 하죠. 우리 가브릴로프에서는 천사가 날개로 쓰다듬고 지나갔다고 해요. ”

 

 

 미샤는 다시 소리 없이 웃었다. 렐랴는 그가 재능에 대한 칭찬 앞에서 점잔을 빼거나 겸손한 척 고개를 젓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긴 학창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을 얘기일 것이다.

 

 

 그녀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오디션에 대해서도 물었다. 미샤는 레베진스키에게 했던 대답을 짧게 되풀이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극장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나갈지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레퍼토리를 다양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15년에 달하는 파벨 쿠즈네초프의 재임 기간 동안 극장이 정체 상태에 빠졌고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많은데 이를 어떤 식으로 타개할 생각인지, 키로프를 가브릴로프 극장의 이상적인 발전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미샤는 잠깐 침묵했다가 천천히 대꾸했다.

 

 

 “ 그건 아직 모르겠군요. 시즌이 좀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극장은 키로프와는 다르죠. 역사도 문화도, 무용수들의 성장 배경이나 기질도 달라요. 같은 도시가 어디에도 없듯이 극장도 마찬가지예요. 극장을 빵 찍어내듯 똑같이 만들 수는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

 

 “ 사람들은 어디서나 같다고 생각하신다면서요, 도시와 극장은 어째서 다른가요? ”

 

 “ 글쎄요. 어쩌면 사람들이 결국 같지 않은지도 모르죠. ”

 

 

 미샤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공식적인 인터뷰를 끝낸 후 렐랴는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개 던졌다. 좋아하는 색깔이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작가라든지, 이상형이라든지, 혹시 레닌그라드에 연인이 남아 있는지도 살짝 떠보았다. 미샤는 대부분의 질문을 침묵이나 미소로 넘겼다. 그가 사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렐랴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농담을 섞어 물었다.

 

 

 “ 사무실로 절 안내하신 이유는 접견실 문이 잠겼기 때문인가요? 월요일이라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극장장이나 감독 인터뷰는 항상 접견실에서 했었거든요. 아니면 접견실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전 항상 거기 들어가면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테리어도 그렇고 좀 제정 시대 느낌이... ”

 

 “ 아뇨. 전 어디든 별로 상관없는데 어제 세탁 때문에 접견실 커튼을 모두 벗겨냈다고 해서요. 햇빛도 강하게 들어오고 살충제도 잔뜩 놨으니 오늘은 들어가지 말라고 류다가 당부해서요. 운 나쁘면 바퀴벌레들을 밟게 될 거라고 경고하더군요. ”

 

 

 렐랴는 하마터면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농담인지 진지하게 얘기하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 유명한 스타를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사진사 주보프의 간곡한 부탁으로 무대와 발코니 좌석에서 추가로 사진을 찍느라 15분 정도가 더 소요되었다. 주보프는 요청이나 지시도 없이 그저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을 뿐이었다. 심지어 미샤는 별다른 포즈를 취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세묜 주보프는 시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사진사였지만 예술가적 자존심이 센데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심지어 유명 인사들에게조차 이렇게 앉아라 저렇게 머리를 돌려라 하며 들들 볶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주보프는 술에 취한 듯, 필름 구입예산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댔다. 꼭 기관총 사수 같았다. 나중에 현상된 사진들을 보고서야 렐랴는 주보프가 왜 미샤에게 그렇게 관대했는지 이해했다.

 

 

 “ 그런 피사체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지. ”

 

 “ 하긴 그 사람 진짜 미남이긴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20페이지 쯤 늘려서 이 사진들 전부 컬러로 싣고 싶네요. ”

 

 “ 그런 것과는 좀 달라. 외모가 아무리 잘 나면 뭘 하나, 당장 우리 극장에도 얼굴만 예쁘고 나머지는 나무토막 같은 애들이 태반인데. 이 친구는 특별한 경우야. 그건 타고 나는 거지. 가뭄에 콩 나듯 그런 사람이 있어. 렌즈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사람. 춤추는 걸 찍었어야 했는데... ”

 

 

 주보프는 못내 아쉬워했다.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해달라는 그의 유일한 부탁을 미샤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 전 이제 춤을 추지 않아서요. ”

 

 주보프는 그 유명한 포즈를 찍기 위해 당장이라도 미샤의 발아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지만 렐랴는 키로프 시절 사진을 한 장 가져다 쓰면 된다고 그를 부드럽게 진정시켰다. 사실 그녀도 실망했지만 콧대 높은 예술가의 변덕에 간섭해봤자 좋을 일이 없다고 마음을 달랬다.

 

 

 

 

...

 

 

 

무용수들 사진 몇 장.

먼저 루돌프 누레예프. 주보프는 이 사람 앞에서도 넋을 잃고 셔터를 눌러댔을 것이다.

 

 

루돌프 누레예프. 햄릿 중에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이 사람의 포즈도 정말 아름답다.

 

 

 

 

90년대 키로프-마린스키 시절의 율리야 마할리나. 마린스키 극장 좌석에 앉아서.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역시 사진은 nina alovert

피사체로서의 매력이 넘치는 무용수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카리스마를 내뿜는 젊은 시절의 파루흐 루지마토프.

 

위의 누레예프, 말라호프, 루지마토프 모두 각각 서로 다른 면에서 무용수로서의 미샤에게 조금씩 영감을 준 인물들이다.

 

 

 

파루흐 루지마토프 한 장 더.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팬심으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도 한 장.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이건 내가 이번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찍은 사진들 몇장. 관객으로서 찍은 사진들 :)

 

 

 

 

 

 

 

 

이 사진은 볼쇼이 무용수인 아르춈 옵차렌코와 디아나 비슈뇨바. 몇달 전 마린스키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함께 췄는데 이건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리허설 장면이다.

 

 

 

프리드리만 보겔.

 

 

 

이건 내가 폰으로 찍은 사진. 여기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예전에 맡은 업무 때문에 하루종일 여기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찍음... 여러 모로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기억은 지우고 싶다만... 덕분에 백스테이지와 분장실, 음향, 조명 등 이것저것 많이 훑었고 그것만으로도 내겐 수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렐랴와 먀흐킨, 미샤 등이 코믹한 패러디 버전으로 등장해 복작거리는 외전 에피소드들이 궁금하시면 서무의 슬픔 시리즈 폴더를 보세요~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지금 구상하는 글은 미샤가 등장하는 본편이나 외전 우주에 속해 있지 않으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약간은 연관되는 것 같기도 해서... 사진과 메모들 뒤지다가...

 

종종 발췌해 올렸던 본편 우주 장편(미샤의 친구이자 애인인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옴) 중반부에는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아주 인기많았던 제과점(..이자 지금도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사랑하는 옛날식 제과점) 세베르와 그곳에서 파는 케익에 대한 얘기를 두어번 썼다.

 

세베르랑 거기서 내가 좋아하던 까르또슈까(위의 저 초콜릿 경단 같은 디저트)에 대해 떠올리다가... 아래 부분을 발췌해본다. 세베르와 케익에 대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고... 미샤와 파트너 발레리나 지나이다의 티격태격 메모도 있고 미샤의 아파트 묘사도 있다. 그리고 미샤도 물론 등장한다.

 

미샤는 단 걸 안 먹지만... 그러나 그 역시 좋아하는 케익이 있긴 있었으니... ㅠㅠ

 

그리고 파트너이자 한 아파트 동거인인 지나이다와의 관계는 이러했으니...

 

소설 중반부. 배경은 1975년 말. 미샤는 스무살이고 키로프 수석무용수로 잘 나가고 있으며 지나이다와는 최고의 파트너쉽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알리나 소모바의 연습실 장면. 파트너들의 연습실 느낌이 좋아서 여기 올려본다. 사진은 alex gouliaev.

 

..

 

 

'세도바'는 지나이다의 성, 맨앞에 나오는 '크류코바'는 당시 키로프 최고의 발레리나로 신입이었던 미샤를 전격 자기 파트너로 발탁했던 인물이다(두딘스카야 같은 존재였음. 물론 내가 만들어낸 인물)

'코무날카'는 공동아파트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12월 하순부터 미샤는 한동안 극장 근처의 자기 아파트에 머물렀다. 크류코바의 부상으로 지나이다가 비엔나와 프라하, 바르샤바 투어에도 투입되었기 때문에 집이 비었고 호두까기 인형에 캐스팅되어 연습 때문에 바빴기 때문이다. 미샤는 그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역을 추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열심이었다.

 

 

그날은 공연이 없는 월요일이었다. 미샤가 아침에 극장에서 트로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침이라는 것과 전화를 했다는 것 둘 다 드문 일이었다. 그는 혹시 아파트에 자신의 노트와 파란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필름,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초기 단편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트로이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부엌 식탁과 책장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노트랑 케이스는 찾았고, 책은 없어. 너 그 책은 우리 집에 가져온 적 없었던 것 같은데? ”

 

“ 너 혹시 ‘백야’ 있어? ”

 

“ 아, 그건 있어. 극장으로 가져다줄까? ”

 

“ 아니, 괜찮아. 금방 집에 들어갈 거라서. 저녁에 들를게. ”

 

급하게 필요한 거라면 집으로 갖다 줄게. 어차피 강의 때문에 나가야 해. ”

 

“ 아, 그럼 부탁해. 고마워. ”

 

 

트로이는 책장 구석에서 ‘백야’가 수록되어 있는 19세기 단편 모음집을 찾아냈다. 오래된 책이라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뜬금없이 왜 그 소설을 찾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샤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해서 학창 시절에도 종종 트로이와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지만 그 대상은 주로 유형 이후 발표한 작품들이었다. 백야는 그의 취향에 비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그는 가방에 책과 필름 케이스, 그리고 표지가 반쯤 접힌 노트를 챙겼다. 미샤는 항상 노트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리허설 중인 춤의 동선을 짜고 리브레토를 재구성하는가 하면 오선도 생략한 채 음표와 기호를 휘갈겨 놓았다. 소설이나 시의 구절 몇 개를 불쑥 적어 놓을 때도 있었고 가끔은 오로지 숫자들만 써내려갔다. 트로이의 눈에 그 노트들은 2차 대전 암호 해독서나 이사악의 물리학 강의 메모보다도 더 복잡하게 보였다.

 

 

가방에 집어넣기 전에 노트를 넘겨보니 춤과 관련된 예의 그 수수께끼 같은 수많은 메모들이 빽빽했지만 중간 중간에 녹색 볼펜으로 휘갈긴 다른 사람의 글씨도 등장했다. 필체와 색깔이 계속해서 같은 것을 보니 동일인이었다. 내용을 보니 파트너인 지나이다가 분명했다. 그녀는 미샤의 메모에 동그라미를 쳐놓기도 하고 커다랗게 가위표를 슥슥 그어놓기도 했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돼,네가 계속 포앙트를 고집하면 아사예프가 혈압으로 쓰러질 거야,그 잘난 앙트르샤 횟수 좀 줄이시지! 따위의 메모가 힘찬 필체로 따라나왔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메모도 등장했다.

 

 

 아까 누가 세베르에서 모코를 한판 사다줬어. 빨리 끝내고 먹자 라는 어쩐지 간절하게 느껴지는 녹색 글씨 아래 평소와는 달리 인쇄체로 또박또박 적어 놓은한조각도 아니고 한판! 몸매 관리 안하시나, 여왕님? 이 이어졌다. 미샤의 반짝거리는 까만 눈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녹색 글씨가 다시 이어졌다. 한판 다 해치우고 10킬로 쪄서 누구 허리를 분질러버릴 테야!

 

메모의 마지막은 다 먹지 말고 나도 한조각만 줘라는 하소연으로 끝났다.

 

 

 

파트너들의 대화에 매료된 트로이는 페이지를 더 넘겨보았다. 평소에 별로 장난기도 없고 애교는 더욱 없는 미샤가 지나이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어쩌면 10여 년 동안 쌓여온 친밀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생리 첫날이니까 알아서 잘해.

 

내가 피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다른데 피나게 해주겠어!

 

 

 

 

제발 넥타이 매고 와, 파리에 가고 싶으면 내 말 들어 !

 

타이 잃어버렸어

 

나가서 사와, 정 안되면 레냐 거 빌려.

 

정장 싫어

 

.. 들어.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주 짧게 휘갈겨 쓴 메모가 있었다.

 

 

일린 오는 걸로 결정. 기뻐?

 

아주!

 

 

 

또 다시 그 이름이 있었다. 일린. 짧고 명료하게 울리는 이름.

 

 

 

그는 강의 자료도 함께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극장 거리까지는 가까웠으므로 걸어갈까 했지만 다시 눈보라가 치고 있었으므로 버스를 탔다.

 

 

잠시 그는 네프스키로 나가 세베르에서 모코를 한조각 살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미샤는 케익이나 초콜릿을 기피하는 편이었지만 트로이는 라리사의 집에 가서야 그가 단 것을 정말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제어하는 것뿐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모코는 별로 달지도 않았다, 버터크림과 견과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케익 한조각이 아니라 한판을 그 자리에서 다 해치워도 전혀 문제가 없을 몸을 가진 애가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운다는 게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릴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여섯 살 이후로는 썰매도 타러 간 적이 없고 스케이트나 스키는 더더욱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축구를 해보기는커녕 제니트와 스파르탁조차 구분 못할 것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해진 스트레칭을 마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음식이 싱겁더라도 결코 소금을 더 치지 않았다. 그처럼 자기 제어에 뛰어난 사람이 어째서 규율이 관련된 일이나 애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미샤 야스민을 샅샅이 이해해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   *   *

 

 

 

 

미샤는 아직 극장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파트 문은 잠겨 있었지만 트로이는 예비 열쇠를 한 벌 가지고 있었다. 미샤가 어머니도 아니고 자신에게 그 열쇠를 건네줬다는 데 트로이는 남몰래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미샤와 지나이다의 아파트는 19세기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완전히 최신식으로 수리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넓은 집이라면 적어도 서너 가구가 들어와 사는 코무날카여야 정상이었다. 다닐로프가 주택관리국에 수완을 발휘한 것인지, 지나이다의 막강한 부모가 실력을 행사한 것인지, 아니면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배후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원래 스타들에게는 그 정도 대접을 해주는 건지도 몰랐다. 널찍한 거실 벽에는 바와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고 나무 마루가 깔려 있었다. 지나이다가 가져온 소형 피아노도 한 대 있었다.

 

 

잠시 트로이는 몇 년 전 타냐의 생일에 미샤가 늦게 도착한 벌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아마 72년이었던 것 같았다, 미샤가 학교에 다닐 때였으니까. 그때 그는 지겨운 생일 축하곡 대신 타냐가 좋아하는 데이빗 보위의 불경스러운 노래를 불렀는데 기억은 흐릿하지만 ‘The man who sold the world’ 였던 것 같았다. 기타 대신 피아노를 치면서 불렀는데 그때 트로이는 그 애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노래를 하는 것도 처음 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는지 피아노를 꽤 잘 쳤다. 노래는 말투와 똑같았다, 나직하고 또렷하고 시를 읊는 것처럼 근사하게 불렀다. 타냐는 좋아서 반쯤 울었고 다른 친구들은 반주자를 찾아낸 게 기뻐서 족히 한 시간 가까이 미샤에게 각종 로큰롤 연주를 시켰다. 그때 트로이는 그 애를 향한 은밀한 갈망으로 몸을 태우고 있었고 한동안 보위 노래만 들으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타냐의 집에 들르면 피아노 쪽은 쳐다볼 수도 없었다.

 

 

미샤와 지나이다는 양쪽 끝에 있는 침실을 쓰고 있었다. 호화스런 아파트답게 각각 욕실이 딸려 있었다. 두 침실 사이에도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손님용 침실로 쓸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지나이다의 의상과 각종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미샤는 현관에서 제일 가까운 쪽에 있는 방을 그런 용도로 썼다. 그는 기사도를 발휘해 지나이다에게 남향의 넓은 방들을 내주고 아파트 내부도 그녀의 강렬하고 화려한 취향대로 꾸미도록 내버려두었다. 하긴 집에 제대로 머무는 적이 없으니 신사답게 행동한 거라기보다는 그저 귀찮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천정이 매우 높은 집이었는데 나선계단을 따라 조그맣게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고 평소에는 비워두는 손님용 침실이 하나 있었다.

 

 

부엌은 넓고 밝았으며 거실 한쪽에는 조그만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거실의 바를 제외하고는 둘이 유일하게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었는데 일종의 서재였다. 세 개의 책장에 발레와 음악, 미술, 극장 관련 서적들과 레코드, 테이프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가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는 장식 술이 달린 꽃무늬 숄이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고 나머지 의자에는 낯익은 노트 두 권이 놓여 있었다. 지나이다와 미샤가 그 조그만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자 이해할 수 없는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애 감정이나 성적 긴장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하긴 그는 지나이다의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므로 속단할 수도 없었다.

 

 

 

거실의 티 테이블 위에 노트와 필름 케이스, 책을 내려놓고 막 나가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미샤가 들어왔다. 극장에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현관에서 모자와 코트를 벗어 눈을 대충 털어냈다. 눈썹과 속눈썹, 입술 위에도 눈과 얼음이 붙어 반짝거렸다. 뺨과 턱에는 붉은색 얼룩이 있었다.

 

 

“ 목도리는 어쨌어? ”

 

“ 극장 나오는데 처음 보는 여자애들이 달려들어서 벗겨갔어. ”

 

“ 그나마 모자는 지켰네. ”

 

“ 머리 뜯길 뻔 했어. 단추는 몇 개 뜯겼어. ”

 

“ 얼굴에 묻은 건 뭐야, 립스틱이야? ”

 

 

미샤가 현관에 붙어 있는 거울을 힐끗 보더니 짜증도 내지 않고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 다닐로프가 차 줬을 때 그냥 받지 그랬어. 얼굴 다 알려졌는데 그렇게 걸어 다니다간 팬들한테 진짜로 봉변당한다. ”

 

“ 그래, 차를 사긴 해야겠다. ”

 

 

순순히 동조하면서 미샤가 하품을 했다. 욕실 쪽으로 걸어가면서 스웨터를 벗고 나머지 옷들을 하나하나 벗어 떨어뜨렸다. 왼쪽 어깨와 등 사이에 달걀만한 멍이 들어 있었다. 색깔을 보니 새것이었다.

 

 

“ 등은 왜 그래? ”

 

“ 아까 스텝이 꼬여서 자빠졌어. ”

 

“ 호두까기가 그렇게 어려워? ”

 

“ 아니, 그거 말고. 나 혼자 뭐 좀 연습하다가. ”

 

“ 너도 그렇게 넘어지는구나. ”

 

연습할 땐 많이 넘어져. 그래도 지나를 떨어뜨린 적은 없어서 다행이야. ”

 

“ 지나 말고 다른 여자들은 떨어뜨린 적 있어? ”

 

음, 그때 이바누슈카 리허설 하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옥사나를 제대로 놓친 적이 있어.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었지. 그래서 옥사나가 날 별로 안 좋아해. ”

 

의외네, 그 여잔 지나보다 더 조그맣잖아. 난 폴리나일 거라고 생각했어. ”

 

“ 폴리나는 테크닉이 좋다니까 왜 아무도 안 믿는지 모르겠네. 키가 180센티인 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닌데. ”

 

“ 어쨌든 어깨 다쳤잖아. ”

 

“ 폴리나 때문이 아냐, 연습할 때 내가 균형을 잃어서 그랬어. ”

 

 

어깨를 한쪽으로 돌리면서 미샤가 욕실로 들어가려다 트로이 쪽을 돌아보았다.

 

 

“ 강의 언제야? ”

 

“ 아, 지금 가야 해. 티 테이블 위에 책이랑 다 놔뒀어. ”

 

“ 고마워. ”

 

“ 넌? 다시 극장에 갈 거야? ”

 

“ 아니, 연구해볼 게 있어. 좀 자고 나서. ”

 

“ 그래, 눈 좀 붙여라. 며칠 못 잔 얼굴이네. ”

 

“ 얼굴은 그 아가씨들이 쥐어뜯어서 그런 거야. ”

 

“ 그래도 다 네 관객들이니 받아들여. 네 무대를 좋아하잖아. ”

 

“ 글쎄, 그건 그냥 가수나 배우 사진을 모으는 것 같은 거야. 대부분의 관객들은 극장에 꿈을 꾸러 와. 환각을 보러 오는 거지. 원하는 걸 주지 않으면 돌변할 거야. ”

 

“ 설마 무대에 불이라도 지르겠냐. ”

 

“ 괜찮은 관객들이라면 배우를 찢어죽이겠지. ”

 

“ 그런 말 하지 마. 관객들 무시하지 말고. 어쨌든 널 보러 오는 거니까. ”

 

“ 무시하지 않아. 내가 그랬잖아, ‘괜찮은’ 관객들이라고. ”

 

 

이제 옆으로 번져버린 붉은 얼룩과 눈 아래 깊게 패인 그림자 너머 아직도 그 황폐하고 어두운 표정이 남아 있었다. 잠시 그는 강의를 빼먹고 이곳에 남아 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미샤가 너무 피곤해 보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도록 내버려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공연 목요일이지? 타냐랑 보러 갈게. ”

 

“ 응, 그때 봐. ”

 

 

미샤가 욕실로 들어간 후 트로이는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옷가지들과 가방을 주워서 소파에 올려놓았다. 지퍼가 열린 가방에서 리본 달린 곰 인형과 캔디 상자들과 향수를 뿌린 예쁜 편지 봉투 몇 개가 쏟아졌다. 봉투에 들어 있지 않은 카드도 한 장 있었는데 호기심에 펼쳐보니 피처럼 새빨간 잉크로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세도바와 당장 헤어져요!

안 그러면 그년한테 황산을 끼얹을 거야!

 

 

 

그 끔찍한 카드를 내려놓은 후 그는 코트를 입었다. 왜 그 메시지를 읽었는데도 지나이다가 아니라 미샤가 걱정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지나이다는 그런 협박을 두려워하기에는 너무나 당당한 여왕님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니콜카 이후 그는 미샤가 어디선가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무서운 일이 생긴다면 정부들 중 하나의 짓이겠지만 카드를 보고 나니 극성팬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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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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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들의 연습실 사진 두 장 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신데렐라 리허설.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도로테 질베르의 라 바야데르 리허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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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가 트로이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가져다달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 챕터에서 볼쇼이에서 온 안무가 일린이 미샤를 위해 이 작품을 안무해주기 때문이다. 일린에 대한 이야기는 이 writing 폴더에서 여러번 발췌했으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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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에서 인용되는 극성팬의 카드 협박에 대한 얘기는, 사실 세르게이 필린 황산투척 사건보다 이전에 쓴 것이다. 광팬들이 많은 미샤의 특성상 저런 협박편지를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볼쇼이에서 필린 황산 테러 사건이 일어나서 깜짝 놀랐다. 심지어 황산까지 똑같다. 역시 저 동네 무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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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트는 페테르부르크 축구팀, 스파르탁은 모스크바 축구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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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가 '라리사의 집'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은 전에 발췌한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라리사는 트로이의 아버지가 재혼한 리가의 여인이다. 트로이와 미샤는 그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는다.

그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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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이다와 미샤가 주고받은 메모와 트로이의 상념 속에 등장하는 세베르와 모코에 대한 메모는 아래... 몇년 전 따로 글에 등장하는 장소나 주요 소재에 대해 정리할때 개인용 블로그에 썼던 메모이다.

 

 

 

<'세베르'와 '모코'에 대한 메모 : 2013년 9월>

 

 

 

 

 

 

 

러시아어로 세베르(СЕВЕР), 즉 북쪽이라는 뜻의 유명한 디저트 카페이다. 올해 110년이 되었으니 소련 전환 이전에 생긴 곳인데 지금도 유명하다.
 

네프스키 대로 한복판의 어느 건물 반지하에 위치한 세베르는 딱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디저트들과 빵, 케익, 쿠키가 가득한 곳이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널찍하고 쾌적한 카페로 바뀌었지만 내 기억 속 90년대말 세베르는 어두컴컴한 조명과 불친절한 점원들, 높은 원탁을 둘러싸고 선 채 종이접시에 얹힌 조각 케익(삐로즈노예)이나 파이, 까르또슈까를 먹고 종이컵에 담긴 싸구려 티백 홍차나 진한 커피에 설탕을 부어먹는 러시아인들로 득실거리던 아주 소련답고 러시아다운 카페였다.
 


 

지금은 페테르부르크에도 워낙 세련되고 현대적인 카페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리모델링을 했어도 세베르는 좀 아날로그 풍이고 '옛날 카페'란 느낌이 난다. 파는 케익이나 과자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여전히 중년 부인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는다. 


 

나는 이 소설의 중반부에서 세베르를 한번 등장시켰다. 트로이가 할머니를 위해 까르또슈까를 사러 갔다가 카페 구석 원탁에 모여 차를 마시며 얘기 중이던 미샤와 그의 극장 동료들과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물론 트로이와 미샤는 레닌그라드 토박이였으므로 세베르는 아주 친숙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세베르에서 미샤는 트로이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그가 좋아하는 메도빅과 커피를 권해준다. 이곳에서 트로이는 그에게 아주 불편한 존재로 각인되는 볼쇼이 출신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을 소개받는다.

 

 

 

 

 

 

 

 

요즘은 이렇게 환하고 널찍한 카페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 훨씬 좁고 어두웠으며 의자도 없이 둥글고 높은 테이블들만 몇개 늘어서 있어서 사람들이 그걸 둘러싸고 와글거리며 케익과 차를 먹었다.

 



이 사진은 작년(2012년)에 내가 갔을 때. 까르또슈까랑 홍차 먹는 중. 이젠 종이접시도 종이컵도 아니다!

 

 

 

 



이것은 모코. 세베르에서 유명한 케익 중 하나. Mokko(모코)라는 케익으로 버터크림, 커피, 코냑, 초콜릿 등이 들어간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꽤 투박하고 촌스러운 옛날 아날로그 풍 케익인데 의외로 아주 맛있다. 90년대 페테르부르크에 살 때 가끔 조각케익으로 사먹었고 생일날에는 통 크게 조그만 케익을 한 판 사기도 했다.


 
이번에도 사와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더 이상 모코는 조각 케익으로는 팔지 않고 저렇게 한 판 단위로만 팔고 있었다 ㅠㅠ

 

소설에서 미샤와 지나이다는 둘 다 이 케익을 좋아하는데 단 것을 일단 먹고 보자 주의의 지나이다와 달리 미샤는 스파르타식으로 '단거 안먹어!' 하고 끝끝내 안 먹고 버티는 타입이다. (하지만 저 모코를 매우 먹고 싶어하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이 사진들은 지금 세베르에서 팔고 있는 케익들.


 
물론 티라미수 같은 '서구식', '요즘' 케익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련 시절부터 팔던 전통적 케익들이다. 모양도 그렇고 맛도 꽤나 소박하고 달콤한데 먹을수록 정감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버터크림이 주종을 이룬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딱 '옛날; '아날로그' 맛이 난다.

 

 

 

 

** 위의 메모에서 언급되는 세베르에서 트로이가 미샤의 친구들과 일린을 만나는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발췌해 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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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샤가 타냐의 생일에 불렀던 데이빗 보위의 노래 'The man who sold the world’ 실제 노래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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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이번에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공연을 여러 차례 봤다. 마린스키에서 5회, 미하일로프스키에서 2회, 알렉산드린스키에서 에이프만 발레까지 총 8번을 봤는데 아주 좋았던 것도 있고 그럭저럭이었던 공연도 있었다.

 

극장에 가면 종종 나는 쓰고 있는 글에 대해 생각하거나 인물들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마린스키에 가면 더 그렇다. 내가 데리고 쓰는 주인공이 그곳 출신이기 때문이다. 근 10년만에 에이프만의 공연을 보았을 때는 내가 왜 이 인물을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오랜 옛날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었다.

 

발췌한 부분은 3년 전에 쓴 장편의 중반부이다. 배경은 1974년에서 1975년 초. 주인공 미샤가 키로프 극장에 입단해서 두번째 시즌을 맞이했을 때이다. 이 부분에서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그리고 곱사등이 망아지의 이바누슈카를 춘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라브로프스키 버전. 여기의 곱사등이 망아지는 요즘 마린스키에 올라가는 라트만스키 버전이 아니고 나의 본편 우주에서 당시 키로프 예술감독(허구의 인물) 보리스 아사예프가 새롭게 안무한 버전이다. 둘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고 배역도 마찬가지인데 여기서 미샤는 조금 다른 식으로 춤춘다.

 

하지만 이 글을 쓸때 나는 춤에 대해서만 쓰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이 글의 진짜 화자는 트로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샤가 정장에 샴페인을 엎지르는 얘기도 나왔다. 그 얘기는 아래...

 

 

(... 글에 언급되는 보리스 아사예프는 키로프 예술감독, 다닐로프는 행정감독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허구로 만들어낸 극장 구조와 인물들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두번째로 맞이한 가을 시즌에서 미샤는 지나이다와 짝을 이루어 춤추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더 이상 크류코바나 다른 인민예술가 파트너가 필요하지 않았다. 관객들은 그 젊은 무용수가 무대 위에 꼼짝도 않고 두 시간 동안 앉아 있기만 해도 극장에 찾아올 기세였다. 그와 지나이다는 첫해에 미처 추지 못했던 주요 레퍼토리들의 배역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키로프 무대에서 채 보여주지 못한 것들 중 몇 가지는 연방과 해외 투어에서 췄다.

 

 발레단의 예술감독인 보리스 아사예프는 미샤에게서 몸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하는 능력과 음악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발견했다. 혹독한 교육과 훈련으로 다져져 고전 발레의 테크닉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무용수였지만 미샤 야스민에게는 끊임없이 새로운 움직임을 추구하고 전통적 방식을 훌쩍 뛰어넘으려는 성향이 있었다. 그건 자칫 잘못하면 천박하고 지저분한 스타일로 전락할 수도 있었지만 미샤는 휘파람을 불 듯 가볍고 우아하게 그런 시도를 계속했고 대부분 성공했다. 관객들은 그가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키로프의 전통을 박살내며 야만인처럼 무대를 더럽히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전통주의자에 가까운 아사예프는 미샤의 그런 특질 때문에 분노에 사로잡힐 때도 많았지만 보통은 매료되거나 고민에 빠졌다. 당에서 박아 넣은 밋밋한 예술감독이라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그는 나름대로의 심미안을 갖추고 있었고 재능에 대한 감별력도 뛰어났다. 아사예프는 미샤와 새 배역을 놓고 리허설을 할 때마다 그의 새로운 해석과 놀라운 움직임에 감탄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그 반항적이며 타협하지 않으려 드는 태도를 들어 역을 빼앗아버려야 할지 골치를 썩여야 했다.

 

 울리얀 세레브랴코프를 축으로 한 남성 무용수들 다수는 그런 미샤를 미워했다. 그건 순식간에 톱스타가 된 후배에 대한 질시 뿐만은 아니었다. 미샤는 선천적으로 집단에 포함되거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바깥에서는 예의도 제법 지키고 차분한 편이었지만 춤과 관련된 일에서는 연공서열이나 소모적인 명령 따위를 경멸하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새 시즌에도 선배들과 미샤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가 여러 번 생겨났다. 미샤는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트로이는 꽤 친해진 발레단 코디네이터 타마라로부터 가끔 그런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고 걱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여자 파트너들은 미샤에게 별로 불만을 갖지 않았다. 존재감이 강력해서 어디서나 훌쩍 튀어버리는 경향은 있었지만 미샤는 기본이 잘 되어 있는 파트너였고 상대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면서 움직임이나 포즈를 아름답게 뽑아내 주는 기량이 탁월했다. 미샤와 춤을 췄던 여자 무용수들은 한결같이 그의 음악적 감각과 무대 장악력에 대해 얘기했고 다시 파트너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으로 상대를 압살하기보다는 파트너를 그 경이로움 속으로 함께 데려갈 때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떠나갈 듯한 갈채와 기록적인 커튼콜 앞에서 무심할 수 있는 무용수들은 별로 없었다.

 

 

 12월 중순에 그는 지나이다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췄다. 부다페스트에서 춘 이래 두 번째였지만 레닌그라드에서는 처음이었다. 발레단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커플인데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배역의 상징성 때문에 공연 당일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다들 미샤 야스민과 지나이다 세도바의 테라스 장면을 보고 싶어 몸이 달았다.

 

 그 날은 극장과 관련된 기념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당 중앙위원들과 정부 관료들이 좋은 자리를 모두 차지했고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극장 바깥에 모여 발을 동동 굴렀다. 대담한 몇몇은 몰래 칸막이 자리로 숨어들기도 했다. 방송사에서도 취재를 왔고 렌필름에서도 무대를 녹화하러 왔다.

 

 후끈 달아오른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극장 내부와 몇몇 전문가들로부터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둘 다 사랑스럽고 달콤한 연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고 가냘프고 섬세하다기보다는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스타일의 배우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사예프는 한때 미샤와 지나이다에게 부드러운 이미지를 위해 금발로 염색할 것을 제안하기까지 했지만 둘 다 거부했다. 트로이는 세레브랴코프가 스페이싱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오던 지나이다에게 기껏해야 머큐시오에나 어울리는 파트너를 얻어서 참 안됐다고 비아냥거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타마라는 두 손을 마구 휘저으며 과장된 어조로 외쳤다.

 

 

 “ 오오, 난 지나가 울어버릴 줄 알았어, 트로이! 울리얀은 본성이 못된 건 아니지만 원하기만 하면 엄청 기분 나쁘게 말할 수 있거든. 그 사람 독설 때문에 신입 남자애들도 여럿 우는 거 봤어. ”

 

 “ 그런데? ”

 

 “ 와, 지나가 그렇게 성깔 있는 앤 줄 상상도 못했지. 눈을 똑바로 뜨면서 나이 값 못하는 선배와 추느니 머큐시오 따위와 추는 게 백배 낫다고 쏘아붙이던데. 너도 그때 지나를 봤어야 해. 눈이 이글거리는 게 미샤랑 똑같았어. 무섭기는 걔보다 훨씬 무서웠지. 역시 빨간 머리는 달라. 둘이 정말 딱 어울려. ”

 

 

 그래서 트로이는 성깔 넘치는 반항아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극장에 갔다. 촬영에 여념이 없는 이고리 옆에 앉아 타냐와 갈랴, 료카와 함께 공연을 봤다. 갈랴는 우리 로미오가 진짜 로미오를 추는 걸 어떻게 보지 않을 수가 있느냐며 아기도 어머니에게 맡기고는 새 옷을 차려입고 왔다. 그들 모두 미샤가 발레학교 시절 췄던 짧은 2인무를 떠올리며 감개무량해 하고 있었다.

 

 

 이고리가 막이 드리워져 있는 무대를 향해 카메라를 길게 빼며 말했다.

 

 

 “ 이봐, 저 앞자리에 쿨리마코프가 앉아 있어. 스비제르스키도. ”

 

 “ 그래, 돔브로프스키와 불리첸코도 같이 들어가더라. 아까 기념식 했잖아. 오늘 다닐로프 완전 긴장 타겠는데. 높으신 분들이 대체 몇 명이야. ”

 

 “ 더 장난 아닌 거 얘기해줄까? 마로조프도 왔어. 그 드미트리 마로조프. ”

 

 “ 그 도살자? 추기경? 젠장, 우리 저쪽 줄에 폭탄이라도 하나 던져버리자, 구국영웅이 되는 거야! ”

 

 “ 안되지, 우리 로미오가 다치잖아. 폭탄은 커튼 콜 끝난 다음이야. ”

 

 

 그때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주변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그들에게 쉿 하며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현대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에 대해서는 언제나 보석 같은 언어로 교묘하게 치장된 섬세한 포르노라고 생각했다. 그는 대학 초년생 시절 셰익스피어 연구회 친구들과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 그 발레를 보러 갔었다. 발레는 떠들썩하고 장황한 음악과 호화스런 볼거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셰익스피어의 에로틱한 언어를 형상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미샤는 로미오 역을 준비하면서 트로이에게 그 희곡의 영어 낭송 테이프를 구해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밤마다 그 대사를 들으며 잤다. 트로이는 그가 프로코피예프의 음악보다도 그 영어 테이프를 더 많이 들은 건 아닌지 궁금했다.

 

 

 미샤와 지나이다가 테라스에 등장해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극장 안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우려와는 달리 그들은 전혀 타타르 전사나 그루지야 미녀처럼 춤추지 않았다. 그건 정말로 사춘기 연인들의 춤이었다. 미샤와 지나이다는 첫 번째 아다지오를 청순하고 조심스러운 아이들처럼 시작했다. 하지만 순수함과 건전함으로 표백된 피오네르 소년소녀들의 춤은 아니었다. 음악이 고조됨에 따라 그들은 성에 눈뜨는 사춘기 연인들의 경이와 탐색을 거의 짐승과도 같은 예민한 감각으로 점점 생생하게 형상화해냈다. 그건 셰익스피어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섬세하게 정련된 우아한 포르노였다.

 

 트로이는 미샤가 어떻게 섹스를 무대 위로 가지고 올라와 저토록 소년답고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천연덕스럽게 춤출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어떤 관객들과 전문가들도 그 무대를 외설적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트로이는 알았다. 관객들 대부분도 알았을 것이다. 미샤와 지나이다는 어린 연인들의 섹스와 욕망을 얘기하고 있었다. 중앙위원회 간부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 앞에서 당과 소비에트의 명예를 드높이는 키로프 극장의 스타 커플이 섹스를 형상화한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젊은 연인들의 풋풋하고 애처로운 사랑과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성의 쾌락에 대한 노골적이며 호기심 넘치는 탐색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미샤와 지나이다는 관객들을 유사 오르가즘으로 몰고 갔다.

 

 

 침실에서 미샤는 대담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애인이었다. 당과 사회의 지탄을 받는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죄책감이나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소심하고 폐쇄적인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그에 비하면 경험이 일천한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도중, 드문 순간이면 트로이는 그에게서 길 잃은 아이처럼 쓸쓸하고 순진한 모습을 보았다. 경이로움과 공포. 그리고 무대 위의 로미오에게도 그 모습이 있었다. 그 모습은 드라마틱하게 극대화되었고 관객들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 사랑에 빠뜨렸다. 미샤의 로미오와 지나이다의 줄리엣이 종말을 맞았을 때 관객들은 진심으로 슬퍼하며 자기 첫사랑이 죽은 것처럼 눈물을 쏟았다. 아사예프의 선택이 성공했던 것이다. 세레브랴코프조차도 더 이상 미샤를 머큐시오 역에나 어울리는 풋내기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고리와 영화사 동료들이 촬영한 필름은 연말에 국영채널에서 방영되었다. 미샤는 호두까기인형을 추지는 못했지만 대신 아사예프가 야심차게 리메이크한 ‘곱사등이 망아지’의 새해 초연에서 이바누슈카를 췄다. 파트너인 공주 역을 춘 것은 지나이다가 아니라 코펠리아 역으로 유명했던 옥사나 셰먀코바였다. 그 공연에서 미샤는 드라마와 비극 뿐만이 아니라 희극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돈키호테를 췄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관객들을 웃게 만드는 방법을 알았다. 그건 축복받은 재능이었다.

 

 

 이바누슈카를 출 때 미샤는 머리색을 금발로 물들였다. 아사예프는 자기가 제안했을 때는 무시해놓고 왜 이제 와서 그런 짓을 하느냐고 짜증을 냈지만 미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배역 해석 방법이 있었고 감독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트로이가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미샤는 욕조에 앉아서 직접 머리칼을 자르고 블론드로 염색을 시도하고 있었다. 트로이는 뒷머리에 약을 바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 이거 너무 밝은 거 아냐? ”

 

 “ 아주 밝아야 해. 색이 빠지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거야. ”

 

 

 미샤는 참을성 있게 탈색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색을 덧입혀서 아주 엷고 밝은 꿀 색깔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그 와중에 뒷목덜미에 잠깐 두드러기가 일어나서 트로이는 얼음을 가져와야 했다. 미샤는 따끔거리는 것도 개의치 않고 눈썹까지 물을 들였다.

 

 

 “ 그냥 스프레이로 물들이면 안돼? 분장사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잖아. ”

 

 “ 머리가 너무 까매서 스프레이는 잘 안 들어, 분장사도 포기했어. ”

 

 

 미샤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도 몇 주 정도 머리색을 되돌리지 않고 다녔다. 키로프에서 새로 제작하는 화보집 촬영 작가가 블론드의 이바누슈카 사진을 넣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엷은 꿀 빛깔의 머리와 금빛 눈썹의 미샤는 완전히 낯선 존재로 보였다. 트로이는 길게 흐트러진 검은 머리의 미샤가 더 좋다고 생각했지만 학생처럼 짧은 금발 머리로 열쇠를 따고 들어와 현관에서부터 수트 재킷과 드레스 셔츠와 타이를 벗어 내팽개치는 미샤를 볼 때마다 갈랴의 집에서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어하기 힘들만큼 격한 욕망을 느꼈다.

 

 

 미샤는 정장을 싫어했지만 연초부터 각종 행사에 불려 다니느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정장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며 고집을 부리자 다닐로프는 새해 선물로 그에게 새 수트를 한 벌 떠안긴 후 무조건 입고 나오라고 엄포를 놨다. 미샤는 당 지역위원회 서기가 주최한 파티에서 고의로 자기 옷에 샴페인을 엎지르고는 다음날 비슷한 행사에 전혀 얌전하지 않은 스웨이드 재킷을 입고 나갔다. 화가 난 다닐로프는 타마라를 시켜서 서로 다른 디자인의 수트를 세 벌이나 사오게 한 후 옷들을 말 그대로 미샤의 얼굴에 냅다 집어던졌다.

 

 

 “ 그래서, 또 샴페인을 엎질러야 하는 거야? 아니면 와인? ”

 

내 급료에서 제할 줄 알았는데 공금으로 지출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입기로 했어. 스타일은 후졌지만 소비에트에서 무려 공금으로 하사하신 거니까. ”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 트로이는 그 정장들의 스타일이 어디가 어떻게 후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거라곤 짧은 금발을 하고 나타나 재킷과 드레스 셔츠와 넥타이를 기록적인 속도로 벗어던지는 미샤의 앞에서 도저히 태연하게 견딜 수 없다는 것 뿐이었다. 그는 사춘기 줄리엣처럼 몸이 달았고 가끔은 침실이나 소파까지 가지도 못했다.

 

 

 마침내 그는 미샤에게 머리색을 되돌리라고 종용했다. 화보 촬영도 다 끝났으므로 미샤는 순순히 검은 머리로 돌아왔는데 그때서야 트로이는 머리색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계속해서 사랑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충족되지 않는 갈망으로 불타고 있을 뿐이었다. 검은 머리의 미샤 야스민과 갈색 머리의 미샤 야스민, 금빛 머리의 미샤 야스민, 심지어 붉은 머리와 푸른 머리, 자주색 머리의 미샤 야스민조차도 모두 그의 곁에 존재하는 동시에 다른 무수한 남자들의 곁에 존재할 것이다. 그 무수한 남자들에게도 미지의 이름이 주어져 있고 미지의 욕망이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트로이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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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예전에 미샤가 키로프에 데뷔해 해적의 알리와 지젤의 알브레히트를 추는 장면을 발췌한 적이 있다. 그 글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128

 

 

 

 

그냥 지나가면 아쉬우니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로미오와 곱사등이 망아지의 이바누슈카 사진 몇 장. 사진은 alex gouliaev.

 

 

 

 

 

상대역은 디아나 비슈뇨바

 

 

 

이것부터 세장은 상대역이 알리나 소모바

 

 

 

 

 

마지막은 곱사등이 망아지에서 이바누슈카를 추는 슈클랴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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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역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피곤한 상태로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중이다. 9시 출근하려 했으니 10시에 나왔다 ㅠㅠ 너무 졸리고 약을 너무 먹어서 그런지 속이 부대껴서 뭘 먹기가 힘드네.

 

마음의 위안을 위해 랜덤 사진 몇 장.

 

페테르부르크 네프스키 거리 사진. 저 자라 매장에 작년 여름에 갔었다, 너무 추워서 걸칠거 사려고... 근데 결국 맘에 드는 게 없어 사지는 못하고 우리 나라 자라가 제일 비싸다는 것만을 확인했다!

 

 

 

아름다우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솔로르. 상대역 니키야는 그의 아내 마리야 쉬린키나. 이번에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췄는데 쉬린키나는 이게 니키야 데뷔.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쉬린키나가 과연 1~3막의 니키야를 전부 소화할만한 파워가 됐는지 궁금하다. 니키야 역이 원체 까다로워서... 1~3막의 표현과 춤이 모두 다른데다 상당한 파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갈라로만 나오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난 작년 마린스키에서 이 사람이 3명의 망령 중 세번째 망령 추는 것을 봤었는데 그때도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었다. (그런데 그때 솔로르 역을 춘 슈클랴로프는 자기가 받은 꽃다발을 니키야 역의 마트비옌코가 아니라 아내인 쉬린키나에게 바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야, 네 파트너는 니키야잖아! 마트비옌코 줘야지! 이눔의 콩깍지 사랑꾼아 ㅠㅠ) 

하지만 최고의 솔로르 중 하나인 슈클랴로프와 케미스트리가 좋으니 잘 했을지도....

 

 

고양이...

 

아아, 간절하다

 

 

아아, 더 간절하다..

다 들어주마... 뭐든지 말해보라!

 

 

최근 해적을 추고 나서. 메도라 역의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알리 역의 슈클랴로프

 

작년에 김기민씨 알리 버전으로 해적을 마린스키 신관에서 봤는데 무척 좋았다. 그러나 나는.. 꽃돌이 알리 슈클랴로프의 무대도 보고 싶어라 ㅠㅠ 김기민씨 알리는 뭔가 콘라드를 잘 지켜줄 것처럼 멋있었지만 저 슈클랴로프 알리는 너무나 꽃돌이라 오히려 콘라드의 보호를 받아야 될 듯한 느낌이 무럭무럭.. 이놈의 알리가 메도라와 귈나라보다 더 예쁘니 어쩌란 말인가.

 

 

 

 

아름답고 또 아름답기 그지없는 디아나 비슈뇨바

 

 

해적 3인무 화보

슈클랴로프 알리, 테료쉬키나 메도라, 코르순체프 콘라드

악, 코르순체프... 다닐라, 어찌 이런 짓을.. 그 수염을 당장 떼시오 ㅠㅠ 가뜩이나 콘라드는 뭔가 없어보이는 캐릭터거늘 ㅠㅠ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위안을 주는 고양이와 주인의 손길..

 

 

..

 

 

고양이도 있고 페테르부르크도 있어 카테고리가 불분명하지만 꽃돌이와 비슈뇨바가 있으니 일단 댄스 폴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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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6. 2. 07:00

무용수 #4. 디아나 비슈뇨바 dance2016. 6. 2. 07:00




목요일의 무용수 포스팅은 빛나는 디아나 비슈뇨바


집에서 올리는 거라면 다채로운 무용수들 화보를 올려보려 했는데 폰으로 예약 포스팅을 걸다보니 사진이 한정되어 있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순서대로 올리고 있네.. 뭐 비슈뇨바는 아름다우니까!


폰에 있는 사진들이라 대부분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라 바야데르 등 최근 사진들.








최근, 세헤라자데.

황금노예는 콘스탄틴 즈베레프.

즈베레프는 좋아하는 무용수인데, 음 역시 터번을 씌워놓으니 더 멋있다(이마가 너무 높아서 가리면 더 멋있어짐..)









최근 김기민씨, 테료쉬키나와 춘 라 바야데르





이건 세헤라자데





며칠전 개막한 백야축제 오프닝. 볼쇼이의 아르춈 옵차렌코와 함께 로미오와 줄리엣 춤. 아, 보고 싶었다 ㅠㅠ 옵차렌코도 멋지고..


옵차렌코 로미오와 춘 사진 아래 두장 더.















하지만 마지막은 그래도 슈클랴로프 로미오와의 커튼 콜로.. 옵차렌코가 더 길쭉해서 자태가 예쁘긴 하지만 그래도 내겐 슈클랴로프 로미오가 최고... (비슈뇨바 포스팅인데 결국 꽃돌이로 마무리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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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3년 반 후의 메모, 2016.5.14>

 

   

나는 아래 발췌한 에피소드를 3년 반 전, 2012년 12월에 썼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서 몇달 후. 가장 바닥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미샤를 되살려낸 후 두번째로 쓴 소설이었다. 소설의 심리적 화자는 그의 친구이자 애인인 안드레이 트로이츠키, 일반적으로는 트로이 라고 불리는 인물이었지만 진짜 주인공은 미샤였다. 이 소설의 에피소드들은 전에도 여러번 이 폴더에 발췌한 적이 있다.

 

발췌한 에피소드는 소설의 중후반부인 3부 14장 끝부분이다. 저 부분을 쓸때 나는 어느 정도 화가 나 있었고 어느 정도는 매우 지치고 슬픈 상태였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솔직하기도 했다. 허구라는 렌즈를 통해 왜곡될 수 있을만큼만 왜곡시킨 정도로.

 

이 글을 쓴 바로 다음날 남긴 짧은 메모와 1년이 지난 후 쓴 역시 짧은 메모가 있는데 그것도 같이 올려본다. 그러니까 이건 하나의 에피소드에 대한 세가지 메모가 달려 있는 셈이다. 쓴 직후, 1년 후, 그리고 3년 반 후.

 

미샤와 트로이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지나'는 미샤의 발레학교와 키로프 발레단 시절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이다를 가리킨다. '세레브랴코프'는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선배이자 일종의 라이벌이다. 세레브랴코프에 대한 에피소드는 전에 돈키호테와 페름 저수지 사건 등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94, http://tveye.tistory.com/4597

 

대화에 역시 언급되는 '스탄카'는 전에 여러번 발췌된 이야기들에 등장한 스타니슬라프 일린을 가리킨다. 볼쇼이 안무가이고 미샤의 친구이다. '아스케로프'는 미샤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인 유리 아스케로프이다.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이 폴더에 두어번 발췌했고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도 한번 등장시킨 적 있다.

 

둘의 대화에서 나온 '안드레이'는 미샤가 트로이를 부르는 이름이다. 트로이는 자기 본명을 싫어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트로이란 애칭으로 통하지만 미샤는 사적 자리에서는 항상 그를 본명으로 부른다.

 

 .. 맨 위의 사진은 라트만스키 안무의 신데렐라를 추는 디아나 비슈뇨바. 사진은 Mark Olich.

그 아래 그림은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게의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

 

 

 

<1년 후의 메모, 2013.11.7>

 


나는 이 부분을 거의 일 년 전 이맘때 썼다. 이 소설에서 미샤가 자신의 춤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부분 밖에 없다. 그는 죽음과 성, 권력과 사회적 억압, 이데올로기와 젠더, 그리고 이 모든 외부에서 온 어둠과 더불어 자기 내부에서 비롯되는 어둠을 마주하며 춤춘다. 그건 그가 춤을 추는 이유인 동시에 춤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저 소설은 재능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건 성적 갈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건 미샤가 아니라 친구이자 애인인 트로이였다. 심지어 저 순간, 미샤가 자기 입으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순간에도 트로이는 그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트로이는 창작자가 아니었고 그의 사랑은 이해를 기반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아래 발췌된 에피소드를 쓰고 난 직후, 그러니까 2012년 12월에 적었던 메모는 맨 아래에 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트로이의 팔을 베고 누워 담배 연기를 천정으로 길게 뿜어낸 후 미샤가 말했다.

 

 

“ 지나가 그러더라, 세레브랴코프의 낯짝을 한방 날려주고 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

 

“ 그 아가씨답네. ”

 

“ 정말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 ”

 

“ 글쎄. 진작 했어야 하는 거 아냐? 좀 늦었지. 그리고 넌 누굴 제대로 쳐본 적도 없잖아. ”

 

“ 그건 그래. 스탄카가 그때 끼어들어줘서 다행이야. 정말 그 자식 치고 싶지 않았거든. ”

 

“ 열받았다면서 어떻게 치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수가 있어? ”

 

“ 모르겠네, 하여튼 난 누굴 패고 싶었던 적은 별로 없어. 그래봤자 별 소용없잖아. ”

 

“ 지나 말이 맞을지도 몰라. 주먹질을 한번 하거나 적어도 욕이라도 해주면 그 자식도 한풀 꺾일 거야. 그런 놈들은 항상 그래. 네가 계속 내버려두니까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

 

“ 뭐, 나타샤? 계집애 같다는 말? 그건 춤 때문이야. 그러니까 두들겨 패봤자 해결이 안돼. ”

 

“ 세레브랴코프는 왜 그렇게 네 춤을 싫어해? ”

 

“ 그는 교조주의자야. 가장 끔찍한 게 뭔지 알아? 그건 자기 예술을 강령처럼 믿는 것, 그걸 다른 모두에게 강요하는 거야. 우리의 잘난 공산주의와 일당 독재와 집단주의처럼. 근데 세상 어디에도 그렇게 단순한 건 없어. 예술은 더 그래. 아니, 내게는 춤 말고 다른 걸 얘기할 자격이 없지. 울리얀 세레브랴코프에게 자기가 내키는 대로 추라고 해, 난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작자의 참견은 받고 싶지 않아. 그자는 자기 강령을 따라 깃발을 휘두르며 춤을 추고 나는 내 몫의 허공으로 나가면 돼. 길을 잃든 헛디디든 추락하든 그건 온전히 내가 감당할 무게일 뿐이야. 난 그자의 이상과 꿈을 믿지 않아. 춤이 종교가 될 수도 없고 규율이나 원칙이 될 수도 없어. 공산주의자였던 적도 없고 소비에트 이념을 믿어본 적도 없는 내가 왜 그 얼간이의 질서를 따라야 해. ”

 

“ 세레브랴코프의 질서는 뭔데? ”

 

“ 그는 자기 고환으로 춤을 추지. ”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드는 듯 미샤가 옆으로 돌아누우며 트로이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필터 언저리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카펫 귀퉁이에 문질러 끈 후 나머지 연기를 트로이의 가슴팍에 천천히 불어 날렸다. 트로이는 미샤의 코트를 끌어당겨 활짝 펼친 후 서로의 몸을 덮었다. 담배 연기 사이로도 코트 안쪽에 배어 있는 낯익은 고급 향수 내음과 은밀하게 깔려 있는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젖은 숲의 흙 냄새, 그리고 딱히 규명하기 힘든 쏘는 듯하고 무겁고 달콤한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후자는 처음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몸 구석구석에 키스를 하거나 혀와 이로 빨아 당겼을 때 그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트로이는 사라토프의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유리병 속에 채워놓았던 끈끈하고 짙은 색깔의 꿀을 생각했다. 숲의 꽃과 나무에서 채취해 만든 그 꿀은 너무 진하고 독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어린 손자가 아무리 졸라도 몇 방울 이상은 결코 주지 않았다. 아주 아플 때만 홍차에 한 숟가락을 통째로 녹여 주었다. 어린 시절 트로이는 그 차를 마실 때마다 심하게 취해서 24시간을 내리 잤다.

 

 

“ 그럼 넌? ”

 

아, 나도 그런 부분이 있지. 어쨌든 사내자식이니까. 하지만 전부는 아냐. ”

 

 

코트 아래에서 몸을 좀 더 바짝 붙여오며 미샤가 약간 졸린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세레브랴코프가 날 미워하는 이유는 내가 자기 자리를 빼앗는 게 두려워서가 아냐. 내가 무대 위에서 그 굳건한 남성성의 환각을 쉽게 무시하기 때문이지. 신사적이고 기사도 넘치고 파트너를 견고하게 지지해 주는 남자, 필요한 순간 검을 빼들고 달려가 적을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남자, 언제나 확신과 신념에 가득 찬 남자, 왕자님, 기사, 귀족, 깃발 든 혁명가, 전쟁터의 장군, 여자를 지켜주는 남자, 당의 기치를 앞장서서 체현하는 진짜 남자. 반듯하고 우아하며 강인하고 흔들림 없는 파트너.

그렇게 추는 게 어렵지는 않아,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은 거기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지. 난 연습을 많이 했어, 엄청나게 혹독하게 배웠어. 꼭 춰야 한다면 그렇게 추겠지. 그게 바로 키로프의 기본기라는 거니까. 남자 무용수의 기본기.

그런데 말야, 안드레이. 그 모든 건 사실 고환과 음경과 정액으로 이루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아. 발레리나들이 유방과 질과 눈물로 우아하고 연약한 공주님의 환각을 만들어내듯 남자 무용수들도 마찬가지야. 세레브랴코프의 가차 없는 남성성이 빚어낸 질서 맞은편에 발레리나들의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아성이 도사리고 있어. 난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건 단순한 섹스의 문제가 아냐. 성이란 건, 아니 인간이란 건 그렇게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 한편에는 빛, 한편에는 어둠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과 몸이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다면 행복할 텐데.

안드레이, 어쩌면 그건 인간 전체에 대한 얘기가 아닌지도 몰라. 그저 나 자신에 대한 얘기일 뿐인지도 몰라. 난 사람 마음을 모른다면서. 그러니 인간에 대해서도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되겠지. 난 틈새로 들어가고 바닥도 출구도 없는 안개 속에서 춤을 춰. 내가 원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냐, 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그곳에서 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냐, 마음도 아니고 몸도 아냐. 그곳에는 빛이 있고 어둠이 있겠지. 황혼도, 수면도, 어쩌면 눈보라도. 하지만 난 단지 움직임일 뿐이야. 계속해서 뛰고 날고 떨어지고 넘어지는 것 뿐이야. 멈추면 사라질 테니까. 거기 고통이 있어, 두려움이 있어. 나는, 난 멈추게 될까봐 두려워. 사라지고 싶지 않아. 세레브랴코프는 그런 공포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는 강령을 선택했으니까. ”

 

 

미샤는 더 이상 트로이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다. 교회 종탑을 마주하고 고해하듯 나직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고백이 너무나 괴롭고도 개인적이어서, 또 한없이 조용하고 부드러워서 트로이는 마음을 뒤흔드는 감동과 죄책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말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그는 춤을 춰본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진정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인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도 스타니슬라프 일린은 이해할지도 모른다. 모스크바에서 온 그 안무가, 스탄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미지의 남자. 어쩌면 유리 아스케로프도 전부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미샤를 알았으니까, 미샤는 움직일 수 없는 그 무서운 순간 아스케로프가 곁에 와주기를 원했으니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아스케로프는 미샤의 춤에 관심이 없었다. 춤 나부랭이라고 비하했고 미샤에게 하잘것없는 춤을 포기하고 그만 내려오는 게 낫다고 꾸짖었다. 그자는 오직 미샤에게 성적으로 완전히 반해 있을 뿐이다. 어쩌면 마음 속 깊이 품고 있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그 아이의 몸과 마음에 대한 욕망과 애정일 뿐 춤과 재능에 대한 갈망은 아니었다. 그 루빈슈테인 거리의 의사는 그만큼 복잡하고 음울한 남자가 아니었다.

 

 

미샤는 갑작스럽게 말을 뚝 끊었다.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생각을 토로한 것이 부끄러워서 그럴 수도 있었고 졸려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울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아스케로프와는 달리 트로이는 미샤가 우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후 트로이는 쑤시고 결리는 몸을 거실 바닥에서 일으켰다. 미샤는 그가 일어난 것도 모르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코트 째로 미샤를 쓸어안아 침대로 데려갔다. 옷을 치우고 모포를 덮어주면서 트로이는 그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목덜미의 상처는 다시 하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허벅지의 칼자국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랫배와 허리, 골반과 옆구리 구석구석에 찍혀 있는 트로이의 손자국은 반쯤은 자주색이고 반쯤은 검붉은 색으로 변해 일그러진 꽃처럼 옆으로 퍼지며 증식하고 있었다.

 

 

아마 미샤가 무대에 올라가야 하지 않았다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그의 몸에 깨끗하게 남아 있는 하얀 살갗 구석구석 전부를 붉고 검은 자국으로 뒤덮었을 것이다. 이마와 뺨과 턱도 예외 없이, 부드러운 눈꺼풀과 입술조차 피해가지 않고. 할 수만 있다면 머리카락과 눈동자와 치아와 혓바닥 위에, 살갗 아래 혈관과 근육과 신경 위에도 자국을 냈을 것이다. 해독할 수도 없는 문자를 써내려갔을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차마 자기 이름을 쓸 용기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서랍 속에 숨어 있는 노트와 수첩과 종이쪽지 위에 잉크 범벅이 되어 도사리고 있는 단어와 구절들이었을 것이다. 그 어눌하고 수치스러운 언어들은 그 찬란하게 타오르는 애에게 닿는 순간 녹아내려 사라질 것이다. 아무런 자국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

 

 



<쓰고 난 다음날 : 교조주의, 강령으로서의 예술, 2012.12.7>



어제 저 주제에 대한 부분을 쓰면서 내가 겪었던 몇가지 좌절과 절망스러웠던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저 글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사회는 지금 서울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메가폴리스가 아니라 전체주의와 집단주의가 지배하는 70년대 공산사회의 레닌그라드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점은 존재한다.


 
.. 중략 ..


 
여전히 난 예술이 강령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나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표현 양태는 무수하게 존재하며 어느 한가지만 옳다고 우기는 것은 교만이며 폭력이다.

 

...

 

 

 

좀 우울한 얘기였으니까 무용수들 화보 몇 장.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저 글을 쓸때 가졌던 느낌과 약간은 비슷한 사진들을 골라봤다.

 

 

 

 

 

세르게이 폴루닌.

 

 

마린스키 무용수들. 슈클랴로프와 테료쉬키나, 스코릭, 김기민씨 등이 섞여 있다.

웨인 맥그리거의 인프라 추는 중. 재작년에 마린스키 무대에서 이 작품 보고 반했었다.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매우 유명한 사진. 루돌프 누레예프.

 

 

 

파루흐 루지마토프.

 

 

 

파루흐 루지마토프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사진은 Mark Olich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젊은이와 죽음. 한장 더.

사진은 Alex Gouliaev.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오랜만에 무용수들 화보 여러 장. 마음의 위안을 위해.

 

최근 마린스키 라 바야데르 무대에 오른 디아나 비슈뇨바. 사진조차도 숨을 멎게 할만큼 아름답다.

 

 

 

환상의 배역. 솔로르는 김기민씨, 감자티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니키야가 디아나 비슈뇨바!!

아아, 나도 가서 보고 싶었지... 테료쉬키나의 감자티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녀의 니키야는 최고였는데 감자티도 궁금하다! 이 사진만 봐도 두 여자 사이에서 불꽃이 파바박!!

(그런데 내겐 항상 테료쉬키나가 좀 강인한 이미지라 그런지 이 사진을 보면 오냐오냐 자란 감자티 공주님 느낌보다는 좀더 표독스러워 보인다!! 그래도 보고 싶구나, 테료쉬키나와 비슈뇨바의 불꽃 튀는 사랑 싸움!)

 

 

 

김기민씨가 솔로르를 췄다.

기민씨의 솔로르는 영상만 보고 실제 무대를 못 봐서 무척 궁금하다. 나야 표현력 넘치는 슈클랴로프의 솔로르를 가장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민씨 솔로르 영상들은 하나같이 멋졌다. 게다가 비슈뇨바 니키야와 함께 추다니... 여름에 꼭 가서 김기민씨 무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매우 내 맘에 드는 리허설 사진.

 

첨엔 슬쩍 보고 앗, 솔로르 의상이 블랙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하며 눈이 동그래졌는데 잘 보니 리허설 중인 사진. 근데 김기민씨라서 그런지 검정색 아랍 팬츠와 탑 차림의 솔로르도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하긴 아랍 팬츠라면 다 좋아하니..)

 

 

 

이제.. 내 인생을 바꿔놓은 문제의 인물 중 하나.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이 사진은 영화 백야 당시 안무를 맡았던 트와일라 타프와 함께 리허설할 때 찍은 것이라 한다. 그래! 그 영화 때문이라고요... 날 러시아어 전공하게 만든 영화, 그렇게 만든 남자!!! 책임져요!

 

 

 

위에 이어 바리쉬니코프와 타프의 리허설 장면 하나 더.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바가노바 시절.

 

연습실 풍경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키는데 게다가 바리쉬니코프의 소년 시절...

 

 

 

그래서 연습실 사진 하나 더.

이건 파루흐 루지마토프. 1990년대 잠깐 ABT 갔을 때.

 

 

 

라이몬다를 추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예브게니 이반첸코

역시 왕자나 기사 역 파트너 맞춤형의 기품을 지닌 이반첸코...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점프 등의 기량이야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파트너로서는 여전히 훌륭했다. 당신 내 첫사랑 무용수였죠. 나의 첫 발레.

 

 

 

 

아마도 지그프리드로 추정되는 의상을 입은 이 사람은 자태와 외모가 심히 아름답고 매력적인 빅토르 레베제프. 그러나.. 나는 이 사람의 자태와 외모에 혹해 작년 초에 미하일로프스키 라 바야데르를 비싼 표를 끊어 보러 갔다가 완전히 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 사람은 자태는 더할나위 없는 왕자님에 피루엣과 상체 움직임은 좋았으나... 연기력이 완전히 나무토막! 발연기!! 솔로르가 저렇게 발연기를 하다니!!!! 그때도 열받아 리뷰에 남겼지만... 저런 솔로르라면 니키야에게 그냥 저런놈 뻥 차버리고 브라만이랑 살라고 소리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시 가서 보면 연기 좀 늘었으려나.. 그땐 너무 실망해서 멕시코 연속극에 나와 발연기하는 미남 배우 같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ㅠㅠ

 

근데 이 사람이 옛날 내가 키우던 토리랑 비슷한 화이트 포메라니언+스피츠 계열의 강아지를 키워서 종종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리하여 나는 이 사람이 아니라 그 강아지를 보려고 이 사람을 팔로우하게 되었다 :) 그리고... 화보는 역시나 멋있다. 제발 연기력 좀 키워주세요...

 

 

 

 

그래서... 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궁극의 발로쟈 사진 몇 장으로 마무리.. (왜 안 그러겠어..)

 

돌아온 탕자를 추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은 ALEX GOULIAEV

 

 

 

역시 사진은 ALEX GOULIAEV

젊은이와 죽음을 추는 슈클랴로프.

이 사람 이 무대 다시 보고 싶다. 참 좋았었지. 다시 이 무대 보게 될 기회가 있을까 모르겠다.

 

 

 

Le Parc를 추는 슈클랴로프. 상대 발레리나는 율리야 스체파노바.

사진은 ALEX GOULIAEV

근데 나는 아무리 봐도.. 슈클랴로프는 이 여자 저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마성의 카사노바로 안 보이고 이 여자 저 여자에게 홀라당 넘어가서 순정을 바치는 로미오로 보인다... 그래선지 올레샤 노비코바와 춘 유명한 파이널에서도 이 사람이 섹시하긴 한데 그렇다고 또 그 느낌은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다 :)

 

 

 

마지막은 지그프리드를 추는 슈클랴로프. 뒷모습만 나온 오데트 역 발레리나는 테료쉬키나.

사진은 ALEX GOULIA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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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마음의 위안 예약 포스팅은, 내 마음을 녹이는데 빠질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3.31 프리미어로 공연한 유리 스메칼로프 재안무의 청동기사상(메드느이 브사드닉)의 한 장면. 작은 배를 타고 약혼녀 파라샤에게 찾아온 예브게니 역.

 

사진은 Natasha Razina

 

 

아아, 이 사람은 짙은 녹색도 왜 이렇게 잘 어울린단 말이냐.. 게다가 저 호감가는 청년이 홍수로 약혼녀를 잃고 실성해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장면을 어찌 눈뜨고 볼 수 있으리오 ㅠㅠ

 

그런데 보고 싶다... 영상이라도 좀 올라오면 좋으련만 다음날의 비슈뇨바 공연은 마린스키에서 생방으로 보여주고 이 공연은 안 보여줌... 관객 반응을 보니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의 듀엣은 아주 좋았고 특히 슈클랴로프가 마지막에 광란할 때 많이들 울었다고 한다. 나도 보고 싶어 엉엉...

 

 

 

 

 

좋아해마지 않는 그의 솔로르...

 

터번 쓰고 있는 걸 보니 이건 아마 2013년 자신의 베네핏 공연 때인 듯.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사진이라 화질은 별로 안 좋지만 올려본다. 작년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특별 갈라 공연 마지막 무대. 아마 다 끝나고 앙코르 공연으로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스패니쉬 댄스 추고 나서일 것이다. 테료쉬키나 매우 부럽구나!! 코르순체프가 번쩍 들어서 어깨에 앉혀주지.. 주변에 저 많은 마린스키의 내로라하는 남자 무용수들이 그녀를 받들어 모시고 있는 저 장면~~ 누구누구 있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 우리의 김기민씨도 있고..

 

맨 앞에서 '나 이쁘지롱~' 하는 포즈로 귀엽게 짠~ 하고 있는 것이 슈클랴로프. 역시 꽃돌이라서 장미꽃들 한가운데 앉아 포즈 취하고 계심. 그래도 네가 빅토리야보다 더 이쁘면 어떡하니 :) (완전 콩깍지)

 

 

 

 

 

마지막 사진은 최근, 디아나 비슈뇨바의 인스타그램에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주말에 있었던 마린스키 발레 페스티벌 비슈뇨바 특별 공연(스승에게 바치는 무대였다)에 출연하기 위해 날아온 말라호프와 함께 :)

 

 

 내가 좋아하는 두 무용수도 모자라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서 찍은 사진이라 마음의 위안을 아니 줄 수가 없다. 게다가 둘다 어찌나 스타일리쉬하신지.. 비슈뇨바의 저 녹색 숄 너무 예쁘다! 살짝 보이는 신발도 예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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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25. 23:59

금요일 밤의 슈클랴로프 사진 몇 장 dance2016. 3. 25. 23:59

 

금요일 밤.

주말을 앞두고 마음의 위안을 위해, 그리고 푸른난초님을 위해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몇 장 :)

 

 

 

 

이건 예전 댄스 오픈 페스티벌 때.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 추는 모습을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것. 순간의 느낌이 잘 포착되어 있어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그런데 사진사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사는 Alex Gouliaev

 

 

 

 

라트만스키 신데렐라.

디아나 비슈뇨바와 함께.

사진사는 Mark Olich

 

 

 

 

이건 작년 겨울 북경 투어. 라 바야데르.

사진사는 캡션에 있듯 Wang Xiaojing

상대역인 감자티 역은 옐레나 옙세예바.

내가 좋아하는 흰 의상 입은 꽃돌이 :) 무대에서 보면 더 예쁘고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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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호텔 메트로폴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 모스크바에서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나도 안 가봤다만..


객실 창가의 디아나 비슈뇨바. 호텔 측 설명으론 오랫동안 호텔 홍보대사이자 뮤즈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내 마음을 무척 끄는 사진이라 올려본다. 비슈뇨바는 무대애서든 일상에서든 원래 아름답지만 이 사진은 빛과 색감, 객실과 창 너머 보이는 볼쇼이 극장 풍경 때문인지 신비롭고 깊은 느낌을 자아낸다. 무대 위의 스타와 창가에 놓인 세면도구, 화장품 파우치 등에서 배어나는 일상의 삶으로서의 느낌이 묘하게 부딪치면서도 섞여들어서 더 그렇다.


이 사진 보니 여행 가고 싶고 호텔 방 창가에 저렇게 앉아 있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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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마음의 위안을 위해 오랜만에 무용수 화보 몇 장.

디아나 비슈뇨바. 출처는 아마도 인스타그램이었던 듯.

 

 

 

이건 좀 오래된 사진. 알티나이 아실무라토바 & 파루흐 루지마토프. 코르사르.

루지마토프는 최고의 알리였다!

 

 

 

아르춈 옵차렌코.

이 사람은 볼쇼이 무용수이다. 나야 볼쇼이보다는 마린스키 쪽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력있는 무용수라 종종 관심 갖고 지켜보는 중. 외모가 상당히 누레예프를 연상시키는데 그래선지 최근 누레예프의 모델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러시아어 이름이 꽤 어려운데 제대로 발음하면 아르쬼 옵차렌꼬 정도 되려나.. 영어식으로는 아르티옴 오프차렌코 라고 하려는지..

 

 

 

그리고 역시 빠질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 두 장.

사진은 svetlana bogdanova.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와 솔로르 추는 중.

테료쉬키나의 니키야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고, 슈클랴로프의 솔로르는 얼마 안되는 '용서해주고 싶은' 솔로르이다.

 

 

 

마지막은 사랑하는 아내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춘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은 캡션에 있듯 jack devant.

최근 둘이 마린스키 무대에서 처음 로미오와 줄리엣을 췄는데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흑, 작년 겨울에 이 둘의 로미오와 줄리엣 보려고 도쿄에 갔었는데 슈클랴로프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쉬린키나와 스쵸핀 페어로 봐서 아쉬웠다만.. 하여튼 쉬린키나를 재평가하게 되었던 무대였다. 그전까지는 영상을 봤을 때도 그렇고 실제 무대를 몇 번 봤을 때도 그렇고 난 쉬린키나를 별 재능 없는 무용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쉬린키나는 줄리엣과 쉬린 역에는 아주 잘 어울렸다. (오로라나 라이몬다 등 정교한 테크닉과 파워가 필요한 역들은 아무래도 아직 모자란다만...) 나도 이 둘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싶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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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의 발레 영상 네번째 예약 클립은 디아나 비슈뇨바의 오데트 솔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춤인데, 사실 비슈뇨바보다는 로파트키나가 추는 쪽이 좀더 우아하고 기품 있어서 더 내 취향이긴 하다. 모든 작품들이 그렇지만 오데트 역시 이를 추는 발레리나들에 따라 움직임과 해석이 미묘하게 다르다.

 

예전에 본편에 삽입되는 단편을 쓰면서 주인공 미샤가 코즐로프가 바이올린을 켜는 동안 이 춤을 추는 장면을 쓴 적이 있다. 그 발췌본과 로파트키나가 추는 영상 클립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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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올린 사진도 두어 장 있다만.

마음의 위안을 위해 무용수 화보 몇 장.

 

루돌프 누레예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다.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한동안 이 사진을 월페이퍼에 깔아놓고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다.

 

 

루돌프 누레예프.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사진사는 캡션에 나와 있듯 nina alovert

 

 

 

디아나 비슈뇨바

 

 

 

이제부터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2013년 베네피스 공연 때 파리 오페라 극장의 도로테 질베르가 니키야를 맡아서 라 바야데르의 망령의 왕국을 함께 췄다. 도로테 질베르야 괜찮은 무용수지만 확실히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는 마린스키 발레리나들이 훨씬 어울렸다. 테료쉬키나가 아쉬웠다.

질베르와 리허설 중 찍힌 사진. 허리가 아팠는지 밴드를 대고 있네..

 

 

댄스 오픈 페스티벌.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흑조 2인무 추는 중,

사진은 jack devant

 

 

 

로미오와 줄리엣. 디아나 비슈뇨바와 함께.

얼굴은 거의 안 보이지만 몸짓만으로도 정말 간절하고 애절한 느낌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사진이라 좋아한다.

 

 

 

전에 올린 적 있다.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 화보 중 하나.

사진사는 alex gouliaev

매우 좋아하는 화보이다.

내가 이 사람을 무용수로서 다시 평가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몇년 전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가 춘 이 작품 보고 돌아오는 길 내내 공연이 너무 좋아서 몸이 떨렸다. 그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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