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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보예도프 운하'에 해당되는 글 81

  1. 2024.02.26 모이카에서 그리보예도프 운하까지 2
  2. 2020.09.10 푸쉬킨부터 운하를 따라 네바 강변까지(그랜드 호텔 유럽 코스) 6
  3. 2020.06.15 반짝이던 어느 날 2
  4. 2020.01.21 운하에서 사원으로, 황금 날개와 쿠폴
  5. 2020.01.20 작은 운하 큰 운하
  6. 2019.12.04 비오는 날 그리보예도프 운하, 트로이만 그런 건 또 아닌데, 인기만점 난간의 비밀 2
  7. 2019.11.19 기하학적 도시의 정연한 카페 창 너머 2
  8. 2019.11.17 잘 다녀옴, 11월, 운하와 술병
  9. 2019.11.11 반코프스키 다리의 황금날개 사자 2
  10. 2019.11.11 11.10 일요일 밤 : 비, 박물관 가려다 카페로, 료샤의 꿍얼꿍얼, 젊은이와 죽음 아주 약간
  11. 2019.03.11 10월의 운하 4
  12. 2019.03.03 잿빛의 페테르부르크
  13. 2018.11.11 얼음과 빛과 어둠, 검은 나무들의 도시 2
  14. 2017.11.19 사자, 아틀라스의 발, 빗물 그림자, 운하
  15. 2017.11.05 10월의 흐린 페테르부르크를 따라 걸으며 2
  16. 2017.11.01 그들은 이런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2
  17. 2017.09.06 겨울날 늦은 오후의 페테르부르크 산책 6
  18. 2017.05.15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10
  19. 2017.04.01 이해할 수 없지만 확신이.. 4
  20. 2016.12.28 차디찬 얼음 도시에서
  21. 2016.12.16 어디에서나 다르고 아름다운 램프 불빛들 2
  22. 2016.12.07 페테르부르크 상징 세 곳 산책, 저녁에 4
  23. 2016.11.25 엽님이랑 함께 본 파란 하늘 아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6
  24. 2016.11.14 수도관 터진 날, 푸쉬킨,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33
  25. 2016.10.15 비둘기야 너는 아니? 6
2024. 2. 26. 08:52

모이카에서 그리보예도프 운하까지 russia2024. 2. 26. 08:52

 
 
 
모이카에서 고로호바야 거리, 그리보예도프 운하까지. 산책하며 찍은 사진들. 2014년 7월.

 
 
맨 처음의 모이카 강변 건물 창문에는 이삭 성당의 황금 돔이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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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예전 페테르부르크 사진 뒤적이다 발견. 2014년 4월 사진들이다. 14년에는 4월과 7월에 갔었다. 4월에 페테르부르크를 거닐었던 건 아주 옛날에 맨처음 가서 연수받으며 살았을 때 외에는 이때뿐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날씨가 극악이기도 하고 휴가 시즌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는 어떻게 해선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튼 4월 초에 갔었다. 그리고 이 날 아주 운이 좋아서 날씨가 엄청 좋았다! 싸늘한 날씨에 적당히 두툼한 옷을 입고 산책하는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때 머물렀던 숙소는 그랜드 호텔 유럽이었다. 이 호텔에 묵게 되면 산책 코스는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호텔 맞은편에 예술광장,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루스키 무제이(러시아 박물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 한가운데 푸쉬킨 동상이 있고 그 너머로 루스키 무제이가 보인다. 여기서 시작해 시인에게 먼저 인사를 한 후,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따라 걸으며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을 지나 쭉 걸어서 네바 강변으로 나가게 된다.

 

 

아스토리야에 묵으면 길을 건너서 해군성 공원을 가로질러 청동기사상을 지나 네바 강변으로, 그리고 궁전광장으로 걸어가게 되고. 그래서 항상 '유럽 호텔이면 시인에게 먼저 가게 되고 아스토리야면 황제에게 먼저 간다' 라고 되뇌임.

 

 

그러니 이 산책 사진들은 그랜드 호텔 유럽 코스. 사진 몇 장. 역시 시인으로 시작.

 

 

 

 

 

 

공원으로 들어와서 호텔 방향을 보며 찍은 사진. 왼편에 푸쉬킨 뒷모습이 보인다. 잘 보면 잔디에 덜 녹은 눈이 드문드문.

 

 

 

 

 

 

그리고는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과 그리보예도프 운하.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 관광엽서 구도. 지금은 수리 중이라 저 쿠폴 한쪽은 가림막으로 둘러쳐 놔서 이런 풍경은 아니다.

 

 

하늘 색깔도 여름의 푸른색과 초봄의 푸른색은 확실히 다르다. 물론 가을과 겨울도.

 

 

 

 

 

 

운하 따라 걷다 뒤돌아서 찍은 사진. 가운데 저 멀리 돔 크니기의 지붕과 그 건너편의 카잔 성당 열주 일부가 보인다.

 

 

 

 

 

 

빛이 좋아서.

 

 

 

 

 

 

 

 

여름엔 주민들과 관광객들로 바글거리는 곳.

 

 

 

 

 

운하 따라 걷다가 골목으로 들어가 건물 현관과 안뜰(드보르)이 보이는 사진 한컷.

 

 

 

 

 

그리고 네바 강변 산책하며 찍은 사진으로 마무리. 다시 가고 싶다 ㅠㅠ

:
Posted by liontamer
2020. 6. 15. 20:39

반짝이던 어느 날 russia2020. 6. 15. 20:39

 

 

 

pc 바꾼 후 오늘에야 옛날 하드에 있던 사진들을 옮겼다. 뻬쩨르는 언젠가부터 매년 꾸준히 갔었으므로(아아 아무래도 올해는 못 가겠지 ㅠㅠ), 매년 사진 폴더들이 있는데 이건 2013년 사진이다. '이렇게 날씨가 좋았다니! 이것은 희귀하다!' 하는 마음으로 2013년 9월 어느 날의 사진 세 장을 올려본다.

 

 

쨍하고 맑은 9월이었고 이런 색감으로 사진이 나오는 날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백야 시즌의 색채는 이것과는 또 좀 다르다) 아마 여기 Russia 폴더에 이미 전에도 올린 적 있었을 것 같지만. 벌써 7년 전 사진들이니 새롭게~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 랜드마크' + '전형적인 관광 사진' 구도로 찍은 세 장 올려본다. 먼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과 그리보예도프 운하 전경.

 

 

 

 

 

 

사원 뒤에서 찍은 운하 전경. 가운데 저 멀리 돔 크니기가 아른아른 보인다. 그 건너편에는 카잔 성당의 열주가 조금 튀어나와 있다.

 

 

 

 

그리고 에르미타주의 아틀라스들로 마무리.

 

 

 

아아, 다시 가고 싶은데 코로나 너무 싫다 흑흑...

:
Posted by liontamer

 

 

 

지난 11월. 페테르부르크. 혹은,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

 

 

카잔 성당 쪽으로 건너와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끼고 이삭 성당 방향으로 돌면 반코프스키 다리가 나온다. 황금 날개 달린 사자 네 마리가 지키고 있는 다리이다. 그리핀이냐 사자냐 논란이 좀 있긴 하.

 

 

 

 

 

 

 

운하를 따라 계속 걷다 보면 모이카 운하가 나타나고, 길을 건너서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쪽으로 옮겨가면 이삭 성당의 황금 쿠폴이 달처럼 떠오른다. 나도,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도 수없이 걸었던 길, 무수히 보았던 황금빛.

:
Posted by liontamer
2020. 1. 20. 00:37

작은 운하 큰 운하 2017-19 petersburg2020. 1. 20. 00:37

 

 

 

짐냐야 까나브까. 자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운하 한컷. 작년 11월 저녁.

 

 

 

 

 

짐냐야 까나브까를 한바퀴 돌고 나와서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따라 좀 걸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도 한 장. 둘다 폰으로 찍어서 빛은 좀 번졌다.

 

 

многоводный горо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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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지난 11월 뻬쩨르 갔을 때는 단 하루도 햇살이 나지 않았다. 주로 비가 오거나 아주 흐렸다. 



비오던 날,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걸으며 폰으로 찍은 사진 몇장. 왼편 상단에 보이는 사원은 카잔 성당. 






이 날은 비가 와서 여기 쭈그려 앉아 술 마시거나 담배피우고 얘기나누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또 아닌게 운하가 원체 길게 이어지는데다 저런 계단이 군데군데 있어서 가다 보면 또 한둘씩 비를 맞으며 음주를 하거나 얘기를 나누거나 혼자서 운하를 바라보거나 통화를 하고 있거나 그렇다. 옛날부터 그런 광경을 워낙 많이 봐와서 글을 쓰면서도 트로이가 저런 곳에 쭈그려 앉아 혼자 병나발을 불거나 운하를 내려다보거나 하는 장면들을 집어넣었다. 사실 이 도시 토박이라면 익숙한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쓴 글들은 대부분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등장인물들도 일린 같은 사람을 제외하면 거의가 레닌그라드 토박이들이라 트로이 뿐만 아니라 미샤나 알리사, 심지어 지나도 포함해 다들 저런 계단에 쭈그려 앉거나 운하를 내려다보거나 했을텐데 보통 나는 저런 공간이 나오면 트로이를 떠올리는 편이다. 






이것도 이 도시의 전형적인 풍경 중 하나. 이 도시에 대한 일러스트나 엽서, 만화 등을 보면 재빠르게 운하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보통 이 난간을 휘리릭 그려놓곤 한다. 나도 이해가 감. ㅋ온갖 종류의 난간들 중 이 난간 그리는 게 제일 쉬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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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내가 좋아하는 카페 부셰의 복층 창가. 나는 천정이 낮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보통은 복층을 기피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2층 창가는 좋아한다. 운좋게 창가 자리에 앉게 되면 카잔 성당과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건물의 아치형 구조와 창문 너머로 카잔 성당의 열주들과 운하 난간, 포석들이 기하학적으로 늘어서고 중첩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 빵과 오믈렛과 샐러드 등 먹거리들이 전부 맛있다. 



내가 자주 가는 부셰는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와 여기 그리보예도프 운하 지점 두 군데인데 후자가 더 바글거리고 관광객들도 몰려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 2층 때문에 요즘은 이쪽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도 부셰가 있으면 참 좋겠다. 스타벅스보다 백배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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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17. 21:19

잘 다녀옴, 11월, 운하와 술병 2017-19 petersburg2019. 11. 17. 21:19

 

 

11월에 뻬쩨르에 오다니 대체 왜!!! 료샤도 레냐도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너무 좋고 반갑다가 아니라 저 반응이 먼저였음. 당연한 것이 날씨고 뭐고 가장 나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 11월 뻬쩨르는 기록적으로 기온이 높은 편이어서 첫날 빼곤 눈도 안 오고 내내 비가 주룩주룩 왔다. (기온이 높다고 해서 따뜻하다는 것은 아닌 게 이 동네는 원체 강바람 바닷바람이 강하고 축축하고 습한 냉기가 심해서 오히려 아예 추운 게 낫지 비 오면 돌아다니기 무지 피곤하다)

 

뭐 11월에 다녀온 이유가 몇개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보고 싶었던 무대도 다시 봐서 좋았다. 발로쟈와 마샤를 잠깐이나마 봐서 그것도 좋았다. 그리고 료샤랑 레냐를 보는 건 언제나 좋으니까. 둘이 각각 키우는 개들도 다시 보고... 네바는 나이가 많아서 이제 활동량이 현저히 줄었지만 나를 보면 여전히 무척 반가워하고.. 레냐의 뜨보록은 아직도 날 보면 첨엔 막 짖다가 30초쯤 지나서야 '아 맞아 나 쟤 알아~' 하고는 꼬리치고 달려든다(료샤는 '역시 저넘은 똥개야 똥개~' 라고 투덜대고 레냐가 '아빠 뜨보록 욕하지 마!' 하고 버럭버럭 한다 ㅋㅋ)

 

 

 이번엔 사진도 거의 안 찍었다. 날씨도 안 좋았고 해도 안 났고. 카메라는 극장 갈때만 가져갔고 커튼콜 때 몇장 찍은 것 외엔 안 썼다. 바깥 풍경은 폰으로 조금 찍은 게 전부.

 

 

폰 사진 두 장 올려본다. 이번 여행은 내내 이런 날씨 이런 분위기였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줌 :) 둘다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거닐다 찍은 사진이다.

 

 

맨 위 사진은 내가 뻬쩨르와 운하를 생각하면 거의 항상 자동으로 연상하는 이미지 중 하나라 찍어둠. 운하의 돌과 금속 난간에 기대어 사원 쿠폴이 비치는 검은 수면을 내려다보며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때로는 여자). 두셋이 있을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자신과 하느님만이 아는 모습으로 뭔가 생각에 잠겨 술을 홀짝홀짝 마신다. 어깨는 좀 구부정하고, 스카프를 매고 있을 때가 많다(왜냐하면 이 동네는 스카프랑 모자 없이는 뼈에 바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글을 쓸때 트로이라는 사람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운하 난간이나 계단에 놓여 있는 술병을 보면 거의 항상 트로이를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된다. 근데 저 술은 그러기엔너무 달콤한 종류인 듯 ㅎㅎ

 

 

 

 

이건 저녁 풍경. 사진으로 보면 분위기가 괜찮은데... 그치만 산책하기엔 나쁜 날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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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11. 17:43

반코프스키 다리의 황금날개 사자 2017-19 petersburg2019. 11. 11. 17:43







카잔 성당 뒤의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걷다 보면 나타나는 유명한 반코프스키 다리. 네마리의 황금날개 달린 사자들이 다리 양쪽을 지키고 있다. 보통 그리핀이라고 얘기하는데 사실 뜯어보면 그리핀은 아니고 날개 달린 사자임. 얘들 안쪽에 동전 던져 들어가면(다리인지 어디에 구멍이 있음. 나도 전에 해봤는데 어딘지 긴가민가)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어제 빗방울 맞으며 걸어들어가다 폰으로 찍어봄.







근데 사진은 왜 또 있어보이지... 날씨 우중충해서 괴로웠음 ㅠㅠ 오늘도 우중충. 조식 먹고 들어와 침대에 좀 누워 있었다. 이제 샤워하고 나가야지.

:
Posted by liontamer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알고 보니 태풍 영향권에 들어서 기온이 오르고 비가 내리는 거라고 함. 어쩐지 오늘 패딩 입고 나갔다가 덥고 습해서 힘들었다.



목욜 한밤중에 도착해 금토 연속 밤 공연 보느라 피곤했다. 어제는 잠자는 미녀가 4막짜리라 11시 넘어 끝난데다 돌아와서는 마샤랑 잠시 얘기 나누느라 두시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시차 적응이 안되어 일곱시 좀 넘어 깬 후 결국 도로 자는데 실패했다. 포기하고 조식 먹은 후 오전에 기어나갔는데 비가 주룩주룩 왔다. 이런 날은 원래 박물관이다. 아니면 백화점에 갈까 하다 일단 러시아 박물관 근처에 내렸다.



그러나... 이미 습하고 덥고 다리 아프고 졸리고 피곤하고... 도저히 드넓고 기다란 그 박물관을 돌아다닐 상태가 아니었음. 그래서 사랑해마지 않는 금발의 가브리엘 이콘과 브루벨의 악마들을 좀 미뤄놓고(매년 보러 가긴 하지만 이번 여름에는 안 갔었다. 돌아가기 전에 가야지) 근처 예카테리나 카톨릭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좀 했다.








나와서는 길을 건너서 카잔 성당 맞은편의 부셰에 갔다. 2층 가장 좋아하는 창가 자리는 못 잡았지만 그래도 그 옆 테이블을 잡아 차 마시며 잠시 책 읽고 늘어져 있었다.



나오니 비가 거의 안와서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따라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근데 운하 옆 좁은 보도는 여기저기 패여 있어 웅덩이들이 많았고 결국 신발과 발이 좀 젖음. 흑...




그래도 방에 돌아오니 이럭저럭 네시가 다 되어 있었다. 거품목욕을 좀 한 후 멍때리다가 들어오는 길에 사온 도시락 컵라면에 누룽지 말아서 간단히 저녁 먹었다. 나가서 먹기도 귀찮다.



료샤랑 레냐는 오늘 친척집에 가서 못 봤다. 내일 볼 듯하다.



료샤랑은 금욜 저녁에 만나 젊은이와 죽음을 같이 봤었다. 끝나고 내 방에 들렀는데 물론 흑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영원한 사랑 노란 맥심 커피믹스 ㅋㅋ


맥심 백개들이 안겨주니 료샤넘은 좋아하면서도 '야, 넌 그 슈클랴로프넘한텐 꽃도 주고 또 뭔가 훨 좋은 거 주라고 안내원한테 맡기더라, 근데 소중한 친구한텐 기껏 믹스커피...' 하고 꿍얼꿍얼.



'야 임마 질투나면 그분처럼 엄청나게 춤을 잘 추란 말이야!' 라고 했더니 '쳇. 엄청나게 잘생기란 말이겠지. 얼굴밝힘...' 하고 또 꿍얼꿍얼. 그런데 뭔가 곰곰 생각해보니 발로쟈님은 절대미모이기 때문에 또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려워서 걍 가만히 있었다 ㅋㅋㅋ



원래 오늘은 방에 일찍 돌아왔으니 발로쟈가 춘 젊은이와 죽음 다시 본 후기랑 어제 잠자는 미녀 1890년 버전 후기 를 써보려 했는데 수면부족으로 너무너무 졸려온다.



오늘 후기를 남길지 내일이든 모레일지 모르겠어서 짧게 요약하면 젊은이와 죽음은 몇년만에 다시 슈클랴로프님 무대를 본 거였는데, 훨씬 성숙했고 또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게 되었고 좀더 물흐르듯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후반부로 가서는 불처럼 로켓처럼 폭발하고 또 폭발했다. 관객들이 숨도 못 쉬고 봤다. 아아아 발로쟈, 당신 너무 근사하오... 흐흑...



아 피곤하다. 저녁 먹은 거 소화만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헉헉... 근데 벌써 사흘이나 휙 갔어 잉잉...



:
Posted by liontamer
2019. 3. 11. 21:43

10월의 운하 2017-19 petersburg2019. 3. 11. 21:43





10월 페테르부르크의 날씨는 대체로 이렇다. 어둡고 흐리고 무겁고 음습하다. 툭하면 비가 쏟아진다.



2017년 10월,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걸어가며 찍은 사진 두 장.







운하를 따라 걷다보면 이렇게 돌계단과 통로가 종종 나타난다. 여기 배를 매어놓을 때도 있지만 아예 선착장이 딸려 있는 쪽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렇게 비어 있다. 레닌그라드 시절에도, 지금의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사람들은 이 계단에 쭈그려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운하의 검푸른 물을 바라보거나 새들에게 빵조각을 던져주거나, 술을 마시곤 한다. 예전에 쓴 글에서 나는 트로이와 알리사를 이런 계단에 앉히고 이야기를 나누게 했었다. 그래선지 이후에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운하를 따라 걸을 때면 이런 계단과 작은 통로들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그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글에 쓰지는 않았지만, 미샤 역시 자주 저런 계단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다. 어쨌든 토박이가 아니니까. 료샤와 둘이 산책하다 몇번 판탄카와 모이카 운하의 이런 계단에 앉아 잠깐 얘기를 나눴을 뿐이었다. 한두번은 오리에게 흑빵을 부숴서 던져주기도 했었다. 이렇게 우중충한 날씨에는 딱히 쾌적하지 않지만 햇살 찬란한 백야 시즌에는 꽤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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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3. 3. 01:00

잿빛의 페테르부르크 2017-19 petersburg2019. 3. 3. 01:00



밝고 선명한 색채를 좋아하기 때문에 페테르부르크 폴더에 백야나 한겨울, 석양이나 황혼녘 등 빛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 사진들을 올리는 적이 많긴 하지만, 사실은 이 도시 날씨가 원체 우중충하고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이렇게 잿빛으로 물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뭐 이것 역시 이 도시다운 풍경이라 나름대로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만 그래도 역시 햇살이 날 때가 훨씬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날씨가 가장 흔하지만, 또 이렇게 꾸무룩한 날씨엔 보통 비가 오락가락 내리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은 별로 안 찍게 된다. 이 날은 재작년 10월 초였는데, 이 동네에서 일년 중 통틀어 젤 날씨 안 좋은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휴가 내서 날아갔는데 머무는 내내 비가 왔다. 딱 이 날만 비가 안 오고 약간 파란 하늘이 보여서 카메라 들고 나가서 해군성 공원, 청동기사상, 네바 강변, 에르미타주, 그리보예도프 운하, 모이카 운하 등등 빙빙 돌며 산책했는데 역시나 중간중간 또 비가 오락가락했었다. 흐흑... (이날 나때문에 료샤랑 레냐도 안 좋은 날씨에 산책했음)



그래도 돌아오고 나면 그 순간들마저 그리워진다. (아니야, 꾸무룩한 날씨는 빼고 ㅠㅠ)








이때 갑자기 파란 하늘이 쫌 나타나서 사진 찍으며 좋아했지만... 1분도 안되어 다시 먹구름으로 가득차고 우중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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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도시, 냉기와 빛과 어둠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운하 따라 산책하며 찍었던 사진 몇 장.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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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초. 페테르부르크 거닐며 찍은 사진 몇 장.



네바 강의 청동사자.






에르미타주 곁의 아틀라스 동상들. 동상들보다 더 유명해진 그들의 발들. 아틀라스 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다들 열심히 만져서 맨들맨들... (이것도 몇번째 아틀라스 발이 특히 효험있다고 함. 분명 외웠는데 건망증 대왕인 나는 갈때마다 몇번째 녀석인지 헷갈려서 그냥 무조건 전부 다 만지고 감 ㅠㅠ)





이번에도 이렇게 발가락 하나하나 만지며... (뭐지... 써놓고 나니 뭔가 좀 이상해...) 소원을 빌고...

(그 패딩 장착하고 있음 ㅋㅋ)






가 있는 내내 비가 오고 아주 추운 날씨였다. 그나마 이 날은 비가 오락가락하며 중간중간 개어서 무작정 좀 걸었다.


잘 안 보이지만... 빗물 웅덩이에 비친 그림자는 에르미타주 건물 일부.






그리고는 료샤랑 레냐랑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네프스키 대로 쪽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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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초.

 

다녀온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네 ㅠㅠ 또 가고 싶다...

 

 

비가 오락가락했던 날. 그리보예도프 운하랑 모이카 운하 따라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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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보예도프 운하.



전에 발췌한 트로이와 알리사의 대화 일부가 바로 이런 운하변의 낮은 계단에서 이루어진다. 하나하나 쓰진 않았지만 트로이 뿐만 아니라 그 글에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이 이런 곳들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운하를 바라보거나 새에게 먹이를 주거나 몰래 술을 마셨을 것이다.



트로이와 알리사가 저런 곳에서 나눈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016

​​​​​

알리사는 기계벌레와 도스토예프스키, 불가코프에 대해 무슨 말을 했나, 항의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불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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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페테르부르크.



오후 4시에서 5시 즈음. 산책하며 찍은 사진들 몇 장. 바로 아래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사진 빼고는 모두 네프스키 대로 따라 산책하며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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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15. 23:14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2016 petersburg2017. 5. 15. 23:14





얼어붙은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피의 구세주 사원). 작년 12월.


내게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문학적으로 환상적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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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 00:50

이해할 수 없지만 확신이.. 2016 petersburg2017. 4. 1. 00:50


​​​

​​





사진들은 모두 지난 12월,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음


..



오늘은 집에 막 들어와 씻으려고 옷을 벗다가 문득 거의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저 도시에서 살게 될 거야. 언제가 됐든, 언젠가는, 결국은 저곳으로 돌아가고, 저곳으로 떠나게 될 거야.


.. 어떻게? 나 '왜?'는 없었고 그냥 그런 기분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뭐 오늘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도...



사실 지금 저기 있고 싶네.



..




어디가 되었든 어떻게 되든 이곳에 언제까지 남을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될 것 같다. 어제와 오늘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더 이상 젊지도 않은 나 자신의 급속한 소모에 대해 깊은 회의가 들었다.


근데 또 곰곰 생각해보면 원래 회의주의자니까 그런지도 ㅠ (생각 좀 그만 해ㅠㅠ)



..



그러고 보니 일찍 자려고 10시 반쯤 침대로 들어갔는데 막상 잠이 안와서 일어나 책 읽고 있다. 오늘 무리한 머리 엔진이 덜 식었나보다. 내일은 낮 기차니까 11시 즈음에만일어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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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8. 13:17

차디찬 얼음 도시에서 2016 petersburg2016. 12. 28. 13:17

 

상트 페테르부르크. 12월. 얼어붙은 운하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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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다시 복직을 위해 지방 본사 동네에 내려가고 새로운 집2로 이사를 들어가기 때문에. 마음의 위안과 힘을 위해, 항상 좋아하는 램프와 불빛들 사진 몇장. 모두 이번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은 사진들.

 

 

이 램프는 아직 불이 안 들어왔지만... 내가 실루엣을 좋아하는 그리보예도프 운하의 램프라서 같이 올림.

 

 

 

여기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의 지하 카페 내려가는 계단의 작은 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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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3시 반쯤 되면 해가 지고... 이 사진은 4시~4시 40분 사이에 찍은 것들임.

카잔 성당.


알렉산드르 푸쉬킨. 예술광장.

오늘은 도씨에게 먼저 가느라 좀 늦었어요,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 야! 내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선밴데! 나한테 먼저 와야지!

토끼 : 맨날 당신한테 먼저 왔잖아요! 아직 표트르한텐 가지도 않았어요.

푸쉬킨 : 시인이 황제보다 우선하는 게 당연하지!

토끼 : 맞아요 사랑합니당~


(표트르 : 청동기사상 ㅋㅋ)


그리고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그리보예도프 운하는 얼어붙었고 눈이 쌓여 있었다. (추웠다.. 체감온도 영하 15도라고 나왔음 ㅠㅠ)


..


내일은 양말 두개 신어야지... 어그부츠 신었다고 방심해 양말 하나만 신었는데 오늘 발 시려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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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이날은 페테르부르크에 짧게나마 놀러오셨던 엽님과 함께 판탄카 운하를 지나 레트니 사드에 갔다가 마르스 광장을 가로질러 이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이 있는 그리보예도프 운하로 걸어왔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그 며칠전까진 계속 비왔는데 엽님은 정말 날씨 운이 좋으셨다. (그다음날 귀국하신 후 다시 페테르부르크엔 비가 왔음 ㅋㅋ)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사진이야 전에도 여러번 올렸지만... 오늘은 좀 부분부분 찍은 사진들. 근데 내 키가 작아서... 구도가 다들 좀 삐꾸임. 어쩔수 없어 흐흑...

 

 

 

먼저 젤 전형적인 관광엽서 구도로 한컷~ 이 구도는 전에도 몇번 올렸음. (뭐 갈때마다 이 구도로 몇장씩 찍는다 ㅎㅎ)

 

 

 

 

 

 

이건 마르스 광장 걸어가며 찍은 사진. 하늘이 저토록 파랬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함께 보낸 건 이틀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엽님, 즐거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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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전에 여러번 발췌한 소설의 전반부에 포함된 에피소드이다. 1974년 3월. 미샤는 키로프에 입단한지 일년이 채 안된 시기이다. 우중충한 진창으로 가득한 음습한 3월의 어느날, 한밤중에 미샤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친구인 트로이의 아파트로 찾아온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3월 초였다. 날씨는 좀 풀렸지만 거리는 진창과 감기 환자들로 가득했다. 트로이는 일 년 중 이 시기를 가장 싫어했다. 오후 강의에도 감기로 빠진 학생이 세 명이나 있었다.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 때문인지 그날따라 학생들은 별로 어렵지도 않은 영문법을 따라가지 못해 쩔쩔 맸고 짧은 테스트에서도 무더기로 오답을 냈다. 마침내 트로이는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거론하며 학생들을 협박해야 했다.

 

 강의를 마친 후 트로이는 녹초가 되어 학교를 나왔다. 그는 자신의 수업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나이 차이가 대여섯 살 밖에 나지 않는 젊은 강사를 만만하게 여겨서 그러는 것인지 의문하며 길을 건너 버스를 타러 갔다. 평상시 같으면 다리를 건너 집까지 걸어갔을 테지만 그러기엔 녹은 눈 때문에 길거리가 너무 지저분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지만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사흘 후 모스크바 대학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가야 했는데 아직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다. 몇 시간만 매달리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요 며칠 동안 그는 독감에 걸린 듯 머릿속이 뿌옇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얼마 전 다시 만난 톨랴가 그에게 퍼부어댄 원망 섞인 욕설 때문일 수도 있었다. 톨랴는 아직도 그가 청혼할 거라는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전구가 나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텅 빈 집으로 들어갔다. 지난 여름에 어머니가 재혼해 떠난 후 트로이는 아파트를 혼자 쓰고 있었다. 좁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네프스키 대로 근처였고 방 두 칸과 거실, 부엌과 욕실이 딸려 있었으므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몇 번은 아기가 태어난 갈랴의 집 대신 그의 집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집 주인의 요리 솜씨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갈랴 부부의 집만큼 인기는 없었다.

 

 

 밑단이 흙투성이가 된 바지를 벗어 빨래통에 처박은 후 그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끈끈하고 음습한 레닌그라드의 3월 공기를 씻어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주 진한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며 전날 알리사가 카페에서 사다 준 양귀비씨 빵으로 저녁을 때웠다. 결혼 후에도 알리사는 종종 들러 그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곤 했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린 후 그는 책과 논문 뭉치를 들고 식탁으로 가서 발제 원고를 마저 쓰기 시작했다. 부엌의 조명이 가장 밝았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도 틀지 않고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서너 시간 동안 원고를 썼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려고 손에 닿는 의자에 놓여 있던 푸쉬킨 시집을 집어 아무렇게나 펴고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읽었다.

 

 

지금은 나의 계절, 나는 봄이 싫다.

눈 녹는 철은 지겨워, 악취와 진창도. 봄에는 앓게 되네.

몸 속의 피는 방황하고 감정과 예지는 우수에 사로잡힌다

엄동설한이 내겐 훨씬 좋다.

 

Теперь моя пора: я не люблю весны;

Скучна мне оттепель; вонь, грязь — весной я болен;

Кровь бродит; чувства, ум тоскою стеснены.

Суровою зимой я более доволен,

 

 

 

 악취와 진창을 얘기하는 푸쉬킨은 진정한 러시아인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트로이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곱슬머리의 가무잡잡한 시인이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모를 만나지 않았다면, 리체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래도 위대한 시인이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더 위대하고 더 사랑받는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재능은 유일무이한 것이며 불멸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며 특권이었다. 아무도 그의 곁에 있던 친구들과 이류 시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리 짙지도 않은 어둠 속으로 명멸해 사라진 자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네바 강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없었을까?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모임은 다음 주였고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혹시 알리사가 들른 걸까 싶어 트로이는 현관으로 나갔다.

 

 

 “ 누구세요? ”

 

 “ 나야. 들어가도 돼? ”

 

 

 트로이는 문을 열었다. 미샤가 가방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도 시커먼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

 

 “ 수도관이 터졌어. 집이 물바다야. ”

 

 

 트로이는 미샤를 안으로 들여놓고 가방을 받아 내려놓았다. 미샤가 물을 뚝뚝 흘리며 재채기를 해댔다. 트로이가 타월을 가지고 왔을 때 그는 신발과 재킷과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벗어 현관 바닥에 내팽개치고 있었다.

 

 

 “ 바닥 더러운데 나한테 줘. ”

 

 “ 괜찮아, 어차피 빨아야 돼. ”

 

 

 타월로 머리의 물을 떨어내며 미샤가 거실로 들어왔다. 바지도 엉망이었다. 가방 지퍼를 열어 마른 옷을 꺼내며 그는 다시 재채기를 했다.

 

 

 “ 온수 나와? ”

 

 “ 응, 아직은 나올 거야. 빨리 가서 씻어. 파이프가 터졌으면 잽싸게 튀어나올 것이지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거야? ”

 

 “ 고칠 수 있을 줄 알았지. 반쯤 고쳤는데 레냐가 뭘 잘못 건드렸어. 삽시간에 펑 터지잖아. 집 밖으로 나왔는데 거기서도 또 터졌어. ”

 

 

 졸업하고 기숙사에서 나온 후 미샤는 극장 동료 세 명과 함께 사도바야 거리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하나는 동기였고 둘은 선배였는데 트로이는 미샤가 레냐라고 부르는 레오니드 핀스키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레트니 사드의 아폴로 조각상을 닮은 핀스키는 트로이가 유일하게 아는 미샤의 발레학교 동기였다. 극장에서 좀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해줬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나마 친한 친구와 같이 쓰게 되어 다행일지도 몰랐다.

 

 

 “ 그래서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어? ”

 

 “ 다 짐 싸서 뿔뿔이 피난갔지. 난 그나마 나아, 레냐랑 발로쟈 방은 직통으로 터져서 옷이고 책이고 다 잠겼어. ”

 

 “ 대신 물에 빠진 생쥐가 됐잖아. ”

 

 “ 뭐 몸으로 때우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

 

 

 미샤는 나무 바닥과 카펫 위에 더러운 물을 떨어뜨리면서 욕실로 갔다. 가는 내내 재채기를 했다. 트로이가 등 뒤로 물었다.

 

 

 “ 그런 몰골로 버스를 탄 거야? 같이 있는 애들한테도 차가 없어? ”

 

 “ 아무도 없어. 급료가 짜거든. 버스는 안 탔어. 경찰한테 잡혀갈 것 같아서. ”

 

 “ 그럼 걸어왔어? ”

 

 “ 알잖아, 운하 따라 오면 얼마 안 걸려. ”

 

 

 트로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시궁창에 구른 듯 흠뻑 젖은 상태로 운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오는 게 정신이 제대로 박힌 무용수가 할 만한 짓인지 꾸지람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갈랴처럼 굴고 있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았고 찬장을 뒤져 그나마 깨끗한 컵을 한 개 찾아냈다. 제대로 된 찻잔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모임 때 오랜만에 새 소설을 탈고한 쥬진스키가 신이 나서 찻잔들을 가지고 무슨 퍼포먼스를 하다가 깨뜨렸기 때문이다.

 

 

 식탁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았던 원고와 책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끓는 물과 찻잎을 컵에 붓고 있을 때 미샤가 나왔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방에서 스웨터를 꺼내 티셔츠 위로 뒤집어쓰며 미샤가 투덜댔다.

 

 “ 중간에 더운 물 끊겼어. 우리 아파트만 그런 게 아니었나봐. ”

 

 “ 이쪽으로 와서 차 좀 마셔. ”

 

 진하게 우린 차에 얇게 썬 레몬 두 조각과 설탕을 한 숟갈 부어 넣으며 트로이가 의자를 가리켰다. 미샤는 잠깐 눈썹을 찌푸렸지만 두어 차례 몸을 떨더니 트로이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아 직접 설탕을 더 퍼 넣었다.

 

 “ 더 넣어. 그래야 몸이 녹을 걸. ”

 

 “ 이미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가 심장병을 일으킬 분량인데. ”

 

 

 미샤는 제대로 젓지도 않고 컵을 입에 가져갔다. 뜨거운 차를 연달아 두 잔 마시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식탁 구석에 쌓여 있는 원고와 책들을 보았다.

 

 

 “ 강의 준비해? ”

 

 “ 아니, 금요일에 모스크바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

 

 “ 아, 나도 금요일부터 투어 가. ”

 

 “ 어디로? ”

 

 “ 키예프, 사라토프, 아마 페름까지 갈 거야. 너 사라토프에 할머니 계시다고 하지 않았어? ”

 

 “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우리 할머니 극장 좋아하니까 너 보러 갈지도 모르겠다. ”

 

 “ 그래, 오신다면 내가 앞자리 부탁해 놓을게. ”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끌어왔다. 개켜놓은 옷들 사이를 뒤져 발레슈즈와 작은 천 지갑 같은 것을 꺼냈다. 자세히 보니 지갑이 아니고 바느질 도구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벽에 등을 기대고 식탁에 다리를 걸친 채 능숙하게 발레슈즈에 바늘을 찔러 넣으면서 미샤가 물었다.

 

 

 “ 나 자고 가도 돼? 여자가 오기로 한 거 아냐? ”

 

 “ 무슨 여자? ”

 

 “ 여자 생겨서 바쁘다며. ”

 

 “ 깨졌어. ”

 

 “ 유감이네. ”

 

 “ 그냥 금요일까지 여기 있어. 우리 엄마가 쓰던 방 비어 있으니까. 파이프 터진 건 금방 고친다 해도 물 빠지고 치우는데 한참 걸릴 걸. ”

 

 “ 그래, 친구가 있어 다행이야. ”

 

 

 트로이는 매혹되어 미샤가 발레슈즈를 기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바느질을 할 줄 아는 것도 신기했다.

 

 

 “ 신발은 극장에서 다 대주는 건 줄 알았는데. 스타가 이런 걸 직접 하다니. ”

 

 “ 주긴 하는데 몇 켤레 안 줘. 그리고 아직 스타가 아니야. ”

 

 

 아마 미샤는 인민예술가 정도는 되어야 스타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트로이에게 강의와 모스크바 세미나에 대해 물어보면서 신발 세 켤레를 순식간에 기웠다. 그리고는 세 켤레를 돌아가면서 신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상태를 점검했다. 그 모든 동작은 완벽하게 기계적이고 효율적이어서 군인을 연상시켰다.

 

 

 “ 투어는 며칠 정도야? ”

 

 “ 3주. ”

 

 “ 뭐가 그렇게 길어? ”

 

 “ 버스로 간대. 집단농장들도 들르고. ”

 

 “ 키로프라고 그렇게 화려한 게 아니구나. 버스로 투어 가고 급료도 짜고 직접 신발도 기워야 하고. ”

 

 “ 당연하지, 트로이츠키 동무. 여긴 평등의 사회인걸. ”

 

 “ 크류코바도 같이 가? ”

 

 “ 아니, 니나 정도 되면 계급 위에 존재하지. 그리고 니나랑 같이 가게 되면 더 골치 아파질 거야. ”

 

 “ 왜? ”

 

 “ 더 미움 받게 된다고. 투어에 니나 예전 파트너가 둘이나 같이 가거든. ”

 

 

 미샤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트로이는 극장 내부의 위계질서가 얼마나 엄격하고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타냐에게 조금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수직으로 급상승하고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젊은 신입은 아마 선배들 사이에서 눈엣가시나 다름없을 것이다.

 

 

 “ 쓰던 거 계속 써. 나 연습 좀 할게. ”

 

 “ 테이프 챙겨 왔으면 음악 틀어놓고 해도 돼. ”

 

 “ 괜찮아, 몸만 풀 거야. 근육이 좀 뭉쳤어. ”

 

 

 미샤는 거실 쪽으로 나가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트로이는 다시 원고를 쓰려고 했지만 도저히 미샤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겨 거실에서 등을 돌리고 책과 원고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미샤는 책장과 창틀을 잡고 다리를 길게 뻗으며 트로이에게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동작을 연속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근육만 조금 푸는 동작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완전히 몰입하여 음악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생소한 춤을 추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가도 모를 것 같았다. 트로이는 푸쉬킨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유일무이하고 불멸하는 재능.

 

 그는 고개를 돌렸고 원고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논리가 약해지면서 횡설수설로 변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다른 논문들을 인용하고 논지를 가다듬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주제를 잘못 택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내용을 바꿀 수는 없었다.

 

 

 

...

 

 

얼마 전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시점으로 서술된 이야기를 짧게 발췌한 적이 있었다. 투어에서 돌아온 미샤가 폐렴에 걸린 얘기(http://tveye.tistory.com/5469 )였는데 그것이 위 에피소드에서 미샤가 말하는 '키예프, 사라토프, 페름'의 버스 투어였다. 시간적으로는 위 에피소드가 1974년 3월, 투어에서 돌아와 폐렴에 걸리는 것이 4월로 이어진다.

 

..

 

인용된 시는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가을'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리체이는 소년 시절의 푸쉬킨이 다녔던 기숙학교이다.

 

미샤가 차에 설탕 타면서 얘기하는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는 그의 발레학교 시절 은사이다.

 

..

 

수도관 터져서 난방 끊기고 물벼락 맞고 집에서 달려나온 미샤의 이야기는... 사실 내 경험에서도 좀 가져왔다. 나는 다행히 물벼락까진 안 맞았지만... 예전에 러시아 기숙사에 있을때 동네 수도관이 다 터져서 길바닥에선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하필 혹한이 몰아닥쳐서 얼어죽는 줄 알았었음.

 

그런데 그때 기숙사에는 그저 벽에 '기술적 문제로 난방 안됨'이라고만 씌어 있었고...

'그 망할놈의 기술적 문제! 맨날 저 문구야!' 하면서 덜덜 떨며 뜨거운 물을 끓이면서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뉴스에 어디어디 수도관 터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우리 동네였음 ㅠㅠ


 

그보다도 더 예전에 있을땐 겨울에 온수 안 나올때가 많아서 가스렌지에 물을 끓이기도 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기도 해서 그걸로 간신히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은 적도 있었음. 그러니 소련 시절인 1970년대의 미샤와 트로이네 집은 당연히 더 심했겠지 ㅠㅠ (저 에피소드가 벌어질 당시 미샤는 아직 극장 근처의 좋은 아파트를 얻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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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예술광장의 푸쉬킨 동상.

 

 

 

루돌프 누레예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은 alex gouliaev.

이번 뮌헨 바이에른 극장 무대에서 데뷔했던 존 크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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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에피소드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5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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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0. 15. 23:15

비둘기야 너는 아니? 2016 petersburg2016. 10. 15. 23:15

 

 

그리보예도프 운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앞 운하 난간에 도도하게 혼자 내려앉아 있던 비둘기.

 

비둘기야, 넌 여기가 어딘지 아니? 여기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야. 관광객들이 전부 여기로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

 

 

비둘기 : 나랑 무슨 상관~ 몸치장이나 하련다~ 빵이나 좀 주지..

 

 

비둘기 : 아이 발 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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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비둘기도 페테르부르크의 조그만 상징 중 하나다. 페테르부르크 그림엽서나 만화엽서에 종종 등장한다. 비둘기가 많긴 하지.. 근데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비둘기는 많다...

 

그래도 한두마리만 있으면 괜찮아... ㅠㅠ 특히 가만히 앉아 있거나 걸어다닐땐 괜찮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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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