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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4. 20:06

백야, 천사와 황제, 네바 강 2016 petersburg2019. 4. 14. 20:06




예전에 쓰던 글을 꺼내 어제 다시 쓰기 시작하느라 몇년 전 사진들도 뒤적여 보았다. 2016년 6월. 페테르부르크. 백야. 한밤중 해질 무렵 네바 강변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이삭 성당의 천사들 실루엣, 말을 타고 있는 황제 표트르, 가로등 램프 그림자, 교각과 불빛들, 일렁이는 수면, 백야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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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3. 21. 22:29

천사들 2017-19 petersburg2019. 3. 21. 22:29



이삭 성당의 천사들. 작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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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2. 22:21

한겨울 해질 무렵의 페테르부르크 2016 petersburg2018. 3. 12. 22:21





석양 무렵, 한겨울의 페테르부르크. 오후 3~4시 즈음이다.



2016년 12월. 료샤와 함께 석양 보려고 네바 강가로 걸어면서 찍은 사진 몇 장. 이삭 성당. 천사. 나무들. 해군성. 청동기사상. 가로등 램프. 네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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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엄밀히 말하자면 딱 1년 전은 아니고 1년하고 한달 쯤 전이다. 블로그 이웃인 bravebird님과 페테르부르크에서 조우했었다. 항상 장난삼아 '언젠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요~'라고 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이삭 광장의 아스토리야 호텔 빨간 차양 아래에서 만났다. 6월이었지만 비바람이 불고 매우 추운 날씨였다. 나는 무슬림처럼 머리에 스카프를 칭칭 두르고 나갔다.

 

다음날 우리는 고스찌에서 점심을 먹고 아스토리야의 로툰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케익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해가 질 무렵 함께 청동기사상에게 가서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네바 강변을 거닐며 백야의 석양을 만끽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골목을 걸어서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bravebird님이 먼저 귀국하시고 며칠 후 나는 다시 그 아스토리야 호텔 빨간 차양 아래에서 다른 블로그 이웃분인 엽님을 만났다. 그때도 역시 무척 즐거웠다.

 

떠나는 날 아침에는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로 pica님을 만나 돔 끄니기 2층 카페에서 같이 아침을 먹기도 했다. 작년 6월은 내게 무척 힘든 시기였지만 대신 좋은 분들을 세분이나 만나게 되어 이것만은 큰 기쁨이었다.

 

 

얼마전 프라하에 갔을때도 이웃분인 영원한 휴가님과 그야말로 번개치듯 갑자기 드레스덴에서 만났다. 이렇게 번개치듯 만난 분들이 다들 좋은 분들이라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작년 6월, bravebird님과 아스토리야 로툰다 카페에서 차 마시며 찍은 사진 몇 장 + 그리고 차 마신 후 산책하러 나가다 찍은 사진 두 장.

 

 

 

 

사진들에서 서로의 얼굴을 교묘하게 잘라내느라 ㅋㅋ 몇 장은 귀퉁이가 좀 잘려나갔다.

 

 

 

 

이것은 내가 시켰던 안나 파블로바. 머랭과 바질, 생크림과 딸기가 들어간다. 그런데 내 입맛엔 좀 안 맞았음 ㅜㅜ

 

 

 

 

이건 bravebird님이 주문하신 레몬 무스 케익(..이었다고 추정됨) 이것은 새콤하고 맛있었음.

 

 

 

 

로툰다 카페 창 너머로는 이삭 성당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이다.

 

 

 

 

이건 폰으로 찍어서 어둡게 나왔네... 피아노도 연주해준다 :)

 

 

 

 

 

 

 

이건 전에 한번 올린 적 있음. bravebird님께서 갑자기 내게 짠 하고 내밀어주신 깜짝선물 :)

 

 

 

 

 

 

그리고 우리는 같이 이 길을 따라 해군성 공원을 지나 청동기사상 앞으로, 그리고 네바 강변으로 산책을 하러 갔다. 사진 오른편 아래에 그 빨간 차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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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9월에 프라하 갔을 때 친구 쥬인의 부탁으로 도자기 가게에서 새알종을 사다 주었었다. 도자기 새와 계란과 종이라서 세트로 새알종이라 부른 것이다. 쥬인에게는 하얀 새(쥬인이 지어준 이름 : 새돌이), 파란 알, 파란 종을 사다 주었다.

(그 새알종에 대한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5188)

 

사실은 우리 집에도 새알종이 있다. 새와 종은 3년 전에 사왔던 것이고 알은 이번에 사온 것이다. 그중 새와 알만. 종은 부엌 창문에 달려 있는데 커튼 대용 스카프로 가려져 있어서 귀찮아서 안 찍음. 종은 흰색과 하늘색이다.

 

쥬인에겐 파란 알을 사다주었지만 내가 산건 노랑초록 무늬 알.

 

거실 선반에 새랑 알 걸어두었다. 우리 집 새는 쥬인에게 사다줬던 새돌이만큼 순해보이지 않는다 ㅠㅠ 글고 나는 얘들한테 이름도 안 붙여줌. 그냥 새랑 계란이다 ㅋㅋ

 

 

 

울집 새는 얼굴이 좀 갸름함... 나는 동그랗고 얼띠게 생긴 애가 좋던데 ㅋㅋ

 

 

톡 깨면 맛있는 흰자 노른자가 나올 것 같은 이쁜 도자기 달걀~

 

 

이건 6월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샀던 수호천사 미니 접이액자.

 

그리고 선반의 천사들 + 마트료슈카 + bravebird님이 전에 선물해주신 프란시스코 주르바란의 그림 엽서 :)

(잘 보면 선반 오른편 아래에 주황색 줄이 보인다... 도자기 달걀에 달려 있는 줄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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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9. 22:51

수용소 면회실에서, 얼룩들, 왜냐하면 about writing2016. 11. 19. 22:51

 

 

 

 

아래 글은 3년 전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해서 서울에서 마무리한 중편이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2부는 프라하에서 썼고 3부는 서울에 돌아와서 썼다. 여기서 나는 나의 주인공 미샤가 체포된 후 레닌그라드 정신교화 수용소와 모스크바 비밀 클리닉, 그리고 면회실에서 겪는 일들을 다뤘다.

 

사실 이 이야기는 원래 쓰고자 했던 가브릴로프 본편에서 간단한 회상 정도로만 처리하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프라하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나에게 옳았다. 그때는 2013년이었다. 지금의 정부가 들어선 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고민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금처럼 잠시 회사를 쉬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었다. 나는 글을 썼고 수면으로 올라왔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때 이 글을 썼던 것이 나에게 필요했듯, 지금도 아마 어떤 다른 종류의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가 됐든 결심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발췌한 내용은 소설의 3부이다. 주인공 미샤의 절친한 친구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모스크바 KGB 비밀병원의 면회실에서 미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나는 일이다. 일린은 전에 발췌한 글들에서 여러번 등장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 토박이, 볼쇼이 극장 무용수 출신의 유능한 안무가이며 미샤의 얼마 안되는 진짜 친구이다. 이전에 일린과 그의 어린 딸 라라, 미샤가 등장하는 부활절 단편을 전문 게재한 적이 있다. 이 면회실에서의 일린과의 대화 역시 토막토막 발췌한 적이 있다.

 

 

내가 왜 지금 이 부분을 발췌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건 얼마 전 내가 소년 시절의 미샤와 심문관 그라도프의 이야기(http://tveye.tistory.com/5348 : 사제 없는 고해. 심문관의 독백, 혼자 다니는 사람, 집단주의) 를 올렸던 이유와 많이 겹치겠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여기가 바로 저곳이며 저때나 다름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중간에 언급되는 라라와 아냐는 일린의 두 딸이다.

 

벨스키는 미샤를 후원하는 공산당 고위 간부 중 하나이다. 전체 이름은 게오르기 벨스키. 정치적으로 온건파이며 미샤를 이후 수용소에서 빼내 소도시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도록 힘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전에 등장했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나 드미트리 마로조프와는 달리 미샤와 사적인 관계로 얽혀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의 3부에서 일린을 클리닉에 보내 미샤를 면회할수 있도록 해준 것도 벨스키이다.

 

지나는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시절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이다'이다. 전에 지나에 대한 얘기도 두어번 발췌한 적이 있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이제 미샤는 왼쪽 어깨를 천천히 여러 번 돌리면서 깊고 불규칙한 호흡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프다고 하지는 않았다. 내 앞에서조차 그는 아픈 것을 제대로 인정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 곁에 앉아 있는 그 야윈 몸으로부터 점점 열기가 퍼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창백한 얼굴에는 사람을 홀리던 아름다움이 여전히 반쯤은 남아 있었는데 어쩐지 그건 인위적이고 비정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아마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뺨과 이마 위로 물감을 끼얹은 듯 번지는 홍조 때문일지도.

 

 나는 그의 오른쪽 손등을 감싸 쥐었고 그 타는 듯한 열기에 놀랐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얼음장처럼 차갑던 손이었다.

 

 

 “ 너 괜찮아? ”

 

 “ 그럼. ”

 

 

 그는 내 앞에서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짧은 단어를 내뱉는데도 숨을 헐떡였다. 나는 그의 목을 칭칭 감고 있는 스카프를 풀어 주었다. 열이 올라 답답한 것 같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조잡한 색깔의 천 조각을 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카프를 풀어서 소파 한켠에 내던져버렸을 때 미샤는 두어 번 기침을 하더니 한결 깊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진작 풀어버릴 걸 그랬다고 말해주려다 나는 잠시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애의 턱 아래와 목덜미 전체에 멍이 가득했다. 짓밟힌 듯, 뭉개진 듯, 끔찍한 색깔과 이상한 모양의 일그러진 얼룩들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었다. 그건 심지어 붉은색도, 보라색도 아니었다. 엉망으로 더럽혀진 진흙탕 같았고 토사물 같았고 빛바랜 잉크, 지저분하게 번진 커피 얼룩 같았다.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쇄골 전체가 라라의 첫 유화 수업 팔레트처럼 우중충하게 뒤섞인 어둡고 음산한 얼룩들로 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미샤는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내가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아직 초점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 시선을 본다기보다는 느낀 것 같았다.

 

 

 “ 왜? ”

 

 “ 다른 데도 그래? ”

 

 

 그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명민하던 애가, 내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금세 눈치 채던 애가 이제는 순진한 어린애처럼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오른쪽 소매를 걷어보았다. 그것들이 팔에도 있었다. 목덜미보다 더 많아서 얼룩이 사슬처럼 서로 겹쳐져 있었다.

 

 

 “ 멍들었잖아. 다른 데도 다 이래? ”

 

 

 팔목을 그렇게 세게 쥔 것도 아니었는데 미샤가 낮게 소리를 질렀다. 아주 짧고 작은 비명이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미샤가 왼손으로 내 손등을 잡아당겼다. 그건 라라보다도, 아니 이제 열 살 밖에 안된 내 조그만 아냐보다도 더 미약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미샤의 팔목을 놔주었다. 이마로 열기가 치솟았다. 가능한 한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그 애를 향해 똑바로 물었다.

 

 

 “ 맞았어? 맞아서 생긴 멍이야? ”

 

 

 나는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나의 지식은 평범한 소련 시민이 솔제니친 류의 소설들, 그리고 각종 수기나 기사 따위를 읽고 주워 모을 수 있는 내용들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30년대도, 50년대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육체적 폭력. 그게 죄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심문 과정에 포함된 것이든, 혹은 양쪽 모두이든 상관없다. 그건 비단 수용소뿐만이 아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폐쇄된 공간에 남자들을 몰아넣었을 때, 그리고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기 위해 굳이 보고서와 수기를 읽을 필요는 없었다. 발레학교 기숙사에서도, 그리고 우아하고 고상할 거라는 오해를 받는 극장의 연습실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은 늘 있었다. 다시금 내 눈 앞에 그 사진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토록 빽빽한 얼룩들을 만들어놓으려면 대체 몇 명이 얼마나 집요하게 두들겨 패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게 충격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샤는 거의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맞아서 그런 거 아냐. 화내지 마. 때리지 않았어. ”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잠깐 한 손으로 가슴팍 쪽을 눌렀다. 그것도 무의식적인 행동 같았다.

 

 

 “ 맞은 게 아니면 뭔데... 너 많이 아팠잖아. 지금도 팔 건드리니까 아파했잖아. ”

 

 “ 없어지고 있어. 이제 괜찮아. ”

 

 

 그 순간 나는 이제껏 왜 그 애의 얼굴에서 인위적이고 기묘한 느낌이 배어나오고 있었는지 퍼뜩 깨달았다. 야위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창백하고 가면 같은 안색과 부드러운 핏기가 도는 뺨과 입술. 그 모든 것이 사기였다. 그 애는 분장을 하고 있었다. 무대에 올라갈 때처럼. 의상을 입고 춤췄을 때처럼. 손수건을 꺼내 광대뼈와 뺨을 문지르자 파우더와 화장품이 잔뜩 묻어났다.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손수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석고처럼 하얗고 완전히 핏기가 없는 피부가 새로운 얼룩처럼 드러났다. 입술조차 거의 아무런 색채가 없었다. 나는 그 애가 발레 무대에 올라가던 때에도 그렇게 화장품을 두텁게 겹쳐 바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미샤는 일반적인 동료 무용수들과는 반대로 피부색보다 짙은 파운데이션과 섀도를 사용한 적이 더 많았지만 결코 무대 메이크업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조금만 손을 대도 강렬하게 눈에 띄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애가 죽은 사람처럼 새하얀 얼굴을 예순 살 노부인들보다 더 두터운 파운데이션으로 빽빽하고 두텁게 칠한 채, 조금 창백하고 아주 조금 아파 보일 뿐 그저 야윈 것에 지나지 않는 척 하며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 애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화장품 팔레트와 붓조차 제대로 들 수 없는 상태였다. 그자들이 공금으로 그 끔찍한 옷을 입혔듯 그 애에게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광대뼈와 콧등에 블러셔와 하이라이터를 문지르고 이마와 턱 가장자리에는 셰이드까지 칠해서 그 애를 무대도 없이 광대로 만들고 자본주의조차 없이 상업화보 모델로 만들었다.

 

 

 그러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의 고함을 지르기 직전이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전혀 괜찮지 않아. 그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더러운 놈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한 거냐구!

 

 

 

 미샤가 발을 한 번 굴렀고 내 옷자락을 붙잡더니 아이처럼 흔들어댔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입술을 움직여 단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도청’, 그 단어를 말도 없이 두 번, 세 번 되풀이했다. 그러더니 오른손을 뻗어 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내 얼굴 앞에서 두 손을 교차해 잠깐 십자 모양을 만든 후 다시 손가락을 내 관자놀이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그건 우리가 청년 극장에서 발표했던 짧은 춤을 위해 발레 마임을 토대로 고안했던 동작들이었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도청당하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마. 널 체포할지도 몰라. 위험해질지도 몰라.

 

 

 상관없어. 들으라고 해. 네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입을 다물 수 있어. 얘기해봐, 미셴카. 그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런 짓 전부 불법이야. 넌 시민권을 박탈당한 것도 추방당한 것도 아냐. 정식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잖아. 네가 지금까지 연방을 위해 해준 일이 얼만데... 어떻게 너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약이야? 그놈들이 마약으로 이렇게 만든 거야? 약물로 고문한 거냐고! 외국에서 떠드는 얘기가 정말인 거야?

 

 

 미샤는 이제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마임을 시도하는 것도 포기했다. 한 손을 뻗어 그대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화장이 반쯤 지워진 그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애는 몸을 떨고 있었다. 왼쪽 팔과 다리에서 시작된 경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는데 꼭 영하 30도의 날씨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얼음 구덩이에 던져진 사람처럼 떨었다. 너무 몸이 떨려서 내게까지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래도 그는 완강하게 내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떼어내는 대신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정수리까지 치솟았던 열기와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폭발할 듯한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심장 한가운데 그대로 고여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그런 분노와 증오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샤는 내가 잠잠해지자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여름이 아니었다면 벗어줄 재킷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스카프를 다시 주워 그 애의 목과 어깨에 둘러 줘야 했다. 마치 자주색의 죽은 뱀을 둘러주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미샤는 추워서 그런지 스카프를 감아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초점이 흐릿한 검은 눈만이 불안하게 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감시자들이 들어와 나를 끌어내 체포할까봐 두려운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의 미셴카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 어떤 권위와 위협 앞에서도 굴복할 줄 모르던 미샤 야스민이 그런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다니, 두려움으로 내 입을 막고 몸을 떨다니. 문득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아주 설득력이 있어서 난 거의 넘어갈 뻔 했다. 그 애의 몸에서 발산되는 불처럼 뜨거운 열기와 죽어 넘어진 페트루슈카를 연상시킬 정도로 심한 경련이 아니었다면 분명 난 꿈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나는 한 팔을 미샤의 팔 아래로 넣어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아 안았다. 다른 팔을 뻗어 허리에 둘렀다. 그러자 경련이 조금 잦아들었다.

 

 

 “ 어깨에 기대. 그럼 좀 편해질 거야. ”

 

 “ 네 어깨는 작은데. ”

 

 “ 그래도 너 하나쯤은 기대게 해 줄 수 있어. 전에도 그랬잖아. ”

 

 “ 그랬지. ”

 

 

 미샤가 순순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짧은 머리칼이 얇은 셔츠를 파고들며 살갗을 찔렀다. 그 애의 이마와 뺨이 닿은 자리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 걱정하지 마. 날 체포하지는 않을 테니까. 벨스키가 보냈다고 했잖아. ”

 

 “ 왜 흥분하는 거야? 제일 안전할 줄 알고 네 이름 댔는데. 좀 무서운걸. ”

 

 “ 난 약과야. 지나가 왔으면 더 소리 지르고 화냈을 걸. ”

 

 “ 지나가 그러는 건 무섭지 않아. 걘 조용한 게 무섭지. 넌 반대잖아. 내 앞에서 화낸 적 없었는데. ”

 

 “ 너한테 화내는 게 아냐. ”

 

 “ 음, 나한테 화를 내면 안되지. 그럼 라라에게 이를 거야. ”

 

 “ 지금 농담한 거야? ”

 

 “ 미안, 여전히 재미없어서. ”

 

 

...

 

 


이 소설 1부에 등장하는 심문관들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48 : 수용소, 심문자들, 유령들, 인체발화, 다시 세 개의 메모

 

역시 이 소설 3부에서 화자인 스타니슬라프 일린과 미샤가 면회하는 장면은 전에 서너번 토막토막 올린 적이 있다. 아래.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을때, 수용소 면회실에서의 조우 : http://tveye.tistory.com/4521

푸에테와 이반 왕자와 불새 : http://tveye.tistory.com/3613

농담에 약한 주인공, 타협,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 http://tveye.tistory.com/4468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 : http://tveye.tistory.com/4341

 

 

일린과 그의 딸 라라, 미샤의 이야기(부활절 단편) Jewels 전문은 여기


1장 : http://tveye.tistory.com/3390
2장 : http://tveye.tistory.com/3391
3장 : http://tveye.tistory.com/3393 
4장 : http://tveye.tistory.com/3394
5장 : http://tveye.tistory.com/3395

 

 

..

 

 

 

 

 

 

맨 위 사진들과 아래 사진들은 모두 프라하 성 비투스 성당, 아녜슈카 성당, 성 이르지 성당에서 내가 찍은 것들.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5. 4. 3. 21:58

천사, 아직 오지 않은 부활절 기념 arts2015. 4. 3. 21:58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첫눈에 반해 사온 천사 목각 인형. 원래는 마트료슈카를 하나 더 살까 했는데 이 천사를 발견하고는 마트료슈카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옷 색깔도 여러 가지였고 같은 종류 천사도 많았는데, 수많은 천사들을 다 살폈지만 제일 처음 봤던 이 천사가 가장 마음을 사로잡아서 결국 첫번째 천사 선택.

 

머리색이나 옷 색깔을 보니 가브리엘 같은데.. 뭐 아닐 수도 있다만. 내 마음 속으로는 금발의 가브리엘이라고 부르고 있다. 금발의 가브리엘은 러시아 박물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자 가장 아름다운 이콘이기도 하다. 그 이콘 이미지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

 

금발의 가브리엘 이콘을 너무 좋아해서 예전에 마무리한 미샤와 레닌그라드 우주 본편 소설 하나는 그 이콘이 있는 전시실에서 에필로그를 맺었다. 지금 쓰고 있는(그러다 서무 시리즈 때문에 잠시 중단된) 본편의 배경이 되는 지방 소도시 '가브릴로프'란 이름 자체도 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이름에 대해서도 소설 내에서는 중요한 배경 설명이 있는데 그건 언젠가 따로...

 

오늘은 '그' 금요일. 그리고 이번주 일요일이 부활절이다. 교회 안 간지도 오래됐고 사실 기독교 신자라기에는 엄청나게 날라리라서 실질적으로야 별로 종교적이지는 않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고난주간과 부활절은 언제나 내겐 어느 정도 상징적인 시기이다. 그래서 천사 인형 사진 올려본다. 사와서 호텔 방 창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천사는 나랑 비행기 타고 와서 지금은 우리 집 선반 위에 있다. 마트료슈카들이랑 금발의 가브리엘 엽서, 루지마토프 사진 엽서 등과...

 

사진에 나온 크기랑 실제 크기랑 거의 같다.

원래는 매달아 놓는 거라서 고리가 달려 있지만 난 그냥 선반에 올려놨다.

 

 

 

 

 

 

 

** 작년에 썼던 부활절 기념 단편 Jewels 링크는 아래

1장 : http://tveye.tistory.com/3390

2장 : http://tveye.tistory.com/3391

3장 : http://tveye.tistory.com/3393

4장 : http://tveye.tistory.com/3394

5장 : http://tveye.tistory.com/3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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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4. 5. 26. 20:25

검은 나무들과 천사상들 russia2014. 5. 26. 20:25

 

 

지난 4월. 페테르부르크. 레냐와 강아지 뜨보록, 그리고 친구와 산책 갔을 때.

 

 

 

이삭 성당.

전날인가 눈이 와서 이렇게 바닥에 희미하게 눈이 깔려 있다.

 

 

 

 

 

 

 

 

 

월요일이라 피곤해서 마음의 위안을 위해 좋아하는 공원과 천사상들을 올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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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08. 7. 24. 10:48

무릎 꿇은 세라핌, 빅토르 바스네초프 arts2008. 7. 24. 10:48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빅토르 바스네초프, 무릎꿇은 세라핌


러시아 민화를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던 바스네초프는 러시아 정교 사원 내부의 벽화와 제단화 작업도 했습니다. 위의 세라핌 그림도 그 작업의 일부라네요. 일견 장식적이고, 가끔은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지만 저는 그의 천사화들이 좋아요.


** 바스네초프의 다른 그림들은 아래를 클릭
http://tveye.tistory.com/175
http://tveye.tistory.com/155
http://tveye.tistory.com/80
http://tveye.tistory.com/40
http://tveye.tistory.com/16

** 귀도 레니의 천사 그림은 아래를 클릭
http://tveye.tistory.com/220

** 미하일 브루벨의 천사 사진은 아래를 클릭
http://tveye.tistory.com/33

** 페테르부르크의 천사상 사진은 아래를 클릭
http://tveye.tistory.com/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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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veye.tistory.co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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