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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8. 19:43

일요일 밤 발레 화보 몇 장 dance2017. 1. 8. 19:43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나디아 사이다코바. "레다와 백조"

어제인가가 말라호프 생일이었다고 함.

말라호프는 내가 좋아했던 무용수인데 춤 자체보다는 육체적 특성과 매력이 넘쳐서 좋아했다.






나의 첫사랑 무용수. 예브게니 이반첸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마린스키 최고의 파트너이자 왕자님이다. 이 사람이 언젠가 떠나면 사실 딱 그런 역할에 어울리는 '왕자 파트너'가 마린스키에서도 귀해지니 참 아쉽다.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라이몬다.

흑, 발로쟈.. 마린스키에도 자주 와주렴


송년 밤 공연과 1.2 공연으로 마린스키 호두까기 나왔는데 나도 이 사람 마린스키 무대 다시 무지 보고팠다..





소년의 꿈이 이루어짐.

바이에른. 얼마전 드디어 어린시절 꿈인 스파르타쿠스로 데뷔한 슈클랴로프. 사실 이 사람 신체조건이 별로 마초나 근육질 검투사 같지 않아서 마린스키에서도 스파르타쿠스는 못 얻었고 나 역시 '노예 반란자보단 포로 왕자 같아' 란 생각이었지만 공연을 본 관객들 평은 꽤 좋았다. 훌륭한 춤과 연기였다고 함.


아아 나도 보고파 발로쟈 흑.. 짧은 영상 클립 두어개밖에 못봄. 뮌헨 관객들이여, 제발 마린스키 팬들처럼 영상 좀 올려다오 ㅠㅠ


오히려 크라수스 역할의 폴루닌이 폼만 잡고 참 별로였다는데.. 뭐 폴루닌이야 원래 poser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기대 없었고 그냥 크라수스 스타일로 으쓱대는 건 어울릴듯. 연기랑 춤은 슈클랴로프가 다 하면 되지 뭐 ㅠㅠ


(근데 난 저 최후 사진을 봐도.. 슈클랴로프의 숨진 스파르타쿠스는 반란노예라기보단 고결하게 희생된 포로 왕자처럼 보여.. 다 외모 탓이다. 수염 안 깎고 나와도 그러네)



​​




흠잡을 데 없이 멋져보이는 이 스파르타쿠스 화보의 주인공은 안드리스 리에파. 옛날에 참 멋있었는데 확실히 무용수들도 나이들고 무대를 떠나고 감독이나 안무 쪽으로 가면 살이 붙는다. 그래서 요즘 리에파 모습이 담긴 사진 보면 세월이 좀 무상하다는 느낌도 든다.






이건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의 라 실피드. 왼편 제임스 역은 연기는 별로지만 외모와 포즈가 뛰어난 빅토르 레베제프. 이제 연기 좀 늘었으려나 ㅠㅠ (잊을수 없어 너의 그 나무토막 같던 솔로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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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2. 25. 21:02

런던에서 걸려온 전화 about writing2016. 12. 25. 21:02

(알티나이 아실무라토바 & 파루흐 루지마토프. 1985년)

 

(마린스키 극장 내부 모형)

 

 

오랜만에 글을 조금 발췌한다. 다시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요즘 너무 바쁘고 또 정신적 여유가 없어 언제 시작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쓰기는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것이다.

 

..

 

지난번에 미샤의 런던 에피소드를 몇번 언급한 적이 있다. 하나는 그가 런던에서 그쪽 예술가들의 아지트에 가서 젊은이와 죽음을 추는 이야기였고 하나는 같은 시기에 그가 런던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옛 친구이자 대사관 직원인 알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에피소드였다. 두 에피소드의 링크는 포스팅 맨 아래에 적어두었다.

 

아래 이야기는 위 두 이야기가 속한 파트의 전반부이다. 런던에 간 미샤와 레닌그라드에 남아 있는 트로이, 그리고 그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디나 로쉬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프리마 발레리나이며 이 이야기에서 미샤를 런던 페스티벌에 초청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일린은 미샤의 친구이자 안무가로 런던 페스티벌에서 미샤가 춘 '페트루슈카'를 안무했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미샤의 후원자이다. 율리야는 미샤의 어머니이다.

 

'로미오'는 알리사를 비롯한 트로이의 친구들이 미샤를 부르는 애칭이다. 줄리엣은 그의 파트너인 지나이다의 애칭.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 야스민은 런던에서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안무가인 일린에게는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고 다른 극장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문화국장인 포노마레바와 담당직원 하나가 함께 갔다. 키로프 무용수 개인이 그런 서방 유럽의 페스티벌에, 그것도 경쟁 부문에 참가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마침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를 비롯한 당 위원 두 명이 영국 측과 몇 가지 협약을 맺기 위해 런던에 갈 예정이었으므로 미샤의 런던행도 문화교류 일환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스비제르스키는 포노마레바와 미샤를 모스크바로 부른 후 자신과 같은 비행기에 태워갔다.

 

 

 개막일에 미샤가 디나 로쉬와 함께 춘 돈키호테에 대한 관객들의 환호가 너무 뜨거워서 축제에 대한 관심도 함께 치솟았다. 한동안 경색되어 있던 런던과 모스크바의 관계도 스비제르스키의 방문과 함께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 언론도 키로프 간판스타의 참가를 집중 조명했다. 미샤는 빠듯한 일정 때문에 로쉬와 충분한 호흡을 맞춰보지는 못했지만 둘 다 기본기가 뛰어난 무용수였기 때문에 별다른 실수는 없었다. 게다가 돈키호테는 키로프의 자랑거리였고 남자 무용수의 화려한 테크닉과 눈부신 도약을 한껏 뽐낼 수 있는 레퍼토리였기 때문에 그는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경쟁 부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인터뷰가 줄을 이었다. 당국에서는 지난 파리 인터뷰 같은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미샤에게 절대로 통역 없이 얘기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포노마레바가 신신당부했기 때문인지 스비제르스키가 협박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미샤는 통역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지난번처럼 열성적으로 끼어들지도 않았다.

 

 로열 발레단의 스타 무용수 몇 명이 미샤를 극장으로 초청해 함께 세션을 진행한 후 런던의 명소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었다. 물론 통역과 요원이 동행하는 공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소련 대사관에서 주최한 리셉션에도 가고 스비제르스키가 주관하는 행사에도 끌려갔다. 겉으로는 런던 시내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요원 두 명과 통역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언론 홍보용 제스처일 뿐이었다.

 

 미샤의 성격이나 과거 비행들을 잘 알고 있는 포노마레바는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지만 그는 페트루슈카를 출 때까지 얌전하게 잘 견뎠다. 도망치지도 않았고 인터뷰에서 사고를 치지도 않았다. 둘째 날 대사관 측에서 조직위가 잡아줬던 숙소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영국 정보부의 도청으로부터 깨끗한’ 다른 호텔로 변경한 후 아무런 통보도 없이 그의 짐을 모두 옮겨버렸을 때에도 폭발하지 않았다.

 

 

 왕립극장 무대에서 페트루슈카 독무를 췄을 때 놀랍게도 영국 관객들이 미샤의 키로프 첫 지젤 무대와 매우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 우울한 춤에 이입해서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 내어 우는 관객들이 많았다. 지푸라기 인형 페트루슈카가 죽어 넘어졌을 때 공포로 실신한 여자도 있었고 음악이 끝난 후에도 미샤가 잠시 일어나지 않자 무대로 올라가보라고 소리를 지른 관객도 있었다. 관객들 뿐만 아니라 페스티벌 관계자 대부분도 돈키호테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에너지 넘치는 도약과 화려한 테크닉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페트루슈카는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결국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의도가 성공했던 셈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별 이견 없이 그 춤에 좋은 상을 주었다. 외교적 의도라고 비꼬는 우익 언론도 있었지만 조직위와 페스티벌 참가자들 사이에는 별다른 논란도 없었다. 로쉬는 훌륭한 춤 앞에서는 이념이나 국경 따위가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는 모범적이면서도 단호한 코멘트로 우익 언론의 비난을 묵살했다.

 

 페트루슈카를 춘 다음날 미샤는 BBC를 비롯한 미디어와 일간지 인터뷰에 응했고 로쉬와 함께 유력 예술 잡지의 표지 사진도 촬영했다. 대사의 생일 파티에도 잠깐 참석했다.

 

 

 그리고 끈이 툭 끊어졌다. 미샤는 다음날 새벽 연기처럼 사라졌다.

 

 

*    *   *

 

 

 알리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그때 트로이는 오후 강의 때문에 막 집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수화기를 들자 교환수가 딱딱한 목소리로 런던에서 걸려온 전화를 연결하겠다고 통보했다. 집으로 그런 전화가 걸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얼떨떨해져 있는데 알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알랴! 무슨 일이야? 잘 지내? ”

 

“ 전화 오래 못해. 도청되기 전에 끊어야 해. 묻는 말에 대답만 해. ”

 

“ 무슨, 무슨 일인데? ”

 

“ 로미오. 런던에서 가고 싶어했던 곳 없어? ”

 

“ 어... 왕립극장? 대영박물관? 세인트폴 성당? ”

 

“ 그런 뻔한 데 말고. ”

 

“ 락 클럽? ”

 

“ 대낮이잖아. ”

 

“ 대체 무슨 일인데? ”

 

“ 없어졌어. 새벽에 사라졌어. 빨리 찾아내야 해. 대사관이랑 요원들이 알아채기 전에. ”

 

 

 트로이는 멍하게 수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잠시 미샤가 갈만한 곳이나 런던의 지인들에 대해 캐물었지만 그는 런던에 대한 일이라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알리사의 목소리는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고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 아, 어쩌지. 다들 곧 알아챌 거야. 그 전에 돌려놔야 해! ”

 

“ 어떻게, 어떻게 그자들이 아직 모를 수가 있어? ”

 

“ 내가 막고 있어. 감기 기운 때문에 누워 있다고 보고했어. 세시에, 세시에 스비제르스키가 올 거야. 더는 못 숨겨. 어쩌면 좋지? ”

 

 

 트로이는 알리사가 울음을 터뜨릴까봐 겁이 났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미샤에 대한 생각은 제대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갑자기 알리사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 끊어야겠다. 회선 추적당할 거 같아. 혹시 모르니까 너 준비하고 있어. ”

 

“ 뭐, 뭘? ”

 

“ 로미오가 남으려고 하면, 설득해. ”

 

“ 설득이라니, 여기서 어떻게? ”

 

“ 전화로. 엄마도 불러. 걔한테는 엄마 외엔 일가친척 없어. 줄리엣, 그 아가씨도 불러. 무조건 돌아오게 설득해야 해. ”

 

“ 알랴! ”

 

 

 전화가 툭 끊겼다.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기계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창가로 갔다. 별다른 논리도 없이 빗장을 지르고 커튼을 쳤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공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두개골과 이마를 아주 무거운 것으로 짓누르는 듯 멍할 뿐이었다. 마취 주사를 쑤셔 넣은 듯 희미한 얼얼함 외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였을 때 그는 어딘가의 책에서 읽은 구절을 되뇌었다.

 

 

“ 쇼크 상태에 빠진 사람은 일시적인 마비 증세를 겪는다. ”

 

 

그는 자신이 영어로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후 또 다른 구절들이 구토하듯 밀려나왔다.

 

“ 그가 그토록 가볍고 즐거운 걸음걸이로

지나쳐 갈 때면 기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토록 슬픈 눈으로 나날을 응시할 때도 그랬다

그토록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놀랍기만 했다.

 

 

이게 뭐지?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아니, 헛소리라니! 이건 와일드잖아. 미샤가 알았으면 내 목을 자르려고 들 걸. 감히 오스카 와일드 시를 헛소리라고 지껄이다니. 어떤 꼬마가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만큼이나, 블라지미르 세묘노비치만큼이나 숭배하는 공작새 같은 작자. 그나마 영국 놈이라 이름과 부칭으로 부를 수 없으니 다행이야. 이건 레딩 감옥의 발라드잖아. 어떻게 이 부분을 외고 있었지?

 

 

 트로이는 한 손으로 자기 뺨을 거세게 때렸다. 싱크대 수도꼭지 아래 머리를 대고 물을 틀었다. 얼음장 같은 찬물에 소스라치듯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전화기 앞으로 가서 다이얼을 돌렸다. 학교에 전화를 해서 독감에 걸렸다고 둘러대고 수업을 취소했다. 잠깐 지나이다에게 전화를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그만두었다. 율리야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마음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뜬금없이 루빈슈테인 거리의 의사가 눈앞에 스치고 지나갔다. 욕을 하며 이마를 문지르자 이번에는 회색 고양이 같은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구역질나는 인간이라면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 비뚤어진 애는 일린 따위보다는 차라리 루빈슈테인 의사의 말을 더 잘 들을 것이다. 트로이는 미샤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일 거라고는 애초부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반쯤 비어 있는 보드카 병에 손을 뻗었다. 막 뚜껑을 열고 들이키려다 고개를 저으며 병을 한 쪽으로 밀어버렸다.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였다. 평소의 세 배쯤 되는 분량의 찻잎을 쏟아넣었다. 거의 커피처럼 새까맣게 변한 찻물을 이 빠진 컵에 부은 후 레몬이나 설탕도 넣지 않고 뜨거운 것도 모른 채 마셨다. 씁쓸하고 얼얼한 맛이 혀와 입천장에 흐릿하게 돌았다.

 

 

 몇 시간 동안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꼼짝도 하지 않고 전화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단 두 문장만이 되풀이되어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그 애가 남을까? 돌아올까?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설령 알리사가 전화를 연결해준다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미샤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그를 비롯해 이곳에 남은 지인들에게 벌어질 우울한 일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을 때 갑작스럽게 어떤 끔찍한 생각이 이마와 콧속을 타고 스멀거리며 기어 내려와 혓바닥을 쿡쿡 찔렀다.

 

 

 그자들이 널 죽일 거야.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몸을 부르르 떨면서 트로이는 수화기를 잡아챘다. 다시 교환수의 기계적인 안내 멘트가 들려왔다. 잠시 후 알리사의 목쉰 음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 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

 

“ 아무 일, 아무 일 없는 거야? ”

 

“ 별 일 아니었어. 걱정시켜서 미안해. 괜히 전화했었어. ”

 

“ 지금 같이 있어? ”

 

“ 응. ”

 

 

 알리사는 먼젓번처럼 예고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트로이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고 식탁 위에 밀어놓았던 병을 집어 남은 술을 모두 마셔버렸다.

 

 

...

 

 

트로이가 중간에 떠올리는 구절은 오스카 와일드의 장시 ‘The Ballade of Reading Gaol’ 제 2부 6연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For strange it was to see him pass

With a step so light and gay,

And strange it was to see him look

So wistfully at the day,

And strange it was to think that he

Had such a debt to pay.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도스토예프스키, 블라지미르 세묘노비치는 브이소츠키이다. 미샤는 존경하는 인물을 이름과 부칭으로 부르는 버릇이 있다.

 

..

 

포노마레바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던 파리 인터뷰와 디나 로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040

 

..

 

페트루슈카는 원래 미하일 포킨이 발레 뤼스에서 안무했던 작품이지만 이 소설에서 나는 그 작품을 모티브로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친구인 미샤를 위해 별도로 안무해준 약 10여분 가량의 짧은 독무 작품으로 개작했다. 이 소설에서 미샤는 이 페트루슈카를 가지고 런던의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고 그랑프리를 받는다(물론 이 페스티벌은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행사임)

 

..

 

http://tveye.tistory.com/5178 : 알리사가 해준 이야기(페트루슈카, 미샤와의 대화)

http://tveye.tistory.com/2390 : 알리사가 해준 이야기(미샤는 어디에 있었나, 젊은이와 죽음)

 

..

 

 

안드리스 리에파. 1980년대. 해외 잡지 표지. 볼쇼이 시절.

 

 

백스테이지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최근 상하이 투어 당시.

 

 

마린스키 극장 좌석. 이번에 갔을때 찍음.

 

역시 마린스키 극장의 유명한 샹들리에.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간만에 무용수 화보 몇장

타치야나 체레호바 & 안드리스 리에파

키로프 시절




​​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청동기사상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 몇장.
아래 두장은 alex gouliaev 의 사진










좋은 작품이었고 슈클랴로프의 춤과 연기도 좋았다. 무대에서 볼수 있어 행복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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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지난주에 나는 몇년 전 쓴 소설에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출신인 트로이와 알리사가 나눈 대화와 알리사가 런던으로 떠난 과정을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그때 트로이는 레닌그라드에 남았고 알리사는 런던에 있는 소련 대사관으로 떠났다.

(http://tveye.tistory.com/5016 : 알리사는 기계벌레와 도스토예프스키, 불가코프에 대해 무슨 말을 했나, 항의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불멸입니다!)



아래 발췌한 이야기는 그로부터 몇달 후의 일이다. 미샤가 키로프 발레단의 유럽 투어에 참여한다. 그는 파리와 암스테르담, 브뤼셀에서 공연을 한다. 그리고 일 때문에 파리에 들른 알리사와 잠깐 조우한다. 돌아온 미샤는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이다. 디나 로쉬도 마찬가지이다. 런던 댄스 페스티벌도 여러가지 페스티벌과 콩쿠르를 조합해 내가 만든 것이다.



맨 위의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은 아니고 웹에서 얻은 것인데 분위기가 좀 이 에피소드와 어울려서 올려봤다. 어스름에 잠긴 궁전광장에서 이삭 성당과 네프스키 거리 입구를 바라본 풍경이다. 내 글에서는 저런 어둠 속에서 미샤와 트로이가 걷는 장소가 고로호바야 거리라서 여기는 아니고 그저 좀 가까운 곳이긴 하다만. 


..



나는 몇주 동안 많이 힘들었고 특히 최근 며칠 동안은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심신을 주워모으는 중이다. 예전 글도 읽고 이번에 페테르부르크 다녀와 조금 구상한 글에 대한 생각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이 방법으로 숨을 쉬고 다시 물 위로 올라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12월 초에 미샤는 프랑스 등 유럽 3개국 투어를 떠났다. 별 문제 없이 투어에 합류하고 백조의 호수와 지젤 두 개 작품을 모두 추게 된 것을 보니 지나이다의 말을 잘 들었던 게 틀림없었다. 파리 첫 공연이 끝나고 며칠 후 런던으로부터 잠시 들어온 알리사의 동료가 타냐에게 조그만 상자를 전해 주었다. 실크 스카프와 초콜릿 캔디들 아래 이중바닥에 공연에 대한 프랑스 뉴스 녹화 테이프와 신문, 잡지 기사가 숨겨져 있었다. 알리사는 특유의 조그맣고 깔끔한 글씨로 짧은 메모를 남겼다. 안부 인사도 없이.



회의 때문에 파리 갔다가 지젤 봤어.
극장이 발칵 뒤집혔지.
콧대 높은 파리 사람들 넋을 완전히 빼놨어.




 타냐의 집에 모여든 친구들에게 프랑스어를 전공한 스베타가 뉴스와 기사를 번역해 소리 높여 읽어주었다. 열광과 칭찬 일색이었다. 트로이는 ‘사악한 천사, 마음을 뒤흔드는 악마’라는 다분히 뜨겁고 감상적인 표현을 발견하고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건 파리 오페라 극장의 스타 발레리나이자 안무가인 디나 로쉬가 한 말이었는데 그녀는 공연 다음날 아침 키로프 발레단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와 미샤와 한 시간 동안 직접 인터뷰를 했다. 물론 관계자들과 보안요원들이 동석한 자리였고 전문이 다 실려 있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터뷰는 무척 생생한 열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 로쉬가 미샤한테 완전히 반했나봐. 자기가 조직위원으로 있는 런던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했어. ”


 “ 언젠데? ”


 “ 2월. ”


 “ 와, 근데 보내줄까? ”


 “ 기자들 다 있는데서 제안해서 다닐로프가 긍정적으로 대답했나봐. ” 


 “ 그럼 런던에 가겠네. 코스챠한테 트렁크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해야겠다. ”




 그들은 이고리의 편집실로 몰려가 녹화 테이프도 돌려보았다. 뉴스 클립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공연 모습과 커튼 콜 장면, 파리 오페라 극장에 천둥처럼 울려 퍼진 갈채와 함성만으로도 꽤 볼만했다. 디나 로쉬와 미샤의 인터뷰 필름도 있었다. 기사에는 빠져 있던 부분이었다. 인터뷰는 러시아 대사관 쪽 통역을 통해 진행되었지만 로쉬가 어떤 질문을 던지자 미샤가 통역을 기다리지도 않고 재빨리 프랑스어로 길게 대꾸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고리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 뭐라고 하는 거야? 쟤 어떻게 프랑스어를 저렇게 해? ”


 “ 학교에서 배웠다고 했어. ”


 “ 배워봤자 발레 용어였을 텐데. 네가 영어도 가르쳤잖아. ”


 “ 음, 영어도 나쁘지 않아. ”


 “ 그래, 준비 잘하고 있구나. 다행이다. ”



 트로이가 노려보자 이고리는 입을 다물었다. 애가 탄 타냐가 스베타를 쿡쿡 찔렀다.



 “ 무슨 얘기였어? 우리 쪽 사람들 얼굴이 완전히 굳었잖아. ”


 “ 어... 좀 민감한 질문이었어. ‘키로프는 확실히 고전 발레 쪽에서는 최고의 극장이지만 예술가로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지 않느냐, 파리나 서방 국가의 무대에서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없느냐’, 처음엔 이렇게 물었어. ”


 “ 그래서 뭐라고 대답한 거야? ”


 “ 디나가 부른다면 물론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했어. 모든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예술가가 아니라 급료를 받는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어. ”


 “ 급료를 받는 노동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노동자를 그렇게 깎아내렸단 말야? 대사관 사람들과 요원들 앞에서? ”
 


 트로이는 공포에 질려 신음을 토했다. 이고리는 고개를 저으며 스베타에게 물었다.



 “ 그 다음엔? 또 다른 질문 있었잖아. ”


 “ 아, 음... 파리에 처음 온 것 같은데 레닌그라드와 어떻게 다른지, 여기 좀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지 물었어. ”


 “ 그 여자 너무한데, 망명을 부추기는 질문처럼 들리잖아. 저 사람들 앞에서 그런 걸 물으면 미셴카가 난처해지지. ”


 “ 파리는 레닌그라드만큼 춥지 않고 길에 진창이 별로 없어서 신발이 덜 더러워지는 게 좋대. 그 말 때문에 로쉬랑 둘이 웃은 거야. 로쉬가 애한테서 눈을 못 떼는 걸 보니 진짜 반했나봐. 아, 그리고... 자기는 춤을 출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오래 머물고 싶다고 했어. ”


 “ 알만하네, 저 인터뷰 끝나고 불려갔을 거야. 그냥 통역이 적당히 잘라서 옮기게 놔둘 것이지... 아, 우리 로미오를 어떻게 하지. 평소엔 그렇게 침착한 애가 자기 춤 앞에선 성격이 불같이 변해. KGB 놈들이 가만히 안 놔둘 거야. ”



 타냐가 탄식하며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고리가 휘파람을 불었다.



 “ 그래도 레닌그라드로 소환 안하고 브뤼셀이랑 암스테르담에 보내줬잖아, 별 일 없을 거야. ”


 “ 런던엔 못가겠네. ”


 “ 두고 봐야겠지 뭐. 그건 그렇고 프랑스 사진사가 우리 쪽보다 실력이 훨씬 좋네, 자다가 일어나서 내려온 애를 모델처럼 찍어 놨으니. 나도 이런 구도로 찍어봐야지. ”


 “ 이고리 넌 멀쩡한 애를 왜 자다가 일어났다고 폄하하고 그래, 원래 잘난 애를. ”


 “ 저 까치집 같은 머리 좀 봐라, 눈도 풀려 있고. 셔츠 단추도 위는 하나도 안 잠근 거 안보여? 다닐로프가 또 펄펄 뛰었을 게 뻔해, 극장 명예가 어쩌고저쩌고. ”


 “ 그래도 사진은 근사한데. 파리 아가씨들이 너도나도 스크랩하겠어. ”



 타냐와 스베타, 이고리가 잡지 사진을 보며 감탄하는 동안 트로이는 좁고 답답한 편집실을 빠져나와 비상구로 갔다. 차디찬 바람을 쐬며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벨트 아래를 눌렀다. 그저 펄프와 잉크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데 어째서 그 보잘것없는 사진 한 장마저 그토록 격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고리의 말이 맞았다, 그건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된 모습이었다. 그는 너무나도 그 모습을 잘 알았다. 흐트러진 머리와 무겁게 처져 뒤엉킨 속눈썹, 평소의 예리함이 사라진 부드러운 눈매. 아무리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해도 소용없었다. 잠에서 깨어나 한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항상 그랬다. 온통 느릿느릿하고 어눌하고 거의 어린 아이처럼 부드럽고 사랑스러웠다. 그 짧고도 긴 시간만큼 안드레이 트로이츠키가 그를 온전히 자기 것처럼 느끼는 순간은 없었다. 미샤는 그런 무기력한 시간을 아주 싫어했다. 자신의 몸이 대체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빨리 정신을 차리려고 일어나자마자 찬물로 얼굴을 씻고 차가운 우유나 진한 차를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며 온갖 애를 다 썼지만 완전하게 또렷해질 때까지는 언제나 한 시간이 필요했다.



 “ 그냥 받아들여. 넌 잠에서 깨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일 뿐이야. ”


 “ 유라가 그러긴 하더라, 아침에 활동하는 타입이 아니라고. ”


 “ 학교 다닐 땐 어떻게 이른 아침부터 수업을 받았어? ”


 “ 춤이나 음악 수업은 괜찮았는데 다른 건 힘들었어. 다행히 1교시가 주로 강령이랑 공산주의 교육이어서 자주 제꼈어. ”




 
 그 한 시간만큼 트로이를 강렬하게 감동시키고 애정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그는 미샤가 잠에서 깨어난 후 곧장 침대에서 내려가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썼다. 잠든 척하며 거미처럼 기다랗고 무거운 자신의 사지로 그의 몸을 반쯤 덮고 있을 때도 있었고 아예 애무를 하거나 섹스를 할 때도 있었다. 사랑을 나누고 나면 미샤는 평소보다 일찍 제정신을 차렸다. '온몸에 피가 잘 돌아서' 라고 농담을 했는데 트로이는 그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희미하게 흥분을 느꼈다.



 그런데 마로조프도 그 모습을 알까? 니콜카도, 아스케로프도, 스비제르스키도, 그리고 그 외의 이름 모를 정부들도 모두 그 한 시간을 알고 있을까? 갑작스럽게 트로이는 칼로 파고드는 것 같고 불타는 듯한 질투심과 분노를 느꼈다. 심지어 편집실에서 그 사진을 보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잡지를 펼쳤다가 미샤의 모습을 봤을 무수한 프랑스 남녀에 대해서도 비이성적이며 무자비한 증오가 치솟았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와 희미한 졸음에 취해 있는 길고 부드러운 눈매, 반쯤 벌려진 입술과 칼라 아래 단추 여러 개가 풀려 있는 검은 실크 셔츠와 어린 아이처럼 무방비 상태로 소파에 늘어뜨리고 있는 팔과 다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마치 인생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하고 비밀스런 그 무엇을 순식간에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너희들은 그냥 무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잖아. 이건 그냥 놔둬!’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불을 지르고 싶었다. 칼이라도 휘두르고 싶었다. 그런 자신이 두렵게 느껴졌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오랫동안 그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  *  *





 큰 성공을 거둔 유럽 투어에서 돌아온 직후 미샤는 모임에 찾아왔고 파리에서 만난 알리사에 대한 소식을 짧게 전해주었다. 대사관 리셉션에서 자기가 직접 찍은 그녀의 사진도 한 장 가져왔는데 트로이에게 주려고 했지만 코스챠가 열광하며 빼앗아가 버렸다.



 “ 여전히 예쁘구나, 알랴는. 근데 많이 야위었네. ”



 사진을 들여다보며 갈랴가 혀를 찼다. 알리사는 어깨를 드러낸 암청색 드레스 차림이었고 여전히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칼을 소년처럼 짧게 자른 채 비스듬하게 몸을 틀고 있었다. 솟아오른 광대뼈 위로 커다란 갈색 눈동자가 깊고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



 코스챠가 미샤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절하게 물었다.



 “ 알랴 혼자였어? 아니면 파트너가 있었어? 누구 사귄대? ”


 “ 런던 쪽 동료들과 같이 왔어. 사귀는 사람은 잘 모르겠네, 5분밖에 못 봤거든. 다들 보고 싶다고 전해 달래. ”


 “ 걔랑 저녁이라도 같이 먹지 그랬어. 런던에서 엄청 외로웠을 텐데. ”


 “ 그러지 않겠냐고 했는데 알리사가 시간이 안 된다고 했어. ”


 “ 알리사가 네 공연 기사랑 뉴스 클립 보내줬어. ”


 “ 아, 의외네. ”


 “ 뭐가? ”



 미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트로이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파리에 가기 전에 트로이가 알리사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런던에도 가게 된다면 알리사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더니 미샤는 ‘알리사는 날 싫어하는데 보러 올까?’ 하고 물었었다. 




 
 그날 갈랴의 집에 모여든 친구들은 끊임없이 미샤에게 투어와 공연에 대해, 파리와 브뤼셀과 암스테르담, 이름만으로도 한없이 자유롭고 멋지게 느껴지는 그 도시들에 대해 질문을 퍼부었다. 미샤는 평소처럼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들로 대답했지만 트로이는 그의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늑한 거실 안에서, 따뜻하고 열광적인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 미샤는 홀로 길을 잃은 것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마침내 트로이는 다음날 오전 리허설이 있지 않느냐는 핑계로 미샤를 갈랴의 집에서 데리고 나왔다. 코스챠가 자기 차로 데려다 줄 테니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고 붙잡았지만 다들 네 음주 운전에 친구들의 생명을 저당 잡힐 수는 없다고 심하게 야단쳤다.




 차디찬 밤거리로 나와 버스를 타러 갔을 때 미샤가 말했다.



 “ 알리사가 네게 약속을 지키고 있는지 물어보라고 했어. ”


 “ 무슨 뜻인지는 얘기 안해? ”


 “ 네가 알 거라는데. ”



 물론 알았다. 그는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약속을 지키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리사는 그가 진정한 시인처럼, 진짜 작가처럼 쓰기를 원했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오로지 열망만이 존재했다. 그것도 충분히 뜨겁지도 못한 열망.



 “ 또 다른 말은 없었어? ”


 “ 없었어. 알리사는 외롭고 불행하게 거기 있었어. ”


 “ 거기는 어딜 말하는 거야? 파리? 런던? ”


 “ 글쎄, 둘 다. 똑같은 거야, 안드레이. 파리나 런던이나 둘 다. 어쩌면 여기와는 다를지도 모르지. 하지만 알리사가 찾는 건 거기 없을 거야. ”


 “ 알랴가 왜 런던에 갔다고 생각해? ”


 “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고 싶어서. ”


 “ 서로 싫어하는 사이치곤 꽤 날카로운 얘긴데. ”


 “ 난 알리사 싫어하지 않아. 사실은 꽤 좋아해. ”



 버스가 고로호바야 거리 근처에서 멈추었다. 미샤가 트로이의 뒤를 따라 내렸다. 별 말도 없이 어두운 거리를 건너 아파트 안뜰로 들어섰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어왔고 미샤의 머리에서 모자가 벗겨져 멀리 날아갔다. 미샤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로이는 투덜거리며 뜰 저편으로 모자를 주우러 갔다.



 돌아왔을 때 미샤는 엘리베이터를 붙잡아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릿한 전구 불빛 아래에서 검은 눈동자가 두세 겹의 불타는 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트로이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그를 밀어 넣었다. 등 뒤로 문이 닫혔을 때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 와락 끌어당기며 키스를 했다. 지금껏 트로이가 집 바깥에서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미샤가 잠깐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를 쳐다보았다. 거기 다시 그 시선이 있었다. 길 잃은 것처럼 멍하고 우울한 눈빛. 그는 더 이상 그런 눈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술로 그 눈 위를 덮었고 혀끝으로 눈꺼풀과 속눈썹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핥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그는 앞집 사람이 나와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미샤를 아플 정도로 꽉 끌어안은 채 복도를 지나 자기 집 문 앞으로 갔다. 열쇠를 두 번 잘못 돌리자 미샤가 그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아 직접 열었다.




....



잠에서 깨기 힘들어하는 미샤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44







12월, 눈오는 마린스키(구 키로프) 극장 풍경. 이것도 웹에서 가져온 것. 아래 사진 네장은 내가 이번에 갔을때 찍은 것들.





이건 트로이와 미샤가 버스를 탔던 곳은 아니고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의 버스 정류장. 이 글에서 그들은 바실리예스프키 섬에 있는 날리츠나야 거리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그 정류장은 전에 사진 올린 적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4421 )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 어느 건물 문.





전에 몇번 올린 적 있지만, 페테르부르크에는 이런 안뜰(드보르)이 있는 형태의 건축물이 많다. 트로이가 살고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의 아파트도 이런 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가면 사방을 둘러싼 건물이 나오고 그중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다.





어스름에 잠긴 고로호바야 거리.


여기는 트로이의 아파트가 있는 곳이라 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이 거리는 꽤나 길어서... 트로이의 아파트는 위의 사진에 나온 곳과는 꽤 떨어져 있음.



어쨌든 미샤는 발레 투어를 갔다왔으므로 그가 주역을 췄던 지젤과 백조의 호수 사진 몇 장. 물론 미샤는 내가 만들어낸 인물이므로 사진은 다른 사람들 :)





안드리스 리에파 & 율리야 마할리나. 지젤.





아르춈 옵차렌코. 지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백조의 호수




그리고 리허설 중인 슈클랴로프 사진으로 마무리...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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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5. 10. 5. 22:09

안드리스 리에파 dance2015. 10. 5. 22:09

 

 

오늘 본 유일하게 아름답고 유일하게 내게 위안을 준 것.

해적의 알리를 춤추고 있는 안드리스 리에파의 사진.

Andris Liepa

사진 : Nina Alovert

 

안드리스 리에파는 키로프 시절 유명한 무용수였고(마리스 리에파의 아들이다) 사진사인 알로베르트 역시 발레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내가 제일 처음 샀던 발레 화보집도 알로베르트가 찍은 것이었다. 아주 오래 전. 그 화보집에서 처음 안드리스 리에파의 화보를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던 기억도 난다.

 

..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멍하게 페이스북을 훑다가 팔로우하는 발레 사진작가가 공유해놓은 이 화보를 보았다. 오늘 처음으로 그냥 무조건적인 아름다움을 봤다. 처음으로 위안을 얻었다. 고마워요, 안드리스. 고마워요, 니나.

 

 

** 지금 보니 이 의상은 알리가 아니라 랑켄뎀 같네, 동작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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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