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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지미르 슈끌랴로프'에 해당되는 글 273

  1. 2018.11.11 젊은이와 죽음 : 슈클랴로프 & 샤프란 (18.11.3) (4)
  2. 2018.11.08 마르그리트와 아르망(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나탈리야 소모바) (2)
  3. 2018.11.04 젊은이와 죽음(슈클랴로프 & 콘다우로바 : 2013년 마린스키 공연 클립)
  4. 2018.10.30 도약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4)
  5. 2018.07.16 천사같은 꽃돌이님 (2)
  6. 2018.06.18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한컷
  7. 2018.06.13 오후
  8. 2018.06.12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데뷔 15주년 축하해요
  9. 2018.06.12 6.12 화요일 : 북미정상회담, 15주년 축하해요 발로쟈
  10. 2018.04.12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세 장 + 마샤랑 셋이 사진 찍었을 때 기억 (4)
  11. 2018.04.06 4.6 금요일 밤 : 이야기, 주체, 갑, 까마귀의 영혼, 완전 녹초! (1)
  12. 2018.03.03 3.2 금요일 밤 : 슈클랴로프님 부부 무대 보고 옴, 유니버설 발레단 스페셜 갈라 (6)
  13. 2018.02.20 콩쥐토끼는 죽어라 일해서 꽃돌이님을 보러 갈거야 ㅠㅠ (8)
  14. 2018.02.09 생일 축하해요 블라지미르 & 알료샤, 친절한 꽃돌이님
  15. 2017.12.17 로마에서 돌아온 미샤, 빨강, 소련 군가, 우주비행사 (15)
  16. 2017.12.11 두 남자의 대화, 미샤의 재판과 유배에 대한 경위, 커피의 비밀 (16)
  17. 2017.12.09 크리스마스 분위기 조금씩, 티 타임 (2)
  18. 2017.12.03 12.3 일요일 밤 : 2집에서도 달력 넘김, 애지중지하던 쇼핑백, 브리타 복귀? 월요병 (2)
  19. 2017.11.26 일요일 오후, 2집에서 차 한 잔 + 슈클랴로프님 등 (6)
  20. 2017.10.22 열받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샤 + 춤과 담배와 알콜 (20)
  21. 2017.10.15 미샤의 안무 데뷔 - 루슬란과 류드밀라 (22)
  22. 2017.09.24 2집의 일요일 오후 + 오전의 별다방 (4)
  23. 2017.09.22 9.22 금요일 밤 : 진료,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 지나간 토요일, 새로 만든 달력 (6)
  24. 2017.09.17 9.17 일요일 저녁 : 가버린 일요일, 꿈, 좀 울적해짐, 달력 만들었음, 로르샤흐 테스트, 노동노예 이 바보 (4)
  25. 2017.09.10 일요일 오후 차 마시며, 부활절 찻잔, 노어바보ㅠㅠ (20)

 

 

지난 11월 3일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와 크리스티나 샤프란이 춘 젊은이와 죽음 영상 클립. 유튜브에 올라왔음. 며칠 전에 슈클랴로프의 2013년 이 공연 클립을 올린 적이 있는데(http://tveye.tistory.com/8564) 그때와 비교해서 보면 더 좋다. 관객이 폰으로 찍었는지 화질은 이게 좀 더 떨어지지만 대신 클로즈업이 많다. 이 사람은 5년 사이에 좀더 성숙해져서 무용수이자 배우로서의 정점에 달해 있는 것 같다. 역시나 가슴이 쿵쾅쿵쾅...  

 

 

위의 링크로 가면 이 발레에 대한 메모와 5년 전 클립을 볼 수 있고, 거기서 또 다른 링크를 따라가면 그 전에 올린 메모를 볼 수 있다.

 

 

크리스티나 샤프란은 전체적으로 좀 미숙하다. 춤과 움직임, 파워의 부족함을 특유의 관능미로 벌충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슈클랴로프와 함께 출 때는 좀 나은데 독무를 추면 부족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사람이 제1솔리스트가 되어 있는 것도 좀 과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하긴 티무르 아스케로프도 프린시펄이지 ㅠㅠ 뭐 샤프란과 티무르 아스케로프는 관능적인 Le Parc에서 같이 출땐 괜찮았다. 그리고 투덜거리고는 있지만 이 젊은이와 죽음에서의 샤프란이 클래식 발레보다는 낫다. 해적의 메도라 등등은 좀 재앙...

 

 

 

 

..

 

근데 발로쟈 너 왜 머리 짧게 잘랐니 ㅠㅠ 짧아도 원체 미남이니 잘 어울리긴 하지만 난 너 머리 더 긴 게 좋은데 흑...

 

..

 

 

 

 

 

 

이 공연 사진 두 장. 슈클랴로프님이 인스타에 올린 것. 사진사는 빅토르 바라노프스키. V. Baranovsky.

 

Posted by liontamer

 

 

프레드릭 애쉬튼의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원래 마고트 폰테인과 누레예프를 위해 안무했던 작품이고 둘이 추는 영상을 보면 정말이지 이것은 누레예프를 위한 발레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슈클랴로프는 몇년 전 마린스키에서 이 작품에서 아르망을 췄는데 나는 감격스럽게도 그의 아르망 데뷔 무대를 직접 보았고 무지무지 감명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르그리트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가 췄다. 데뷔 무대에서 그의 아르망은 누레예프의 공작새 같고 도도하고 허세 넘치는 청년이 아니라 좀더 로미오 같고 낭만적인 스타일이었다. 작년에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도 그는 이 작품을 가져와 오시포바와 함께 췄는데 난 운좋게 이것도 직접 봤다. 시간이 지나고 그간의 경험이 쌓여서 그런지 그의 아르망은 훨씬 성숙해져 있었다. 오시포바가 묻히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시포바보다는 테료쉬키나의 마르그리트가 훨씬 마음에 들었었다.

 

아쉽게도 테료쉬키나와의 무대나 오시포바와의 무대는 영상 풀 클립이 없는데 나탈리야 소모바와 함께 춘 무대는 영상이 있다. 그래서 올려본다.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아르망... 애쉬튼의 아르망이라기보단 러시아의 아르망이란 느낌이 드는데 나는 원래 애쉬튼의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슈클랴로프의 해석이 더 취향에 맞는 편이다.

Posted by liontamer

 

 

이 클립은 전에 올린 적 있긴 한데 그땐 유튜브 링크여서 지금은 막혀 있어 다시 올려본다.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가 마린스키에서 춘 것이다. 내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를 '정말로' 좋아하게 된 첫 작품이기도 했다. 그를 무대에서 처음 본 것은 2006년이었지만 그의 춤과 무대에 온전히 빠져들게 되었던 건 2012년 가을, 마린스키에서 그가 이 작품을 췄을 때였다. 그때도 콘다우로바와 췄다. 콘다우로바도 이 역에 정말 잘 어울린다.

 

위의 영상은 그로부터 몇달 후, 2013년에 그가 데뷔 10주년 기념 공연에서 췄을 때 관객 중 누군가가 찍은 것이다. 슈클랴로프는 그때 라 바야데르 3막의 망령의 왕국, 발란신의 jewels 중 '루비', 그리고 이 젊은이와 죽음을 골랐다. 그러니까, 완벽히 마린스키다운 클래식, 발란신, 그리고 자신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작품까지 셋을 골랐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은 발란신에는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루비보다는 차라리 다른 걸 췄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만.

 

 

하여튼 난 그 기념공연은 못봤지만 작년에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 이 사람의 특별 공연은 봤다. 그때 이 사람은 스메칼로프가 안무해준 '날 버리지 마', '발레 101', '고팍', 그리고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췄다. 아주 근사한 무대였고 이 사람의 매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작품들이었다. 아무래도 앞의 세개는 혼자서 추는 거라 별다른 세트가 필요없어 솔로 무대 보여주기 적합하니 고른 것도 있다. 하여튼 그때 젊은이와 죽음도 다시 춰줬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이건 무대 세트에 공이 좀 들어가니 더 어려웠겠지.

 

 

젊은이와 죽음은 항상 나에게 특별한 발레였다. 미하일 바리쉬니코프의 영화 백야가 바로 이 작품으로 시작된다. 내가 러시아어를 전공한 이유 두가지 중 하나가 이 영화인데, 이 영화는 동시에 나에게 발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준 작품이기도 했다. 이 영화 비디오(!)를 보았던 당시는 중학생이었고 발레에 대해선 역사나 이론들 정도밖에 몰랐고 당연히 롤랑 프티가 누군지도 몰랐다. 심지어 바흐의 파사칼리아도 여기서 처음 들었다. (바흐는 지금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악가는 아닌데 그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것 딱 두곡만 꼽으라면 이 곡과 '인류의 기쁨 되신 주'이다)

 

 

화질 나쁜 비디오 화면으로 어둠과 붉은색과 죽음의 여인, 그리고 격렬하고 처절하게 춤추는 바리쉬니코프를 보았을 때 난 충격을 받았고 거의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이 작품의 드라마와 파사칼리아, 콕토의 리브레토와 주인공 청년의 절망적인 춤, 이 모든 것이 나를 온전하게 사로잡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무수한 발레를 보고 아주 많은 예술작품들을 접하면서 나의 시선과 감각은 변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여전히 나를 잡아흔든다. 사실 아주 내 취향이다. 취향이란 변하기 마련이지만 본질적인 무언가는 변하지 않고 남는다. 젊은이와 죽음은 나에게 그런 발레이다. 여러 무용수들이 춘 무대를 보았지만 직접 본 무대에서는 슈클랴로프의 춤이 가장 좋았다. 내게 최고의 '젊은이'를 꼽으라면 바리쉬니코프, 누레예프, 그리고 슈클랴로프이다. 비록 전자의 두개는 영상으로만 보았지만.. 

 

 

며칠 전 이 사람이 마린스키에서 이 작품을 다시 췄다. 상대역은 크리스티나 샤프란이었다. 짧은 영상 클립과 사진들을 보니 샤프란은 역시 아직 죽음의 여인을 추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만... 아아 나 정말 이 사람이 추는 이 무대 다시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 흐흑... 발로쟈... 엉엉 다음에 갈때 꼭꼭 이 작품 다시 춰줘요...

 

 

이 작품을 너무나 좋아했고 또 나에게 특별한 발레였기 때문에 몇년 전 글을 쓸 때 미샤가 이 춤을 (좀 자기 맘대로) 추는 장면을 집어넣기도 했다. 슈클랴로프의 이 무대를 보러 갔을때 마침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때였고 미샤와 춤에 대해 상상하던 무렵이라 더욱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무대를 보면서 이 작품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미샤와 딱 맞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강렬하고 비극적이고 격정적이고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고, 젊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바닥 없는 절망을 표출할 수 있는 작품. 그것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불러올리고 있던 미샤와 깊게 공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이 춤을 추는 것을 세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소설에서는 미샤가 이 작품을 추는 장면이 아주 짧게, 그의 문학 서클 동료였던 알리사의 회상으로 묘사될 뿐이다. 전에 발췌해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건 여기 : http://tveye.tistory.com/2390

 


 

 

 

영상 클립만 올리면 좀 아쉬우니 젊은이와 죽음을 추는 슈클랴로프님 화보 한컷. 전에도 올린 적 있다만 좋아하는 화보라서 다시 올려본다. 사진은 alex gouliaev가 찍은 것.

 

극장과 발레의 특성이 그렇듯 실제 무대와 영상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동영상 클립은 슈클랴로프의 실제 무대에서 느껴진 에너지와 드라마, 불꽃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해 좀 아쉽다. 무대는보다 격하고 보다 묵중했다. 불꽃이 이는 무대였다.

Posted by liontamer
2018.10.30 23:21

도약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dance2018.10.30 23:21





오랜만에 슈클랴로프님 화보 한 장. 얼마 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열렸던 갈라 공연. 해적의 알리 추는 중.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은 @cositore_photographer (인스타그램)



그러고 보니 지난 9월에 뻬쩨르 갔을 때 찍은 이 사람의 페트루슈카 커튼 콜 사진도 몇장 있는데 그거 올린다는 것도 까먹었네. 하긴 조명 때문에 많이 번져서 제대로 건진 사진이 별로 없긴 했다. 맨 앞줄 가운데였는데도 흐흑..



발로쟈, 한국 또 와주세요...

Posted by liontamer
2018.07.16 23:07

천사같은 꽃돌이님 sketch fragments 2018.07.16 23:07




결국 오늘 마린스키 메일로 29일 슈클랴로프님의 신데렐라 발레 티켓 취소신청서를 보냈다. 페테르부르크의 본진 마린스키는 항상 서비스가 좀 늦는데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은 현지 서비스도 그렇고 뭐든 더 빠르고 친절한 편이다. 최근에 생기기도 했고 아무래도 분관이다 보니 고객만족도에 더 신경쓰는듯. 메일 보낸지 한시간만에 당신의 취소요청이 승인되었습니다 하고 답멜이 오고 표가 취소되었다 엉엉...



아이고 슬퍼라 엉엉...





엉엉 발로쟈 엉엉... 



그런데 인스타에 위의 그림을 올렸더니 슈클랴로프님이 너무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팬심은 또 두근거리고... 정말이지 이분은 춤도 잘추고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마저 천사가 아니더냐~ ​



(댓글 달아줬다고 또 금세 맘의 위안을 얻고는 캡처 떠놓고 있는 나는나는 넘버원팬 ㅋㅋㅋ)



흑흑 고마워요 발로쟈... 월말 블라디보스톡 공연은 못가지만 그래도 언제가 됐든 무대 보러 다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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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06.18 23:36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한컷 dance2018.06.18 23:36





피곤한 월요일 하루는 슈클랴로프님의 얼마전 이탈리아 갈라 공연 화보 한컷으로 마무리. 출처 등은 위의 캡션에.

Posted by liontamer
2018.06.13 14:26

오후 tasty and happy2018.06.13 14:26




선거일이라 회사 안 감. 사실 지금 예산심사 때문에 바쁜 시즌이라 오늘 출근해야 할수도 있다고 각오했었다. 다행히 쉰다. 주중이라 화정 안 가고 2집임. 부디 이번 주말에도 출근안해도 되길..


















Posted by liontamer





어느덧 마린스키 데뷔 15주년이 되어 내일 기념공연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추는 발로쟈. 축하축하축하해요!!! 재능과 열정, 매력을 모두 갖춘 최고의 무용수!!

















인스타에 올리자마자 확인하고 고맙다는 답을 달아준 천사같은 꽃돌이님 :)) 발로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길! 춤을 춰줘서 고마워요!!!!!




Posted by liontamer



중간중간 북미정상회담 챙겨보고 일하면서 하루가 갔다. 딱 이 정도 결과가 나올 거라는 예상은 했는데 그와는 별개로 드라마틱해보이긴 했다. 미디어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옛날엔 이런 식의 쇼잉과는 좀 다른 방식이었겠지. 서로 정교하게 쇼를 연출하면서 패를 굴리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폰을 켜놓고 중간중간 내용을 체크하고 악수와 회견장 장면은 실시간으로 몰래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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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곱사등이 망아지에서 바보 이반을 추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올해가 이 사람의 데뷔 15주년이라 내일 마린스키에서 기념무대로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한다. 정말정말 너무 가서 보고 싶었다. 캐스팅도 환상적이라 줄리엣은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둘의 눈에서 얼마나 불꽃이 튀고 꿀이 떨어질꼬), 티볼트는 유리 스메칼로프, 머큐시오는 김기민씨(!), 그리고 블라지미르 포노마료프가 줄리엣의 아부지로 등장하신다. 아아아아아아....



발로쟈, 15주년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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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내려와서 내일은 그냥 2집에서 쉰다. 쉬어서 다행임. 아직 몸이 부실하고 피곤한 상태라서. 






Posted by liontamer




간만에 꽃돌이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세 장.



로미오와 줄리엣. 디아나 비슈뇨바와 함께.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사랑의 전설 리허설 중. 정말이지 둘이 같이 있으니 사랑스러움이 두배가 되는 다정하고 이쁜 커플이었음 :) 발로쟈와 마샤 둘다 무지 친절하고 상냥했다!!!!



지난번 유니버설 발레 갈라 공연 첫날, 끝나고 기다리다 만났을때 '마샤랑 당신이랑 셋이 사진 찍어도 돼요?' 라고 묻자 '그럼요 그럼요' 하더니 저쪽에서 노보셀로프랑 얘기 중이던 아내에게 '마셴카~ 일루와 같이 사진 찍어~' 하고 부르던 발로쟈. 목소리에서 사랑이 퐁퐁 느껴졌음. 마셴카라는 애칭을 얼마나 다정하게 부르는지 :) 마샤 좋겠다~~~





이건 최근 바이에른에서 데뷔했던 존 크랑코의 오네긴. 나는 이 사람이 오네긴보단 렌스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뭐 사실 내가 렌스키를 좋아하고 오네긴을 싫어하기 때문이지 ㅋ) 화보도 그렇고 짧은 영상 클립도 그렇고 역시 이 사람은 탁월한 무용수일 뿐만 아니라 원체 드라마틱한 배우이기 때문에 엄청 멋있는 오네긴이었다!!!!!



아악 이런 오네긴이라면! 내가 타치야나라면 이 사람의 오네긴 앞에서 나는 편지 따위 조각조각 찢지 않을 것이야! 늙은 장군 남편 따위, 명예 따위 내팽개치고 '오오 오네긴님 드디어 이제서야 나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하며 기뻐 날뛰며 와락 안길 것이야!!!! (이렇게 푸쉬킨의 명작을 난도질 ㅋㅋ)



Posted by liontamer

 

 

근 2주만에 화정 집 귀가. 뒤늦게 4월 달력 넘김.

 

..

 

 

아침 일찍 일어나 srt를 타고 수서까지 갔다. 기차 안에서 너무 피곤하게 잤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이렇게 아프고 졸리더니 오늘에야 그날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월요일보단 낫지... 주말 끼고 아프면 되니까 ㅠㅠ 그런데 오늘 여기저기 좀 돌아다닌데다 지하철에서도 자리가 없어 서 있어야 했고 가는 데마다 에스컬레이터가 고장나 있는 등 좀 고생해서 다리가 너무너무 아팠다. 다라이에 몸을 조금 담그고 났더니 마비될듯한 통증은 좀 가셨지만 그래도 여전히 욱신욱신!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좀 빨리 오라고 해서 평소 주기보다 앞당겨서 갔던 것이었다. 부서 이동과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불안감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새 상사가 이쪽 일을 모르는 게 오히려 나에게는 나을 거라고 한다. 나에게 갑질을 하지 않을테니 동등한 관계가 될거란 얘기였다.

 

나는 둘다 아무것도 모르니 좌충우돌할 것 같고 내 책임이 더 커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가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이렇게 갑들에 대해 민감하고 울컥하는 내 성격이 아마도 스스로가 갑이 되고 싶어하는 무의식이 있어서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쫌 우울하다. 아니, 나는 갑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주체가 되고 싶고 자기 결정권을 갖고 싶은 거야 라고 되뇌어본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작금의 사회와 현실, 그리고 조직에서 주체가 되고 자기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은 갑이 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혜를 베푸는 자가 되고 싶은 것일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본 적도 많다. 현장의 예술가들이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서 가치를 찾았고 일이 힘들어도 거기서 보람과 기쁨을 느꼈는데 지금 업무는 일차적으로는 갑들을 응대하다 보니 똑같은 힘든 일을 당해도 지금이 더 어렵다. 그런데 그건 며칠전 술자리에서 상사가 '그건 이러나저러나 현장 사람들에겐 우리가 갑이니까 덜 속상해서 그럴걸' 이란 말의 그럴싸한 포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껏 오랫동안 일해오면서 현장에 대해 자신을 갑으로 여겨본 적이 없고 그렇게 행동한 적도 없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원했던 것,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 뿐 현실적으로는 어쨌든 뭔가를 가졌기에 나눠주는, 즉, 상대방에게는 갑으로 보이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 일하고 도와주고 이로 인해 그들이 좋은 성과를 냈다는 연락을 받았을때 마치 내가 뭔가를 해낸듯 기뻐하고 보람차 했었던 것은 어쩌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크게 보면 지금 업무도 갑들을 상대하고 모든 일을 총괄하는 일이므로 전체적으로는 결국 현장에 도움을 주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보다 직접적이고 보다 친밀한 관계,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거리를 원하는 것 같다. 미묘한 문제이다.

 

 

진료를 마친 후 지하철을 타고 근처 백화점에 갔다. 격무 때문에 도저히 다음주말 공연 보러 갈 시간이 나지 않아 지젤 티켓을 취소했더니 오늘 카드값 취소 통보가 왔다. 그러자 이 조삼모사 바보는 '그래! 어차피 표값도 취소됐는데 열받으니 큰맘먹고 좋은거 하나 사~' 하고는... ㅠㅠ 백화점 나스 매장에 가서 무려 신상이라 할인도 안되는 반짝반짝거리는 하이라이팅 파우더를 샀다 ㅠㅠ 아흐아흐아흐... 그런데 정말 예쁘고 반짝거리고 질도 좋아서 '그래! 내 인생 무슨 낙이 있어! 나는 까마귀인데! 반짝이는 거 하나로 행복해지면 그만이지! 어차피 취소한 표값보단 싸잖아!' 하고 무한 자기정당화를 하였다...

 

 

 

 

 

불빛 아래라서 색감이 정확히 안 나왔는데 사진처럼 피치살구색이라기보단 은은한 핑크빛이 도는 하이라이팅 펄 파우더이다. 제품명은 카프리. 이거랑 좀더 샴페인 골드 컬러에 가까운 포르 드 프랑스 두개를 놓고 비교해 보았는데 뺨과 코에 테스트해보니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매장 직원이 보기에도 그렇고 이쪽이 더 잘 어울려서 이걸로 고름. 뭐 원래 골드나 코랄, 애프리콧은 잘 안 받으니까 ㅠㅠ

 

이게 사사삭 부드럽게 발리고 피부에 잘 스며들고 반짝반짝 예쁘다. 노화를 조금이라도 가려주는 효과가 있음 ㅋㅋ 요즘은 로드샵 제품들이 워낙 잘 나와서 웬만한 색조들은 큰 차이가 없는데 확실히 나스 블러셔랑 하이라이터는 색도 그렇고 질도 더 좋긴 하다. 아니 뭐 나한테는 그런 것 같다고 ㅋㅋ(이렇게 지름을 계속 정당화하고 있다)

 

 

...

 

 

오후에는 내년도 예산안 작성에 대한 교육이 있어 거기 갔다. 너무 피곤해서 대충 듣고 나오려 했지만 막상 이제는 상사도 바뀌고 이래저래 기댈 곳도 없으니 잘 들어둬야겠다 싶어서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폰에 메모를 하며 듣고... 끝나고는 따로 질문도 여러개 하고 나왔다. 아흐...

 

 

경의선을 타야 했는데 아슬아슬하게 전철 놓침. 그 덕에 20분 넘게 기다리고... 막상 탔을 땐 자리도 없고. 다리도 쑤시고 그날 때문에 온몸은 끊어지는 듯...

 

 

돌아오니 너무나 배가 고팠다. 다라이에 몸을 잠깐 담가 온몸의 피로와 미세먼지를 좀 씻어낸 후 저녁을 막 먹었다. 집이 추워서 보일러를 올렸다. 며칠 전까진 2집 너무 더워서 에어컨 켰었는데 이게 뭔가...

 

 

엄청 졸려온다. 내일은 쭉 뻗어 쉬어야겠다. 일요일에 다시 내려가야 하고 다음주부터는 지옥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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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줘서 고마워요 발로쟈, 마샤!!! 멋진 무대는 더더욱! 그의 발레 101은 정말 역시 다시 봐도 명불허전이었고(전에 봤던 무대보다 더 코믹해졌다!~) 둘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정말로 로미오와 줄리엣 자체~

 

유니버설 발레단 스페셜 갈라 공연 자체도 상당히 좋았다. 보통 갈라 공연은 좀 가볍게 이것저것 짜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유니버설 갈라는 묵직한 모던도 들어 있고 그게 또 꽤 좋아서 살짝 의외였다. 기분 좋은 의외 :) 하긴 돌이켜보니 유니버설은 이제껏도 그랬고 예전 갈라 때도 꾸준히 꽤 괜찮은 모던 무대를 보여줬었다.

 

리뷰는 나중에 몰아서 써보겠음(근데 과연 ㅠㅠ)

 

 

두 분이라 꽃다발도 두개 :)

 

 

공연도 늦게 끝났는데 정신나간 퇴끼는 기다리고 기다려 두분께 인사도 하고 사인도 받았습니다 :) 꽃돌이님에게 '저 기억하세요?' 하니까 '그럼요~' 라고 해주셔서 감격으로 거의 승천^^;

 

 

 

 

(오늘 프로그램이 까만색이라... 거기 대신 예전 마린스키에서 본 라 바야데르 프로그램에 꽃돌이님 사인 받음. 두분이 같이 나온 사랑의 전설 엽서에도 받았는데 그건 나중에~)

..

 

늦게 돌아와서 이제 자려는 중인데 설레서 잠이 잘 안 올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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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공지한 공연 일정을 보니 슈클랴로프님 부부가 3.2~3.4 사흘 연속으로 출연하신다!!! 언제 나올지 몰라 일단 사흘 다 끊어놨는데... 이제 꼼짝없이 사흘 내내 공연 보러 가야 할 거 같다! 



그런데... 쌓여 있는 일들이 발목을 잡는다... 아앜 나는나는 콩쥐토끼 ㅠㅠ 신데렐라 부엌데기... (노동노예로 혹사당하는 것까지만)



괜찮앗! 두꺼비도 황소도 요정대모도 없지만 나는나는 넘버원 코리안 팬이니까 꼭 가야지~



... 발레 관심있는 분들은 꼭 가보세요. 슈클랴로프님 부부가 아니더라도 갈라 구성이 꽤 좋습니다. (최근 몇년 동안 국립발레단보다 유니버설 발레단 공연을 더 좋아해온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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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일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꽃돌이님의 생일이다. 그리고 귀염둥이 아들 알료샤도!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

 

인스타에도 축하포스팅 올렸는데 친절하고 다정하신 꽃돌이님이 답글도 달아주셔서 팬의 가슴은 녹아내림 :)

 

 



 

생일이랑 최근 오네긴 데뷔 축하해요, 글고 서울 오시는 거 기다립니다~ 라고 했더니 또 친절하게 답글 :) 아아 꽃돌이님은 너무나 좋다~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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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트로이와 미샤가 나오는 장편 후반부에서 발췌했다. 4부 19장 앞부분에 일어나는 일이다. 1976년 7월. 소련 레닌그라드. 미샤는 키로프 극장 수석무용수이며 몇달 전에는 안무가로도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7월에 키로프 발레단이 유럽 투어를 떠나고 미샤도 거기 포함된다. 동베를린과 마드리드, 로마.




그의 친구이자 애인인(정작 그 누구도 이 관계를 확언한 적은 없다만) 트로이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트로이의 소꿉친구 알리사는 이미 런던으로 떠난 후이다.




발췌한 이야기는 간단하다. 미샤가 유럽 투어를 다녀온다. 로마에서 돌아온 미샤는 자기 집이 아니라 트로이의 집으로 향한다. 트로이는 귀가했을 때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는 미샤를 발견한다.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조금 더.




이 이야기의 앞부분은 전에 조금 떼어내 발췌한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5222  빨간 페인트, 자고 났을 때 옆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그때 서두에 올렸던 짧은 인물 소개 메모를 다시 붙여본다. 둘의 대화에 언급되는 인물들이 좀 있어서.




언급되는 아사예프는 당시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 알렉세이 파블로비치는 발레학교 시절 미샤의 은사, 카라바노프는 미샤의 발레 파트너인 지나이다의 약혼자이자 트로이의 학교 동료 교수이다.


니나 크류코바는 키로프 발레단의 오래된 최고 스타 발레리나(현재의 울리야나 로파트키나나 옛날의 갈리나 울라노바 같은 급), 마할린은 그녀의 동료 파트너이자 인민예술가이다. 딤카 아르부조프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물론 이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위의 메모에 이어, 일린(미샤는 스탄카 라고 부른다)은 jewels와 dolls,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 등에 쭉 등장했던 볼쇼이 극장 안무가이자 미샤의 친구이다.



미샤가 못마땅하게 언급하는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주에 발췌한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7411 (두 남자의 대화, 미샤의 재판과 유배에 대한 경위, 커피의 비밀)




미샤가 얘기하는 유라는 유리 아스케로프라는 의사이다. 그의 오랜 애인이기도 하다. 유리 아스케로프는 서무 시리즈에도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about writing 폴더에도 이 사람이 등장하는 글을 몇차례 발췌한 적이 있다. 주로 미샤 때문에 골치썩는 장면이었음 ㅠㅠ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일린이 떠난 후에도 미샤는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징계를 받았던 것은 시즌 막바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영향은 없었다. 그는 백야 축제로 복귀해 호평을 받았으며 새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7월에는 지나이다와 함께 크레믈린 궁전 무대에 올라갔다. 그건 전적으로 모스크바 축제였고 볼쇼이가 주관하는 행사였지만 이반 노비코프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고 미샤와 지나이다를 레닌그라드의 특급 스타로 조명했다. 그들은 볼쇼이 출연진들과 함께 백조의 호수를 췄고 일린은 지나이다에게 나타샤 왈츠를 맡겼다. 모스크바 관객들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매우 좋아했고 미샤를 볼쇼이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행사 개막일에는 브레즈네프가 당 위원들과 함께 나타나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고 리셉션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트로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미샤에게 최고 권력자에 대해 물었다. 이미 전에도 다른 행사에서 브레즈네프를 본 적이 있었던 미샤는 별다른 관심 없는 어조로 대꾸했다.



 “ 텔레비전에 나올 때와 똑같아. 멍청하고 따분한 늙은이야. ”




 “ 공연에 관심은 있어? ”




 “ 그럴 리가. ”



 미샤는 정치인들 얘기를 할 때마다 짓는 딱딱한 가면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벨스키는 좀 의외였어. 어머니가 가브릴로프 극장 무용수였대. 극장에 대해 잘 알더라구. 계속 놔주지 않아서 정말 좀이 쑤셔 죽을 뻔 했어. ”




 “ 왜 도망 안 쳤어? ”




 “ 다른 테이블엔 스비제르스키가 있었으니까. 호랑이를 피해 악마 소굴로 갈 수는 없잖아. ”




 트로이는 게오르기 벨스키가 마로조프의 지지를 업고 세력을 키운 인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비제르스키와는 자동적으로 정적 관계에 놓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 어떻게 그 둘이 함께 조직위원회에 들어 있었던 거야? ”




 “ 그 행사가 극장이나 관객을 위한 게 아니니까. 둘 다 뭔가 지저분한 속셈이 있었겠지. 알고 싶지 않아. ”




 적어도 두 명의 고위 관료와 잠자리를 갖는 인물의 입에서 나올만한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샤가 스비제르스키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입을 다물었다. 벨스키야 워낙 가정적인 정치인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도 일린과 다시 만나서 반갑긴 했겠네, 간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




 “ 스탄카? 지나와 최종 리허설 할 때 밖에 못 봤어. 10분 정도. ”




 “ 축제 끝나고 모스크바에 며칠 더 있다 왔잖아. ”




 “ 그 사람은 폐막한 날 애들 데리고 소치에 갔어. 나름대로 괜찮은 아빠야. ”




 미샤는 일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크레믈린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열흘 만에 그는 다시 해외 투어를 떠났다. 동베를린과 마드리드, 로마였다. 아사예프는 그를 뉴욕을 비롯한 북미 투어 팀에 넣고 싶어 했지만 당국에서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유럽 투어를 떠나기 사흘 전 미샤는 보안위원회 지부에 불려가 온종일 사상 재교육을 받았고 다음날은 근교의 집단농장에서 개최된 콤소몰 행사에 끌려갔다. 그런 일에 동원될 때면 언제나 그렇듯 우울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미샤에게 트로이는 그가 도망치지 않고 행사를 견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분이 가득한 뭔가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달랬다. 미샤는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의 이름을 운운하는 대신 트로이가 주는 대로 설탕을 녹인 차를 마시고 견과가 올라간 모코 케익을 두 조각 먹은 후 매일 밤마다 하던 운동과 스트레칭도 모두 거르고 시끄러운 락 음악을 좀 듣다가 자버렸다. 





 

*   *   *




 
 미샤는 해외 투어를 마치고 공항에서 곧장 트로이의 집으로 왔다. 카라바노프에게 집을 구하는 동안 자신과 지나이다의 아파트에 와 있으라고 얘기해두었기 때문이다. 카라바노프의 질투심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트로이가 새로 쓰는 논문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잔뜩 껴안고 돌아왔을 때 미샤는 이미 아파트에 와 있었다. 커다란 트렁크와 소파 사이의 카펫 바닥에 모로 누운 채 둘둘 말린 재킷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재킷 외에는 옷도 벗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운동화도 한 짝은 그대로 신고 있었다. 트로이는 그를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얇은 담요만 덮어 주었다. 뭔가 이상해서 자세히 봤더니 머리 색깔이 바뀌어 있었다.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제대로 된 미용사의 손을 거친 것이 아니고 꼭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재킷과 카펫 바닥 위에도 붉은 얼룩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공연용 스프레이를 뿌린 후 머리를 감지 않은 건가 싶었다.




 30분 쯤 후 미샤가 일어났다. 기계적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소파에 앉아 자료를 뒤지고 있는 트로이를 뒤늦게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눈에 띄게 좋아하는 표정이라 트로이는 웃었다.




 “ 그렇게 반가워하는 얼굴은 처음 봐. ”




 “ 자고 일어났을 때 네가 옆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좋아. ”




 “ 왜? ”




 “ 좋은데 이유가 필요해? ”




 미샤가 트로이의 무릎에 쌓여 있는 책과 논문 뭉치들을 흥미롭게 내려다보았다. 그는 언제나 트로이의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문학 이론서나 논문을 직접 읽지는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너무 어려워, 네가 얘기해주는 게 더 좋아’ 라는 말을 주문처럼 사용해 트로이가 그것들을 설명해주도록 만들었다. 아마 이콘 복원가나 딤카 아르부조프, 그 외 수많은 지인들에게서도 그런 식으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얻어낼 것이다.




 잠시 후 미샤는 그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한 후 샤워를 해야겠다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트로이가 머리를 어루만지자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 아, 손대지 마. 빨간 거 묻을 거야! ”




 “ 벌써 묻었어. 이게 뭐야? 염색약이야? ”




 “ 페인트. 다행히 유성은 아니야. ”




 “ 왜 머리에 빨간 페인트로 물을 들였어? ”




 “ 로마 호텔에서 나오는데 공산주의 반대자가 달려들어서 끼얹었어. ”




 “ 너한테? 하고많은 단원들 중에 왜 하필이면 널? ”




 “ 차라리 나였으면 좋았게. 니나를 노린 거였어. 오토바이로 칠 뻔 했어. 상상이 돼? 니나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




 미샤는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떨었다. 정부에게 칼을 맞고 앙숙 무용수와 치고받고 싸워서 어깨가 반쯤 내려앉고도 자기 몸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에 크류코바가 페인트를 뒤집어쓸 뻔 했다고 분노하는 미샤를 보니 좀 우스웠다. 규정된 남성성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애였지만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이 너무 뿌리 깊었기 때문인지 미샤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깍듯했고 소위 기사도에 가까운 태도를 지켰다. 항상 아웅다웅하면서도 지나이다가 원하는 것은 전부 들어주곤 했다.




 과격한 이탈리아 민주주의자 청년은 오토바이에 ‘소련 공산당을 추방하라’로 추정되는 글귀가 적힌 깃발을 매달고 호텔 앞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애초부터 공격 대상은 니나 크류코바였는데 그건 전날 뉴스에서 키로프 발레단의 공연을 다루면서 인민예술가이자 대스타인 그녀와의 인터뷰를 짧게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크류코바는 마할린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고 있었고 미샤는 아사예프와 함께 바로 뒤에 있었다. 그 이탈리아 청년이 선동적인 구호를 외치며 오토바이를 크류코바 쪽으로 곧장 몰고 왔을 때 미샤가 잽싸게 그녀를 낚아채 사고를 면했다. 공격자는 분노로 으르렁거리며 미리 준비해 온 빨간 페인트를 한 통 가득 퍼부었는데 크류코바를 감싸고 넘어진 미샤와 급하게 그를 부축하려고 했던 마할린이 그 희생자가 되었다.




 “ 그래서 그자는 잡혀갔어? ”




 “ 호텔 경비원들이 끌고 간 것 같아. ”




 “ 너 안 다쳤어? ”




 “ 범퍼에 살짝 들이받혔어. 멍만 좀 들고 괜찮아. ”




 미샤가 바지를 내리고 오른쪽 허벅지를 보여주었다. 시퍼렇게 퍼져 있는 멍을 보고 트로이가 한숨을 쉬었다.




 “ 오토바이에 받히고서 한다는 말이 멍만 들고 괜찮다고? 내일 병원에 꼭 가라. ”




 “ 괜찮아, 가벼운 타박상이야. 니나가 받혔으면 뼈가 박살났을 거야. 완전히 정면이었거든. 나쁜 자식. ”




 “ 그래, 니나는 페인트 세례에서 무사했어? ”




 “ 다행히! ”




 뿌듯한 듯 활짝 웃는 그 얼굴을 보니 더 이상 화도 낼 수가 없었다. 트로이는 대체 왜 보통 사람에게는 평생 한두 번 생길까 말까 한 나쁜 일들이 자기 앞에 있는 애에게는 그렇게 연이어 일어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래도 머리에만 묻었네. ”




 “ 아냐, 온몸에 다 뒤집어썼어. 진짜 빨갱이가 따로 없었어. 그 인간 목표가 반쯤 달성된 거지. 그나마 마할린은 등짝에만 뒤집어썼고. 비행기 시간이 빠듯해서 씻지도 않고 공항까지 갔어. 차에서 얼굴은 좀 닦았지. 난 그냥 탑승하려고 했는데 아사예프가 욕을 하면서 날 붙잡는 거야. 그 꼴로 어떻게 비행기를 탈거냐고. 그래서 ‘왜요, 적위군 같잖아요.’ 라고 했다가 더 욕먹었어. ”




 “ 그럼 감독한테 그런 말을 하고도 욕을 안 먹을 줄 알았어? ”




 “ 이상하군, 서방 제국주의자의 공격에 저항한 진짜 공산주의 애국자로 표창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내 서류도 좀 나아질 텐데. ”




 “ 그런 걸로 나아질 거였으면 애초에 뉴욕에 보내줬겠지. 그래도 옷은 갈아입었네. ”




 “ 트렁크를 부쳐버려서 옷이 없었어. 그래서 아사예프가 로마 공항에서 한 벌 사줬어. 그 인간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와서 내가 얼굴을 씻는지 안 씻는지 감시했어. 머리도 감으라고 닦달했는데 탑승 시간이 다 돼서 그것까진 못했어. ” 




 “ 용케 비행기 화장실로 끌고 가지는 않았네. ”




 “ 그러려는 낌새가 보였어. 자기 옆자리에 끌어다 앉히는 거야! 타자마자 자는 척 했지. 비행기 화장실은 너무 좁단 말야. 물도 잘 안 나오고. ”




 트로이는 말썽쟁이 수석무용수를 챙겨야 하는 아사예프가 안됐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밀려나왔지만 꾹 참았다. 미샤가 옷을 다 벗고 돌아섰다. 뒷목덜미와 팔꿈치와 손목 뒤에도 빨간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 너 왼쪽에 아직 운동화 신고 있어. ”




 “ 아, 어쩐지 불편하더라니. ”




 “ 얼마나 피곤했으면 신발도 다 안 벗고 바닥에서 잤어? ”




 “ 공항에 내려서 약을 좀 잘못 먹었어. 노란 건 한 알만 먹어야 했는데.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어. ”




 한동안 끊었던 진통제를 다시 먹은 것을 보니 오토바이에 들이받힌 게 아프긴 했던 모양이었다. 트로이는 욕조에 그를 밀어넣고 물을 틀었다. 온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더운 여름이었기 때문에 미샤가 레닌그라드 수도국을 향해 퍼붓는 현란한 비난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좀 안타까웠다.




 “ 놔둬, 내가 씻을 수 있어. ”




 “ 뒤통수는 잘 안 지워질걸. 두피까지 빨갛게 물들었어. ”




 “ 적위군 맞네. ”




 트로이는 어린 시절 길에서 주운 흙투성이 강아지를 씻겼을 때와 비슷한 집중력을 발휘해 미샤를 씻겼다. 머리에서 붉은 물이 끝도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뒷목과 팔꿈치, 손목 등 노출된 부위 외에도 생각지도 않았던 곳 여기저기에 페인트 얼룩이 스며들어 있었다. 심지어 눈썹과 속눈썹에서도 붉은 물이 흘러내렸다. 욕조는 금세 온통 새빨갛게 변했다. 눈에 들어간 비누 거품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아내며 미샤가 무심하게 혼잣말을 했다.



 “ 피 같아. 유라가 그랬지, 앞으로는 더운 물을 채워놓고 하라고. 잘 드는 칼을 고르라고 했지, 안 그러면 고생만 하고 병신처럼 깨어날 거라고. ”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 어, 근데 정말 보기 싫은걸. 욕조가 엄청 더러워. 왜 유라가 화냈는지 알 것 같아. ”





 
 트로이는 호스를 내려놓았다. 미샤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자기 쪽으로 돌렸다. 왼쪽 어깨 때문에 미샤가 낮게 비명을 질렀다.



 “ 아파! ”




 “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생각 하지도 마. ”




 
 미샤가 그의 손에서 어깨를 빼내려고 잠깐 몸부림쳤다. 트로이가 놔주지 않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 농담이야, 유라는 의사잖아. ”




 “ 농담이라도 안돼. 내 말 들어, 절대 그런 말 하지 마! 한번만 더 그런 얘길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기억도 하지 마. 생각조차 하지 마. ”




 “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 안드레이. ”




 트로이는 미샤가 끝까지 잡아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샤는 이고리가 얘기했다는 것도, 그가 아스케로프와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것도 모를 테니까.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부터 미샤의 어깨를 거세게 잡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약속해, 무조건. 그런 짓 안 할 거라고. 상상도 안 할 거라고. ”




 “ 어... 약속할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약속할게. 안드레이, 제발 그만해. 멀미가 나려고 해. "



 미샤가 그의 팔에 코와 뺨을 비볐다. 심하게 놀랐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트로이는 흔드는 것을 멈췄지만 어깨를 놔주지는 않았다. 미샤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부르르 떨면서 속삭였다.




 “ 그만해, 안드레이... 네가 화내면 정말 무서워. ”




 “ 설마. 넌 사람들이 화낸다고 무서워한 적이 없어. ”




 “ 네가 화내는 건 무서워. 이제 그만해. 뭐든 약속할게. ”




 트로이는 미샤를 놔주었다. 욕조 전체가 새빨간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몸서리를 치며 호스로 물을 끼얹었다. 미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펀지로 박박 문지른 후 다시 물을 부었다. 마침내 더 이상 붉은 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미샤에게 타월을 건네주었다. 미샤는 욕조에서 나오지도 않고 타일 벽에 바짝 기대선 채 머리와 몸을 오랫동안 닦았다. 젖어서 뒤엉킨 속눈썹 아래로 동그래진 눈을 치켜뜨면서 이따금 트로이를 쳐다보았다. 정말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까맣게 팽창된 눈동자 아래로 커다란 물방울들이 고여 뺨을 타고 목덜미로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트로이는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젖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옷장을 뒤져 미샤의 옷을 가지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미샤는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욕조 안에 서 있었다. 손등으로 눈과 뺨을 누르고 있었다. 이제 가장할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물방울이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꽉 깨문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트로이는 여전히 그게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라고 착각하기로 하며 옷을 내밀었다.



 “ 빨리 입고 나와, 찬물로 씻었잖아. ”




 미샤가 고개를 돌린 채 옷을 받아 입었다. 티셔츠 위로 다시 물방울이 떨어지며 둥글게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트로이가 욕조로 들어가 그를 데리고 나왔다. 허리를 끌어당겨 안으며 머리를 쓸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타월로 닦아냈는지 물기가 별로 없었다.



 “ 미안해, 미셰츠카. ”




 “ 이제 화 안내? ”




 “ 화가 났던 게 아냐. 그냥 놀랐던 거야. 이제 그러지 않을게. ”




 “ 아니, 화났었지. 소리, 소리도 지르고. ”




 미샤가 몸을 떨었다. 얼굴과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트로이는 그가 모르핀에 취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앞에서 그렇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 미안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




 “ 그래, 잘못 생각한 거야. 뭔지는 모르지만. ”




 
 그 와중에도 미샤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고집스럽게 잡아뗐다. 트로이는 더 이상 그를 추궁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애가 우는 순간만큼 불행하고 비참한 느낌이 드는 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타일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미샤를 데리고 침실로 갔다. 조금이라도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셔츠의 젖은 부위도 말려주었다. 그는 미샤가 의식적으로 손목 안쪽을 등 뒤로 감추는 것을 보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그 애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부어오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척 했다. 드라이어를 껐을 때 미샤가 침대에 누우면서 목쉰 음성으로 말했다.



 “ 책 읽어, 안드레이. ”




 “ 무슨 책? ”




 “ 아무 거나. 내가 잠드는 동안 책 읽고 있어. 논문이라도. ”




 “ 자고 일어났을 때 읽고 있는 게 좋다면서. ”




 “ 둘 다 같아. ”




 트로이가 지루한 이론서와 논문집을 가지고 와 침대에 앉자 미샤가 그의 무릎 위로 머리를 디밀었다. 졸음 때문인지 몸이 벌써 따스해지고 있었다. 하긴 언제나 쉽게 뜨거워지는 몸을 가진 애였다. 트로이는 별 말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여분 쯤 지났을 때 미샤가 무겁게 잠에 취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우리 아버지도 그랬지. 자고 일어나면 책을 읽고 있었어. 뭐든 많이 읽었어. 어떨 때는 날 무릎에 뉘어 재우면서도 책을 읽었지. 자장가를 부르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어. 존경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




 “ 무슨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




 “ 소련 군가. 봉쇄 시절 전방에 계셨거든. ”




 “ 군인으로 키우고 싶으셨나보네. ”




 “ 글쎄, 한 번도 못 물어봤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느냐는 얘기, 한 번도. ”




 “ 넌 뭐가 되고 싶었는데? ”




 “ 우주 비행사. 가가린. 당연하잖아. ”




 그 말을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미샤의 머리가 시트 위로 툭 떨어졌다. 눈이 가로로 긴 선을 그리며 감겨 있었다. 트로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이론서와 논문집을 읽었다. 가끔 소련 군가 중 아는 노래가 있는지 기억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생각나는 거라곤 피오네르 행진곡 뿐이었다. 그것도 후렴구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









중간에 트로이가 '이고리가 얘기한 것'에 대해 떠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전에 따로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 링크.


http://tveye.tistory.com/3825 표절에 대해, 춤추는 푸쉬킨에 대해 트로이와 이고리가 나눈 대화




맨 위 사진부터 오늘 포스팅에 올린 사진은 모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에서 예브게니의 광란 장면 추는 중. 촬영은 alex gouliaev.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Posted by liontamer





아주 오랜만에 글을 발췌해 본다. 새로 쓴 글은 아니고, 몇년 전 썼던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 중반부의 한 파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2부 3장.




이 파트의 앞부분 일부는 전에 조금 발췌해 올렸던 적이 있다. 수용소에서 약물 교화를 받다가 쇼크로 사경을 헤매게 된 미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후원자 중 하나였던 정치가 게오르기 벨스키가 또 다른 후원자이자 일종의 정적인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와 만나게 된다.




전에 발췌했던 부분은 스비제르스키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벨스키의 상념을 묘사한 앞부분이었다.

그 발췌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6282

(여우와 호랑이와 추기경, 물과 돌의 도시에 잡힌 아이)




전에 앞부분 올렸을 때 기재했던 간단한 설명 메모가 있어 여기에 조금 더 줄여서 다시 올려본다.




... 2부는 공산당 유력 간부이자 미샤의 후원자이고 결국은 그를 빼내 자신의 고향인 가브릴로프의 극장으로 보내는 게오르기 벨스키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한다. 벨스키의 회상에서 등장하는 또다른 인물인 드미트리 마로조프 역시 미샤의 오랜 후원자이며 노회한 정치인이다. 이 사람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이 내가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미샤를 소환했던 그 단편이다. 그 단편도 종종 발췌한 적이 있다. 
 
 
 
포스팅 제목의 여우와 호랑이와 추기경은 내가 미샤의 주요 후원자인 이 정치인 셋에게 붙인 별명이다. 순서대로 벨스키, 스비제르스키, 마로조프이다. 이 별명들은 소설 속에서도 소련 인민들과 공산당 정치판에서 회자되는 것으로 설정했다. 본편 패러디 외전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도 가브릴로프 kgb국장인 스페호프는 툭하면 스비제르스키를 호랑이라고 부른다 ..




이번에는 2부 3장 전체를 올려본다. 그러다 보니 전에 올렸던 벨스키의 상념 부분이 조금 겹치는데, 별 상관은 없다. 사실 그 부분이 있어야 뒷이야기도 잘 연결이 된다.



이 수용소 경장편은 미샤가 수용소에서 직접적으로 약물교화를 겪는 1부, 모스크바 클리닉으로 옮겨진 미샤를 면회하는 벨스키의 이야기와,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의 비밀대화를 묘사한 2부, 그리고 미샤를 면회하러 간 일린의 이야기를 그린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 발췌한 2부 3장은 중반부에 해당한다. 여기서 나는 미샤가 체포된 여러가지 이유 중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에 대해, 그리고 재판 경과와 그의 가브릴로프 유배에 대한 배경에 대해 썼다.



이 수용소 이야기는 A4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경장편이지만 구조와 내용상 여러가지 시점과 조금씩 다른 문체로 썼다. 이 2부 3장까지는 프라하에서 썼다. 특히 이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의 대화는 주로 카페 에벨에 앉아서 썼었다. 1부나 2부의 1, 2장, 3부가 상당히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면 이 2부 3장은 쓰기 즐거운 파트였다. 아마 미샤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대화를 쓰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악한 크레믈린 아저씨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 대해 쓰는 것 자체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인간 사촌은 정말 아닙니다 ㅠㅠ)



스비제르스키가 '추기경', '노인네' 라고 칭하는 인물은 미샤의 후원자인 레닌그라드 정치인 드미트리 마로조프이다. 나는 미샤를 불러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사람과 미샤가 비행기에서 나누는 대화들과 이 사람의 기억들로 구성된 단편 Frost를 썼었다. 그 단편도 일부를 여러번 발췌한 적이 있는데 맨 아래 링크를 달아보겠다.



루뱐카는 전에도 여러번 설명한 적 있지만 KGB의 별명이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KGB 독일 방첩지부를 지휘했던 경력이 있고 소설에서 묘사되는 현재에도 여전히 KGB의 숨은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



스비제르스키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크라베츠, 제믈랴코프, 뉴욕 사건 등에 대해서는 예전에 전문의 약 7~80% 정도를 올렸던 Dolls에서 좀더 자세한 경위가 나온다. 그 소설 링크들도 맨 아래 달아보겠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 대해서는 본편보다는 본편을 위한 데이터 구축용 half 소설에서 많이 발췌했었다. 그 링크들도 생각나는 거 몇개만 맨 아래에.... (뭐야, 링크만 붙이다 끝나겠어)



맨 위 사진은 마린스키 연습실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글만 올리면 좀 휑해서 :)




..





*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벨스키는 단 한 번도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와 허물없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스비제르스키는 그에게 편하게 말을 놓았지만 벨스키는 여전히 존대어를 고수했다. 나이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스비제르스키는 그보다 기껏해야 서너 살 위였으니까. 그보다는 스비제르스키가 정계에 비교적 늦게 진출한 그에 비해 한참 선배 정치인이라는 이유가 더 그럴 듯 했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젊은 시절부터 KGB 해외 지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그때부터 오랫동안 탄탄한 경력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스비제르스키는 오랫동안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반대파에 속해 있었고 스타일도 매우 달랐다. 현장 요원 출신인 스비제르스키는 무자비하고 공격적인 인물로 유명했고 정보력과 매수, 숙청을 주무기로 삼았다. 그의 뒤에는 모스크바 노멘클라투라 세력과 KGB가 버티고 있었는데 정계에서는 스비제르스키가 서기장의 큰 약점을 쥐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에 비해 개혁파이자 교묘하고 비밀스러운 음모 추진의 대가로서 추기경이란 별명까지 얻은 마로조프는 원한다면 언제든 정치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레닌그라드 대신 모스크바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안개 속의 실권자로 남아 있는 편을 선호했다. 대신 그 레닌그라드 추기경은 벨스키를 모스크바로 보냈고 짧은 기간 내에 그를 상층부로 진입시켜 놓았다. 
 
 


 일반적인 예상에 따르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벨스키가 정치국에 진입하기도 전에 그를 짓밟고 매장시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어야 했다. 어쨌든 벨스키는 가장 위협적인 정적의 후계자인데다 놀랄 만큼 빠르게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비제르스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1976년에는 꽤 중요한 행사였던 크레믈린 여름 축제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후 벨스키를 위원으로 추천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놀라서 이유를 물었을 때 스비제르스키는 벨스키가 중앙위원들 중 극장에 대한 조예가 가장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틀에 박힌 대답을 했다. 물론 그 묘사에 더 들어맞는 인물은 드미트리 마로조프였지만 벨스키 역시 부모가 극장 출신이었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 역시 그쪽으로는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열정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는데 특히 발레를 좋아해서 70년대 초부터는 모스크바 콩쿠르를 조직해 직접 후원하고 있었다. 
 


 
 벨스키는 당시 스비제르스키가 자신을 끌어들인 이유를 적어도 두 가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스비제르스키는 마로조프에 대한 증오와는 별개로 벨스키에게는 뚜렷한 적대감을 내세우지 않았고 실제로 지금까지 크게 부딪친 적도 없었다. 벨스키 역시 그를 진짜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정말로 누군가를 파멸시키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살아남을 상대는 거의 없었다. 몇 년 전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정치국에서 서기국으로 옮겼을 때 정계에서는 마침내 스비제르스키가 오랜 라이벌을 몰아내고 승리를 거뒀다는 얘기가 오갔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마로조프에게는 자신만의 계산이 있었다. 벨스키는 마로조프가 자리를 옮겼을 때 스비제르스키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같은 모스크바 의원이었고 문화예술 정책과 관련된 각종 위원회들에도 함께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벨스키는 정치국 회의를 제외하고서도 스비제르스키와 얼굴을 맞댈 일이 잦았다. 미샤가 볼쇼이에 있었던 1977년에는 극장에서 더 자주 마주치곤 했다. 당시 이반 노비코프는 미샤를 볼쇼이로 데려오기 위해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에게 동시에 로비를 진행했으므로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미샤에게는 벨스키나 스비제르스키 외에도 공공연한 지지와 후원을 내세우는 고위직 인사들이 이미 여럿 있었는데 모스크바로 옮겨오자 그들의 수는 더 늘어났다. 레닌그라드에서와 마찬가지로 볼쇼이에서도 미샤 야스민의 열광적 팬들은 순식간에 불어났는데 전통적인 발레 애호가들과 잘생긴 무용수에게 넋을 놓는 아가씨들 외에도 교양인으로 자처하는 노멘클라투라들의 비중이 갈수록 커졌다.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무용수에 대한 그들의 열광에는 분명 유행에 따르는 부르주아 아가씨들 같은 측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건 무엇보다도 재능 때문이었다.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들이라 해도 지금 무대 위에 있는 젊은 청년이 다른 무용수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된다는 것, 그 춤에서는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는 것,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분장을 시켜서 수백 명 사이에 세워놓아도 단숨에 그를 찍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재능이 전부는 아니었다. 한때 벨스키는 마로조프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그를 후원했는지, 그 많은 애인들 중 왜 하필이면 스캔들을 몰고 올 가능성이 가장 큰 상대를 그렇게 아끼는지 의문했었다. 그가 아는 마로조프는 결코 감상적인 인물이 아니었고 무대 위의 예술가와 현실 속의 젊은 사내아이를 동일시할 만큼 얄팍한 교양의 소유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벨스키는 전에도 미샤의 무대를 수차례 본 적이 있었고 그 재능에 감탄했지만 이후 크레믈린 축제 개막 리셉션에서 그를 직접 만났을 때에야 왜 그 냉철하고 비밀스러운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그 무용수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게오르기 벨스키는 단 한 번도 도착자들의 욕망이 작용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였고 여자들과의 접촉이 어려웠던 군 시절에도, 혹독했던 비행 훈련 시절에도 결코 남자들에게 성적 충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단 내에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때도 그는 밀고하거나 소문을 퍼뜨리지는 않았지만 그게 매우 비정상적인 행위이며 일종의 질병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며 정치적 롤 모델인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여자들뿐만 아니라 몇몇 남자 애인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웬만해서는 놀라는 일이 없는 그조차도 조금 충격을 받았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 같은 경우는 물론 달랐다. 스비제르스키는 무자비한 학살자라는 이미지 외에도 난잡하고 폭력적이며 가학적인 바람둥이라는 평판이 워낙 파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은사의 성적 취향에 대해 아무런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아마도 그런 도착적 욕망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의 경우 적어도 둘 중 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남성성이 결핍된 존재, 잘못된 육체를 입고 태어났을 뿐 실지로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존재일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벨스키가 아는 마로조프는 결코 그런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그 결론은 상대 애인들을 향한 것이 되었다. 
 
 


 그는 리셉션 테이블에서 미샤 야스민을 만났을 때 그 결론을 폐기했다. 적어도 미샤에게는 그 판단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타인을 매료시키고 끊임없이 자극을 가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자극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고 어떤 경우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도 있었지만 정계에서 제대로 출세하기 위해서는 그런 타고난 힘이 필요했다. 마로조프와 스비제르스키, 물론 벨스키에게도 그런 힘이 있었다. 그리고 종류는 달랐지만 미샤에게도 그런 힘이 있었다. 상대방을 순식간에 사로잡고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 그 젊은 무용수에게서 발산되는 성적 자력이 너무 강렬해서 벨스키는 왜 그가 그렇게 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벨스키는 미샤가 왜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를 격렬하게 원하거나 격렬하게 미워했다. 중간은 없었다. 그게 다양하게 뒤섞인 혈통에서만 나올 수 있는 외모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주 강인하고 단단하면서도 때로는 사춘기 소년 같고 때로는 양성적으로 느껴지는 그 무용수의 육체 때문인지, 혹은 언제나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찌르는 듯한 시선과 결코 타인 앞에서 겁먹거나 물러서지 않는 태도 때문인지 똑바로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단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미샤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심신을 산란하게 만들었는데 완벽하게 정상이며 성적 도착과는 거리가 먼 벨스키도 그 자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적이 거의 없고 미샤 야스민의 경우라면 정식 후원 입장조차 밝힌 적이 없는 드미트리 마로조프는 딱 한 번, 벨스키와 대규모 예술행사 추진 관련 회의를 진행하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야스민? 걘 불로 만들어진 애야. 가슴을 갈라보면 불과 바람 밖에 없을 걸. 그런데 레닌그라드에 꽉 잡혀 있어. 물과 돌의 도시에. ”
 
 


 벨스키는 오랫동안 그 마지막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달 전 미샤가 파리에서 그런 논란을 일으키고도 순순히 소환되어 재판에 회부되기 전까지는. 그때 그는 충분히 남을 수도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패했다면 선례에 따라 요원들이 그를 죽였을 수도 있으니까. 실지로 파리 측 보안위원회 책임자 겐나디 마슬로프는 모스크바에서 허가만 내려온다면 기꺼이 사살 명령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럽 예술계와 그 잘난 서방 언론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파리에는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있었다. 아마 결코 그를 살해하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국이 마지막 순간 방침을 바꿔 미샤를 파리에 보내도록 배후에서 힘을 쓴 장본인이었으니까.
 


 
 한밤중에 사라졌을 때 미샤는 디나 로쉬의 도움을 받아 곧장 프랑스 정부에 망명 신청을 할 수도 있었다. 프랑스가 싫었다면 미국이나 영국 대사관으로 갈 수도 있었다. 파리에는 그를 위해 모든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쓸 사람들이, 그것도 디나 로쉬를 필두로 한 예술인들뿐만 아니라 상당히 힘 있는 인사들이 많이 있었다.
 


 
 미샤는 춤과 무대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적인 무용수들과는 달랐다. 상당히 똑똑한데다 순발력이 좋은 애였다. 영어와 프랑스어 양쪽으로 꽤 수월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고 다년간의 투어와 협업, 페스티벌 등을 통해 친해진 미국과 유럽 각국 지인들이 있었다. 냉전 분위기가 완화되었던 시절 외국어라고는 단 한 마디도 모르고 바깥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전에 망명한 친척이나 유태계 서클 외에는 아무도 없는 사람들도 우후죽순처럼 이민 신청을 했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미샤는 서방 세계에 남아도 전혀 어려움을 겪을 타입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재능. 아마 각국 최고의 극장들에서 붉은 카펫을 깔아놓고 돈다발을 안기며 그를 서로 끌어가려고 경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남지 않았다.




 
 
 감시를 따돌리고 디나 로쉬의 아파트로 사라졌던 그날 밤 요원들은 결국 그의 행방을 찾아내지 못했다. 새벽이 다 되어갈 무렵 겐나디 마슬로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감시 요원들에게 징계를 내렸고 행여 그 건방진 놈이 정말 망명이라도 한다면 일주일 이내에 최정예 요원들을 파견해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암살해주겠다고 펄펄 뛰었다. 파리든 런던이든 뉴욕이든, 심지어 도쿄나 홍콩으로 도망친다 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내 팔다리를 자르고 두 눈을 도려낸 후 살가죽을 벗겨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막상 미샤가 이른 아침이 되어 제 발로 호텔까지 돌아왔을 때 마슬로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이 아니라 더욱 분노했다. 아마 당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그 배반자를 죽여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격렬한 사랑과 격렬한 증오. 겐나디 마슬로프는 물론 후자에 속했다.



 벨스키는 마슬로프를 비롯한 강경파들이 어리석게 대응했다고 생각했다. 미샤에게는 이미 비슷한 전적이 많았다. 그때도 그는 몇 번이고 사라져버릴 수 있었지만 언제나 돌아왔다. 돌아온 그를 호텔 방에 가두고 당일로 다가온 공연에 출입 금지시킨 것도 멍청한 조치였다. 그 화제의 공연이 예술감독 없이 올라갔는데, 그것도 국제 예술계로부터 그토록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 자기 작품을 지휘할 수 없게 되었는데 언론이 가만히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상황이 그렇게 엉망은 아니었다. 미샤를 파리에서 소환한 후 비공개 재판에 회부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스비제르스키는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철저하고 계산적인 인물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보좌관과 비서는 눈에 띄지 않았고 경호원들도 바깥쪽 홀에 배치되어 있었다. 벨스키도 자기 경호원들을 홀에 남겨두고 들어갔다. KGB 요직 출신답게 스비제르스키는 언제나 도청을 비롯한 보안 문제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 카페의 작은 방은 완벽하게 깨끗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완벽‘이라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벨스키가 테이블에 앉았을 때 스비제르스키가 인사도 없이 불쑥 말했다.



 “ 당신이 해결해야겠어. 난 내일 회의 안 들어가니까. ”



 “ 발의하신 분이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진행한다는 건지. ”



 “ 돔브로프스키가 할 거야. 파리 대사관 경력이 있으니까. 크라베츠는 제믈랴코프를 밀겠지만 그놈이야 당신이 맡을 수 있겠지. ”



 “ 왜 빠지려고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 친구를 모스크바 센터로 옮긴 장본인에다 내일 회의 소집도 주도하신 분이. ”



 “ 내 손으로 루뱐카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않겠나. 아무리 그 병신들이 천치 같은 짓을 저질렀다지만 내일 회의에서 발언하는 건 또 다른 문제지. 더 이상 개입하면 역효과야. ”



 “ 루뱐카가 진짜 문제는 아닐 텐데요. 의원님은 지금은 보안위원회 직접 관할이 아니니까. 죄수와의 가까운 관계 때문에 발언 취지를 의심받을 수는 있겠군요. 제믈랴코프가 그런 식으로 접근하려고 하겠죠. ”




 스비제르스키는 화도 내지 않았다. 매처럼 날카로운 눈매에 차가운 웃음을 잠깐 흘리며 대꾸했을 뿐이었다.



 “ 당신 지금 날 떠보고 있는 건가? 그 전에 레닌그라드에 가서 그 노인네에게 왜 내일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지 물어보지 그래. ”



 물론 벨스키는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스비제르스키가 아직도 미샤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마로조프의 신경을 긁기 위해서라고 믿어 왔다. 그 가학적인 카사노바는 어린 애인들을 좋아했고 항상 상대들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벨스키는 애초부터 마로조프가 아니었다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미샤를 손대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폭군 같은 인물이라면 훨씬 고분고분하고 사랑스러운 상대를 골랐을 것이 분명했다. 미샤 야스민은 물론 그런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 제믈랴코프야 별 문제되지 않을 겁니다. 크라베츠는 물러서지 않을 거고. ”



 “ 물론 그렇겠지, 이게 다 그 얼간이 작품이니까. 그놈은 애초부터 문화나 예술이란 단어가 붙은 것들은 전부 싫어했어. 할 수만 있다면 볼쇼이건 키로프건 전부 탱크로 밀어버리고 레닌 동상이나 세워댔을 걸. 트레치야코프와 므하트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깝다고 전부 폐쇄하고 싶어 하는 놈이야. 시대착오적인 병신 같으니. ”



 “ 크라베츠는 예술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는 부류죠. 그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좀 의외였죠, 왜 걜 그렇게 없애고 싶어서 안달이었는지. 그 비공개 재판부터 시작해서 프시후슈카까지 전부 크라베츠가 주도했잖아요. 7년형이라니. 게다가 약물 교화. 뭘 얼마나 대단한 배반 행위를 했다고. 콜리마가 아직도 남아 있었으면 거기 처박았을지도 모르겠군요. ”



 “ 그 재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



 “ 글쎄요, 게르만 알렉세예비치, 당신이 아는 것만큼만 알고 있겠죠. 우리 둘 다 거기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



 “ 아니, 난 당신보다는 더 알지. 그쪽은 항상 그럴걸. ”




 스비제르스키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잠깐 침묵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왼쪽의 갈색 눈 밖에 보이지 않았다. 유리 안구를 박아 넣은 듯 움직임이 없는 눈동자였지만 안쪽 깊은 곳에서 얼음 같은 분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 프시후슈카는 제믈랴코프가 밀었지. 7년 때리게 만든 것도 그놈이고. 어차피 그 정도 썩고 나오면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더라도 몸이 굳어서 춤 같은 건 완전히 끝장이니까. 크라베츠는 그런 식으로 생각할 머리도 없어. 그놈은 단순해. 무조건 죽이고 싶어 했으니까. 그놈 구미대로 돌아갔으면 재판 당일 밤에 끌고 가서 총살했을 걸. 덮어씌울 혐의야 수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



 “ 그자가 그랬던 게 당신 때문인가요, 아니면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때문인가요. ”



 “ 흠, 둘 다겠지. 요즘 그 얼간이가 아프가니스탄 때문에 기고만장해져 있으니까. 당신의 그 추기경이 걜 파리로 보냈잖아. 진짜 문제가 시작됐던 뉴욕에도. 그걸로 옭아매고 싶었겠지. ”



 “ 그럼 당신은? ”



 “ 나야 유명하지 않나? 모스크바에서 나만큼 걜 대놓고 후원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발 뺀 척 하고 있는 당신도 물론 그놈 수첩에 적혀 있겠지. 멍청한 놈, 그 과신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보면 알겠지. 어차피 이번 건 마무리되면 그놈도 버티기 힘들 걸. ”



 “ 그래도 총살시키려고 했다니 어이가 없군요. 즉결 처형이라면 스파이나 테러 죄목을 씌워야 했을 텐데. 크라베츠가 아무리 당신들을 끌어내리고 싶어 했다 해도 그건 너무 무모한데요. ”



 “ 악연이 있거든, 그 얼간이와 우리 깜찍한 꼬마 사이에. ”




 이미 20대 중반인데다 이제 자격을 박탈당하긴 했지만 연방을 대표하는 공훈예술가였던 인물에게 그런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물론 벨스키는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어쨌든 스비제르스키는 마로조프와 마찬가지로 미샤를 소년 시절부터 알아왔던 사이였다.




 “ 무슨 악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이려고 한 걸 보니 꽤 앙심을 품은 모양이군요. ”



 “ 뉴욕에서 스파이 짓 시키려고 했는데 걔가 거부했거든. ”



 “ 지난 2월에요? ”



 “ 아니, 77년에. 기억 안나나? 볼쇼이 오고 얼마 안돼서 뉴욕에 갔었잖아. ”



 “ 그때 기껏 3일 정도 머물렀던 것 같은데. 훈련도 받지 않은 아마추어가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



 “ 아, 할 수 있는 게 있었지. 국무성의 고위직 인사 하나를 포섭하고 있었거든. 예쁜 사내애들을 좋아하는 취향이었지. 미제 자본주의자는 자기 욕망에 아주 충실해. 우리에게 그걸 숨기지도 않았어. 조건을 한 대여섯 가지는 걸었는데 그 중에 죽었다 깨나도 미국에서는 못 가져볼 볼쇼이 무용수도 들어있었던 거지. 대놓고 걜 찍었어, 이름까지 박았으니까. 아니면 왜 걔한테 그렇게 빨리 뉴욕행 허가를 내줬겠나, 키로프에 있는 동안 번번이 그쪽 투어는 금지 당했었는데. 그런 출신 성분에 그보다 더 지저분한 서류를 가진 앨 몇 달 만에 금세 뉴욕으로 보내준 게 볼쇼이 이름값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데. ”



 “ 윌리엄 모튼 얘기인 것 같군요. 그때 크라베츠가 뉴욕에서 그 미사일 프로젝트 추진하다 실패했죠. 그때까진 보안위원회 쪽에 있었으니까. 당신과도 관계가 나쁘지 않았죠. ”



 “ 난 분명히 그자에게 충고해줬다네. 그 말썽꾸러기를 그쪽으로 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고. 절대로 말 안 들을 거라고 말야. 어찌나 머리가 나쁜지 내 말을 안 믿더군. 내가 사심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굳게 믿었지. 대가리에 똥만 들어찬 병신 같으니. ”



 “ 물론 미하일이 말을 안 들었군요. ”



 “ 당연히 안 들었지. 크라베츠 면전에서 자기한테 한 번만 더 그런 명령을 내리면 그 양키 놈 물건을 물어뜯어서 잘라버릴 거라고 대들었다던데. 그 예쁜 입에서 어찌나 지저분한 욕지거리가 쏟아져 나왔는지 크라베츠가 꼭지가 돌아서 걜 몇 대 두들겨 팼지. 두 시간 뒤에 공연이 있어서 제대로 패지도 못했지만. ”



 “ 강제로 보낼 배짱은 없었나보군요. ”



 “ 당신은 정말 미셴카를 아직도 잘 모르는군. 걘 정말 자기가 말한 그대로 했을걸. 크라베츠는 얼간이 천치지만 그 자식이 대드는 걸 보고 그 정도는 깨달았던 거지. 그래서 그때부터 무시무시하게 앙심을 품은 거야. 자기가 멍청해서 작전을 말아먹어놓고 그 책임을 걔한테 돌린 거지. 병신 같은 놈, 어차피 모튼은 안 될 카드였어. 걜 수십 번 안겨줬어도, 모튼이 기밀을 내줬어도 그 닭대가리로는 아무 것도 제대로 못 해냈을 거야. ”


 

 “ 크라베츠는 사람을 제대로 다룰 줄 몰라요. 아마 미하일도 그래서 더 발끈했겠죠. ”



 “ 글쎄. 걘 누가 명령하든 말 안 들었을 걸. 내가 시도 안 해본 줄 알아? 그전에 이미 런던에서 비슷한 경우에 써먹어보려고 했어. 다짜고짜 칼질부터 해댔지. ”



 “ 당신을 찌르려고 했다고요? ”



 “ 설마. 아무리 야수 같은 꼬마라도 내게 그런 짓은 못하지. 하긴 감히 내가 보는 앞에서 자기 가슴에 칼을 쑤셔 넣으려고 했으니까 더 용서가 안 될 일이지만. 발레 무대 따윈 아무 것도 아니야, 그 조그만 것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굴 수 있는지 상상도 못할 걸.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



 “ 자해하려고 했던 것 말인가요? ”



 “ 아니,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게. ”   




 
 벨스키는 잠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도자기 잔을 집어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커피보다는 차를 선호했고 이렇게 늦은 오후에는 둘 다 입에 대지 않았다. 어쨌든 커피는 훌륭했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어떤 인간이든, 그의 취향만은 언제나 최상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비슷했다. '같은 나무에서 자란 두 개의 열매죠.' 이전에 모스크바에서 어느 외교 행사에 불려갔을 때 미샤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맥락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미샤가 벨스키와 함께 있을 때 그 두 사람에 대해 언급했던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 그 사진. ”



 잔을 내려놓으면서 벨스키가 불쑥 말했다. 스비제르스키는 표정이 변하지도 않았다.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 해결하라고 등을 떠미시니 움직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솔직하게 얘기해 주시죠. 당신 작품이라고 생각되는데. ”



 스비제르스키는 코웃음을 쳤다.



 “ 크라베츠야 그렇게 믿고 있겠지. 당신은 아니잖아. 누가 그랬는지는 잘 알고 있을 텐데. ”



 “ 글쎄요, 그건 걜 레닌그라드 센터에서 모스크바로 이송할 때 찍혔어요. 당신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런 사진을 찍어서 유출할 배짱이 있는 자가 과연 있기나 할지 모르겠군요. ”



 “ 왜, 당신이 그렇게 했다고 인정은 못하나? ”



 “ 전 그럴 만한 위인이 못 됩니다. 어떻게 감히 게르만 알렉세예비치 당신 앞에서. ”



 “ 당신은 그럴 만한 위인이 못 되는 게 아니라 그런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지. 그걸 보면 그 노인네와는 닮지 않았어. ”




 스비제르스키의 갈색과 푸른색 양쪽 눈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반쯤은 부드럽게까지 느껴지는 표정이었는데 벨스키는 그 눈빛을 볼 때마다 베를린과 런던에서 암살 명령을 내리던 순간도 저랬을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 모르는 척 구는 건 그만 두시지. 추기경이 한 짓이잖아. 재판 정보 흘린 것도, 파리 쪽 계속 쑤셔댄 것도 전부. 딱 그 작자 스타일이지.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아. 자기 손을 더럽히는 일도 없지. 당신의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께서 최근 20년 동안 없앤 놈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난 비교도 안돼. 그런데도 피칠갑을 하고 온갖 욕을 먹는 건 전부 이쪽이지. 참 존경스럽단 말이야. ”



 “ 그분은 그런 일에 개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파리에서 돌아온 후 완전히 손을 뗐어요. ”



 “ 누군들 좋아하겠나. 그런 일이라고 했지. 그게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그 작자가 손을 떼? 마누라와 자식들이라면 몰라도 그놈에게선 절대 손 못 뗄 걸. 그 작자가 10년 동안 그 조그만 귀염둥이를 얼마나 역겹게 끼고 돌았는지 모르나? 그리첸코가 벌써 2월에 그걸로 엮어서 두들겨보려고 했었지. 분수를 모르고 나대다가 크라스노다르로 쫓겨났지만. ”




 벨스키는 스비제르스키가 내뱉는 문장들에서 주어를 마로조프 대신 화자 자신으로 바꿔도 무방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미샤를 자신의 정부로 만든 것은 마로조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로서는 결코 관여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다.



 “ 하여튼 사진 잘 찍었던데. 서방 부르주아들 심금을 울리다 못해 갈갈이 찢어놓을 정도로. 모마나 퐁피두에서 소장하고 싶을 거야, 추기경에게 그거 찍은 놈 미국으로 보내라고 해. 퓰리처라도 안겨줄지 누가 아나. 난 개인적으로 그 사진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그 뻔한 피에타 구도라니, 완전히 숨넘어간 것처럼. 뭐 일부러 그렇게 찍었겠지, 반체제 예술가에 인권 탄압이 합쳐지면 껌벅 죽는 그 위선자들 발칵 뒤집어놓으려고. ”



 “ 그렇지 않아도 벌써 뉴욕에서는 그걸로 기습 전시를 열었죠. 사진에 판화, 비디오 아트를 섞어서. 피에타 버전으로 팸플릿 찍어낸 것도 있었고. 하긴 우리 대사관들에도 그 팸플릿들 수도 없이 투척됐으니 잘 아시겠군요. 구도가 마음에 안 드신다니 유감이지만. 하필 들어서 옮길 때 찍혔더군요. ”



 “ 구도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냐. 그 자식이 진짜 죽은 것처럼 찍혀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좀 궁금하긴 한데, 나중에 그 사진 보면 그 녀석이 어떻게 반응할지. 뭐 뻔하지, 화내고 삐치겠지. 또 칼질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



 “ 그런 비참한 상태에 빠진 걸 몰래 찍어 배포해서? ”



 “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게 찍혔으니까. 무대에 올라가는 놈들 다 똑같은 거 모르나? ”



 “ 2월부터 올라가지 않았죠. ”



 “ 올라가게 될 거야. ”



 “ 글쎄요. 회복되기나 할지 모르겠군요. 최악의 경우는 그 친구가 죽는 거죠. 그럼 아주 불쾌한 상황이 벌어지겠죠. 미국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





 
 벨스키는 파리와 런던 측과 진행되다 이 사건을 빌미로 중단된 몇 가지 비밀 협상에 대해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스비제르스키는 그 이상으로 잘 알고 있을 터였다.




 “ 죽지는 않을 거야. ”



 “ 아직 깨어나지 못한 걸로 아는데. 거의 일주일째 의식이 없는데 어떻게 그리 확신하시는지. ”



 “ 해독제고 뭐고 전부 중단시켰거든. 놔두면 일어날 거야. 질긴 놈이라서. ”



 “ 부작용 일으키는 체질인 건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군요. 그라도프 보고서에도 그런 내용은 없던데. 아니, 애초부터 왜 루뱐카 심문실에 들여보냈던 건지도 모르겠고. 그때 어린애였잖아요, 열일곱 살이었나. ”



 “ 일종의 예방책이었던 거야. 이런 일에 대한. ”



 “ 그럼 별 소용이 없었던 셈이군요. ”



 “ 아니, 적어도 7~8년은 막았으니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 당신은 걔가 약물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를걸. 진짜 웃기는 놈이야. 칼을 쑤셔 넣고 총알을 박아 넣는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할 놈이 그 주사는 끔찍하게 두려워했어. 자기 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무서웠던 거겠지. 그러니 제믈랴코프는 크라베츠에 비하면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이야. 제대로 된 처벌을 때린 거니까. ”



 “ 그라도프에게 걔 버릇을 고쳐주게 했던 게 당신이었나요? ”



 “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



 “ 해독제에 부작용 일으키는 것까지 알고 계시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요. ”



 “ 내가 그라도프에게 걜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지. 손봐주라는 명령 따위 내리지 않았을 수도. 사실 그라도프가 해독제를 썼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어. 카첸카도 딱 두 시간 분량만 계산해서 놨고 다른 것과 섞지도 않았거든. 약효가 꽤 오래 갔다는 것 빼고는 모두 완벽했지. 그 친구는 다른 건 몰라도 그쪽으로는 진짜 프로였어. 어쩌면 내가 그 건방진 꼬마를 따로 불러서 그걸 다시 썼을지도 모르지. 그 조그만 게 일반적인 애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반응한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고. ”



 “ 그 ‘완전히 다르게‘ 란 건 어떤 반응이었죠? ”



 “ 일어나는 데 다른 애들보다 두세 배는 더 오래 걸렸지. 깨어났을 때도 정신은 계속 오락가락하고 몸은 아예 못 가눴어. 그때도 해독제 맞고 쇼크 일으켰지. 그 망할 놈의 라브로프가 그걸 계속 쓰지만 않았어도 그 정도로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 ”



 “ 무용수로서의 재능을 아끼셨던 걸로 아는데 왜 그렇게 대하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때 몸이 망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



 “ 그런 체질인 걸 알았다면 아마 그렇게 안 했겠지. 하긴, 알았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지도 모르겠군. 걘 정말 재미있는 애거든. 그렇게 빨리 쇼크를 일으켰던 건 아마 샴페인에 탔기 때문이었을 거야. 라브로프도 알콜 계열 약물을 섞었더군, 그래서 그 꼴이 된 거야. 그때 샴페인 한 잔으로도 완전히 맛이 갔었으니까.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지. 울다가 화내다가 부탁하다가 소리 지르고, 또 울었다가 화내고 기절하고. 그래도 계속 반항했지. 어디서 그런 성깔이 나오는지.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극장까지 기어가서 리허설에 들어가던데. 다음날인가 무대에도 올라갔어. 조그만 게 그렇게 깜찍한 근성을 보여주는데 내버려둔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




 벨스키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를 숨기지도 않은 채 불쑥 말했다.




 “ 너무 많은 얘길 해주시는군요. 지금 얘기 절반만 알려져도 아주 곤경에 처하실 텐데 절 너무 믿는 것 아닌지. ”



 “ 내가 당신을 믿는다고? 설마. ”




 스비제르스키의 눈에 다시 그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입술 한쪽이 함께 치켜 올라갔다.




 “ 추기경의 사진과 내 샴페인. 둘 다 같은 거야. 뭐 당신이 마침내 개심해서 그 노인네 등에 칼이라도 꽂는다면야 얘긴 달라지겠지만. 게다가 그 사진을 제외하더라도, 뉴욕 쪽 시위 배후에 당신도 한 발 들여놓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 그러니 당신에 대한 내 신뢰를 너무 맹신하지 않는 게 좋을 걸. ”



 “ 누가 당신을 무턱대고 믿겠습니까, 그러다가 그리첸코 꼴이 나라고. 조만간 크라베츠도 같은 배를 탈 것 같은데. ”



 스비제르스키는 이제 웃지도 않았다. 믿을 수 없게도 아직까지 김이 오르고 있는 뜨거운 커피 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조그만 잔에 위스키를 따라 벨스키에게는 권하지도 않고 훌쩍 마셨다.




 “ 자, 어떻게 하겠나. 돔브로프스키는 아직도 추방 카드를 포기 못하더군. 멍청한 놈. 지금 상황에서 추방하면 그건 진짜 영웅을 만들어주는 꼴이지. 뭐 죽어버리는 것보다야 상황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살아 있는 영웅보다 더 무서운 건 순교자 나부랭이니까. ”



 “ 차라리 파리에서 망명을 했으면 서로 편했겠죠. 그때까진 배반자에 미친놈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었으니까. ”



 “ 아, 역시 당신은 그 노인네와 한통속이야. 차라리 망명? 벌써 몇 놈을 그렇게 보내줬는데. 게다가 걘 그놈들과 또 달라. ”



 “ 다를 게 또 뭐가 있다고요. 솔제니친이나 브로드스키도 내쫓은 판에. ”



 “ 다르지, 우리 꼬마는 작가 나부랭이가 아니잖아. 무대에 올라가는 놈이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카메라가 아주 예뻐할 걸. 게다가 춤추는 놈 치곤 너무 똑똑해서 탈이야. 미국 놈들이 얼마나 좋아하면서 자기들 프로파간다에 내세우겠나. 자본주의자들에겐 잘난 얼굴, 잘빠진 몸매면 전부 끝나. 아, 하나 더 있군. 섹스라면 사족을 못 쓰지. 2월에 그 녀석이 뉴욕에서 올렸던 공연이 왜 그렇게 이슈가 됐겠어. 그런 놈을 망명하게 내버려두는 건 멍청한 짓이야. 양키들 체제 선전의 귀염둥이가 될 걸. ”



 “ 정말 그렇게 믿는 건 아니시겠죠. 어느 쪽이든 프로파간다에 집어넣으면 도망칠 성격인데. ”



 “ 본인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계없어. 우리도 썼잖아, 이 행사 저 행사 많이도 끌고 다녔지. ”




 벨스키는 시계를 힐끗 보았고 반쯤 마신 커피 잔에 손을 뻗으려다 그만두었다. 왜 스비제르스키의 잔에서는 아직도 김이 오르고 있는데 자신의 커피는 미지근하게 식어버렸는지는 수수께끼에 가까웠다. 아마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게는 상대방을 미세하게 깔아뭉개는 수십 수백 가지의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래봐야 10년. 더는 못 갈 걸.'  벨스키는 평온한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이제 가봐야겠군요. 제믈랴코프가 좀 떠들게 내버려둘 겁니다. 어차피 이제 안 먹힐 게 뻔해요. 그 사진 이후 상황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의원들 사이에서도 좀 너무했다는 분위기고. 예술가란 놈들이 정신 나간 짓거리 하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닌데 그렇게 유망한 애를 그 정도로 망가뜨릴 필요가 있냐는 거죠. 어떻게 보면 걔한테는 사진 공개된 게 행운이죠, 강경파 내에도 동정표가 모였으니까. 쿨리마코프야 무조건 풀어주자고 하겠지만 그 양반이야 물러터진데다 옛날부터 너무 열광적인 걔 팬이었으니 설득력이 없겠죠. ”



 “ 물론이지. 게다가 풀어줘 봤자 키로프에선 절대 안 받아줘. 발레단 명부에서도 완전히 삭제됐어, 무용수든 안무가 쪽이든 전부. 다닐로프가 지금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있는지 아나. 극장 애들 전부에게서 그놈과 반체제 불온사상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전복적인 행동은 더더욱 한 적 없다는 서약서까지 받았지. 뭐 다닐로프가 받아주고 싶다고 애원을 해도 돌려보낼 일은 없을 테지만. 절대 안 되지. 우리 꼴이 뭐가 되라고. ”



 “ 뭐 이미 체면이야 구겨질 대로 구겨졌죠. ”




 
 타이의 주름을 바로잡으며 벨스키가 말을 이었다.



 “ 내년이 가브릴로프 300주년이에요. 극장은 100주년이고. 4월에 맞춰 새 건물 짓고 있지요. 행사 크게 진행할 겁니다. 먀흐킨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으니 새 예술 감독이 필요하겠죠.  ”



 “ 아, 당신 고향 말이지. 그 촌구석. 하긴 당신 덕에 요즘 환골탈태하기 시작했다지. 볼쇼이나 키로프도 성에 안 차서 자꾸 딴 짓을 하던 놈을 그 시골에 처박아 놓으면 견딜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뭐 난 반대 안 해.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하여튼 내일 해결하면 그놈한테도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곧 깨어나겠지. ”



 “ 직접 가시지 않고요? 그 프시후슈카에서 끌어내셨으면서. ”



 “ 내가 그랬다는 걸 알면 다시 칼질이나 해대겠지. 그 성깔이 어디 가겠나. 하긴 한동안 그 손에 뭘 제대로 쥘 수나 있을지 모르겠군. 난 일주일 쯤 모스크바 비울 예정이야. 잘 알고 있을 텐데. ”



 “ 그 베를린 건 때문이겠죠. 보안위원회 쪽은 이제 손 떼신 것처럼 행동하시더니. 역시 급한 일이 터지니 그쪽에서도 전문가를 필요로 하나보군요. ”




 
 “ 다 알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양 신사적으로 구는 게 당신 특기지. 하긴, 그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지. ”




 벨스키는 그 색깔이 다른 두 눈에서 조롱의 기색을 읽으려고 했지만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의 매처럼 날카로운 얼굴은 아주 침착하고 무감각한 가면을 씌워놓은 것처럼 변해 있었다. 그 역시 선호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는 간단한 인사 후 방을 나왔다. 나가는 길에 카페 여주인에게 커피의 비밀에 대해 묻고 싶은 충동이 살짝 일었지만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





프시후슈카는 정신교화 수용소의 속어이다.




이 소설을 쓸 때 (참 쓰잘데없이) 각주를 몇개 달았었는데 스비제르스키가 언급하는 '트레치야코프', '므하트', '브로드스키'에 대한 것도 있어 옮겨놓는다. 다 아는 건데 뭣하러! 라고 하신다면 흐흑 죄송합니다.



트레치야코프 : 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 국립 트레치야코프 미술관
  -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더불어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술관. 모스크바의 상인 트레치야코프가 소장품들을 전시하기 위해 만든 미술관으로 1918년 국유화되었으며 11세기~ 20세기 초의 13만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므하트 : МХАТ
  - 모스크바 예술극장(Московски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Театр)의 약자.
  -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극장으로 1898년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체호프와 고리키를 비롯해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현대극들을 주요 레퍼토리로 하고 있다.



* 브로드스키
  - 이오시프 브로드스키(1940~ 1996)
  - 소련 출신 시인. 영어식 이름은 조지프 브로드스키. 사회 기생충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된 후 1972년 소련에서 추방되었고, 1980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98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




그리고 참고로 맨 위에서 언급했던 본편과 데이터 구축용 소설들의 링크들 몇개 줄줄이. dolls 빼고는 전부 토막토막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거나 완결되는 글들은 아니다. 하지만 조각조각 읽어도 큰 문제 없음. 그래도 각각의 소설 내에서는 가급적 시간 순서로 링크를 늘어놓았다.




Dolls


01. 에벨리나 http://tveye.tistory.com/6960
02. 미샤 http://tveye.tistory.com/6964
03. 일린 http://tveye.tistory.com/6969
04. 에벨 http://tveye.tistory.com/6972




Frost (모스크바행 비행기 안의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미샤)


마지막 동작이 완성되지 않은 춤, 운하를 건너는 미샤  http://tveye.tistory.com/4485
그가 읽었던 불가코프의 문장, 비행기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  http://tveye.tistory.com/4572
타협과 질서의 또다른 이름 http://tveye.tistory.com/6018
미네르바 조각상, 깊은 연못 http://tveye.tistory.com/5650
미샤의 신입 시절, 싸움의 이유, 붉은 장미와 하얀 눈  http://tveye.tistory.com/5469




수용소 장편(이 발췌문이 속한 글)



수용소, 심문자들, 유령들, 인체발화, 다시 세 개의 메모(1부) http://tveye.tistory.com/4748 
체제의 이름, 비행사, 천사 이름 붙은 도시(2부 2장) http://tveye.tistory.com/5589


<3부 : 스타니슬라프 일린과의 면회>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을때, 수용소 면회실에서의 조우 http://tveye.tistory.com/4521
푸에테와 이반 왕자와 불새 http://tveye.tistory.com/3613
농담에 약한 주인공, 타협,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http://tveye.tistory.com/4468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 http://tveye.tistory.com/4341




별장의 미샤와 스비제르스키 (데이터 구축용 half)



춤, 레닌그라드 아이 http://tveye.tistory.com/4620
온천수, 주치의 http://tveye.tistory.com/6317
베를린, 적과 아군 http://tveye.tistory.com/4693 
새벽, 연습실의 미샤 http://tveye.tistory.com/6138




트로이와 미샤의 이야기에서


그라도프의 고문 - 사제 없는 고해,심문관의 독백, 혼자 다니는 사람 http://tveye.tistory.com/5348

(이건 스비제르스키와 벨스키가 '그라도프'의 고문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있어서.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미샤가 트로이에게 그라도프로부터 당한 고문에 대해 토로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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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짧은 메모>





나는 몇달 째 글을 쓰지 못했다. 생활도, 일도,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쳐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혹은, 에너지가 모자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새 업무를 맡고 나서는 전보다 더욱 쉽게 지친다. 마음 속으로는 언제나 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과 정말로 쓰는 것 사이에는 아주 깊고 또 아주 얕은 간극이 존재한다.



어제 이 수용소 이야기를 비롯해 본편들을 좀 추려 읽었다. 내가 꽤 긴 이 파트를 오늘 전문 발췌하고 또 연관된 예전 글들 링크도 줄줄이 올린 것은 아마도 그럼으로써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 들어서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이러한 행위가 유의미하다. 마치 이 폴더가 자신을 돌아보고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고 이따금 방문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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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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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주말이 왔다. 녹아내린 치즈처럼 철푸덕...




이번주에는 피곤해서 화정 안 올라가고 2집에서 쉬고 있다. 2집은 좀 우울하고 갇힌 느낌이기 때문에 기분 전환을 위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조금 내 보았다 :) 어제 길에서 모아온 빨강까망 열매들과 소나무 가지, 옆회사 구내식당에서 얻어온 분홍장미 등등(전부 다 얻어왔네 ㅋㅋ)









소나무 작은 가지랑 빨간 마가목 열매, 그리고 여름에 프라하의 앤티크 가게에서 싼 가격에 사온 '체코슬로바키아' 빈티지 찻잔이 은근히 잘 어울린다 :)






오전에 별다방에서 조식 먹은 후 근처 파이 가게까지 걸어가서 딸기 타르트 사왔다. 오늘따라 엄청 먹고팠음. 빨간색이 이쁘다~






그래서 찻잔도 빨간 찻잔 선택 :))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님 화보도 칼라풀하고 즐거운 곱사등이 망아지의 이바누슈카 화보로 :)









이건 아침. 10시 반 즈음 일어나 동네 최고 핫스팟 별다방 갔음. 사실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ㅠㅠ 이번주 내내 너무 혹사당하며 일해서...









차가운 샌드위치는 먹기 싫고, 따뜻한 건 별로 먹을 만한 게 없고(지난번 먹은 올리브 모짜 모찌는 별로였음), 별 기대 안했지만 하여튼 색깔이 예쁘다는 이유로 새로 나온 크리스마스 스콘을 먹어보았다. 녹차반죽이랑 쌀반죽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아예 기대 안 했음. 스콘을 쌀로 만들면 무슨 소용이 있어!







맛은 별로였다. 딱히 쌀이나 녹차 맛이 많이 나진 않았고 밀가루 스콘이랑 비슷했는데 사실 스타벅스는 스콘이 맛없는 편이라서... 하여튼 아침에 배채우려고 먹었다. 귤 한알 가져가서 같이 먹었음.



그래도 녹색 빨강이라 크리스마스 느낌은 좀 났다.





파이 가게에서 딸기 타르트 포장 기다리며. 조그만 트리가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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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차로 2집 내려왔다. 2집에서도 12월로 달력을 넘겼다. 달력 만들 때 12월은 가급적 파티 분위기나 화려한 사진을 넣는다. 여기 달력 12월은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광고 화보 찍었던 디아나 비슈뇨바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갈라 무대 앙코르 장면에서 장미꽃잎 폭포 떨어지는 장면이다. 장미꽃잎 폭포 아래 꽃돌이 슈클랴로프님도 있음. 오른쪽에서 세번째의 하얀 의상 입고 고개 쳐들고 계신 분 :)





기내용 작은 캐리어가 총 3개 있다. 하나는 옛날부터 있던 바퀴 두개짜리 손잡이 고장난 후진 놈, 하나는 약간 돈 좀 주고 샀던 놈, 나머지 하나는 최근 쥬인이 생일선물로 준 것이다. 그런데 그 세놈이 지금 모두 2집에 있는 관계로(화정 올라갈때는 주로 사무실에 가거나 국회에 가거나 병원에 갔다가 가므로 캐리어 끌고 가기가 어렵다) 오늘은 쇼핑백에 최소화한 짐을 넣어왔다. 마음이라도 좀 위안해보려고 아스토리야 호텔 쇼핑백에 넣어옴. 흑, 이거 아껴놓고 한번도 안쓰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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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티타임 사진과 스케치에서 썼듯 아침 일찍 기차 타고 내려와서 별다방에서 아침 먹고 2집 들어와 씻고 청소한 후 두어시간 가까이 이른 낮잠을 잤다. 자고 났더니 머리가 어찌나 아픈지... 더 자고 싶기도 했고... 차를 안 마신 상태라 그랬던 것 같다. 일어나서 끙끙대며 차를 우려 마셨더니 좀 정신을 차렸는데... 그러고 나니 어느덧 오후 네시... 으아아앙..



저녁을 먹고 나서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내려갔다 왔다. 브리타 간이정수기라도 살까 생각 중이다. 예전엔 집에 정수기가 있었는데 요금 아까워서 반환한 후 매주 생수를 마트에서 주문해 마시는데 내가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 이것도 만만치 않고, 또 페트병이 너무 많이 나온다. 매일 한두개씩 가지고 내려가 버리면 좋을 것을 게으른 나는 쌓고 쌓아서 비닐봉지가 터질때쯤 투덜거리며 이것들을 분리수거하러 내려간다. 종이쓰레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너무 쓰레기를 많이 양산하고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것 같아서 가책도 된다. 심지어 화정 집과 여기 2집 두곳에서 쓰레기 양산 중. 페트병 생수 안 그래도 안전성도 문제 많다는데 다시 브리타를.... (솟아오르는 러시아의 추억)




쓰레기 버리고 들어가는 길에 보니 오피스텔 입구 쪽 나무에 이렇게 조그만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어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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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악 월요병 대폭발 으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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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차로 2집 내려옴.


낮잠 자기 전에 애프터눈 티까지 성공...






기분전환 하려고 슈클랴로프님 화보 액자도 다른 사진으로 교체. 기념으로 바가노바 발레학교 그려진 찻잔 꺼내서...











오늘 별다방에서 아점 먹고 나오면서 사본 제주 감귤 치즈케이크. 흑, 기대 안 했지만 역시나 별로였음. 맛없고 느끼하고... 결국 남겼다.





지난번 러시아 갔을 때 얻어온 사바까.루 잡지. 디아나 비슈뇨바가 표지에 있어서 :)




오늘 바꾼 슈클랴로프님 화보. 왼편은 신데렐라의 왕자, 오른편은 돈키호테의 바질.




얼마전 별다방에서 샀던 빤짝이 티코스터. 빨간색도 있었는데 그건 나중에 사야지 했더니만 품절됨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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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늘 아침 10시. 2집 동네 최고 핫스팟 별다방...


귤은 내가 챙겨온 것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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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발췌하는 글은 a4 3장 정도로 꽤 짧은 장면이다. 에피소드 전체가 아니라 일부이고 실질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트로이와 미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에 이 장면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따로 올렸던 적이 있다. 그 링크는 글 아래에 달아보겠다.

 

 

배경은 1976년 초. 소련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트로이의 작은 아파트 안이다. 예전에 여러번 등장했던 볼쇼이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키로프 극장 게스트 안무가로 초빙된 직후이다. 일린은 문화국과 윗분들이 키로프로 밀어넣은 '모스크바' 안무가이므로 키로프 윗선에서는 당연히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사실 일린이 온 것은 미샤와 지나이다를 위한 작품을 안무하라는 미션을 받았기 때문인데 소설에서는 자세히 묘사하진 않았다. (..사실은 미샤를 모스크바로 낚아가려는 그쪽 윗분들과 볼쇼이 측의 밑밥깔기....)

 

 

하여튼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미샤는 일린과 그의 작품, 그가 무용수를 대하는 태도 등에 감명을 받는다.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미샤에게는 극장 내부 적들도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울리얀 세레브랴코프 라는 남자 무용수이다. 정통 소련 무용수, 고전적이면서도 늘씬하고 근육질이고 강건한 왕자님/혁명영웅 스타일의 미남자이다. 미샤보다는 10여년 이상 선배이고 공훈예술가인데 미샤가 입단했을 때부터 그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해 많이 괴롭혔다. (저수지에도 빠뜨리고...) 열받은 지나가 그의 여자친구인 옥사나의 허리를 비틀어 쥐어짠 적도 있음.

 

 

발췌된 부분은, 일린이 새로 안무해주는 작품인 '백야' 연습을 하다가 트로이의 집에 들른 미샤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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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화보는 아르춈 옵차렌코. 볼쇼이 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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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탄카는 미샤가 일린을 부르는 애칭이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여기서 일린이 안무하는 춤은 유명한 나타샤의 첫 무도회 장면이다.

 

 

고리키는 그 '막심 고리키'이다.

 

 

프로파간다 발레는 말 그대로 프로파간다 목적을 띤 발레이다. 소설도 그림도 발레도 연극도 영화도 이런 거 많았다. 소련 시절 유명한 발레들 중에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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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고개를 젖히며 어깨를 한쪽으로 돌렸다. 작년에 다쳤던 곳이 계속 아픈 것이 분명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몇 차례 어깨를 돌리더니 손가락으로 아픈 부위를 꾹꾹 눌렀다. 트로이는 끓는 물을 채운 보온병을 스팀 타월로 둘둘 말아 그에게 건네주었다. 미샤는 티셔츠를 벗더니 어깨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수증기 때문에 흰 살갗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트로이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붉게 달아오른 어깨와 팔 위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미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오늘 스탄카가 세레브랴코프를 자기 세션에 출입 금지시켰어. ”

 

 


 “ 무슨 세션? 백야에 그 작자도 나와? 그 나스첸카 첫사랑 역이야? ”

 

 “ 아니, 백야가 메인이긴 한데 45분 정도 밖에 안돼. 하루 공연 무대로는 모자라지. 짧은 거 두 개가 더 있어. 하나는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지. 그건 나타샤의 독무야. 나머지 하나는 고리키의 인생을 모자이크한 프로파간다 발레고. 어쨌든 당국의 비위를 맞춰주긴 해야 하니까 스탄카가 끼워넣은 거야. 오늘 그 두 개 오디션을 봤거든. 연차와 급수에 관계없이. ”

 

 “ 백야는 너와 지나이다로 정해진 거야? ”

 

 “ 응. 오디션 없이. ”

 

 “ 세레브랴코프는 왜? ”

 

 “ 그 고리키를 추고 싶어 했으니까. 그자는 스탄카를 싫어하지만 어쨌든 포노마레바가 밀어주고 있으니까 같이 작업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 게다가 고리키 역이라면 구미가 당겼을 거고. 얘기했잖아, 프로파간다 발레로 뜬 놈이라고. ”

 

 “ 그럼 일린에게 건방지게 굴 리가 없잖아. 왜 출입 금지당한 거야? ”

 

 “ 백야 때문에 나도 그 방에 같이 있었거든. 오디션 보러 온 세레브랴코프는 그것 때문에 꼭지가 돌았지. 난 이미 역을 받았으니까. 그 작자는 해석도 괜찮았고 춤도 꽤 잘 췄어. 아마 곱게 나갔으면 스탄카가 고리키를 줬을 거야. 근데 그 얼간이가 나가면서 내 쪽으로 왔지. ”

 

 “ 그리고? ”

 

 “ 백야 하나로는 성이 안 차느냐, 나타샤 역 때문에 온 것 같은데 굳이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역을 받을 거라고 비아냥댔지.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토슈즈를 신을 수 있을 테니 좋겠다고 하던데. 넌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고 했지만 그자는 아주 상상이 잘되는 모양이었어. ”

 

 

 미샤가 휘파람을 불었다.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 재수 없게 스탄카가 그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정색을 하면서 세레브랴코프를 내쫓았어. 앞으로 자기 세션에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했지. 고리키는 레냐에게 줬고. ”

 

 “ 나타샤는? ”

 

 “ 니넬한테 줬어, 아마 넌 걜 모를 거야. 작년에 들어온 애라서. 설마 스탄카가 정말 그걸 나한테 줬을 거라고 생각했어? ”

 

 “ 추고 싶지는 않았어? ”

 

 “ 글쎄, 백야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드레스는 더 싫지만. 솔직히 말하면 추고 싶긴 하지. 그 작품 모스크바에서 봤었거든, 아주 재미있는 역이야. 하지만 세레브랴코프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스탄카가 아니었다면 난 그때 화를 내야 했을지도 몰라. 그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

 

 “ 그럼 화가 나지 않았단 말야? 그렇게 비열하게 구는 놈한테? ”

 

 “ 좀 열받긴 했지. 근데 어차피 난 그놈을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니까 크게 다를 것도 없었어. 내가 열받는 것과 대놓고 화를 내는 건 좀 다른 거야.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으면 입장이 아주 이상해져. ”

 

 “ 일린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싸웠겠네. ”

 

 “ 한 대 갈겨야 했겠지. 포노마레바와 놀아나서 역을 따냈다는 것과 계집애 역을 추려고 안달이 났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

 

 

 타월로 싼 보온병을 어깨 위로 굴리면서 미샤가 바닥에 벗어놓았던 코트 주머니를 한 손으로 뒤져 담배를 꺼냈다.

 

 

 “ 끊었던 거 아냐? ”

 

 “ 어차피 세 개비 이상 피우지도 못하는데 끊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알콜이랑 똑같아. ”

 

 “ 몸에서 안 받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 건강에 좋지 않을 테니까. 춤에도 방해가 될 거야. ”

 

 


 “ 춤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몸을 학대하는 거야. 발끝으로 서고 근육을 비정상적으로 잡아 늘이고 뼈가 부러질 만큼 휘어대는 거라구. 그깟 술 몇 잔, 담배 몇 개비 따위 더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어. ”

 

 


 “ 춤 때문에 머리가 아프거나 필름이 끊기지는 않잖아. ”

 

 


 “ 춤도 가끔 그래. ”

 

 

 

 미샤가 보온병을 내려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광대뼈 아래로 뺨이 살짝 패이며 콧대가 두드러지게 솟아올랐다. 트로이는 라이터와 보온병을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 미간과 콧등에 입술을 가져갔다. 미샤는 잠시 호흡을 멈췄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연기를 훅 뿜어버렸다.

 

 

 “ 미안, 간접 흡연시켜서 ”

 

 


 “ 전혀 미안한 것 같지 않은 표정인데. ”

 

 


 “ 어차피 넌 나보다 열 배쯤 더 마시잖아. ”

 

 

 트로이는 그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카펫에 구멍이 나든 말든 개의치 않고 한 모금 밖에 피우지 않은 담배를 비벼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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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음 이야기를 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은 바로 다음은 아니고... 위의 분위기대로... 트로이와 미샤의 19금 장면이 조금 있는데 그부분 지나간 후.... 세레브랴코프와의 언쟁이 생각보다 깊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미샤가 평소에 잘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를 토로하고 자신의 춤과 교조주의, 강령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다. 그 링크는 아래 :

 

http://tveye.tistory.com/4720 : 교조주의, 강령으로서의 예술, 세 개의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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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얀 세레브랴코프와 미샤의 악연에 대해서는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 세레브랴코프 쪽에서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편이긴 했다만... 하여튼 페름에서의 싸움과 저수지 사건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 링크를 각각 아래. 하나는 트로이와의 대화, 나머지 하나는 미샤의 후원자인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었던 단편에서 가져왔다. 둘다 같은 페름 투어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미샤는 트로이에게는 저수지 사건만 얘기하고 마로조프에게는 치고받고 싸운 얘기만 한다.

 

http://tveye.tistory.com/3594 미샤의 첫 번째 시즌, 돈키호테, 축구팀과 군대처럼

 

http://tveye.tistory.com/5469 미샤의 신입 시절, 싸움의 이유

 

 

맨날 당하는 미샤가 답답해서... 세레브랴코프의 여자친구이자 역시 미샤의 적인 옥사나가 패악을 부리자 발끈해 그녀를 혼내주는 정의의 여자사람 친구 지나이다의 이야기도 있었음. 그건 아래

 

http://tveye.tistory.com/6176 의리 넘치는 파트너 지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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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한 장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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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예전에 이 폴더에 미샤와 그의 극장 동기 레냐(내 약혼자 아님), 그리고 궁전광장과 백야,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단편 Illuminated wall 전문과 배경 사진들을 올린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3385)



그 단편은 아주 오래 전,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향수를 담아서 썼던 글인데 초창기에 내가 구상했던 미샤가 등장했다. 거기 등장하는 미샤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미샤와는 많이 닮은 동시에 약간은 다른 면도 있다.



그 단편은 1975년 여름, 소련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권력자의 별장에 춤추러 오라는 명령을 받은 미샤는 그것을 어기고 백야의 레닌그라드 거리를 쏘다니고 궁전광장에서 춤을 춘다. 그때 그는 동료인 레냐에게 자신이 푸쉬킨의 원작을 바탕으로 안무를 할 거라고 얘기하고 광장에서 그 춤의 일부를 보여준다. 그 작품은 푸쉬킨의 '루슬란과 류드밀라'였다. 나의 옛 단편에서 미샤는 루슬란의 적수인 악당 로그다이의 춤을 보여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미샤가 처음으로 안무하게 되는 발레는 그 '루슬란과 류드밀라'였다. 루슬란과 로그다이, 파를라프, 라트미르 4인의 기사들만 등장하는 40분짜리 단막 발레.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고 미샤를 불러낸 후, 나는 장편 하나를 썼다. 미샤의 친구이자 애인인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오는 꽤 긴 소설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미샤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안무하게 했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미샤가 그 작품을 안무하는 과정 일부와 작품을 실제로 무대에 올리는 장면이다. 이 소설은 발레계 인물이 아닌 트로이의 시점에서 전개되므로 안무 과정 자체에 대해서는 여기 나온 정도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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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슬란과 류드밀라는 푸쉬킨이 불과 스무살때 썼던 근사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러시아 동화로 읽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도 잘 읽어보면 그냥 동화는 아니다. 꽤나 멋지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해 아주 간단한 줄거리(스포일러 있습니다) : 영웅 루슬란이 아름다운 왕녀 류드밀라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 수염 기른 마법사 체르노모르가 나타나 류드밀라를 납치한다. 류드밀라의 아버지는 비탄에 빠져 루슬란을 탓하고, 류드밀라를 구해오는 남자에게 그녀와 결혼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4명의 기사가 길을 떠난다. 주인공인 루슬란. 음침하고 파괴적인 로그다이. 좀 비겁한 파를라프. 세속적이고 선량한 라트미르. 이야기는 이 네명의 모험을 번갈아 보여주고, 동시에 마법사의 성에 갇혀버린 류드밀라의 모험도 같이 그려낸다(사실 류드밀라 얘기가 제일 재미있고 생기넘친다. 푸쉬킨은 생기 넘치는 씩씩한 아가씨 묘사를 참 잘한다) 이러저러하여 루슬란은 결국 마법사를 물리치고 류드밀라를 구해낸다. 그 와중에 루슬란을 죽이려고 달려들던 로그다이는 결투에 패해서 죽고(물귀신에게 영혼 끌려감 ㅠㅠ), 라트미르는 온갖 여색과 사치를 즐긴 끝에 도를 깨쳐서 소박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고, 비겁한 파를라프는 마녀의 도움으로 막판에 루슬란을 궁지에 몰아넣고 류드밀라를 탈취하려다 결국 실패하게 된다.



미샤는 이 재미나는 이야기 전체를 어린이 발레처럼 안무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가 어떻게 안무했는지는 아래 발췌본에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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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도입부에 언급되는 알렉산더 트로치는 영국 현대 작가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는 전에 올린 적이 있다.



보리스 아사예프는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 이반 노비코프는 볼쇼이 발레단 행정감독이다. 물론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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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화보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은 David Paitschad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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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샤는 런던에 가기 전에 딱 한번 트로이의 집에 찾아왔다. 알렉산더 트로치의 소설과 오스카 와일드의 ‘레딩 감옥의 발라드’ 때문이었다. 트로치 소설에 대해서는 30분 정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맨 처음 함께 읽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얘기가 잘 통했다. 미샤는 레딩 감옥의 발라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트로이에게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달라고 청했다. 그는 와일드 작품을 가져왔을 때는 항상 그랬다.



 “ 낭송 테이프 구해다줄까? ”




 “ 난 네가 읽어주는 게 더 좋아. ”



 미샤는 잠시 소파에 앉아 트로이가 시를 읽어주는 것을 듣다가 창가로 가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 적이 없는 동작이었지만 아마 백야 안무의 일부일 거라고 생각하며 트로이는 계속해서 시를 읽었다.



 한참 읽다가 트로이는 입을 다물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큰 소리로 물었다.



 “ 그게 뭐야? 그게 춤이야? ”



 미샤는 그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계속해서 움직였다. 전신을 너무 지독하게 경련하며 바닥에 몸을 굴리고 있어서 트로이는 순간 그가 간질 발작이라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질렸다.



 “ 어디 아파? ”



 무릎으로 바닥을 찧어대면서 미샤가 말했다.



 “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읽어. ”


 “ 그게 백야야? ”


 “ 아니, 루슬란과 류드밀라야. 그냥 읽어. ”


 “ 왜 와일드를 들으면서 푸시킨 시를 춰? ”


 “ 도움이 돼. 제발 읽어. ” 
 




 그래서 트로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계속 읽었다. 나중에는 아예 등을 돌리고 읽었다. 낭송을 끝내고 뒤를 돌아보니 미샤가 소파에 거꾸로 누워 머리를 바닥에 댄 채 손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 일린의 새 작품이야? ”




 “ 내가 만드는 거야. 좀 됐어. ”




 “ 안무를 한다고? ”




 “ 응, 5월에 올릴 거야. ”




 “ 전혀 몰랐다, 그쪽에도 관심 있는 줄은. 일린 때문에 자극받았어? ”




 “ 아니, 작년 여름에 골자는 잡았는데 계속 정신이 없어서 손 놓고 있었어. ”




 “ 지금이 제일 바쁜 거 아냐? ”




 “ 바쁘지. ”




 미샤는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다리를 길게 뻗고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셔츠가 말려 올라가며 등이 반쯤 노출되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 사이로 척추 마디들이 가지런하게 튀어 올랐다. 트로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 뼈가 다 불거지네,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냐? 잘 챙겨먹고 다녀. ”




 “ 바빠서 그래. 백야 올리고 나면 나아질 거야. ”




 “ 백야에 런던도 모자라서 그 오싹한 춤까지. ”




 “ 별로 오싹하지 않아, 아까 그 부분만 좀 그래. ”




 “ 무슨 장면이었는데? ” 




 “ 비겁한 짓이 일어나는 장면. 그래서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거야. ”




 “ 루슬란과 류드밀라라며? ”




 “ 아, 근데 류드밀라는 안 나올 거야. 아까 그건 파를라프의 춤이야. ”




 “ 뭐, 자고 있는 사람 칼로 찌르고 여자 뺏는 그 놈? ”




 “ 응, 기분 나쁘게 출 만하지? ”
 




 트로이는 창가로 가서 전날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사왔던 치킨 샌드위치와 며칠 동안 굴러다니고 있던 오렌지를 가져왔다.



 “ 좀 먹어라, 맛은 별로 없을 테지만. ”




 
 미샤가 샌드위치를 집어 들었다. 포장지를 벗기고 반으로 쪼갰지만 입에 가져가지는 않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 왜, 변했어? 차가운데 놔둬서 괜찮을 텐데. ”




 “ 있다가 먹을게. ”




 “ 그럼 오렌지라도 먹어. ”




 미샤가 오렌지 껍질을 까서 먹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기계적으로 먹는 게 분명했지만 어쨌든 뭔가를 입에 넣고 있었으므로 트로이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얼굴이 더 갸름해져서 얼핏 돌아보면 우물처럼 깊은 눈만 보일 지경이었다. 한동안 가위질도 하지 않았는지 길게 자라난 머리칼이 귀를 덮고 목덜미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구겨진 셔츠와 낡은 청바지를 입고 바닥에 앉아 오렌지를 먹고 있는 그 야윈 모습을 보니 근육질의 클래식 무용수라기보다는 미국 음악 잡지에나 나오는 깡마른 락 가수에나 어울릴 것 같았다. 저질스럽고 별 뜻도 없는 가사로 노래하고 기타를 치고 가죽옷을 입고 그루피들과 난잡하게 뒤엉키고 타락한 자본주의 제국의 소산인 마약이나 찔러 넣는 인간들. 그러나 미샤 뿐만 아니라 그와 갈랴와 이고리, 다른 친구들도, 심지어 알리사까지도 그자들의 음반을 모았다.



 “ 일린과는 그래도 잘 맞는 것 같네. 이제 집에도 잘 들어가고. ”



 트로이는 자신이 왜 그 이름을 입에 올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스타니슬라프 일린을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비이성적인 질투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샤를 볼 때마다 그 조그맣고 사근사근한 남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스탄카는 좋아. 얘기가 잘 통해. ”




 “ 지나가 불편해 하지 않아? ”




 “ 지나는 남자들과 잘 지내. 나하고도 사는데 뭐. ”




 “ 그 사람은 혼자 온 거야? 가족은 없어? ”



 그는 차마 ‘그 자식하고도 같이 자고 있어?’ 라고 묻지 못했다.



 미샤는 그의 소리 없는 질문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하긴 알아차렸어도 내색하지 않을 게 뻔했다.



 “ 혼자 왔어. 공연 날 모스크바에서 애들이 올지도 모르지만. ”




 “ 애들? 결혼했어? ”




 “ 했었지, 두 번. 애들은 첫 부인한테서 난 거고. 큰 애가 벌써 열 살인가 그럴 걸. ” 




 “ 별로 애 아버지처럼 안 보이던데. ”




 “ 뭐 자기가 키우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바가노바에서 특강해주는 거 보니까 어린애들 잘 다루던데. ”




 
 그래서 미샤가 고집을 부려도 잘 받아넘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일린이 이성애자라는 사실에 희미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 지금 안무하는 그 춤도 일린이 도와줘? ”




 
 미샤가 반쯤 먹은 오렌지를 남은 껍질에 싼 채 샌드위치 옆에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씨앗을 두어 개 뱉더니 바닥에 놓고 무심하게 굴렸다.



 “ 아니. 스탄카와 나는 많이 달라. ”




 “ 잘 맞는 줄 알았는데? ”




 “ 스탄카가 잘 맞춰주는 거지. 춤에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 ”




 “ 일린이 감상적이라는 거야? ”



 미샤가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 아, 예리한데. 어떤 사람은 솜사탕처럼 부드럽다고 했지. ”



 물론 트로이는 마로조프와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백야 자체가 감상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소설이잖아. ”




 “ 음, 스탄카가 그런 쪽을 좋아하긴 하지. 착하고 밝아, 사람을 잘 믿고 포용력도 있고. ”




 “ 그럼 왜 페트루슈카는 그렇게 만든 거야? ”




 “ 나한테 맞춰준 거지. 페트루슈카는 그 사람 원래 작업과는 색깔이 많이 달라. ”




 “ 난 네가 그렇게 우울한 걸 추는 게 싫어. ”




 미샤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 낯설고 쓸쓸하게 보였다. 종종 그 얼굴에는 따뜻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세공된 짐승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표정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아니라 세월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사원의 유물처럼 보였다. 트로이는 그런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막 트로이가 오한으로 몸을 움츠렸을 때 미샤가 다가와 그의 이마 위에 입을 맞췄다. 부드럽게 머리를 쓸면서 뺨을 비볐다. 
 


 “ 런던 갔다 와서 봐. ”



 미샤가 외투를 껴입고 혹한의 거리로 나간 후 트로이는 천천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실 바닥에는 반쯤 먹은 오렌지, 두 개의 매끄러운 씨앗, 그리고 반으로 쪼갠 채 입도 대지 않은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소파 팔걸이에는 미샤가 잊고 간 흰색 울 스카프가 걸쳐져 있었다. 그는 차나 커피도 없이 샌드위치를 모두 먹어치우고 남은 오렌지 반쪽도 먹었다. 그리고 두 개의 오렌지 씨앗도 알약처럼 털어 넣은 후 씹지 않고 삼켰다.



 그날 밤 그는 그 울 스카프를 두르고 잤다. 무겁게 밀려드는 야생 꿀 냄새를 맡으면서. 꿈속에서 그는 암청색 단추가 세 개 달린 흰 스웨터 위로 짙은 녹색 목도리를 느슨하게 늘어뜨린 채 눈보라와 안개 속을 걷고 있는 미샤 야스민을 보았다.




 ...




 5월에 미샤는 안무가로 데뷔했다. 일린이 총연출을 맡아 세 개의 모던 발레 작품을 소개한 ‘새로운 발레의 밤’에서 마지막 순서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올렸다. 막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강력한 후원자들이나 팬들조차도 미샤가 안무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뛰어난 무용수와 뛰어난 안무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안전한 데뷔 방법은 유명한 원작을 간단하게 손봐 재안무한다거나 짧고 서정적인 음악을 써서 무용수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가벼운 소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샤 야스민은 4명의 젊은 무용수를 기용해 팽팽한 플롯의 40분짜리 드라마를 만들었다. 가벼운 음악 대신 보로딘과 무소르그스키를 사용했고 순수한 움직임 자체를 위한 동작은 전혀 쓰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모든 움직임은 철저하게 주제와 플롯에 따라 흘러갔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샤의 첫 안무작이 일린의 스타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지만 막상 무대에 올라온 작품은 완급 조절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40분 내내 격정적으로 내달렸다. 그 작품은 잘 짜인 연극처럼 시종일관 관객들의 감정을 철사처럼 죄어대며 흥분 상태로 몰아갔다. 그 무대에서 부드러운 로맨스나 우아한 감상주의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미샤는 젊은 안무가가 빠지기 쉬운 무모하고 비논리적인 실험주의도 피해갔다. 독설가인 루바노프스카야조차 ‘매우 성공적인 데뷔작’이라는 표제와 함께 미샤가 소위 ‘새로운 춤’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의미한 연출가의 자기 독백에 매몰되지 않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알맞은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평가했다.



 미샤는 푸시킨의 그 유명한 서사시 전체를 다루지 않았다. 수염 기른 마법사 체르노모르도, 동굴의 은자와 황야의 거대한 머리도, 마녀 나이나도 등장하지 않았다. 가장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제목과는 달리 미샤의 작품에 류드밀라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미샤는 오직 네 명의 기사들만을 골랐다. 루슬란, 로그다이, 라트미르, 파를라프. 납치된 류드밀라를 찾아 떠난 경쟁자들. 주인공은 여전히 루슬란이었고 그의 존재는 작품 전체의 축을 이루고 있었지만 미샤는 4명의 인물들에게 동등한 무게를 부여했다. 격정적인 2인무와 4인무, 독무를 통해 발레는 그 인물들에게 내재된 감정의 본질을 그렸다. 전형적인 영웅 주인공인 루슬란의 용기와 고결함, 파멸로 치닫게 될 로그다이의 증오와 분노, 환락에서 벗어나 소박한 삶을 택하는 라트미르의 중용과 우정, 그리고 언제나 도망치면서 기회를 노리는 파를라프의 비겁함과 공포.



 그건 자칫하면 매우 작위적이고 추상적인 묘사로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무대를 보면서 트로이는 왜 미샤가 자신은 일린에게 의지하지 않는다고 그토록 단호하게 얘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샤에게는 추상적인 개념과 감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형상화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오랫동안 트로이는 미샤의 그 능력이 자신의 육체와 움직임에 한정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 날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보면서 트로이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샤는 인간 내부로부터 실질적인 움직임을 끄집어내고 형식을 부여할 줄 알았다. 그건 창작자의 능력이었다. 관객들은 리브레토가 적힌 팸플릿을 읽지 않고도 루슬란과 로그다이, 라트미르와 파를라프가 왜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지, 그들이 표출하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건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날아오는 메시지들이었다.



 미샤는 루슬란을 추지 않았다. 고전적이며 우아한 레오니드 핀스키에게 그 역을 주었다. 2년 선배이자 성격 연기에 능한 안톤 볼로호프에게 까다로운 파를라프 역을 맡겼고 약간 수도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잘생긴 이오시프 본다렌코에게 라트미르를 추게 했다. 미샤 자신은 로그다이를 췄다. 트로이는 그 어둡고 파괴적인 배역이 미샤에게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무대 위에서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역을 출 때마다 관객들이 그토록 강력한 열광에 빠져드는 것이 싫었다. 루슬란과의 격투에서 살해당하는 그 검은 기사의 최후가 너무나 냉혹하고 처참해서 트로이는 가슴 깊이 공포를 느꼈다. 그 두려움이 지나치게 실질적이고 불쾌하게 와 닿았기 때문에 며칠 후 미샤를 만났을 때 왜 너는 항상 무대에서 죽는 역을 고르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 그런 역은 몇 개 없는데... 고전 레퍼토리는 아사예프가 맡기는 거고. ”




 “ 네가 안무한 것도 그랬잖아. 로그다이를 췄잖아. ”




 “ 음, 난 사실 파를라프를 출까 했어. 근데 아사예프가 루슬란을 추든가 로그다이를 추지 않으면 무대에 올려주지 않겠다고 협박했어. 루슬란은 레냐에게 주기로 약속했었거든. ”




 “ 넌 파를라프를 추기엔 너무 눈에 띄어, 어울리지도 않고. 관객들도 이입이 잘 안됐을 걸, 등 뒤에서 칼을 꽂는 겁쟁이 야스민은. ”




 “ 언제나 비겁한 자가 끝까지 살아남아. ”



 미샤는 예의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하얀 알약을 꺼내 삼킨 후 덧붙였다.



 “ 하긴 로그다이를 제일 먼저 안무하긴 했어. 가장 쉬웠고. 제일 어려웠던 건 라트미르였어. 이오시프가 아니었으면 스탄카에게 춰달라고 했을지도 몰라. 이젠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서 어려웠겠지만. ”




 발레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호소력 있게 표출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흘러갔다. 종반부에서 로그다이는 살해당해 어두운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라트미르는 우정의 키스와 함께 루슬란과 작별했다. 주인공 루슬란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류드밀라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한 채 환희에 차 퇴장하고 어둠이 가득한 무대 위에는 슬금슬금 기어나와 주변을 배회하는 파를라프만이 남았다.



 미샤가 류드밀라를 등장시키지 않은 것은 일린이 나스첸카의 첫사랑을 생략했을 때와는 달리 매우 영리한 선택이라는 평을 받았다. 루바노프스카야는 예의 그 평론에서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류드밀라의 존재야말로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썼다. 그녀는 보통 미샤에게 적대적인 입장이었으므로 공연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세레브랴코프는 믿었던 루바노프스카야의 호의적 평에 당황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지적한 것은 미샤가 데뷔작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가끔 과격한 연출을 선보였다는 것뿐이었다.



 관객들은 그 작품에 매료되었다. 젊은 무용수의 첫 안무작에는 과분할 정도로 열정적인 호응이 쏟아졌다. 꽤 많은 사람들이 보리스 아사예프에게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계속해서 키로프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썼다. 아사예프는 그 반응에 흡족해하며 6월말 백야 축제에 그 작품을 다시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반 노비코프는 그리고로비치와 함께 오직 그 공연을 보기 위해 5월에 다시 레닌그라드에 들렀는데, 아사예프를 구슬려 크레믈린 축제와 볼쇼이 무대에서 각각 한 번씩 루슬란을 올리기로 했다. 볼쇼이에서 밀어 넣은 일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보리스 아사예프로서는 ‘우리 골칫거리’가 ‘우리 자랑거리’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미샤에게 괜찮은 작품을 하나 더 안무한다면 다음 시즌 무대에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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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발췌본은 사실 두가지 장에서 각각 가져왔다. 앞부분의 트로이와 미샤의 대화, 그리고 뒷부분의 미샤의 데뷔 이야기 사이에는 미샤의 런던 공연과 알리사의 이야기, 그리고 일린이 미샤와 지나를 위해 안무해준 백야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여기서는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대한 이야기만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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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샤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안무에 대해서는 전에 세가지 정도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3385 : 빛나는 벽(illuminated wall) 전문.



http://tveye.tistory.com/5589 : 벨스키와의 면회
(여기서 미샤가 '그 순진하고 무해한 루슬란'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http://tveye.tistory.com/6138  : 별장의 스비제르스키와 미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미샤의 수첩을 훔쳐본 후 그의 춤연습을 보면서 루슬란과 류드밀라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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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와 미샤의 대화에 등장하는 '페트루슈카'는 일린이 미샤의 영국 무대를 위해 안무해준 솔로이다. 포킨의 원작을 각색해 꼭두각시 인형 페트루슈카의 독백 장면만 재안무한 작품인데 물론 이것도 내가 만든 버전임. 미샤가 일린과 함께 이 작품을 연습하는 장면과, 영국에서 이 공연을 보고 알리사가 소회를 밝히는 장면을 각각 발췌한 적이 있다. 링크는 아래.


http://tveye.tistory.com/6544 페트루슈카를 연습하는 미샤와 일린


http://tveye.tistory.com/5178 알리사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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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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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2집에 내려왔다. 오후의 차 한 잔.







지난주에 내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이 깜짝선물했던 빨간 장미꽃다발이 나를 맞이하여 주었다. 2집에 들어가면 장미가 있다는 사실 덕에 들어올 때 덜 우울했다.



장미꽃다발이 꽤 컸기 때문에 줄기 아래를 잘라내고 시든 잎사귀들도 쳐낸 후 3등분 해서 각각 꽃병과 페리에 병과 아주 조그만 푸딩 유리병에 나누어 꽂았다. 2집은 원룸이지만 책상 위에도, 침대 곁 테이블 위에도, 텔레비전 옆에도 붉은 장미가 자리잡고 있게 되었다. 붉은 장미는 신이 내린 완벽한 선물 같은 존재이다.







기분 전환하고 싶어서 초여름에 프라하 갔을 때 에벨에서 사왔던 조그만 잔 꺼냈음. 원래는 에스프레소 잔이지만 난 그냥 찻잔으로도 쓴다. 조금씩 조금씩 부어서 마신다.


















장미꽃과 꽃돌이 슈클랴로프님은 항상 잘 어울림 :)





이건 오전에 별다방 들렀을 때. 무료 음료 쿠폰 기한이 오늘까지라 들렀다.





집에서 싸온 빵 약간과 바나나, 그리고 차이 티로 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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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가를 하루 내고 진료를 받으러 다녀왔다. 다음주말에 여행을 가야 하므로 일주일 정도 당겨서 예약을 잡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사이에 인사발령 빅엿으로 많이 심란해져 있었으므로 차라리 잘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발령과 그로 인한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결국 감정을 참지 못하고 임원에게 '당신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어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일 등을 이야기했다. 상사가 나에게 분노가 너무 많으니 그것을 누그러뜨리고 가서 조직문화를 바꾸라 했을때 더욱 화가 났던 이야기도 했다. 의사는 내가 지금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이 미성숙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임원이 전화를 걸어왔을때, 그의 말을 일단 들은 후 조곤조곤 얘기를 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너무 화가 나고 작년의 상처가 도로 터지는 듯해서 그렇게 할수가 없었다. 자신이 미성숙하게 행동했다는 건 알지만 다시 그 순간이 오면 나는 똑같이 말할 거라고 했다. 오히려 더 솔직하게 화를 내지 못한 게 안타까운 심정이라고도 말했다. 의사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 한번으로 족하고 다음에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의사에게서 '임원에게 그렇게 쏘아붙인 건 네가 잘한 일이다'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미성숙하다고 인정했을때 '사실은 그렇지 않고 오죽하면 네가 그랬겠니, 네가 그렇게 행동한 건 잘한 거다'라는 반응을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나이를 먹어도 아직 어린애 같다니까.

 

 

자신이 계속 화가 나 있고 속상하고 억울한 느낌이 든다는 것, 그리고 그건 발령의 부당한 절차와 더불어 격무 자리에 또다시 땜빵처럼 던져졌다는 사실, 소모품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작년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 더욱 화가 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의사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차차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는 나를 '쟤 이제 괜찮으니 굴리자'라고 판단하고 다시 격무부서로 보낸 회사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일하다 너무 힘들어지거나 필요하다면 진단서를 다시 써줄테니 매주나 2주마다 병원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다음 진료는 한달 후로 잡았음. 여행도 가야 하고, 인수인계도 받고 새 업무도 시작해야 하고 국정감사도 겹쳐서 ㅜㅜ)

 

 

2주마다 와도 된다고 하는 의사의 말이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심란하기도 했다. 지난번 진료때 나는 나아진 것 같으니 약을 줄이고 싶다고 했고 의사는 당분간 줄이지 말자고 했었지...

 

 

이 썩을놈의 회사... 날 좀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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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진료라서 빈속으로 지하철 타고 멀리 시내까지 나갔었다. 끝나고 근방에서 뭔가를 먹을까 하다 귀찮아서 그냥 다시 지하철 타고 화정으로 돌아왔다. 티푸드를 사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한시 즈음이었다. 반나절 동안 화정에서 강남까지 횡단하고 다녀온 것이다. 배가 고팠지만 입맛은 없었다. 그래서 라면을 끓여먹었고(저녁보단 점심때 먹는게 낫겠지 싶어서) 차를 우려 마셨다. 책을 읽고 누워서 좀 쉬었다.

 

 

연휴 여행용 가방을 약간 꾸렸다.

 

 

내일은 쥬인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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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말에 만들었던 10월~ 내년 9월 달력이 도착했다. 슈클랴로프님 사진으로 편집해 만들었다.

 

 

 

 

 

이건 맨 뒷장. 여기엔 디아나 비슈뇨바 사진을 넣었음.

 

그리고 서비스로 끼워주는 엽서달력 한장이 있어서 거기에는 루돌프 누레예프 사진을 넣어서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화보이다.

 

 

이건 달력 표지. 지젤의 알브레히트를 추는 슈클랴로프님.

Posted by liontamer

 

일요일 저녁이다. 언제나처럼 일요일은 토요일보다 좀 늦게 일어나게 되고, 또 토요일보다 금방 날려버리게 되는 날이다.

 

자다깨다 엄청 뒤척였다. 꿈을 복잡하게 꾸었다. 쫓기기도 하고 날아올라가기도 했다. 도망치기도 하고 오직 개념으로 상상해 내가 쥐고 있다고 구현해내는 총을 든 채 실재하지도 않고 물질적으로 장전되어 있지도 않은 총알을 발사했다. 총을 쏘면서 '총알이 나갈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되뇌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그게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날아서 도망갔다.

 

..

 

 

어제는 바깥에 나가 햇볕 쬐고 걷고 자질구레한 것들 지르면서 마음을 많이 진정시켰다. 그러자 오늘은 분노는 거의 가라앉고 그 다음 단계인 울적함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전처럼 굉장히 힘들고 괴로운 정도는 아니다. 그냥 좀 우울하고 기분 나쁜 정도이다.

 

아마 이번주에 가서 부서 사람들 만나고 새로 가게 될 부서 사람들과도 이야기 나누면 좀 나아질 것이다. 새로 가게 될 곳의 부서장과도 잘 아는 사이이고 좋은 분이기도 하다. 그저 임원이나 인사 쪽 간부들을 마주하면 다시 분노가 치밀어서 확 터뜨려버릴 것 같아 그게 좀 걸릴 뿐이다.

 

갑작스런 인사발령 소식에 부서 동료들과 후배들이 많이 슬퍼하고 또 같이 화를 내고 어쩔줄 몰라 해주었다. 진심어린 톡과 문자와 전화들이 왔다. 고마웠다.

 

...

 

 

오늘은 늦게 일어나서 점심에 가까운 아점을 먹은 후 차를 마시면서 옛날 비정상회담을 다시보기로 좀 보고 쉬었다. 그리고 화정 집의 달력이 올해 9월로 끝났기 때문에 포토사이트에 들어가서 10월부터 1년치 달력을 좀전까지 편집해 만들었다. (언제나처럼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님 스페셜) 아마 주중에 받아볼 수 있을 듯.

 

 

예전에 만들었을땐 보너스로 몇장을 더 넣어줬기 때문에 12월로 끝나지 않고 점점 3월, 7월, 9월 등으로 늘어났는데 요즘은 이 보너스를 안 준다 -_- 전에는 엄청 열심히 레이아웃도 잡고 사진들도 잘 편집해서 넣었는데 갈수록 귀찮아져서 그냥 한달에 사진 한장으로 때워넣었다. 한장이든 두장이든 네장이든 슈클랴로프님은 미의 화신이니 뭐 어때!

 

 

 

(특히 마음에 들어서 집어넣은 화보.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에서 찍은 사진. 사진사는 david paitschadse. 출처는 슈클랴로프님 공식 홈페이지 shklyaro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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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가는 게시판에 로르샤흐 테스트 링크가 올라왔다. 엄청 옛날에 해보고 안해봤는데 지금은 어떨지 궁금해서 해봄.

 

링크는 여기 : http://rorschach-inkblot-test.com/

 

내 결과는 이렇다. 이게 너무 옛날식 테스트라 귀에 걸리기도 하고 코에 걸리기도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을 보면 좀 맞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mbti 테스트와도 조금 부합하는 부분이 있고.

 

 

(노란 밑줄 그어봄 :  그래서 내가 회사를 확 못 그만두고 돌아와서 이렇게 낑낑대고 있는 것이야!!!!)

* 이게 진짜 심리상담 툴을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고 온라인으로 하는 거라 재미 성격이 더 강하다. 딴 사람들 결과 보니까 다 비슷비슷함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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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출장 끊어놓고 오후 늦게 2집 내려갈 건데... 이 와중에도 내일까지 제출하라는 자료들 생각이 나서 그걸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작성해서 보내야 하나 하고 있음. 으악 ㅠㅠ 이 망할 노동노예... 그렇게 착취당하면서도 왜 이러는 거야 엉엉... 그냥 하지 말란 말이야 흑...

 

Posted by liontamer





일요일 오후. 진하게 차 우려 마셨다. 간밤에 유혹에 빠졌지만 안 먹고 지켜낸 녹차 쉬폰 케익이랑 같이 ㅎㅎ



지난 달력에서 뜯어낸 슈클랴로프님 화보로 액자 장식. 백조의 호수(파트너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그 옆은 Le Parc. 사진은 alex gouliaev.







2집에도 틈날때마다 찻잔을 좀 갖다놓긴 했지만 역시 한계가 있어서 몇개 없음. 오늘은 부활절 찻잔 꺼냄. 이쪽 면에 그려진 게 러시아 정교 부활절 과자인 파스하.






이건 정교 부활절 케익인 쿨리치. 위의 파스하와 쿨리치 모두 예전에 썼던 부활절 단편 Jewels에서 어린 라라와 아냐가 좋아하며 먹었던 것들이다 :)



접시에 그려진 건 알록달록 부활절 달걀들 ㅇㅇㅇㅇㅇ
















오늘은 그래도 조금이나마 유익한 일을 했음. 얼마전 사놓고 방치해놓고 있던 요즘 러시아어 주요 생활 표현들 50개 정도 열심히 읽어보았음. 모르는 거 많음!!! 역시 흐흑 나는 책상물림... 괜히 료샤가 나보고 '노어바보' 라고 하는게 아니었다... 간만에 소리내서 노어들 읽어보는데 우다례니예(강세)도 다 엉키고 어버버버...



러시아어 공부하는 분들 중 현지 친구들이 있거나 여행갈 일 있으신 분들, 이 책 추천합니다. '네이티브가 가장 많이 쓰는 러시아어 표현 300'. '핸드폰 배터리 다 나갔어' 등등 유용한 표현 많음.


Posted by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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