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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큐 필름 댄서 (the dancer)와 take me to church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져서 그런지 내 블로그에도 세르게이 폴루닌으로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자주 있다.

 

그런데 좀 미안하게도 사실 내 dance 폴더는 거의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들로 채워져 있는데다 폴루닌 사진은 몇장 없고, 그나마도 올릴 때마다 '멋있긴 한데 뭔가 화보용이나 연예인 같고 poser에 무용수 자체로서는 그렇게까진 내 취향 아님'이란 말을 써놔서 ㅠㅠ (사실 내가 폴루닌 사진들이나 영상을 이따금 모은 것은 이 사람의 외모가 어딘가 내가 옛날에 좋아했던 파루흐 루지마토프를 연상시켜서...)

 

하여튼 그래서 속죄(ㅎㅎ)하는 마음으로 세르게이 폴루닌의 최근 멋진 화보 몇 장.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잡지인 사바까.루(sobaka.ru에서 인터뷰와 함께 찍은 패션화보이다.

 

 

 

 

광대뼈에 써놓은 글자는 러시아어로 '평화'와 '세계'를 동시에 의미하는 '미르'

 

 

 

 

 

 

 

 

하지만 결국 여기는 슈클랴로프 사랑으로 가득찬 곳이므로 기승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백스테이지, 무대 등에서 찍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몇 장. 

 

 

 

 

이건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해적 2인무 갈라 추는 중

 

 

 

 

멋있는 알리 :)

 

하지만 아무리 봐도 무대 위의 이 사람은 알리보다는 솔로르가 더 잘 어울린다. 알리도 어울리긴 한다만 알리는 연기할 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솔로르가 훨씬 몸에 잘 맞는 느낌이다.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ev

 

이 무대 정말 좋았다. 작년 여름에 이 사람이 추는 이 무대 보고 눈물 쏟음 ㅠㅠ

 

 

 

 

청동기사상 한컷 더. 사진은 역시 alex gouliev

 

 

 

기승전 슈클랴로프로 끝내려 했으나 좀 찔려서... 마지막은 아르춈 옵차렌코 사진 한장. 볼쇼이 극장.

 

 

:
Posted by liontamer

 

 

 

새로운 글을 구상하면서 원래 써오던 글인 가브릴로프 본편은 잠깐 미뤄두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글인 건 변함이 없다. 그래서 새 글 구상을 하면서 동시에 이전에 좀 써둔 가브릴로프 본편을 훑어보고도 있다. 많이 쓰진 않아서 총 4개 장으로 이루어진 1부를 마치고 2부 첫장을 쓰다 중단되어 있다(그 다음부터는 이것의 패러디 외전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만 줄창 써서 ㅠㅠ) 

 

어제 본편 훑어보다 1부 3장에서 잠깐 생각을 돌이켜보았다. 3장에서는 지방 소도시 가브릴로프 극장에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미샤가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뤘었는데 이 장의 후반부는 이 도시의 특권층(노멘 클라투라)이자 나름대로 유력한 문예지 편집장인 렐랴가 미샤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렐랴는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도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이라 아마 서무 시리즈를 보신 분들은 친숙하실 것이다(미샤를 사모하여 맨날맨날 과자랑 케익 구워다 바치고 잼 만들어주고... 막상 실속은 없는 가브릴로프 최고 미녀로 등장했음) 렐랴의 성인 비슈네바는 물론 내가 좋아하는 무용수 디아나 비슈뇨바에게서 따왔는데 액센트 위치만 바꾸어서 비슈뇨바 대신 비슈네바로 만들었다. 본편의 렐랴는 서무 시리즈에서처럼 코믹한 인물은 아니고... 이 인물을 데리고 전에 가브릴로프 추리외전도 쓴 적 있다. 거기선 무려 주인공으로 탐정 역할도 했었다만...

 

기존에 쓴 본편 우주의 여러 글에서 미샤가 자신의 예술관이나 관객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한 것은 매우 드물다. 물론 단편 하나와 장편 하나에서 그가 서방/소련 언론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두어번 쓴 적은 있지만 그 맥락은 달랐다. 그때까지 미샤는 안무가라기보다는 무용수였다. 그리고 안무가이자 감독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이 가브릴로프 본편이 처음이고 훨씬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하지만 '직접적'이라는 것이 언제나 '더 솔직한', 혹은 '더 자세한'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렐랴의 인터뷰 장면을 발췌해 본다. 관객을 대하는 미샤의 자세가 좀 나온다. 이 글을 쓸때 나는 작가이자 관객이었는데 그 둘 중 어느쪽이 우선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작가가 '이렇게' 쓴다고 해서 그가 '이렇게' 믿는다고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위험한 일이다.

 

초반에 언급되는 '먀흐킨'은 가브릴로프 극장의 극장장이자 시 의회 의원이며 렐랴의 외삼촌이다. (렐랴는 집안이 매우 좋다) 이 먀흐킨도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몇번 등장했다. 제일 큰 비중으로 나왔던 건 34편의 딸기 아가씨들과 바자회 에피소드였음. '비슈네브이 사드'는 벚꽃 동산이란 뜻으로(체호프의 유명한 희곡 제목이기도 함) 소설 속에서 렐랴가 편집장으로 있는 문예지 제목이다. 류다는 미샤의 비서인 류드밀라이다(이 사람도 서무 시리즈에 꾸준히 나왔음)

 

 

위의 사진은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내가 찍은 것.

 

 

 

이건 마린스키 브 콘탁테 페이지에 올라왔던 사진. 마린스키 극장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광경. 가운데 거대한 것은 샹들리에!!

 

 

사진사는 캡션에 있듯 Podorozhny. 볼쇼이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바라본 무대 연습 장면.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물론 렐랴는 자신이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이며 문화예술 애호가라고 생각했다. 예술계 인사를 인터뷰할 때는 정치적 문제나 이념, 사생활 등으로 인한 선입견은 배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미샤 야스민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 마치 생일 선물을 받으러 가는 어린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원래 취임식 당일에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미샤가 일정이 빠듯해서 겨우 두 개의 인터뷰에만 응한 데다 문예지보다는 텔레비전 방송사와 연방 홍보국의 입김이 더 셌기 때문에 포기했다. 그리고 렐랴에게 필요했던 것은 겨우 2~3분짜리 홍보 인터뷰가 아니라 비슈네브이 사드 10월호 커버스토리에 어울리는 심도 깊은 대담이었다. 그 인터뷰는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절반은 렐랴의 생각대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오후 2시에 그녀는 사진사 한 명을 대동한 채 녹음기와 노트를 들고 미샤를 만나러 갔다. 극장은 썰렁했다. 사람도 없었다. 비서실조차 비어 있었다. 처음에 렐랴는 다들 젊은 감독에 맞서 파업이라도 하는 건가 하고 깜짝 놀랐지만 곧 그날이 월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극장 휴일이었다. 약속 날짜를 착각했나 하는 불안감도 잠깐, 렐랴가 노크를 하자 미샤가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렐랴는 무대의 마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조명과 의상, 메이크업의 트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았다. 달리 배우들에 대한 기사에서 ‘ㅇㅇ는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와는 달리 사석에서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먀흐킨조차도 첫날 미샤와 만나고 돌아온 후 호기심에 가득 찬 렐랴의 질문에 약간 마뜩치 않은 어조로 대꾸했다.

 

 

 “ 그렇게 눈에 띄는 친구는 아니었어. 생각보다 작아, 자작나무처럼 야윈 게 데니스 체격의 반 밖에 안 될 거 같더라니까. 전에 무대에서 봤을 때는 꽤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애가 어떻게 발레리나들을 들고 돌렸는지 모르겠더구나. 게다가 너무 어려 보여서 깜짝 놀랐단다. 데뷔한지 7~8년이 다 됐으니 스물다섯은 넘겼을 텐데 학생처럼 보였어. 렐렌카 너보다 더 어려보이더구나. 하긴 우리 수석 남자애들보다 더 젊지. 류다가 옆에서 보더니 새 감독님은 인형처럼 곱상하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어. 생긴 것도 그렇고 말수도 적은 게 기 센 극장 사람들을 어떻게 휘어잡을지 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단다. 뭐 나름대로 강단 있는 친구라니까 지켜보긴 해야겠지... ”

 

 

 눈앞에서 미샤 야스민을 마주 대했을 때 렐랴는 먀흐킨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반쯤 이해했다. 그녀의 외삼촌은 여러 극장들을 거쳐 온 데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시 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를 평가할 때 당당한 풍채와 큰 목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복 차림의 미샤는 극장장의 말대로 앳된 대학생처럼 보였지만 그건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렐랴는 그가 움직이는 방식에 매료되었고 레닌그라드 액센트와 차분한 말투에 대해서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렐랴는 비슈네브이 사드의 특집 기사를 다음과 같은 거창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곁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는 민첩하고 유연한 짐승처럼 보인다. 그는 삐걱거리는 복도와 낡은 사무실, 낙엽이 쌓여 있는 좁은 길, 일상적인 모든 공간을 순식간에 극장 무대로 변형시킨다. 그가 입을 열면 정확하고 또렷한 발음과 낮고 부드러운 음성이 결코 충돌 관계에 놓여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마치 칼날에 벨벳을 두른 것처럼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그의 무대를 연상시킨다. ’

 

 

 미샤는 비교적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했지만 렐랴의 모든 질문에 답변한 것은 아니었다. 키로프와 볼쇼이 시절 무대에 대해, 기존 안무작에 대해서는 그래도 성실하게 답했지만 발레 팬인 렐랴는 이미 예전 인터뷰를 통해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렐랴는 해외 유명 극장들에서의 공연과 뉴욕 발레단과의 협업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미샤는 무용수로서든 안무가로서든 좋은 경험이었다는 대답 한 마디로 피해갔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어차피 검열국에 넘어가기 전에 자신이 모두 편집할 테니 너무 조심스러워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초면부터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꾹 참았다.

 

 

 그래서 그녀는 화제를 바꾸었다. 레닌그라드에서 살다가 지방 소도시로 옮겨와서 답답하지 않은지, 가브릴로프의 첫 인상이 어떤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미샤는 나무가 많고 강이 아름다워서 좋다고 대답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한 렐랴는 첫 번째 질문을 되풀이했다.

 

 

 “ 음, 여기는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와는 물론 완전히 다르죠. 전 지금까지 조용한 곳에서 지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숲이 많은 곳에서도. 전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고무되곤 해요. 답답함을 느낄 겨를이 없죠. 도처에 모르는 것들이 가득하니까요. 지금은 할 일도 굉장히 많고요. ”

 

 “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가브릴로프에는 싸움꾼과 성자 밖에 없다는 옛말이 있거든요. 아주 다혈질에 공격적인 성미거나 아예 온순하거나 둘 중 하나고 중간은 없다고요. 전형적인 시골 사람들의 특징이죠. ”

 

 “ 그런가요? 전 사람들은 어디나 같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차이를 잘 모르겠던데. ”

 

 “ 레닌그라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예의를 차리고 외교적인 미사여구를 구사한다던데 사실인 것 같네요. ”

 

 

 미샤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렐랴의 말을 부정하려 들지는 않았다. 렐랴가 새로 맡은 감독직에 대해, 극장에 대한 전반적 의견과 발레단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는 원론적이고 짤막한 답변만 했다. 렐랴가 신임감독의 어려움이나 극장 내부 인사들의 텃세 여부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아직 2주도 안돼서요. 지금으로서는 할 얘기가 별로 없군요. ”

 

 “ 하지만 매일 공연을 보고 계시잖아요. 그것도 백스테이지가 아니라 관객석에서. 사실 그 소식도 꽤 신선했거든요. 이제껏 그런 예술감독은 없었어요. ”

 

 “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하니까요. 아마 제가 무용수였다면 다른 식으로 행동했을지도 모르죠. ”

 

 “ 무대는 백스테이지에서도 볼 수 있잖아요. 감독이나 연출가들은 보통 그렇게 하지 않나요? ”

 

 “ 시간이 좀 지나면 저도 그렇게 할 거예요. ”

 

 “ 왜 지금은 그렇지 않죠? 아직 우리 극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셨다는 건가요? 볼쇼이나 키로프 같은 큰 극장 무대에도 작품을 올리셨잖아요. 그에 비하면 가브릴로프 극장은 규모도 작고 레퍼토리도 단순한데. 연출도 여러 번 해보셨으니 무대의 구조나 동선은 한두 번만 봐도 전부 파악하실 수 있지 않나요? ”

 

 “ 제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것 같군요. 전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한다고 말했죠. 그건 관객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어요. ”

 

 “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지? ”

 

 “ 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공연을 보는지. 극장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야기하고 보고 느끼는지. 그 모든 것이 중요해요.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무대는 절반만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극장은 예술가의 자기만족과 독백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

 

 “ 좀 의외네요. 전 당신이 엘리트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렇죠. 관객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보통 하지 않잖아요. 관객들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이성의 영역이죠. 이해하지 못하고도 사랑할 수 있고 슬퍼할 수도 있어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고요. 그들로 하여금 뭔가를 느끼게 만들 수 없다면 그건 실패한 공연이에요. ”

 

 “ 백조의 호수나 지젤이라면 모르지만 관객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어떤 감정적 고양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

 

 “ 하지만 즐거워하죠. 아기자기한 무대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발레리나들의 화려한 의상과 움직임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감정적 고양이란 꼭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만은 아니에요. 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끔 빠져드는 함정이 있죠. 장엄하고 영웅적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지 않으면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 그건 일종의 도그마예요. 기본적으로 예술이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거기에는 진정성이 필요해요. ”

 

 “ 호두까기를 보면서 웃는 어린아이들과 잠자는 미녀를 보면서 그 구조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발레 애호가들이 원칙적으로는 동일하고 평등한 관객이라는 것인가요? ”

 

 “ 네. ”

 

 “ 그건 가브릴로프 극장 예술감독으로서의 가치관인가요, 아니면 무용수이자 창작자인 미하일 야스민의 믿음인가요? ”

 

 “ 감독으로서의 저와 예술가로서의 저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관객에 대한 제 태도는 전자든 후자든 변함없을 거예요. ”

 

 “ 그것이 당신이 무대에서 그 수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밀인가요?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는 것? ”

 

 “ 조금은요. ”

 

 “ 그럼 나머지는 뭐죠? ”

 

 “ 그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

 

 “ 그런가요? 보통 그런 힘을 가리켜 재능이라고들 하죠. 우리 가브릴로프에서는 천사가 날개로 쓰다듬고 지나갔다고 해요. ”

 

 

 미샤는 다시 소리 없이 웃었다. 렐랴는 그가 재능에 대한 칭찬 앞에서 점잔을 빼거나 겸손한 척 고개를 젓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긴 학창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왔을 얘기일 것이다.

 

 

 그녀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오디션에 대해서도 물었다. 미샤는 레베진스키에게 했던 대답을 짧게 되풀이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극장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나갈지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레퍼토리를 다양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15년에 달하는 파벨 쿠즈네초프의 재임 기간 동안 극장이 정체 상태에 빠졌고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많은데 이를 어떤 식으로 타개할 생각인지, 키로프를 가브릴로프 극장의 이상적인 발전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미샤는 잠깐 침묵했다가 천천히 대꾸했다.

 

 

 “ 그건 아직 모르겠군요. 시즌이 좀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극장은 키로프와는 다르죠. 역사도 문화도, 무용수들의 성장 배경이나 기질도 달라요. 같은 도시가 어디에도 없듯이 극장도 마찬가지예요. 극장을 빵 찍어내듯 똑같이 만들 수는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

 

 “ 사람들은 어디서나 같다고 생각하신다면서요, 도시와 극장은 어째서 다른가요? ”

 

 “ 글쎄요. 어쩌면 사람들이 결국 같지 않은지도 모르죠. ”

 

 

 미샤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공식적인 인터뷰를 끝낸 후 렐랴는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개인적인 질문을 몇 개 던졌다. 좋아하는 색깔이라든지, 음식이라든지, 작가라든지, 이상형이라든지, 혹시 레닌그라드에 연인이 남아 있는지도 살짝 떠보았다. 미샤는 대부분의 질문을 침묵이나 미소로 넘겼다. 그가 사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렐랴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농담을 섞어 물었다.

 

 

 “ 사무실로 절 안내하신 이유는 접견실 문이 잠겼기 때문인가요? 월요일이라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극장장이나 감독 인터뷰는 항상 접견실에서 했었거든요. 아니면 접견실의 권위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전 항상 거기 들어가면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테리어도 그렇고 좀 제정 시대 느낌이... ”

 

 “ 아뇨. 전 어디든 별로 상관없는데 어제 세탁 때문에 접견실 커튼을 모두 벗겨냈다고 해서요. 햇빛도 강하게 들어오고 살충제도 잔뜩 놨으니 오늘은 들어가지 말라고 류다가 당부해서요. 운 나쁘면 바퀴벌레들을 밟게 될 거라고 경고하더군요. ”

 

 

 렐랴는 하마터면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농담인지 진지하게 얘기하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그 유명한 스타를 직접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사진사 주보프의 간곡한 부탁으로 무대와 발코니 좌석에서 추가로 사진을 찍느라 15분 정도가 더 소요되었다. 주보프는 요청이나 지시도 없이 그저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댔을 뿐이었다. 심지어 미샤는 별다른 포즈를 취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세묜 주보프는 시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사진사였지만 예술가적 자존심이 센데다 까다롭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심지어 유명 인사들에게조차 이렇게 앉아라 저렇게 머리를 돌려라 하며 들들 볶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 주보프는 술에 취한 듯, 필름 구입예산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댔다. 꼭 기관총 사수 같았다. 나중에 현상된 사진들을 보고서야 렐랴는 주보프가 왜 미샤에게 그렇게 관대했는지 이해했다.

 

 

 “ 그런 피사체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지. ”

 

 “ 하긴 그 사람 진짜 미남이긴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20페이지 쯤 늘려서 이 사진들 전부 컬러로 싣고 싶네요. ”

 

 “ 그런 것과는 좀 달라. 외모가 아무리 잘 나면 뭘 하나, 당장 우리 극장에도 얼굴만 예쁘고 나머지는 나무토막 같은 애들이 태반인데. 이 친구는 특별한 경우야. 그건 타고 나는 거지. 가뭄에 콩 나듯 그런 사람이 있어. 렌즈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사람. 춤추는 걸 찍었어야 했는데... ”

 

 

 주보프는 못내 아쉬워했다. 아라베스크 포즈를 취해달라는 그의 유일한 부탁을 미샤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 전 이제 춤을 추지 않아서요. ”

 

 주보프는 그 유명한 포즈를 찍기 위해 당장이라도 미샤의 발아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지만 렐랴는 키로프 시절 사진을 한 장 가져다 쓰면 된다고 그를 부드럽게 진정시켰다. 사실 그녀도 실망했지만 콧대 높은 예술가의 변덕에 간섭해봤자 좋을 일이 없다고 마음을 달랬다.

 

 

 

 

...

 

 

 

무용수들 사진 몇 장.

먼저 루돌프 누레예프. 주보프는 이 사람 앞에서도 넋을 잃고 셔터를 눌러댔을 것이다.

 

 

루돌프 누레예프. 햄릿 중에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이 사람의 포즈도 정말 아름답다.

 

 

 

 

90년대 키로프-마린스키 시절의 율리야 마할리나. 마린스키 극장 좌석에 앉아서.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역시 사진은 nina alovert

피사체로서의 매력이 넘치는 무용수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카리스마를 내뿜는 젊은 시절의 파루흐 루지마토프.

 

위의 누레예프, 말라호프, 루지마토프 모두 각각 서로 다른 면에서 무용수로서의 미샤에게 조금씩 영감을 준 인물들이다.

 

 

 

파루흐 루지마토프 한 장 더. 사진은 캡션에 있듯 nina alovert

 

 

 

팬심으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도 한 장.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이건 내가 이번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찍은 사진들 몇장. 관객으로서 찍은 사진들 :)

 

 

 

 

 

 

 

 

이 사진은 볼쇼이 무용수인 아르춈 옵차렌코와 디아나 비슈뇨바. 몇달 전 마린스키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함께 췄는데 이건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리허설 장면이다.

 

 

 

프리드리만 보겔.

 

 

 

이건 내가 폰으로 찍은 사진. 여기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예전에 맡은 업무 때문에 하루종일 여기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찍음... 여러 모로 힘들었기 때문에 당시의 기억은 지우고 싶다만... 덕분에 백스테이지와 분장실, 음향, 조명 등 이것저것 많이 훑었고 그것만으로도 내겐 수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렐랴와 먀흐킨, 미샤 등이 코믹한 패러디 버전으로 등장해 복작거리는 외전 에피소드들이 궁금하시면 서무의 슬픔 시리즈 폴더를 보세요~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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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모스크바의 호텔 메트로폴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사진 한 장. 모스크바에서는 유서 깊은 호텔이다. 나도 안 가봤다만..


객실 창가의 디아나 비슈뇨바. 호텔 측 설명으론 오랫동안 호텔 홍보대사이자 뮤즈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내 마음을 무척 끄는 사진이라 올려본다. 비슈뇨바는 무대애서든 일상에서든 원래 아름답지만 이 사진은 빛과 색감, 객실과 창 너머 보이는 볼쇼이 극장 풍경 때문인지 신비롭고 깊은 느낌을 자아낸다. 무대 위의 스타와 창가에 놓인 세면도구, 화장품 파우치 등에서 배어나는 일상의 삶으로서의 느낌이 묘하게 부딪치면서도 섞여들어서 더 그렇다.


이 사진 보니 여행 가고 싶고 호텔 방 창가에 저렇게 앉아 있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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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