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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본편 일부를 올려본다.


이 에피소드의 앞부분과 뒷부분을 이전에 각각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네프스키의 유명 디저트 가게인 세베르에 나갔던 트로이는 우연히 미샤와 그의 극장 친구들을 마주치게 된다. 거기에는 미샤의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를 비롯해 동기인 레냐 핀스키, 후배인 니넬,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초빙되어 온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있었다. 일린은 토요일이 자신의 생일이라며 그를 파티에 초대한다.


순서는 반대로 일린의 생일 파티를 먼저 올렸었다. 트로이는 파티에 가서 미샤의 극장 동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미샤는 브이소츠키 노래를 부르고, 그러다 술에 취해 나가떨어진다.


이번에 올리는 에피소드는 그 두 이야기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시간 순서대로 재배열하면 세베르 - 이번 에피소드 - 노래 부르고 나가떨어지는 미샤 이다.




그 두 에피소드 링크는 아래 :


 
http://tveye.tistory.com/6253 세베르에서의 만남, 달콤한 것들, 미샤와 지나 어릴적 스케치 2


http://tveye.tistory.com/5842 생일과 그 다음날, 브이소츠키




...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는 일린의 이름과 부칭이다. 제대로 된 이름은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 일린이고 미샤는 그를 애칭인 스탄카라고 부른다.



미샤와 일린이 논쟁을 벌이는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백야'이다. 나스첸카는 그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내가 쓴 이 소설 속에서 일린은 미샤와 지나를 위해 '백야'를 단막 발레로 안무하고 미샤를 화자였던 남자 주인공, 지나를 나스첸카로 캐스팅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름과 부칭이다. 미샤에게는 존경하는 예술가를 이름과 부칭으로 부르는 버릇이 있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토요일 저녁 7시에 트로이는 미샤와 지나이다의 아파트로 갔다. 생일 파티는 8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미샤가 백야 때문에 일린과 이견이 생겼다면서 좀 일찍 와달라고 했다. 트로이는 자신이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일찍 갔다.



 지나이다가 문을 열어주더니 반색을 했다.



 “ 제발 쟤 좀 말려요. 저러다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를 잡아먹겠어요. ”



 힐끗 보니 부엌 테이블에는 이미 음식들과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준비해 온 게 틀림없었다. 미샤는 원래 요리를 하거나 잘 차려먹는데 관심이 별로 없었고 지나이다도 가정적인 주부 노릇을 하기에는 너무 여왕님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술 한 잔 권하기는커녕 코트를 벗는 것도 기다려주지 않고 그의 팔목을 잡아끌며 거실로 데려갔다.



 미샤는 피아노 옆에 선 채 일린과 열띠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미샤는 평소에는 나직하고 부드럽게 얘기했지만 논쟁할 때는 명료하고 건조한 말투로 변했다. 그는 빠르게 쏟아지는 일린의 설명을 중간 중간 칼처럼 끊어대며 끼어들었다. 검은 눈에서 불꽃이 연달아 튀었다. 처음에 트로이는 그들이 뭘 가지고 그렇게 가열찬 논쟁을 벌이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한참 듣고 보니 주인공이 나스첸카의 첫사랑에게 연애편지를 전해주러 갈 때 무대 어느 쪽에 서야 하느냐, 여자가 그 첫사랑이란 작자에게 달려들어 안길 때 주인공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야 하느냐 아니면 관객들로부터 등을 돌려야 하느냐 등의 트로이로서는 사소하기 짝이 없는 듯한 문제들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대체 왜 미샤가 자신에게 빨리 와 달라고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참 열을 내다가 트로이를 발견한 미샤가 좋아하며 손목을 휙 흔들었다.



 “ 아, 잘됐다. 빨리 스탄카한테 설명 좀 해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가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이 사람한테 좀 알려줘. 그리고 백야가 주인공과 나스첸카의 연애소설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짝사랑이라는 이론 좀 설명해봐. 구조주의랑 뭐 그런 것도 섞어서. 너 지난번에 세미나에서 발표한 거 있잖아. ”



 “ 구조주의와는 관계가 없는데... ”



 “ 아니, 관계가 있게 설명해줘. 넌 할 수 있잖아. ”



 “ 그거랑 무대에서 등을 돌리고 말고랑 대체 상관이 있어? ”



 “ 있어요. ”



 미샤 대신 일린이 대꾸했다. 역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지만 밝은 회색 눈은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아마 턱수염을 깎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트로이에게 자신들의 이견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미샤의 질문과 주인공의 동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쭉 설명했다. 그는 간결하게 문장을 끊어서 말하는 미샤와는 달리 빠르고 길고 부드럽게 얘기했다. 일린이 어찌나 설득력 있게 조곤조곤 얘기하는지 트로이는 미샤에게 그냥 연출자의 말을 따르라고 충고할 뻔 했다. 하지만 미샤가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할 수 없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페테르부르크 소설들에 대해 얘기를 늘어놔야 했다. 나중에는 미샤가 원하는 대로 구조주의 이론도 좀 섞었다.



 얘기를 마쳤을 때 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음, 그럼 좀 더 생각해봐야겠는데. 이건 내일 다시 맞춰보는 걸로 해. ”




 “ 등 돌리는 거지? ”




 
 한번 파고들면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는 미샤가 집요하게 물었다. 자신이 일린의 입장이었다면 그 고집 세고 버릇없는 젊은 애에게 화를 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린은 소리 내어 웃었다.



 “ 그래, 등 돌리는 걸로 하자. 이제 페트루슈카 좀 맞춰보면 좋겠는데. 좀 있으면 사람들 올 테니까. ”



 소파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지나이다가 일어났다. 피아노 쪽으로 다가오면서 트로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 고마워요, 덕분에 공연이 파탄나지는 않겠네요. ”




 “ 무슨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군요. ”




 “ 그냥 쟤를 얌전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성공이에요. ”




 지나이다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 테마를 치기 시작했다. 미샤가 바 앞으로 가더니 목과 팔을 기형적으로 꺾은 채 지푸라기 인형처럼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일린이 박자를 셌다. 중간 중간 동작을 지시하기도 하고 손을 내저으며 음악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백야를 놓고 열띠게 대들던 것과는 달리 미샤는 일린의 모든 지적에 온순하게 따랐다.




 “ 팔을 더 내려야 해. 허리는 좀 더 펴고. 무릎이 더 나가야지. 다시 해봐. 어깨도 내리고. ”




 미샤가 다시 포즈를 취했다. 일린이 뒤로 다가와서 왼쪽 어깨를 아래로 세게 내리눌렀다. 아픈 부위였기 때문에 미샤가 잠깐 얼굴을 찡그렸지만 불평 없이 어깨를 더 내렸다. 일린이 손을 치우자 그는 정말로 꼭두각시 인형 같은 모습으로 허공에 매달린 듯 서 있었다. 트로이는 금방이라도 미샤가 무릎을 꺾고 바닥에 넘어질까봐 오싹했다.



 지나이다가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이제 일린은 박자를 세는 것 외에는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고 피아노 옆에 선 채 미샤를 지켜보고 있었다. 미샤는 검은 머리칼을 털실이나 지푸라기처럼 들썩이며 사지를 상하좌우로 흔들었다. 몇 차례 이어지는 도약조차 무릎을 구부린 채 낮게 뛰었다. 발레란 몸을 가능한 한 곧게 펴고 길게 늘이는 것이라고 믿었던 트로이에게 있어 그 춤은 전혀 아름답거나 우아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팔과 어깨 동작이 특히 그랬다. 불협화음과 구슬픈 멜로디가 뒤섞인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속에서 미샤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우울해지고 고통스러워졌다. 얼굴 전체가 일그러지며 외롭고 슬프게 변했다. 두 손을 털실로 감친 인형 손처럼 둥그렇게 뭉쳐서 가슴을 치며 옷을 잡아당기고 어깨를 떨며 이따금 구부러진 다리를 바깥으로 한두 번 찼다. 피아노를 치면서 지나이다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 너무 슬픈데. 꼭 저걸 가져가야 하나... ”




 미샤가 몸을 돌려 일린 쪽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무대에 존재하지 않는 발레리나 인형이나 독재자 흥행사를 바라보는 것이겠지만 피아노 옆에는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있었고 그 밝은 회색 눈은 더 이상 부드럽지 않았다. 예리한 칼처럼 자기 앞의 무용수를 주시하고 있었다. 미샤는 두 손을 어색하게 뻗더니 삿대질을 하고 턱짓을 했다. 그리고 어깨를 홱 떨구더니 한 바퀴 빙글 돌고 바닥에 넘어졌다.



 일린이 손바닥을 마주쳐 딱 소리를 냈다.



 “ 훨씬 좋아졌네. 어깨 동작만 좀 손보면 되겠어. 런던에서 좋아할 거야. ”




 미샤는 심하게 숨을 헐떡였다. 트로이는 그가 연습하면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게 어려운 동작 때문인지 마음이 산란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면 티셔츠가 땀에 젖어 몸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거실 마룻바닥에 반쯤 엎드린 채 두 손으로 머리와 가슴을 감싸고 숨을 몰아쉬면서 가만히 있었다. 방금 춘 춤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든 것 같았다. 마침내 일린이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 씻어야지, 뭘 더 입든가. 런던 가기도 전에 감기 걸리면 안되잖아. ”




 “ 나 좀 놔둬. ”




 미샤가 목쉰 음성으로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머리를 들지 않은 채였다. 지나이다가 일어나더니 모른 척하면서 부엌으로 갔다. 일린은 다른 말을 하는 대신 소파에 펼쳐져 있던 카디건을 가져와 미샤의 머리와 등을 덮었다.



 잠시 후 미샤가 일어났다. 여전히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카디건을 일린에게 휙 던지고 한 손으로 어깨를 누르면서 욕실로 갔다. 스위치를 찾지 못해 한참 문 옆 벽을 더듬었다. 트로이가 다가가서 불을 켜주었다. 미샤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곧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린은 바를 붙잡고 아까 미샤가 하던 동작 몇 개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정확하기는 했지만 나이 때문인지, 무용수에서 은퇴한지 오래됐기 때문인지 미샤보다는 훨씬 뻣뻣했고 우아한 느낌도 적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했다. ‘좀 더 내려야 하는데...’ 하고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트로이는 견디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 더는 아파서 안 될 거예요. 그 어깨 아픈지 반년 가까이 됐어요. ”




 “ 아니, 그 정도예요? 왜 아프다고 얘길 하지 않는 건지... ”




 “ 자존심이 강해서 그래요. ”




 “ 저 정도로 추면 자존심 내세워도 돼요. 아픈 건 별개지만. ”




 “ 백야만 추는 줄 알았는데, 런던은 무슨 얘기죠? ”




 “ 2월 런던 페스티벌 있잖아요. 경쟁부문에도 초청됐어요. 참가진도 꽤 화려하고. 그래서 페트루슈카로 정한 거예요, 누가 뭐래도 러시아 춤이니까. ”




 “ 미샤가 정했어요? ”




 “ 아뇨, 하나 안무해달라고 해서 내가 고른 거죠. 물론 포킨 오리지널에서 가져온 거지만. ”




 “ 그럼 런던에 함께 가요? ”




 “ 글쎄요, 당국에서 나까지 허가를 내줄 것 같지는 않아요. ”




 일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 그 정도로 아프다면 동작을 바꿔야겠는데... ”




 “ 미샤에게는 내가 그런 말 했다고 얘기하지 마세요. ”




 “ 자존심 앞에는 친구도 소용없나 보죠? ”




 “ 자기 춤 앞에서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죠. ”




 “ 그럴만해요. 내가 저렇게 출 수 있었다면 목숨이라도 내놨을 테니까. ”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투명한 회색 고양이처럼 미소를 띠었다. 트로이는 사라토프의 시골에서 할머니가 고양이들을 자루에 넣어 강물에 빠뜨려 죽였던 것을 떠올렸다. 일린을 향해 솟구치는 부당한 증오심에 그는 소스라쳤다.





...




발레 페트루슈카에 대해서는 전에 몇번 올린 적이 있다.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의 초창기 메인 안무가였던 미하일 포킨이 니진스키를 위해 안무한 단막 발레이다. 러시아 전통시장과 놀이문화, 마슬레니차의 흥겨움과 화려함, 거기에 꼭두각시 헝겊 인형 페트루슈카와 독재자 흥행사, 아름다운 발레리나 인형과 폭압적인 무어 인형이 등장한다. 음악은 스트라빈스키. 원체 음악이 유명해서 종종 따로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연주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미샤가 추는 페트루슈카는 포킨 원작이 아니고 일린이 그 원작을 따와서 미샤를 위해 변형시킨 작품이다. 여기 발췌한 적은 없지만 이후 미샤는 안무가가 되었을 때 니진스키를 위한 트리뷰트 작품을 안무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가미한 페트루슈카를 재등장시킨다.




런던에서 미샤가 춘 페트루슈카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

공연을 본 알리사가 트로이에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http://tveye.tistory.com/5178 프라하의 두 개 메모, 문을 여는 사람, 악령과 성모



마린스키에서 본 페트루슈카 무대에 대한 짧은 메모와 사진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15

http://tveye.tistory.com/3686


..





미하일 포킨의 페트루슈카를 춘 바츨라프 니진스키.






최근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발레 뤼스 디아길레프 갈라에서 페트루슈카의 모놀로그를 추었다. 마린스키에 오리지널 페트루슈카가 레퍼토리로 들어 있긴 하지만 이 사람은 그전까지는 페트루슈카를 춰본 적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려준 연습 영상을 보니 무척 보고팠는데 공연 영상은 올라오지 않았다. 무대 분장 사진을 보니 오리지널 페트루슈카를 그대로 따온 것 같긴 한데... 나에겐 실제 분장 사진보다 이 연습 사진이 더 인상깊었다.


페트루슈카는 남자 꼭두각시 인형이지만 최근 디아나 비슈뇨바가 젊은 안무가인 블라지미르 바르나바가 새로 안무한 작품에서 페트루슈카 역할을 추기도 했다.


리허설 중인 슈클랴로프 사진 몇 장 더.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최근 마린스키 시즌 오프닝의 포킨 작품 공연과 바이에른 발레단의 지젤 공연에서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몇장.

출처는 거의 vladimir shklyarov instagram과 그의 팬페이지.

먼저 마린스키 시즌 오프닝. 포킨의 밤에서 그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세헤라자데를 췄다. 아아, 나도 이 사람의 황금노예를 보고 싶다. 이 사람도 예전에 비해 훨씬 원숙해져서 이젠 덜 소년같고 '진짜' 황금노예 느낌이 날 것 같은 기대가 든다.

 

사진은 alex gouliaev

 

 

역시 세헤라자데의 황금노예. 사진은 alex gouliaev

 

 

조바이다 역 테료쉬키나와 함께.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victor nikanorov

예전 이 공연 영상을 보면 팜므파탈 센 언니 테료쉬키나의 조바이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소년 노예같았는데 이번 무대 사진들을 보니 슈클랴로프가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라 궁금하다...

 

]

 

 

이건 장미의 정령.

 

정말 이 사람이 추는 장미의 정령을 무대에서 보고프다. 이 역이 쉬워보여도 사실 남자 무용수가 이 역을 근사하게 추는게 정말 쉽지 않고 잘못하면 꽃달린 빨간내복 입고 춤추는 근육질 남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미의 정령은 블라지미르 말라호프의 정령이었는데, 물론 루지마토프의 정령도 좋지만 말라호프가 좀더 육체적으로 어울렸다. 그런데 슈클랴로프가 정령을 춘 영상을 보니 이 사람은 또 다른 의미로 잘 어울렸었다.

 

이 사람이 추는 황금노예와 장미의 정령, 이반왕자 등 포킨 스페셜 패키지를 보고싶다(근데 쇼피니아나는 췄어도 이반 왕자는 안 췄지...)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victor nikanorov

 

사진은 alex gouliaev

 

 

 

사진은 victor nikanorov

 

 

 

이건 바이에른 발레단의 지젤.

7년만에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다시 지젤 무대에 오른 슈클랴로프. 바이에른의 지젤은 알브레히트 의상이 꽤 다르다. 머리도 훨씬 단정하게 빗었네... 그런데 바이에른 버전 지젤의 알브레히트는 외모가 좀 지그프리드와 비슷... 역시 의상 때문인가.

 

 

 

공연 끝나고 백스테이지에서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다정하게 사진 찍은 발로쟈. 7년만이라 반가웠다고 한다. 출처는 이 사람 instagram

 

 

사진은 캡션대로 jack devant

이것도 지젤. 이건 슈클랴로프와 그의 아내 마리야 쉬린키나. 둘의 바이에른 데뷔 무대. 가운데는 이고르 젤렌스키... 아아, 젤렌스키 많이 나이먹으셨네..

그건 그렇고 나는 예전 영상이나 심지어 실제 무대 볼때도 젤렌스키가 그렇게 크다고 생각 안했는데 작년인가 재작년 마린스키에서 젤렌스키 전시할때 저 사람이 입었던 솔로르 의상 보고 생각보다 커서 깜짝 놀랐었다. 근데 이 사진 보니 젤렌스키 정말 크네. 아무리 슈클랴로프가 180이 안되는 걸로 추정된다지만.. (괜찮아 발로쟈 넌 예쁘잖아~)

 

:
Posted by liontamer

 

 

 

 

이번주 극장 예약 마지막 포스팅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장미의 정령 동영상 클립.

출처는 https://www.youtube.com/watch?v=pxRL8P1A9VQ

 

상대역은 스베틀라나 이바노바. 둘이 이따금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있다. 나는 이바노바를 무용수로서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여기서는 너무 조금만 발췌되어 있어서 그런지 좀 아쉽게 느껴진다. 조금 더 꿈꾸는 듯한 여주인공이 좋은데... 캠으로 찍은 거라서 화질이 떨어져 그런가...

 

슈클랴로프의 장미의 정령은 기존 다른 무용수들의 움직임과는 조금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데 나름대로 매력적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말라호프처럼 조금 더 우아하고 양성적인 장미의 정령(http://tveye.tistory.com/4430)을 좋아하고 루지마토프의 길들여지지 않은 살짝 와일드한 정령도 좋아한다. 슈클랴로프는 그들보다는 조금 더 기운찬 편이고 이 사람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원숙하다기보다는 갓 피어오른 장미 느낌이 난다. 그런데 이것도 꽤 매력적이긴 하다. 슈클랴로프란 무용수 자체가 항상 아다지오를 중시하고 여자 파트너를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여기서도 장미의 정령이 포킨의 정령답지 않게 좀 너무 다정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긴 하고.. (그래도 예쁘구나..)

 

 

이어지는 춤도 보고 싶은데 너무 짧아서 아쉽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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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발레 영상 예약 포스팅 세번째는 블라지미르 말라호프와 나디아 사이다코바의 장미의 정령.

 

포킨의 안무작 중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만 사실 이 장미의 정령을 잘 소화하는 게 남자 무용수로서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말라호프와 루지마토프 버전을 좋아한다. 루지마토프가 좀더 와일드한 느낌이라면 말라호프는 우아하고 섬세한 느낌인데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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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월요병에 시달리는 중.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사진 보며 위안..

이건 2월 20일. 마린스키 극장(오리지널. 구관) 카페. 보통 마린스키에 가면 2야루스 레프트 윙에 있는 카페에 가는데, 이때는 거기 사람이 꽉 차서 평소에 안 가던 쪽으로 갔다. 복도에 있는 좁은 테이블 쪽인데 여기는 의자가 없어서 서서 차 마셔야 함.

그런데 이 테이블이 놓인 복도 난간 너머로는 2층 벨에타쥐 쪽의 메인 홀이 보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괜찮았다.

 

이날은 유리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봄의 예감'과 포킨의 '페트루슈카'를 보러 갔다.

 

물론 후자를 보러 간 거였는데, 페트루슈카는 시각적으로도 화려한 성찬이고 음악도 무척 좋다. 발레 자체는, 아마도 더 어릴 때 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옛날부터 중요한 발레 중 하나였는데(글쓰기부터 시작해서 여러 의미로) 확실히 영상과 무대는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무대를 보니 페트루슈카라는 주인공에 대해 내가 갖고 있었던 오랜 느낌과 내가 부여했던 상징은 의외로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페트루슈카는 언제나 그런 작품이었고 내가 거기에 니진스키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봄의 예감은.. 음... 난 안무가로서의 유리 스메칼로프를 괜찮게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너무 작위적이었고 지루했다. 안무 자체도 그렇고.. 이 무대 보고 나서 느낀 건.. 콘스탄틴 즈베레프가 불쌍하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즈베레프는 여기서 태양신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엄청 기다랗고 무거운 금빛 천을 내내 끌고 다니고 막 휘두르며 빙빙 돌아야 하고.. 하여튼 중노동을 ㅠㅠ

 

흑흑 불쌍한 코스챠... 키 크고 풍채 좋다는 이유로 태양신이 되어 고생하고.. 최근 스메칼로프가 안무하고 슈클랴로프가 주역을 춘 저승세계의 오르페우스에서도 흉칙한 의상과 분장을 한 저승 뱃사공 카론으로 등장하고.. (즈베레프가 그 역이라는 자막을 봐서 망정이지 얼굴도 못 알아볼 지경 ㅠㅠ)

 

이 두 작품 리뷰도 아직 못 썼네. 생각해보니 2월에 가서 6개나 공연을 봤는데 제대로 리뷰 쓴 건 하나도 없고.. 그나마도 미하일로프스키에서 라 바야데르 보고 와서 빅토르 레베제프의 나무토막 연기에 분노해 쓴 게 제일 긴 거네 ㅠ (그 분노의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04)

 

 

 

이땐 아직 오페라 글라스 사기 전이라... (마지막 날 샀다 ㅠㅠ)

코트 보관소에서 빌린 오래된 오페라 글라스. 이거 빌릴 때마다 옛날에 가난한 학생 시절 마린스키 오면 이거 빌려서 윗층으로 올라가 공연 보던 생각이 난다. 메이드 인 USSR!!

 

 

테이블 너머로 아래의 메인 홀이 슬쩍 보인다.

이날은 차를 많이 마시고 가서 차 대신 사과주스랑 티라미수..

 

 

천정의 샹들리에 보너스로 한 컷.

 

아, 다시 가고 싶구나!

 

* 이 날 공연 보고 와서 남긴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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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마린스키 극장(오리지널)에서 단막발레인 '봄의 예감'과 '페트루슈카' 보고 돌아옴. 피곤하니 리뷰는 나중에 따로 올리고 그냥 아주 짧은 메모만.

 

맨 처음엔 왜 성격이 전혀 다른 이 두 작품을 묶었나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지금이 봄을 기원하는 마슬레니짜 축제 기간이라... 전자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이야기를 알레고리로 풀어낸 유리 스메칼로프의 작품이고 너무나 유명한 후자는 마슬레니짜 축제 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미하일 포킨 작품이다. 그래서 두개를 엮은 거였어.

 

 

 

안무가로서의 스메칼로프를 좋아하긴 하지만 봄의 예감은 너무 알레고리에 치중한 나머지 많이 단조로워서 아쉬웠다. 춤도 크게 볼만한 건 없었고... 어쨌든 리뷰는 나중에.

 

자리가 베누아르의 오른편 사이드라... 줌 당겨도 한계가 있었고 비스듬한 구도로밖에 안나옴.

 

스메칼로프 작품은 24일에 올리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진짜 보고픈데. 작년 4월 발레 페스티벌때 슈클랴로프를 주역으로 안무해서 올린 작품인데 영상으로 보고도 정말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콧수염 달고 안 멋있는 중년남자 캐릭터로 나오는 슈클랴로프는 이쁘게는 안나오지만 드라마틱한 연기가 일품이었는데. 꼭 무대에서 보고팠지만 그건 24일이라 불가능이다 흐흑...

 

 

페트루슈카는 포킨의 다른 발레 몇개와 마찬가지로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마린스키 무대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근사했다. 하지만 오늘의 페트루슈카는 옛날부터 내가 의미를 많이 부여했던 페트루슈카 인형의 고뇌와 억압구조에 대한 깊은 생각보다는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알렉산드르 베누아(서구에는 프랑스식 표기인 브누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의 화려한 무대 미술/의상, 그리고 떠들썩하고 화사한 러시아 민속풍경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느낌이었다. 뭐 그건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변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걸수도 있다. 페트루슈카는 언제나 그런 작품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이 리뷰도 나중에. 근데 돌아가서 제대로 다 리뷰 쓰기나 할지 모르겠네. 사실 작년 백야때 와서 본 발레도 마르그리트와 아르망만 리뷰 올리고 두번이나 본 라 바야데르와 돈키호테, 인프라에 대한 리뷰는 흐지부지 안 올렸는데 ㅠㅠ

 

 

커튼콜 사진 한장. 자리가 멀어서 화질 안 좋지만.

무어인 역의 이슬롬 바이무라도프. 발레리나 역의 야나 셀리나. 페트루슈카 역의 안톤 코르사코프.

 

아..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어 엉엉..

내일은 마린스키 신관에서 라트만스키의 안나 카레니나로 공연 마무리. 보고 싶었던 공연이고 로파트키나가 나오니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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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 찍은 사람은 Tomas Kolisch

장미의 정령. 빅토리야 크라스노쿠츠카야와 함께.

나도 이 사람이 춘 장미의 정령 보고 싶다고요 ㅠㅠ 외모도 그렇고 도약도 좋은 무용수니 상당히 어울리는 배역일 듯 싶다. 사진으로 봐도 근사하고...

워싱턴 투어에서 크리스티나 샤프란과 춘 무대는 꽤 호평을 받았다. 장미의 정령 특유의 공기 같고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잘 포착한데다, 슈클랴로프의 우아한 팔동작이 근사했다는 평이었다. 나중에 원문 평들 스크랩해보겠다. 지금은 트윗과 브 콘탁테로만 갈무리해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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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박스트, 세헤라자데 무대 미술 일러스트

 

3월 29일 마린스키 발레, 미하일 포킨의 밤 간략 리뷰 마지막. 세헤라자데.

 

출연진 : 알리나 소돌레바(조바이다), 다닐라 코르순체프(황금노예), 소슬란 쿨라예프(샤흐리아르), 드미트리 프이하초프(샤흐자만)

 

세헤라자데는 불새와 더불어 내게 큰 영향을 끼친 발레이다. 이 발레와 음악, 배역에서 모티프를 얻어 글도 많이 썼었고. 지금도 여전히 아주 사랑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가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이 곡이 연주되면 어떤 오케스트라든 크게 구애받지 않고 웬만하면 들으러 간다.

 

국내 발레 무대에서 이 작품을 보는 건 다른 포킨 레퍼토리들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그나마 짧은 빈사의 백조나 장미의 정령 같은 건 가끔 갈라 공연에 올라오지만 세헤라자데는 35분~40분 정도의 단막 발레에 워낙 무대 미술과 의상이 화려해서 이거 하나만 올리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고전 발레처럼 인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니 참 어렵다.

 

예전에 국립발레단에서 해설이 있는 발레였나, 그런 프로그램으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전체가 아니고 황금노예와 조바이다의 아다지오와 황금노예의 화려한 솔로 정도였다. (그때 황금노예를 최세영씨가 췄었는데 나름대로 멋져서 그분 좋아했는데 곧 은퇴하셨는지, 연수가셨는지 국립발레단을 떠났었음. 그분 때문에 국립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보다 최세영씨의 티볼트를 더 좋아했던 기억도 난다. 벌써 십년도 전의 일인듯...)

 

어쨌든 세헤라자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발레 중 하나다. 이번에 페테르부르크 가서 일정 맞추면서 제일 먼저 고려한 공연 날짜이기도 했다. (그래서 포킨의 밤이 도착 다음날 바로 본 공연이 된 거다. 시차 ㅠㅠ)

 

이 발레와 황금노예, 그리고 유일무이한 바츨라프 니진스키에 대해서는 전에 좀 긴 글을 쓴 적이 있으니 여기서는 작품 자체에 대해 세세하게 적는 대신 그 글 링크로 대체 : http://tveye.tistory.com/14

 

무수한 발레들 중 내가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바로 이 세헤라자데에서 조바이다와 황금노예가 추는 아다지오. 나머지 하나는 보리스 에이프만의 까라마조프에서 알료샤 까라마조프가 추는 춤이다. 보석으로 엮인 탑과 황금빛 하렘 팬츠를 입고 오일과 금가루를 번쩍이며 바닥에 나뒹구는 황금노예와 날개처럼 펄럭이는 검정색 법의를 입고 고통스럽게 춤추는 수도사 알료샤 까라마조프는 극과 극에 위치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그 두 작품을 보는 순간이면 '아름다움이 두 눈으로 들어와 죄를 짓게 한다'는 오랜 경구를 떠올리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조바이다-황금노예 페어는 바로 율리야 마할리나와 파루흐 루지마토프였다. 맨 처음 본 건 알티나이 아실무라토바와 루지마토프 페어였는데 이쪽도 아주 근사했지만 역시 아실무라토바보다는 마할리나가 조금 더 여왕님 같고 섹시한 느낌이었다. 루지마토프는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황금노예였다. 우아하고 양성적이며 흑표범 같은 루지마토프에겐 최적의 역 중 하나였다. 국내에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함께 춘 버전이 dvd로 출시되어 있다. 이 포스팅 후 유튜브 링크도 올려보겠다. (http://tveye.tistory.com/2777)

 

 루지마토프와 마할리나. 아래도 모두 황금노예를 춤추는 파루흐 루지마토프

 

 

 

 

이후 이고리 콜브가 추는 황금노예도 몇 번 봤다. 마린스키에서도 봤는데 그 역에는 콜브도 잘 어울렸다. 이국적 캐릭터 댄스를 많이 추는 이슬롬 바이무라도프(콘다우로바의 남편)를 비롯해 다른 무용수들이 추는 것도 봤는데 어쨌든 내 기억 속에서 최고의 황금노예는 역시 파루흐 루지마토프였다.

 

이번 마린스키에서 본 공연은 다닐라 코르순체프가 황금노예를 춘다고 해서 무척 기대를 하고 갔다. 좋아하는 무용수이기도 했고, 이날 포킨의 밤 세 개 레퍼토리 출연진들이 사실 그렇게 시선을 사로잡는 사람들은 아닌 편이어서 이 사람이 제일 유명했고 그 중에선 제일 좋아하는 무용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지그프리드나 솔로르는 꽤 좋았던 것이다. 조바이다 역의 알리나 소돌레바는 그날 이 역 데뷔라고 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쇼피니아나와 불새 이후 시차로 인한 졸음은 많이 달아났고 언제나처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는 순간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무대 미술은 여전히 쇼킹하고 아름다웠다. 박스트의 재능이 가장 화려하게 꽃핀 무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발레를 봤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나이가 든 걸까. 아니면 이제는 유튜브와 dvd 등 각종 루트가 넘쳐나서 희귀성이 사라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저 피곤해서일까. 여전히 발레는 아름답고 화려하며 음악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지만 그 마법같은 홀림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면 이건 지금 무대 위를 누비는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르기 때문일까?

 

공연이 나쁘진 않았다. 나름대로 좋았다. 하지만 세헤라자데가 무엇인가. 성적 매력이 넘쳐나는 발레다. 연인들의 춤이다. 그 성적 에너지는 파이널의 잔인한 살육으로 절정을 이루고 조바이다의 자살로 기나긴 여운을 남긴다. 난 언제나 이 발레가 잘 포장된 오리엔탈리즘으로 무장한 일종의 아름다운 포르노, 어떤 관점에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섹스와 죽음, 이 두 축이 우아하게 결합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뭐 로미오와 줄리엣도 약간 비슷하긴 하지만, 그 작품은 세헤라자데와는 표현 양태가 다르니까) 사실, 세헤라자데를 보는 것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오르가즘과 작은 죽음을 함께 경험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에 본 세헤라자데는 좀 실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그건 중심 인물인 조바이다와 황금노예의 춤이 밋밋했기 때문이다. 다닐라 코르순체프는 믿음직한 왕자였고 이국적이며 근사한 솔로르였지만 황금노예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황금노예는 일반적인 레퍼토리의 왕자나 귀족 같은 남자 주인공과는 많이 다르다. 심지어 해적의 노예 알리와도 다르다. 안무가인 포킨이 이 역을 니진스키에게 주었던 이유는 그가 발레 뤼스의 최고 스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 성격이 니진스키와 잘 맞았기 때문이다. 니진스키는 단 한번도 완벽한 마초나 남성성 강한 역에 어울린 적이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황금노예는 반 인간, 반 짐승이며 완벽하게 거친 남성이라기보다는 양성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 황금노예는 민활하고 우아하면서도 야수처럼 뛰어오른다. 그는 조바이다의 욕망의 대상이며 그 순간 어둠 속에서 그를 지켜보는 모든 관객들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내 개인적 취향으로는 거기 가장 잘 맞았던 건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춤이었는데 그가 무대에 올라와  그 역을 추는 순간이면 극장 전체를 뒤덮은 어둠이 황금빛 불꽃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영상으로는 그 카리스마와 매력을 완전히 전할 수가 없다.

 

코르순체프는 물론 좋은 무용수이다. 지난 소치 올림픽 개막식 때 나타샤 로스토바의 무도회에서 안드레이 공작 역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 사람은 너무 건장하고 멋있는 남성적 무용수였다. 카르멘에서 호세를 출 때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막상 황금노예를 추기 시작하자 매력이 사라졌다. 그는 힘세고 강하고 멋진 남자, 여자 무용수를 지지해주는 믿음직한 연인, 훌륭한 파트너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황금노예는 아니었다. 그 역의 우아함, 양성성, 흑표범 같은 민활함이 모자랐다. 이 사람이 나이가 꽤 들긴 했지만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본원적 스타일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멋진 지그프리드였고 꽤 용서해 주고 싶은 솔로르였지만 조바이다와 관객으로 하여금 안기고 싶고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갈망을 느끼게 하는 황금노예는 아니었다. 전에 마린스키에서 해외(영국인지 미국인지)로 발레 뤼스 투어 가서 이 사람이 황금노예 춘 무대에 대해 올라온 어떤 기사를 봤는데 거기서는 코르순체프가 아주 멋지고 섹시했다고 칭찬하고 있었다. 글쎄, 코르순체프는 멋지고 섹시하다. 그건 맞다. 하지만 황금노예로서 멋지고 섹시한 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냥 이 사람으로 멋지고 섹시한 거다. 키 크고 반듯하고 이국적이고 건장하고 잘 추는 무용수니까.

 

아... 황금노예와 조바이다의 아다지오가 밋밋하다니 섹시하지 않다니... 전율이 모자라다니 ㅠㅠ 이럴수가... 너무 슬프다.

 

조바이다 역의 알리나 소돌레바는 처음 추는 거라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마린스키 신진 무용수들이 많이 그런 것처럼 그냥 이래도 잘 통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역시 상체가 밋밋하고 팔을 너무 파닥거렸다. 내가 워낙 마할리나나 아실무라토바, 자하로바의 팔동작에 익숙해서인가.. 아니면 젊어서인가. 조바이다의 섹시함, 버들가지 같으면서도 채찍처럼 유연하고 강렬한 느낌이 없었다. 둘이 열심히 추는데 역시나 코르순체프가 많이 리드해 주고.. 사랑의 아다지오, 혹은 욕망의 아다지오라기 보다는 열심히 추는 아다지오여서 아쉬웠다.

 

그래도 음악과 오리지널의 힘이란 강력한 것이어서 나중에 조바이다 죽을 때 무척 불쌍했다 ㅠㅠ 보다가 욕했다. 술탄 이 자식, 여자가 저러면 좀 살려주지. 노예야 연적이니 죽였다 치더라도 ㅠ.ㅠ (역시나 주인공 과도이입...)

 

...

 

전에 얘기했듯 이날 찍은 사진들 전부 손상돼서 무대 사진이 없다 ㅠ.ㅠ

 

돌아오니 4월 25일에 다시 이 공연이 올라가고 캐스트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였기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흑흑....

 

오늘 그들의 아다지오 클립이 유튜브에 올라와서 봤다. 그것도 좀 있다 링크할 예정. 이 둘도 런던 투어 때 한두번 춰보고 마린스키에선 이게 첫 공연이라 그런지 둘이 좀 마음이 급해 보이긴 했다. 몇번 더 춰보면 여유가 생겨서 섹시한 아다지오를 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슈클랴로프가 코르순체프보다는 그 역에 더 어울렸다 ㅠ.ㅠ 얜 또 반대로 너무 소년 같아서 조바이다를 리드한다기보다는 예쁘고 귀여운 연하 노예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전에 러시아 일기에 연재했던 글 중 세헤라자데와 니진스키에 대해 썼던 글

http://tveye.tistory.com/14 (과거에서 온 환희의 아름다움 - 니진스키의 사진 앞에서)

 

** 루지마토프와 자하로바, 슈클랴로프와 테료쉬키나의 세헤라자데 영상 클립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2777

 

**  이 날 사진들이 날아갔으므로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황금노예 사진들 몇 장 더. 전에 올렸던 것들도 있지만 그냥 같이 올려본다. 맨 아래 몇 장은 슈클랴로프와 테료쉬키나가 전에 런던에서 췄을 때 컷.

 

 

 

뱌체슬라프 코바 라는 조각가의 루지마토프 조각상. 워낙 이 사람이 황금노예로 유명하니 이걸로 조각한 게 아닐까 싶다. 나도 저거 갖고 싶다 ㅠ.ㅠ

 

 

 

 

 

 

 

 

 

율리야 마할리나와 함께.

 

아래 세 컷은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 테료쉬키나는 동양적 외모라 그런지 조바이다 분장했을 때가 제일 예쁜 것 같다.

 

 

 

 

예쁘긴 정말 예쁜 슈클랴로프의 황금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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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