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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이때 여행 중 이날 날씨가 최악이었다. 음습하고 춥기도 하고, 계속 진눈깨비가 내렸고 바닥은 완전히 진창이었다. 즉,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 겨울 날씨였다. 바로 이 날씨 때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아예 정착해 살라고 하면 망설이게 될 것 같은 것이다!!!!

 

 

날씨 안 좋은 날은 무조건 박물관 가는 날임. 그래서 이 날은 루스키 무제이(러시아 박물관) 갔다. 페테르부르크 갈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근데 이 날은 날씨도 그렇고 몸도 많이 안 좋아서(아마 복직을 앞두고 있어 더 심란했던 듯하다) 그림 구경도 대충 했다.

 

 

러시아 박물관은 옆으로 기다랗게 뻗어 있고 미하일로프스키 공원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전시실 창문들 너머로는 공원도 보이고 예술광장이나 그랜드 호텔 유럽이 보이기도 하고 스파스 나 크로비를 비롯해 카톨릭 성당, 인줴네르 자목 등의 첨탑이 보이기도 한다. 위로부터 세장은 박물관 창 너머로 본 바깥 풍경들.  

 

 

(여기엔 사진 안 올렸지만 에르미타주는 러시아 박물관보다 더 크고 길기 때문에 거기 전시실들 창문 너머로는 궁전광장, 네바 강변, 길거리 등등 더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오후 2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미 해는 거의 다 져버렸다.

 

 

 

 

 

 

 

눈과 얼음, 진흙이 지저분하게 녹아 진창을 이루기 시작한 차가운 바닥 위로 까마귀 몇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사진엔 한 마리만.

 

 

 

 

박물관 갔다가 근처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옷 갈아입으러 호텔로 들어가는 길. 네프스키 거리에서 버스 기다리며 한 장 찍음. 이게 오후입니다 흐흑... 그래도 사진으로 보면 뭔가 있어보이고 분위기 근사하죠... 실상은 '으악 이 날씨 정말 괴로워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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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탄핵안 투표 결과 궁금해서 잠 설치고, 히필 방 와이파이가 갑자기 안돼서 조식 먹으러 내려와 실시간 확인. 생각보다 찬성표가 많이 나와 다행이다!


오늘도 눈과 비가 온다 어흑.. 나와서는 결국 이 날씨에 유일한 해법이 될수 있는곳 =박물관 결론 내리고 버스 타고 러시아 박물관 감.


브루벨과 금발의 가브리엘 다시 본건 좋은데 오늘 몸이 좀 아프다. 배란통인가.. 전엔 그런거 없었는데 최근 몇달 전부터 생겼어 ㅠㅠ 걷는데 아파서 좀전에 진통제도 결국 한알 먹음.


사진은.. 브루벨의 날아가는 악마 두상 조각. 그리고 이 날씨가 어떤지 여실히 드러내주는 예술광장의 진창과 눈.. 불쌍한 까마귀, 푸쉬킨 동상에 바쳐진 꽃.





오후에 료샤가 레냐 데리고 오기로 했는데 내가 몸이 힘들어서 전시를 좀 일찍 본후 바로 옆의 유럽호텔 메자닌 카페 옴.. 더 멀리 걸을수도 없어ㅜ

먹은게 부실해서 아픈거 같아 애들 오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밥 시켜서 먼저 먹기 시작. 친구와 약혼자는 이해해줄거야 흐흑.. 먹고 있음 오겠지 허헉..


(료샤는 삐친거 풀렸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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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8. 28. 21:52

러시아 박물관 창 너머 풍경 2016 petersburg2016. 8. 28. 21:52

 

 

언젠가부터는 에르미타주보다 러시아 박물관(루스키 무제이)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페테르부르크에 가면 때로는 피곤해서 에르미타주는 안 가기도 하지만 러시아 박물관은 갈때마다 꼭 들른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전시실을 지나가다 간간이 창 너머로 미하일로프스키 공원이나 예술광장, 저 멀리 보이는 네프스키 거리나 사원 지붕들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이 러시아 박물관은 내게는 특별한 장소이다. 그래서 전에 쓴 소설의 에필로그는 이 박물관의 이콘 전시실과 박물관 앞뜰, 예술 광장에서 막을 내리기도 했다. 여기 들를 때마다 꼭 그 전시실에 가서 등장인물들이 서 있던 자리에 서 보고 창 밖을 바라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는데 이것도 쓰는 자에게는 나름대로의 행복 중 하나이다.

 

 

 

 

 

 

세개의 돔이 보인다. 왼편부터 예카테리나 카톨릭 성당, 카잔 성당, 그리고 돔 크니기의 지붕이다.

 

 

 

그리고 이건 박물관 앞뜰.

 

 

폰으로 찍어서 화질은 흐리지만 그래도 맘에 드는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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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래 발췌한 두 개의 메모는 몇년 전 썼던 각각 다른 두 가지 글에 대한 노트이다.


첫번째 메모는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해 서울에 돌아와 완성했던 가브릴로프 프리퀄의 후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소설은 나의 주인공 미샤가 체포되어 수용소와 클리닉, 면회실에서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었다. 이 소설의 일부는 이전에 여러번 발췌했는데 주로 3부에서 미샤와 그의 친구 일린이 나누는 대화 부분들이었다.


두번째 메모는 저 글을 마친 후 본편으로 들어가기 전에 데이터와 캐릭터 구축을 위해 썼던 2차 소설 중 한 장면에 딸린 노트였다. 그 장면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맨 아래에 다시 발췌했다(사실 그 부분도 이전에 한번 올린 적이 있긴 하다)


두 개의 메모는 서로 다른 이야기와 배경을 다루지만 어쩌면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건 쓰는 사람이 동일했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인물을 중심축에 놓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때도 나는 실은 매우 실망했고 떠나려고 했었고 그러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평생 하나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 그러나 그것을 변주하고 변형하고 마침내 그런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것.







* 이 글들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첫번째 메모 : 2013. 5월>




 이 글을 쓰는 내내 난 전락과 치욕, 수치심에 대해 생각했다. 소중한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더럽혀졌다는 자각,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원칙이 무너진 순간의 고통에 대해.

 

  성적으로 분방한 사생활과 복잡하게 뒤엉킨 권력자들과의 관계, 체제로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지적과 징계,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보안위원회 서류에도 불구하고 미샤는 일종의 순결함에 대한 강박적 수호 욕구를 가진 애였을 것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춤에 대한 것이었을 테지만 동시에 집단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 의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벨스키의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 그는 수백 수천 명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게 짓밟히는 것보다 더 속속들이 더럽혀졌으며 그건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더러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스타니슬라프 일린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이 사진은 내가 러시아 박물관 전시실에서 찍은 것이다. 작가는 미상. 러시아 민중들의 정교 예술작품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리스도 조각상이다.





...

 



 <두번째 메모 : 2013. 6월>






 가브릴로프 장편에서 미샤는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는다. 이미 더 이상 무대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후인데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 도시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춤을 출 만한 몸 상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그 애를 처음으로 만들어냈을 때 미샤는 무용수가 아니라 안무가였고 감독이었다. 그땐 '그 애'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 내가 그려냈던 미샤는 이미 3~40대에 접어든 나이였고 결코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수수께끼 같고 독립적이며 유능한 인물, 당시 구상했던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일종의 멘토이자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 안티 히어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인물에 대한 나의 관점은 변화했고 나는 미샤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구상했던 소설의 중심과 구조도 변형되었다. 이후 나는 그 애에 대한 단편을 몇 개 썼고 작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 꽤 긴 단편과 장편, 경장편을 썼다. 그 세 편의 소설에서 미샤는 이미 안무가가 되어 있었지만 내게 그 애는 그보다도 무용수에 가까웠다.


 가브릴로프에 유배된 후 그 애는 처음으로 완전하게 무대를 버리고 온전히 안무가와 예술감독의 역할을 맡게 된다. 타고난 무용수가 존재하듯 안무가로서의 타고난 재능이란 것도 분명 있다. 전자는 육체의 재능이며 후자는 창작자로서의 재능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갖는다는 건 아주 드문 축복이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은 분명 그런 축복을 받은 존재다. 그게 그 애의 어둡고 뒤틀린 영혼을 위해서도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샤는 'Frost'에서 마로조프와 대화할 때나 'The dark dances alone'에서 훨씬 친한 상대인 일린과 얘기할 때 한결같이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을 거라고 아주 단호하고 강력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그게 정말로 그렇게 쉬운 일일까? 나는 일린의 입을 빌어 그 애에게 무용수로 태어난 인간이 춤을 추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거라고 얘기했다. 게다가 그 애는 너무나 뛰어난 무용수였다.


 며칠 전 아래에 발췌한 부분을 쓸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그 애와 스비제르스키의 관계. 성과 권력의 복잡한 역학. 그리고 두번째는 무용수로서의 그 애가 갖는 어떤 특질.


 나는 모든 위대한 예술의 정점에는 세 가지 중 하나가 있다고 믿는다. 사랑. 죽음. 그리고 삶이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해답을 찾고 싶어 몸부림치고 계속해서 뛰어오르고 날고 움직이고 넘어졌다. 그 애는 자신의 춤과 무대에서 언제나 죽음과 조우한다. 그건 어떻게 보면 불행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한 정점에 오른다 해도 그건 자기파괴와 부정을 불러오는 음울한 마약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그 애가 춤을 그만 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믿는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





위의 메모가 딸려 있었던 2차 소설의 그 장면은 여기. 사실 이 내용은 전에 발췌했던 글에 포함되어 있다. 카를로비 바리의 별장에서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의 지시에 따라 춤을 추는 미샤의 이야기였다.





 스비제르스키는 밖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마룻바닥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 애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샤는 가끔 그를 힐끗거리며 쳐다보았지만 스비제르스키가 말을 걸거나 곁에 다가오지 않자 점차 그의 존재를 잊었다. 연습에 완전히 몰입해 음악과 파트너도 없이 2인무와 3인무, 솔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췄다. 검은 머리칼이 짧고 부드러운 벨벳 커튼처럼 펄럭였고 두 팔이 단단하고 유연한 채찍처럼 물결쳤다. 그 애가 아무런 무게도 없는 도약을 서너 번 반복했을 때 스비제르스키는 담배를 잘못 내려놓다가 손가락 끝을 데었다. 하지만 뜨거움이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샤가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스비제르스키가 입을 열었다.

   

 “ 그건 놀라운데. 무대에서도 꽤 높이 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군. 일부러 높이를 낮추는 건가? ”

 

 “ 서커스가 아니니까요. ”

 

 “ 흠, 니진스키처럼 얘기하는군. 다른 애가 그런 말 했으면 건방지다고 해줬을 걸. 대단한 도약인데. 혹시 피루엣도 더 빨리 돌 수 있는데 억지로 늦추는 거야? ”

 

 “ 음악에 맞추는 거예요. ”

 

 “ 오케스트라가 네 움직임에 맞춰줄 걸. 한번쯤 그렇게 해봐, 갈라 무대에서는 그렇게 해도 무방하니까. 할 수 있는 최대로 뛰어오르고 돌아봐, 그럼 관객들이 심장 발작으로 줄줄이 실려 갈 테니 안 되려나. 지난번 공연 때도 여자 두어 명 기절했었지. ”

 

 

 미샤는 바를 붙잡고 무릎을 구부리며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 이런, 피루엣을 빼먹는군. 취기도 가셨으니 까먹은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런 말 들으니까 부끄러워? 너 춤에 대해서는 전혀 겸손하지 않잖아. 프로페셔널답게 끝까지 해야지. 해봐, 연속 회전. 푸에테. ”

 

 

 미샤가 잠깐 동안 타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두 눈에 뜨겁고 격렬한 분노가 일었다. 자기 춤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듣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스비제르스키는 흥미롭게 그 시선을 맞받았다. 과연 그 애의 춤에 대한 자존심이 공포를 넘어설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미샤는 스비제르스키의 눈빛을 오랫동안 동요 없이 받아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전 기계가 아니에요. ”

 

 “ 기계가 아니니까 그런 춤을 출 수 있겠지. 키로프 애들 절반 이상은 다 기계야. 세레브랴코프가 왜 그렇게 널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인지 정말 몰라? 그놈은 스텝과 회전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추지. ”

 

 “ 당신들이 임명한 공훈예술가예요. ”

 

 “ 아, 본심이 나오는 건가? 걱정 마, 넌 그놈보다 훨씬 빨리 공훈예술가가 될 테니까. 20대 다 넘기기 전에 인민예술가 달아줄 수도 있을 걸. 그러니까 춰봐, 피루엣. 연습은 제대로 끝내야지, 토요일 공연이라면서. ”

   

 미샤는 바를 놓고 홀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잠깐 스텝을 밟은 후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은 프로펠러처럼 빠르고 힘차게 돌았다.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회전 때문에 양쪽으로 쭉 뻗은 두 팔이 날개처럼 펼쳐져 퍼덕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빠르게 연속 회전하면서도 몸의 축이 전혀 기울어지지 않았다. 두 눈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가속도가 붙자 이제 그 불길이 몸 전체로 옮아가는 것 같았다. 한순간 스비제르스키는 미샤가 빙글빙글 돌다가 모터 달린 바람개비처럼 하늘로 휙 날아오를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이미 50번을 훌쩍 넘겼지만 그 애는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마침내 스비제르스키는 그 애를 저지해야 했다. 

 

 “ 이제 그만하지. 그 근육 풀어주려면 한 시간은 스트레칭해야 할 걸. ”

  

 미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애는 계속해서 돌았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곧게 뻗어 있던 두 팔이 점점 아래로 처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돌았다. 스비제르스키는 무용수든 서커스 단원이든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100번은 예전에 지났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정신 나간 짓을 무력으로 끝내려고 했을 때 미샤가 멈췄다. 무릎을 꿇는가 싶더니 끔찍할 정도로 가쁜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옆으로 누웠다. 두 팔을 부러진 날개처럼 꺾은 채 다리를 길게 뻗고 물에서 막 건져낸 사람처럼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검은 머리칼이 축축하게 젖어 이마와 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


저 글의 앞뒤 내용이 좀 더 붙어 있는 버전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4620 

<별장의 미샤와 스비제르스키, , 레닌그라드 아이, 뒤틀린 관계>







 아르춈 옵차렌코.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6. 7. 5. 22:34

bravebird님의 서프라이즈 선물 2016 petersburg2016. 7. 5. 22:34

 

 

 

 

몇주 전 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간 다음날 bravebird님과 그곳에서 조우했다. 처음으로 뵙는 거였는데 2박3일 정도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둘째날 같이 부끄보예드 서점에서 기념품을 산 후 아스토리아 로툰다 카페에 차를 마시러 갔는데 갑자기 bravebird님이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셨다 :) 그날 러시아 박물관에 다녀오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금발의 가브리엘과 박스트의 supper, 그리고 브루벨의 세라핌 천사 엽서를 사오신 것이다. 게다가 좀전에 서점에서 러시아어 알파벳 냉장고 자석들을 놓고 이거할까 저거할까 끝까지 망설이다 a를 택하느라 막판에 포기한 저 냉장고 자석도 마치 본인 기념품처럼 사는 척하더니 나에게 선물로 주심!

 

넘넘 감동했어요 >,<

 

감사해요 bravebird님!!

 

그래서 러시아 박물관 비닐봉투에 나의 입술로 감사의 뽀뽀 자국을 남겼습니다 ㅋㅋ 맨 위 사진이 대체 뭐였냐면 비닐봉투 귀퉁이의 내 뽀뽀 입술자국입니다... 근데 반만 찍혔네 ㅎㅎ

 

 

이렇게 :)

 

bravebird님, 감사해요~!!!

 

:
Posted by liontamer

 

근 1년만에 러시아 박물관에 다녀왔다. 이제는 페테르부르크에 오면 에르미타주보다도 러시아 박물관에 더 자주 들르게 된다. 내겐 더 편안한 곳이다.

 

이곳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12세기 이콘인 금발의 가브리엘, 레프 박스트의 'SUPPER', 그리고 미하일 브루벨의 날아가는 악마이다. 물론 크람스코이나 세로프, 게, 쿠스토디예프와 바스네초프 등도 좋아하지만 저 세 작품을 제일 좋아한다.

 

아쉽게도 박스트는 올해가 백몇십주년이라 전시 투어를 하고 있어 러시아 박물관에 있던 그림들이 통째로 없었다. 작년에 왔을때도 SUPPER가 없어 아쉬웠는데... 집에 있는 사본 액자로 만족해야 하나... 여기서 SUPPER 본 게 어느새 2년이 다 됐네...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을 주는 금발의 가브리엘 이콘. 항상 맨 마지막에 본다. 너무나 사랑하는 그림이라 예전에 쓴 소설 에필로그에도 등장시켰다. 저 그림과 저 전시실을,

 

옆 창문의 커튼이 액자에 반사되어서 잔뜩 흰 주름이 졌네... 안녕, 천사. 사랑해요.

 

 

그 전시실. 내 소설 에필로그는 2월의 해지는 저녁 무렵, 텅 빈 이 전시실에서 러시아 박물관 앞뜰, 그리고 예술광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다른 대천사 가브리엘 그림들.

 

 

 

 

그리고 성자. 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

성 세바스찬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자이다. 좀 불경스럽긴 하군...

 

bravebird님이 좋아하셔서 꼭 엽서를 사고 싶어하셨던 그림. 근데 오늘도 샵에는 이 엽서는 없었어요 ㅠㅠ 다시 열심히 보니 역시 성 게오르기는 멋있구나...

 

 

 

그리고 미하일 브루벨. 날아가는 악마.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러시아 박물관,

 

안녕, 악마. 안녕, 브루벨. 사랑해요.

 

나는 글을 쓰면서 내 주인공의 외적 혹은 시적 이미지를 상상할때 브루벨의 이 악마를 조금 빌려왔었다. 물론 백조공주도 조금 있긴 하지만...

 

안녕, 악마.

 

:
Posted by liontamer

어젠 자정 되기 전에 누웠는데 새벽에 몇번 깬 후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계속계속 졸렸다.

 

돌아가기 전까진 오늘만 날씨가 좋다고 해서 원래 오늘 수도원이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갈까 했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좋지 않았고 다리도 많이 아팠다. 어제 바리쉬니코프 전시를 보고 와서 그런가 오늘은 어쩐지 러시아 박물관 생각이 나서 거기 가기로 했다. 며칠 전 사다놨던 에클레어와 체리로 아점을 때우고 나와서 버스를 탔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사도바야 거리에서 판탄카로 돌아나가는 길이 굉장히 밀렸다. 버스 안에서 고생한 후 내렸는데 날이 싸늘했다. 그래도 판탄카 쪽 가판대에서 아이스크림 한개 사먹었다. 이제 마로제노예 먹을 수 있는 날도 거의 없네... 한국 돌아가면 다시 아이스크림은 쳐다보지도 않는 생활이 시작되겠지. (원래 유지방 소화를 못시켜서 아이스크림을 못먹는데 페테르부르크에선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여기 아이스크림이 유지방 함량이 낮은지-맛은 안 그런데- 배가 안 아픈 편이다)

 

 

오늘 먹은 건 에스키모 크렘 브륄레. 맛있었다.

 

..

 

일년만에 러시아 박물관에 다시 왔다. 박스트는 올해 150주년인가 뭔가여서 투어를 갔기 때문에 그림이 아예 통째로 없어 슬펐지만 니콜라이 게의 못봤던 그림이 몇점 나와 있는 등 또 나름대로의 수확이 있었다.

 

금발의 가브리엘과 브루벨의 악마를 다시 봐서 행복했다.

 

두어시간 쯤 전시를 본 후 나왔다. 날씨가 싸늘했다. 카톨릭 성당 뒤에 있는 클래식 음반가게에 가서 글리에르의 청동기사상이 있느냐 물었지만 주인 남자는 자기가 이 가게를 하는 동안 그 음반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컴퓨터로 모든 카탈로그를 검색해본 후 매우 유감스럽게도 없다고 했다. 어디서 이 음반을 구한다지... 나중에 네프스키로 나가서 다른 클래식 음반 가게에도 갔지만 없었다. 후자는 전보다 음반이 더 줄어들어 있었다. 전에는 지휘자별로 되어 있어 페도토프와 테미르카노프도 종종 득템했건만 왜 퇴행한거야...

 

자리가 있으면 징게르 카페에서 이른 저녁이나 먹을까 했지만 역시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하긴 성수기니 이른 아침 아니고서는 이 카페에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올해는 포기해야 하려나싶다.

 

그냥 우리 호텔 9층 식당에서 전망이나 보며 저녁먹어야지 하고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너무너무 많은데다 너무 피곤했다. 갑자기 너무 어지럽고 피곤해서 그냥 이삭 성당 앞에서 내렸다. 곧 집에 돌아가니까 아스토리야에 가서 밥을 먹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아스토리야 호텔에 갔다. 마침 그때 료샤가 전화를 해왔다. 일끝났다면서 박물관에 있으면 데리러 온다 해서 '배고파서 아스토리야에 가고 있었어'라고 하자 되게 신기해했다.

 

료샤 : 나 지금 아드미랄쩨이스까야 지나고 있어.

(이삭성당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임)

나 : 엥, 너네 사무실 그쪽 아니잖아.

료샤 : 미팅이 W호텔 쪽이었어. 마치고 나가고 있었어. 도로 간다.

 

(W호텔도 이삭성당 근처에 있음)

 

나는 너무 피곤해서 먼저 아스토리야 카페에 들어갔다. 아스토리야 호텔은 얼마 전인지 재단장을 해서 로비의 카페 로툰다와 다비도프 바, 그리고 안쪽의 아스토리야 카페로 구분이 되었는데 후자는 이름이 카페인 것이지 하얀 테이블보와 초, 꽃이 깔려 있는 레스토랑이다. 나도 로툰다에만 가보고 후자엔 가본적이 없었다. 어쩐지 테이블보가 좍 깔려 있는게 좀 부담스러워서. 그런데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냥 가봐야지 했는데 마침 료샤가 와서 덜 뻘쭘... (왜냐면... 난 오늘 박물관 가려고 빨간 운동화를 신고 왔기 때문이지... ㅠㅠ)

 

(아스토리야는 마린스키와 행사를 많이 하고 그랜드 호텔 유럽은 미하일로프스키와 행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다행히 빨간 운동화와 파랑하양 체크무늬 로브 원피스를 대충 입은 나 대신 내 친구 료샤는 무슨 미팅에 다녀오느라고 양복을 잘 빼입고 민망하기 짝이 없는 번쩍번쩍 시계를 차고 있었다. (제발 그런 시계 좀 차지 마 엉엉...) 나는 보르쉬와 처음 보는 생선인 깜발라(지중해에 사는 하얀 고기라고 해서 시켜봄) 구이, 크랜베리 모르스를 주문했고 료샤는 뭘 잔뜩 먹고 왔다면서 탄산수만 주문하려고 해서 내가 눈치를 줬다.

 

나 : 야아, 뭐라도 하나 먹어야지 ㅠㅠ

료샤 : 나 배부른데... 손님들이랑 이것저것 먹었어.

나 : 나 혼자 먹는 거 뻘쭘하잖아 ㅠㅠ

료샤 : 뭐가 뻘쭘해. 아무데나 들어가서 혼자 잘 시켜먹으면서!

나 : 동행 있는데 혼자 먹는 건 싫단 말이야 ㅠㅠ 빨랑 아무거나 하나 골라. 케익이라도...

료샤 : 독재자! 그러면 나는 햄버거 먹을거얏!

나 : 엥, 배부르다며!!

료샤 : 그래도 먹고 말겠다! 여기 햄버거 맛있단 말임...

 

그리하여 나의 독재로(ㅜㅜ) 료샤는 수제버거와 탄산수를 시키고(ㅋㅋ 다 먹고 배터졌을 거야 ㅠㅠ)...

 

이곳 보르쉬도 맛있었다. 빵도 맛있었고 깜발라 구이는 감자 퓨레와 짭짤한 양송이 구이가 올라가 있어 맛있었다. 고수만 없었음 딱 좋았을텐데 왜 자꾸 고수를 넣어주나요 허헝..

 

료샤는 배부르다더니 자기 버거를 몇입에 다 해치우시고는 내 깜발라 구이도 뺏아먹고, 짠 거 먹었더니 단 게 먹고 싶다면서 내 모르스도 반이나 뺏아 마셨다. 뭐냐 너!!! 돼지!!!

 

..

 

밥을 먹고 나서 료샤가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좀 걷고 싶어해서 차는 아스토리야 쪽에 놔두고 운하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날이 싸늘했다. 빗방울이 곧 떨어질 것 같은 날씨였다. 체크무늬 로브 원피스는 7부 소매이긴 한데 얇은 편이라 바람 불어 좀 추웠다. 그래서 친구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재킷을 벗어주었는데 나는 평소같으면 '됐어!' 할 것을 오늘은 추워서 냉큼 받아 입었음. '엥, 너 왜 오늘은 거절 안해!' 하고 료샤가 눈을 둥그렇게 뜸. 미안하다 친구야 나도 추워서 살고 보려고 그랬어 ㅠㅠ 그래도 너는 80킬로 넘으니까 좀 괜찮겠지??

 

그래도 재킷 빌려준게 고마워서 방에 같이 와서 친구에게 따뜻한 차 한잔 우려줌. 새로 산 로모노소프 그젤 찻잔에 ㅋㅋ 아스토리야에서 준 초콜릿 곁들여서 우려주니 좋다고 잘 마셨다. 체리를 씻어 컵에 쏟아놓으니 나보고 대체 여기 와서 체리를 얼마나 많이 먹은 거냐고 묻는다. 그래서 '몰라, 매일매일 먹고 있어. 아침저녁으로...'라고 대꾸했다.

 

 

 

밤이라서 나는 잠 안 올까봐 차 대신 근처 베이커리에서 사왔던 모르스를 마시고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어서 시원하다. 모르스를 꺼내는 나를 보고 료샤가 또 혀를 찼다. 모르스는 대체 얼마나 많이 마시고 있는 거냐고 한다. 그래서 '체리처럼 하루에 한번 이상씩 먹어'라고 대꾸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여기 와서 매일매일 체리랑 모르스를 먹고 있나보다... 돌아가면 못먹잖아...

 

그 얘길 했더니 료샤가 '음, 나도 한국에 가면 노란색 맥심만 맨날 마실지도 모르니 이해해주마' 라고 했다. 그래, 그거야!!

 

..

 

이제 모레 돌아간다... 자고 나면 하루 남는 거네... 근데 내일 뇌우가 치고 비 오고 바람 분다고 한다...

 

** 이번 페테르부르크 얘기들을 '2016 페테르부르크' 폴더를 만들어 거기 옮겨놨다. 중간중간 끼어 있었던 공연과 춤 얘긴 그대로 DANCE 폴더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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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위의 그림은 미하일 브루벨의 '날아가는 악마'. 전에도 두세 번 올린 적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박물관(루스키 무제이)에 가면 볼 수 있다. 이 그림 앞에 가면 긴 의자에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몇시간이고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시간에 쫓기니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본편의 미샤는 무엇보다도 내 머리와 마음 속에서 온 인물이지만 무용수로서의 특성을 잡아내기 위해 실재하는 여러 무용수들의 일부를 모델로 차용해 왔듯 그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위해서는 브루벨 그림들을 많이 떠올렸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완벽하게 브루벨의 악마처럼 생긴 것은 아니지만(이전에 jewels와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브루벨의 악마보다는 그의 백조공주를 더 닮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난 미샤를 불러내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브루벨 그림에 서려 있는 우아하면서도 치명적이고 어딘가 매우 어둡고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분위기를 종종 떠올렸다.

 

 

그래서 본편 우주의 트로이는 브루벨 그림 사본을 오려서 몰래 간직하기도 한다. 미안해, 트로이... 뭔가 찌질해보이는구나 ㅠㅠ

 

 

발췌한 글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는 그 장편의 1부에서 가져왔다. 이 이야기는 시간적 순서로 보면 예전에 발췌해 올렸던 1부 제4장, 썰매를 타러 갔던 미샤와 트로이, 그들의 친구들 에피소드 이후이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이번 에피소드는 여름이다.

 

 

배경은 1973년 여름. 미샤는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했으며 아직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러 흑해에 놀러간다. 여기서는 흑해 전체 에피소드가 아니라 제일 앞부분인 흑해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있었던 짧은 이야기만 발췌했다. 미샤는 18세를 앞두고 있고 트로이는 석사 학위를 준비중인 대학원생이다. 둘은 문학 서클에서 만났고 금세 친구가 되었지만 트로이는 마음 속에 또다른 감정을 품고 있다. 아직은 그렇다.

 

 

여기 등장하는 트로이와 미샤의 친구들은 모두 전에 올렸던 썰매 에피소드에 나왔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http://tveye.tistory.com/4050 를 먼저 읽어보시길.

 

 

이 친구들은 표절과 푸쉬킨에 대한 이야기와 릴렌카와 메밀죽 얘기에도 등장했다. 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나 트로이가 나오는 이야기들의 링크는 지난주에 올렸던 '산짐승 같은 '레닌그라드 아이' 에피소드 아래에 나열해놓았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로 : http://tveye.tistory.com/4647

 

 

중반에 트로이와 미샤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알렉세이 파블로비치'는 미샤의 발레학교 은사인 알렉세이 클리모프를 가리킨다(물론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알리사는 전에도 몇번 등장한 적이 있다. 런던 대사관에서 kgb로 근무하게 되는 트로이의 친구인데 발췌한 이야기는 초반부라 아직 런던에 가기 전이다. 레나는 썰매 에피소드에 등장한 인물로 미샤의 팬이자 그를 사모하는 소녀이다.

 

레노츠카는 레나의 애칭이다. 미슈카는 미샤의 또다른 애칭이다. 파블릭은 파벨의 애칭이다. '로미오'라는 미샤의 별명은 그의 무대 때문에 붙었다. 썰매 에피소드에서 잠깐 나왔다.

 

흑해는 옛날부터 저 동네 사람들에겐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였다. 러시아 제국 때도 그랬고 소련 때도 그랬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여름에 그들은 함께 흑해에 갔다. 갈랴와 료카 부부, 논문을 마무리한 트로이와 알리사, 타냐와 이고리, 코스챠와 레나였다. 호수에 썰매를 타러 갔던 멤버들과 비슷했다. 졸업 후 키로프 정식 입단까지 여름 휴가를 받은 미샤도 같이 갔다. 다들 3주 동안 신나게 놀 생각이었다. 열흘 후 무슨 연수 때문에 비엔나에 가야 하는 미샤만 빼고. 그건 키로프에서 보내는 연수나 투어가 아니었지만 언제나처럼 미샤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친구들에 비해 해외로 나가기 쉬운 자기 위치를 특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을 아낀 것인지도 몰랐다.

 

 

 료카가 이틀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 모두 여덟 명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4인실 침대칸을 두 개 차지했다. 애초에는 남녀 객실로 나눴지만 타냐와 갈랴가 합심해 알리사를 트로이가 있는 칸으로 내쫓고 미샤를 자기들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쫓겨 온 알리사가 가방을 털썩 내려놓으며 트로이에게 2층 침대로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 난 2층이 무서워, 떨어질 것 같아. ”

 

“ 내가 비켜줄게, 쟤는 굼떠서 올라가려면 한나절은 걸릴 거야. ”

 

 

코스챠가 대신 2층으로 올라가면서 알리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알리사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딱딱하고 좁은 매트리스 위에 몸을 던지고 꺅 소리를 질렀다. 논문 때문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데다 최근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것 같았다.

 

 

“ 왜 그래, 여자들한테서 쫓겨난 게 서러워? 우리가 잘해줄게. 저 방에선 어차피 레나 때문에 안 되지만 우리랑 있으면 공주님이 될 수 있잖아. ”

 

“ 너희들 사이에서 공주가 된다고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 기껏해야 커피나 타주고 샌드위치나 날라주겠지. 그리곤 내 속옷이나 들춰보겠지. ”

 

“ 그러고 싶지만 파벨 안토노비치가 무서워서 엄두를 못 내겠어. ”

 

 

그들 대부분은 알리사의 약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도 많고 너무 근엄한 척하는데다 열렬한 당원이었기 때문이다.

 

 

“ 파블릭 너무 미워하지 마. 때론 나도 미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

 

“ 그럼 왜 결혼하려는 거야? ”

 

“ 결혼은 해야만 하는 거니까 그렇지. ”

 

“ 약혼녀를 사내들이 득실거리는 침대칸에 태워서 흑해에 보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남자와 꼭 결혼을 해야 해? 꼭 결혼을 해야 하는 거라면 트로이랑 해, 아니면 나랑 하든가. 이고리도 해줄 거야. 료카는 임자가 있으니 안되고 미슈카는 레나 때문에 안되지만 나머지는 다 자원할 수 있어. ”

 

“ 아, 헛소리 좀 하지 마. ”

 

 

 알리사는 신음하며 과히 깨끗해 보이지 않는 베개로 얼굴을 가렸다.

 

 

“ 너희랑은 절대 안돼. 친구랑 어떻게 잠을 자. ”

 

“ 왜 못 자? 갈랴랑 료카도 우리처럼 친구였는데. ”

 

“ 료카는 얼굴이 예세닌을 닮은 데다 몸매가 좋으니까 갈랴가 넘어간 거야. 근데 너네는 다 못난이에 료카보다도 몸매가 후져. ”

 

“ 그럼 로미오를 줄게. 미남에 몸매가 좋고 어리기까지 하잖아. 널 위해서라면 레나를 희생시키지 뭐. ”

 

“ 농담하지 마. 걘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

 

 

 베갯잇에 붙어 있는 지푸라기를 떼어내며 알리사가 갑자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노츠카가 좀 안됐어. 완전히 푹 빠져서는... 언니들이 저렇게 멍석을 깔아준다고 넘어올 애가 아닌데. ”

 

레나한텐 안됐지만 로미오는 그 여자애랑 사귀는 것 같던데? 그때 같이 췄던 애 있잖아. 빨간 머리 엄청 예쁜 애. ”

 

“ 지나이다. ”

 

“ 맞아, 지나이다. 생각 좀 해봐, 옆에 그렇게 예쁜 애들만 있는데 레나가 눈에 들어오겠어? 극장에 있는 애들은 자기들끼리 사귀고 결혼하는 게 보통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마 감당하기 힘들 거야. ”

 

“ 내 말은 그게 아니야. 걔는 뭔가 문제가 있어. ”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잠을 청하려고 애쓰던 트로이가 처음으로 알리사 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 문제라니? 미샤가? 무슨 문제 말야? ”

 

“ 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하여튼 문제가 있어. 걘 힘든 애야. 어쩌면 모스크바로 가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

 

 

 썰매 사건 이후 알리사는 미샤에 대한 친구들의 열광과 애정에 전처럼 동참하지 않았다. 졸업 무대를 보러 가지도 않았고 어쩌다 만나도 외면하고 지나칠 뿐이었다. 그녀는 그 사고의 책임이 미샤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알리사는 똑똑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공주님으로 통했지만 트로이는 그녀가 실은 속마음이 여린데다 소꿉친구인 자신을 친남매처럼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든 트로이를 폄하하거나 괴롭히는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트로이는 그녀가 부당하게 미샤를 탓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불편했다.

 

 

 이고리가 배낭에 쑤셔 넣어 온 보드카를 한 병 꺼내자 불편한 대화가 중단되었고 모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알리사는 머리가 아프다며 음주에 끼어들지 않고 돌아누워 잠을 청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안주도 거의 없이 술을 마시고 나자 트로이는 취기로 멀미가 나서 객실 밖으로 잠깐 나갔다.

 

 

 

 객차 연결 통로로 나가자 미샤가 계단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기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붙잡지 않고도 전혀 비틀거리지 않았다. 트로이는 출입문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앉았다. 열차 바퀴와 레일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올라와 이마와 얼굴을 식혀주자 멀미가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담배 피우는 건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가 펄펄 뛸 일에 속하지 않는 거야? ”

 

“ 글쎄, 아마 펄펄 뛸 일이겠지. ”

 

“ 넌 술도 거의 안 마시잖아, 담배는 왜 피워? ”

 

“ 많이 피우지 않아. 보드카도 세 잔, 담배도 세 개비야. ”

 

 

 미샤는 반쯤 피운 담배를 창틀에 비벼 끄더니 레일 너머로 버렸다. 바람 때문에 빗질하지 않은 머리가 검은 커튼처럼 부드럽게 나부꼈다. 그의 육체 모든 곳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런 요소가 있었다. 멈춰 있지 않는 그 무엇, 끊임없는 움직임, 어디론가 떠오르고 날아가려는 힘. 종종 트로이는 미샤가 어떻게 자신의 몸을 땅에 붙들어 놓을 수 있는지 경이로움을 느꼈다. 정교 사원에서는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고들 하지만 아마 그 하느님 뒤에는 악마가 있었을 것이다. 선행자를 흉내내 공기와 바람, 불꽃과 빛으로 새로운 인간을 빚었을 것이다. 우리들 뒤에 온 인간. 진화한 인간. 하지만 레닌과 소비에트가 자랑스럽게 선전하는 새로운 인간형과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존재.

 

 

미샤가 그의 곁에 와 앉았다.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담배 대신 과일 사탕을 꺼내서 트로이에게 주었다.

 

 

“ 먹어, 멀미에 좋을 테니까. ”

 

“ 넌 이런 거 안 먹잖아. 레나가 줬지? ”

 

“ 갈랴가. ”

 

 

미샤가 하품을 하더니 트로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 좀 잘게. ”

 

“ 왜 안 들어가고 여기서? ”

 

“ 객실이 더워. ”

 

 

 트로이는 사랑에 빠진 레나와 극성스럽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두 여자를 떠올리며 웃고 싶은 것을 참았다. 그는 레나가 조금도 가엾지 않았다. 미샤가 여자를 사귄다면 타냐의 말대로 극장의 발레리나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의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미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가 이름을 알 필요도 없는 여자들과 사귀고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그래온 게 분명하듯이.

 

 

 미샤가 어깨에 기대어 자는 동안 트로이는 불꽃과 자갈을 튀기며 철로를 달려가는 기차 바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취기와 미샤의 온기 때문에 졸음이 밀려왔다. 꾸벅꾸벅 졸기 직전에 그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강물 위로 원들이 불타고 있어

새로 온 인간, 새로 온 짐승

날아가는 악마, 앉아 있는 악마.

브루벨의 악마.

그건 악마가 아니었어, 브루벨은 취했고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그건 악마가 아니라 새로 온 천사였어.

 

 

 

 그는 자기가 무슨 헛소리를 적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머리가 아팠다. 미샤가 기대고 있는 어깨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수첩을 닫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눈앞에 알리사가 서 있었다.

 

 

“ 여기서 그렇게 웅크리고 자면 근육이 다 뭉칠 거야. 객실로 들어가. ”

 

“ 응, 조금만 있다가 들어갈게. ”

 

 

 알리사는 그에게 기대어 자고 있는 미샤를 굳어진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 깨우지 마. 잠이 모자란 것 같아. ”

 

“ 갈랴한테서 도망쳐 나왔겠지. ”

 

“ 레나가 아니고? ”

 

얜 레나한테는 관심도 없어. 누나들이 못살게 구는 게 귀찮을 뿐이지. ”

 

“ 그럼 객실 다시 바꿔줘. ”

 

“ 그러려고 나온 거야. ”

 

 

알리사가 반쯤 무릎을 꿇더니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 한 손을 뻗어 미샤의 이마와 뺨을 엄마처럼 부드럽게 쓸었던 것이다. 갈색 눈에 우울하고 슬픈 표정이 떠올랐다.

 

 

“ 얜 고아야. 우리한테 안 왔으면 좋았을 걸. ”

 

“ 무슨 뜻이야? ”

 

“ 볼쇼이로 갔어야 했다구. ”

 

“ 미샤는 모스크바를 좋아하지 않았어. 원래 여기 남으려고 했었어. ”

 

“ 그건 상관없어. ”

 

 

 그녀는 전형적인 알리사다운 말투로 얘기했다. 아무런 논리도 이유도 없이, 이해할 수 없는 확신에 차서 상대를 얼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하며 우울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쨌든 다행이야. 여름 지나고 시즌이 시작되면 바빠질 테니까. 우리 같은 건 잊겠지. 모임에도 오지 않을 거야. 잘됐어. ”

 

“ 그래도 친구잖아. ”

 

“ 친구는 너처럼 행동하지 않아. ”

 

 

알리사의 시선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그는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 그게 무슨 소리야? ”

 

“ 무슨 소리긴. 너처럼 그렇게 응석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얘기야. ”

 

 

 그 말과 함께 알리사가 미샤를 세차게 흔들어 깨웠다.

 

 

“ 그만 일어나, 객실에 가서 자. 차장이 오고 있어. 이고리네로 가라구. ”

 

 

 미샤는 잠시 후 눈을 뜨더니 짜증을 내지도 않고 일어났다. 졸린 얼굴로 갈랴와 레나가 있는 객실 방향을 힐끗 쳐다봤다가 알리사를 보더니 고마운 듯 뺨에 키스를 하고 남자들이 있는 객실로 갔다.

 

 

 알리사가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트로이의 등을 떠밀었다.

 

 

“ 가서 이고리랑 코스챠 좀 말려. 계속 퍼마시고 있으니까. 술 냄새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숨을 쉴 수가 없었어. ”

 

“ 파벨은 왜 안 오는 거야? 휴가 아니었어? ”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이제 내 결혼 얘기 하지 말자. 파블릭 얘기도 절대 하지 마. 우리 놀러 가는 거니까. ”

 

 

 트로이는 소꿉친구를 쳐다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알리사가 결혼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벨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혼할 필요 없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알리사가 파벨과 결혼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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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젊은이와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http://tveye.tistory.com/2390)를 발췌했을 때 언급한 적이 있다. 조역이긴 했지만 내게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인물이었고 언젠가는 그녀에 대해 따로 글을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긴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많은데 대체 언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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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무리하자니 좀 섭섭해서. 브루벨 그림 하나 더. 트로이가 쓴 시에도 잠깐 등장하는 '앉아있는 악마'

이 그림은 모스크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에 있다.

 

 

 

 

 

 

 

 

이건 러시아 박물관의 브루벨 전시실에서 내가 직접 찍은 사진. 실내에서 플래쉬 없이 찍어서 색은 좀 노르스름하게 나왔다.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이 전시실. 그런 장소가 러시아 박물관에는 여기 말고 한군데가 더 있다. 그 전시실은 트로이의 이야기에도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브루벨, 악마의 두상.

 

 

 

 

 

그리고... 친구들하고 어떻게 자느냐고 투덜대던 알리사가 료카와 갈랴 부부 얘기에 '료카는 예세닌을 닮았잖아'라고 하는 이유는.. 예세닌이 이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사도라 던컨과 결혼한 적이 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시인이다. 트로이와 알리사, 친구들 모두 비밀문학 서클이고 예세닌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세닌을 닮았다!'라는 것은 료카에게는 크나큰 칭찬임 :)

 

예세닌의 최후와 그의 시에 대해 예전에 몇번 포스팅한 적이 있다. 블로그에서 예세닌으로 검색하면 몇개 나온다. 마로조프와 미샤가 등장하는 단편을 쓸때 당초에는 예세닌의 시를 에피그라프로 차용할 생각이었고 쓰는 내내 그의 시에 등장하는 눈의 이미지를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예세닌의 시는 그 단편에 비해 너무 부드럽고 순수하고 맑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예세닌 대신 아흐마토바의 시로 대체했다.

 

예세닌의 그 시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1524

 

 

 

예세닌 사진 한 장 더 .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시인이라 러시아인들이 매우 사랑하는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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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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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5. 9. 15. 19:54

러시아 박물관 창 밖 풍경 russia2015. 9. 15. 19:54

 

 

지난 7월. 페테르부르크. 루스끼 무제이 (러시아 박물관, 혹은 러시아 미술관)

 

옛날엔 에르미타주를 더 좋아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 박물관이 더 좋다. 그래서 페테르부르크에 갈 때마다 여긴 꼭 들르고, 에르미타주는 이제 2번 가면 1번 정도 들른다.

 

2층의 어느 전시실 창문 너머로 바라본 바깥 풍경. 울타리 안쪽은 미하일로프스키 공원. 건너편으로 보이는 곳은 예술 광장.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연한 녹색의 돔은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 카톨릭 성당이다. 그곳은 나의 비밀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페테르부르크에 갈 때마다 꼭 그곳에 들러 초를 켠다. 일종의 의식이기도 하다.

 

다녀온 지 두달밖에 안됐지만 다시 가고 싶네. 이 박물관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루벨 그림과 천사 이콘이 있다. 이 박물관은 해가 갈 수록 내게 매우 소중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몇년전 썼던 미샤와 트로이가 나오는 장편의 결말을 이곳, 러시아 박물관의 전시실에서 맺기도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시실에서 저 바깥으로, 예술광장으로, 그리고 네프스키 거리로 이동하면서 끝난다. 눈 내리는 2월. 러시아. 표트르의 도시. 한때 레닌그라드로 불렸던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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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5. 6. 28. 22:54

잿빛 겨울의 예술 광장 russia2015. 6. 28. 22:54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날씨가 매우 궂은 날이라 러시아 박물관에 갔었다. 하늘은 흐렸고 곧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이후 눈보라처럼 변했다.

 

여기는 그랜드 호텔 유럽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러시아 박물관과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사이에 있는 예술 광장. 푸쉬킨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이기도 하다. 그 푸쉬킨 동상 사진은 전에 여러번 올린 적이 있다. 페테르부르크에 갈 때마다 거의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다. 푸쉬킨에게 먼저 인사하고, 그 다음에 청동기마상 쪽으로 가서 표트르에게 인사한다. 시인이 황제보다 먼저인 법이다!

 

이때 춥고 습하고 날씨 때문에 힘들었는데 막상 사진을 보면 또 좋아보인단 말이야... (그래도 페테르부르크의 눈 오는 날씨는 정말 괴로워 ㅠㅠ)

 

 

 

 

맞은편에 보이는 울타리와 건물이 러시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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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그저께와 어제는 기온이 많이 낮았지만 하늘이 쨍한 날씨였으나..

오늘은 기온은 영하 3도에서 1도 정도로 따스했지만... 눈이 펄펄 내리고.. 아침엔 쌓였고 낮엔 기온 올라가서 그 눈이 다 녹으면서 길바닥은 진창으로... (이 진창 너무 싫다 ㅠㅠ)

 

이렇게 눈 오고 날씨 안 좋은 날은 무조건 박물관 가는 날이라서. 아껴뒀던 러시아 박물관 다녀옴. 숙소에서 10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좋긴 한데...

 

오늘 가는 날이 장날인지. 전시실 몇개는 수리 중이고 원래 있던 그림들 중 다수가 투어를 갔거나 아니면 전시품 교체 기간에 딱 걸렸나보다(소장품이 많아서 가끔 그림들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슬프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프 박스트 그림은 두 점 밖에 없고.. 제일 좋아하는 supper도 없고.. 크람스코이와 니콜라이 게도 오늘은 없고... 어흑... 대신 소모프를 비롯한 화가 그림들이 추가되긴 했지만... 나에게 박스트를 돌려달라고요 흐흑,..

 

20세기 소련 미술의 경우에는 오히려 추가되고 변경된 그림들이 전에 본 것들보다 맘에 들었다.

 

브루벨은 그래도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었다 ㅠㅠ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러시아 박물관에 자꾸자꾸 가는 이유가 뭔데요 ㅠ 박스트와 브루벨, 게, 그리고 금발의 가브리엘 이콘 때문인데 ㅠㅠ 그래도 브루벨과 가브리엘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나와서는... 오늘 정말 운이 없었다. 코뉴셴나야 거리 쪽에 로모노소프 가게가 하나 더 있는데(보통은 네프스키 중심가에 있는 쪽으로 간다만) 거기로 가려고 했다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정신도 없고 눈 때문에 그랬는지 아무리 걸어도 가게가 안 보이고.. 평소엔 잘만 들렀던 곳인데. 멍때리고 걷다가 골목을 잘못 들었더니 빠져나가는 골목이 없어서 어느새 모이카 운하 지나 궁전광장에 와 있고 ㅠ 완전히 뺑뺑이 돌고 고생했다. 나 초짜 관광객도 아니고 심지어 여기 살았던 사람인데 왜 이러지 ㅠㅠ

 

눈오고 길 진창이고 바람 불고.. 하여튼 많이 고생. 너무 녹초. 배도 고프고..

그래서 오늘 찻잔 사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감.

 

그러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뺑뺑이 돌고 녹초가 된 가운데 너무 배가 고파서 헤매다 우연히 발견해 들어간 카페가 정말 최고였다. 간판과 유머러스한 메모에 끌려 들어간 곳인데 여기서 최고의 우하(생선 수프)를 만났다. 그리고 미소가 해사하고 매우 친절한 젊은 남자 직원도 만났고, 카페는 너무나 내 마음에 들었다. 맛있는 거 먹고 몸 녹이고 친절한 대화를 나누고 나오자 길 잃고 뺑뺑이 돌았던 고통이 눈녹듯 스러졌다. 그 카페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올려보겠다.

 

그럼 오늘의 사진 몇 장. 오늘은 날씨 안 좋아서 dslr 대신 후지x 디카 들고 나가서 화질은 그냥저냥. 여기는 눈 올때랑 안 올때랑 동네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니까 ㅠㅠ 전에 올렸던 이 동네 사진들과 비교해보세요~

 

맨 위는 진눈깨비에 가까운 눈이 쏟아지고 있는 오전의 예술 광장.

 

 

우리 푸쉬킨도 눈 맞고 있다 ㅠㅠ

 

눈 오는 가운데에도 꿋꿋하게 푸쉬킨 머리랑 어깨엔 비둘기가 앉아 있다. 네놈들 저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기나 하냐!!

 

 

푸쉬킨.. 춥겠다 ㅠㅠ

 

근데 클릭을 잘못했나, 서명이 왜 이렇게 안쪽으로 밀렸지.. 고치려니 귀찮다. 그냥 놔두자 ㅠ

 

 

 

 

 

전시 보고 러시아 박물관에서 나오는 길. 열린 정문 너머로 푸쉬킨이 보인다.

 

 

 

그리보예도프 운하 쪽으로 나왔다. 도자기 가게 가려고... 이때만 해도 몰랐지, 뺑뺑이 돌 줄은..

 

지금도 뭔가에 홀린 것 같네. 왜 길을 못 찾았지 ㅠㅠ 왜 모이카 운하를 삥삥이 돌아 궁전광장 쪽으로 갔나 어흑.. 조금 덜 걸어보려고 엘리세예프 가게 근처에 있는 로모노소프 대신 코뉴셴나야 근방 로모노소프로 가려고 했던 건데 서너배는 더 걸었네.. 뺑뺑이 도느라.. 어헝 ㅠ

 

 

 

 

 

하여튼 그렇게 오늘의 메모는 끝.

내일은 제발 날씨가 좋기를... 내일은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발레 돈키호테를 본다. 레베제프의 충격적인(나쁜 의미 ㅠ) 라 바야데르 때문에 빈정 상했지만..(http://tveye.tistory.com/3504) 내일은 이반 바실리예프가 바질을 추니까 설마 괜찮겠지..!!

 

그러고 보니 한국은 이미 자정이 넘어서 설날이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추가 : 그 카페에 대한 소개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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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4. 3. 31. 22:34

역시 여기는 뻬쩨르, 눈이 펄펄 russia2014. 3. 31. 22:34

 

 

러시아 박물관 갔다가 나온 순간 깜짝 놀랐다. 분명 들어가기 전까진 파랗고 맑은 하늘이었지만 나와보니 눈이 펄펄 흩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 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비행기 타는 날 서울은 22도였나... 여긴 겨울. 역시 뻬쩨르. 변화무쌍한 날씨.

 

다행히 코트 안에 후드 짚업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잽싸게 후드를 뒤집어쓰고 장갑을 꼈다. 이럴 줄 알았지. 모자와 장갑과 우산 없이는 나다닐 수 없는 뻬쩨르의 3월.

 

춥긴 했지만 우중충한 이 날씨를 보니 어쩐지 다시 뻬쩨르에 와 있다는 생각에 조금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러시아 미술관에서 좋아하는 그림들을 실컷 보고 나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러시아 미술관은 워낙 기다랗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그만 반대편 출구로 나와버렸다. 정문 쪽 출구로 나왔어야 했는데 미하일로프스키 정원 쪽으로 나와서 하는 수 없이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쪽으로 나와 빙 돌아서 가야 했다.

 

 

파릇파릇한 풀포기가 자라기 시작한 땅바닥 위로 사정없이 눈이 펄펄..

 

그러나 아주 추운 날씨가 아니어서 눈은 곧 녹아버렸다.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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