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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writing'에 해당되는 글 235

  1. 2023.03.05 삭제된 파편들 : 키스, 트렌치코트, 티백, 보위와 또다른 것들
  2. 2023.02.26 순간온수기, 여기 + 14
  3. 2023.02.12 It must have been love, 물이 흘러가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곳
  4. 2022.12.31 일년, 다 쓴 직후
  5. 2022.12.10 쓰는 중 : 한밤의 네바 강변을 걷는 게냐, 하와이가 아님 +
  6. 2022.12.03 쓰는 중 : 백야, 지붕 위에서 햇볕 쬐기, 간이 계단 + 2
  7. 2022.11.12 쓰는 중 : 키라와 갈런드, 마에스트로와 여왕님
  8. 2022.10.29 쓰는 중 : 근위대장, 레닌그라드 인텔리겐치야, 일린 2
  9. 2022.10.22 쓰는 중 : 주변 인물들 - 갈런드, 이라, 루키얀 6
  10. 2022.09.18 쓰는 중 - 기사도와 샴페인 +
  11. 2022.09.03 쓰는 중 - 슈퍼모델 브로마이드, 법랑 주전자 6
  12. 2022.08.27 쓰는 중 - 연고, 미하일 파르포로비치 4
  13. 2022.08.06 쓰는 중 - 모피코트와 스카프 2
  14. 2022.04.30 오랜 친구들, 여전히 지나와 말썽쟁이 모드 + 알펜골드와 올리비에
  15. 2022.04.15 리다의 눈빛 + 들어낸 부분/쓰는 과정
  16. 2022.04.02 극장에서의 짧은 재회들, 한밤중의 전화 2
  17. 2022.03.25 디스코텍과 록클럽보다 쿨한 곳, 반드시 스위트룸 6
  18. 2022.03.05 쓰는 중 -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의 2층 카페, 싸구려 칩시와 트윅스 5
  19. 2022.02.12 쓰는 중 : 에브로파와 아스토리야, 차 한 잔과 엽서 부치기 2
  20. 2021.11.02 눈의 여왕 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 (03)
  21. 2021.11.02 눈의 여왕 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 (02)
  22. 2021.11.02 눈의 여왕 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 (01)
  23. 2021.10.17 잠시 - 글을 마치고
  24. 2021.10.16 깃털과 자작나무와 맥도날드 2
  25. 2021.10.09 결국은 엠티비와 무즈티비 2

 

 

 

 

 

글을 쓰는 과정이란 지우고 고치고 돌아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아주 꼼꼼하게 갈고닦고 양생을 하고 퇴고하는 타입이 아니고, 좀더 직관적인 편이고 때로는 내용만큼 리듬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 쓰고 나서보다는 쓰는 중간중간 고치는 비중이 더 높다. 글을 완성하고 퇴고까지 마치고 나면, 이후에는 웬만하면 고치지 않는다. 몇년 후 다시 읽었을 때 정말 심각한 오류나 오타, 비문이 발견되는 경우만 제외하면 '아 이건 정말 오글거린다' 라거나 '이 내용은 지금 보니 빼거나 이렇게 고치는 게 좋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도 가급적 그냥 놔둔다. 부득이하게 고치게 될 경우에는 손댄 연도와 날짜로 새로운 버전을 따로 만들어둔다. 실수와 부끄러움과 미성숙함이 드러난다 해도 분명 그 과거에 그렇게 쓰던 순간에는 최선을 다했고 거기에는 그 순간의 내가 온전하게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혹은 미래의 내가 그 과거의 나를 수정하고 부정할 자격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미래의 시선은 별개로 하고, 쓰는 과정에서, 그리고 쓰고 난 직후의 퇴고 과정에서는 물론 단어와 문장, 때로는 문단들과 에피소드들을 고치고 더 심한 경우에는 아예 들어낸다. 그런 문장과 문단들은 완전히 삭제되는 경우도 있고 보완되거나 새롭게 구성되어 다른 식으로 녹아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 이후에는, 분명 맨 처음 쓰는 순간의 감각에 부합했기에 나타났다가 정련의 과정에서 잘려나가 바닥에 남은 것들이 생겨난다. 사금을 체로 쳐내고 남은 모래알들. 오랜 옛날 펜으로 노트에 썼을 때는 지우개나 화이트로 지웠기 때문에 그런 흔적들은 사라져버리곤 했다. 사실 이제는 노트로 쓴 글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 차이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기술의 덕을 볼 수 있다. 삭제한 부분들 중 대부분은 모아둔다. 그 파편들 역시 쓰는 과정이고 또 선택받지는 못했을지라도 모종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아래 접어둔 문장과 문단 몇 개는 작년 말에 마친 중편을 쓰는 중, 그리고 퇴고의 과정에서 잘려나간 파편들이다. 발췌한 내용들이 전부는 아니다. 조금 더 있다. 나는 이것들에 '구름 파편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설의 제목에 '구름'이란 단어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파편들은 이대로 남을 수도 있고 이후에 올 다른 글들에서 새롭게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 혹은, 이미 퇴고 과정에서 조금 다른 식으로 보완되고 재구성되어 녹아들어간 부분도 있다. 말 그대로, 파편들이다. 순서는 뒤섞여 있다. 물론 나는 이 글들을 쓰고 삭제한 순서를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구름 파편들이 된 이 시점에서 그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구름 파편들 : 삭제한 문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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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그에게 사과하지 않는다. 그가 미안하다고 하기 전에 키스를 하는 것처럼. 그 키스로 모든 것을 무효화시키는 것처럼.

 

 

 

 

*   *   * 

 

 

 

 

 미샤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갔었다. 런던도 원래 12일로 다녀오려다 일정이 늘어났던 거라서 옷가지도 별로 챙겨가지 않았다. 아침 일기예보에서 모스크바에는 눈이 온다고 했었다. 눈 오는 쉐레메티예보 공항과 비가 쏟아지는 풀코보, 어느 쪽이 더 최악인지 모르겠다. 아마 우산도 가지고 있지 않겠지. 어딜 가든 우산이나 스카프를 잃어버리는 사람이니까. 우리 집에도 그가 놓고 간 우산이 두 개나 있었다. 그 트렌치코트는 리다가 스크랩할 만큼 값비싸고 근사한 옷이지만 이런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런던은 여기만큼 춥지 않았으니 두툼한 코트를 새로 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냥 맞고 다녔을 것이다. 하와이와 레닌그라드 운운하며 캔버스화를 야단칠 자격이 없는 인간이다. 폐렴이 도지든 말든 그냥 그렇게 다니겠지. 갈런드는 그가 어떤 옷을 입고 갔는지, 캐리어에 뭘 챙겨갔는지 모를 것이다.

 

 

 

 

*   *   * 

 

 

 

 

나는 그가 여자친구를 두어 달마다 갈아치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나와 미샤의 관계를 안다는 것도.

 

 

 

 

*   *   * 

 

 

 

 

 반쯤은 오기로. 미샤는 차를 좋아했다. 키라와 내가 가장 차를 잘 우린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갈런드가 우려준 차는 구정물 같다고, 미국인들은 차를 우릴 줄 모른다고 했다. 똑같은 티백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내가 우려준 립톤이나 라벨 없는 싸구려 티백도 군소리하지 않고 잘 마셨다.

 

 

 

 

 

*   *   * 

 

 

 

 

 

 “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

 

 생각지 않게 뒷좌석의 긴 머리 여자애가 불쑥 물었다.

 

 

 

 

 

*   *   * 

 

 

 

 

 

 

 리다는 내가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을 뻗어 파나소닉 오디오를 켰을 뿐이었다. 아마 라디오였을 것이다. 잠깐 잡음이 섞이더니 이내 노래가 흘러나왔다.

 

 

 

Hallo, Spaceboy, you're sleepy now

Your silhouette is so stationary...

 

 

 

 내가 채널을 돌리려고 했을 때 리다가 내 손을 가볍게 탁 쳤다.

 

 

 

 “ 놔둬. 나 이 노래 좋아. ”

 “ 난 별론데. ”

 “ 예전엔 보위 싫어하지 않았잖아. ”

 “ 이 노래는 별로야. ”

 “ , 너무 게이 같아서? 보위 하나로도 넘쳐나는데 펫 샵 보이스까지 얹었으니까? ”

 “ 펫 샵 보이스가 피처링한 건 줄 몰랐어. ”

 

 

 

 

Don't you want to be free

Do you like girls or boys

It's confusing these days

But Moondust will cover you

And the chaos is killing me

 

 

 

 

 

*   *   *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얘기 중에 나왔던 말이었지만 난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었으니까. 어쩌면 그건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얘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   *   * 

 

 

 

 

 

 마스카라와 아이라인을 지우면 예전의 그 짓궂고 활기찬 광채가 되살아날 것 같았다

 

 

 

 

 

*   *   * 

 

 

 

 

 

 문득 미샤의 시선이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말없이 오래 주시할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간지럽거나 오글거리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불편하다는 느낌이 든 적도 거의 없었다. 그는 원한다면 자기 시선만으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고 불편하게 만들 수 있었고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자리에서는 거리낌 없이 그렇게 했지만 내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의 눈빛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사진은 몇년 전 겨울, 아스토리야 호텔 카페 로툰다. 내 기억 속에서 아주 차갑고 흐릿한 안개로 휩싸여 있는 시기이다. 저때 나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았다. 저때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아마 그날의 메모를 적으려고 가지고 내려갔거나, 쓰려고 구상만 했지만 도저히 손댈 수 없는 글을 만지고 있었을 것이다. 완성된 글에서 나온 파편들과 마찬가지로, 쓰기 전의 구상 과정에서도 무수한 파편들이 생겨난다. 그 파편들을 엮어내는 과정은 지난하다.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영영 시작하지 못하기도 한다. 

 

 

 

사실 오늘 새 글을 시작해보려 했는데 아직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쓰는 과정'을 떠올리다 적게 되었다. 

:
Posted by liontamer
2023. 2. 26. 15:31

순간온수기, 여기 + about writing2023. 2. 26. 15:31

 

 

 

 

 

작년 말에 마친 중편 후반부 일부를 발췌해본다. 주인공 게냐가 자기 원룸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순간온수기와 '여기'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은 1997년 11월, 페테르부르크이다. 발췌문은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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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누 거품이 눈에 들어가서 따갑고 쓰렸다. 때맞춰 온수가 끊겼다. 급속도로 차갑게 식어버린 물로 머리와 눈만 씻어낸 후 대충 타월로 몸을 닦았다. 순간온수기를 달았어야 했다. 리다는 내가 이 집을 얻어 독립해 나왔을 때 뛸 듯이 좋아했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 독일제 필터가 부착된 샤워기와 순간온수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난 괜찮은데, 어차피 욕조도 없고, 샤워는 금방 하니까라고 대꾸하면 리다는 토라져서 너는 남자니까 괜찮지만 나는 아니란 말이야라고 투덜댔다.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나는 결국 순간온수기를 설치하지 않았다. 아르다노프의 별장과 저택에는 신형 배관들로 무장하고 대리석과 금장으로 장식한 욕조들이 넘쳐나겠지, 순간온수기 따위는 필요 없을 것이다. 녹물은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미샤는 녹물이나 띄엄띄엄 나오는 온수 같은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판탄카 자택에는 언제든 온수가 나오는 욕조와 자쿠지까지 딸린 욕실이 두 개 있었고 심지어 발레단 스튜디오에도 배관을 교체해 제대로 설치한 샤워부스를 따로 만들어 두었지만 여기 오면 찔끔찔끔 나오는 찬물로도 잘 씻었고 녹물 때문에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리다가 투덜거릴 때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미샤가 폐렴에 걸렸을 때 나는 처음으로 순간온수기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욕실에서 나오자 차디찬 바람과 몰아쳐 들어오는 빗방울 때문에 온몸에 오한이 일었다. 창문을 닫고 손에 잡히는 티셔츠와 복서를 주워입으면서 나는 갑작스럽게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가 단 한 번도 이 집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판탄카 자택과 모스크바의 신형 아파트, 어느 부호가 선물해 준 지중해 섬의 작은 별장, 가는 곳마다 초청받는 고급호텔의 좋은 방들, 그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기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전혀 이질적으로 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내가 창문을 열든 말든 개의치 않았고 이웃집들로부터 양파와 감자가 기름에 타는 냄새, 이상한 향신료 가득한 스튜와 묵은 양배추 수프 냄새가 스며들어오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소음, 술주정뱅이의 구역질 소리, 안뜰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욕설과 비명이 흘러들어와도 전혀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베란다 건조대에 널어둔 빨래를 내가 그대로 잡아채 입을 때도 아무런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옷도 이따금 거기다 걸어두었다. 내 방 옷걸이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강풍이 몰아쳐 스카프가 맞은편 건물의 어느 베란다로 날아가 버렸을 때도 웃기만 했다. 리다였다면 내 에르메스!’ 하고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을 것이다.

 

 

 

 아마 그건 이곳이 여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옆집 노파와 아랫집 창녀에게 정중하게 굴고 녹물로 샤워를 하고 스프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얄팍한 매트리스가 깔린 좁은 침대와 올 풀린 담요가 아무렇게나 걸쳐진 낡은 소파에도 리츠와 에브로파의 고급 침대라도 되는 양 거리낌 없이 눕는 건, 역설적으로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자기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이 낫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것보다는.

 

 

 

 나는 얼마 전 지하철역 근처 가전제품 가게에 순간온수기를 보러 갔었다. 그리 비싸지 않고 나빠 보이지도 않는 물건을 발견했지만 사지는 않았다. 필요도 없는 브리타 필터만 샀다. 아마 나는 끝까지 순간온수기를 달지 않을 것이다. 리다에게 보여주었던 불공평한 무신경함 대신 분노와 고의로.

 
 
 
 

 

 

 

 

 

 

 

 

...

 

 

 

 

첫 문단에 언급되는 아르다노프는 리다의 남편 이름. 에브로파는 그랜드 호텔 유럽이다. 게냐가 순간온수기를 보러 갔던 지하철역 옆 가게에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나도 몇번 갔고 거기서 브리타 간이 정수기와 필터, 그리고 큰맘먹고 테팔 전기포트를 샀었다. 

 

 

 

사진들은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만, 하여튼 팔로우하는 인테리어 sns들의 알고리즘이 가져다준 욕실 사진 두 장. 

 

 

 

 

 

 

:
Posted by liontamer

 

 

 

 

 

 

작년 마지막 날 끝낸 글은 일년 동안 썼다. 이 글은 그 앞에 썼던 두 개의 단편과 마찬가지로 90년대 후반, 비오고 눈내리는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당시 내가 페테르부르크의 기숙사 방에서 듣곤 했던 노래들을 들었다. 특히 이 소설을 쓰면서는 세 곡의 노래가 메인 테마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노래, Roxette의 It must have been love이다. 이 노래는 영화 프리티 우먼의 주제곡이었고 실은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보다 몇년은 더 일찍 나왔지만 당시 내가 지낼 때도 뮤비 채널에서 종종 나왔고 라디오에서도 자주 나왔다. 그전부터 좋아했던 노래이기도 했고, 이 소설에서는 단순히 노래 자체뿐만 아니라 몇몇 이유로 주요 테마 곡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노래가 언급된 소설 후반부 몇 페이지를 아래 접어둔다. 그 전에... 

 

 

 

이 글의 중반부 일부는 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moonage daydream :: 쓰는 중 : 백야, 지붕 위에서 햇볕 쬐기, 간이 계단 + (tistory.com

 

쓰는 중 : 백야, 지붕 위에서 햇볕 쬐기, 간이 계단 +

여행 가기 전에 이 글을 마치려고 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그러지 못했고 이제 다시 이어서 쓰고 있다. 발췌한 부분은 지금 쓰고 있는 마지막 장의 일부. 게냐가 미샤와 함께 살고 있는 판탄카

tveye.tistory.com

 

 

 

 

 

맨 앞 부분도 예전에 발췌했던 내용의 맨 뒤와 겹친다. moonage daydream :: 쓰는 중 : 한밤의 네바 강변을 걷는 게냐, 하와이가 아님 + (tistory.com

 

쓰는 중 : 한밤의 네바 강변을 걷는 게냐, 하와이가 아님 +

이번 주말에 이 글을 다 마치려고 했지만 종일 여러가지 일로 바빴고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조금밖에 쓰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접어든 게냐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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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노래에 대한 아래 이야기는 4장 말미에 나온다. 주인공 게냐는 1~3장에서는 옛 여자친구 리다와 재회하고, 4장에서는 발레단 스튜디오로 가서 연습을 하다가 퇴근해 홀로 네바 강변을 지나서 궁전광장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나온다. 그리고 지나가는 낡은 자동차를 불러세워 택시를 잡는다. (당시에는 마피아가 운영하는 정식 택시들보다는 이렇게 길거리에 지나가는 일반 자동차를 불러서 흥정을 하고 택시를 타곤 했다) 소설은 아직 화폐개혁(물가 상승이 너무 심해서 98년에 천루블을 일루블로 바꿨다) 전이라 8천, 1만 등의 숫자가 오간다. 택시 기사는 라디오를 틀고 거기서 이 노래가 나온다. 노래와 영화 모두 소설과 연관이 있어서 영화 장면이 나오는 공식 뮤직비디오 링크를 아래 걸어둔다. 

 

 

 

 

 

 

 

 

 

 

 

 

 

글은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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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류장에는 비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이쪽에는 버스가 몇 대 서지 않고 운행 간격도 긴 편인데 마침 운 좋게 트롤리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를 타면 네프스키 대로 쪽으로 나간다. 알렉산드린스키 공원 앞에서 내리면 운하를 따라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를 탈 수도 있다. 나는 판탄카의 그 집을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다. 한두 시간 후면 미샤가 돌아오겠지. 그는 내일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바빴고 해외 출장이 많았으니까 스케줄 조정 따윈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볼쇼이와의 급한 미팅이 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언제나 그를 찾았다. 볼쇼이에서도, 스타니슬라프스키 극장에서도, 크레믈린에서도. 두 시에 도착해 볼쇼이로 갔다면 오후 늦은 미팅이었을 것이다. 그런 급한 미팅을 소집했다면, 미샤가 당일에 런던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다면 최소한 시장이나 문화부 고위직쯤은 끼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만찬도 같이 해야 했겠지. 자고 오는 게 나았을 텐데. 메트로폴이든 새로 생긴 외국 호텔이든, 아니, 모스크바 강가의 호화스런 별장과 아파트, 요새, 그 어디든. 제대로 된 궁전들. 리다의 어머니는 아르다노프가 지어준 별장을 궁전이라 부른다지만 어쨌든 모스크바 마피아가 훨씬 윗길이다.

 

 

 

 

 머릿속이 멍멍했고 속이 울렁거렸다. 미샤가 오늘 돌아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트롤리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채우고 떠났다.

 

 
 
 

 

 낡은 지굴리 한 대가 천천히 굴러왔다. 아마도 코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비에 쫄딱 젖고 있는 사람들을 노린 것 같았다. 어딘지 안나를 좀 닮은 동양계 여자애 두 명이 지굴리를 멈춰 세우고 흥정을 했다. 리고프스키 대로 쪽으로 가는 모양이었는데 우리 말이 서툴렀다. 잠시 자기들끼리 모국어로 뭐라고 의논을 했는데 아마도 택시비가 너무 비싼데 어떻게 할지, 혹은 저 험상궂은 기사를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여자애들이 이 시간에 나라시를 잡을 때의 걱정거리는 비슷비슷하기 마련이니까. 보온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될 방수 점퍼, 허술한 베레모와 백팩을 보니 아마도 유학생들인 것 같았다. 리다라면 이 아가씨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금세 알아맞히겠지. 여자애들이 좀처럼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자 기사가 욕지거리를 하며 차를 출발시키려고 했다. 나는 앞으로 나가서 지굴리 앞창문을 두들겼다.

 

 

 

 

 

 “ 엘리자로프스카야, 8. ”

 

 “ 12천은 줘야지. ”

 

 “ 12천 같은 소리. 메르세데스라도 되나? 8천이면 떡을 치는데. ”

 

 “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입이 왜 이렇게 더러워. 1만에 타든가, 다른 차 알아보시든가. ”

 

 

 

 

 나는 여자애들을 힐끗 돌아보았다.

 

 

 

 

 

 “ 1. 리고프스키 쪽으로 돌아서 쟤들 내려주고 가는 걸로 하죠. ”

 

 “ 대단한 왕자님 납셨네. ”

 

 “ 싫으면 말고. ”

 

 

 

 

 기사는 다시 욕설을 몇 마디 내뱉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밤의 1만 루블이란 거절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나는 뒷문을 열고 여자애들에게 타라고 했다. 어차피 내가 가는 방향이니까 중간에 내려주겠다고 했다. 여자들은 주저했다. 기사와 내가 한패라고 의심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빗줄기가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버스가 올 기색은 전혀 없었으므로 결국 용기를 낸 듯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며 차에 탔다.

 

 

 

 

 

 기사는 40대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기름때로 찌든 양복 재킷을 걸치고 얼룩덜룩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각지 않은 벌이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제 욕을 하지 않았고 빙글빙글 웃으며 묻지도 않았는데 막심이라면서 자기 이름까지 말해주고는 그래, 아가씨들은 리고프스키 어디쯤 내려주면 되나?’하고 물었다. 좀 더 말을 잘 알아듣는 쪽인 듯한 긴 머리 여자애가 즉시 외워놓은 문장을 읊듯 대로 진입하자마자 첫번째 횡단보도에서 내려주세요라고 대답했다.

 

 

 

 

 “ 그쪽엔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도로변인데. ”

 

 

 “ 아니, 괜찮아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

 

 

 

 

 막심은 친구들 좋지. 나도 옛날엔 친구 많았는데로 시작해 그 나이대 남자들 특유의 횡설수설 웅얼거리는 어조로 자기 옛날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뒷좌석 여자애들은 아마 거의 알아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조금 듣다가 지겨워진 나는 라디오를 켜달라고 했다. 막심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며 투덜댔다.

 

 

 

 

새파란 애송이가 나보고 아주 길을 돌아서 가라, 아가씨들을 태워라, 심지어 라디오까지 켜라고 하네. 말세야 말세. 이게 다 나라 팔아먹은 고르바초프 새끼 때문이야. 예에, 당연히 틀어드려야지요, 1만을 내기로 하셨으니까요. 요즘은 돈 있는 사람이 왕인데. 젠장, 도통 적응이 안 된다니까. 라디오 틀어주는 값으로 천쯤은 더 달라고 해야 하는데 내가 옛날 사람이라 남세스러워서 그걸 못하네. 에브로파 플류스? 자네 같은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걸 듣지? 양키들 노래? ”

 

 

 “ 상관없어요. 아무거나. ”

 

 

 

 

막심이 라디오를 틀었다. 에브로파 플류스였다. 영화 프리티 우먼의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Lay a whisper on my pillow

Leave the winter on the ground

I wake up lonely, this air of silence

In the bedroom and all around.

 

 

 

 

 

 나는 오래전에 리다와 함께 이 영화를 봤다. 더빙이 엉망인 복사판 비디오 테이프로, 그때는 아직 아브토보에서 엄마와 바냐와 함께 살 때였다. 바냐는 자기를 끼워주지 않는다고 몹시 화를 냈었다. 비디오 플레이어도 절반은 자기 몫이고 테이프를 복사해온 것도 자기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리다는 단호했다. ‘넌 미성년자잖아. 창녀가 나오는 영화는 안돼라고 딱 잘라 말하고는 바냐를 쫓아냈다. 바냐는 집 앞으로만 나가도 창녀가 우글거리는데 기껏 할리우드 영화가 안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투덜댔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얘기였지만 어쨌든 우리는 비디오를 구실로 컴컴한 방에 딱 붙어 앉아 애정행각을 벌이려던 참이었으므로 골치 아픈 동생을 끼워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리다가 영화에 푹 빠져버리는 바람에 결국 키스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화가 너무 재미있고 줄리아 로버츠가 너무 예쁘다고, 사운드트랙도 너무 좋다고 종알거렸다. 결국 그녀는 바냐를 시켜서 복사본 테이프를 하나 더 구해오게 했고 프리모르스카야 지하철역 근처 좌판에서 이 노래가 들어 있는 록시트의 테이프도 샀다. 리다는 일본에 가게 되면 가라오케에 가서 꼭 이 노래를 부르겠다면서 가사를 열심히 외웠다. 노트에 일일이 적어가며 외우더니 마치 구술시험이라도 보는 것처럼 내게 자기가 외는 가사가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까지 부탁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그냥 시를 읊듯이 줄줄이 소리 내어 외울 뿐이었다. 그녀는 우리는 둘 다 음치니까라고 변명했다. 뭐 절반쯤 맞았다. 리다는 무슨 노래건 간에 음정과 박자가 엉망이었으니까.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직접 노래하기보다는 잘 부르는 노래를 듣거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편이 훨씬 좋았다.

 

 

 

 

 

It must have been love,

but it's over now

It must have been good.

but I lost it somehow

It must have been love,

but it's over now

From the moment we touched,

till the time had run out

 

 

 

 

 

 정작 내게 이 노래를 불러준 건 미샤였다. 아니, 내게 불러준 건 아니다. 그저 둘이 함께 있었던 것뿐이다. 그때 우리는 지붕 위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6월이었고 늦은 저녁까지 햇살이 따스했다.

 

 

 

 

 

Make believing, we're together

That I'm sheltered by your heart

But in and outside, I turn to water

Like a teardrop in your palm

And it's a hard winter's day,

I dream away

 

 

 

 

 

 그가 왜 그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겨울 노래인데. 하긴 그는 때와 장소에 구애받는 적이 별로 없었고 우리 노래든 팝이든 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노래 실력이 상당히 좋았다. 방송이나 음악계 지인들이 초청한 갈라 콘서트에서 한두 곡씩 부르기도 했다. 음반 녹음 제의도 여러 번 들어왔었다. 심지어 소니뮤직에서도. 갈런드는 작년에 그가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과 주제곡 녹음 제안이 세트로 들어온 것을 거절했을 때 상심한 나머지 이런 기회를 걷어차다니 마에스트로도 어쩔 수 없는 러시아 영혼이 분명하다, 자기는 이런 건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푸념했다. 미샤는 이건 영혼의 문제가 아니고 철저히 육체적인 문제라고, 그런 영화를 찍으려면 적어도 몇 달은 L.A에 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 몸이 하나라서 불가능하다고 대꾸했다. 그 대답에 갈런드는 러시아 영혼에 대한 철학적 절망에서 잽싸게 벗어났고 그럼 노래만이라도 녹음하라고 강권했다. 미샤는 녹음 부스에 들어가는 게 갇히는 기분이라 싫다고 딱 잘랐다. 하지만 며칠 후 예세닌과 마야코프스키의 시를 녹음해달라는 어느 출판사의 요청은 흔쾌히 받아들여 허름한 라디오 방송국 녹음 부스에 온종일 들어가 있었으므로 갈런드는 역시 러시아 영혼이 문제라고 재차 절망하게 되었다. 미샤는 그건 경우가 달라. 시잖아라고 대꾸했지만 갈런드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나는 어째선지 소니에서 페테르부르크로 건너와 녹음을 하자고 했다면 미샤가 받아들였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미샤는 자기를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좀 약한 구석이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뉴욕 보그만 봐도 그렇다. 바쁜 와중에도 모레 봉기 광장과 판탄카 쪽에서 화보를 찍기로 했으니까.

 

 

 

 

 

It must have been love,

but it's over now

It's where the water flows,

It's where the wind blows.

 

 

 

 

 

 그때 미샤는 얄팍한 흰색 리넨 바지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지붕 위에 사지를 쭉 뻗고 누워 볕을 쬐고 있었다. 이따금 그는 정말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해가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고 붉은색과 회색 지붕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기 시작하면서 어디선가 습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미샤가 노래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카디건을 건네주었다. 백야의 변덕스러운 소나기를 몰고 올 것 같은 바람이었고 그는 봄 막바지에 폐렴으로 고생했었으니까. 나는 그가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약물 때문에 폐 어딘가에 손상을 입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안나가 말해줬던 것 같다. 내가 콩쿠르에서 미샤와 만났던 이야기를 열띠게 쏟아냈을 때. 안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다리 망가졌다는 건 헛소문일걸. 고문을 받은 건 맞는데 그냥 주사 조금 맞은 거였댔어. 그렇게 막 때리고 부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대. 폐 때문에 무대에 길게 안 올라가는 거랬어다리라도 부러진 양 엄살을 피우며 비싸게 군다는 듯한 그 말투는 묘하게 세레브랴코프와 닮아 있었다. 아마 정말 그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옮겨준 건지도 몰랐다. 그녀는 나보다 오랫동안 세레브랴코프에게서 배웠으니까.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미샤는 절대로,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수용소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내가 아는 건 그가 폐렴에서 회복된지 두 달도 되지 않았고 바람이 불든 소나기가 쏟아지든 그냥 그렇게 계속 지붕 위에 누워있고도 남을 사람이란 사실 뿐이었다. 미샤는 내 카디건을 걸쳤지만 단추를 잠그지는 않았다. 옷을 건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키스를 했다. 그는 항상 그랬다. 노래를 자기 마음대로 잘라내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불렀고 무엇이든 고마울 때는 키스를 했다. 미안할 때는, 사과를 한 후에 키스를 했다. 하긴 그가 나에게 뭔가 직접적으로 사과할 일을 했던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 앞에서 그가 주워왔던 고양이를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키라에게 맡겨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사 대신 키스를 한 적도 없었다.

 

 

 

 

 우리는 그 지붕 위에서 자주 일광욕을 했고 여름이 지난 후에도 운하의 야경을 보러 올라가곤 했다. 하지만 거기서 사랑을 나눈 적은 없었다. 어쨌든 지붕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옆 건물 어디서든 다른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거실에 달린 커다란 테라스를 통해 지붕으로 나갔고 내려올 때는 침실 쪽의 발코니로 통하는 간이 계단을 이용했다. 둘 다 미샤의 집을 통해서만 오르내릴 수 있었다. 미샤는 가끔 지붕 쪽 문을 잠그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내가 열쇠를 한 벌씩 더 가졌다. 건물 공용 출입문은 옥상 반대편에 있었으니 아래층 사람들과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다른 건물에서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도둑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맨 처음 지붕에서 침실로 곧장 내려왔을 때 나는 미샤가 그 계단을 따로 설치한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미샤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부터 있었다고 했다. ‘그거랑 트로이츠키 사원 쿠폴. 그 두 개 때문에 이 집을 고른 건데라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가 언제나처럼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전망과 비밀 사다리 때문에 판탄카의 고급 주택을 사는 건 아르다노프가 궁전 같은 다차를 짓는 것만큼이나 쉬울 테니까.

 

 

 

 

 나는 키스를 하는 대신 지붕을 가로질러 침실 발코니로 내려왔다. 미샤는 별말도 없이 따라왔다. 간이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세찬 바람이 불어와서 내 카디건이 그의 어깨 위에서 검은 날개처럼 펄럭였다. 그때 나는 발코니에 선 채 그를 올려다보며 단추를 잠그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했던 것 같다. 폐렴에 대해서도. 미샤는 웃기만 했다. 침실로 들어와 커튼을 친 후에야 나는 키스를 돌려줄 수 있었고 그때 미샤가 한 박자 늦은 대꾸를 했다.

 

 

 

 

 “ 어차피 벗을 건데 뭐하러. ”

 

 

 

 

 나는 다시 한번 폐렴에 대해 얘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웃었다. 두 눈에 파란 불꽃처럼 광채가 돌았다. 폐렴과 열쇠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나를 놀려주고 싶은지 모델처럼 어깨를 젖히며 카디건을 벗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그에겐 고양이뿐만 아니라 그런 공작새 같은 면도 있었다. 약간 부아가 치민 내가 두 눈과 입술에 키스하며 그 장난스러운 모델 흉내를 막았을 때 미샤는 더 이상 나를 놀리지 않았다. 키스와 포옹이 이어지는 동안 내 뺨과 목덜미에 자기 얼굴을 마주 대고 가볍게 비비며 아주 잠깐, 그 노래의 후렴구를 다시 불렀을 뿐이었다.

 

 

 

 

It must have been love,

but it's over now

It's where the water flows,

It's where the wind blows.

 

 

 

 

 나는 그에게 여름에 겨울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모자라 이런 순간에 이미 끝나버린 사랑에 대해 흥얼거리다니 너무하지 않느냐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사랑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나도, 그도 그런 감정을 믿어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는 그저 그 마지막 소절이 마음에 들어서 되풀이하는 것뿐이었으니까. 물이 흘러가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는 언제나 바람과 구름이 나오는 노래들을 좋아했으니까.

 
 

 

 

 

 

 

 

 

 

 

 

 

 

....

 

 

 

 

 

 

에브로파 플류스는 당시 우리가 가끔 듣던 라디오 채널이다. 지금도 있다. 여기서는 팝이 많이 나왔다. 비슷한 계열의 엘도라디오는 좀더 올드 팝에 조용한 계열이었다. 쥬인은 요즘도 엘도 라디오 앱을 깔아서 노래를 듣고 가끔 내게도 들려주는데 저 옛날 나왔던 곡들과 크게 변화가 없다. 

 

 

 

 

 

 

 

 

 

 

사진은 모두 @vkus.kakao 

 

 

 

위 사진은 뭔가 백야 시즌에 옥상 지붕에서 일광욕하다가 저렇게 술도 한잔 마시고 좋을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 미샤는 술을 못 마신다는 게 함정... 

 

 

 

....

 

 

 

 

It must have been love와 Roxette의 다른 곡들에 대해서는 사실 예전에 별도 포스팅으로 올린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moonage daydream :: Roxette 몇 곡 + 사랑과 추억을 담아, 옛 이야기 조금 (tistory.com)

 

Roxette 몇 곡 + 사랑과 추억을 담아, 옛 이야기 조금

오랜 옛날의 일이다. 내가 샀던 첫번째 cd는 스웨덴 팝락 듀오 Roxette의 Look sharp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큰맘 먹고 cd 플레이어를 사주셨다. 당시엔 cd가 대세로 등장할 무렵이었

tveye.tistory.com

 

 

 

 

 

이 노래의 원래 버전 링크 두개를 아래 달아둔다. 맨첨 페르 게슬레가 이 노래를 작곡했을 때 후반부의 And it's a hard winter's day,I dream away 가사는 사실 it's the hard Christmas day 였고 이건 원래 크리스마스 노래였는데, 영화 주제곡 요청을 받고 이 노래를 떠올려서 가사를 조금 수정했다고 한다. 아래 노래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로 나온다. 메인 보컬 마리가 부른 노래, 그리고 맨처음 페르가 작곡한 후 자기가 불러보며 데모로 녹음한 버전. 사실 나는 페르의 데모도 무척 좋아한다. (데모는 뮤비가 당연히 없어서 노래만 나옴)

 

 

 

 

 

 

 

 

 

 

 

 

 

 

 

 

 

 

 


... (사족) 마지막 부분의 가사이자 소설 속에서 게냐가 조금 의역해 말하는 '물이 흘러가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을 이 소설 제목으로 붙일까 끝까지 망설였는데 사실 전체 내용에 딱 들어맞지는 않아서 다른 제목을 붙였다. 저 문구가 시적이긴 한데, 좀 아쉽긴 하다. 낙착된 제목은 완전히 반대로 좀 우울하고 일그러진 느낌이라... 지금도 좀 다른 제목이 생각나면 좋겠긴 하다. 

:
Posted by liontamer
2022. 12. 31. 00:36

일년, 다 쓴 직후 about writing2022. 12. 31. 00:36

 

 

 

 



일년 동안 써온 글을 방금 마쳤다. 매우 집중해서 썼고, 일단 파일을 저장하고 닫아두었다. 오늘 쓴 마지막 페이지들은 역시 머리가 아니라 손이 썼고, 그렇기 때문에 온전하지는 않다. 어떻게 끝날지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 끝날지는 몰랐다. 거의 마지막까지도. 그런 글들이 있다.


많이 손을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 쓴 부분은. 그리고 물론, 전체도. 하지만 일단 글을 닫고,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나는 이 글을 올해 새해에 시작한 줄 알았는데 일년간의 메모를 뒤져보니 작년 12.31에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12월 31일로 막 넘어온 자정 즈음 끝냈다.


이제 자러 가야겠다. 머리가 멍하고 온몸이 아프고 쑤신다. 손목도 아프다. 약을 먹었어야 했나보다. 지금이라도 먹고 자야겠다.

 

 

사진은 Pavel Demichev

:
Posted by liontamer



 



이번 주말에 이 글을 다 마치려고 했지만 종일 여러가지 일로 바빴고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조금밖에 쓰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접어든 게냐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데다 생각지 않았던 게냐의 아파트 이웃이 자신의 목소리를 잠깐 내고 있어 약간 더 길어지고 있다. 단편이나 아예 철저히 계산해서 의도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면 보통은 이렇게 글과 나 사이에 호흡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둔다. 아마 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그편이 더 잘 맞는다. 

 

 

 

발췌한 글은 발레단 스튜디오에서 나와서 밤중에 혼자 네바 강변과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를 지나 궁전다리를 건너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게냐, 그리고 그가 미샤에 대해 떠올리는 생각들을 담고 있다. 이 글은 앞의 6~70%는 게냐와 리다의 이야기,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게냐와 미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미샤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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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길을 건너 강변 쪽으로 갔다. 버스와 차들이 도로에 꽉 차 있었다. 이 길은 항상 밀린다. 강바람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코트 주머니에서 스카프를 꺼내 목에 두르자 한기가 좀 가셨다. 잉크처럼 짙은 강물 위로 불빛이 색색의 사탕처럼 흩뿌려져 있었고 궁전 다리 너머로 차디찬 청록색의 에르미타주가 반쯤 잘린 케이크처럼 늘어서 있었다. 트롤리버스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내 곁을 지나쳐갔다.

 



 정류장을 지나칠 때 나는 리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예전에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눈을 돌려봤자 소용없었다. 건너편에는 리다의 모교가 있었고 젠체하는 로모노소프 동상이 어둠 속에서도 번쩍거리는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은 언제나 리다의 자리였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는 이쪽으로 산책하거나 걸어서 강을 건너는 것을 피하곤 했다. 마치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처럼.

 

 



 궁전 다리를 거의 다 건넜을 때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네바 강과 에르미타주, 궁전 광장의 기념 원주, 트롤리버스의 전선들 모두 검고 뿌연 물안개에 휩싸여 극히 일부만 허공에 둥둥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캔버스화를 신지 않았어야 했다. 금세 물이 스며들어와 발이 젖었다. 미샤가 화를 내겠지. 그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입든 바깥에서 뭘 하고 다니든 참견하지 않았지만 신발만은 예외였다. 추운 날씨에 비와 눈이 새는 신발을 신는 무용수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는 페테르부르크지 하와이가 아니야. 심지어 스튜디오에 덧신과 방수 부츠를 여러 벌 갖다 놓고는 허술한 신발을 신고 온 무용수가 퇴근할 때면 그것을 억지로 신겨서 보냈다. 무용수의 발 앞에서는 완전히 구식이 되었다. 패션계의 뮤즈고 뭐고 그런 면에서는 바가노바나 마린스키의 교사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정류장에는 비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이쪽에는 버스가 몇 대 서지 않고 운행 간격도 긴 편인데 마침 운 좋게 트롤리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를 타면 네프스키 대로 쪽으로 나간다. 알렉산드린스키 공원 앞에서 내리면 운하를 따라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를 탈 수도 있다. 나는 판탄카의 그 집을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다. 한두 시간 후면 미샤가 돌아오겠지. 그는 내일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바빴고 해외 출장이 많았으니까 스케줄 조정 따윈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볼쇼이와의 급한 미팅이 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언제나 그를 찾았다. 볼쇼이에서도, 스타니슬라프스키 극장에서도, 크레믈린에서도. 두 시에 도착해 볼쇼이로 갔다면 오후 늦은 미팅이었을 것이다. 그런 급한 미팅을 소집했다면, 미샤가 당일에 런던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다면 최소한 시장이나 문화부 고위직쯤은 끼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만찬도 같이 해야 했겠지. 자고 오는 게 나았을 텐데. 메트로폴이든 새로 생긴 외국 호텔이든, 아니, 모스크바 강가의 호화스런 별장과 아파트, 요새, 그 어디든. 제대로 된 궁전들. 리다의 어머니는 아르다노프가 지어준 별장을 궁전이라 부른다지만 어쨌든 모스크바 마피아가 훨씬 윗길이다.

 



 

 

 

 

 

 

 

 

 

 

 

 

 

 

 

맨 위 사진은 Andrei Mikhailov 가 찍은 네바 강변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야경. 사실은 에르미타주와 궁전다리가 나와 있는 야경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내가 찍은 사진들 중엔 괜찮은게 없어(보통 한밤중엔 잘 나다니지 않고, 한여름엔 밤중이라도 밝으니 이 글의 배경인 11월 밤에 맞는 사진을 못 찾았다) 남이 찍은 사진으로. 결국 에르미타주 대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사진인데, 사실 글에 묘사는 되어 있지 않지만 게냐의 루트로 궁전다리를 건너가서 정류장 쪽으로 가면 저 풍경도 보인다.

 

 

 

 

그리고 야경은 아니지만 어쨌든 에르미타주와 궁전다리 사진, 그리고 네바 강변 사진 몇 장. 위에서부터 아래 네 장은 모두 내가 2010년 2월에 찍은 것들이다. 이미 12년도 훨씬 전이네... 이때 나는 게냐와 똑같은 루트로 걷고 있었다. 즉, 바실리 섬의 볼쇼이 대로에서부터 걸어나와 국립대학교를 지나고 네바 강변을 따라 걸어서 궁전다리를 건너 예의 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사진은 한겨울이라 눈이 잔뜩 쌓여 있었고 네바 강도 꽁꽁 얼어 있는데, 소설은 11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이런 겨울왕국 정취 따위는 전혀 없고 스산하고 음습하고 싸늘하기만 했을 것이다. 

 

 

 

 

 

 

 

 

 

 

 

 

 

 

 

 

 

 

이건 게냐가 '리다의 모교'라고 표현하고 있는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이 학교가 있기 때문에 이쪽 네바 강변은 '우니베르시쩻스까야 나베레즈나야', 즉 대학교 강변이라고 부른다. 그냥 '대학교'인 것이다. 소련 시절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이 소설이 속해 있는 우주에서는 과거 트로이와 알리사의 모교이고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 미샤의 아버지 세르게이 야스민의 모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이곳에서 두번 연수를 받았다. 저 조그만 문을 통과해 들어가곤 했다. 이 글의 배경인 90년대 후반에 왼쪽의 작은 키오스크에서는 시사저널과 동아일보 등 이미 철지난 한국 잡지와 신문을 팔았고 돈없는 유학생인 나는 항상 하염없이 그것들을 바라보며 '아, 사고 싶다'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한국 소식도, 한글 활자도 너무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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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여행 가기 전에 이 글을 마치려고 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그러지 못했고 이제 다시 이어서 쓰고 있다. 발췌한 부분은 지금 쓰고 있는 마지막 장의 일부. 게냐가 미샤와 함께 살고 있는 판탄카 운하 근처 집의 지붕에 대해,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한다. 맨앞 두 문장 뒤에는 어떤 노래와 미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앞뒤가 길어지게 되어 여기서는 생략했다. 

 

 

 

안나는 게냐의 발레학교 동기이자 마린스키에서 몇년 동안 파트너로 춤췄던 친구. 세레브랴코프는 이전 글에서 몇번 등장했듯, 미샤의 발레단 선배이자 오랜 은원 관계의 동료 무용수.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인 90년대에는 게냐와 안나가 졸업한 발레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다. 아르다노프는 리다의 남편이다. 

 

 

 

발췌문은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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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우리는 지붕 위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6월이었고 늦은 저녁까지 햇살이 따스했다.

 

 

 

.. (중략) ..

 

 

 

 

 그때 미샤는 얄팍한 흰색 리넨 바지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지붕 위에 사지를 쭉 뻗고 누워 볕을 쬐고 있었다. 이따금 그는 정말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해가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고 붉은색과 회색 지붕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기 시작하면서 어디선가 습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미샤가 노래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카디건을 건네주었다. 백야의 변덕스러운 소나기를 몰고 올 것 같은 바람이었고 그는 봄에 폐렴으로 고생했었으니까. 나는 그가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약물 때문에 폐 어딘가에 손상을 입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안나가 말해줬던 것 같다. 내가 콩쿠르에서 미샤와 만났던 이야기를 열띠게 쏟아냈을 때. 안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감옥에서 다리 망가졌다는 건 헛소문일걸. 고문을 받은 건 맞는데 그냥 주사 조금 맞은 거였댔어. 그렇게 막 때리고 부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대. 폐 때문에 무대에 길게 안 올라가는 거랬어’   다리라도 부러진 양 엄살을 피우며 비싸게 군다는 듯한 그 말투는 묘하게 세레브랴코프와 닮아 있었다. 아마 정말 그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옮겨준 건지도 몰랐다. 그녀는 나보다 오랫동안 세레브랴코프에게서 배웠으니까.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미샤는 절대로,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수용소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내가 아는 건 그가 폐렴에서 회복된지 두 달도 되지 않았고 바람이 불든 소나기가 쏟아지든 그냥 그렇게 계속 지붕 위에 누워있고도 남을 사람이란 사실 뿐이었다. 미샤는 내 카디건을 걸쳤지만 단추를 잠그지는 않았다. 옷을 건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키스를 했다. 그는 항상 그랬다. 노래를 자기 마음대로 잘라내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불렀고 무엇이든 고마울 때는 키스를 했다. 미안할 때는, 사과를 한 후에 키스를 했다. 하긴 그가 나에게 뭔가 직접적으로 사과할 일을 했던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 앞에서 그가 주워왔던 고양이를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키라에게 맡겨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사 대신 키스를 한 적도 없었다

 

 

 

 

 우리는 그 지붕 위에서 자주 일광욕을 했고 여름이 지난 후에도 운하의 야경을 보러 올라가곤 했다. 하지만 거기서 사랑을 나눈 적은 없었다. 어쨌든 지붕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옆 건물 어디서든 다른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거실에 달린 커다란 테라스를 통해 지붕으로 나갔고 내려올 때는 침실 쪽의 발코니로 통하는 간이 계단을 이용했다. 둘 다 미샤의 집을 통해서만 오르내릴 수 있었다. 미샤는 가끔 지붕 쪽 문을 잠그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내가 열쇠를 한 벌씩 더 가졌다. 건물 공용 출입문은 옥상 반대편에 있었으니 아래층 사람들과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다른 건물에서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도둑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맨 처음 지붕에서 침실로 곧장 내려왔을 때 나는 미샤가 그 계단을 따로 설치한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미샤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부터 있었다고 했다. ‘그거랑 트로이츠키 사원 쿠폴. 그 두 개 때문에 이 집을 고른 건데 라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가 언제나처럼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전망과 비밀 사다리 때문에 판탄카의 고급 주택을 사는 건 아르다노프가 궁전 같은 다차를 짓는 것만큼이나 쉬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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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백야의 페테르부르크 건물 지붕 풍경들, 둘다 @vkus.kakao 의 사진. 실제로 페테르부르크에는 지붕 투어 프로그램들도 있는데 거주민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요즘은 좀 줄어들었다(내가 주민이라도 싫을 것 같음 ㅜㅜ) 어쨌든 레닌그라드 시절이든 지금의 페테르부르크이든 이 도시의 지붕들은 언제나 주민들이 올라가 운하를 구경하고 일광욕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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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계속 쓰고는 있는데 원래 여행가기 전에 마무리하려 했지만 오늘도 짐을 꾸리느라 이제야 컴 앞에 앉은 터라 아무래도 다 끝내지 못하고 비행기를 탈 것 같다 ㅠㅠ 나는 왜 이렇게 느려졌을까... 주말에밖에 못 쓰는데 기껏 그래봤자 하루 한페이지나 한페이지 반이 전부... ㅜㅜ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인데 못 끝내고 가려니 너무 아쉽다. 이 글을 끝내기 위해 노트북을 챙겨가야 하나 싶지만 사실 여행가면 그날그날의 메모 남기는 것도 벅차서 글을 집중해 쓸 시간이 오히려 없고, 또 겨울옷이 들어가 가방도 여유가 없으니 그냥 내일까지 쓸 수 있는만큼만 쓰고 미루려고 한다.




게냐와 그의 발레단 동료들, 그리고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계속. 바로 지난번에 올렸던 근위대장 갈런드와 일린의 뉴욕 아파트 에피소드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스튜디오에 남아 연습하던 게냐와 야근 중인 갈런드, 그리고 키라와 미샤, 아주 조금 지나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발췌문은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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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콜릿을 먹으며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갈런드는 반주 테이프를 앞으로 다시 감아놓고 피아노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서류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런 걸 보면 꼭 무용수 같았다. 무용 교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군대 경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도 갈런드는 남아 있었다. 도대체 언제 퇴근하려나 궁금해하고 있는데 그가 불쑥 공항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 시간에 공항은 왜요? 급한 출장이라도? ”

 

아니, 마에스트로를 데리러. 키라 모이세예브나한테 같이 가자고 했는데 좀 망설이더라고. 너도 끼면 갈 것 같아서. ”

 

 

 

 

나를 포함한 발레단 남자 무용수들은 모두 갈런드가 키라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는데, 그의 능력과 선량한 성품을 인정하더라도 역시 우리 키라 누님이 아깝다고 여겼다. 그래서 어쩌다 갈런드가 키라와 언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라고 쿡쿡 웃곤 했다. 키라는 운영국장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도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갈런드가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큘러하게!’따위의 영어로 무대 미술 작업에 간섭할 때면 우리 말로 얘기하라고요!’ 하며 버럭 화를 냈다. 갈런드는 그렇게 러시아어에 유창하면서도 키라와 얘기를 할 때는 단어를 까먹거나 말을 무척 더듬었고 자기도 모르게 영어가 계속 튀어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나는 갈런드의 이 드문 순진한 모습에 웃었을 거고 그럼 같이 가죠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귀에 들어온 건 키라가 아니라 마에스트로라는 단어였다.

 

 

 

미샤는 내일 오기로 되어 있지 않았어요? ”

 

원래는 그랬지. 근데 볼쇼이랑 급한 미팅이 잡혀서 오늘 두 시에 도착하는 모스크바 비행기로 바꿨어. 미팅이야 잘 마쳤고, 그쪽에선 자고 가라고 붙잡았는데 마에스트로는 그 동네를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냥 밤 비행기로 돌아오기로 했어. 간단하게 저녁 먹고 공항으로 가면 시간 딱 맞을 거야, 열 시 도착이거든. ”

 

 

 

 

키라는 갈런드를 딱히 맘에 들어 한 적이 없고 낯을 가리는 타입이니 내가 끼면 같이 갈 거라는 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 갈런드가 이렇게 나서지 않았다면 자기 혼자서라도 미샤를 데리러 갈 것이다. 키라는 미샤가 운전대를 잡으면 질색을 했다. 옛날에 가브릴로프에서 미샤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숲 멀리 나갔다가 나무를 들이받고 죽을 뻔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기 직업이 화가인지 무대 미술가인지, 그것도 아니면 미샤의 운전기사인지 도대체 모르겠다고 투덜거리곤 했지만 다른 사람이 미샤를 태워다 주면 실망하는 기색을 보였다. 미샤는 이 도시에서라면 언제 어디서든 마피아가 모는 택시를 겁 없이 잡아타고, 혹은 그냥 걸어서라도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우리 발레단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든 그를 돌봐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너도나도 운전대를 잡아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고, 잠자리를 봐주고 차를 우려다 주고 스카프와 코트를 받아주려고 몰려들었다. 지나는 그런 건 좀 타고나는 것 같다고, 아주 옛날부터 주변 사람들 모두 그랬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곧 나가봐야 한다고, 미샤가 일찍 돌아올 줄 몰랐다고 둘러댔다. 갈런드는 눈에 띄게 상심한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에게 지나이다가 언제 돌아오는지 물었다.

 

 

, 우리 팅커벨 여왕님은 모레 오후 비행기야. 아침에 통화했는데 파리는 이제 지겹다면서 어찌나 보르쉬 타령을 하시던지. ”

 

지나는 제가 데리러 갈 수 있어요. ”

 

마에스트로 대신 여왕님을 모시겠다 이거지. 현명한 판단이야. ”

 

 

 

때로 나는 갈런드의 농담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건 미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냥 입을 다물었다.

 

 

 

 






...








사진은, 아무 것도 안 올리면 섭섭하니까 그냥 대충 올렸음. 둘다 2017년 10월에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찍었다. 엄청 날씨 안 좋던 때라 여행 가 있던 내내 비가 왔었다. 이 글이 11월초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 날씨는 좀 비슷하구나 싶어서 올려봄. 맨 위는 모이카 운하. 바로 위는 풀코보 공항에서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롯 비행기에서 이륙 기다리며 찍음. 이때도 비가 왔다. 비행기 사진을 올린 이유는 미샤가 모스크바에서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고 이 글에서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기 때문에 ㅎㅎㅎ




마에스트로는 갈런드가 미샤를 부르는 별명(이전 발췌문에 언급했지만 미샤는 이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팅커벨도 갈런드가 지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그러나 정작 사모하는 키라에게는 말도 못 놓고 부칭까지 꼬박꼬박 붙여 부르고 있음.




마지막에 언급되는 팅커벨 여왕님 지나는 이 글이 전개되는 시기에 파리 출장을 한 달 동안 가 있다. 이 글 이틀 후를 배경으로 하는 '눈의 여왕' 에서 게냐는 정말로 지나를 픽업하러 풀코보 공항에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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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쓰는 중이다. 이제 조금만 더 쓰면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1월이 되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지금 속도를 보면 여행 가기 전에 마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일 것 같다. 

 

 

지난주에 발췌한 파트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 조금. 이제 게냐는 여전히 갈런드와, 스타니슬라프 일린, 그리고 미샤에 대해 얘기한다. 

 

 

아르다노프는 리다의 남편 이름. 키라는 미샤의 친구이자 화가.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는 일린의 제대로 된 이름. 스탄카는 미샤가 그를 부르는 애칭이다. 글의 배경은 1997년 11월 초, 페테르부르크이다. 이때 일린은 뉴욕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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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그 절망과 경이의 구렁텅이에 반쯤 잠긴 채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물을 마시고 있는데 갈런드가 다가와 두툼한 타월을 한 장 어깨에 씌워주고는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하루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됐다, 뭘 먹기는 했느냐고 물으면서. 생각해보니 아점으로 먹었던 부체르브로드 한 조각과 오렌지 주스 외엔 입에 댄 것이 없었다. 차 한 잔, 에비앙 한 병.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문득 아르다노프가 비서를 시켜서 갈런드에게 연락했었다는 리다의 말이 떠올랐다. 그 인간 아주 여우 같더라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놓고 협의 같은 건 할 수 없고 너한테 얘기를 전해줄 수도 없다는 거야.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에 대해서라면 갈런드는 누구보다도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하긴 그 충실함은 온전히 마에스트로를 향한 것이겠지만. 지나는 그를 근위대장이라고 불렀고 키라는 약간 비아냥을 섞어서 집사라고 불렀는데 갈런드는 100% 양키인 자신에게 그런 별명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맞받았지만 내심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샤에 대한 그의 헌신과 애정은 때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도 항상 친근하게 대했고 우리들이 예의를 차리느라, 혹은 지나의 표현대로라면 레닌그라드 인텔리겐치야식으로 행동하느라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일들도 탁 터놓고 거리낌 없이 말하곤 했다. 며칠 전 그는 나에게 ABT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앞으로도 제안들은 계속 올 거야. 넌 좋은 무용수니까. 하지만 이런 시기에 이런 조건은 드물어. 게다가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내년까지 계약을 연장했으니까 네겐 큰 버팀목이 돼줄 거고. 현지에 내 편이 돼 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지. 마에스트로는 작년에 그분을 보냈을 때부터 아마 그 생각을 했을 거야

 

 

 

 갈런드는 내가 갈 거라고 80% 정도는 확신하고 있었다. 20%를 남겨놓은 이유는 내가 낯선 환경과 모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가 일린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전형적인 갈런드식 자본주의 마케팅 조언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을 것이다. 나 역시 계속 고민 중이었으니까. 나는 스타니슬라프 일린과는 뉴욕과 런던에서 딱 두 번 만났다. 일린은 미샤보다도 나이가 한참 많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정말 까마득한 대선배였고 모스크바 토박이라 예전에는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는 미샤와 아주 막역한 사이였다. 미샤가 체포되었을 때 모스크바 예술가들을 규합해 구명 운동의 선봉에 나섰고 그것 때문에 구금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미샤는 일린을 아주 좋아했고 눈에 띄게 의지했다. 그토록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그럴 수 있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난번 뉴욕에서 만났을 때는 '나의 모스크바 깃발', '작은 닻' 따위의 온갖 별명을 즉석에서 쏟아내며 마음껏 애정을 표현했다. 좀처럼 오글거리는 표현을 하지 않고 과도한 애칭도 잘 부르지 않는 사람이 그런 말을 쓰는 것이 낯설었다. 심지어 알콜 분해가 안 되는 체질 때문에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못하는 샴페인을 몇 잔이나 마시기까지 했다. 또 실려 가고 싶으냐,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느냐고 지나가 야단을 쳤지만 미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탄카랑 마시면 괜찮아. 안 취해라고 우겼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미샤가 뻗어버려서 나와 지나는 그를 일린의 침대에 내버려 두고 둘이서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일린은 그나마 소파라도 있어 다행이다, 안 그러면 자기는 식탁 위에서 자야 했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굳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아마 내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미샤와 내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그와 미샤의 관계를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설령 둘이 모종의 친밀한 사이였던 적이 있었다 해도 그건 이미 오래전의 일일 것이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였다. 그런데 갈런드가 일린에 대해 얘기했을 때 나는 뒤늦게 기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아니, 의심 때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질투도 아니었다. 나는 미샤에 대해 그런 식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나 외에도 무수한 애인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건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나는 그가 그런 식으로 영위해 온 삶에 우연히 들렀다가 잠시 머무르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러니까 갈런드가 일린을 언급했을 때 기분이 나빴던 건 과거와는 관련이 없다. 뉴욕 현지에 내 편을 만들어놓기 위해서미샤가 일린을 미리 보내놓았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어린애라도 되는 것처럼. 일린이 ABT의 상주 안무가로 계약해 뉴욕으로 떠났던 건 작년 초였다. 내가 여기 합류한 지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나는 마치 물건처럼 취급되는 기분이 들었다. 리다라면 팔아먹을 만한 상품이라고 하겠지. 그런 마케팅 전략의 장기 말이 되는 건 새로운 자본주의 천국을 경멸하는 레닌그라드 인텔리겐치야식 풋내기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기분이 나빠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는 그 레닌그라드 인텔리겐치야 세대로 자란 적도 없고 그들의 문화도 잘 모른다. 그저 토박이일 뿐이다. 미샤나 지나처럼 이 도시에 대한 이상한 애정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장기적 투자의 대상으로 거론될 수 있다는 건 갈런드나 리다의 논리대로 지금 같은 시기에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그는 내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그저 뉴욕의 제의에 대해 아주 객관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내가 가겠다면 갈런드를 통해 모든 절차를 처리해주겠다고. 일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식의 호의와 돌봄을 받으면서까지 뉴욕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갈런드가 일린에 대해 얘기했을 때 한순간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간 건 그 뉴욕 아파트, 일린이 뉴욕의 살인적 물가와 집 구하기의 어려움을 빗대어 메가폴리스의 다락방이라고 부르던 그 작은 아파트의 침실과 노란 불빛이 깜박이던 램프 스탠드, 이상하게 눈에 거슬리던 파란색 모포와 거기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 뻗어 있던 미샤, 협소한 거실에 우격다짐으로 끼워 맞춘 듯한 작은 소파였다. 그 소파는 폭도 좁은데다 팔걸이가 기형적으로 높아서 지나처럼 조그만 여자조차도 거기 누워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일린은 식탁 위에서 자야 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뉴욕이든 ABT든 스타니슬라프 일린이든 엿이나 먹으라고 욕을 퍼붓고 싶었고 그런 자신의 분노가 당혹스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일린의 조그만 뉴욕 스튜디오 아파트랑 비슷한 스타일의 사진을 올려보고 싶었으나 게으름의 결과 그냥 대충 인테리어 알고리즘을 뒤져서 건져온, 느낌이 약간 비슷한(조그맣다는 의미로) 암스테르담의 어느 스튜디오 아파트 사진들. 모두 @karrrst의 사진들이다. 소파 크기는 얼추 비슷할 것 같지만 이 소파는 팔걸이도 낮고 그렇게까지 기형적이진 않아서 눕기 불편하진 않을 것 같음. 

 

 

 

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90년대 후반에 일린은 절친한 미샤의 네트워킹 + 본인의 능력 등으로 뉴욕에 몇년 머무르며 안무가 겸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뉴욕 월세가 원체 비싸기도 하거니와, 일터에서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구하다 보니 조그만 원룸 스튜디오에서 지내는데 타고난 사교성 덕분에 그 작은 아파트는 거의 항상 지인들과 친구들, 제자 무용수들로 우글우글... 모스크바에 있는 원래 자기 아파트는 아마 세를 주거나 했을 것 같다. 작은딸 아냐가 아빠 보러 뉴욕에 왔다가 조그만 아파트를 보고 실망해서 '아빠, 뉴욕이 좋다더니 집은 모스크바보다 너무 안 좋아' 라고 투덜거렸을 것만 같다. 라라는 그런 마음이 들었어도 그냥 '아빠 뉴욕은 그래도 전망은 좋네' 라고 둘러서 말했을 듯. (장녀와 작은딸의 차이랄까...) 사실 게냐가 몇년 전부터 독립해 나와서 페테르부르크 도심 변두리에 얻은 아파트도 이렇게 조그만 원룸 스튜디오이기 때문에(그래도 이것보다는 크지만) 그의 눈에는 일린의 원룸 아파트가 별로 불편해보이지는 않았을지도... (하긴 판탄카에 있는 미샤네 집은 엄청 널찍하긴 하다) 뜬금없이 집 얘기 가득...

 

 

 

 

 

 

...

 

 

ABT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이 글과 바로 직전에 마쳤던 단편 '눈의 여왕'은 게냐가 미샤를 통해서 뉴욕의 이 발레단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고 고민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다른 이야기들도 함께. 90년대 소련 붕괴 후 러시아 무용수들이 뉴욕이나 유럽으로 많이들 이적하곤 했다. 게냐의 이 고민에 대한 자초지종과 결론을 자세하게 적어나간 것이 '눈의 여왕'이다. 미샤는 이미 ABT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 유수의 극장이나 발레단과 협업도 많이 하고 원체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 있지만 본거지는 페테르부르크에 두고 있으며 자기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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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장에 접어들었고 꾸준히 쓰고 있다. 4장에서는 게냐가 리다와 헤어져서 발레단 스튜디오로 돌아온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대화에서 언급된다. 4장의 전반부는 그래서 좀 여유가 있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분위기가 된다. 아무래도 1~3장 내내 게냐와 리다 둘이 팽팽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췌한 문단들에 등장하는 갈런드, 이라, 루키얀은 모두 예전 글에 나왔거나 아주 잠깐이라도 언급된 적이 있는 인물들이다. 갈런드는 미국인으로 미샤의 발레단 운영국장이며 이라는 발레단 막내이다. 둘은 이 소설 직전에 썼던 '눈의 여왕'에서 잠깐 언급된 적이 있다. 루키얀은 재작년에 쓴 미니 단편 '판탄카의 루키얀'의 주인공으로 마린스키 극장 마사지사이다. 미하일 파르포로비치/세르게예비치는 미샤. 제냐는 예브게니의 애칭이다. 주인공 게냐의 본명이 예브게니인데 이 이름의 가장 흔한 애칭이 제냐라 주변 동료들은 그를 제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라가 얘기하는 페초린과 벨라의 아다지오는 소설 중에서 미샤가 안무한 '우리 시대의 영웅' 발레에 나오는 2인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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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늦은 시간이었고 갈런드와 이라 외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레프 도진의 신작을 보러 말르이 드라마 극장에 갔다고 했다. 갈런드는 말을 알아듣기 힘들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연극은 보러 가지 않는 것이 신조였다. 러시아어라면 우리보다도 더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므로 말도 안 되는 이유란 생각이 들었지만, 오페라도 절대 보러 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라는 내가 들어오자 반색했다. 당연히 극장에 간 줄 알았다면서 자기랑 연습 좀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 미하일 파르포... 세르게예비치는 내일까지 안 오시잖아요. 제냐, 당신은 춰봤죠, 페초린? ”

 

 “ 나도 그거 전막은 안 춰봤는데. ”

 

 “ 벨라랑 추는 아다지오는? ”

 

 “ 그건 춰봤어, 작년 갈라에서. ”

 

 

 

 그녀는 뛸 듯이 좋아했다. 며칠 후 엔테베 방송에 콜랴와 함께 나가서 그 아다지오를 추게 되어 있다고 했다. 원래는 류바가 나가기로 했는데 발목을 다쳤다, 이 기회에 나가보라고 갈런드가 자신을 밀어 넣었는데 춰본 적이 없는 배역이다, 연예인들도 많이 나오고 생방송이라 걱정이 된다, 콜랴는 방송 출연이고 뭐고 전혀 긴장도 안 한다, 연습 좀 더 하자 해도 이제 잘하는데 뭐하면서 극장에 가버렸다고 조잘거렸다. 콜랴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는 매사에 낙천적이었고 이미 6년째 있으면서 미샤의 웬만한 레퍼토리는 다 춰본데다 파트너가 좀 헐겁더라도 자신의 화려한 테크닉으로 쉽사리 커버하는 타입이었으니까. 보통 때 같으면 미샤가 직접 지도해줬을 테지만 그는 사흘째 런던에 가 있었고 내일 아침에나 돌아올 예정이었다. 페초린과 벨라의 2인무는 까다로운 넘버였다. 아무리 갈라 공연용으로 축약된 넘버라 해도 초짜인 그녀에게 역을 맡기는 것은 좀 위험한 결정이었다. 이건 갈런드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분명했다. 어차피 엔테베에서 방영하는 쇼라면 전문가들과 고정 관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이라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한 풋내기이긴 하지만 재능도 있고 미인이었으니까. 하긴 미샤는 갈런드의 소위 자본주의 마케팅을 이따금 놀려댔지만, 무용수들이 원한다면, 그리고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이런 기회를 살릴 수 있게 해주는 편이었으니 아마 여기 있었어도 똑같이 이라를 보내기로 했을 것이다. 그녀는 모든 무대와 조명과 기회에 목말라 있었고 신참 특유의 승부욕으로 불타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라에게 이 제의가 맨 처음에는 나와 류바에게 왔었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가 애를 먹는 동작 몇 개를 교정해주고 가장 중요한 파트를 반복해서 함께 춰주었다. 세 번쯤 추고 나자 이라는 훨씬 나아졌고 스스로도 그걸 알았는지 무척 기뻐했다. ‘고마워요 제냐, 역시 최고라니까요!’하고 외치며 내 뺨과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신이 나서 온통 반짝이고 발갛게 달아오른 채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나는 한 시간 정도 혼자 남아서 연습을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었다. 갈런드가 남아서 연습실과 사무실을 오가며 서류를 보기도 하고 영어로 국제전화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저 사람은 도대체 언제 퇴근이라는 걸 하는지, 미국인들에게 그토록 중요하다는 사생활이란 건 어디다 팔아먹고 이렇게 일에 매진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는 마에스트로가 자리를 비운 날이면 항상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여자애들이 미샤가 있는 자리에서는 차마 그 미하일 파르포로비치란 별명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거리낌 없이 어디에서나 미샤를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 미샤는 그 호칭을 싫어했지만 갈런드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몇 개의 솔로를 연습했다. 다음 주 도쿄에서 추기로 되어 있는 햄릿과 스페이드의 여왕, 그리고 이라와의 연습 때문에 생각난 페초린의 솔로를 이어서 추고 나니 갑작스럽게 온몸에 힘이 쭉 빠졌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마 들어오자마자 이라의 상대가 되어 주느라 스트레칭과 워밍업이 모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미샤의 안무는 고전 발레보다 훨씬 어려웠고 몸을 쓰는 방식도 좀 다른 편이라 역시 이렇게 찬 바람을 맞고 들어와 곧장 추기에는 쉽지 않았다. 언젠가 콜랴는 미샤가 무의식적으로 전성기 시절 자기 몸에 맞춘 안무를 하는 게 분명하다고, 그래서 우리들(즉 남자 무용수들) 모두 죽어나는 거라고 투덜댔지만 마침 연습을 구경하러 왔던 루키얀이 피식 웃더니 뭘 모르는구먼, 옛날에 저 친구 추던 가락대로 안무했으면 자네들은 벌써 팔다리 부러지고 마비되고도 남았어라고 농담을 했다. 지나가다 그 말을 들은 미샤는 그럴 리가요, 루카 아저씨. 요즘 애들이 체격 조건도 훨씬 낫고 힘도 좋고 더 높이 뛰는데. 테크닉도 훨씬 좋아졌고. 다 능력에 맞게 짜는 건데하고 대꾸했다. 루키얀은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 우리는 미샤의 말보다는 루키얀의 농담에 더 신뢰가 갔다. 루키얀은 키로프 시절부터 극장에서 일해온 베테랑이었고 미샤가 발레학교 학생이던 때부터 워낙 잘 아는 사이인데다, 농담을 좋아하는 노인네이긴 해도 무용수들의 몸과 재능을 놓고 허튼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부터도 미샤가 옛날에 췄던 넘버를 추게 되면 절망과 경이의 구렁텅이’(이것도 콜랴의 표현이다)에 빠지곤 했으니까.

 
 

 

 

 

 

 

 

 

 

..

 

 

 

 

 

주변 인물들에 대한 언급은 이 뒤에도 조금 더 이어져서 일린과 키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 

 

 

 

맨 위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사계' 발레 연습 화보. 이라랑 게냐가 연습을 하니까 어쩐지 남녀 무용수의 연습 사진을 한 장쯤 올려보고 싶어서. 아래는 슈클랴로프 혼자 연습하는 사진. 

 

 

그건 그렇고 흑흑, 나도 일하느라 절망의 구렁텅이... (그나마 '경이'는 있지도 않다는 게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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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2. 9. 18. 20:57

쓰는 중 - 기사도와 샴페인 + about writing2022. 9. 18. 20:57

 

 

 

 

명절 연휴와 이번 주말 동안 많이 써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붙지 않아 아직 3부에 머물러 있다. 이야기 자체는 좋은 흐름을 타서 풀어나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은데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집중하는 것이 좀 힘들다. 옛날에는 일하면서도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 쓰곤 했는데 확실히 이젠 체력과 집중력이 모자람 ㅠㅠ 그래도 매일은 아니더라도 주말이나 휴일에 조금씩 써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자가 위안을 해본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지금 쓰는 3부가 아니라 2부 후반. 생략된 앞부분에서는 왜 만나자고 했는지 게냐가 묻자 리다가 한동안 그 이유와 목적을 쭉 늘어놓는다. 그 과정에서 둘다 약간 흥분하지만 리다가 설명을 끝냈을 무렵에는 좀 진정이 된 상황이다. 리다는 카페 바텐더에게 물을 추가로 주문한다. 장소는 아직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 발췌문은 접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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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얘기를 늘어놓은 리다가 숨이 차는 듯 잠시 입을 다물더니 바텐더를 불렀다. 페리에와 생수를 각각 한 병씩 더 주문했다. 바텐더는 심심했던 건지 아니면 슬며시 우리 얘기를 엿듣고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리다가 손짓을 하자마자 달려왔고 기적적인 속도로 물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그녀는 마개를 열어서 내 앞으로 생수병을 밀어주고는 자기 페리에도 직접 따서 새 얼음 잔에 따랐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병을 집어 들고 물을 절반쯤 마셨다. 찬물이 들어가자 머리가 좀 식었고 그제야 리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마개를 따줬어야 했는데.

 

 

 “ 괜찮아. 일부러 그런 거 아닌 거 알아. 넌 항상 따줬으니까. 의자도 빼주고. 물도 따라주고. 매너 있는 남자라고 친구들한테 자랑했었지. ”

 

 “ 그랬어? ”

 

 “ 그랬어. ”

 

 

 그녀는 탄산수가 든 잔을 입술로 가져갔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유리잔으로 입을 반쯤 가린 채 복화술 인형처럼 덧붙였다.

 

 

 “ 난 그런 기사도가 좋았어. 주변에 그런 남자들이 없었으니까. ”

 

 “ 나는, 배웠기 때문일 거야. 학교에서. 여자들이랑 춤을 춰야 하니까. 발레는 옛날 춤이니까. ”

 

 “ , 그래. 옛날 것들만 있어서 답답하다고 했었지. ”

 

 

 

 나는 리다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했을지도 모른다. 극장에 있는 내내 그런 고민을 했으니까. 하지만 리다는 내 춤에 관심이 없었고 어차피 자기 전공이 아니니 이해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피상적인 이야기들, 최소한의 대화가 이어질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들, 리다가 궁금해하는 화제들, 그러니까 발레학교나 극장 구내식당의 식단이라든지, 단독 대기실을 받을 수 있는 급수라든지, 평소의 출연료와 해외 투어 출연료의 차이, 무대 의상 피팅, 발레리나들이 쓰는 분장용 화장품과 일반 화장품의 차이 뭐 그런 얘기들 뿐이었다. 춤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리다는 내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가느다란 휘파람을 불며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 그날 네가 그랬거든. 완전히 새로운 걸 봤다고. 너무 대단했다고. 옛날 것들만 있어 답답했는데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다고. 그건 아직도 기억나. 넌 그런 말 안 하던 애였으니까. ”

 

 “ 언제? ”

 

 “ 메달 따왔을 때. 넌 콩쿠르랑 상에 대해선 거의 얘기하지 않았어. 온통 그 말만 했지. 완전히 다른 것. 새로운 것. 그 사람은 다르다고. 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어. 난 샴페인을 준비했었는데 넌 그거 입에 대기도 전에 이미 취해 있었지. ”

 

 

 

 그녀는 그때 화를 냈던 것 같다. 아니, 화를 냈다기보다는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나 그때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우리 관계는 그 당시 이미 막바지로 치닫는 중이었고 리다는 걸핏하면 성을 내고 토라졌다. 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돌아왔을 때 리다가 우리 집에 왔었던 것 같긴 했다. 아니, 리다네 집에 갔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샴페인은 더더욱 기억나지 않았다.

 

 

 “ 그때 난 알았어. 네가 떠날 거란 걸. ”

 

 “ 극장을? ”

 

 “ 나를. ”

 

 “ 떠난 쪽은 너였잖아. ”

 

 “ 뭐가 다르다고.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다는 제대로 된 논쟁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차였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몇 달 동안 아르다노프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것, 그와 곧 결혼할 거란 얘기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화가 났던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 너무 지쳐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배신당하고 걷어차인 남자답게 당연히 화가 났겠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모두 지웠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를 떠올리면 회색 안개에 파묻혀 있는 기분이 들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대에 올라갔던 건 기억났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돌아오자 대우가 나아졌고 주역을 맡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때 데지레 왕자를 받았고 발란신의 스코틀랜드 심포니도 췄다. 심지어 두어 달 후 감독은 나를 1 솔리스트로 승급시켜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순간들조차 군데군데 회색 안개로 가려져 있었다. 이따금 붉은색과 오렌지색 불꽃처럼 명멸하는 격렬한 감각들이 있었던 건 확실했지만 그건 극장과도, 그리고 리다와도 관련이 없었다.

 

 

 

 

 

 

 

...

 

 

 

 

 

 

 

 

샴페인과 와인 잔이 뒤섞여 있다만, 하여튼 맨 위 사진은 켐핀스키 빌니우스 호텔, 바로 위 사진은 아스토리야 호텔 sns에서 가져옴. 리다가 준비한 샴페인이야 이렇게까지 근사한 스타일이 아니라 그냥 집에서 식탁 위에 차려놓은 거였겠지만. (심지어 게냐는 기억도 못하고 ㅠㅠ 의문의 1패하는 리다, 아니 샴페인...) 

 

 

 

리다가 언급하는 '그 사람'은 미샤를 가리킨다. 콩쿠르와 샴페인에 대한 리다의 이야기는 이 글의 배경인 1997년으로부터 3년 전인 1994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게냐는 당시 마린스키 극장 무용수였고 모종의 국제 콩쿠르에 나가서 메달을 따고 돌아오는데 미샤는 당시 그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다. 게냐는 미샤에 대해서라면 발레학교와 극장의 까마득한 선배라는 것, 국제적으로 유명한 무용수이자 안무가, 발레단 감독이라는 것 등의 객관적인 정보는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사석에서 친해진 것은 아니고 시상식 이후 뒤풀이 파티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안면을 튼 정도. 1년쯤 후 게냐는 미샤의 발레단으로 이적한다. 리다와 게냐는 1994년 겨울에 헤어졌고 리다는 곧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마지막 문단에서 게냐가 언급하는 '아르다노프'가 현재 리다의 남편으로 노브이 루스키 사업가이다. 

 

 

 

 

 

 

그냥 마무리하기엔 좀 아쉬워서, 어쩐지 춤 사진을 하나 넣어야 할 것 같아서 빠질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라 바야데르 3막, 망령의 왕국 씬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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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고 있는 게냐와 리다의 이야기는 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의 러시아, 그중에서도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그 당시에 대한 여러 기억들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재구성하고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시기에 대한 기억들이 실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쓰는 데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고 있긴 하지만 글 자체가 어렵기 때문은 아니고 일하면서 주말에만 조금씩 쓰다 보니 진도가 참 느릿느릿... 그래도 추석연휴까지는 3부를 모두 마치고 에필로그에 가까운 4부에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하지만 오늘도 피곤하게 뻗어 있느라 한 줄도 못썼어ㅜㅜ) 

 

 

 

 

아래 발췌한 부분은 3부,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바닷가와 호텔 바로 근처에 있는 리다네 엄마 집으로 들어온 게냐와 리다의 이야기 약간. 리다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라 게냐도 자주 드나들었던 곳이다.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1997년 11월. 그리고 둘이 사귀었던 시기는 1992년에서 94년 즈음이다. 파블로프스크는 페테르부르크 근교의 녹지가 많은 아름다운 곳으로 옛날부터 귀족들과 부자들의 별장이 많은 곳이다. 다차는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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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비어 있었다. 예전에 그렇게 자주 드나들었던 곳인데도 완전히 다른 집처럼 느껴졌다. 소파나 테이블은 그대로였지만 번쩍거리는 커다란 소니 텔레비전과 새 비디오, CD와 카세트 더블 데크 플레이어가 딸린 최신형 오디오, 금빛 장식 테두리의 마호가니 옷장 따위가 거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리다는 어머니가 파블로프스크에 있는 다차에서 지낸다고 했다. 이 집에는 거의 1~2주에 한 번 정도밖에 들르지 않는다고.

 

 

 

 “ 다차? 이제 겨울인데? ”

 

 “ 겨울엔 더 좋아, 새로 지은 곳이거든. 우리 다차 옆에 있어. 그이가 두 채 지어서 엄마한테 하나 선물했어. 시내는 아무래도 재건축을 해도 좁잖아, 말만 다차지 그냥 새 아파트야. 얼마나 넓고 깨끗하다고. 엄마는 궁전이라고 불러. ”

 

 

 

 리다는 모피코트를 현관 옆의 옷걸이에 아무렇게나 걸어 놓고는 갈아입을 옷을 꺼내러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따라 들어가는 대신 거실에 서 있었다. 열린 문 너머로 리다의 침실 안쪽이 그대로 보였다. 그 방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침대도, 책장에 가득 꽂혀 있는 일본어와 한국어 교본들도, 심지어 벽에 붙어 있는 신디 크로포드와 린다 에반젤리스타의 포스터도 그대로였다. 저 브로마이드는 내가 유럽 투어를 갔을 때 어느 레코드 가게에서 사다 주었던 것 같다. 그녀는 슈퍼모델들을 좋아했고 사진을 스크랩했었다.

 

 

 

 나는 지난번 뉴욕 투어에 갔을 때 어느 파티에서 케이트 모스를 만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얘기를 해주면 리다가 좋아하겠지, 손뼉을 치고 눈을 반짝거리며 정말? 너무 좋았겠다! 예뻐? 멋져? 어땠어?’하고 난리법석을 피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하는지 안다. ‘글쎄, 왜 그렇게 유명한지 모르겠어. 별로 안 예뻐, 너보다 작고 볼품없어. 네가 더 예뻐라고 말해야겠지. 그러면 리다는 바보, 패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대꾸하며 더 환하게 웃을 것이다. 모스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그녀가 파티에서 무엇을 마시고 먹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물어볼 것이다. 나는 후자의 질문들에는 대답할 수 있지만 전자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내가 아니라 미샤를 보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던 거니까. 나하고도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그건 그냥 어느 파티에서나 이루어지는 가벼운 인사, 스쳐 지나가는 소개일 뿐이었으니까. 그녀는 미샤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심지어 그의 팔에 매달려 사진도 찍었다. 헐리우드 배우와 사귀고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톱모델이 미샤를 보고는 록스타 앞의 그루피처럼 들뜬 눈빛으로 포옹을 했다. 어쩌면 그것도 철저히 계산된 포즈였을지도 모른다, 잡지에 실린 그 파파라치 스냅 사진이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이다. 미샤와 친분을 과시하는 건 영화배우나 록스타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훨씬 쿨하고 고상해 보일 테니까, 소위 말하는 고급예술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리다의 마음에 들지 않겠지. 차라리 이런 얘기가 낫겠다. 그녀는 마약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발레리나들보다도 더 깡마르고 볼품없이 야윈데다 두 눈이 퀭했다. 리다의 스크랩 속 슈퍼모델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런데도 최고의 모델이라고 했다. 파파라치들이 끊임없이 따라붙었다. 문득 나는 리다가 이제 더 이상 에반젤리스타나 크로포드의 사진을 모으지 않을 거라고, 아마 그녀는 케이트 모스를 따라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퀭한 눈, 날카로운 광대뼈. 야위고 지친 얼굴. 마약중독자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근사한 유행이니까. 흑발 보브 컷과 마구 번진 스모키 메이크업. 남편이 부추겨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가 그렇게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리다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찢어진 스타킹과 니트 드레스를 벗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문득 어색해져서 부엌으로 갔다. 테팔 전기포트에 물을 붓고 스위치를 켰다. 언젠가 딱 이렇게 초겨울 비가 쏟아지던 날 차를 마시러 잠깐 들어왔다가 섹스를 하느라 가스렌지에 올려뒀던 법랑 주전자를 새까맣게 태웠던 기억이 났다. 타는 냄새를 맡은 내가 , 젠장. 주전자!’ 하고 투덜대자 리다는 넌 이 상황에 주전자가 중요하니? 불 안 나. 가만히 있어하고 짜증을 냈었다. 그때도 리다는 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내 허리를 껴안고 있었다. 일이 끝난 후 우리는 함께 주전자를 박박 문질러 닦았지만 검댕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복구가 되지 않았다. 리다는 프리모르스카야 시장에서 똑같이 생긴 주전자를 구해와서 어머니 몰래 바꿔쳐 놓았다. ‘울 엄마 이런 거 몰라라고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나는 주전자에 물을 올리면서 우리 엄마는 알 텐데. 이건 뚜껑이 찌그러졌잖아라고 대꾸했다. 하긴 리다의 어머니에겐 뭐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주전자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물을 끓일 수 있으니까.

 



 

 

 

 

..

 

 

 

 

 

 

 

 

90년대는 그야말로 슈퍼모델들의 시대였다. 케이트 모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 전까지는 역시 나오미 캠벨, 린다 에반젤리스타, 클라우디아 쉬퍼 등등이 주름잡았는데 나는 시크한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여학생들은 잡지를 펴놓고 신디 크로포드의 화보를 보며 '정말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곤 했다(그러다 신디 크로포드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는 너무 폭망 영화라 참 안타까워했었다 ㅋㅋ) 

 

 

 

유명한 흑백 화보 한 장. 순서대로 나오미 캠벨, 린다 에반젤리스타, 타티아나 파티즈, 크리스티 털링턴, 신디 크로포드. 

 

 

 

저렇게 늘씬하고 섹시하고 글래머러스한 슈퍼모델들의 시대는 케이트 모스가 나타나면서 저물었던 것 같다. 나에게 케이트 모스는 모델보다는 '조니 뎁 여자친구'로 먼저 각인되었으니 나는 확실히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자는 아니었음 ㅋㅋ 케이트 모스 사진도 두 장. 캘빈 클라인부터 시작해 모델 화보는 워낙 웹에도 많고 유명하니, 게냐가 파티에서 만났을 때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 스타일로 두 컷. (그건 그렇고 케이트 모스씨, 소설에 맘대로 등장시켜 죄송합니다) 

 

 

 

 

 

 

 

 

 

 

 

그리고 맨 위 사진은 게냐랑 리다가 태워먹었던 법랑 주전자랑 비슷하게 생긴 사촌 주전자. 나도 페테르부르크 기숙사에서 법랑 주전자랑 냄비를 썼는데 얼마 후 큰맘먹고 테팔 전기포트를 장만해 매우 행복해졌음. 법랑냄비는 종종 아래를 태우거나 그슬려먹었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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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조금씩 조금씩 써온 글이 이제 정서적인 클라이막스에 진입했다. 이야기 자체의 리듬도, 쓰는 리듬도 빨라지는 구간이라 열심히 쓰고 있다. 쓰는 즐거움이 매우 큰 구간이다. 3장 중간을 좀 넘어갔으니 이 장을 마무리하면 아마 마지막 장인 4장은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희망을 가져본다)

 

 

 

발췌한 부분은 2장 후반부.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카페에서 이야기를 마친 리다가 화장을 고치면서 게냐에게 립밤 연고를 달라고 한다. 게냐는 연고를 건네주고 나서 미샤에 대해 생각한다. 

 

 

 

제목과 발췌문의 미하일 파르포로비치(Михаил Фарфорович)는 미샤의 별명 중 하나이다. 파르포르(Фарфор)는 러시아어로 도자기라는 뜻이다. 러시아 이름은 이름 + 부칭(아버지의 이름에 일정한 어미를 붙인다) + 성으로 이루어지는데 친한 사이에서는 이름 혹은 애칭을 부르고 존대하는 경우 이름과 부칭을 같이 부른다.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율리야 이바노브나 이런 식) 미샤의 아버지 이름이 세르게이니까 본래대로라면 미하일 세르게예비치라고 불러야 하지만 여기서는 발레단 무용수들이 그의 외모적 특성을 따서 파르포르를 변형시켜 미하일 파르포로비치라는 별명을 부르고 있다. 우리 말로 좀 부드럽게 옮기면 도자기 미하일님 정도인가(ㅎㅎ) 도자기 인형처럼 피부가 곱다고 :) 

 

 

 

발췌 글은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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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다가 잔을 내려놓고는 핸드백에서 조그만 콤팩트를 꺼냈다. 거울로 얼굴 여기저기를 비춰보더니 냅킨 귀퉁이에 물을 적셔서 입술을 닦았다. 짙은 립스틱이라 제대로 지워지지 않아서 입술 주름 사이에 갈색 얼룩이 무늬처럼 남았다. 그녀는 립스틱을 새로 칠하는 대신 내게 연고를 달라고 했다. 나는 코트 주머니를 뒤져 연고를 꺼내주었다. 사귀기 시작하던 무렵 그녀는 내가 계집애처럼 그런 걸 가지고 다닌다며 놀렸지만 내가 ‘우리 학교는 남자애들도 다 이거 써’ 하며 무대에 올라가는 직업이라 두꺼운 메이크업을 했다가 지우는 것이 일상이고 손발도 걸핏하면 짓무르거나 긁히기 마련이라 여기저기 바를 수 있어 좋다고 설명을 해주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소리 내어 웃으며 키스를 해주었다. 그 이후 그녀는 생각날 때마다 내게 연고를 건네받아 자기 입술에 바르곤 했다. 몇 개 갖다주겠다고 했지만 내 것을 바르는 게 좋다고 했다. 그녀의 파우치에는 언제나 키엘 립밤이 들어 있었지만 그저 장식용일 뿐이었다. 예전에 잘 사는 집안 친구가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선물로 사다 줬는데 아까워서 바르지도 못하고 간직해 놨던 거라 너무 오래돼서 분명 상했을 게 뻔하다고 했었다. 어쨌든 무용수들이 쓰는 게 몸에는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들의 약초처럼.

 

 

 

 “ 아직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구나. ”

 

 “ 춤은 계속 추니까. ”

 

 “ 아, 그렇지. 무용수들은 다 쓴다고 했었지. 그 사람도 이거 써? ”

 

 “ 누구? ”

 

 “ 그 야스민 씨. ”

 

 “ 모르겠는데. 그런 건. ”

 

 “ 그 사람은 키엘을 쓸 거야, 아니면 아벤느. 외국물을 많이 먹었으니까. 옛날엔 프랑스 팬들이 그 사람 전용 향수도 따로 만들어줬다던데. 그래서 지금 겔랑 향수 모델을 하는 건가. 그때 백스테이지에서 보니까 그렇게 클래식한 타입은 아닌 것 같던데. 그래도 화보는 멋지더라. 미남이야, 그 사람. ”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곁눈으로 나를 살짝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고 손가락 끝에 연고를 조금 짜서 입술에 천천히 발랐다. 그녀는 내가 미샤에 대한 언급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아마도. 물론 나는 미샤가 뭘 쓰는지 알았다. 그는 나와 똑같은 연고를 썼다. 이따금 키엘이나 아벤느 같은 것도 쓸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주머니나 가방 안쪽에 항상 그 연고를 넣고 다녔다. 나와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까. 나처럼 마린스키, 아니 키로프에서 데뷔했으니까. 그러나 나나 다른 애들만큼 연고를 자주 바르지는 않았다.

 

 

 

 그는 거의 언제나 입술이 촉촉했다. 피부도. 특별 피부관리를 받지 않아도 그랬다. 그런 건 타고나는 거라고 분장사가 말했다. 발레단 여자애들은 가끔 그를 미하일 파르포로비치(Михаил Фарфорович)라고 불렀다. 자기들보다 더 피부가 하얗고 매끄럽다고 부러워했다. 주름도 없고 반점 따위도 없다고. 그 애들의 말이 맞았다. 웃을 때 눈가에 살짝 잡히는 가느다란 잔주름 외엔 나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도자기 같은 피부. 하지만 그에게는 흉터들이 있었다. 목덜미부터 가슴을 가로지르는 기다랗고 하얀 흉터, 오른쪽 허벅지에 가로로 그어진 역시 하얗고 가느다란 흉터. 그 두 개는 거의 쌍둥이처럼 보였는데 거의 피부색에 가까울 만큼 하얗게 바래 있어서 바짝 다가가서 보지 않으면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손목에도 그런 흔적이 여럿 있었다. 미샤는 그것들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고 굳이 가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얗고 눈에 띄지 않는, 그러니까 안전한 흉터들. 그러나 왼쪽 골반 바로 위에, 훨씬 크고 생생한 흉터가 하나 있는데 그것만은 눈에 띄는 것도, 누군가의 손이 닿는 것도 싫어했다. 탈색된 벽돌색과 잿빛이 뒤섞여 작은 뱀처럼 구불구불하게 돌출된 상처였다. 아마도 실밥을 잘못 뽑았거나 아물 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다. 레이저로 흔적을 제거하기에는 너무 큰 흉터였다. 나는 그 상처에 대해 미샤에게 묻지 않았다. 목덜미와 허벅지, 손목의 흔적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수용소에서 생긴 상처일 것이다. 나는 그에게 수용소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회상록이나 인터뷰는 읽었다. 당시 기사들도 몇 개 찾아 읽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그때 일에 대해 입을 여는 적이 별로 없었다. 발레학교 시절 한때 나의 지도 교사였던 울리얀 세레브랴코프는 미샤가 ‘패셔너블한 수용소 훈장’ 덕분에 서방에서 더 잘 먹히는 아이템이 됐다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하지만 세레브랴코프는 물론 그 흉터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리다가 내게 연고를 돌려주었다. 냅킨 끝으로 손가락에 남은 끈적한 연고를 닦아내고 이제 김이 거의 다 빠졌을 페리에를 한 모금 마셨다. 립스틱 얼룩 위로 연고 자국이 남았다.

 
 

 

 
 
 

 

 

 

 

 

 

 

 

 

 

 

키엘이나 아벤느는 이제 흔하게 사서 쓸 수 있는 립밤이지만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 후반이라 소련 붕괴 후 온갖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던 리다에게는 키엘 립밤이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글에서 언급되는 미샤의 수용소 경험은 1980년대 초라서 이들에게는 이미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이다. 울리얀 세레브랴코프는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무용수 시절 사이가 좋지 않았던 선배 무용수이다. 

 

 

 

글에 어울리는 좀 촌스럽고 호랑이연고 비슷하게 생기거나 아무런 라벨도 달려 있지 않은 약초 배합 연고 같은 사진들을 찾고 싶었는데 게으름의 결과 그냥 예쁜 천연 수제립밤 사진들 몇 장으로 때움. 물론 게냐랑 미샤가 가지고 다니는 건 이렇게 깨끗하고 이쁜 요즘 립밤은 아님. 약초가 배합된 바셀린 연고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마 이런 느낌일 것 같음 ㅎㅎ 케이스는 이런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꾹꾹 눌러짜는 연고 튜브 같은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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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2. 8. 6. 19:13

쓰는 중 - 모피코트와 스카프 about writing2022. 8. 6. 19:13

 

 

 

 

 

작년에 구상해서 올초에 쓰기 시작했던 글을 아주 느리지만 어쨌든 꾸준히 조금씩 쓰고 있다. 처음엔 원래 쓰려던 글과 여러가지로 연동되는 이야기라 '쌍둥이'라 불렀고 지금은 아직도 제목을 정하지 못해서 임시 파일명으로 저장하고 있는 lida 라고 부른다. 총 4장 정도로 구성되는데 이제 3장 중반으로 진입했다. 1장과 2장은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 3장은 호텔 뒤의 바닷가와 리다가 예전에 살던 집, 4장은 바실리예프스키 섬과 게냐의 원룸 스튜디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전의 눈의 여왕 때도 그랬고 게냐가 나오는 글은 장소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이게 인물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내가 너무 쓰는 속도가 느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함 ㅠㅠ 하지만 노동에 시달리고 해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시간도 없고 집중력도 점점 떨어지고 에너지도 닳아서 어쩔 수가 없다고 게냐에게 변명을 해본다 (게냐 : 뭐 임마 이건 그저 네가 게을러서 그런 거얍! 미샤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렇게 늦게 썼겠냐!)

 

 

 

발췌한 두 파트는 2장 도입부, 그리고 3장의 도입부이다. 전자에서는 헤어진지 3년만에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카페에서 다시 만난 게냐와 리다가 어색한 침묵에 잠겨 있다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후자는 공기가 답답해서 힘들어하는 리다 때문에 둘은 잠깐 바람을 쐬러 호텔 뒤에 있는 바닷가로 나온다. 제목의 스카프와 모피코트는, 발췌한 이야기들 양측에 모두 등장하기 때문에... 

 

 

 

맨위 사진은 2016년 12월, 페테르부르크 아스토리야 호텔의 부티크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스카프와 가방. 방에 올라가려고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갈 때마다 훑어보며 '정말 예쁜데, 내 스타일인데' 하고 지나갔었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스카프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지만, 디올 스카프 이미지 받아놓은 게 없어서 찾기 귀찮아서... 각 글은 접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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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도입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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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몇 분 정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리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각도를 좀 틀어서 그녀의 왼쪽 귀와 목덜미와 어깨, 소파 왼쪽에 걸쳐진 모피코트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무대용 시선 처리 기술이다. 이런 건 군무나 마임을 맡았던 신입 시절 유용하게 써먹곤 했다. 물론 누구에게나 통하는 건 아니었다. 동료 무용수들에겐 먹히지 않는다. 적어도 실생활에서는. 당연하지만 미샤도 마찬가지다. 다만 자기에게 그런 게 안 통한다는 티를 내지 않을 뿐이다. 그는 보통 상대가 술수를 부리면 아는 척도 모르는 척도 하지 않고 침착한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부류에 속했다. 리다 같은 여자에게도 통하지 않는다. 리다는 자기 앞의 남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닌지, 혹은 뭔가를 감추거나 불편한 게 있는 게 아닌지, 또는 자기의 매력에 사로잡혔는지 아닌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이 있었다. 아마 지금도 내가 자기를 쳐다보는 척하면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자기도 지금 어색한 상황이라 그냥 나를 봐주고 있는 것이지, 안 그랬으면 벌써 화를 냈을 것이다.

 

 

 “ 그거 디올이야? ”

 

 

 갑작스럽게 리다가 물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리다는 손을 뻗어 내 머플러 끝을 가볍게 만지며 질문을 되풀이했다.

 

 

 “ 디올 같은데. 라벨이 안 보이니까 헷갈리네. ”

 

 “ 나도 잘 몰라. 그냥 손에 잡히는 거 매고 나왔어. 바람 많이 불어서. ”

 

 “ 뒤집어서 둘렀잖아. ”

 

 

 

 그녀는 거리낌 없이 내 머플러를 술술 풀어서 뒤집은 후 다시 매어 주었다. 스카프 귀퉁이를 톡톡 치며 디올 로고를 확인하더니 빙긋이 웃었다.

 

 

 

 “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뒤집어놓으면 어떻게 해. 근데 이런 색깔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나? 이거 네가 산 거 아니구나? 그 사람 건가? ”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모른 척하며 기억을 더듬어 대꾸했다. 

 

 

 

 “ 아, 그래. 산 거 아냐. 지난번에 잡지 촬영했을 때 받았던 것 같아. 기념품으로. ”

 

 

 “ 오, 그 엘르. 기억나네. 두 권이나 샀지. 스크랩도 했는데.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사인이라도 받게. 근데 그 화보 보니까 넌 디올보단 아르마니가 더 잘 어울리더라. 그쪽 걸 받았으면 좋았을걸. ”

 

 

 

 나는 그 촬영에서 걸쳤던 브랜드들이 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촬영장은 정말 어수선했다. 발레 화보 촬영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옷과 스카프와 신발, 모자 따위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걸쳐야 했다. 목걸이와 시계도 있었던 것 같다.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한 아름씩 가져다주며 코디네이터가 브랜드명을 따발총처럼 주워섬겼고 사진사는 역시 귀가 따갑도록 빠르게 각종 주문을 쏟아놓았다. 심지어 미국인이라 영어를 잘 알아듣기도 어려웠고 촬영을 담당한 잡지 쪽 에디터가 통역을 해줬지만 그나마도 패션 업계용 억양과 특수용어들로 오염돼서 절반 이상은 소용이 없었다. 내가 고전하자 함께 촬영 중이었던 미샤가 몇 단어로 핵심만 전달해줬는데 차라리 그게 더 이해하기 쉬웠다.

 

 

 어쨌든 머플러 덕에 어색했던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고 나는 리다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일 년만이었고 이렇게 단둘이서 차분하게 얼굴을 마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3장 도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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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호텔 뒤로 돌아서 천천히 바닷가 쪽으로 갔다. 하늘은 어둑어둑했고 싸늘한 해풍이 거세게 불어왔다. 이미 11월이었고 바닷가를 산책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그것도 이런 저녁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황량했고 우중충한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도치는 바다는 물거품조차 탈색된 잿빛으로 보였다. 바람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에 나는 리다의 코트 단추를 여며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코트에는 지퍼도 단추도 없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그냥 숄처럼 어깨에 걸치는 멋내기용 모피였고 길이도 짤막했다. 리다는 찬바람이 칼날처럼 파고드는데도 코트를 두 손으로 여며 쥘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반소매 니트 드레스와 얇은 스타킹, 아름답고 무용한 모피코트라니. 나는 내 스카프를 풀어서 그녀의 목에 한 바퀴 둘러주었다. 리다는 무의식적으로 스카프를 여몄지만 잠시 후 그것을 훌훌 풀어서 내게 돌려주었다.

 

 

 

 “ 안 추워? ”

 

 “ 추워. ”

 

 “ 그럼 하고 있어. ”

 

 “ 매고 싶지 않아, 그 사람 건. ”

 

 “ 내 거야. 엘르에서 줬다고 했잖아. ”

 

 “ 화보에서 매고 있었어, 둘 다. ”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다. 하지만 굳이 더 실랑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스카프를 접어서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위의 사진은 2006년 9월말(이미 진짜 오래 전이다!)에 여기서 등장하는 그 바닷가에서 찍은 것이다. 이때는 아직 9월말이라 덜 황량하고 구름 사이로 햇살도 스며나온다. 

 

 

 발췌문들에서 언급되는 게냐가 스카프를 득템하게 된 그 엘르 화보 촬영 수난기는 작년에 쓴 단편 '눈의 여왕' 에도 등장한다. 이 폴더에도 일부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11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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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리다와 게냐에 대한 단편은 여전히 쓰는 중이다. 이 단편은 작년 가을에 마무리한 '눈의 여왕' 이라는 단편과 여러 모로 연결되고 또 후자보다 단 이틀 전에 일어나는 이야기라 첨에 구상했을 때 '쌍둥이' 라는 애칭을 붙였었다. 눈의 여왕도 그렇고 쌍둥이도 그렇고 좀 진지하고 섬세한 타입이라 이따금 '아 좀 웃긴 걸 써보고 싶은데. 일하는 것도 힘든데 쓰는 글도 너무 진지하니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지금 필요한 글, 지금 쓰고 싶은 글이기 때문에' 쓰고 있다. 

 

 

오늘 오랜 친구 쥬인이랑 간만에 만나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다. 쥬인과 나는 지금 쓰는 글의 배경이 되는 시간대에 역시 그 공간적 배경인 페테르부르크에서 처음 만나 친해졌다. 그러니 오랜 우정을 쌓아왔다. 서로 나이를 먹고 인생의 경험들이 쌓였지만 지금도 만나면 옛날처럼 마냥 소녀처럼 즐겁고 허물없다. 그래선지 아래 지나와 미샤의 대화가 생각나 발췌해 본다. 이건 지금 쓰는 쌍둥이가 아니라 작년에 쓴 '눈의 여왕' 후반부의 이야기이다. 별다른 내용은 없다. 파리 투어 겸 출장에서 돌아온 지나를 게냐가 공항에서 픽업해 왔고 둘은 배가 고파서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그리고 패션지 촬영을 마친 미샤가 지나가다 그곳에 들어와 한달만에 지나와 재회하고 둘은 거의 만담에 가까운 대화를 나눈다. 

 

 

이 단편도 상당히 진지한 편이라 이런 가벼운 대화가 나오는 장면은 여기 뿐이다. 이 글에서 미샤와 지나는 이미 나이를 먹었고 인생에 있어 서로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경험을 했으며 제3자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어른', 혹은 '이룰 것을 다 이룬, 업계에서 존경받는 사람들' 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어릴 적 지나와 말썽쟁이 시절처럼 여전히 허물없고 가볍고 어린애 같다. 

 

 

 

위의 사진은 Yulia Mikheeva 가 찍은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 나는 콘다우로바를 볼 때마다 지나를 좀 떠올린다. 물론 콘다우로바는 키도 아주 크고 늘씬해서 지나처럼 조그맣고 가냘픈 이미지는 아니지만, 붉은 계열 머리색도 그렇고 분위기가 은근히 지나의 어떤 면을 연상시킨다. 어린 시절이나 20대 시절의 지나 말고, 그 이후의 지나. 

 

 

발췌문은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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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감자샐러드와 큼직한 닭튀김 두 조각을 모조리 해치운 지나가 종알거렸다.

 

 

“ 배는 부른데, 자꾸 뭔가 더 먹고 싶네. 입가심하고 싶어. 메뉴에 뭐가 더 있는지 좀 보고 올까 봐. ”

 

 

게냐가 가서 보고 오겠다고 하려는데 지나가 갑자기 ‘어머, 저 바보가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미샤가 출입구 근처에 선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 환하게 웃으며 재빨리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지나를 꼭 껴안고 뺨을 마주 대고 키스를 하며 열렬한 환영을 표시했다. 지나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팔꿈치로 미샤의 옆구리를 툭 쳤다.

 

 

“ 기름을 다 묻히네, 바보. ”

 

 

그러면서 냅킨을 집어 미샤의 얼굴과 자기 입술을 닦았다. 미샤는 지나의 손에서 냅킨을 빼앗아 쟁반 한쪽에 내팽개치고는 다시 환영의 입맞춤을 두 번이나 더 한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코트와 목도리는 벗었지만 비니는 그대로 쓰고 있었다. 벌써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 여인들과 젊은 남녀들이 속닥거리며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으니 모자는 쓰고 있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지나도 그들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아휴, 우리끼리는 참 평화로웠는데’ 하고 투덜거리며 눈에 띄는 붉은 곱슬머리를 재빠르게 땋아서 등 뒤로 감췄다. 그리고는 궁금해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동글동글 굴리며 물었다.

 

 

 

“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촬영은 끝난 거야? 눈 안 맞았어? 별로 안 젖었네, 스튜디오 촬영으로 바꿨어? ”

 

“ 눈이야 맞았지, 엄청나게. 우박도 맞고 비도 맞고. 사진사가 3종 세트라고 좋아하던데. 그래도 아니치코프랑 판탄카에서만 찍고 봉기 광장은 접었어. 눈 때문에 판탄카 촬영분만으로도 충분히 그림이 나왔다고 하더라고. 악천후 덕분인 거지. ”

 

“ 그게 뭐가 덕분이야, 완전 재수 옴 붙은 거지! 눈보라 치는데 강변에서 무슨 놈의 촬영을 해! 감기 걸릴 거야, 뼈에 바람 들어가서! ”

 

“ 재수 좋은 촬영이었는데. 모피 입고 찍었거든, 샤프카도 쓰고. 하나도 안 추웠어. 닥터 지바고 콘셉트래. ”

 

“ 닥터 지바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너랑 하나도 안 닮았는데! ”

 

“ 뭐 상관없잖아. 어차피 걔들은 그거 읽지도 않았을 텐데. 영화만 좀 봤겠지. ”

 

“ 영화랑도 하나도 안 닮았거든요! 수염도 없고! ”

 

“ 하긴. 그래서 자꾸 춤을 춰보라고 시켰나. 미끄러질 뻔했는데 그 사진이 제일 잘 나왔어. ”

 

“ 눈 맞으면서 돌바닥에서 웬 춤! 시킨다고 추냐! 그러다 머리 깨지고 다리라도 부러지면! ”

 

“ 괜찮아, 보험도 미리 다 들어줬어. 미국 애들은 그런 건 정확해. ”

 

 

 

지나는 씩씩거리며 미국 놈들이고 보그고 나발이고 전부 지옥에나 떨어지라고 욕을 하다가 잠시 후 ‘어휴 다 자업자득이지 내가 뭐라고 이 바보멍충이 걱정을 해’ 하며 진정되었다. 그리고는 진짜 궁금했던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 근데 정말 어떻게 알고 왔어? 지나가다 창밖으로 우리 본 거야? ”

 

“ 아니. 촬영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차 한잔 마시려고 키라한테 갔거든. 근데 키라는 없고 주차장에 우리 큰 차가 있잖아. 그럼 분명히 여기 왔겠구나 했지. 여기가 제일 가까우니까. 네가 좋아하고. ”

 

“ 맥도날드 가려다가 이리로 온 건데. ”

 

“ 거긴 길 두 번 건너야 하잖아. 눈 오는데. ”

 

“ 하여튼 쓸데없는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차 못 마셨겠네. 여기서라도 한 잔 시켜. 뭐라도 좀 먹고. 쫄쫄 굶었을 거 아냐. 미국 놈들이 뭘 먹여줬을 리가 없지. ”

 

“ 주긴 줬어, 초콜릿. 코코아랑 같이. ”

 

 

 

어떻게 그런 조합을 권할 수 있는지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코트 주머니를 뒤져 포장지를 뜯지도 않은 커다란 알펜골드 초콜릿을 꺼내 지나에게 건네주고는 주문대로 갔다. 가는 길에 결국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몇 장 같이 찍어주었다.

 

 

 

미샤는 홍차 한 잔과 감자샐러드만 들고 왔다. 티백만 담가놓은 홍차에 지나가 잽싸게 봉지를 뜯어 설탕을 몽땅 털어 넣고는 미샤가 채 항의하기도 전에 엄하게 말했다.

 

 

“ 뼈에 바람 들어갔으니까 설탕 넣어야 돼! ”

 

“ 비과학적이야! ”

 

“ 빅토르한테 물어보셔, 두 봉지는 넣어야 된다고 할걸! ”

 

 

 

미샤는 포기하고 설탕 녹인 홍차를 마셨다. 그리고는 감자샐러드도 먹었다. ‘아, 난 올리비에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건 식초가 들어가네’ 하며 약간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지나가 ‘어휴 구식!’ 하고 핀잔을 주었다. 미샤는 ‘내가 왜 구식이야. 난 초밥도 좋아하는데’ 로 응수하고는 별말 없이 감자샐러드를 먹었다. 배가 고프긴 했던 모양이었다. 지나가 ‘눈속임을 위해’ 시켰다가 손도 대지 않았던 코울슬로를 밀어주자 그것도 먹었다. 먹으면서 지나에게서 파리 얘기도 듣고 친구들의 안부도 확인했다. 지나가 노라 토레스의 야스민 동지와 광고판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처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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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펜골드 초콜릿은 저 당시 나와 쥬인이 이따금 사먹었던 초콜릿이다. 여유가 있으면 파제르를 사먹었지만 파제르는 너부 비싸서 그보다는 좀 저렴한 거대 판 초콜릿 알펜골드를 가끔 먹었다. 당시에 우리 나라에는 이것저것 들어 있는 초콜릿이 별로 없어서 온갖 헤이즐넛이니 땅콩이니 건포도니 하는 것들이 박힌 초콜릿이 신기했다. 나중엔 파제르도 비싸고 알펜골드도 그리 싸지는 않다는 생각에 밀카를 자주 사먹었다. 그 추억에 외국 나갈 때마다 밀카가 보이면 사와서 쥬인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언젠가부터 우리 나라에도 밀카가 들어와서 항상 옛 생각이 난다. 근데 우리 나라에서 파는 밀카는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음. 

 

 

지나의 대사에 등장하는 빅토르는 미샤의 발레단 전속 마사지사 겸 의무사. 맨 뒤에 나오는 노라 토레스는 미샤와 지나의 오랜 지인인 런던의 락 가수이다. 야스민 동지와 광고판 노래라는 것은 이 단편에서 지나가 파리에 갔을 때 미샤가 안 왔다고 슬퍼하던 노라가 길거리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미샤의 향수 광고판을 보고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 부른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샤와 지나, 그리고 게냐가 치킨과 감자샐러드를 먹고 있는 저 패스트푸드점은 네프스키 대로에 있었던 갈레오라는 곳으로 KFC와 좀 비슷한 곳이었다. 나중에 KFC 들어온 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저 당시 쥬인이랑 나랑 자주 갔던 곳이다. 저기 감자샐러드는 식초가 들어가서 새콤한 맛이 있었고 맛있었다. 미샤가 올리비에 같은 줄 알았는데.. 라고 하는 이유는 오리지널 올리비에 샐러드엔 식초가 안 들어가기 때문에. 애초 패스트푸드점에는 거의 가지 않는 미샤라서 메뉴판에 감자샐러드라 적힌 걸 보고 올리비에를 생각하며 시켰기 때문이다 :) 그리고 당시 이 동네에서 초밥은 매우 힙한 음식이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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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했을 때 재미로 '쌍둥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그냥 편하게 '리다'라는 가제로 부르고 있는 글은 원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주 천천히 계속해서 쓰고 있다. 이제 중반부로 접어들었고 국면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 글 역시 쓰는 중간중간 문장들과 흐름을 다듬는 작업을 병행하는데 이건 섬세한 퇴고가 아니고 전적으로 '흐름'과 '리듬', 그리고 '단어의 중복 여부'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줄, 이따금 몇 문단을 통째로 들어내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는데, 이렇게 들어낸 파트들은 아예 돌아오지 않거나, 때로는 좀 뒤로 배치된다. 어느 정도의 변형을 거칠 때도 있고 그대로 갈 때도 있다. 그러면 그 들어낸 파트들은 일단 쓰는 글의 맨 뒤에 첨부해 둔다. 

 

 

 

 

아래 발췌한 글은 1~2주 전 주말에 썼던 파트이다. 그리고 맨 아래 따로 떼어놓은 푸른색의 몇 줄이 바로 그런 '들어낸 부분'이다.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에서 옛 여자친구인 리다와 재회한 게냐는 한동안 잡담을 주고받다가 결국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꺼낸다. 그리고 더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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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다는 유리잔을 무심하게 빙글빙글 돌렸다. 얼음이 잔 안에서 부딪치며 달그락거렸다. 나는 반쯤 남아 있던 페리에를 그녀의 잔에 따라주고 식어버린 차를 마저 마셨다. 문득 이 자리가 너무나 불편해졌다. 옛날이야기를 주고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전화를 걸어왔을 때 리다는 그저 잠깐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었다. 잠깐이면 된다고. 꼭 할 얘기가 있다고. 전화로는 하기 어렵다고. 내가 아는 리다는 이런 잡담을 하기 위해 사람을 불러내는 여자가 아니었다. 친구나 애인이라면 예외지만 자기 영역에 들어와 있지 않은 사람을 이런 식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오후 4시였다. 스튜디오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나직하게 물었다.

 

 

“ 리도츠카, 왜 만나자고 한 거야? ”

 

 

리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빽빽하고 두꺼운 마스카라 사이로 투명한 푸른 눈을 천천히 깜박이면서. 무의식적으로 나는 코펠리아를 떠올렸다. 인형처럼 무감각한 눈빛, 무대 분장을 연상시키는 짙은 메이크업. 그 침묵의 주시가 계속되자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불편해졌고 그냥 그녀가 본론을 꺼내놓을 때까지 기다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아마 우리가 이렇게 서로 눈을 오래 마주치는 건 오직 키스할 때와 사랑을 나눌 때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많이 하는 커플이 아니었다. 아니, 대화의 총량은 그리 적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말하는 쪽은 대부분 리다였다. 말할 때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는 건 둘 다 서툴렀다. 리다는 맘먹으면 얼마든지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얘기할 수 있었지만 ‘너무 간지럽잖아. 미국 애들도 아니고’하며 싫어했다. 미국을 동경하고 할리우드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도 그랬다.

 

 

한참 후에야 리다가 말했다.

 

 

“ 넌 나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구나. 잘 지냈는지, 뭘 하며 사는지. 하나도. ”

 

“ 미안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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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미샤의 시선이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말없이 오래 주시할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간지럽거나 오글거리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불편하다는 느낌이 든 적도 거의 없었다. 그는 원한다면 자기 시선만으로 상대방을 기분 나쁘고 불편하게 만들 수 있었고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자리에서는 거리낌 없이 그렇게 했지만 내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의 눈빛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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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으로 표기된 일곱 문장은 원래는 리다에 대한 묘사, 즉 '미국을 동경하고 할리우드 영화라면 사족을 못 쓰면서도 그랬다' 라는 문장 바로 뒤에 오는 글이었다. 기울임체까지 정확히. 하지만 다음날 그 뒤를 이어서 쓰기 전에 저 문장들을 들어냈다. 나에게 필요한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저 순간 들어가는 것이 알맞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논리적으로는 괜찮았지만 정서적으로는, 그리고 이 인물의 특질과 성격을 생각하면 이 문장들은 나중에 등장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저 부분을 들어냈고 리다의 대사를 적었다. 그런데 여전히 저 문장들을 되풀이해 읽고 굴리게 된다. 아마 글의 속도가 늦어서 그런 것 같음.

 

 

 

보통 들어낸 부분은, 그것도 글이 완결되기 전까지는 여기 적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쓰는 과정에 대해 잠시 적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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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펠리아는 희극 발레 제목이자 거기 등장하는 인형 이름이다. 사람으로 변하는 인형. 리도츠카는 리다의 애칭이다. 리다도 리디야의 애칭이다만. 

 

 

 

맨 위 사진은 그냥 글만 발췌하자니 심심해서. 반쯤 녹은 얼음과 탄산수가 담긴 유리잔 사진을 찾는 게 귀찮아서, 글의 분위기보다는 너무 화사해보이지만, 그랜드 호텔 유럽의 아르누보 바에서 내주는 체리 벨리니. 몇년 전에 저 바에서 복숭아 벨리니를 마셨다가 생각보다 너무 독해서(내가 베네치아에서 마셨던 그 달콤하고 약한 벨리니가 절대 아니었음) 완전히 취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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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꾸준히 조금씩 쓰고 있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피곤해서 도저히 쓰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일하고 와서도 밤에 꾸준히 쓰는 편이었는데 역시 나이가 들면서 집중력과 에너지의 지속성이 떨어지고 있기도 하고, 또 맡은 일의 범위와 책임이 더 심화되어서 그만큼 정신적 소모가 커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쓰고 있다. 

 

 

발췌한 두 개의 문단은 역시 옛 여자친구인 리다에 대한 게냐의 회상이다. 다만 지난번 발췌 파트들이 주로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와 연관된 기억들이라면 아래 내용들은 이미 둘이 헤어진 후의 이야기들이다. 소설의 배경에서 주인공인 게냐는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3년 정도 춤추다 미샤의 발레단으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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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리다가 결혼한 후에도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그건 모두 극장에서였다. 그만둔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우연이었겠지만 그녀는 나의 마린스키 마지막 무대를 보러 왔었고 심지어 안내원을 통해 꽃도 전해주었다. 정작 사귈 때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미샤의 발레단으로 이적한 후의 첫 공연과 갈라 무대에도 왔다. 그때는 남편과 함께 왔으므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노브이 루스키 중에서도 언론 쪽에 발을 걸치고 있어 문화적 자기 포장을 할 줄 아는 세련된 부류에 속했고 미샤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심지어 공연 후원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우리 리셉션과 기자간담회에도 참석했다. 그를 내게 소개해 준 것도 리다가 아니라 미샤였다. 미샤는 나와 리다의 옛 관계를 몰랐다. 하지만 안다 해도 별로 신경 썼을 것 같지 않다. 미샤는 상대방의 사생활이나 과거에 대해 캐묻는 타입이 아니었다. 사실 질투나 집착이 뭔지 제대로 알기나 할까 싶다. 그런 사람이 그토록 격렬하고 폭발적인 작품들을 안무하고 정서적으로 도저히 눈을 돌릴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인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리다의 남편은 나와 그녀가 몇 년 동안 사귄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리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철저한 사업가였고 매사를 계산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했다. 아내의 ‘철없던 여학생 시절 연애질’에는 관심도 없을뿐더러 나 정도의 풋내기는 자기 같은 거물 비즈니스맨에게는 경쟁 상대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봤던 건 작년 이맘때 무소르그스키 극장에서였다. 미샤의 푸쉬킨 연작 중 마지막 작품인 ‘스페이드의 여왕’ 초연이었고 나는 게르만을 췄다. 그는 시장과 국회의원 두엇, 방송사 부사장과 함께 로열석에서 공연을 관람했고 커튼콜이 끝났을 때는 리다와 함께 백스테이지에 들러 미샤와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리다는 남편이 나를 비롯한 주역 무용수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뒤로 물러서 있었고 내겐 의례적인 인사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한밤중에 불쑥 전화해서 잔뜩 취한 목소리로 ‘너 그 역 잘 어울리더라. 여태 봤던 무대 중에 제일 좋았어. 마린스키 버린 보람이 있네, 좋겠어’ 라고 말하고는 툭 끊어버렸을 뿐이었다. 뜬금없는 전화는 그렇다 치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는 내 공연을 종종 보러 오곤 했지만 제대로 된 평을 해준 적이 없었고 내가 물어보면 자기는 전문가가 아니니 그런 걸 기대하지 말라고 했었다. 심지어 마음에 들었다거나 좋았다거나 별로였다는 얘기조차 거의 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 나는 리다와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공연을 보러 왔지만 리다는 따라오지 않았다.

 

 

 

 

 

 

 

 

 

 

 

 

 

... 무소르그스키 극장은 지금의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이다.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내가 처음 갔던 무렵, 그리고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후반에는 무소르그스키 극장으로 불렸다. 애칭은 말르이 극장이었는데 요즘은 이 애칭은 거의 안 쓰는 것 같다. (말르이 드라마 극장이 있어서 사실 좀 헷갈리긴 함) 미샤의 발레단은 별도의 극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연을 올릴 때 무소르그스키나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등의 무대를 활용한다. 미샤와 그의 발레단의 초기 모델 중 하나였던 보리스 에이프만 발레단이 그런 케이스였고 지금도 알렉산드린스키에서 주로 공연을 올린다. (에이프만을 위한 극장 건축 중이라 몇년 내 개관 예정이긴 하지만)

 

 

그래서 맨 위에 무소르그스키 극장(현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내부 전경 사진을 올려보았다. 물론 가즈프롬 등 빵빵한 후원기업과 전문경영자가 붙은 후 환골탈태한 현재 모습이다만,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90년대 후반에도 대충 색상이나 무대 형태 등등은 거의 유사했다. 바로 위 사진은 최근 이 극장의 '신데렐라' 공연 백스테이지 풍경. 

 

 

위 글에서 언급되는 게르만은 종종 나왔던 그 사악한 크레믈린 아저씨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아니고 푸쉬킨의 단편 '스페이드의 여왕' 남자 주인공인 게르만이다.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전경 한 장 더. 나도 가끔 가는 극장이다. 이 극장 발레단의 수준은 확실히 마린스키보다는 훨씬 떨어지지만 주역 무용수 몇몇은 볼만하고 또 네프스키 대로 중심가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하러 가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이미 몇년 째 못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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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는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도 꾸준히 쓰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열심히 집중해서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은 아직도 제목을 안 정해서 맨첨 장난으로 붙였던 쌍둥이, 혹은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리다' 라고 부르고 있다.

 



아래 발췌는 지난번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의 2층 카페, 싸구려 칩시와 트윅스' (https://tveye.tistory.com/11355) 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게냐는 리다와 함께 그 호텔 2층 카페에 드나들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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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리다와 함께 여기 왔을 때 나는 아직 학생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콩쿠르나 마스터클래스 참여 때문에 학교에서 단체로 투어를 간 적은 여러 번 있었고 물론 외국 경험도 있었지만, 호텔에 묵는다 해도 여럿이서 방 하나를 썼고 항상 우리를 양떼처럼 몰아대는 인솔자가 있었기 때문에 카페나 부대시설을 이용해본 적은 없었다. 그나마 묵었던 호텔도 집단 기숙사 같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리다는 이미 대학생이었고 나보다 두 살 연상인데다 유행에 대한 여자애 특유의 세련된 감각이 있었다. 서너 번째 데이트 무렵 그녀는 스몰렌카 운하를 산책하다가 다짜고짜 나에게 호텔에 가자고 했고 내가 당황하자 ‘방이라도 잡자고 할까 봐? 우리가 그럴 돈이 어딨니. 커피 한 잔만 마시러 가는 거야’ 라고 대꾸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리다는 호텔 2층에도 카페가 있고 바텐더가 있으며 가죽 소파에 앉아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 시장이나 슈퍼마켓, 스톨로바야 카페보다는 더 비싸지만 그래도 맘먹으면 가끔은 들를 수 있을 정도의 가격대로 호텔이라는 공간과 그 분위기를 점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혹되어 있었고 나에게도 그 흥분과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어 했다. 물론 나는 금세 감염되었다. 열여덟 살도 되기 전이었고 극장에 들어가기도 전이었으니까, 그저 좁은 아파트에서 엄마와 동생과 부대끼며 살던 때였고 매일 트롤리버스를 타고 조드쳬고 로시 거리로 통학하며 언제나 죽어라고 춤을 췄지만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생각하면 모든 것이 아득했던 시기였으니까. 그러니 내가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에 처음 들어섰을 때 완전히 새롭고 즐거운 세계, 어른들의 공간으로 들어온 기분이 든 건 어쩌면 당연하다. 리다는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편이었지만 집안 형편은 엇비슷했고 언제나 새로운 것, 멋진 것, 있어 보이는 것에 목말라 있었다. 나는 다른 곳에서 데이트하는 것도 좋았고 때로는 그냥 함께 강변을 걷거나 좁은 침실에 계속 같이 틀어박혀 있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리다는 언제나 ‘그래도 호텔 카페가 제일 좋아’ 라고 했다. 디스코텍이나 록클럽보다 호텔이 더 쿨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리다에게 그건 내가 무대 위에 올라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바깥으로 나가면 우중충하고 습하고 어두운데다 진창이 가득한 거리와 끝없이 오르는 물가, 텅 빈 진열대와 좌판에 살충제를 놓고 파는 노파들과 불법 복사 테이프들과 매연뿐이지만, 높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와 로비의 무거운 문을 통과하면 후끈한 목욕탕 냄새와 함께 깨끗하고 광활한 공간이 펼쳐지고 마치 외국이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푹신하고 커다란 가죽 소파에 파묻혀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앉아 ‘호텔 바텐더’가 가져다주는 커피와 홍차를 마시며 별 뜻 없는 대화를 나누고 이따금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몸을 밀착시키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우리가 묵고 있는 방으로 올라가 사랑을 나눌 것만 같고, 그건 반드시 스위트룸이지 일반 ‘노메르’(номер)는 아니며 다음날이면 메르세데스나 BMW가 우리와 트렁크를 풀코보 공항으로 실어다 줄 것이며, 우리는 아에로플로트가 아니라 에어프랑스나 델타 에어라인 같은 외국 비행기에 올라 비즈니스석으로 갈 것이다. (1등석까지는 차마 이르지 못했던 것을 보니 리다의 상상력에도 어느 정도 현실적 제동이 걸렸던 것 같다)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은 1997년 11월이다. 그리고 게냐가 리다와 사귀던 무렵 함께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에 갔던 시기는 그 몇 년 전이다. 헤어진 후 게냐는 이 호텔에 발을 들여놓지 않다가 리다의 연락을 받고 다시 그곳에 가면서 이런 회상을 하고 있다.

 




두번째 문단의 '스톨로바야 카페'는 소련 시절 많았던 카페테리아 형태의 셀프 식당 겸 카페이다. 지금도 여럿 있다. 저렴한 구내식당 같은 스타일이다. 조드쳬고 로시 거리는 바가노바 발레학교가 있는 거리 이름이다. 소설의 주인공 게냐는 미샤와 마찬가지로 그 학교 출신이다. 다만 미샤는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게냐는 집에서 통학을 했다. 세번째 문단의 ‘노메르’ (номер)는 일반적으로는 '숫자'라는 뜻이지만 호텔에서는 방을 가리킨다.

 




그리고 게냐와 리다가 산책했던 스몰렌카 운하와 그쪽 동네에 대해.

 



맨 위와 바로 위 사진이 스몰렌카 운하 풍경. 저 사진은 2016년 12월에 찍었더니 워낙 추운 때라 살풍경하게 나왔는데 사실 원래 좀 저렇다. 바닷가 동네라 바람도 많이 불고 춥고 주변이 황량한데 지금도 90년대와 큰 변화가 없다. 바실리예프스키 섬 끄트머리의 프리모르스카야 지하철역 부근에 있다. 여기는 이 글의 배경인 1990년대 후반에 내가 실제로 살았던 기숙사가 있는 동네이다. 저 스몰렌카 운하를 따라 많이 걷기도 하고 운하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글에 나오는 프리발티스카야 호텔도 이 동네에 있는데, 프리모르스카야 지하철역과 스몰렌카 운하에서 도보로 20분 가량 걸린다(내 걸음으로) 운하를 끼고 돌면 까라블레스뜨로이쩰레이 거리가 나오고 그 기다란 거리에는 페테르부르크 국립대 기숙사와 소련 시절 지어진 아파트들,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이 있다. 호텔 뒤로는 바다가 이어진다. 바다와 호텔 사이에는 우체국과 전화국이 있고, 바닷가에는 전쟁 당시의 대포들이 진열되어 있다.



 

 

 

 




스몰렌카 운하 좌우로 옛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왼편의 소련 시절 아파트들 중 한곳에 미샤와 그의 어머니 율리야가 살았다고 설정하며 글을 썼다. 이전에는 좀더 도심에 살았지만 아버지가 체포된 후 엄마 율리야와 어린 미샤는 이쪽 동네로 이사오게 된다. 그리고 미샤는 몇년 후 발레학교 입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극장 들어간 후에는 근처의 다른 아파트에서 살게 된다. 하여튼 여기는 꼬마 미샤네 동네.

 





 

 





여기는 기숙사에서 프리발티스카야 호텔로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이다. 소설 속에서 리다가 결혼 전까지 엄마랑 살았던 집도 이 근방 아파트들 중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리다랑 게냐는 이 동네 스몰렌카 운하를 산책하기도 하고, 가까운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2층 카페에 드나들게 되었다. (막상 게냐네 집은 이 동네가 아니고 상당히 멀어서 리다랑 데이트하려고 항상 멀리멀리 오가곤 했음. 사랑의 힘인지 젊음의 힘인지)




 

 

 

 




위의 아파트들을 지나 프리발티스카야 호텔로 가는 길에 있는 아주 조그만 식료품 가게. 여기는 90년대 후반에도 있었고 나와 쥬인이 이따금 들러 트윅스 초코바나 음료수를 샀던 곳이다. 예전 발췌에서 게냐랑 리다가 트윅스나 피크닉 사러 가던 가게가 여기.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낙서도 되어 있고 문에 커다란 맥주광고도 붙어 있네... 전에는 그래도 낙서 같은 건 없었는데.

 




 





여기가 프리발티스카야 호텔. 이 사진도 16년 12월에 찍었다(그러고보니 이 호텔 앞으로는 이때 간 게 마지막) 지난번 올렸던 2006년 사진보다는 훨씬 멀끔하고 좋아보이는데... 아마 카메라의 차이일지도 ㅋㅋ 이미 여기는 파크 인에서 인수해서 지금은 파크 인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이 되었다. 잘 보면 왼편 사이드에 여전히 그 전광판 시계/온도계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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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시작한 단편은 느릿느릿 나아가고 있다. 집중해서 휙휙 쓰고 싶은데 역시 연초는 원체 바쁘고 일도 많은 시기라 집중이 잘 안돼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제야 주인공인 게냐가 전 여자친구인 리다와 본격적으로 마주앉아 대화를 시작했음 ㅠㅠ 

 

 

이따금 그날그날의 메모나 전에 발췌한 파트에서 언급했듯 이 단편은 90년대 후반(명확하게는 97년 11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있는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에서 시작된다. 게냐는 리다의 연락을 받고 예전에 종종 데이트하던 곳인 이 호텔 2층 카페로 그녀를 만나러 간다. 아래 두 문단은 전에 둘이 사귀던 시기에 대한 게냐의 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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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언제나 2층 카페에서 만났다. 로비 바보다는 이쪽이 더 아늑하고 한적했다. 홀 구석 창가에 있었기 때문에 낮에는 빛이 들어와서 1층보다 훨씬 밝았고 소파도 크고 푹신했다. 별도의 디저트나 샌드위치 대신 커피나 차 한 잔만 시키는 정도라면 가격도 무난했다. 원한다면 칵테일이나 맥주를 마실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별로 없었고 바텐더도 손님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한참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가끔 근처의 조그만 식료품 가게에서 주전부리를 사 가곤 했다. 리다가 가장 좋아했던 건 트윅스 초코바와 조그만 노란색 봉지에 든 이상한 스낵이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과자는 감자칩처럼 생겼지만 튀겨서 기름기가 배어 나온다는 것과 짭짤한 것 빼고는 맛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가격이 매우 싸다는 것 외의 이점은 없어 보였지만 리다는 그 정체불명의 과자를 가리켜 ‘싸구려 칩시(чипсы)’라고 불렀고 쓸데없이 비싼 레이스(LAYS)의 훌륭한 대체물이라 했다. 마치 가짜 LSD처럼. 나는 리다의 표현대로 ‘장기간의 세뇌 교육 때문에’ 과자를 먹는 건 기피했지만 그녀와 트윅스를 반으로 나눠 먹는 건 좋아했다. 매대에 트윅스가 없을 때, 그러니까 운이 좋을 때는 내가 선호하는 피크닉 초코바를 고를 수도 있었다. 트윅스의 찐득한 캐러멜 시럽보다는 피크닉의 땅콩 쪽이 더 좋았다. 리다는 내게 그 와중에도 나이트를 고르느냐고 핀잔을 줬다. 나이트는 다크 초코잖아. 난 그냥 초코가 더 좋단 말이야. 다크로 눈속임한다고 뭐가 달라져? 어차피 초콜릿 먹는 거. 다이어트 콜라 시키는 거랑 똑같잖아.

 

 

 

 옥에 티는 이 홀과 카페가 이따금 단체 손님들의 행사 장소로 쓰인다는 거였다. 그럴 때면 천을 씌운 테이블이 줄줄이 깔리고 하키나 축구 유니폼을 입은 운동선수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오붓한 데이트는 완전히 물 건너간다. 리다는 ‘어차피 여기서 섹스를 할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너보다 몸 좋은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게 싫은 거지?’라고 나를 놀려댔지만 사실 본인이야말로 사람 많은 걸 질색해서 2층에 올라올 때마다 케이터링 테이블이 깔려 있는지 아닌지부터 확인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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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사진이 바로 그 2층 카페인데 아쉽게도 97년 사진은 아니고 2006년에 찍은 것이다. 쥬인과 같이 차 마시면서. 그래서 조금 나온 우리 모습은 블러 처리해서 실루엣만 보인다. 바로 위의 황량한 잿빛 건물 사진은 역시 2006년에 찍었던 호텔 후면 풍경이다. 역시 삭막해보인다. 1980년 즈음 개소한 호텔인데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큰 호텔임. 뭐랄까, 이 건물은 지나갈 때마다 '소련 느낌!' 이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97년에 찍어놓은 사진들은 아쉽게도 없다. 그땐 디카가 아니라 필카를 썼기 때문에 안 그래도 아까운 필름을 사람 찍기도 모자라서 이런 건물이나 배경 찍을 겨를이 없었음 ㅋㅋ 그나마도 내가 찍은 예전 버전으로 올려본다만, 97년엔 위 사진의 유리건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나중에 증축한 것 같다.

 

 

그리고 맨 위의 2층 카페도 2006년 풍경이고 97년엔 저렇게 아늑하지는 않았다. 사진처럼 잎차를 우려주지도 않아서 당시엔 홍차 시키면 립톤 비스무레한 티백 담가줬다(그러니까 호텔이라도 가격이 별로 안 비쌌던 것 같음) 하지만 게냐와 리다에겐 오아시스였고 사실 저 당시 나와 쥬인에게도 그랬다. 쥬인과 나도 저 카페에 이따금 갔었다. 호텔치곤 카페의 커피와 차 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기숙사에서 가까운 곳이었으니까. 

 

 

게냐와 리다가 얘기하는 싸구려 칩시는 실은 나랑 쥬인이 가게에서 사가곤 했던 과자였는데 그때도 지금도 이름은 모른다(아마 이름이 안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쥬인과 나는 에스트렐라 감자칩을 좋아했지만 그것이 비싸기도 했고 저렇게 카페에 가져가기엔 너무 봉지가 커서 눈에 잘 띄니 어려웠다. 어느날 근처 가게에서 저 과자를 발견하고는 호텔 카페에 갈 때 종종 가져가서 먹었다. 싸구려 칩시라는 별명을 붙인 것도 우리의 추억에서 가져왔다. 칩시(чипсы)는 chips의 러시아어 표기이다. 그리고 트윅스와 피크닉에 대한 이야기도 쥬인과 나의 기억에서 가져왔다. 그러니 이 글을 쓰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나의 과거와 기억들을 거슬러올라가 새롭게 재구성하고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주인공이 겪는 실질적인 이야기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지만. 

 

 

 

 

 

 

 

97년 당시와 비교했을 때 전혀 변하지 않은 풍경. 이 호텔에는 이렇게 커다란 전광판이 붙어 있고 시간과 기온이 번갈아가며 표시되곤 했다. 그래서 쥬인과 나는 학교 갈 때 아침 버스를 타고 호텔 앞을 지나칠 때면 눈을 크게 뜨고 기온을 확인하곤 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기온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근데 체감온도는 항상 이 전광판에 나오는 온도보다 몇도는 낮게 느껴졌다. 이 동네가 바닷가에 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동네 갔던 것도 거의 5년 쯤 전인데 그때도 저 전광판은 여전히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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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게냐의 풀코보 공항 왕복 여정과 네프스키, 그와 미샤, 지나에 대한 글을 쓰면서 동시에 구상했던 단편이 있었는데 지금 그것을 쓰고 있다. 전자의 이야기보다 이틀 전에 일어나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쌍둥이'라고 불렀는데 구상을 하는 과정에서 '쌍둥이를 차라리 먼저 쓸까?'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어쨌든 전자를 마친 후에는 한동안 이 쌍둥이와 또다른 구상 노트가 떠오른 글 두개를 놓고 고민하고, '그래도 쌍둥이를 써야지'로 귀결된 후에도 시점을 놓고 좀 고민하느라 계속 늦어져서 글을 시작한 것은 작년 12월 마지막날 밤이었다. 그러고는 1월에 연초라 너무 바빠서 결국 아직도 초반부에 머물러 있다. 아직 제목도 못 정했다. 

 

 

 

배경은 1997년 11월의 페테르부르크. 처음 글이 시작되는 곳은 페테르부르크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이다(전에 일상 메모에서 노어 발음과 표기법 사이의 괴리에 대해 투덜거렸던 바로 그곳이다)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게냐이고 이야기는 이 사람이 옛 여자친구인 리다를 만나러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발췌한 부분은 게냐가 다른 호텔들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다. 에브로파와 아스토리야. 현재의 공식 호텔 이름은 벨몽드 그랜드 호텔 유럽, 그리고 로코 포르테 아스토리야 호텔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종종 언급했고 내가 종종 묵기도 했던 곳인데 나는 보통은 유럽 호텔, 아스토리야라고 적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에브로파라고 표기하고 있다. 에브로파는 '유럽'의 러시아어 표기이고 실제 발음은 에브로빠/이브로빠.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이 에피소드의 배경인 1990년대 후반에 게냐는 미샤의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춤추고 있고 그와 동거하고 있다. 그는 에브로파와 아스토리야에 대해, 그보다는 실은 미샤에 대해, 그리고 예전 애인인 리다에 대해 얘기한다. 현 남친, 그리고 전 여친에 대해서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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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브로파와 아스토리야는 밝고 우아하고 동시에 돈 냄새가 넘쳐나서 어딘가 조금 천박하게 느껴진다. 미샤가 업무 미팅이나 인터뷰 장소를 다른 곳으로 잡으면 더 좋았겠지만 두 곳 모두 네프스키 한가운데와 이삭 광장 맞은편이라는 위치상의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잘 모르고 또 이해하고 싶지 않은 어떤 비즈니스 전략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갈런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설명해줄 준비가 되어 있을 테지만 나는 물론 그 자본주의 장광설에 자진해서 코를 처박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어느 날 딱 한 번, 미샤에게 미팅 약속이 아닐 때는 굳이 여기에서 차를 마시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을 뿐이었다. 에브로파와 아스토리야는 이름값만큼 차 한 잔 값도 비쌌고 그렇다고 그만큼 맛이 훌륭한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미샤는 자기 정도 되는 사람이면 매일같이 최고급 호텔에서 차를 마시는 법이라고 당연한 답을 하는 대신 눈을 둥그렇게 떴고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에 잠겼다. 한 번도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마침내 그는 ‘그러고 보니 그렇네, 집 앞 카페가 더 나은 것 같아, 몇 배는 싸고. 바깥으로 운하도 보이고. 그냥 습관이 돼서 그런가 봐. 옛날부터 자주 왔거든. 지나도 그렇고. 전엔 여기가 그렇게 비싸지 않았어. 국립대 다니는 애들도 자주 왔고’ 라고 말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와 나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시간과 인식의 거리를 깨닫고 내심 놀라곤 한다. 그건 공식적인 일의 영역과는 다른 층위의 거리이다. 스튜디오와 극장에서 그는 명확하게 리더이며 윗사람이다. 동시에 그런 위계와는 아무 상관 없이, 나와 같은 무용수다. 미샤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언제나 무용수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도 미샤는 딱히 어른처럼 구는 적이 없어서 내게는 그가 소위 옛날 사람이란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이따금 이런 말을 들을 때에야 비로소 ‘아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뭐 단어만 놓고 치자면 리다도 ‘국립대 다니는 애들’에 속했다. 그저 시대가 다를 뿐이다. 리다는 일부러 에브로파에 가서 편지를 부쳤다. 순전히 그곳의 호사스러운 레스토랑에 드나드는 같은 학부의 부잣집 여자애들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에브로파에서는 외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맨을 대상으로 달러를 갈취하기 위해 요금이 몇 배로 비싼 특송 우편센터를 차려놓고 있었는데 길만 건너면 우체국이 있었고 리다에겐 딱히 편지를 보낼만한 외국의 친척이나 지인이 없었으므로 이건 정말 바보짓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너 도쿄에 다녀온 적 있잖아. 그쪽 아는 사람 주소라도 줘’ 라고 했고 결국 나는 도쿄문예회관과 발레 마스터클래스에서 딱 한 번 만났던 그쪽 안무가에게 새해 인사 엽서를 써야 했다. 

 

 

 

 

 

 

 

 

 

 

 

 

 

 

중반부에 언급되는 갈런드는 미샤의 발레단에서 홍보와 해외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미국인. '국립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미샤의 레닌그라드 시절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이었고 소련 붕괴 후 다시 옛날 이름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것이다) 네바 강변에 있는 대학이고 나도 예전에 여기서 잠시 수업을 받았다. 페테르부르크에선 그냥 '우니베르시쩻' (Университет, 영어로는 유니버시티)으로 부르고 정류장 이름도 우니베르시쩻, 학교가 있는 강변도 우니베르시쩻 강변이다. 예전에 썼던 트로이의 레닌그라드 이야기에서 트로이와 알리사도 이 학교를 나왔다. (푸틴도 이 학교 법대 출신...)

 

 

 

사진은 2013년에 갔을 때 찍었던 에브로파, 즉 그랜드 호텔 유럽의 라운지 카페 메조닌. 여기는 작년에 완전히 리모델링을 하고 가구와 인테리어도 싹 바꿔서 이 모습은 이제 없다.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바뀐 모습도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어쩐지 내 기억 속 메조닌이 사라진 것 같아 좀 아쉽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후반의 이 호텔 카페는 이 모습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당시엔 돈이 없어 카페까진 못 들어가봤음. 소설 속의 리다처럼 나도 호텔 안의 우편센터를 몇번 이용했는데, 리다처럼 허세부리는 건 아니었고 여기선 속달로 한국에 편지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긴 했지만, 그 센터를 이용할 때면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마찬가지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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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1. 11. 2. 17:45

눈의 여왕 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 (03) 2021. 11.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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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 17:45

눈의 여왕 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 (02) 2021. 11.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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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 17:44

눈의 여왕 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 (01) 2021. 11. 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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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7. 22:23

잠시 - 글을 마치고 about writing2021. 10. 17. 22:23

 

 

 

 

주말 동안 무척 집중해서 계속 썼고 조금 전에 글을 마쳤다. 6월부터 거의 넉 달 동안 쓴 글이다. 이제 글을 닫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사진은 @dshved 의 그루지야 트빌리시 풍경이다.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오더라도 소설을 쓰는 방식이나 과정은 글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인물에 따라 달라진다. 거의 언제나, 새로운 뭔가를 경험한다. 하지만 동시에 비슷한 과정의 어떤 고양감이 생겨난다. 그 마지막 고양감에 대해서는, 때로는 표현하지 않고 그냥 놔둬야 한다. 그래서 이 사진으로 오늘을 마무리한다. 퇴고는, 숨을 돌린 후. 아마도 내일이 지나고, 바쁠 테니까 아마도 다음 주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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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1. 10. 16. 20:05

깃털과 자작나무와 맥도날드 about writing2021. 10. 16. 20:05

 

 

 

 

계속 쓰고 있다. 이제 열페이지 가량만 더 쓰면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다. 

 

 

발췌한 부분은 후반부, 그것도 가장 최근에 쓴 파트 중에서. 맥도날드와 피자헛, 지나랑 미샤의 입맛 등등. 

 

 

위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맥도날드이다. 지하철역 바로 맞은편에 있다.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인데 오랜 옛날부터 쥬인과 자주 가던 곳이다. 게다가 유명한 곳이다. 이제는 러시아 컬트 영화로 대접받는 영화 브랏(brother)에서 주인공 다닐라(세르게이 보드로프)가 당시 페테르부르크의 로컬이자 소위 노는 여자애인 케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곳임. 몇년 전 가서 저 사진 찍었던 날은 흐려서 사진이 너무 하얗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좀더 짙은 색이다. 저 외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내부는 물론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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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는 맥도날드나 피자헛 등 소위 미국 냄새나는 음식들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단것도 아주 좋아했는데 특히 세베르의 모코 케익과 발샤야 코뉴셴나야 거리의 도넛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갈런드는 처음 지나를 봤을 때 우아하고 자그마한 모습에 팅커벨 같다며 한 번 놀라고, 그토록 가냘픈 그녀가 치즈 토핑을 세 배로 추가한 두툼한 피자를 순식간에 흡입하는 모습에 두 번 놀랐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지나는 ‘요정도 먹어야 살 거 아니야!’ 라고 항의했지만 그래도 남자 무용수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듣자 자못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는데, 미샤가 ‘지나는 많이 먹어도 돼, 깃털 같으니까’ 라고 편을 들어주자 금세 얼굴이 펴지면서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한쪽은 깃털이고 한쪽은 자작나무지’ 하고 게냐는 생각했다. 무대에 본격적으로 올라가던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미샤는 여전히 온전한 무용수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데도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과 기본 연습을 빼먹지 않았고 틈날 때마다 스튜디오에서 혼자 춤을 추기도 했다. 식생활은 그리 풍성하지 않았다. 지나와는 달리 패스트푸드나 피자, 단것도 입에 잘 대지 않았다. 심지어 차에도 설탕을 넣지 않았다. 지나는 ‘저 바보는 옛날부터 저랬어,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진 거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야. 애초부터 살찌는 체질도 아닌데. 모코도 한 조각 이상 먹어본 역사가 없어. 나보다 더 좋아하면서’ 하며 혀를 내둘렀다. 미샤는 애초부터 자작나무처럼 날씬하고 유연한 몸을 타고 나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고 본인도 그런 사실을 아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먹는 것에 연연하는 적이 없었고 바쁠 때는 뭘 먹어야 한다는 것도 잘 잊어버리는 편이어서 지나와 키라가 툭하면 이거 먹었냐 저거는 먹었냐 하고 잔소리를 했다. 발레단의 마사지스트인 빅토르마저 합류해 걸핏하면 미샤에게 한 번만 더 식사를 거르고 오면 돼지비계를 세 겹으로 얹은 부체르브로드를 먹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미샤는 왜 자기 주변에는 항상 이렇게 뭘 먹으라고 종용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지 모르겠다고 피곤해했다. 게냐는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아무도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 주려다 자신마저 잔소리를 추가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대신 이따금 스튜디오 근처의 빵집에서 사과파이를 사 갔다. 미샤는 단것을 딱히 즐기지 않았지만 예외적으로 모코 케익과 사과파이만은 좋아했다. 제대로 구운 사과파이만. 맥도날드의 애플파이나 체리파이는 ‘파이’ 축에 끼지 못했다.

 

 

 

 얼마 전 막내 단원인 이라의 생일에 미샤는 그녀가 그렇게도 노래를 불렀던 맥도날드에서 모든 단원들과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생일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점원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주자 이라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테이블 위로 올라가 춤을 출 기세였다. 미샤는 이라와 동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좋아했고 먹고 싶다는 메뉴는 전부 시켜 주었지만 막상 본인은 버거나 감자튀김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신상품이라고 다들 궁금해했던 나무열매파이와 체리파이만 절반씩 갈라 이라와 나눠 먹었다. 그러고는 이상한 기름 맛이 난다고 했다. 갈런드는 그에게 인생의 낙을 너무 모른다고 놀려댔다.

 

 

 

 

 

 

 

 

 

 

... 글에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샤가 이라와 단원들을 데려가 파티를 열어준 맥도날드도 바로 저 맥도날드. 글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미샤의 발레단 스튜디오가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있기 때문에. 저 당시(90년대 후반)엔 맥도날드가 '레스토랑'이라고 불렸고 젊은이들의 꿈의 직장이었으며 거기서 생일 파티하는 건 어린애가 아니더라도 엄청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수업 마치고 쥬인이랑 저 맥도날드에 가서 밤까지 죽치고 앉아 빅맥세트를 먹으며(당시엔 모든 버거 세트 가격이 동일했으므로 무조건 빅맥을 먹어야 이득이었음) 온갖 수다를 떨곤 했다. 그리고 이 글의 배경이 되는 1997년엔 아직 KFC는 페테르부르크에 오픈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마디로 맥도날드가 최고였다. 피자헛도 있었는데 거기는 너무 비싸서 쉽사리 가기 어려웠음. 

 

 

 

 

 

 

 

내부는 이제 이렇게 변했다. 여기도 키오스크가... 옛날엔 쥬인이랑 여기 줄서서 빅맥세트 시키고 케찹을 1루블인가 10루블 주고 사면서(이때 화폐개혁이 있었던 시기라 아직도 당시 케찹 가격이 헷갈림 ㅋㅋ) '어떻게 케찹을 돈 주고 팔 수가 있어 나쁜넘들' 하고 슬퍼했었다 :)

 

 

 

 

 

 

 

몇년 전 다시 갔을 땐 맥치킨세트로(이젠 세트별로 가격이 다름 ㅜㅜ)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통틀어 모든 맥도날드 중 이 바실리예프스키 맥도날드가 제일 맛있다! 다시 갔을 때도 그렇고... 추억보정인가 싶다가... 나는 그래도 맛없는 건 얄짤없는 타입이라 정말 여기가 더 맛있는 건지도... 하기도 함. 그런데 이런 인생의 낙을 모르는 미샤 ㅎㅎㅎ

 

 

 

 

 

 

문제의 케찹. 근데 요즘은 그냥 세트 시키면 주는 것 같다. 옛날엔 1루블 더 주는 게 너무 아까워서 쥬인이랑 케찹 한개만 시켜서 나눠먹었다. 

 

 

 

 

 

 

창 너머로 이렇게 동네 풍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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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1. 10. 9. 22:46

결국은 엠티비와 무즈티비 about writing2021. 10. 9. 22:46

 

 

 

 

꾸준히 쓰고 있다. 이 글에서 주인공은 판탄카-모스크바 대로-풀코보 공항-모스크바 대로-네프스키 대로-바실리예프스키 섬으로 계속해서 이동하는데, 특히 모스크바 대로의 비중이 많다. 그래도 이제는 네프스키 대로로 들어서고 있으므로 뭔가 큰 숙제를 해치운 기분이다 :)

 

 

발췌한 부분은 글의 전반부. 게냐가 막 모스크바 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지굴리, 라다는 둘다 러시아 자동차. 

 

 

 

사진은 Igor Nik. 눈 내리는 페스텔랴 거리 풍경을 찍은 건데 발췌한 부분과는 별 상관이 없지만, 저 문단 다음부터는 줄창 눈이 내리기 시작하므로 글 전체의 분위기랑 약간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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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오후였기 때문에 아직 러쉬 아워는 아니었지만 모스크바 대로로 접어든지 몇 분도 되지 않아 갑자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앞을 내다보니 단속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무슨 차든 간에 경찰들에게 털리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게냐는 경험으로 경찰들이 외제 차를 보면 돈을 더 뜯어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루블은 먹히지도 않았다. ‘이래서 이 차 가지고 오기 싫었어’라고 생각하며 그는 급하게 속도를 줄이고 점퍼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여권 복사본과 달러 몇 장을 확인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경찰들이 그의 차를 불러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더 좋은 미끼가 있었나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지굴리와 라다, 폭스바겐이 줄줄이 멈춰선 채 경찰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속에 걸리지 않았고 소모적인 승강이도 기분 나쁜 뇌물 상납도 없었으며 길도 다시 잘 뚫렸으므로 게냐는 기분이 나아졌다. 라디오에서는 젊은 남자가 속사포 같은 영어를 쏟아내고 있었다. 게냐는 가수 이름 몇 개 외엔 거의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아마 갈런드가 미샤를 위해 맞춰둔 채널인 것 같았다. 미샤는 영어 실력이 좋은 편이었고 불어는 더욱 수준급으로 구사했다. 단원들이 부러워하면서 외국어를 잘하는 비법을 좀 알려달라고 조르면 ‘지금 너희가 영어 공부할 때냐, 춤 잘 추는 게 우선이지. 모두 연습실로!’라는 식으로 대꾸했지만 정말로 꾸짖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미샤는 무용수들에게 화를 내는 적이 거의 없었다. 외국어 비법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물어보면 억지로 공부하지 말고 재미있는 걸 읽거나 영화를 보라고 했다. 단원들은 ‘말도 안 돼, 이미 잘하는 사람이니까 저렇게 쉽게 얘기하지’라고 투덜거렸다. 지나의 말로는 분명히 학창 시절에 둘이서 같이 외국 잡지를 구해 읽고 음반을 밀수하고 미국 라디오 방송을 몰래 듣다가 걸려서 벌을 받곤 했는데 자기는 여전히 외국어라면 까막눈이고 미샤는 옛날부터 잘했다는 것이었다. 미샤는 집에서도 원어 방송을 듣거나 잡지를 읽곤 했는데 진지하게 공부를 하는 건 전혀 아니었다. 그저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게냐는 자신도 매일 들어보면 ‘습관이 되어’ 귀가 뚫릴까 하며 미샤와 외국 방송을 같이 보기도 했지만 별로 진전이 없었고 영어든 불어든 여전히 소음 공해로만 들렸기 때문에 결국 둘이 함께 있을 때 가장 자주 틀어놓는 채널은 엠티비와 그 러시아식 짝퉁인 무즈티비가 되었다.

 

 

 

 

 

 

 

 

 

무즈티비(муз-тв, 원어에 가깝게 발음하면 무즈떼베)는 MTV 비스무레한 러시아 음악채널이다. 뮤직비디오를 줄창 틀어줬다. 나도 심지어 지금도 러시아에 가면 주로 저런 채널을 틀어놓곤 한다. 특히 이 글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랬다. 기숙사의 좁은 방에 달아둔 텔레비전에서 제일 많이 봤던 것은 엠티비와 무즈티비였음. 노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오에르테나 엔테베 등 뉴스가 많이 나오는 채널을 봐야 좋았겠지만 결국은 좋아하는 가수들이 나오는, 혹은 재밌는 뮤비가 나오는 음악채널로... :) 내 방에서 보기도 하고 쥬인 방에 가서 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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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