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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petersburg'에 해당되는 글 233

  1. 2016.06.27 6.26 일요일 밤 : 여전히 고민 중, 어젯밤 있었던 일, 레냐는 바리쉬니코프가 고맙단다, 바에서 그루셴카, 친구야 고마워 6
  2. 2016.06.26 6.25 토요일 밤 : 수프 비노와 알렉세이 재회, 첨 보는 공원에 감, 네프스키 대로에 드러누워봄, 카잔 성당 분수 앞에서 료샤와 레냐에게 해준 이야기, 아이스크림 2
  3. 2016.06.25 6.24 금 : 소포 성공, 마귀할멈 포진 우체국, 돔 끄니기, 카톨릭 성당, 아이스크림, 빛나는 운하, 방 또 옮김, 마린스키 지젤(슈클랴로프, 마트비옌코) 보고 옴
  4. 2016.06.24 부셰에서 연어 오믈렛 아점, 플롬비르 아이스크림, 도시락
  5. 2016.06.24 6.23 목요일 밤 : 이것이 러시아(우체국에서 열받음), 레트니 사드, 다샤, 빛나는 하늘과 물, 아폴로,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내일 또 옮김 8
  6. 2016.06.24 이브닝 티, 레트니 사드 2
  7. 2016.06.23 6.22 수요일 밤 : 엽님과 조우,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잠자는 미녀,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카라보스! 석양 보며 엽님과 산책
  8. 2016.06.22 6.21 화요일 밤 : 일 안하는 게 천성인가, 애프터눈 티세트로 아점저, 토끼의 원대한 야망은 물거품, 뒤늦게 나가서 물건 사고 돌아옴, 러시아 컵라면 우엑, 료샤와 레냐가 삐친 이유 4
  9. 2016.06.21 6.20 월요일 밤 : 지젤 득템, 멋진 예술가에겐 장미를, 텐동, 메도빅, 마린스키 젊은 안무가 갈라 공연, 슈클랴로프의 '나를 버리지 마' 짧은 메모와 사진 두세장, 또 비가 오네 2
  10. 2016.06.20 창가에서 체리와 빵으로 아점, 중국 찻잔에게 사과 :)
  11. 2016.06.20 6.19 일요일 밤 : 조식, 카페인 후유증으로 매우 고생, 호젓한 카페, 세번째 호텔, 스트라빈스키 3악장 심포니와 봄의 제전 공연 메모, 갈매기, 된장국과 김치, 중국 찻잔 2
  12. 2016.06.19 아름다운 전망
  13. 2016.06.19 6.18 토요일 밤 : 두번째 호텔, 정오부터 보드카라니, 우하, 피곤해서 낮잠, 료샤랑 레냐 방문, 사다 준 건 좋은데 뭔가 허술한 이 동네 아시아 음식 6
  14. 2016.06.18 첫번째 숙소 체크아웃 직전 2
  15. 2016.06.18 6.17 금요일 밤 : 흰밥을 원해서, 중국집인데 너무해, 살빠져도 안좋아, 디아길레프 카페에서 하루키, 소설과 밀실, 보리스 에이프만의 안나 카레니나, 판탄카 건너 돌아옴 10
  16. 2016.06.17 체리와 아보카도 뜨보록 샐러드 아점, 집2를 나오면서 찍은 사진들
  17. 2016.06.17 6.16 목요일 밤 : 다시 비옴, 뇌우, 왜 바쁜 척 하냐, 연장, 해골청년 고릭과 조금살짝 헌팅, 하지만 료샤에게 혼남, 비오고 피곤 8
  18. 2016.06.16 비오는 날, 숙소 옆 카페로 피신
  19. 2016.06.16 6.15 수요일 밤 :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보고 옴, 고스찌에서 점심과 차, 졸리니까 오늘은 짧게, 백조 브로치 4
  20. 2016.06.15 호텔 방 창가에서 늦은 아침 8
  21. 2016.06.15 6.14 수요일 밤 : 보르쉬와 키예프 커틀릿 아점, 수도원 산책, 사과빵과 차, 천사 이콘, 고양이, 료샤랑 레냐가 날 금세 알아본 사연 2
  22. 2016.06.15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에서 잠시 2
  23. 2016.06.14 6.13 월요일 밤 : 비, 종 치는 사람, 수프 비노, 영혼의 닭고기 수프, 어린이는 우끄롭이 싫다, 돔 끄니기 잠깐, 가운으로 전락한 원피스, 세끼 먹었으니 자가칭찬, 회사 생각 8
  24. 2016.06.13 내 친구 쥬인을 위한 거대 수퍼마켓 사진 대방출!
  25. 2016.06.13 bravebird님을 위한 석양 사진 몇 장(6.10) 2

(사진은 이탈리얀스카야 거리에 있는 어느 공원. 햇빛 쬐며 한가롭게 책 읽는 모습이 좋아서 찍어봤다)

 

..

 

 

아직 몸이 많이 힘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 와서도 매일 게으름피운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꼭 나다녔기 때문인지 아침엔 참 피곤하고 몸이 무겁다. 여전히 자다가 3~4시간 후면 반드시 깨어나고 그 이후에도 1~2시간마다 깨고 있다. 자고나면 머리도 아프다.

 

 

돌아갈 때가 거의 다 되었다. 수요일 오후 비행기로 떠난다. 이곳으로 떠나올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다. 그때는 떠나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웠고 숨이 막혀 미칠 것 같았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 숨도 쉬고 자가치유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늘 비오는 거리를 잠깐 걸어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글쎄, 나는 7월말까지 병가를 얻었고 이제 그건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달은 금세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당시 나의 행동으로 인해 향후의 입지나 상황이 그닥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떤가 싶지만 하여튼 기분이 좋은일은 아니다.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면.

 

 

..

 

어젯밤에,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료샤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레냐는 오후 내내 나랑 노느라 잠들어 있었다) 그 정도로 너를 힘들게 하고 피를 말리고 괴롭게 하는 회사에 왜 돌아가야 하느냐고.

 

그래서 나는 모르겠다고, 아마 돈을 벌어서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아마 곧 나이드실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리고 아마도 나는 다른 일을 시작하기가 두려운 것 같다고 대꾸했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료샤로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내게 무엇을 하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에 대해 좀더 관대해지라고, 자신의 능력을 좀 믿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경제적'으로서의 내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 자신이 없고 그것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는 것 같다고 대꾸했다.

 

료샤는 다시 한번 나에게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 뻬쩨르에 남든지 다른 곳으로 가든지 뭘 하든지 그건 내 선택이겠지만 하여튼 그 망할놈의 회사에 남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 갑자기 속상하기도 하고 우울해져서 좀 울었다. 료샤가 매우 당황했고 사과를 했다. 여자 울리는 나쁜 놈아 엉엉 ㅠㅠ

 

..

 

우울함과 피곤함의 여파로 몸살이 나서 늦게 일어났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가는 건 너무 더워서 실패했다.

 

 

대신 오후에 판탄카로 나가 바리쉬니코프 사진전시를 봤다. 료샤와 레냐도 같이 갔다. 레냐는 아직 전시를 보기엔 어리지만 내 손을 꼭 잡고 들어갔는데 직원은 별 말 안했다.

 

오히려 료샤는 '흠, 이 사람은 늙었구만. 그래서 타이츠 안 입었구나' 라는 망발을 하고 레냐는 '이 사람이 그렇게 유명해? 쥬쥬는 이 사람 좋아해?' 하고 물어보는 등 진지했다 :) 그래서 나는 레냐에게 '난 옛날에 이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러시아에 가보고 싶게 됐고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게 됐단다. 그래서 뻬쩨르에 오게 되었어'라고 대답해주었고 레냐는 무지 좋아했다. '우와 이 사람이 아주 고마운 사람이구나!' 하면서 기뻐했다 ㅋㅋ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 너무 후덥지근했다. 산책을 좀 하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피곤해해서 료샤가 우리를 데리고 유럽호텔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로비 바에 갔다. (전에 여기서 료샤랑 낮에 벨리니 마신 후 취해서 꿈나라로 간 적 있음 ㅠㅠ) 술 마시는 바라서 레냐 같은 어린이는 못 들어갈텐데 하고 걱정했지만 보호자가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건지 료샤가 뭐라뭐라 설득을해서 괜찮아진건지 도통 모르겠음)

 

 

 

 

 

술 마시면 안되는데 바에 왔더니 너무너무 뭔가 마시고 싶었다. 날씨가 더워서 그랬던 것 같다. 바텐더에게 독하지 않고 좀 달콤하고 약한 칵테일 추천을 받았다. 내가 원했던 건 안나 아흐마토바. 마야코프스키, 그루셴카 중 하나였는데(전부 작가나 시인, 문학 캐릭터 이름 따서 만든 이 바의 메뉴들이다) 아흐마토바는 독하고 마야코프스키는 보드카에 후추가 들어가서 맵고 시다고 했다. 그래서 서양배와 라임이 들어간 달콤하고 약한 그루셴카를 마셨다.

 

(그루셴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중 하나이다.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료샤는 내가 적극 권하여 블루 벨벳 마가리타를 마셨다(내가 마가리타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데킬라 때문에 독해서 못 마시니 그가 마시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 ㅋㅋ) 그리고 레냐는 산딸기와 크랜베리로 만든 모르스를 마셨다.

 

 

 

 

내가 아점으로 크루아상 한조각 밖에 먹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프 스트로가노프도 먹었다. 레냐는 어린이용 치즈버거를 드심 ㅋㅋ 그리고는 나의 그루셴카를 너무나 궁금해하며 탐내서 심히 괴로웠다. 냄새만 맡게 해주자 '엑 술냄새 나' 하면서 다행히 고개를 돌려버렸음. 참 다행이다 ㅠㅠ

 

그루셴카는 달콤하고 약하고 시원했다. 끝맛이 슬며시 독했지만 그래도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살짝 나른해질 뿐이었다.

 

다 먹은 후 나오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레냐를 엄마네 집에 데려다 줘야 할 시간이었다. 레냐는 안 가려고 했다. 엄청 툴툴댔고 찡찡댔다. 급기야 날 따라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ㅠㅠ 그래서 내가 수요일에 돌아가기 전에 또 보기로 약속하고 어르고 달랬다.

 

레냐를 먼저 데려다 준 후(그 동안 나는 근처 카페에서 쉬고 졸고 있었다) 료샤가 다시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호텔 바에서 차 한잔 더 마시고 들어왔다.

 

친구야, 고마워.

 

..

 

뭔가 답이 있으면 좋을텐데 인생에 답이 없는게 좀 슬프다.

:
Posted by liontamer

어제 불편한 자리에 앉아 공연 보면서 너무 무리했는지 온몸이 아프고 쑤셨다. 정오 넘어서까지 멍하게 누워 있었다. 그런데 바깥 날씨가 좋았고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오늘 바리쉬니코프 전시랑 수도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억지로 일어났다.

 

..

 

 

 

 

일어나긴 했는데 이래저래 나오니 두시 반이 넘어 있었다. 날씨가 좋다 못해 엄청 덥고 뜨거웠다. 땀이 날 정도였다. 아무것도 안 먹었기 때문에 근처 봐두었던 몇개 베이커리 카페에 들렀으나 다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인기 많은 곳들인가보다. 그래서 좀 걸어가다가 카잔스카야 거리로 이어지길래 수프 비노에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갔을 땐 알렉세이가 없었는데 오늘은 있었다. 혼자 가게를 보고 있었다. 처음엔 아는 체는 안하고 그냥 인사를 한 후 저번에 먹었던 닭고기 수프와 루꼴라 해산물 파스타, 생강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다 먹은 후 조용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알렉세이에게 살며시 물었다.

 

나 : 제 실수가 아니라면, 알렉세이 맞죠?

알렉세이 : 맞아요, 알렉세이.

나 : 혹시 저 기억하세요? 작년 여름에 왔었는데.

알렉세이 : 네. 사실 들어왔을때 알았어요! 그때 와서 같이 얘기하고 블로그로 알게 된 친구 얘기하셨죠.

나 : 맞아요. 그 친구도 기억하시나요?

알렉세이 : 네, 얼마 전에 왔었어요! 기억해요!

나 : ㅎㅎ 그 친구랑 저랑 여기서 2주 전에 드디어 만났답니다.

알렉세이 : 정말요? 인터넷으로만 안다고 하셨잖아요. 만난 적 없다고.

나 : 네! 그래서 우리 만나면 꼭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게 이루어졌어요. 같이 여기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그 친구는 먼저 따로 오고 저도 얼마전에 왔는데 그땐 당신이 없었어요.

알렉세이 : 아, 그랬구나... 저 없을 때 오셨었군요!

나 : 네, 그때 비와서 춥고 아팠는데 저 닭고기 수프 먹고 엄마 생각이 났고 몸이 따뜻해져서 좋았어요.

알렉세이 : 그 말 들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요.

나 : 친구는 한번밖에 못왔다고 굉장히 아쉬워했어요. 얘기 많이 나눴냐고 물어보니 별로 못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또다시 인사를 하며 얘기를 하기로 했어요 :)

알렉세이 : 너무나 기뻐요. 여기를 기억해준다는 것, 그리고 여기를 다시 찾아주신다는 게요. 친구분도 잘 기억해요.

나 : 그 친구의 닉네임은 독수리고 저는 토끼에요 ㅋㅋ

알렉세이 : 그래서 독수리와 토끼가 만나게 된 것이군요!

나 : 네, 우리는 이삭 성당 앞에서 만났답니다.

알렉세이 : 너무 근사한 얘기네요! 근데 당신은 어떻게 노어를 그렇게 잘 하세요?

나 : 아니에요, 많이 잊어버렸어요 ㅠㅠ

알렉세이 : 아니에요, 노어를 정말 잘해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외국인이라 그렇게 생각한 것임. 진짜 잘해서 그런건 아닐듯 ㅋㅋ)

나 : 전 노어랑 노문학 전공했고 옛날에 여기서 조금 살았어요. 요즘은 1년에 한번쯤 꼭 와요. 페테르부르크가 제 2의 고향 같아요.

알렉세이 : 왜 제2의 고향이에요?

나 : 음, 여기가 너무 아름다웠고... 러시아 문학과 극장이 좋았고... 그냥 도시랑 사랑에 빠졌어요. 부러워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계시는 것이.

알렉세이 : 우리 도시를 좋아해줘서 저도 기뻐요. 그리고 저를 기억해주고 여기를 기억해줘서도 기뻐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신다니 그래서 아까 러시아어로 책을 읽고 있었군요

나 : 네, 도블라토프 좋아해요.

알렉세이 : 우와, 좋은 작가죠.

나 :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도요. 기억하세요? 작년에 왔을때 제 친구가 당신이 알렉세이 까라마조프 연상시킨다고 했던 거

알렉세이 : (웃음) 네!

나 : 친구 얘기가 다시 나와서 말인데, 친구랑 여기서 다시 보고팠는데 시간이 안돼서 먼저 돌아갔어요. 저도 며칠 후 돌아가거든요. 그 친구가 꼭 안부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어요.

알렉세이 : 제 안부도 꼭 전해주세요!

나 : 그리고, 작년처럼 이번에도 저랑 같이 사진 한장만 찍어주세요 :) 친구에게 보내주려고요.

알렉세이 : 그럼요~ 좋아요.

 

그래서 우리는 내 핸드폰으로 좀 웃긴 셀카를 찍었다. 자세가 엉거주춤해서 내 얼굴이 좀 웃기게 나왔다만... 하여튼 bravebird님~ 문자로 사진 보내드렸어요 :)

그때 다른 손님이 왔다, 그래서 나는 알렉세이에게 '저 또 올게요~' 라고 인사했고 알렉세이도 '다시 오시기로 한 거예요~ 또 봐요!' 하고 인사를 나눴다.

 

이곳과 조용한 목소리의 알렉세이를 알게 해주신 bravebird님 고마워요. 다시 얘길 나눈 알렉세이는 작년보다 몇배로 더 좋았어요 ㅎㅎ

 

..

 

수프 비노에서 나와 카잔 성당 앞으로 간 후 버스를 타고 판탄카 근처 시티은행에 가서 다시 돈을 찾았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쓴거 같다. 근데 어차피 이번에 온 것 자체가 유리지갑 가루이므로... ㅠㅠ

 

전시 보러 갈 시간은 모자랄 것 같아서 그냥 수도원에 가기로 했다. 료샤에게 연락이 와서 수도원에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없이 22번 버스를 탔는데... 아뿔싸... 22번은 트롤리버스만 수도원에 가고 나머지는 다른 버스가 가는데 생각없이 버스를 탄 것이다. 보통땐 버스가 오면 무조건 노선도를 잘 읽어보고 타는데 오늘은 좀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점점 버스는 이상한 곳으로 가고... 돌아서 가나 싶었지만 체르니셰프스카야 지하철역을 지나고 또 한번도 안와본 거리 이름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때 깨달았다. 완전 잘못 탔네... 내려서 반대방향 차를 타고 네프스키 대로로 도로 가야 수도원 가는 버스를 타려나보다...

 

그래서 포춈킨스카야 거리(전함 포템킨 그 이름이다)에서 내렸더니 타브리체스키 공원이 있었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마침 공원이 있어서 거기 잠깐 들어갔다. 영국식 정원인데 토요일이라 수많은 가족들이 나와서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좀 거닐었는데 덥고 목마르고 엄청나게 아이스크림이 먹고팠다. (원래 공원에 오면 러시아 아이스크림이 먹고프다) 다시 네프스키 대로로 나가 수도원으로 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너무 힘들어서 료샤에게 연락을 했다.

 

나 : 친구야, 버스를 잘못 타서 듣도보도 못한 곳에 왔어... 무슨 포춈킨스카야 거리에서 내려서 무슨 타브리체스키 공원에 있어.

료샤 : 아이고 이 멍충아! 웬 포춈킨스카야 거리! 수도원이랑 완전 다른 쪽이잖앗!

나 : 잉 ㅜㅜ 나는 외국인이잖아 ㅠㅠ

료샤 : 바부팅이. 거기 울집에서 가까워. 레냐랑 그리로 갈게.

 

료샤는 스몰니 사원 근방에 살고 있다. 대충 지리를 보니 정말 스몰니랑 가까운 것 같긴 했다. 그래서 공원에 잠시 앉아 햇살 쬐며(좀 땀흘리며 ㅠㅠ) 친구를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내가 먹을 거라도 잘 주게 생겼는지 비둘기 몇마리가 어정거리며 다가왔다. 먹을 거 없어 ㅠㅠ

 

 

..

 

료샤가 잠시 후 차를 몰고 왔다. 레냐가 막 뛰어왔다. 햇살 뜨겁다고 야구모자에 앙증맞은 선글라스까지 껴서 진짜 귀여웠다. 료샤도 모스크바 출장 다녀오느라 며칠만에 보는 거였다. 레냐가 역시나 찰싹 안기며 좋아했다.

 

레냐 : 쥬쥬우~~ 하얀 옷 입었어, 아이 좋아~

나 : 엥, 내가 하얀 옷 입는 게 좋니?

레냐 : 쥬쥬 하얀 옷 입은 거 첨 봤어. 아이 좋아 아이 예뻐~

료샤 : 거봐! 맨날 해골 티셔츠 따위 입지 말고 꽃무늬랑 그런 블라우스랑 뭔가 파진 옷을 입으라 했잖아!

나 : -_- 마지막 단어는 못 들은 것으로... (레냐의 귀를 막아라 ㅋㅋ)

(오늘 그 잔무늬가 있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었다. 근데 어깨가 헐렁해져서 안에 얇은 캐미솔을 받쳐 입었다만 좀 패여 있긴 했다. 여기서나 입지.. 하긴 돌아가면 도로 살쪄서 블라우스가 헐렁하지 않을지도 ㅋㅋ)

료샤 : 얼굴도 좀 나아졌네. 역시 너는 뻬쩨르가 몸에 맞아. 그냥 여기 계속 있지...

나 : 나도 그러고 싶네 ㅠㅠ

료샤 : 수도원 갈 거야?

나 : 아니, 나 너무 피곤해 친구야...

료샤 : 그럼 모이카 쪽에 맛있는 식당 있는데 거기 밥먹으러 가자.

나 : 그래그래~

 

..

 

 

그래서 나는 료샤 차를 타고 편안하게... 네프스키 대로로 나갔는데... (료샤가 얘기한 모이카 운하 쪽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네프스키 대로를 통과해야 함) 편안해지려다가...

 

료샤 : 으잉? 이게 뭐야!

레냐 : 아빠! 도로에 사람들이 걸어다녀!!!

 

네프스키 중간까지 왔을 때였다. 그러니까 딱 가스찌니 드보르와 유럽호텔 부근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오늘이 '알릐예 빠루사'(진홍색 돛배 - 유명한 러시아 낭만소설 제목인데 여기서 연루되어 매년 진홍색 돛을 단 스웨덴 범선이 네바 강에 들어오고 그날은 여름 축제날이다) 축제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졸지에 가스찌니 드보르부터 네프스키 대로는 차 없는 거리가 되었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로로 쏟아져나와 걷고 있었다.

 

 

 

료샤가 막 짜증을 쏟아내려는데 나랑 레냐는 흥분해서 '우와! 네프스키에 차가 없어! 우와! 우리도 나가자!' 하고 뛰쳐나갈 기세였다. 료샤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료샤 : 어휴! 이게 뭐야!

나 : 료슈카!!! 나 네프스키에 사람 없는 거 첨봐!!!!

료샤 : 뭐가 그렇게 신기해! 너 옛날에 승전기념일 때 네프스키에서 깔려죽을 뻔 했다며!

나 : 아 맞다. 옛날옛날에 그런 적 있다. 그때도 차량 통제했지. 그치만 그땐 인파 때문에 무서웠는걸. 이거봐, 사람들이 너무 편하게 걸어다녀. 친구여, 차 어디 세워놓고 우리도 잠깐 도로로 나가면 안되니?

 

료샤는 뭐라뭐라 투덜댔지만 하여튼 차를 카잔 성당 뒤쪽 어딘가로 끌고 가서 댔다. 경찰 아저씨와 또 한참 뭐라뭐라 했다. 골치아픈 건 차 주인에게 맡겨두고 나는 레냐랑 뛰쳐나갔다.

 

레냐 : 쥬쥬~ 우리 아이스크림 먹어?

나 : 응, 아이스크림 먹어!

레냐 : 아이 좋아~

나 : 오늘 안 먹었어?

레냐 : 응, 아까 사달랬는데 아빠가 쥬쥬 만나면 분명히 아이스크림 먹을 거니까 그때 먹어야 한댔어.

나 : 너네 아빠가 참 나를 잘 아는구나 ㅠㅠ 가자, 아이스크림 사줄게~

 

나는 레냐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 가판대로 갔다. 레냐는 딸기가 든 마그낫 아이스크림(외제)이 맛있다며 그걸 골랐고 나는 '에스키모 레닌그라드스꼬예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료샤는 덥다면서 콜라를 골랐다.

 

레냐 : 쥬쥬는 신기해.

나 : 왜?

레냐 : 러시아 사람 아닌데 러시아 아이스크림 좋아해. 에스키모 먹어. 울 엄마아빠같아. 울 엄마아빠도 에스키모 좋아해.

(에스키모는 소련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러시아 아이스크림임 ㅋ)

나 : 난 러시아 마로제노예(아이스크림)가 제일 좋아. 레냐가 좋아하는 마그낫이랑 하겐다즈보다 에스키모랑 다샤가 더 좋아.

레냐 : 정말? 하겐다즈보다? 진짜?

나 : 응. 제일 맛있어, 에스키모랑 다샤. 에스키모는 다 맛있어. 콘이랑 하드랑 이 세모난 레닌그라드스꼬예랑.

레냐 : 쥬쥬 옛날 사람 같아.

료샤 : 쥬쥬 옛날 사람 맞어! 아빠 또래야!

레냐 : 아빠는 아저씨고 쥬쥬는 아가씨인데! 내 약혼녀인데!!

료샤 : 쥬쥬가 나보다 두살이나 나이 많...

(내가 잽싸게 그의 입을 틀어막음 -_- 이 자식이...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그 에스키모 레닌그라드스꼬예. 은박지로 싸여 있으니 진짜 촌스러워 보인다 ㅋㅋ 하지만 맛있다. 너무 달지 않고 우유맛도 많이 나고.

 

 

우리는 차 없는 네프스키 대로로 나가서 햇살을 쬐며 도로를 거닐고 사진을 좀 찍었다. 나는 뜨거운 도로 위에 앉아보았다. 잠깐 눕기까지 했다. 료샤가 혀를 찼다.

 

료샤 : 어휴 너 뭐해... 왜 누워 ㅠㅠ

나 : 네프스키에 차가 없으니 좋아서... 내가 언제 이렇게 해보겠니~

료샤 : 레냐가 따라하잖아! 레냐야 눕지 마! 옷 버려!

레냐 : 쥬쥬는 하얀 옷인데도 누웠는데 ㅠㅠ

료샤 : 쥬쥬는 어른이잖아!

레냐 : 어린이 싫어, 어른 할래 엉엉...

나 : 레냐야 내 무릎에 앉아.

 

그래서 나는 네프스키 대로에 가방을 베고 누웠고 무릎에 레냐를 앉힌 채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 하늘 위로 깔려 있는 트롤리버스와 트램 전선들, 솟아오른 건물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왔지만 누우니까 신기하게 좀 시원했다. 무릎에 앉아 있는 레냐는 따스했다. 그리고 옆에 철퍽 주저앉아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며 촌스럽니 어쩌니 하고 있는 료샤가 웃겼다. 친구야, 명품 선글라스 끼고 명품 재킷 입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콜라 마시며 사레들리는 네가 더 웃기거든!!

 

..

 

잠시 후 우리는 일어났고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로 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며 분수를 구경했다. 레냐가 물었다.

 

레냐 : 쥬쥬, 왜 여기가 제일 좋아?

나 : 몰라. 옛날에 처음 왔을때부터 여기가 좋았어. 그래서 내가 한국에 돌아간 후에 너무너무 뻬쩨르가 그리워서 소설을 하나 썼는데 배경이 바로 이 벤치였단다.

레냐 : 우와, 정말?

나 : 응. 그리고 있잖아, 주인공 말고 주인공 친구가 있는데.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사람이거든. 그 남자 이름이 레냐였단다 :)

레냐 : 우와아! 나야? 내 이름 붙인 거야?

나 : 아니, 그때는 너네 아빠도 알기 전이었고 레냐는 태어나기 전이었어. 근데 레냐라는 이름이 좋아서 붙였어.

레냐 : (으쓱으쓱) 히히히... 레냐는 착해? 레냐는 뭐하는 사람이야?

나 : 레냐는 마린스키 극장 무용수였단다.

레냐 : 슈클랴로프처럼!

나 : 슈클랴로프처럼 ㅋㅋ

레냐 : 우와아... 그러면 주인공은? 주인공 이름은 뭐였어?

나 : 미샤. 그 사람도 마린스키 무용수였단다.

레냐 : 내 친구도 미샤 있어, 세명이나 있어.

나 : 응 그래그래. (젤 흔한 이름이니 ㅜㅜ)

레냐 : 그러면 그건 무슨 이야기야? 레냐랑 미샤가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어? 우리처럼?

나 : 음, 옛날옛날인데, 1970년대였는데, 지금처럼 여름이었어. 레냐는 우리처럼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어.

레냐 : 에스키모?

나 : 아마 그랬겠지? 옛날이니까. 그래서 레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여기로 왔는데 이 벤치에 친구인 미샤가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단다.

료샤 : 너처럼! 너 공원에 앉아 책보는 거 좋아하잖아.

나 : (엥, 듣고 있었던 거니?) 응, 나처럼. 미샤는 나처럼 이 자리를 좋아했단다. 그래서 분수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

레냐 : 레냐가 미샤한테도 아이스크림 나눠줬어? 친구는 나눠먹어야 되는데.

나 : 어.... 내가 그 생각은 못해서 안 썼는데... 다음에는 꼭 그렇게 쓸게. 근데 미샤는 아이스크림을 잘 안먹었어. 케익도.

레냐 : 왜애? 그건 쥬쥬랑 틀리네?

나 : 응, 미샤는 무용수라서 단 걸 안 먹었단다.

료샤 : 쳇. 나 그놈 누군지 알아. 그 배나무 거리에 사는 놈! 극장까지 걸어가는 놈, 차도 없고... 축구도 안 한다는 그 불쌍한 녀석.

나 : 어머 너 그거 기억하는구나! (예전에 거리 이름 짓는다고 료샤에게 지금 쓰는 가브릴로프 본편 얘길 잠깐 했었음. 그 얘기들은 맨 아래 링크 추가)

료샤 : 당연하지! 배나무 거리에 살고 축구도 안 하는데 얼마나 불쌍하냐! 기억하지!

레냐 : 아빠, 자꾸 끼어들지 마! 그래서 미샤랑 레냐는 뭐했어?

나 : 미샤는 그때 어딜 가야 했는데 가기가 싫었어. 그래서 안 가고 여기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레냐가 걱정이 돼서 '친구야, 거기 가보렴' 그랬단다.

레냐 : 레냐는 착해. 미샤는 나쁘다. 말 안들으면 나쁘댔는데.

나 : 미샤는 나쁜게 아니고 옳지 않은 일을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야.

레냐 : 옳지 않은 일이 뭐였는데?

나 : 미샤는 극장에서 관객들을 위해 춤을 추는 무용수인데 높은 사람들이 불러서 자기네 집에 와서 춤을 추라고 했거든.

레냐 : 그건 나쁘다!

료샤 : 뭐가 나빠, 요즘도 다 그런데. 그게 인생인데.

나 : (애기 앞에서 참 좋은 얘기 하는구만 -_-)

레냐 : 아빠, 조용히 해! 그래서 미샤는 안가?

나 : 응, 안가고 레냐랑 미샤는 궁전광장으로 갔단다.

레냐 : 그래서?

나 : 미샤는 높은 사람 집에 가서 춤추는 대신 궁전광장의 알렉산드르 원주 아래에서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멋있는 춤을 췄단다.

레냐 : 이야!! 나는 미샤가 좋아!

료샤 : 분명히 kgb가 잡아갔을거야 -_-

나 : (그건 그렇긴 하지만... 애기 앞에서 제발 ㅠㅠ)

레냐 : 그래서?

나 : 춤을 춘 다음에 미샤랑 레냐는 사도바야 거리로 걸어가서 블린을 먹었단다. 끝!

레냐 : 우와, 너무너무 좋은 이야기야! 아빠, 우리도 블린 먹어!!!

 

료샤는 모이카 운하 쪽의 근사한 레스토랑 어쩌고 하며 투덜거렸지만 레냐도 그렇고 나도 갑자기 블린이 먹고팠다. 그리고 료샤도 갑자기 '너네 때매 나도 블린 먹고 싶어지잖아!' 하고 이상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료샤의 고급 차는 그대로 세워놓고 근처의 체인점에 가서 블린을 왕창 시켜먹고 행복해했다 :)

 

 

.. 아이스크림 먹던 레냐와 저 벤치에 앉아 책 읽던 미샤의 이야기는 전에 writing 폴더에 올린 적 있다. illuminated wall이란 제목이다. 그 이야기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 http://tveye.tistory.com/3385

..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와 미샤에 대한 얘기 추가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059

 

.... * 배나무 거리와 미샤에 대해 료샤가 한 말들

- 그가 배나무 거리와 미샤에 대해 알게 된 경위 : http://tveye.tistory.com/3187,

- 그가 배나무 거리의 미샤와 축구에 대해 투덜댄 경위 : http://tveye.tistory.com/3249

- 그가 배나무 거리의 미샤에게 축구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한 경위 : http://tveye.tistory.com/3386

 

..

 

내일 날씨가 좋으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가기로 했는데... 제발 비가 안 오게 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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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모이카 운하)

 

 

늦잠 자고 싶었지만 9시 알람을 맞췄다. 그 이유는 우체국 소포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_- 오전까지 머문 숙소가 중앙우체국 근처라 소포를 부치려면 오늘 오전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 가방을 싸보니 무게보다도 부피 때문에 그 망할 소포를 부쳐야 했다. 여름이고 홍차랑 책 몇권 외엔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왜 가방이 터져나가는 것일까 허헝,,,

 

10시 반쯤 중앙우체국에 다시 갔다. 어제의 그 마귀할멈 대신 다른 창구로 가서 물어봤는데 거기도 제2의 마귀할멈이 앉아 있었다. 딸론칙을 가져오라며 화를 냈다. 대체 딸론칙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했는데(보통 종이쪽지, 버스표 등을 가리킨다) 알고보니 번호표였다. 러시아도 그동안 기술발전이 물론 있었고... 번호표를 뽑아오면 스크린에 몇번 창구로 가라고 뜨는 것이다. 중앙우체국이라 워낙 크고 창구가 많으니 그런 거였다. 흠, 몰랐던 내 잘못도 있구나. 그건 그렇다치고 엄청 신경질냄. 손님도 하나도 없었는데!

 

번호표 기계로 갔는데 뭔가 엄청 복잡했다. 소포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나는 저렴한 소포를 부치고 싶었으나 도대체 몇번을 눌러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침 내앞에서 번호표 뽑는 나이든 아저씨가 계셔서 물어보니 너무나 친절하게 '이건 비싼거고 저건 싼건데 어떤걸로 할거니?' 라고 물어봐줘서 '싼거요~' 했더니 그럼 이 메뉴를 누르라고 알려주심. 아저씨 복받으실 거에요 흐흑... 그래, 시민들은 친절한데 관료들만 불친절한 것이야 허헝...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창구에 번호가 떠서 상자를 가져갔더니 새로운 마귀할멈 3이 막 화를 냈다, 왜 상자를 봉해왔냐는 것이다. 원래 여기는 소포 포장을 할때 안의 내용물을 모두 검사한다. (예전엔 CD 같은 건 반출 못했는데 아마 지금도 그러려나..) 그래서 '어제 다 검사해서 저쪽 창구 아주머니가 봉해준 거에요. 근데 쉬는 시간이라 다 놀아서 난 시간이 없어 오늘 다시 온 거에요' 라고 설명하고 다행히 어제 상자 포장해준 아줌마가 한쪽에 있어서 그분이 '응, 그거 어제 내가 다 봤어' 라고 확인해 주었다(유일하게 약간 친절했던, 마귀할멈 아닌 사람이었음 ㅠㅠ)

 

그리하여 1700루블을 내고(3만원 정도) 선박 운송을 선택하여 망할 소포를 부쳐버리니 살 것 같았다. 기껏 4킬로 더 쑤셔넣고 오버차지 내지 그랬냐고 하신다면... 가방에 자리가 없었습니다 ㅠㅠ 그리고 근력 따위 없는 나에게 4킬로 추가란 엄청난 짐!!!

 

 

 

(보기에는 아주 웅장하고 아름다운 중앙우체국.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나에게는 고생과 원망의 장소 -_-)

 

 

..

 

소포를 해결한 후 방에 돌아와 가방을 마저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2시 반 택시 예약을 한 후 이제야 가벼운 맘으로 부셰에 가서 오믈렛 아점을 먹었다. 맛있어서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도 엄청나게 날씨가 좋았고 하늘이 파랬고 햇살은 따가울 지경이었다. 진짜 눈부셨다. 돔 끄니기에나 갈까 하고 쭈욱 걸어올라갔다. 원래 목표는 돔 끄니기에서 책을 한권 사서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책 읽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라서 옛날에 미샤를 초창기에 등장시켰던 illuminated wall 에서도 미샤는 처음에 카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근데 잠깐 와이파이 연결이 필요해서 유럽호텔 로비로 가서 폰을 좀 봤다.

 

그리고는 카톨릭 성당에 들러 다시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

 

 

돔 끄니기에 가서 새 지도를 샀다. 구글이나 앱이 있어도 나는 아날로그라 옛날부터 보던 종이 지도가 편한데 한 2~3년 쓴 지도가 너무 헐어서 찢어지고 말았다. 새 지도를 산 후 글쓰기에 필요해서 7~80년대 레닌그라드 시절 도시 현황과 거리 이름 등이 기재된 책이 필요하다고 점원에게 물었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책장을 뒤져 페테르부르크 거리 이름 유래에 대한 책을 샀다. 이건 제정시대부터 지금까지를 다 아우르는 거라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아닌데 ㅠㅠ 나중에 구글링으로 찾는 게 빠르겠다.

 

(이게 오늘 산 책과 지도 두 종)

 

 

별거 안 했는데도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 앉아 책 읽을 시간이 없어졌다. 호텔까지 걸어내려가는 시간이 있으니(버스는 밀림) 그냥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돔 끄니기 앞 아이스크림 수레에서 에스키모 플롬비르 초콜릿 아이스크림 바를 사서 먹으면서 혼잡한 네프스키 대로와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대신 모이카 운하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햇살이 눈부셔서 운하의 수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붉은 다리와 푸른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네번째 호텔(하루 묵었었으므로 실제로는 3개째의 호텔)로 와서 체크인을 했다. 근데 저번보다 방이 안 좋네... 하긴 급하게 방을 예약했고 제일 저렴한 방으로 했으니... 그때보다 좁고 침대도 트윈을 두개 붙여놓은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방은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는데 이번 방은 안쪽 마당인 중정 방향이네. 그래도 뭐...

 

이 호텔은 그래도 프린트를 공짜로 할수 있어서 오늘 지젤 티켓과 새로 끊은 항공권 이티켓을 프린트했다. 그리고는 피곤해서 좀 늘어져 있다가 컵라면 대충 먹고 원피스로 갈아입은 후 마린스키에 갔다.

 

..

 

 

 

 

 

 

 

오늘 공연이 이곳에서 머무는 3주 동안의 마지막 공연이다. 원래 매진이었는데 우연히 표가 몇개 나와서 급히 득템했던 것으로, 바로 슈클랴로프가 알브레히트를 추는 지젤이었다. 오오...

 

공연은... 사실 내가 지젤을 진짜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은 작품 자체보다는 슈클랴로프 보느라 넋을 놓아서 ㅠㅠ 지젤 보면서 안 울었던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지젤로 나와서 좀 이입이 덜 되기도 했다만...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완벽했다... 이 남자의 타고난 기품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눈빛과 애절한 춤. 10년 전 그의 알브레히트가 생각났다. 이반첸코 대신 나와서 '저거 누구야!' 하고 짜증냈던 걸 떠올리니 참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감개무량 ㅋ

 

사진은 따로 올려보겠다. 리뷰도 따로 써보겠다. 근데 이걸로 총 8개의 공연을 봤는데 제대로 리뷰 쓴 건 거의 없네 어헝...

(커튼 콜 사진과 또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35)

 

내 자리가 간신히 득템한것까진 좋은데 1층 베누아르 완전 사이드의 게다가 2열이었다. 앞사람 머리에 너무 가리고 왼쪽 무대는 잘 안보여서 진짜 괴로웠다. 슈클랴로프가 출땐 반쯤 엉거주춤하게 서서 봤다(내 뒤에는 사람이 없어 다행...) 나중엔 꼭 기합받는 듯.. 허벅지 쥐나는 줄 알았다. 흐흑... 내 앞에 앉은 사람들 다 키 크고 머리 컸어 엉엉...

 

샵에서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희귀한 옛 사진 세장(아마 베자르 작품 췄을 때인듯)과 테미르카노프가 지휘한 호두까기 CD를 샀다. 그리고 내친김에 CD 파는 아저씨에게 레인골드 글리에르의 청동기사상 음악 있느냐 물었다. 이번 마린스키에서 올린 그 발레. 아저씨는 안타까워하며 다른 작품들만 있다고 했다. 그 음악 정확한 제목이 뭐냐 물으니 청동기사상 맞다고 한다. 하긴 발레음악으로 만든 곡이니... 네프스키의 다른 샵에 한번 가보라 한다. 그 음악 구하고픈데...

 

..

 

슈클랴로프의 우아하고 애절한 알브레히트 춤과 사랑스러운 커튼 콜 인사 때문에, 그리고 마린스키 구관의 지젤이라는 것 때문에, 또 마지막 공연이란 생각 때문에 좀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나왔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럴줄 알고 우산 가져왔다!!!!! 요 며칠 너무 날씨가 좋았어!

 

근데 진짜 엽님 운 좋으셨습니다~ 가시자마자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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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쓰고 호텔까지 15분 정도 걸어야했다. 오다가 수퍼에 들러 자두 세알과 체리 300그램, 새로 나와서 궁금해진 구운 고기맛 감자칩(ㅋㅋ), 물 1.5리터를 샀다. 방에 와서는 배고파서 체리와 감자칩을 조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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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제 4일 남았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우울함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래도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아름다웠다. 외모 얘기가 아니고(외모도 뭐 예쁘지만) 그의 춤과 표현력, 무대 자체가 아름다웠고 때로는 그런 아름다움이 마음을 뒤흔들고 감동시키고 또 위안과 평온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 말이 맞다. 때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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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우체국 가서 우여곡절 끝에 4킬로 소포 보내기 성공 후 체크아웃, 2시 반 택시 예약해놓고 근처 빵집 부셰에서 아점 먹었다. 오믈렛 아침식사가 있어 늘 궁금했다. 연어오믈렛 + 홍차 세트가 270루블, 난 여기에 크루아상 1개를 추가했다. 난 아점이니까 ㅠㅠ 합치면 340루블 정도. 6-7천원 가량의 꽤 괜찮은 아점이다.





오믈렛 기다리는 중




번호표





여기 오믈렛 아주 맛있었다. 달걀은 부드럽고 속의 치즈와 연어도 맛있고 비리지 않았다. 연어가 좀 짜서 내 입맛엔 간간했지만 크루아상 곁들여 먹으니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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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끄니기 갔다가 운하 따라 걸어오면서 에스키모 플롬비르 아이스크림 사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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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다시 숙소 옮김.



가방 풀고 배고파서 어제 가게에서 득템한 도시락 컵라면 먹는 중. 느끼함이 가시는구나 ㅠ





마린스키 가기 전에 컵라면 먹어 ㅠㅠ 안 우아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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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계절이든 페테르부르크의 하늘과 구름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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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오래 머무른데다 긴옷과 짧은옷을 많이 싸왔고 책들도 늘어났다. 찻잔이나 홍차 등의 부피도 있고 가방도 무거워서 트렌치코트와 긴옷 몇점 책 몇권은 우체국에서 일반 소포로 부쳐버릴 생각을 하고 아침에 낑낑대며 짐을 들고 중앙우체국으로 갔다. 호텔에선 10~15분 걸어가면 되는 거리이고 옛날에 있을때도 두어번 부쳐본 적이 있다.

 

근데 오늘 운이 없었다. 여기는 아직도 무게 다는 창구, 상자 사고 포장하는 창구, 돈 내는 창구, 부치는 창구 등이 다르고 복잡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하필 내가 갔을때 15분 후 쉬는 시간이었다 ㅠㅠ 하여튼 줄을 서서 일단 상자를 샀더니 상자 주는 아줌마가 네장의 서류를 쓰라고 했다. 상자값을 낸 후 서류를 열심히 썼다. 그러나 다 쓰고 나자 쉬는 시간이 되었고... 소포 부치는 창구는 아직 쉬는 시간이 아니라서 그리로 갔더니 그 아줌마가 내걸 안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_- 뭐냐... 그래서 그럼 어디로 가야 해요? 하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단다. 자기한테 묻지 말라 함.

 

너무 짜증이 났다. 많이 좋아졌지만 역시 이럴때면 옛날 생각이 나면서 '망할놈의 러시아!' 하고 버럭버럭 화가 나는 것이다.

 

한시간 기다렸다가 첨에 박스 받은 아줌마에게 다시 물어볼까 했는데 화도 나고 덥고 배도 고파서 그냥 상자 들고 호텔로 돌아와 컨시어지에 물어보았다. 호텔 측에 부탁해서 부쳐달라고 할수 있나 싶어서. 그러나 페덱스와 디에이치엘 이용하게만 해줄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 짐은 그냥 한달 걸려서 선박운송해도 되는 짐이고.. 디에이치엘로 보내느니 내가 그냥 오버차지 물고 비행기 타고 가지!!!

 

하여튼 그래서 도로 방에 상자째 갖다놓음. 내일 아침 10시쯤 우체국 도로 들고가봐야겠다. 너무 짜증이 나서 그냥 비행기에 들고 탈까 생각도 해봤는데 내일 숙소를 또 옮겨야 해서 가방을 싸다 보니 이 짐은 부치지 않으면 참 난감해질 것 같다. 아우 그 망할놈의 우체국 가기 싫어 -_-

 

..

 

우체국 때문에 좀 빈정상한 후. 그래서 밥도 못 먹고(-_-) 곧장 버스 타고 블라지미르 거리로 갔다. 오전에 부지런히 에르미타주에 다녀오신 엽님을 만나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에서 점심을 먹은 후 함께 판탄카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내려가 레트니 사드에 갔다. 놀랍게도 날씨가 좋아서 레트니 사드 가기 좋은 날이었다.

 

옛날에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인 다샤를 팔고 있어 좋아하며 벤치에 앉아 그것을 까먹음.

 

 

(공원에선 역시 아이스크림!)

 

날씨가 참 좋았다. 후문 연못에 백조, 갈매기, 청둥오리들이 모여 있었다. 백조는 기다란 머리를 마구 꼬며 뭔가를 주워먹느라 전혀 우아하지 못해 우리를 실망시켰다.

 

눈부신 날이었다. 햇살과 하늘, 물 색깔이 환상적이었다. 아무런 필터도 보정도 없는데도 갈매기와 오리, 비둘기 사진 색감이 이렇게 나와서 좋아서 올려본다. 아마 내가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

 

 

 

 

우리는 공원을 걸었고 분수를 보았고 크르일로프와 동물들 동상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리고 물론, 내가 좋아하는(ㅋㅋ) 아폴로도 다시 보고 인사했다.

 

(그런데 내가 아폴로 뒷모습 찍는 걸 보고 어떤 할머니가 막 웃으며 농담하셔서 난 좀 뻘쭘해지고 ㅠㅠ 하지만 뒷모습도 아름다운 아폴로라고요!)

 

..

 

이후 우리는 후문으로 나와 마르스 광장을 지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쪽으로 나왔다. 보통 레트니 사드 갈때 이용하는 코스이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이 많았고 사원의 황금빛 푸른빛 쿠폴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

 

엽님은 마린스키 신관에서 쥬얼즈 공연이 있었다. 버스 타고 가다 나는 먼저 내렸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어요! 한국 잘 돌아가시고 서울에서 다시 조우해요 :)

 

..

 

들어오다 그 일본라멘집에서 대충 가라아게동과 메론소다를 먹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단 방에 와서 챙겨먹기 귀찮았다. 사실 너무 목이 말라서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메론소다를 정신없이 마셨다.

 

방에 와서는 갑자기 피곤해져서 늘어져 있다가 디카페인 티를 마시고 가방을 챙겼다. 내일 숙소를 옮긴다. 여기 와서 5일을 더 연장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사실 그냥 7월까지 계속 있고 싶다만... 더 이상 있다가는 적금까지 깨게 생겼음.

 

내일의 목표는..

1. 아침에 우체국에 가서 더이상 빈정 상하지 않고 저놈의 소포를 잘 처리하는 것.

2. 숙소를 다시 잘 옮기는 것.

3. 슈클랴로프님의 지젤을 보는 것...

 

오늘은 자정 전에 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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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24. 02:38

이브닝 티, 레트니 사드 2016 petersburg2016. 6. 24. 02:38




날씨가 좋았고 엽님과 판탄카 따라 내려가 레트니 사드 산책하고 마르스 광장과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네프스키로 나왔다.


엽님은 공연 보러 가시고 난 간단히 저녁 때운 후 방에 돌아왔다. 내일 또 숙소를 옮기므로 가방 좀 싸다가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디카페인 티를 우려 한잔 마시며 늘어져 있다. 핵헥..


디저트는 며칠전 아스토리아 카페에서 먹고 남은거 싸온 것.. 맛있네.


너무 졸린다. 지금 자버리면 안되는데..







레트니 사드. 크르일로프와 동물들 조각상 앞 의자에 앉아 쉬면서 찍은 사진 한장.


레트니 사드 오면 항상 쥬인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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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늦어서 오늘은 짧은 메모만..

늦게 일어나 어제 부셰에서 사온 빵과 체리로 아점 먹고 오후 2시쯤 버스 타고 판탄카 근방의 시티은행에 가서 돈을 좀 찾았다.

 

 

 

..

 

그리고는 이삭성당 근처 아스토리야 호텔 앞에서 블로그 이웃님이신 엽님과 반갑게 조우했고 함께 청동기사상을 보러 간 후 어제 예약해둔 고스찌에 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차를 한잔 마셨다.

 

엽님은 페테르부르크에 처음 오셨기 때문에 운하 따라 마린스키까지 데려다 드렸다.

 

..

 

그리고 나는 버스를 타고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으로 갔다. 나는 오늘 잠자는 미녀 공연이 있었다.

 

 

 

안젤리나 보론초바와 이반 자이체프가 주역이었는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파루흐 루지마토프가 카라보스를 추심!!! 그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기원했는데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짐 :)

 

 

 

 

리뷰는 나중에 따로 쓰려고 한다만... 일단 아주 짧은 메모만 남기자면.

나초 두아토 안무의 잠자는 미녀는 동작이나 안무가 꽤 다른 부분도 많았다. 오로라의 춤이 특히 그랬는데 의외로 난 나쁘지 않게 봤다(원래 오리지널 잠자는 미녀의 오로라 춤을 별로 안 좋아함 ㅜㅜ) 다만 데지레 왕자가 조금 더 병풍처럼 처리되고 결혼식 솔로도 덜 화려해서 그건 아쉬웠다. 두아토의 잠자는 미녀는 오로라가 소녀에서 성인 여성이 되는데 더 초점을 맞추었고 그래선지 오로라가 완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가뜩이나 분량 적고 병풍 같은 왕자는 더 병풍이 되어 아쉬웠고... 제일 아쉬운 건 파랑새 솔로를 대폭 축소하고 그냥 2인무로 만든 거였다. 이럴수가.. 파랑새를 그렇게 만들면 어떡합니까 허헝...

 

하지만 다 떠나서 어깨 드러나는 드레스 입고 카라보스 추신 파루흐 루지마토프!!!! 당신을 다시 무대에서 보게 되어 너무나 영광이고 행복했어요... 어흑, 너네 카라보스 왜 초대 안했니! 저렇게 멋있는 카라보스를 초대 안했으니 오로라 따위 물레바늘에 찔려도 괜찮앗!

 

 

 

루지마토프를 거의 십년만에 다시 무대에서 보니 너무 반갑고 행복했다. 고마워요 파루흐... 엉엉..

 

그래서 커튼콜 때도 왕자고 공주고 다 필요없이 오로지 루지마토프만 열심히 찍음. 1야루스(3층) 사이드라 멀긴 했지만... 아아, 저분이 나오는줄 알았다면 유리지갑 먼지가 되어도 앞줄 끊었을 것을 허헝..

 

..

 

공연 끝나고 나와서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쪽으로 쭉 걸어서 호텔 쪽으로 갔다. 엽님도 공연 끝나고 청동기사상 쪽으로 가셔서 석양 보신다 해서 나도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함께 네바 강변을 거닐고 궁전광장을 지나 네프스키 초입으로 갔다. 전에 bravebird님이랑 같이 산책하던 기억이 났다. 엽님은 숙소가 네프스키 위쪽이라 트롤리버스를 태워드린 후 나도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자정이 좀 넘었다.

 

(석양 사진은 오늘 딱 두 장만. 맨 위 사진까지 세 장. 나중에 석양 스페셜로 한번 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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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남은 체리 다 까먹었다. 이제 자야겠다. 즐겁고 알찬 하루였다.

 

내일도 날씨가 좋기를...

 

.. 근데 너무 걸어서 그런가 오른쪽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혀 피얼룩이 져 있었다. 깜놀! 악 ㅠㅠ 연고 바르고 자야겠다. 하긴 구두 신고 돌바닥 많이 걷긴 했지. 내일은 공연도 없으니 운동화 신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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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여기 와서도 새벽에 깨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좀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언제 그렇게 미친듯이 일을 했느냐는 듯, 일 안하고 매일같이 쏘다니고 늦잠자고 누워 있고 게으름피우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다... 도대체가 나라는 인간은 애초부터 일해먹고 살게 생겨먹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아둥바둥 일을 하며 살았기 때문에 힘들었나... 흐흑, 일 안하고 살고 싶다. 어디서 화수분이라도 하나 뚝 떨어지면 좋을텐데. 결국 이것도 아주 짧은 기간의 일탈이고 아마 나는 그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여전히 마음의 안정을 찾거나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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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일어났다. 머리가 좀 아팠다. 자다가 추워서 긴 옷으로 갈아입고 잤는데 기침도 했다. 어제는 공연보고 오느라 빵이든 뭐든 아침거리를 사오지 않았다. 근데 어제부터 비가 와서 오후까지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일어나기가 너무 싫어서 오래오래 누워 있었다... 결국 배가 고파서 억지로 일어나 씻은 후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화장을 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모든 계획(k갤러리에서 바리쉬니코프 전시 보기, 로모노소프 찻잔 가게 가기 등등)을 취소하고 이 호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아스토리아 호텔 카페에 가서 애프터눈 티로 한방에 밥과 디저트를 해결하기로 호기있게 결심했다.

 

이 카페에는 전에도 몇번 갔었다. 얼마전 bravebird님과도 함께 갔었다. 예전에 딱 한번 애프터눈 티 세트 먹어봤다. 여기는 디저트 부페 식으로 나오는 러시안 애프터눈 티 세트가 있고 예의 3단 트레이에 나오는 잉글리쉬 애프터눈 티 세트가 있는데 후자가 더 비싸지만 사람들은 당연히 전자를 먹는다. 여긴 러시아잖아, 굳이 여기까지 와서 잉글리쉬 애프터눈 티 세트 먹어야겠나 싶은 거겠지.

 

 

 

 

빈속이라 일단 배를 채운 후 디저트를 먹기로 다짐. 오이샌드위치와 쇠고기로 속을 채운 피로슈카(파이), 양배추 파이, 딸기잼 얹은 블린을 먼저 먹었다. 다들 버터가 많이 들어 있고 맛있었다. 블린도 맛있었는데 부페 종류를 다 하나씩 먹어보고자 하는 원대한 야망 탓에 블린은 한장밖에 못 먹었다. 애초부터 부페를 많이 못먹어서 샐러드 바에서도 본전 못 건지는 나에게는 참으로 원대한 야망인 것이다.

 

 

이미 배가 불렀지만 디저트를 먹고자 하는 열망으로(ㅋㅋ) 딸기무스 케익과 바닐라 슈를 가져다 먹고... 초콜릿 트뤼플과 잼 얹은 초콜릿 무스, 견과쿠키를 가져왔는데 무스 외엔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안먹어본 게 아직도 남아 있었으나 역시 토끼의 위장은 작았고... 나의 원대한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엉엉) 더 이상 못먹고 초콜릿 트뤼플과 견과쿠키, 그리고 원래 곁들여준 견과얹은 비스코티 비슷한 쿠키는 살짝 티슈로 싸왔다. 아휴... 저걸 다 먹었어야 하는데 엉엉... 토끼도 위장이 4개면 얼마나 좋아!

 

(심지어 이 배터지는 와중에 산딸기에이드마저 서비스로 가져다줌... 근데 이거 맛있었다)

 

 

원래 비오니까 카페 창가에 앉아 애프터눈 티 마시며 우아하게 책이나 읽으려고 도블라토프 단문집과 하루키 책 두권이나 들고 갔는데(나름대로 빨간 립스틱도 칠해주고 조금 치장도 했다만) 결국 책은 하나도 안 읽고 창밖 구경하고 디저트 하나하나 클리어하고 카톡하고 폰으로 이것저것 확인하다 6시가 되었다. 이게 뭐야... 나 왜 책 두권 들고 내려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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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좀 더 앉아서 책 읽어보려 했으나 창밖으로 하늘이 개는 게 보였다. 여기는 날씨 좋으면 무조건 나가야 하는 동네라서(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른다 ㅠㅠ) 이미 전시 시간은 놓쳤으니 찻잔이랑 수분크림 사러 나가기로 했다. 내일 블로그 이웃님께서 페테르부르크에 오시기 때문에 같이 밥먹을 곳도 예약할 겸.

 

근데 bravebird님 때도 그랬지만 고골은 오늘도 역시나 며칠 동안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그래서 예약 실패. 여기 왜 이래... 예전엔 올때마다 자리 있었는데... 쯧, 너무 떠버렸어... 두셰브나야 꾸흐냐도 자리 없는데 ㅠㅠ 역시 겨울에 와야 편하게 밥먹는구나... 그나마 아직 고스찌는 자리가 있어서 예약에 성공했다. 고스찌, 너만은 제발... 어흑흑.. 고스찌는 이 동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인데 너마저 자리 잡기 힘들어지면 너무 슬플 거야...

 

..

 

처음엔 9일, 그다음엔 2주로 바꾸고, 그다음에 또 며칠을 연장한 거라서 화장품이 똑똑 떨어졌다. 스킨은 며칠 전에 싼 걸로 하나 샀는데 수분크림마저 떨어졌다. 크림은 스킨이랑 다르니 아무거나 막 사기도 그렇고... 근데 또 원래 쓰는 건 면세점 가격이랑 너무 다르니 덜컥 여기서 그냥 사기는 아깝고... 하여튼 네프스키로 나갔다. 리브 고셰에 갈까 했는데 렌에뚜왈이라는 다른 화장품스토어 체인이 있어 거길 갔다. 여기도 뭔가 브랜드들만 우글거리긴 하는데... 그나마 내가 쓰는 수분크림에 젤 가까운 건 비오템 아쿠아수르스인데 이건 사실 가성비가 안좋아서 굳이 여기서 면세도 아닌데 사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때 친절한 점원 아가씨가 와서 도와주었다. 수분크림 찾아요 했더니 이것저것 권해주어서 '이것보다 좀 더 가벼운 거요, 비오템 수분 젤 비슷한 건데 비오템은 싫어요. 원래 ㅇㅇ 썼는데 여긴 없어서요' 라고 하자 점원은 자기네 체인은 프랑스 체인이라 그쪽 브랜드들과 수입품들을 취급한다고 했다. 하여튼 세상에서 주문하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나이지만(ㅠㅠ) 점원 아가씨가 잘 도와줘서 이것저것 테스트도 해보고 다 발라보았다. 근데 50밀리짜리라서 더 작은 용량은 없느냐고 했고 다 50밀리라고 해서 '나는 여행왔는데 수분크림이 똑 떨어져서 조금만 있음 되는데요'라고 하자 '아항~' 하더니 여행용 키트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 진작 그렇게 물어볼걸 ㅋㅋ

 

점원 아가씨가 가져다준 키트에는 아이크림 8.5밀리, 수분크림 25밀리, 메이크업리무버 50밀리 등 딱 나한테 필요한 용량과 필요한 물건들만 들어 있었고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1+1 행사 중이라 같은 걸 하나 더 주었다. 첨엔 두개 사면 하나 더 준다는 줄 알고 나 혼자 쓸거라 필요없다 했더니 원 플러스 원이니 하나 더 가져가면 된다 해서 뭔가 조삼모사처럼 득템한 기분이 되었음. 내친김에 스타킹도 샀다. 스타킹 두개 가져왔는데 하나는 올이 나갔고 하나는 빵꾸나서 ㅠㅠ 스타킹도 원 플러스 원이라 원래 물건 가격이 좀 비싸긴 했지만 두개 산 꼴이 되어 또 그리 나쁘진 않다고 조삼모사 계산을 하였음...

 

 

(그리하여 두개씩 가져온 화장품과 스타킹. 조삼모사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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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사는 미션을 성공한 후(헉헉, 물건 사는 건 왜 아직도 이렇게 힘들까... 난 초보 여행자도 아니고 노어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엉엉), 쭉 걸어서 발샤야 코뉴셴나야 거리에 있는 로모노소프 매장에 갔다. 원래 제일 많이 가던 곳은 판탄카 근방에 있는데 거긴 버스 타고 가야 해서. 친구가 부탁한 코발트넷 찻잔 세트를 사고 새로 나온 귀여운 그젤 문양 찻잔과 뚜껑 달린 붉은 수탉 찻잔(저번에 샀던 붉은 수탉 찻잔 깨먹은 회한으로 새로운 수탉 장만)을 샀다. 다른 것도 이쁜거 많았는데(새로 나온 것들이!!!) 진짜 파산할 지경이라 포기했다. 근데 이러다 마지막날 도로 와서 또 살지도 몰라... 가방에 들어갈 자리도 진짜 없는데 ㅠㅠ

 

찻잔 사진은 나중에.. 일단은 박스를 풀지 않았다. 숙소를 며칠 후 또 옮겨야 하니...

 

찻잔을 산 후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서 돌아오다 부셰에 들러 내일 아침 먹을 빵을 샀다. 저녁 무렵이라 줄이 엄청 길어서 꽤 기다렸다. 그리고는 근처 가게에 가서 물과 컵라면을 샀다. 근데 요즘 왜 도시락 컵라면이 안보이지... 이상한 러시아 컵라면이 있어 닭고기맛을 일단 샀다.

 

물 2리터, 찻잔 4개, 화장품, 카메라 든 가방을 들고 호텔까지 걸어오는데 무거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깨랑 손목 다 나가는 줄 알았다. 으흑, 근력 부족... 게다가 더워서(뭐야, 오후까지 비오고 추웠는데) 땀을 삐질삐질 흘림. 생각해보니 돌아오는 길에 고스찌에 자리 예약도 했구나.

 

돌아와서 보니 내가 카페 가서 읽으려 했던 책 두권을 그대로 들고 다녔던 것을 발견. 으악, 그러니까 무거웠지... 어휴...

 

...

 

돌아와서는 씻은 후 빨래를 좀 하고 배고프고 느끼해서(단걸로 아점저를 먹었으니..) 문제의 컵라면을 끓여서 볶음김치와 먹어보았다. 이상하게 스프에서 카레 냄새가 나네 했는데 다 익고 나서 먹어보니 그것은 카레 냄새가 아니라 조미료 수프 냄새였음 -_- 우왝, 진짜 느끼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도시락이 히트를 친 거야!! 애액, 도시락 어데갔어... 도로 갖다놔요 엉엉...

 

 

하여튼 배고파서 볶음김치의 힘으로 맛없고 느끼한 러시아 컵라면을 꾸역꾸역 먹었다. 국물은 거의 안 먹고 버렸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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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샤와 레냐는 그저께 밤에 각각 다른 이유로 나에게 삐쳤다.

 

먼저 레냐는, 어제(월) 저녁에 나랑 다시 만나 놀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는 어제 마린스키 공연이 있었다.

 

나 : 레냐야, 나 마린스키에 공연 보러 가는데 다녀와서 이번주에 다시 보자.

레냐 : (정색)아뺘찌 슈끌랴로프!!! ('또' 슈클랴로프야!) 싫어 슈클랴로프! 진짜 싫어!

나 : (헉) 너 전에 그 사람 춤 잘추고 잘생겨서 좋다며... ㅠㅠ 나랑 곱사등이 망아지 볼때 좋아했잖아!  

레냐 : 싫어 싫어 슈클랴로프 싫어 힝힝... 쥬쥬가 좋아해 힝힝...

나 : (헉, 이 녀석이 이제 드디어 이성에 눈떴나, 질투라는 것을 하나!!!) 착하지 레냐야 양갱 줄게.

 

그리고 비장의 무기 양갱 10개들이를 주었다. 그러자 레냐는 금세 해해 웃었고 나보고 공연 잘보고 와서 또 놀자고 한다. 음, 약혼자가 너무 단순한 거 아냐... 양갱 주니까 금세 풀어져서 약혼녀가 멋있는 남자 무대 보러 간대도 웃고... 이거 기뻐해야 돼 슬퍼해야 돼...

 

그런데 이것이 료샤의 삐침을 유발했다. 그 이유는..

 

료샤 : 야, 너 레냐 양갱은 챙겨오고 나 줄거 안 챙겨오고..

나 : 미안해 친구야... 나 너무 급하게 날아오느라 네걸 못샀어 ㅠㅠ 미안해..

료샤 : 레냐만 챙기고 난 안중에도 없어 ㅠㅠ

 

... 료샤가 원하는 것은 맥심모카골드 믹스커피임... ㅠㅠ 그 노란색... 아저씨들이 좋아하는 거... 접때 먹여줬더니 껌벅 죽고는 그렇게 맛있는 커피 첨 먹어본다 해서 이후에는 러시아 올때마다 레냐 양갱이랑 얘의 맥심모카골드 노란색을 사왔던 것이다. 근데 이번엔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그나마 양갱도 간신히 사왔다 ㅠㅠ

 

그래서 레냐는 양갱으로 무마해서 질투심이 풀렸는데 맥심모카골드를 못 먹게 된 료샤는 아직 조금살짝 삐쳐있는 것 같다. 어흑, 내가 너네 집 가서 인스턴트 커피에 프림이랑 설탕 잔뜩 타서 다방 커피 타주면 되겠냐... 나 다방커피 잘 탄다... 이게 참 미스터리인데 난 커피를 안 마시는데 이상하게 내가 타는 다방커피가 아주 맛있다며 아저씨들이 항상 좋아했었음.

 

결론 : 레냐는 아직 먹을 것 앞에선 질투가 뭔지 모르는 순진남이고 료샤는 노란 맥심을 좋아하는 아재 입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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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사진은 무대 인사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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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메모가 늦은 이유는, 어젯밤 돌아왔더니 호텔 와이파이에 문제가 있어 연결이 안됐기 때문이다. 간밤 늦게 노트북에 메모 남겨놓았던 내용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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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쯤 잠들었는데 4시에 깨고, 역시나 7시 안되어 깬 후 계속 1~2시간마다 깼다. 그래도 너무 피곤했는지 눈 감을 때마다 다시 잤다.

   

계속계속 잠만 자고 싶었다. 억지로 정오쯤 일어났고 씻은 후 어제 부셰에서 사온 플레이따 빵과 체리, 디카페인 티로 방에서 아점 먹었다. 어제 고생한 거 생각해서 차 마시기 전에 먼저 약 먹었고 아침엔 디카페인 티 마셨다.

 

나가려다 혹시나 마린스키 홈페이지 봤더니 지젤 베누아르 구석 자리가 갑자기 몇 개 나와서 급하게 그나마 제일 나은 자리 1개를 예매했다! 분명 내가 봤을땐 1열 자리였던 거 같은데 끊고 보니 2번이라 아마 두 번째 줄인 것 같다 ㅜㅜ 첫줄이면 좋을텐데. 그래도 지젤 표 얻은 게 어딘가...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를 볼 수 있구나... 사이드라서 한쪽이 많이 가리겠지만 할 수 없지 ㅠㅠ 뜻하지 않은 선물 같았다. 

 

4시 좀 안되어 나왔고 아드미랄쩨이스까야 지하철역 맞은편 꽃집에서 꽃을 샀다. 앞으로 슈클랴로프를 마린스키에서 볼 일이 드물어질 것 같아 아쉬워서... 이 사람이 오늘은 흰옷 입고 나오니 색깔 있는 꽃을 주고 싶었다. 빨간 장미를 주고팠지만 너무 활짝 피어서 곧 시들 것 같았다. 그래서 약간 오렌지빛 도는 분홍장미 꽃다발을 샀다. 짧은 카드를 동봉했음.

 

옆의 하늘색 꽃무늬는 내 원피스 ㅋㅋ 꽃돌이에게 줄 꽃과 내 꽃옷. 꽃의 3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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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야 모르스까야에 생긴 라멘집에 가서 텐동과 오렌지주스 먹음. 사과주스를 잘못 갖다줬다며 미안하다고 오렌지주스를 또 가져다줘서 주스가 두 개가 되었다. (근데 오렌지주스도 남기고 사과주스는 거의 못 마심. 아까버...) 간만에 간장에 비벼진 밥 먹으니 좋았다. 일본 점원들이 일을 했는데 그래선지 여기는 요상망측한 퓨전 맛이 아니어서 좋았다. 난 우동국물이 먹고팠지만 라멘집이라 국물은 라멘만 있었다. 라멘은 짜고 기름져서 안 좋아하는 편이라...

 

그리고는 고스찌에 가서 메도빅을 먹고 차를 마셨다. 역시 여기 메도빅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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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쯤 나섰다. 날씨가 매우 좋았다. 버스 타면 꽃 구겨질 것 같아서 꽃다발 안고 운하 따라 극장까지 걸어갔는데 은근히 무거웠다 ㅠㅠ 그리고 더웠다.

 

6시 반에 도착해 입장. 꽃을 맡겼다. 첨엔 예르마코프에게 주는 꽃다발 하나만 꽂혀 있었지만 나중엔 꽃이 가득 찼다. 오늘 젊은 안무가들 공연이고 무용수들도 많이 나오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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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젊은 안무가 갈라 공연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없었다.

 

3막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1막은 일리야 쥐보이의 ‘SeasonS', 2막은 막심 페트로프의 ’파블로프스크‘, 유리 스메칼로프의 ’Ne me quitte pas'(녜 빠끼다이 미냐, 날 버리지 마), 블라지미르 바르나바의 ‘Glina’, 크세니야 즈베레바의 ‘엘레지, 오필리아’였고 3막은 막심 페트로프의 ‘왕의 디베르티스망’이었다. 제일 마지막 것만 전에 이고리 콜브가 춘 영상을 봤었다.

 

사실 난 오늘 슈클랴로프의 ‘날 버리지 마’를 보러 온 거나 다름없었다. 이것도 마린스키 공고는 늦게 나왔지만 나는 슈클랴로프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사람이 20일 이 공연에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끊은 것이다. 제일 앞줄 가운데자리를 득템하면서도 혹시나 안 나오면 어쩌지 하고 전전긍긍했다. 그나마도 이게 모던발레들 갈라라서 자리가 있었던 거지 딴 작품들은 자리 구하기 힘들었고 앞자리는 못 구했었다.

 

워낙 여러 작품들이라 리뷰는 나중에... 일단 간단한 인상만 적자면.

 

일리야 쥐보이의 ‘SeasonS'가 의외로 좋았다. 막스 리히터가 비발디 사계를 변주해 쓴 음악 자체가 워낙 좋기도 했거니와 콘다우로바와 즈베레프를 필두로 무용수들의 춤도 서정적이고 의외로 가슴에 와닿았다. 솔직히 어제 봤던 스트라빈스키 두 작품들보다 이게 더 좋아서 놀랐다.

 

막심 페트로프의 ‘파블로프스크’는 유머러스했고 포킨의 장미의 정령에 대한 윙크 같기도 했다. 깜박 잠든 근위병이 귀족들의 춤에 대한 환상을 본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블라지미르 바르나바의 ‘글리나’는 사실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움직임은 다채로웠으나 별다른 감흥이 없어 아쉬웠다.

 

크세니야 즈베레바의 ‘엘러지, 오필리야’는 고만고만한 작품이었지만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존재감이 강렬해서 그녀가 무대를 살렸다. 예르마코프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테료쉬키나에게 묻히는 느낌이었다.

 

막심 페트로프의 ‘왕의 디베르티스망’은 영상으로 볼때보다 훨씬 좋았고 재미있었다. 프로그램을 자세히 읽어보니 처음에 내가 영상을 봤을 때 놓쳤던 부분들도 많았다. 필립 스쵸핀이 왕 역으로 첫 데뷔했는데 여태 내가 본 스쵸핀 무대 중 제일 깔끔하고 멋있게 나왔다. 이 사람은 무대 분장을 연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왕을 춘 스쵸핀의 춤은 좋았는데 아무래도 초연을 이고리 콜브가 췄다보니 비교가 되었다. 콜브는 성격배우 특성이 있고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왕을 코믹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프게 표현했는데 스쵸핀은 좀더 반듯하고 젊어서 전자가 ‘왕’같다면 후자는 좀 ‘왕자’같았다. 그리고 스쵸핀이 팔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싶긴 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나를 버리지 마’.

 

이 공연 너무 짧다 ㅠㅠ 6~7분 정도 되려나. 아쉬워라...

 

마린스키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인 겔레나 가스카로바가 동명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흰 재킷과 바지의 수트를 차려입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의자에 앉아 괴롭게 몸을 움직이다 점차 무대를 선회하며 춤을 춘다.

 

조명은 책상 앞에 앉아 노래하는 가스카로바와 홀로 춤추는 슈클랴로프 양쪽에만 비춰지는데 흰옷을 입은 슈클랴로프는 어둠 속에서 하얀 불꽃처럼 춤췄다. 스메칼로프 안무 특유의 움직임들, 그리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다운 애절하고 격렬한 감정 표출과 드라마틱한 표현력이 심금을 울렸다. 본시 소프라노를 못 견디는데도 슈클랴로프의 춤과 잘 어울렸다.

 

흰 옷을 입고 격하게 몸부림치고 얼굴 전체로 고통과 열망을 표현하는 슈클랴로프를 보고 있자니 ‘그 어느 누가 어떻게 이런 널 버리고 떠나겠니!’ 란 생각마저 들었다.

 

감정 북받치는 짧은 공연 후, 엄청난 브라보를 받았고 꽃도 많이 받았다. 아마 오늘 얘가 꽃 제일 많이 받은 듯... 내 꽃도 받았다 :) 뿌듯...

 

사진은 다 번졌다 ㅠㅠ 마린스키 신관 조명 미워.. 게다가 흰옷이니 망할 줄 알긴 했다만 아깝다. 정말 아름답고 근사했다.

 

 

이게 그나마 덜 번진 사진이다 허헝헝..

 

이건 번지긴 했지만... 꽃다발 잔뜩 받은 모습... 저기 내 꽃도 있어어어 ㅠㅠ 근데 번져서 분간도 잘 안돼 ㅋㅋ

 

 

그래서 아쉬우니... 함께 무대에 올랐던 겔레나 가스카로바(Gelena Gaskarova)가 백스테이지에서 찍어 인스타그램 올린 사진 한장. 스메칼로프, 가스카로바, 슈클랴로프 :)

 

아아, 녜 빠끼다이 미냐, 녜 빠끼다이 나스, 발로쟈!

 

..

 

끝나고 원래 석양보며 걸어가려 했는데 세상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비온다는 얘기 없었는데 ㅠㅠ 역시 뻬쩨르..

 

그래서 샵에서 산 마린스키 후드 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급하게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27번이 와서 탔고 앉았다.

 

내려서도 후드 티를 머리에 쓰고 급하게 호텔로 달려들어옴. 제일 작은 사이즈만 있어 긴가민가 하다 그냥 샀는데 요긴하게 우비 대용으로 개시함 ㅠㅠ (입어보니 지금은 여유 있게 잘 맞는데 좀만 살찌면 살짝 타이트해질 것 같다 ㅠㅠ 살찌면 안되겠고만...) 흑흑, 중국 찻잔은 누룽지랑 된장국으로 개시하고 마린스키 후드 티는 우비로 개시했어... 돌아와서 빨아서 옷걸이에 말리고 있다.

 

..

 

 

근데 방에 왔더니 청소부가 창문 열어놓고 간게 안 닫혔다. 어제도 안 열리더라니.. 리셉션에 전화하자 여직원이 왔는데 이 방이 전에도 창문이 그랬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2년전에도 내 방 창문이 이랬었다. 앙글레떼르는 창문이 좀 문제인가보다 ㅠㅠ 오래된 호텔이라 그런가. 결국 다른 남자직원도 와서 힘으로 눌러서 닫았다. 앞으로 열면 안되냐 했더니 안 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힝...

 

그리고 와이파이가 안돼서 내방만 이러나 싶어 내려가 물었더니 지금 호텔 와이파이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나만 그런게 아니니 다행인가. 그래서 여기 메모 쓰고 있음.

 

내일은 날씨가 좋으면 k갤러리에 가서 바리쉬니코프 전시를 보고, 화장품을 사려는 중이다. 수분크림 똑 떨어짐... ㅠㅠ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어서 그렇다.

 

무지 배고픈데 먹을게 없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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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연달아 옮기기도 했고 공연도 봤고 어제 떨어서 그랬는지 많이 피곤해서 늦게까지 누워 있다 방에서 아점 먹고 있다. 어제 가게에서 사온 체리와 맛있는 빵집 부셰에서 사온 '플레이따' 빵. 꼬불꼬불한 꽈배기 모양 페스츄라로 초콜릿이 박혀 있는데 맛있다.


된장국 개시로 충격받은 중국 찻잔을 달래기 위해 디카페인 티 따라서 곱게 세팅해줌. 중국 찻잔아 화 풀어 ㅋㅋ


찻잔 하나의 유무로 아점 느낌이 달라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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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쌀쌀한 날씨였다.

 

료샤는 내가 어제 묵은 호텔 조식 자체는 그냥 그래도 9층에 있기 때문에 전망이 좋으니 조식을 추가해서 먹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추가요금을 내고 조식을 먹어보았는데 빵이 의외로 맛있었고 과연 전망이 훌륭했다. 아마 조식 시간이 끝나갈 때 가서 얼마 없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레냐는 오늘 외할머니 생일이라고 해서 거기 갔다. 료샤는 오전에 들러 나와 함께 그 전망 좋은 창가에서 같이 조식을 먹었다. (레냐도 무지하게 같이 먹고 싶어했지만 다음주에 꼭 같이 먹자고 달래놓음. 어른들이 하는 건 다 좋아보이는 것이다 ㅋㅋ)

 

 

밥먹으러 올라갈때 카메라를 안 가지고 가서 그냥 폰으로 찍은 사진 한장만. 며칠 후 다시 가서 묵으면 카메라 가지고 올라가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트로이츠키 사원(이즈마일로프 사원)도 보여서 이 사진으로..

 

..

 

오늘 숙소를 다시 옮겨야 했다. 료샤가 태워다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짐을 좀 챙겨야 했고 너무 빨리 가면 체크인 시간과 맞지도 않았다. 료샤는 오늘 무슨 물건을 가지러 파블로프스크에 갔다와야 했기 때문에(나한테 같이 가자고 꼬셨으나 나는 오늘 공연이 있었음) 오전에 가고 나는 정오에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을 맡겨놓고 2시에 택시를 예약해둔 후 일단 거리로 나왔다.

 

근데 너무 추웠고 비가 왔다. 며칠 후 다시 이 호텔로 돌아와야 하니 주변 지리도 좀 알아볼겸 걸었는데 사도바야 거리와 센나야 광장이 금방 나오는 걸로 봐서 지리는 금세 깨쳤다. 문제는 추웠다는 것. 그리고 내내 안 그러다 오늘 오랜만에 조식을 먹으면서 빈속에 차를 좀 마셨고 그 이후 약을 먹었더니 카페인 때문인지 너무너무 가슴이 북받치고 답답하고 괴로웠다. 너무 북받치고 뻐근해져서 잠시 심장발작인가 하고 겁에 질리기까지 했다. 식도염 악화 증상이긴 한데... 아마 카페인 과다 섭취 후 약을 먹어서 그런것 같다. 지난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비바람 속에서 괴로워하며 목과 가슴을 누르고 헤맸다. 카페도 안 보이고 그나마 보이는 카페는 전부 식당 겸용이었는데 비가 오니 음식 냄새 배는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추위와 뻐근함으로 괴로워하며 좀 헤매다 호텔 근처 모퉁이에서 어느 베이커리 카페 발견. 그냥 빵 구워 파는 곳이었는데 의외로 여기가 오아시스였다. 손님도 없고 빵과 케익을 팔고 홀은 좁았지만 창가 자리가 좀 호젓했다!

 

 

구석 귀퉁이의 창가 자리가 무척 호젓해서 가만히 앉아 책 읽고 글쓰기 좋은 자리였다. 며칠 후 저 호텔로 돌아가면 이 카페에 아침 먹으러 와야겠다.

 

 

카페인 없는 열매 티 한잔(약간 히비스커스 블렌드 맛이 남)과 메도빅 주문. 여기 메도빅은 맛있었다. 이 카페 이름이 프라하 카페였는데 그래선가 ㅋㅋ

 

 

어제 서점에서 산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단문집을 좀 읽었다. 무척 재미있었다.

 

메도빅을 먹고 좀 앉아 있었더니 가슴 통증이 좀 가셨다. 아아 조심해야겠다. 다시는 빈속에 차 마신 후 약먹지 말아야지... 한국 돌아가면 의사에게 좀 물어봐야겠다.

 

 

지지난주 토요일, 여기로 날아오기 전에 친구인 쥬인과 홍대에서 만나 놀다가 샀던 팔찌 중 하나. 오늘 파랑하양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었기에 맞춰서 하고 나왔다. 팔찌를 보니 쥬인 보고 싶네.

 

..

 

2시가 되어 택시를 타고 이삭 성당 앞으로 이동. 세번째 호텔에 체크인했다. 여기서는 다섯밤을 자고 다시 아까 호텔로 돌아간다. 이렇게 중간중간 일정을 연장할줄 알았다면 이러지 않았겠지 ㅠㅠ

 

방에 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잠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오늘은 5시 공연이었다. 가방을 좀 풀었고 너무 추워서 결국 원피스 포기. 진과 긴소매 티셔츠, 카디건에 트렌치코트 도로 꺼내 입었다 ㅠㅠ 아아 정말 너무해...

 

...

 

추워서 버스 타고 극장에 갔다. 오늘 공연은 마린스키 신관이었다. 오늘은 스트라빈스키의 두 곡을 각기 다른 안무가가 안무한 작품이었는데 사실 이게 아주 보고 싶어서 끊었다기보다는 그래도 두번째 작품이 봄의 제전이라 끊은 것이다. 어쨌든 나의 첫번째 발레라서 애착이 있다. 오늘의 봄의 제전은 사샤 발츠 버전인데 마린스키에서 발츠 버전으로는 본 적이 없어 좀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 공연은 둘다 신관인데다 별다른 무대 배경 없이 조명이 강해서 사진은 다 번짐. 그나마 여기 올린게 건진 것임 ㅠㅠ 꽤 앞줄이었음에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하긴 슈클랴로프가 안나오니 굳이 열심히 찍고자 하진 않았기에... 정성이 없어서 더 번졌나보다 ㅠㅠ

 

첫번째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의 '3악장 심포니'였다. 지난 봄에 '라두 포클리타루'를 초빙하여 안무해 초연했었는데 음악은 몇번 들어봤지만 공연은 영상도 본적이 없었다. 스베틀라나 이바노바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가 주역으로 나왔고 예카테리나 치브이키나, 타치야나 트카첸코, 알렉산드라 이오시피디가 운명의 3여신으로 나왔다. 내용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생명의 집단적 원형질에서 남자와 여자가 각각 1명씩 세상에 나와 스스로의 개인적 정체성을 획득하고 사랑에 빠지고 인생을 살아가지만 결국 이들은 운명의 3여신의 붉은 실에 매여 있으며 결국은 전쟁으로 상징되는 3악장에서 인생의 끝에 다다르고 실이 끊겨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인데 이런 스타일의 발레가 그렇듯 플롯보다는 움직임과 무대미술, 음악이 더 강렬했다.

 

글쎄... 내 마음에는 아주 안 들었다. 일단 안무가 너무 작위적이었고 지루했다. 운명의 3여신도, 비둘기에서 독수리로 옮아가는 영상 배경과 개성 없이 단체로 떼지어 춤추는 군무, 아크로바틱한 리프팅과 회전이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춤... 모두 그다지 참신하지 않았다. 뭔가 열심히 했지만 남는 건 없었다. 하나 남는다면 음악인가... ㅠㅠ

 

세르게예프와 이바노바는 둘다 좋은 무용수고 잘 췄지만.... 그리고 세르게예프가 여태 본 무대 중 제일 섹시해보였지만... 보는 내내 작품에 비해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발레 안무가들이 너무나 잘 빠지는 함정이 있는데 포클리타루 역시 그걸 피해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도 한 장만. 어차피 다 번졌음 ㅠㅠ

 

 

 

두번째가 내가 보러 간 목적인 봄의 제전.

 

난 사실 사샤 발츠 안무의 제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가 제물로 등장하는 제전이라 궁금했고 발츠 안무 제전을 무대에서 직접 본 적은 없으니 실제로 보면 또 다르리라는 기대를 했다.

 

흠...

 

발츠는 내 취향과는 역시 거리가 있었다. 뭐랄까... 원시적이고 격렬하고 광적으로 보이려고 하지만 어딘가 한계가 있는 느낌이랄까, 육체의 광란과 샤먼의 광기를 표출하고는 있지만 실은 굉장히 계산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상으로 볼때도 그랬는데 무대로 봐도 그랬다. 무용수들은 잘 췄고 연주도 아주 좋았다(게르기예프가 지휘했음) 그러니 아마 이것은 발츠의 안무와 내가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좀더 격렬하고 좀더 원초적인 춤을 원했다. 그런데 사샤 발츠의 제전은 내겐 그렇지 않았다. 영상으로도 무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머리의 늘씬하고 강렬한 콘다우로바는 아름답고 근사하고 처절했지만 그냥 그게 다였다. 내게 콘다우로바는 '진짜 제물' 로 느껴지지 않았다. 반쯤은 발츠가 제물과 종족들의 관계나 움직임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쉬웠다.

 

제일 좋았던 건 역시 음악이었다. 그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봄의 제전을 들은 것만으로도 오늘 공연은 본전 찾았다. 역시... 봄의 제전은 러시아 지휘자와 러시아 오케스트라일 때 제일 좋다.

 

생각해보니 난 마린스키 무대에서만 봄의 제전을 세가지 안무 버전으로 봤구나... 물론 다른 무대에선 또 다른 버전을 봤지만... 하여튼 오늘은 음악이 제일 좋았다.

 

사진 엄청나게 번짐 ㅠㅠ 가운데 자주색 의상의 긴머리 여인이 주역이었던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

 

 

 

엄청나게 번졌다만.. 발레리 게르기예프 사진도 한 장... ㅠㅠ

 

게르기예프 요즘 백야축제에 아주 자주 나오고 계심.

 

그러고보니 내내 발레 메모까지 전부 러시아 메모에 올리고 있었네... 나중에 각 공연에 대한 메모는 떼어서 발레 폴더로 옮겨놔야겠다. 근데 제대로 리뷰를 쓴건 없어서..

 

..

 

짧은 두개의 작품들이라 끝나니 7시가 좀 넘어 있었다. 비가 멎었기 때문에 운하 따라 걸어서 돌아왔다.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까지 쭉 올라가서 물과 체리를 사고 길을 건너 또 올라가서 말라야 모르스카야 초입에 있는 부셰에서 빵을 한개 사왔다. 이번 호텔도 조식 불포함이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체리랑 차랑 먹으려고... (전기포트 달라고 해서 얻었음)

 

 

운하 따라 걸어오다 찍은 사진 한장. 엄청 줌 당겼지만 이게 한계... 검정회색 갈매기 한 마리.

 

..

 

전기포트를 드디어 얻었기 때문에 오늘은 누룽지 반봉지와 즉석 된장국 약간에 끓는 물을 부어 볶음김치와 참치, 조식 테이블에서 건져온 삶은 달걀로 늦은 저녁 먹음. 살것 같다, 된장국이랑 볶음김치.. 엉엉...

 

 

 

.. 뜬금없이 안 어울리게 저 화려한 잔은 뭐냐고 하신다면..

첫번째 호텔 옆 쇼핑센터에서 우연히 발견해 샀던 찻잔. 아직 이거 하나밖에 안 샀다. 그냥 저런 스타일 찻잔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해서 샀는데 사고보니 메이드 인 차이나임 -_- 망했어... 에잇... 여기까지 와서 중국 찻잔을 사다니 ㅠㅠ 짐도 무거운데...

 

하여튼 그래서 이놈을 오늘 개봉하여... 누룽지랑 된장국 담아 먹는 용도로 개시함 ㅋㅋ 미안해 중국 찻잔아... 근데 네가 꼭 메이드 인 차이나라서 그런 거는 아니야... 예전에 로모노소프도 그랬어 ㅋㅋ

 

 

찻잔 : 이쁘다고 살땐 언제고 나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무시하냐! 차도 아니고 된장국에 누룽지로 개시하다니 엉엉...

토끼 : 야, 옛날에 로모노소프님들은 심지어 개시할 때 볶음김치랑 컵라면도 담아먹었어! 된장국이랑 누룽지면 양호한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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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6. 19. 17:56

아름다운 전망 2016 petersburg2016. 6. 19. 17:56




이 호텔은 조식 레스토랑 창가 전망이 아름다워서 조식불포함이었지만 추가요금 내고 먹었다. 전망 덕에 그럴 가치가 있다. 유명한 이 도시의 지붕들과 각종 사원 풍경들이 내려다보였과 갈매기와 까마귀가 날아가는 것을 보는게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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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열흘 동안 머물던 블라지미르 대로의 도스토예프스키 호텔에서 오늘 체크아웃하고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에 있는 호텔로 옮겼다. 아직 찻잔은 사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가방이 꽉 차고 무거운지 모르겠다 ㅠㅠ

 

이 호텔은 마린스키에서 도보로 15~20분쯤 거리에 있는데 네프스키 쪽이 아니고 약간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전자와 가격은 비슷하지만 훨씬 좋다. 그런데 여기는 오늘 하루만 묵고 내일은 또 옮긴다. 이것이 이렇게 된 이유는... 잊고 싶은 회사에서의 안좋은 일 후 갑자기 숙소를 잡고 날아오다보니 방이 없어서... 그리고는 또 며칠 후 다시 이 호텔로 옮겨와 며칠 잘 것이다. 이건 여기 와서 5일 정도 일정을 더 연장해서 그렇다. 이게 뭐야... 힘들고 돈들고... 이래저래 파산이지만 사실 그런 거 생각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날아오지도 않았겠지..

 

여기도 전기 티포트는 없지만(이 동네는 보통 좋은 호텔에도 포트가 잘 없고 달라고 해야 준다) 엘리베이터 앞에 뜨거운 물 나오는 정수기가 있어서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디카페인 홍차 한잔 우려마셨다. 몸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카페인을 기피하는 중이라... 그래도 차 마시니 살것 같았다.

 

..

 

12시에 체크아웃한 후 굶주리고 어지러운 상태로 근처의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에 갔다. 오늘은 도네츠크 스타일의 생선수프를 시켰고(우하인데 이름이 빠흘료바 리브나야 도네츠카야 라고 되어 있어 뭐가 다르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이름만 다르다고 함), 닭고기 샤실릭을 시키려 했는데 오늘따라 참 친절했던 아저씨가(전에는 못보던 아저씨) 그 아래 있는 닭고기 요리 추천. 조금 더 싼데 매우 부드럽다고 해서 귀얇은 나는 또 받아들임.

 

근데.. 수프 나오기도 전에 아저씨가 또 방글방글 웃으며 예쁜 색깔의 주스 같은 걸 갖다주었다. 아저씨 말로는 시음해보라는 거였다. 자기네가 만든 거라고.. 비슈냐(이 동네 체리)로 만든 보드카라면서 '겨우!' 20도밖에 안된다고 했다. 첨에 나는 '2도'로 잘못 알아듣고 '아 가벼운 아페라티프구나~' 하면서 좋다고 고마워하며 한모금 살짝 마셨고..

 

 

끄아악!!! 빈속에 보드카! 40도는 아니지만 20도도 장난 아니야... 나 보드카 마시고 팔각정에 쓰러져 잤는데 ㅠㅠ 안돼애..

 

근데 가져다준 성의가 또 고마워서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수프랑 밥이 나왔을때 좀 마셨다. 3분의 1쯤 마셨나보다. 그 이상은 독해서 못 마시고 아저씨에게 무척 맛있으나 독해서 다는 못마셨다고 했다.

 

혼자 온 여자 손님에게 정오부터 보드카 마시라고 권해주시는 러시아~~ 이것이 러시아 ㅠㅠ

 

우하는 무척 맛있었다. 크림이 든 핀란드식 우하도 좋아하지만 나는 맑은 국물 우하를 더 좋아한다. 집에서도 몇번 끓여먹었는데 오늘 쉬녹에서 먹은 우하가 진짜 맛있어서 레시피를 좀 물어보고 싶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좋았다. 연어와 흰생선 등 3가지 생선, 감자가 들어간다. 보통 제대로 된 우하는 3가지 생선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나야 집에선 항상 연어 아님 대구로 끓이니 맛이 모자랄 수밖에 ㅠㅠ

 

 

우하는 참 맛있었는데 추천해준 메인 닭고기 요리는... 아아, 이것도 크림 소스였어... ㅠㅠ (요즘 자꾸 크림 소스 등 느끼한 음식을 먹게 되어 괴로워하고 있던 차였음) 맛은 훌륭했다. 양송이가 잔뜩 들어가 버섯 크림소스였고 좀 짭짤해서 덜 느끼했다. 비프 스트로가노프의 닭고기 버전과 비슷해서 맛있었는데 내겐 양이 많았고 좀 짰다. 그냥 샤실릭 먹었음 좋았을텐데...

 

 

접시 보고는 '엑, 오이랑 토마토 늘어놓은 거 봐... 역시 이 동넨 아직 플레이팅이 옛날이랑 똑같아...' 했지만... 결국 느끼해서 저 오이랑 토마토 다 집어먹었다 ㅋㅋ

 

..

 

보드카 마시고 배아파서 좀 고생한 후 서점에 가서 도블라토프의 짧은 에세이집 한권과 에코백 따위를 사고, 택시 불러달라고 한 시간까지 40분쯤 남아서 전에 두어번 갔던 호텔 옆 베이커리 카페에 가서 녹차와 에클레어를 먹었다. 그날인데다 속도 안좋으니 차마 홍차는 못마시고 연한 녹차를 마시고 입이 느끼하고 짜서 에클레어 먹었다. 맛있었다.

 

 

..

 

3시에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두번째 호텔인 이곳으로 왔다. 요금 많이 나왔다 -_- 분명히 바가지일 거야. 하지만 짐이 무겁기도 하고 다 귀찮아서 그냥 타고 왔다.

 

새 호텔은 첫번째 호텔보다 위치 빼고는 모든 면에서 더 좋았다. 이럴줄 알았음 첨부터 여기 잡았음 좋았을걸. 마린스키에서도 가깝고 ㅠㅠ 하지만 자본 적이 없는데다 위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예전부터 항상 위시리스트에만 올려놓고 자본 적이 없는 데였다.

 

3시 20분쯤 도착했는데 곧장 체크인하게 해주었다. 트렁크는 거의 풀지 않고 하룻밤 잘때 필요한 옷가지와 세면도구, 화장품 따위만 꺼냈다. 그리고는... 너무너무 졸렸다. 밤잠도 좀 설쳤고... 생각해보니 쉬녹에서 마신 보드카 탓인거 같은데 이제야 깨달음 ㅋㅋ

 

너무 졸려서 침대로 기어들어가 깜박 잠들었는데 4시 반쯤 료샤와 레냐가 왔다. 내가 몇호인지 알려줬기 때문이다. 문을 열어주긴 했는데 내가 거의 비몽사몽 몽유병 환자처럼 '어서 와...'라고 하자 료샤가 혀를 차며 '자라 자!' 하고 날 침대로 밀어넣었다. 레냐가 찡찡거리려고 하는데 료샤가 '쥬쥬 좀 자게 아빠랑 게임하자'라고 해주었다. 료샤는 이럴때 보면 참 착하다. 내가 졸릴 땐 방해하지 않는다.

(전에 료샤에게 '내가 잘 때 안 깨우고 자게 해줘서 고마워'라고 하자 그는 '우리 네바(그의 셰퍼드 ㅠㅠ)도 자는 거 방해하면 싫어해. 토끼도 마찬가지겠지!' 라고 대꾸했었음)

 

그래서 나는 한시간쯤 정신을 잃고 잤고 그동안 료샤랑 레냐는 옆침대인지 의자인지 하여튼 거기 앉아 폰으로 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거까진 참 고마운데 내가 깼을때 료샤가 내 폰으로 도촬한 사진을 보여줌 -_- 정신없이 잠든 토끼의 불쌍한 모습 ㅠㅠ 착하다는 거 취소!

 

내가 너무 피곤해하니 나가지 말고 방에서 놀자며 료샤가 근처 스시 가게에서 롤과 스시, 수프 따위를 테이크아웃해왔다. 내가 요즘 밥먹고 싶어하니까 나름대로 신경쓴 것이다. 그러나 이동네 스시나 롤이나 아시아 음식이 다 그모양이듯 뭔가 어설프고... 일부러 나 먹으라고 '김치 수프'를 사왔다고 했지만 그 김치 수프는 지난번 내가 쇼핑센터 식당에서 먹은 것과 똑같이 미소 국물에 계란과 고춧가루 좀 풀어놓고 김치가 전혀 없는 것이었음 ㅋㅋ 아주 맵다며 별이 세개나 붙어 있었지만 하나도 안 매웠고 짜기만 했다.

 

 

그래도 료샤는 내가 차가운 음식이나 날생선은 안먹는 걸 알기에 나름대로 따뜻하게 익힌 롤을 사옴. 내가 우나기 좋아하는 걸 알고는 우나기 롤을 달라고 했으나 알고보니 저 롤은 장어 소스만 썼을뿐 무슨 새우를 다져서 크림처럼 만들어 올려놓은 것으로 전혀 우나기가 아니었음. 김치 없는 김치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 롤... 뭐냐 ㅋㅋ

 

료샤랑 레냐는 요상망측한 롤과 스시를 맛있다고 먹고(아아 그거 맛있는 거 아니야 이것들아 이 불쌍한 것들아 ㅜㅜ) 나는 김치 없는 김치 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 롤을 먹었다. 그래도 쌀을 먹으니 좀 낫다.

 

앉아서 얘기하고 놀다가 레냐는 깜박 잠들었다. 료샤가 근처에 케익 사러 간 동안 난 이 메모를 남기고 있다. 근데 이 밤중에 케익 사오면 나는 어떡하지 ㅋㅋ

 

하여튼 친구야 고마워.

 

근데 쌕쌕거리며 잠자는 레냐 너무 귀엽다. 역시 내 약혼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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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6. 18. 17:36

첫번째 숙소 체크아웃 직전 2016 petersburg2016. 6. 18. 17:36




근 열흘 머무른 호텔 체크아웃 직전이다. 가방은 무겁고 몸도 아파서 참 피로하다. 체크아웃하고 짐 맡기고 3시에 택시 불러달라 해야겠다. 아 귀찮아 ㅠㅠ


그날이라 컨디션 최악 ㅠㅠ 배도 아프고 울렁거리고 잠도 모자라고 머리도 아프다. 약기운이 빨리 돌아줘야 할텐데.


성수기라 가성비 안좋은 곳이었다만 어쨌든 피로에 찌든 몸으로 많이 누워 있었던 곳이다. 옮기고 나면 좀 나아지기를. 뜨거운 물을 마실 수 있기를 ㅠㅠ


하여튼 잘 있어요 도스토예프스키 호텔...

(좋아하는 작가 이름이 살짝 아깝긴 하다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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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어제 수면부족으로 일찍 누웠으나 역시 3~4시간만에 깨어났다. 그리고는 새벽 3시부터 두어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약을 먹고 다시 잠들어 늦게 일어났다.

 

내일 숙소를 옮겨야 하므로 가방을 좀 꾸렸다. 내일 옮기는 숙소는 하루만 묵고 또 모레 옮긴다. 그리고는 며칠 후 다시 내일 가는 숙소로 옮긴다. 중간에 일정을 추가해서 그렇게 됐다. 참 피곤하긴 하다 ㅠㅠ 가방을 몇번 풀어야 하는겨..

 

너무 졸리고 피곤했는데 오늘 그날이 시작되었다. 어쩐지... 너무 졸리더라니. 내일 호텔 옮기려면 힘들겠다. 택시 불러달라 해야겠다.

 

 

샐러드와 체리로 아주 간단한 아점을 먹었다. 어제 먹은 것도 느끼했고 근 열흘간 제대로 된 '밥'을 못먹었다. 계란볶음밥과 리조또를 좀 먹긴 했지만 그건 흰밥이 아니니까 무효.

 

마침내 느끼함을 견딜 수 없어 오늘은 루빈슈테인 거리에 있는 중국 레스토랑에 밥 먹으러 갔다. 근데 내겐 그냥 아무 중국집이나 뭔가 마파두부나 매운게 있으면 되는 거였는데 이 거리는 워낙 요즘 뜨는 거리이다 보니 중국집마저도 고급화되어 가격도 비싸고 마파두부도 엄청 조금 나와서 빈정상했다. 나 원래 많이 안먹는데 -_- 내가 보기에 적으면 그거 진짜 적은 거라고요!! 그나마 베지테리안 메뉴라 돼지고기가 들어 있지 않았다. 맛은 간장 맛이 강해서 많이 달았고 전혀 맵지 않았다. 하여튼 오랜만에 그냥 흰밥을 먹으니 살것 같았다. 비록 긴쌀이지만 그래도 밥이 어디야..

 

 

 

 

하여튼.. 본시 중국집이란 세계 어딜 가도 비슷비슷하고 또 싼 가격에 많이 먹을 수 있는게 장점이고 한국 식당대신 뭔가 매운거 먹고플때 갈수 있는 곳이거늘... 아무리 루빈슈테인 거리라 해도 그렇지... 비싸고 양 적어!!! 될말이냐 ㅠㅠ

 

그래도 흰밥이랑 두부 먹고 좀 나아짐. 생각해보니 러시아로 떠나오기 전에도 근 일주일 가까이 제대로 못 먹었다. 일하고 울고 괴로워하고...

 

 

여기 와서 며칠 만에 살이 많이 빠졌다. 아마 그때 힘들었던 게 누적되어 그런 것 같다. 떠나오기 며칠 전 홍대에서 샀던 자잘한 무늬의 흰 블라우스를 오늘 꺼냈다. 극장 갈때 입으려고 챙겨온 건데 그사이 살이 빠져서 어깨가 다 드러났다. 좀 파진 옷이긴 했지만 이렇진 않았는데. 결국 그 옷 대신 다른 옷 입었다. 회사 있을땐 계속 일하고 지방과 서울을 오가도 운동을 못해서 그런지 아무리 힘들어도 살이 안 빠졌는데 여기 오니 살이 쭉쭉 빠지네.. 예쁘게 빠지는 게 아니라서 별로 좋진 않다. 료샤와 레냐가 날 보고는 작년보다 살빠졌다고 슬퍼했고 레냐는 나에게 메도빅과 고기를 많이 먹여줘야 한다고 했음. (그래봤자 토끼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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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고 습한 날이었다. 밤에 비가 온다고 했다. 오늘은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보리스 에이프만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기로 한 날이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차 한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뒤에는 극장 박물관이 있는데 전에 박물관 갔다가 들르지 못했던 디아길레프 카페에 갔다. 카페 이름이 디아길레프, 그리고 안에는 박스트의 발레 일러스트 액자들이 걸려 있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근데 카페가 작고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엄청 더웠다. 긴 소매 블라우스 입고 갔다가 쪄죽는 줄 알았다. 하여튼 차 한잔과 메도빅(여기 와서 오늘 첨 먹음) 한개 시켜놓고 앉아서 몇달 전 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여행을 위해 안 읽고 아껴뒀던 책이다.

 

 

 

(오른편 창가에 디아길레프 초상화가 보인다)

 

여기 메도빅은 너무 달고 끈적해서 내 입맛엔 안 맞았다. 그래도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고 있자니 좋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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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는 좋아하지 않고 수필가로서의 하루키만 좋아한다고 수차례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작가로서 하루키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리고 소설쓰기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읽는 것은 역시 흥미로웠다.

 

 

'인간이 소설을 쓰려고 하는 곳은 모두 다 밀실이고 이동식 서재입니다' 라는 저 문장은 나와 매우 공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는 더워서 조금 일찍 나와 알렉산드린스키 공원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책을 좀더 읽었다.

 

 

문득 얼마만에 바깥 바람을 맞으며 하늘 아래에서 책을 읽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행복하다기보다는 살짝 우울했다. 어쩌면 행복해서 우울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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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공연이었다. 에이프만 발레를 무대에서 보는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에이프만은 내게는 아주 특별한 예술가이고 내게 지금 쓰는 글과 미샤라는 주인공에 대한 영감을 준 사람이다.

 

에이프만의 안나 카레니나는 전에 본적이 없었다. 라트만스키 버전으로 마린스키에서만 봤다. 사실 그 작품도 큰 감흥은 없었는데 그것은 아마 내가 톨스토이와 그의 원작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겐 언제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더 맞았다.

 

에이프만의 안나 카레니나도 실은 마찬가지여서 난 까라마조프가 더 맘에 들었다. 에이프만은 과감하게 모든 등장인물들을 쳐내고 카레닌과 안나, 브론스키 3인에게만 집중하고 특히 안나에게 온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는데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플롯은 단선화되었다. 솔직히 말해 피곤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1막은 큰 감흥이 없었고 에이프만 특유의 안무(팔과 다리 동작, 리프팅 등)가 반복되는게 약간 매너리즘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브론스키보다 카레닌의 춤이 더 멋지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다니... 브론스키 실패한 거야? 아니면 카레닌 역의 올레그 마르코프가 워낙 더 매력적이어서였을지도 모르지. 올레그 가브이셰프의 브론스키는 평면적으로 느껴졌고 좀 너무 순정파처럼 보였다. 아마 에이프만이 안나에게 집중하느라 브론스키를 평면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만... 브론스키가 너무 후줄후줄해서 카레닌이 더 멋있었음 ㅠㅠ

 

안나 역의 마리야 아바쇼바는 훌륭했다. 예전의 베라 아르부조바를 좀 연상시켰다.

 

2막 중간까지도 큰 감흥이 없었고 오히려 나는 회사와 그곳에서 있었던 일,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 등에 대해 상념에 빠지기까지 해서 좀 우울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에이프만답게 후반부의 박력은 굉장했고 안나가 최후를 앞두고 육체와 정념이 들끓는 마음속 지옥에서 허우적거리고 마침내 무용수들과 소음으로 이루어진 기차로 뛰어드는 결말까지 약 15분 정도는 숨을 쉴수 없을만큼 몰입해서 봤다. 아마 그 후반부는 내 취향에 맞는 드라마틱함과 처절함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좀 감동해서 나왔다.

 

 

2층 벨에타쥐 두번째 열에 앉았다. 극장이 작아서 잘 보이긴 했는데 하여튼 조명 때문에 커튼콜 사진은 거의 못 건짐. 다 번졌다. 오늘 무거워서 좀 작은 렌즈를 가져가긴 했었다.

 

리뷰를 따로 써보고픈데 과연 언제 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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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네프스키를 따라 판탄카 운하와 아니치코프 다리를 건너 숙소까지 걸어왔다. 두세 정거장 거리라서.

걸어오면서 폰으로 찍은 사진 몇 장. 폰인데다 해가 진 후라 좀 어둡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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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공연을 보았고 오랜만에 책도 읽었는데 좀 마음도 가라앉고 우울하다. 아마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인가보다.

 

이제 자고 내일 숙소 옮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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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하고 졸려서 늦게까지 누워 있다가 어제 수퍼에서 사온 아보카도 뜨보록 샐러드에 체리, 견과 곁들여 아점 먹는 중이다. 체리와 견과는 전에 한팩씩 산 것인데 이걸로 끝. 알뜰하게 잘 먹었다.


샐러드는 마늘과 고수가 들어 있어 입맛에 맞지 않아 반만 먹음 ㅠㅠ 고수 들어 있다고 적혀 있진 않았는데.. 그냥 시저 샐러드 살걸. 100그램만 샀는데 시저 샐러드가 더 비싸서 이거 샀더니만.


오늘은 저녁 공연이 있다. 진짜 오랜만에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를 보러 간다. 내일 숙소를 옮겨야 하므로 이제 가방을 좀 싸놓은 후 나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차 한잔 마신 후 극장에 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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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 집2를 나오면서 찍은 사진들. 원래 썰렁하게 해뒀지만 가방과 쿠먀를 데리고 나오니 더 썰렁해져서 첫 거실 사진의 회사 친구 이부자리가 아니면 더 황폐해보일것이다.


난 기차와 버스, 비행기를 타고 9일전 이곳에 도착했다. 그땐 너무 괴로웠고 저 집보다 훨씬 황폐한 상태였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 하지만 나는 아마 저곳으로 돌아가게 될것이다. 아직 별다른 답은 없다.



생각하지 말고 좀더 걷고 좀더 쉬고 좀더 자야지..


정말 계속 자고 싶다. 사랑하는 도시에 와 있는데도 그렇다. 많이 지친 상태로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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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날씨 좋더니만 역시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 날씨가 돌아왔다. 후덥지근해지더니 뇌우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산도 소용이 없어 흠뻑 젖었다.

 

어제 청동기사상 공연 끝난 후 료샤네 집에 가서 새벽까지 얘기하느라 늦게 자고, 아침에 걔 출근할때 따라 나와 방으로 돌아오느라 잠 설침. 아니 이놈은 맨날 비서한테 일시켜먹는 놈이 왜 오늘은 이렇게 아침 9시까지 나간다고 난리인가... 왜 갑자기 열심히 일하는 척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야! 나도 일해! 나 출장 갔다왔잖아!' 하고 툴툴댄다. 쳇 그래봤자 프롤레타리아도 아닌 놈이.

 

하여튼 4~5시간밖에 못 잤고 방에 돌아와서도 좀 자보려 했으나 처리할 일들이 몇가지 있어 그거 하느라 결국 더 못 잤다. 머리도 아프고 주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몸이 괴롭다.

 

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날을 조금 더 연장했다. 비행기와 숙소 변경하느라 오전에 좀 정신이 없었다. 6월말에 돌아갈 것 같다. 이로써 나의 유리지갑은 이제 먼지로 화했다만... 아마도 나는 돌아가는 시점을 할수 있는 한 미루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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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쯤 배가 고파서 기어나갔다. 뒷길의 루빈슈테인 거리에 갔고 며칠 전 찍어두었던 북카페 같은 곳에 갔다. 카페 겸 레스토랑으로 책들이 매우 많았고 여기저기 불상이 앉아 있는것이 내겐 좀 우스웠지만 여기 사람들에겐 이른바 '힙'한 스타일인가보다.

 

 

 

(카메라 렌즈 덕에 사진은 좀 밝게 나왔지만실제로는 꽤 어두컴컴한 곳이다)

 

버섯수프와 잘 모르는 이름의 생선요리를 시켰다. 설명을 들어보니 흰 생선이고 살이 부드럽다 해서. 둘다 맛있긴 했는데 문제는 이것들이 둘다 크림소스라... 나중엔 엄청 느끼했다. 아아, 김치찌개 먹고싶다 엉엉..

 

 

어두컴컴한 테이블에 앉아 혼자 밥을 먹으며 책장에서 오래된 러시아 문학책을 꺼내 뒤적였다. 글쓰러 오기 좋은 카페이긴 한데 너무 늦게 알았다. 모레 나는 숙소를 옮기니까. 그리고 뭔가 장소는 좋은데 어딘가 약간 편하지 않은 점이 있다. 불상 때문인가?? 두셰브나야 꾸흐냐와 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여기가 더 어두워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웬만큼의 빛이 들어오는 곳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그건 그렇고 밥먹은 후 산딸기에이드를 마시고 있는데 반삭발에 귀걸이, 해골 반소매 티셔츠 차림의 척 봐도 범상치 않은 청년이 갑자기 내 곁에 와서 앉아도 되느냐 물었음. 아마도 내가 징 박힌 후드 재킷과 해골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동류의식을 느꼈나... 그는 자기 소개를 했는데 이름이 '고릭'이었다. 게오르기 아니면 그리고리의 애칭인갑다. (추가 : 생각해보니 이고리의 애칭인가보다)

 

고릭 : 나 아까부터 너를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었어.

나 : (뭐냐 이 무례함!) 왜?

고릭 : 외국인인데 되게 편안하게 주문을 해서. 생선 종류도 물어보고 뭔가 당황하지 않는게 인상적이어서.

나 : (내가? 난 세상에서 주문하는 게 젤 무서운데!) 어, 그래...

고릭 : 노어 잘하네. 관광객? 학생?

나 : (어머나 학생이라니~ 오오...) 아, 난 잠시 여행왔어.

고릭 : 아 그렇구나. 나 만화 그려.

나 : 어, 그래? 그렇구나...

고릭 : (자랑스럽게 뭔가를 뒤적뒤적하더니 스케치북에 펜으로 그려놓은 만화를 보여줌) 내가 그린 거야.

나 : (어두워서 안보여.. 글씨가 너무 빽빽해 ㅜㅜ) 아, 대단하구나!

고릭 : 그렇지? 나 이 근처에 화실 있는데 구경갈래? 너 만화 그리는 거 못봤지?

나 : 어, 저기... (이거 뭐지?)

고릭 : 화실에 좋은 와인도 있고 샴페인도 있다. 맥주 좋아하면 맥주도...

나 : (이노미...) 아, 그래. 고마운데 나는 약속이 있거든.

고릭 : (휘파람 + 푸르르) 남자?

나 : 어, 으응... (남자 맞긴 하지.. 남자들. 료샤와 레냐. 둘중 하나는 나의 '8세' 약혼자 ㅠㅠ)

고릭 : 에이 어쩐지. 편안하게 주문을 하더라니.

나 : (? 남자랑 약속 있는 것과 외국인이 노어로 편하게 주문하는 것 사이에는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가??) 만화 보여줘서 고마워.

고릭 : 그래, 나중에 약속 없을때 여기 와. 나 자주 오니까 언제 화실 보여줄게.

나 : 으, 으응...

 

그리하여 펑크 청년 고릭은 나타났을때와 마찬가지로 뜬금없이 자리를 떴다.

 

흠.. 뭔가 황당하지만 그래도 조금살짝 헌팅당한 느낌이니 조금 뿌듯해하기로 함. 역시 조명이 어두운 데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음! (나이를 숨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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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료샤에게 전화왔길래 그 얘기 해줬더니 료샤가 짜증을 냈다.

 

료샤 : 야! 아무나 말 건다고 덥석덥석 대꾸하지 마! 그런 놈 위험해!

나 : 위험하기보단 어벙해보이고 엄청 속이 들여다보였어. 대놓고 화실 가서 술마시자 했어.

료샤 : 반삭에 펑크에 해골!! 개날라리! 거기 질나쁜 어린애들 많어!

나 : 나 해골 티 입고 나왔는데 ㅠㅠ

료샤 : 어이구, 못살아... 너 왜케 해골 좋아해. 저녁에 레냐 봐야 하니까 해골 티 입지 마! 레냐가 어제 나한테 해골 티 사달랬어! 다 너때문이야!

나 : (아아, 내가 어린이에게 악영향을??) 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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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국 오늘 저녁 료샤와 레냐와의 약속은 취소되었다. 뇌우가 너무 치고 비가 많이 오자 레냐네 엄마가 레냐를 외출금지시켰다. 레냐가 감기 걸렸다 나은지 얼마 안돼서 그럴만도 하다. 그래서 나도 료샤에게 너도 출장 다녀와 피곤할테니 오늘은 쉬고 내일 보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해골 티를 입고(ㅋㅋ)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점에 한군데 다녀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고 숙소 옆 그 쇼핑센터에 붙어 있는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신 후 수퍼마켓에서 자질구레한 것을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이 쇼핑센터에서 호텔은 20초만 뛰면 되는데 우산 안가지고 나왔다가 진짜 흠씬 젖었다. 양동이로 들이붓는 듯 비가 왔기 때문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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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는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한시간 쯤 그대로 덮개도 안 벗긴 침대 위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자고 싶었지만 밤잠 설칠까봐 꾹 참았다.

 

원래 오늘은 글도 쓰고 공연 리뷰들도 정리하려 했는데 마냥 피곤하다. 이러다 곧 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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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유일한 즐거움은 나보다 엄청 어린 남자애에게 조금살짝 헌팅을 당했다는 것 뿐이구나. (고릭 그 녀석이 스스로 나이도 밝힘. 22살이라 함 ㅋㅋ 내가 어둠 속에 앉아 있었기 망정... 해골청년 고릭은 내가 같이 화실 가자고 밖으로 나왔으면 '앜 속았어~' 하고 도망갔을지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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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6. 16. 21:49

비오는 날, 숙소 옆 카페로 피신 2016 petersburg2016. 6. 16. 21:49






잠도 모자라고 머리도 아파서 숙소 옆 베이커리 카페에 차 마시러 왔다. 어제 공연 본 후 늦게 돌아왔고 료샤와 얘기하느라 늦게 잤고 아침엔 몇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너댓시간밖에 못 잤다.


아까 나갔을때 소나기가 억수처럼 내렸다. 바지가 다 젖었다. 방에 가서 노트북 들고 내려옴. 아쉬운대로 옆 쇼핑센터 베이커리 카페로 피신. 근데 의외로 여기 분위기가 좋다.


저녁에 료샤와 레냐 만나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이 카페에서 좀 쉬고 공연 메모도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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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숙소 근처 어느 근사한 북카페 컨셉의 카페-레스토랑에서 혼자 수프랑 생선 먹었다. 근데 이때 헌팅 시도가 있었다. 별 영양가는 없었지만 그래도 요즘 의기소침하던 차라 약간 뿌듯하기까지 함. 조명이 어두워 그런가. 앞으론 이렇게 어두운 데를 가야 하려나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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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찌아뜨랄나야 쁠로샤지 16/11번지라고 씌어 있는 표지판이다. 극장광장. 여기에 마린스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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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남긴 메모(http://tveye.tistory.com/4813)대로 마린스키 신관에서 유리 스메칼로프가 재안무한 발레 청동기사상(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주연)을 보고 늦게 돌아왔다. 졸려서 짧게 적는다.

 

늦게 일어나서 조식 거르고 체리와 수도원 감자버섯빵으로 아점 먹은 후 일을 좀 하다가(ㅜㅜ) 오후에 나섰다.

 

 

 

 

고스찌에서 런치메뉴로 배를 채운 후 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료샤가 왔다. 함께 차를 마시고 극장에 가서 발레를 보았다. 료샤는 의외로 재미있게 보았다. 심지어 슈클랴로프의 마지막 광란씬에선 슬퍼했고 나오면서 내게 '우와 연기 잘한다. 이제 네가 저놈을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주마' 라고까지 했다. 돌이켜보니 얘는 슈클랴로프가 마르그리트와 아르망 췄을때도 이입해서 봤었다. 그렇군, 그럼 나중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라고 해야겠다. 애인 잃고 슬피 괴로워하는 남자에게는 이입하는구나 ㅋㅋ

 

피곤하니 자야겠다... 다른 얘기들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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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린스키 샵에서 득템한 백조 브로치... 유리지갑 가루됐는데 자꾸자꾸 지름신만 와 ㅠㅠ

아래는 청동기사상 프로그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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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6. 15. 17:41

호텔 방 창가에서 늦은 아침 2016 petersburg2016. 6. 15. 17:41




어제 수도원에서 사온 버섯감자빵과 며칠 전 사온 체리, 견과로 방에서 늦은 아침 먹고 있다. 다행히 하늘이 파랗다.


오늘은 저녁에 료샤와 슈클랴로프의 '청동기사상'을 보러 간다. 날씨가 어제만큼 좋으면 꽃무늬 원피스를 개시할 수 있을지도.


다행히 청동기사상은 슈클랴로프가 타이츠 대신 프록코트와 조끼, 옛날풍 바지를 입고 나오니 료샤에게서 타이츠 쿠사리는 덜 듣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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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이곳에 도착한 후 가장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오늘은 날씨가 맑았고 하늘이 파랬다. 호텔 조식 먹으러 내려가기가 싫어서 한참 누워 있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날씨가 좋으니 네프스키 수도원에 가기로 했는데 일단 배가 고프니 아점으로 근처 식당에서 잘 먹고 가기로 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자고로드느이 대로가 나오는데 그 대로와 루빈슈테인 거리가 만나는 모퉁이에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이 있다. 여기는 작년에 bravebird님이 가셨다가 맛있다고 추천해주셔서 나도 가봤는데 그때 무척 맛있게 먹었던 곳이다. 런치로 먹으면 가격도 저렴하다.

 

이번엔 런치에 내가 먹고 싶은 게 없어서 그냥 제값 주고 보르쉬와 키예프식 치킨 커틀릿을 주문했다. 우크라이나 식당이니까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음식을 먹는다. 보르쉬도 여러 버전이라 돼지고기 없는 것으로 추천을 받아 오데사 스타일의 보르쉬를 주문. 쇠고기와 토마토, 감자, 비트, 파프리카 등이 들어 있었는데 무척 맛있었다. 빵껍질이 덮여 나오고 그 빵을 먹을 수 있다. 고골의 보르쉬가 좀더 진하고 크리미한 맛이라면 여기 보르쉬는 딱! 그 보르쉬 맛이었다. 키예프식 치킨 커틀릿 역시 자르는 순간 기름이 주루룩 흘러나오는 것이 진짜(ㅋㅋ) 키예프 커틀릿이었다. 그러나 별로 느끼하진 않았다. (기름진 거 못먹는 내 입에도 나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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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보르쉬를 먹으니 땀이 좀 났다. 몸이 많이 힘든 상태인가보다. 그래선지 어제 수프 비노의 치킨 수프와 오늘 쉬녹의 보르쉬가 둘다 몸에 필요했던 것 같다.

 

먹은 후 생각보다 날이 더워서 다시 숙소로 갔다. 트렌치코트와 카디건을 벗고 후드재킷으로 바꿔입은 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수도원에 갔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은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난 언제나 날씨가 좋은 날, 햇볕이 따스한 날 이곳에 온다.

 

먼저 수도원 카페에 가서 얼그레이 티와 사과빵을 먹었다. 보통 여기 오면 수도원 모르스를 마시는데 오늘은 차를 안 마셔서... 사과빵은 여전히 담백하고 맛있었다. 전혀 달지 않았다. 지하 카페는 텅 비어 있었지만 잠시 후 러시아인들이 한둘씩 들어와 차와 빵을 먹고 나가곤 했다. 이 카페를 찾는 것은 거의 러시아인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정교 수도원에 있는 카페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곳에 올땐 정교 신자는 아니지만 잠시 기도를 한다.

 

 

소박한 카페이다. 내가 사랑하는 곳이다. 사진 찍으면 안되는데 마음 속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살짝 찍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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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차로 몸을 데운 후 햇살 아래로 나왔다. 찬란한 오후였다. 하늘은 파랬고 햇살이 눈부셨다. 나는 스카프로 머리를 싸맸고 초를 네개 사서 수도원 내의 교회로 들어갔다. 러시아 정교 사원은 카톨릭이나 개신교 교회와는 많이 다르다. 벽에는 이콘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고 이콘 앞에는 초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머리를 스카프로 가린 여자들과 허리를 굽힌 남자들이 이콘과 이콘 사이를 오가며 절을 하고 성호를 긋고(카톨릭과는 순서가 다르다) 한쪽에서는 정교 신부가 예배를 보기도 한다. 신도들은 이콘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성호를 긋고 기도하고 이콘을 손으로 만지고 입을 맞추고 다시 성호를 긋고 인사를 한다. 초를 켠다.

 

나도 초를 켰다. 가족과 나를 위해. 우리 집은 개신교니까 엄밀히 말해서 정교 신자는 아니지만 성호도 그었다. 사실 진정한 신앙이 존재한다면 거기 차이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언제나 회의주의자인 내게 그런 믿음이 생기기를 바랬던 것 같다.

 

어두컴컴하고 화려하고 조용하고 촛불이 여기저기 총총 빛나고 있는 사원 안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햇빛 아래로 나왔다. 하늘색과 흰색, 금색으로 칠해진 조그만 천사 이콘을 샀다. 수호천사 이콘이라고 되어 있는데 금발인 것을 보니 가브리엘 같다. 자세히 뜯어보면 좀 조잡한데 그래도 첫눈에 띄었기 때문에 샀다. 마음의 평안을 위해. 그리고 쓰는 글을 위해. 천사가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 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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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경내를 오랫동안 거닐었다. 햇볕을 받으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걷고 꽃들을 보고 향기를 맡았다. 묘지 사이를 걸었다. 검고 축축한 흙을 밟았다. 묘지의 십자가들과 이름들을 보았고 바람을 맞았고 심호흡을 했다. 햇살이 따스했고 눈부셨다. 하늘이 너무나 파래서 온몸을 깨끗하게 통과해 지나가는 것 같았다. 평온이 찾아왔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나는 이곳에 와야 했다. 내가 이곳으로 날아온 가장 큰 이유가 어쩌면 여기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진까지는 카메라로 찍은 것.

그리고 수도원 경내로 들어가서는 큰 카메라로 촬영하면 안되니(원래는 촬영 자체가 좀 그렇다) 소리 안나는 앱을 사용해 폰으로만 찍었다. 물론 교회 안은 찍지 않았다.

폰으로 찍은 수도원 사진들은 나중에 따로 올려보겠다. 아래 몇 장만.

 

(러시아 와서 올리고 있는 사진들 중 화질과 심도가 좋은 건 카메라로 찍은 거고 얕고 평면적인 건 폰으로 찍은 것들이다. 후자가 더 많다. 아무래도 휴대하기가 편하고 용량이 작아서 업로드도 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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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산책을 하고 햇볕을 쬐다가 화단 안쪽에서 한가롭게 조는 고양이를 한 마리 발견했다. 토실토실하고 예쁜 고양이인데다 원체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곳이라 웬만한 소음이나 기척에는 놀라지도 않았다. 햇살 받고 조는 고양이를 보니 나도 노곤해졌고 고양이를 바라보며 따뜻한 돌바닥에 한참 주저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나를 보았고 귀찮아하며 도로 졸았다.

 

 

 

고양이를 바라보며 햇살 쬐며 노곤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앙증맞고 따뜻한 어린아이 손이 날 확 껴안았다. 그리고는 '쥬쥬~' 하는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레냐와 료샤가 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라 소리를 지를 뻔 했는데 레냐가 '쉿! 고양이 깨!' 하길래 나도 꾹 참았다 ㅋㅋ

 

..

 

우리는 원래 내가 산책을 마친 후 수도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근데 둘이 생각보다 좀 일찍 도착해서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한다. 좀 걷다가 보자마자 나인 줄 알았다고 하길래 나는 의아했다.

 

나 : 어떻게 난줄 알았어? 나 머리에 스카프 두르고 있었는데!! 뒷모습만 보고!

 

료샤 : 그걸 모르냐~

 

나 : 또 호빗이라 할라고!

 

료샤 : 아니야! 수건 두르면 뭐해! 땅바닥에 요가 자세로 앉아 있는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놀라운 동양의 신비!!

 

나 : (아, 맞다. 나 양반다리 하고 앉아 있었지 ㅋㅋ) 그거 동양의 신비 아니야 이 바보야 ㅠㅠ 나처럼 둔한 사람도 다 하는 거야..

 

레냐 : 아니야! 나는 알아! 뒷모습만 봐도 알아~ 쥬쥬우우우~~

 

..

 

우리는 함께 수도원을 조금 거닌 후 한쪽에서 수도원 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거기도 가보았다. 수도원에서 만들었다는 꿀을 먹어보고 배아플 때 좋다는 꿀을 사고 또 각종 향초가 배합된 차를 이것저것 시향한 후 차를 사고 있자니 료샤가 혀를 찼다. 척 봐도 '상술에 넘어가는 바보 토끼!'라는 눈빛이었지만 나는 '수도원에서 만든 거니까 살 거야!'라는 시선을 마구 쏘아주었다 ㅋㅋ

 

료샤의 차를 타고 걔네 집으로 갔다. 레냐가 피자를 먹고 싶어해서 근처 이탈리안 식당에 갔다. 나는 해산물 리조또를 시켜서 막 먹었다. 료샤가 혀를 찼다.

 

료샤 : 왜 그렇게 정신없이 먹니.. 굶었냐?

 

나 : 쌀밥이라서... 밥 먹고 싶었어... 밥이다 밥...

 

료샤 : 너 왜 이렇게 오늘 불쌍하게 굴어 ㅠㅠ 수건 쓰고 요가자세로 앉아 고양이 보고 있지를 않나, 꿀 찍어먹고 찻잎 냄새 맡고 비닐봉다리에 꿀이랑 차 사지 않나... 쌀이라고 리조또를 막 욱여넣질 않나...

 

나 : 안 불쌍해! 수도원 오면 원래 그런 거야! 그리고 집 떠나오면 원래 쌀밥 먹고픈 거야!

 

료샤 : 불쌍해. 많이 먹어. 한 접시 더 시켜줄까?

 

나 : 내가 돼지냐!

 

레냐 : 아니야! 쥬쥬는 돼지 아니야, 쥬쥬는 토끼야~ 토끼여왕이야~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고 료샤네 집에 가서 허브차를 마셨다. 레냐는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데다 엄격한 엄마 탓에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므로 료샤는 레냐를 먼저 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다음에 나도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료샤는 숙소가 맘에 안 든다며 나에게 도로 자기 집으로 가서 자고 가라고 했지만 그냥 내일 보기로 했다. 얘도 어제 출장에서 돌아와 많이 피곤한 거 안다.

 

내일 우리는 같이 공연을 보러 갈 것이다. 아마 저녁도 먹을 것이다. 레냐랑은 모레부터 만나 다시 놀 것이다.

 

여기 수도원이 있고 햇살이 있고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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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맑고 따스해졌다. 수도원에 가서 차를 마시고 사원에서 초를 켜고 경내를 거닐었다.


거기서 료샤와 레냐를 만나 지금 걔네 집에 잠시 와 있다. 오늘 메모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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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비가 내리고 추웠다. 아침에 커튼을 젖혀보니 유리창에 이렇게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아, 이거 6월 맞느냐.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든 후 물론 중간에 자다깨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도합 8시간 이상 잤다. 계속 자고 싶었지만 억지로 일어나서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먹은 게 별로 없어 그런지 살도 빠지고 얼굴도 퀭하고 힘도 없고 감기 기운도 있는 것 같아서 일단 내려가 탄수화물을 퍼넣고 연한 홍차를 한 잔 마시고 두번째 홍차에는 꿀과 레몬을 투하해 마셨다.

 

방에 돌아와 회사 메일을 접속했다. 계속 안되다 오늘에야 성공했는데 업무 메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고 급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인계해주고 간 일들은 하나도 처리되어 있지 않아 관계자들이 모두 나에게 문의하고 있었다 ㅠㅠ

 

몸과 마음의 안위를 위해서는 회사 메일도 가차없이 무시해버려야 하는데..

 

이 와중에 작년 성과평가 결과도 나왔다. 딱히 좋지 않다. 상반기는 좋지만 하반기는 별로였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하반기 중간에 지방 발령이 났고 내 업무는 반토막이 났고 나 역시 방황을 했으므로... 그렇다고 이의를 제기할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공연히 이의를 제기해봤자 나에게만 손해가 될 게 뻔해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기분이 그리 좋은 건 아니지만 어쩔수 없다. 나도 작년 말에 방황했으니까. 그렇게 치면 올해 역시 결과가 그리 좋을 것 같진 않지만 뭐 그만두려고까지 했는데 그러면 어때.

 

회사 생각, 있었던 일 생각, 돌아갈 생각을 하면 다시금 답답해지고 머리가 아파온다. 그냥 여기 어딘가 숨고 싶다. 아침에 블라지미르 성당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무데나 사원 종지기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불쑥 든다. (이런 마음 때문에 예전에 쓴 글에서 미샤가 자기는 교회 종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게 했었던 걸지도...)

 

(그 얘기 발췌한 적도 있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3221)

 

 

계속 비가 왔다. 방에만 있기는 아까우니 나가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괴로웠다. 원래 비오는 날엔 무제이!

무제이는 박물관이다. 여기 오면 항상 궂은 날에는 루스끼 무제이(러시아 박물관)에 간다. 2시쯤 나서며 어차피 버스 타고 가니까 카잔 성당 앞에서 내려 돔 끄니기 가서 카페 징거(cafe singer)에 들러 늦은 점심 먹고 곧장 러시아 박물관 가서 2시간 정도 보면 되겠지 하고 계산을 했다.

 

그래서 돔 끄니기에 갔는데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징거 카페는 만석이었다. 배도 고프고 피곤했다. 아무것도 안 먹고 박물관을 돌아다닐 기력은 없었다. 초코바도 하나 챙겨왔으니 전 같으면 그냥 박물관 갔겠지만 지금은 몸이 많이 지쳐 있으니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디 가서 밥먹나 하다가 작년에 bravebird님이 추천해주셔서 한번 가봤던 수프 비노에 가기로 했다. 마침 카잔성당 쪽이니 위치도 가까웠다.

 

..

 

 

천천히 카잔스카야 거리를 따라 내려갔고 근 1년만에 수프 비노에 갔다.

 

 

 

작년에 인사를 나누었던 조용한 목소리의 매력적인 알렉세이가 없어 아쉬웠지만 이곳 분위기는 여전히 평온하고 차분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치킨 수프와 해산물 루꼴라 파스타, 생강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작년엔 핀란드식 우하와 탕수소스 치킨 덮밥 같은 걸 먹었는데 그때 음식은 사실 내 입맛엔 짠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먹은 음식들은 정말 너무 맛있었다. 치킨 수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제일 양이 적은 수프를 고르다 보니, 그리고 몸이 힘드니 산성의 토마토 수프나 크림 수프 말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수프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시킨 거였다. 그런데 이 수프가 정말 영혼의 닭고기 수프였다...

 

 

겉으로는 평범한 치킨 수프..

 

그러나 여기에는... 긴 쌀이 가득 들어 있었고 허브 우끄롭(이게 아마 '딜'인 것 같은데 좀 긴가민가 하네), 축축한 빵조각과 길게 찢은 닭고기가 들어 있었다... 그 맛은 잘 끓인 닭곰탕에 밥을 좀 말아놓은 것 같기도 했고 우끄롭의 향미가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내 입맛에도 그렇게 짜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엄마의 맛이 났다. 사실 우리 엄마는 삼계탕이나 닭곰탕 같은 거 안 끓여주는 편이었고 나도 식당에서 그런거 딱히 즐기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그랬다. 집의 맛이랄까...

 

아마 계속 춥고 힘들고 아팠기 때문일 것이다. 몇달 동안 지방 본사에서 일하면서 집2나 근처에서도 제대로 된 밥을 먹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주말에 화정의 집1로 돌아와도 피곤하고 귀찮아서 예전처럼 요리를 해먹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누가 정성들여 끓여준 수프나 국을 먹어본지 오래돼서 그런지도 모른다. (만취해 돌아왔을떄 엄마가 황태국 끓여오셨지만 그건 예외로 치자)

 

수프는 사실 아주 쉬우면서도 어려운 음식이다. 수프를 잘 끓이는 것은 어렵다. 먹을만한 수프는 끓일 수 있지만 맛있는 수프는 좀처럼 끓이기 어렵다. 그런데 저 수프는 맛있었다. 수프 비노라는 이름이 어쩌면 수프 때문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작년 초 얼어붙은 채 들어갔던 두셰브나야 꾸흐냐에서 먹었던 핀란드 우하가 생각났다. 그런 맛이었다. 몸을 데워주고 어쩐지 위안을 주는 맛.

 

고깃국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도 저 수프를 끝까지 다 먹었다. 기름지지도 않았다. 원래 러시아에서 먹은 닭고기 수프는 항상 기름이 둥둥 떴는데... 정말 닭곰탕처럼 잘게 찢은 하얀 고기가 들어 있었다. 쌀 때문에 밥을 먹은 기분이었고 몸이 따스해졌다. 그리고 좀 행복해졌다.

 

그리고 해산물 루꼴라 파스타가 나왔다. 첨엔 치즈가 가득 얹혀 있어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일 파스타를 원했기 때문이다. 토마토 소스 베이스였고 치즈를 헤쳐보니 파스타는 푸실리였다. 평소 푸실리를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다시 한번 '아...' 했지만...

 

 

 

이 파스타도 정말 맛있었다!

해산물이 특별히 많이 들어 있지도 않았다. 새우와 홍합이 전부였다. 토마토 소스, 푸실리, 그리고 치즈. 그런데 진짜 맛있었다. 사실 러시아에서는 맛있는 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없는데 이건 맛있었다. 놀라웠다. 작년에 먹었던 핀란드 우하와 치킨 덮밥은 잊어버렸다. 여기 오면 파스타를 먹어야 한다!

 

수프와 파스타를 먹고 나니 현기증도 좀 가시고 몸도 따스해졌다. 러시아 박물관 가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곳에 좀 더 앉아 있다 가고 싶었다. 워낙 작은 곳이라(테이블이 4~5개 뿐이다) 계속 손님들이 오지만 않는다면 노트북 들고 와서 글을 쓰고 싶은 곳이다.

 

입을 정리하기 위해 얼그레이 홍차와 치즈케익을 시켰다. 티포트와 찻잔 중 택일하게 되어 있어(전자가 당연히 더 비쌈) 포트를 선택했고 당근케익, 판나코타, 치즈케익, 아이스크림만 있어서 치즈케익을 시킨 거였다. 근데 티포트가 엄청 컸다! 2인용인가보다... 앞으로는 그냥 잔으로 시켜도 될 것 같다.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는 마법의 포트와 찻잔!

 

그리고 치즈케익은 블루베리가 샌드되어 있고 초콜릿 시럽이 뿌려져 있어 또다시 '아..' 했다. 블루베리 치즈케익을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케익조차 아주 맛있었다. 많이 달지도 않았고 삭 녹았다.

 

(옆자리 커플이 '케익 뭐 시키지' 하고 고민하자 다른 옆자리 여자 손님들이-아마 단골인 듯- 여긴 당근케익이 최고에요! 라고 했고 커플은 옳다구나 하고 당근케익 주문. 아, 나도 나중에 그거 주문해봐야 하나... 근데 난 당근케익을 별로 안 좋아하지. 토끼인데 왜 안 좋아할까...)

 

 

 

 

차는 뜨거웠고 케익은 부드러웠다. 몸이 노곤해졌다. 글을 쓰고 싶은 곳이었다. 이렇게 맛있고 소박하고 조용한 곳이라니. 그런데 너무 작아서 손님들이 자꾸 오니까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글을 쓰기에는 미안한 곳이다. 흑...

 

작년 처음 왔을 땐 알렉세이가 좋았는데 오늘은 음식과 공간 자체가 좋았다. 이곳을 소개시켜주신 bravebird님 감사해요.

 

 

.. 그건 그렇고 내 다른 옆자리에 앉은 엄마 아빠 어린 여자애가 있었다. 러시아 가족이었는데 이들도 수프와 파스타와 차를 시켰다. 근데 이들도 나처럼 닭고기 수프를 시켰고... 내가 그토록 행복하게 먹은 수프는 여자아이 입맛엔 안 맞았다. 그 이유는... 우끄롭 때문이었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징징댔고 엄마는 엄하게 '수프를 다 먹지 않으면 밥도 없고 차도 디저트도 없다!' 하고 말했다. 아이는 훌쩍이며 수프를 떠먹었고 숟가락으로 가능한 한 열심히 조그맣고 가느다란 파란 이파리들을 옆으로 밀어냈다.

 

아, 나도 이해해... 아이 입맛엔 싫을 수밖에... ㅠㅠ 나도 어릴 때 엄마가 콩밥 해주면 싫었어. 지금도 콩밥 안좋아해. 검은콩도 두부도 다 좋아하지만 밥에 든 콩은 싫다. 특히 푸른 완두콩 든 밥이 싫다. 후각이 예민해선지 밥에 든 콩은 너무 비리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허브 중에서도 고수 등 너무 센 건 안 좋아한다. 우끄롭도 향이 강한 편이니 아이들은 싫어할수도 있다.. 가엾은 녀석...

 

하여튼 소녀는 꾸역꾸역 수프를 먹었다. 나중에 내 치즈케익이 나오자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부모님에게 수프 먹었으니 디저트 시켜달라 졸랐다. 그 가족은 과연 판나 코타가 뭘까 하고 궁금해했다. 슬며시 내가 설명해줄까 하는 맘이 들었는데 마침 점원이 와서 알려주었고 소녀는 그것을 골랐다. 엄마는 '판나 코타 하나 주세요' 라고 한 후 '우끄롭은 빼고요~' 라고 덧붙였고 가족은 하하 웃었다. 나중에 나온 판나 코타 역시 맛있었는지 아이는 그제사 웃기 시작했다.

 

..

 

 

차와 케익까지 먹고 나서 수프 비노를 나왔다. 시간도 어중간하고 몸도 피곤해서(대체 언제까지 피곤할 것인가... 대체 이제껏 얼마나 힘들었기에 그런 것인가) 러시아 박물관은 포기하고 그냥 돔 끄니기에 갔다. 루키야넨코의 쉐스또이 다조르(여섯번째 경비대)를 사려고. 이것이 다조르 시리즈의 완결판이고 작년에 나왔다는데...

 

 

-- 여기서부터 한 문단은 아주 조금 스포일러. 국내 미출간본(빠슬레드느이 다조르, 노브이 다조르)까지 읽은 분은 거의 안계시겠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 마지막 알기 싫으신 분은 스킵하세요. ...

 

 

'안톤 고로제츠키의 마지막 이야기'라고 되어 있어 너무 조마조마해서 맨 뒷장을 들춰봤다. (고로제츠키 죽으면 안 사려고... 십년 넘게 읽어온 시리즈인데 주인공이 죽어버리는 걸로 끝나면 너무 속상하니까 안 사려고..) 다행히 죽진 않는데... 안 죽지만 그에게는 참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걸로 끝나는 분위기라 기분이 확 다운됐지만 그래도 일단 샀다. 흑, 작가 너무해 엉엉...

 

 

...

 

 

그리고는 재미있는 동화책 한권과 소련 시절 지어진 레닌그라드 명소가 표기된 지도가 있어 그것도 같이 샀다. 후자는 글쓸 때 도움이 될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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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산 후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이번엔 루빈슈테인 거리 쪽을 따라 뒷길로 돌아서 숙소로 갔다. 내가 쓴 글의 우주에서는 이 루빈슈테인 거리에 미샤의 오랜 애인인 유라가 의사로 일하는 병원이 있다. 실제의 루빈슈테인 거리에는 병원 대신 바와 레스토랑, 그리고 말르이 드라마 극장이 있다. 요즘 뜨는 동네라 괜찮아보이는 카페와 식당들이 많았다. 조만간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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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와서는 씻고서 동화책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동안 침대에 드러누워 끝까지 다 읽었다. 선물용으로 산 건데 내것도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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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서 카디건을 입고 스카프를 담요처럼 덮고 있다가 결국 원피스를 꺼냈다. 체크무늬 단추 원피스로 끈을 잡아매는 로브 스타일이다. 분명 외출복으로 샀지만 이제 이 원피스는 실내가운으로 변하고 말았다. 넉넉한 편이라 파자마와 티셔츠 위에 걸치고 끈을 느슨하게 매니 그냥 가운이다... 그래도 한결 따뜻하다.

 

8시 즈음 배가 고파져서 어제 수퍼에서 사온 미모자 샐러드(감자, 달걀, 당근, 치즈, 마요네즈 등으로 버무려 겹겹이 쌓은 샐러드. 올리비에랑 좀 비슷하지만 이건 잘게 다져서 층을 쌓는다)와 체리를 좀 먹었다. 어쨌든 오늘은 부실하나마 조식도 먹었고 점심은 수프와 파스타로 잘 먹었고 차와 케익도 먹고 저녁은 샐러드와 체리도 먹었으니 세끼 다 챙겨먹었다. 스스로 칭찬하는 중.

 

근데 샐러드와 체리가 많아서 샐러드는 반만 먹었고 체리는 4분의 1만 먹었다. 미국 체리가 아니고 러시아 쪽 체리이다. 체리 종류가 몇가지 있는데 잘못 사면 신 품종이 걸리기 때문에 어젠 점원에게 물어봐서 단 것으로 골랐다. 이 체리는 맛있었다.

 

 

 

..

 

회사 메일을 보고 평가 결과를 보고 또 일도 좀 해서 그런지 다시금 마음이 좀 무겁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현실적으로야 돌아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미 나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그건 사실 나 자신의 무의식이 바랬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든다. 돌아갈 길을 막아서 떠날 수 있게 하려고 그랬던 걸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부당한 처사를 겪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 회의를 품고 있었고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병가를 내고 떠나오게 만든 마지막 직접적인 원인은 그것과는 좀 다른 것이었다. 아마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괴로워하며 그냥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인생은 놀라운 것이다. 항상 생각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그것에 따라 뭔가가 변한다.

 

하긴 그래봤자 얼마 후면 지금처럼 다 닳아서 결국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겠지만.

 

...

 

생각하지 말자. 잘 먹고, 걷고 보고, 글도 좀 쓰고... 다시 숨을 쉬러 왔으니까. 종소리를 듣고 바람을 맞고 강변을 걷고 석양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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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미술관보다 수퍼마켓과 시장 구경을 더 좋아하는 나의 친구 쥬인을 위한 스페셜.

 

여기는 네프스키 대로에 인접한 블라지미르스키 대로변에 있는 블라지미르스키 파사주 라는 쇼핑센터 지하의 '랜드'라는 거대 수퍼마켓이다. 묵고 있는 호텔 바로 옆에 있어 종소리 들리는 것과 함께 이 호텔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장점이다.

 

이 수퍼는 작년에 료샤네 집에 밥해주러 갔을 때 들렀던 곳이다. 이 거대하고 휘황한 수퍼마켓에 들어오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 : 와아아, 이 수퍼마켓 좀 봐!!! 우와, 물건이 진짜 많아! 와아아!

레냐 : 쥬쥬 왜 그래?

나 : 우와...

료샤 : 야! 넌 소련인도 아니었으면서 왜 소련인처럼 구냐! 물건 많다고 감탄하고, 쪽팔리게!

나 : 나도 맨첨 왔을때 가게에 물건 없었단 말임! 그리고 너야말로! 부잣집 아들내미가 무슨 소련인 타령!

료샤 : 야! 난 졸부 아들이잖아! (졸부 = 소련 붕괴 직후 돈 긁어모아 출세한 신러시아인 = 노브이 루스끼) 나 소련 시절에 태어났어! 울아빠 벼락부자 되기 전까진 나도 똑같았어! 줄서서 전표 끊고 줄서서 돈내고 줄서서 물건받고!

나 : 아하하하하! 나도 그랬는데!

료샤 : 넌 잠깐 머물 때나 그랬던 거지만 나한텐 삶이었다고!

나 : 그래봤자 넌 노브이 루스끼 아들이잖아! 나중엔 잘먹고 잘살게 됐잖아!

료샤 : 근데 나도 물건 많은 수퍼 들어오면 가슴 설렌단 말이야, 아직도!

나 : 그렇구나, 소련인이구나 ㅋㅋ

레냐 : (어른들의 대화 이해 못함. 왜 아빠랑 쥬쥬가 배를 잡고 웃는지 이해 못함)

 

내 친구 쥬인과 나는 90년대 후반에 첨 러시아에 왔었고 그땐 진짜 가게에 물건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 2006년에 난 다시 여기 와서 몇달 머물렀는데 그때 놀러온 쥬인은 역시 수퍼에 물건 늘어난 것을 제일 좋아했다.

아아, 여기를 쥬인과 같이 왔어야 하는데... 이걸 보아라 쥬인아... 물건들의 향연을 보아라.. 스마뜨리! 스마뜨리!!! 보뜨 에따 라이!!!

쥬인아, 여기가 자본주의의 천국이다!!!

 

... 장 보면서 몰래몰래 소리 안나는 앱으로 찍은 수퍼마켓 사진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사진 아니냐고 하신다면... 이거 보고 설레는 사람들은 옛날 러시아에서 공부하거나 살았던 사람들.. 소련인의 영혼 ㅋㅋ (근데 그떄도 소련 시절은 아니었다고요)

 

 

 

쥬인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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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밤. 계속 비오고 추웠는데 이 날만은 오후부터 맑아졌다. 석양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bravebird님과 함께 백야의 네바 강변과 궁전 광장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운하를 따라 카잔 성당까지 걸어갔다.

 

입밖에 내서 얘기하진 못했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bravebird님.

 

그때 함께 봤던 석양 사진 몇 장 올려드립니다~

 

석양은 항상 아름답지만 혼자 볼때보다는 동행이 있을 때 더 좋아요 :)

 

 

 

덕분에 황제에게 인사도 하고..

뾰뜨르 임마, 나 왔어.

 

저는 취향 도져서 다시 물웅덩이에 비친 나무를 찍고 있었고 ㅋㅋ

 

분명히 우리 눈으로 봤을 땐 완전 멋있었는데 줌 당겨 찍으니 무슨 점 뿌려 놓은 것처럼 되어버린 원래는 멋있었던 갈매기떼 ㅋㅋ

 

 

해진 후 쿤스트카메라와 네바 강의 아름다운 수면!

 

 

 

이때 수면에 번진 빛이 너무 예쁘다며 서로 좋아했었죠

 

 

그리고 운하 따라 돌아가는 길에 제가 좋아하는 짐느이 까날-겨울 운하 한 장 잽싸게 찍고...

 

편안한 귀국 비행 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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