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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 »





어제 마린스키에서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Le Parc를 보고 나서 료샤의 반응.



몸매 좋은 남녀 무용수가 펄럭거리는 하얀 셔츠랑 속옷만 입고 나와서 애무하고 키스하는 춤을 추니까 졸음이 당연히 달아났겠지 ㅋㅋ



공중키스 유명한 장면 대충 그려봤는데 역시 또 아이패드 공간 계산 못하고 대충 그렸다가 발레리나(크리스티나 샤프란) 두 발은 잘렸음 ㅋㅋ






이렇게 토끼와 약혼자 9세 레냐가 재회를 하였습니다 ㅋㅋ





지 아빠와 확연히 다른 레냐의 반응!!! 이것이 사랑이다!!! 레냐는 레드 립이 좋다고 한다! 심지어 빨간 입술자국 내달라고까지 한다! (근데 9살짜리가 빨간 입술자국 내달라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흐흑... 레냐는 언제나 내 편이다... (슈클랴로프 보러 블라디보스톡 갔을 때만 빼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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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어느새 목요일이다. 월요일에 체크아웃하고 돌아가서 한국에는 화요일에 도착하고 수요일 새벽기차로 지방 본사 내려가 출근을 한다. 즉, 여행도 이미 절반 이상 지나갔다. 내일이 되면 순식간에 남은 며칠이 가버리겠지...



오늘은 그래도 10시 안 되어 일어났다. 징게르 카페(singer cafe이지만 러시아어로는 징게르라고 읽는다)에 가서 아침 먹어보려고. 여기는 카잔 성당 전망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야 하는데 이 자리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나마 지금은 비수기이고 원체 날씨가 꾸리꾸리하니까 좀 나을 것 같긴 했다. 오늘도 창가는 꽉 차 있었지만 잠시 후 맨 구석의 창가 자리가 나서 잽싸게 그 자리로 옮겨 앉았다.



전에 왔을 땐 조식 메뉴가 좀 더 다양했는데 이번에 메뉴가 또 바뀌었다. 여기는 전망도 그렇고 워낙 명소라 가격이 좀 비싸다. 예전 겨울에 여기서 감자랑 버섯 넣은 블린과 따뜻한 열매즙을 무척 맛있게 먹었었지만 그 감자 블린은 다음 겨울에 와도 안 팔았다. 그리고 아직은 따뜻한 수제음료가 나오기 전이었다.







여기서도 오믈렛 시켜보았다. 여기서는 다른 건 이것저것 먹어봤지만 오믈렛은 안 먹어봤다. 치즈만 넣은 오믈렛에 작은 빵을 한개 추가하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시켰다. 계란 프라이처럼 납작하게 등장한 오믈렛의 외양에 실망해서 별 기대 안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무척 맛있었다! 부드럽고 폭신하고 구름같은 식감에 치즈가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돌아가서도 생각날 것 같은 맛이었다.



비가 계속 내렸다. 오늘은 공연도 없고 나올 땐 비가 안 와서 징게르에서 조식 먹고 수도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블라지미르 대로의 랜드 수퍼마켓에 들렀다 와야지 하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하여튼 트롤리버스를 타고 네프스키 수도원에 갔다. 역시나 네프스키 중심가이자 최고로 밀리는 곳인 쁠로샤지 바스따니야 역 앞에서 엄청나게 밀려서 한참 걸렸다. 지하철 타면 두세 정거장인데... 전에 사도바야에서 폭발 테러 난 후로 소심한 나는 지하철이 무섭다 ㅠㅠ



수도원으로 들어가는데 여전히 비가 왔다. 가랑비가 왔다가 주룩주룩 왔다가 잠깐 그쳤다가 다시 주룩주룩, 가랑비, 주룩주룩을 반복했다. 수도원 안의 교회에 들어가 가족과 나를 위해 초를 몇개 켰고 이콘에 손을 얹은 채 마음을 가라앉히며 기도를 했다.








나와서 비오는 수도원 경내를 좀 거닐었다. 햇빛 쨍한 날이 제일 좋긴 하지만 비오는 날의 수도원 산책도 나름대로 평온했다. 좀 걷다가 반지하의 찻집에 가서 수도원에서 구운 사과빵을 사서 그거랑 얼그레이로 몸을 데웠다. 사과빵은 언제나처럼 따뜻했고 달지 않고 맛있었다. 지난 겨울에 여기서 먹었던 양귀비씨빵이 무척 맛있었던 기억도 나서 그 빵을 두개 포장해 왔다.



나와서 입장권을 끊고 수도원 옆에 있는 묘지에 갔다. 지난 겨울에 왔으니 10개월 만이다. '나의 도씨'인 도스토예프스키와 차이코프스키에게 인사하러 갔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아무도 없었다. 땅은 진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 때문에 꽃들의 색채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도씨 무덤 앞에도 꽃들이 놓여 있었고 손으로 쓴 쪽지도 놓여 있었다. 나도 작년에 손편지와 입술자국을 남기고 갔었지. 오늘은 그냥 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도씨의 흉상을 바라보았고 아무도 없었기에 소리내어 그에게 이야기를 조금 해보았다. 인사를 했고 두어가지 소망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수도원의 초와 이콘에 대고 기도했을 때보다 더 부드럽고 간절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차이코프스키는 전과 다름없이 슬퍼 보였다. 비가 와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




길을 건너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아주머니들이 어떤 청년에게 길을 가르쳐준다고 부산하게 친절을 베풀었다. 판탄카의 42번지인가 몇번지를 찾는데 몇번 버스로 갈아타야 하냐니까 '나 따라 내려' 라고 하는 분, '버스 갈아타는 거 아니야, 내려서 걸어가야 해!' 하는 분, '리쩨이느이에서 내려서 판탄카 운하 따라 걸어가다 왼쪽으로 꺾으면 돼' 라고 하는 분 등등... 그리고는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깔깔 웃으며 다 같이 '삐슈꼼!' 하고 외친다. '걸어서' 라는 뜻이다. 차 타고 갈 필요 없다는 얘기다. 여기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하고 불친절해 보이지만 가끔 보면 의외로 친절하고 또 유머도 넘친다. (모스크바는 안 그렇다고 한다 - 페테르부르크 토박이 료샤의 주장인데 이 얘기는 웬만한 페테르부르크 토박이들이 쓴 여행책자에는 다 나와있음. 페테르부르크가 더 친절하고 예의바르다고 ㅋㅋ)



비가 오는데다 피곤해서 그냥 호텔까지 가버릴까 고민하다 그래도 내려서 블라지미르스카야 지하철역에 붙어 있는 랜드 수퍼마켓에 갔다. 올때마다 들르는 커다란 마트이다. 이것저것 살 것 같았는데 막상 산 건 별로 없었다. 쥬인 주려고 초콜릿 몇개를 사고, 내가 마실 타이가 잎차를 사고... 드이냐(중앙아시아 멜론)를 잘라서 컵에 파는 게 있어서 좀 비쌌지만 그거 샀다. 드이냐는 너무 커서 사먹을 엄두가 안나는데 잘라서 파니까....



생각보다 거의 물건을 안 샀기 때문에 '여기 오지 말걸' 하며 걸어오다가, 로모노소프 도자기 블라지미르스키 대로 지점에 들어갔다. 페테르부르크에는 로모노소프 샵이 여러개 있는데 이 지점은 내가 별로 안 좋아한다. 불친절한 편이라서. 그렇지만 며칠 전 갔던 발샤야 코뉴셴나야 지점에서 보지 못했던 게 있어서 찻잔을 결국 두개 샀다. 내가 그렇지 뭐... 근데 사실 제일 자주 가던 지점에 아직 안 갔다... 네프스키 한가운데 있는 곳... 거기 가서 또 다른걸 지를까봐 겁나는구나.



찻잔이랑 슈퍼에서 산 물건이 든 에코백, 카메라가 든 가방(비가 오니 dslr 가지고 다녀봤자 안 꺼내게 된다... 괜히 가지고 나왔어... 이번 여행 사진은 거의가 폰으로 찍음), 우산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에 왔다.


..



방에 와서 물건들 내려놓고 좀 쉬다가 로비 카페로 내려갔다. 료샤가 저녁에 레냐를 데리고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자니 레냐가 나타났다. 세상에나, 넉달 전보다 더 커 있음! 얘 조금만 있음 정말 나보다 커지겠어 엉엉...



레냐는 달음질쳐 와서 나를 와락 껴안고는 '쥬쥬!!!' 하며 좋아 어쩔줄 몰랐다. 나도 너무 반가웠다. 그때 프라하에서 봤을땐 살이 쪽 빠져 있었는데 그새 다시 볼살이 통통해졌다 >.< 날 보자마자 '쥬쥬, 그러니까 여름에 왔어야지! 지금 오니까 비오고 날씨 안 좋잖아' 라고 쿠사리를 준다. 이럴땐 지 아빠 료샤랑 닮았음 ㅋㅋ



로툰다 카페에서 셋이 저녁을 먹었다. 레냐는 내일도 학교 가야 하기 때문에 저녁 먹고 좀 놀다가 집에 가야 했다. 즉, 엄마인 이라가 있는 집이다. 료샤네 집에서 잘 수 있는 것은 주말 뿐인데 뭐 어쩔수 없다. 양육을 하는 것도 엄마인 이라이고, 또 레냐는 금요일까지 등교를 해야 하니까.



그래도 이라는 레냐를 위해 꼬박꼬박 주말마다 료샤에게 아이를 보내주고 있다. 이라는 재혼을 했으니까 레냐에겐 새아빠도 있지만 그래도 주말마다 아빠를 보러오고 같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레냐는 여전히 료샤와 사이가 좋다. 그런 걸 보면 이라는 좋은 엄마 같다.



(그런데 전에 이런 말을 했더니 료샤가 '쳇, 내가 이라한테 위자료를 많이 주니까 그렇지!' 라고 투덜거렸다. 그는 아직도 전부인인 이라를 무서워해서 웬만하면 대화를 피하려고 하는 편이다. '내가 이라였음 돈만 받고 레냐 너한테 꼬박꼬박 안 보냈을지도 모르는데! 이라가 착한 거야!' 라고 하자 료샤는 '이라가 얼마나 무서운지 네가 몰라서 그래!' 하고 한숨만 팍팍 쉬었다)


료샤는 뭔가 붉은 고기로 되어 있는 걸 먹었고(스테이크 비스무리한 거였는데 기억 안남), 레냐랑 나는 치킨버거랑 감자튀김이랑 시저샐러드 시켜서 나눠먹었다. 비싼 곳이라 치킨버거에 들어가는 닭고기가 튀기거나 다진 패티가 아니고 그릴에 구운 닭가슴살이었음! 나야 구운 닭가슴살을 좋아하니 맛있었지만 이런거 모르고 시키는 사람들은 낭패일 듯 ㅋㅋ 레냐도 역시 어린아이라 '잉, 나는 KFC가 더 맛있는 거 같아' 라고 한다 ㅋㅋㅋ 그러자 옆에서 꾸역꾸역 지 밥을 먹고 있던 료샤가 '닭보다 소가 더 맛있단 말이야! 특히 너! 너는 붉은 고기 좀 먹어야 돼! 넌 왜 맨날 닭 아니면 생선만 먹냐!' 하면서 갑자기 나를 공격했다 ㅠㅠ 웃기는 놈이야 정말 ㅠㅠ



저녁 먹은 후 레냐랑 료샤는 아이스크림을 시켜서 먹었는데 나는 김릿을 한잔 시켰다. 지난 겨울에 여기서 마셨던 김릿 생각이 나서. 료샤는 나를 노려보며 '너 그거 마시면 훅 간다!' 하고 경고했다. 오늘 내가 비오는 길을 많이 돌아다닌 것과 원체 술이 약한 걸 잘 알아서 그렇다. '김릿은 별로 안 독하잖아!' 하자 '저번에 벨리니 마시고도 맛 갔잖아!' 라고 받아치는 료샤. 그렇다, 예전에 유럽호텔 바에서 낮에 벨리니 마시고 갑자기 꿈나라로 가서 료샤가 방까지 업어다 준 적이 있다(ㅠㅠ 료샤는 그때 이후로 나에게 절대 밖에서 술 마시고 다니지 말라고 경고경고경고... 특히 낮술 절대 안된다고 경고경고경고....) 변명하자면 그 바에서 만들어준 벨리니는 내가 베니스에서 마셨던 그 벨리니가 아니었다. 복숭아 벨리니 함량보다 독한 알콜 함량이 훨씬훨씬 많았었다!



나 : 너도 맨날 술 마시잖앗!


료샤 : 나는 오늘 안 마셔! 운전할 거니까!


나 : 더 잘됐다. 네가 안 마시니까 나는 너를 믿고 마실 수 있다. 계속 이거 마시고팠는데 혼자라서 안 마시고 있었단 말이야!


레냐 : 아빠, 쥬쥬가 먹고 싶은대로 하게 해줘.



하여튼 그래서 나는 김릿을 주문했다. 진과 라임주스. 레이먼드 챈들러와 필립 말로, 테리 레녹스의 칵테일. 여기에선 진과 보드카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나는 물론 진을 택한다. 여기 칵테일에는 레몬주스가 추가로 들어간다. 입맛 때문인지, 아니면 버거를 먹고 난 후여서인지 모르겠으나 오늘 마신 김릿은 지난 겨울에 마셨을때보다 덜 시큼했다. 대신 좀더 독한 느낌이 들었다.



료샤 말이 맞았음. 김릿 마신 후 10여분 정도 띵해져서 소파에 기대어 졸았다 ㅠㅠ 료샤가 쿠사리 주고 있는데 레냐가 '아빠! 쥬쥬는 힘들게 일했으니까 그냥 놔둬!' 하고 내 편을 든다. 그러자 도리어 내가 미안해졌음... 어린애 앞에서 김릿을 마시고 취해버린 나 ㅠㅠ 엉엉... 약혼녀의 약한 모습을 감싸주는 나의 의젓한 약혼자(9세) 레냐.



술기운은 곧 가셨다. 아마 피곤했었던 모양이다. 레냐는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레냐는 항상 따뜻하고 통통하고 보들보들하다 :) 그런데 레냐는 반대로 나에게 '쥬쥬는 보들보들하고 좋은 냄새가 나~' 라고 한다 ㅋㅋ 우리가 그러고 있으면 료샤가 '야! 쟤는 향수 쓰니까 좋은 냄새 나는 거야' 라고 툴툴거린다. 그러면 레냐는 나에게 '쥬쥬 향수는 울엄마 향수보다 좋아~ 오늘 냄새도 좋아!' 그런다. 앗싸, 이번에 면세점에서 질렀던 향수 성공했나보다 ㅋㅋㅋ 비오고 추운 날 어울리는 향이긴 하지... 그런데 좀 어른스러운 향이라서 레냐가 좋다고 하는 것에 살짝 놀랐다. 얘 전에는 장미향이나 꿀향 뿌렸을 때 좋아했었는데 ㅋㅋㅋ



술기운이 가신 후 료샤랑 레냐 데리고 방에 올라왔다. 레냐에게 붕어빵 과자와 양갱, 러버덕 젤리, 리락쿠마 빼빼로, 밀크 캬라멜과 그외 마트에서 긁어모은 각종 과자들을 안겨주었다. 료샤는 '야! 왜 나한테는 맥심이랑 볶음너구리 몇개밖에 안 주더니 레냐한테는 이렇게 많이 주냐!' 하고 투덜거린다. 아빠 맞아?



레냐는 과자들 때문에 완전 행복해져서 해해 웃고 ㅋㅋ 그러다가 집에 가기 싫다고 징징대기 시작... '이거봐아, 오늘은 쥬쥬 방도 넓잖아... 나 여기서 자고 갈래 앙앙' 하고 떼쓰기 시작. 료샤가 엄하게 '안돼!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잖아!' 라고 하자 레냐는 아빠를 조금 원망하다가... '그러면 내일은 아빠 집 가니까 쥬쥬랑 오래 놀 수 있지?' 라고 금방 누그러졌다 ㅠㅠ 이럴때 보면 측은하다... 물론 레냐는 다른 이혼가정에 비해서는 유복하게 살고 또 아빠랑도 꼬박꼬박 보고 있으니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하지만 그래도 매주 엄마랑 아빠 집을 오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레냐를 데려다줘야 했기 때문에 9시 좀 안돼서 료샤가 일어섰다. 내일 보기로 했다.



그래서 료샤랑 레냐는 돌아갔고 나는 어제 러쉬에서 추가로 샀던 배스 밤을 욕조에 던져넣고 15분 정도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번 것은 '펌프킨'이었는데 꿀냄새 나는 거 있냐고 했더니 딱 맞는 건 없지만 달콤하고 따뜻한 향이라고 준 거였다. 근데 별로 그런 냄새 아니고 오히려 시트러스 냄새가 남 -_- 하여튼 욕조에 몸 담그고 있었더니 피로가 좀 풀렸다. 술기운이 다시 좀 올라오다 말았다. 술 마시고 목욕하면 안되는데 ㅠㅠ 오늘은 약 안 먹고 자야지.



목욕하고 나와서 버거랑 김릿 때문에 갈증 나서 드이냐를 먹었다. 참외나 멜론류 별로 안 좋아하지만 드이냐는 맛있다. 이거 먹으면 쥬인 생각난다. 쥬인이 이거 좋아하는데 ㅠㅠ 쥬인아, 쥬인 생각하면서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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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앙 비가 하루종일 주룩주룩주룩 온다 ㅠㅠ 그런데 나는 오늘 징게르 카페에도 가고 수도원에도 가고 초도 켜고 도스토예프스키 무덤도 다시 가고 블라지미르 대로의 랜드 수퍼마켓에도 다녀왔다. 엄청난 하루... 내내 비가 오는 와중에 ㅠㅠ



비오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수도원 교회 들어가는 분들. 나는 나오던 중.





이건 도스토예프스키랑 차이코프스키에게 인사하러 들렀던 묘지에 있는 돌사자 두 마리.



사자 1 : 정말 지긋지긋하게 비 많이 와...

사자 2 : 왜케 변함이 없을까 ㅠㅠ 매년 이맘때면 날씨 이모양이야...

사자 1 : 저 토끼는 왜 하필이면 딱 10월초에 왔을까? 

사자 2 : 그러게, 세상 물정 모르는 토끼인가봐 쯔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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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도 추웠고... 비가 왔다. 엉엉... 보통 아무리 겨울에 와도 햇빛 쨍 하는 날이 며칠 있었는데 이번엔 아주 제대로 걸렸다. 하긴 올 때도 10월이 제일 날씨 안 좋을 때니까 잘못하면 정말 비만 오겠다 싶긴 했었지.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ㅠㅠ



오늘까지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다. 아침에 진통제도 먹었는데 이상하게 효과가 없었다. 나는 부스코판보다 타이레놀이 더 잘 듣는 편인 것 같다 ㅠㅠ 두통까지 같이 겹쳐서 그런가보다. 결국 오후에 타이레놀을 두알 주워먹었다.



근처 빵집인 부셰에 가서 연어 오믈렛과 크루아상으로 아점을 먹었다. 무척 맛있었다. 올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고스찌 바로 근처에 있고. 여기는 특히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료샤도 여기 빵을 좋아한다.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슬퍼졌다. 수도원 가고 싶었지만 계속 날씨가 안 좋고 빗방울까지 흩뿌리니 방도가 없다. 근처 서점에 가서 귀여운 엽서와 자석 따위를 좀 사고, 쭉 걸어서 돔 끄니기에 갔다. 항상 들르는 극장 서적 코너에 가니 누레예프에 대한 새 전기가 나와 있어서 그걸 샀다. 누레예프 전기야 여러권 읽었고 또 워낙 많이 나왔지만 러시아 사람이 쓴 거라서 우파랑 레닌그라드 시절에 대한 좀더 자세한 얘기가 있나 싶어서.









힘들고 머리가 너무 아파서 조금 더 걸어가 그랜드 호텔 유럽에 갔다. 문지기 아저씨 계시면 인사해야지 했는데 그분이 안 계셨다. 쉬는 날인가... 메조닌 카페에 갔다. 나는 이 카페보다는 아스토리야의 로툰다를 더 좋아하지만(차도 그렇고 디저트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아스토리야 쪽이 더 좋다) 그래도 소파가 편하다.



아스토리야와 그랜드 호텔 유럽은 둘다 특유의 냄새가 있다. 전자는 욕실 어메니티에서 나는 화이트 머스크 향이다. 일반적인 화이트 머스크보다 좀더 부드럽고 은은해서 혹시 페라가모에서 이 향수를 시판하고 있다면 사고 싶다. (여기는 페라가모 어메니티를 쓴다)



그랜드 호텔 유럽의 향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호텔에서 조향해서 방향제와 향수로 쓰고 있는 '그랜드 호텔 유럽' 향이다. 이건 조금 아저씨 스킨 향이 나는데 나쁘지 않다. 여기서 묵으면 체크아웃할때 10밀리짜리 미니어처를 선물해주는데 화정 집 화장실에 놔뒀다. 두번째 향은 역시 욕실 어메니티에서 나는 향인데 이건 아스토리야보다 조금 더 비누 냄새와 시트러스 냄새가 섞여 있다. 여기서 쓰는 어메니티는 elemis이다. (철자가 맞는지 갑자기 헷갈리네) 유럽 호텔에 마지막으로 묵은 게 벌써 2년도 더 되긴 했지만(요즘은 좀처럼 저렴하게 나오지를 않아서ㅠㅠ) 그래도 페테르부르크 올때마다 여기 들르곤 한다. 카페나 바에 가기도 하고 급할때 로비 화장실에도 간다(ㅋㅋ) 로비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핸드로션을 바르면 딱 그 향기가 난다. 비누와 시트러스가 섞인 냄새. 그러면 갑자기 '아, 여기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아스토리야의 화이트 머스크향이 더 좋긴 하지만 그랜드 호텔 유럽의 향기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메조닌 카페에 가서 다즐링과 에클레어를 시켜놓고 늘어져 있었다. 너무 피곤했다. 스케치를 몇장 그렸다. 누레예프 책을 조금 훑어보다가 좀 졸았다. 나중에 료샤가 왔다. 오자마자 내가 반쪽밖에 안 먹었던 에클레어를 한입에 홀랑 해치웠다 -_- 그리고는 빨리 볶음너구리와 맥심을 또 내놓으라고 난리 ㅠㅠ 그래서 호텔로 돌아왔다. (볶음너구리 네개 가져왔는데 그때 하나만 끓여준 후 나머지를 쥐어주지 않았었다 ㅋㅋ)



료샤에겐 볶음너구리 끓여주고 나는 조그만 유부우동 컵라면을 먹었다. 맥심을 타 먹이고 나는 수퍼에서 산 모르스를 마셨다. 그리고 극장에 갔다. 오늘도 마린스키 신관이었다.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Le Parc를 보았다. 무대에서 꼭 한번 보고프던 작품이었다. 영상으로만 봤기 때문이다. 원체 마지막 듀엣이 유명한 터라 전체 작품은 몰라도 '아 그 공중키스' 하며 끄덕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료샤는 어제의 악몽(야로슬라브나 -심지어 3막, 2시간 40분!- 보다가 꿈나라로...)에 괴로워하며 '나 오늘은 보지 말까?' 라고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오늘은 너도 맘에 들 거야. 야하거든' 이라고 말해주자 료샤가 눈을 반짝이며 '그래?' 하고 좋아했다. 사내놈 -_-



티켓을 끊고 나서 한참 후에야 배역이 공지되었다. 오늘 주역은 티무르 아스케로프와 크리스티나 샤프란이었다. 티무르 아스케로프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무용수라 툴툴댔다. 슈클랴로프님이야 뮌헨에 가 있지만... 세르게예프가 춰주길 바랬다고... 아니면 귀여운 티모페예프라도... 그 다음날 배역은 올레샤 노비코바와 잰더 패리쉬였다. 배역 안 나왔을 때 원래 오늘 거랑 내일 것 중 뭐 끊을까 하다가 앞에 하는 쪽이 더 괜찮은 배역이겠지 싶어서 끊었던 건데...



공지된 배역을 보고 정말로 진지하게 다음날 거로 바꿀까 했었는데 잘 생각해보니 커플 케미스트리는 아스케로프 샤프란 쪽이 나을 것 같고, 게다가 나는 티무르 아스케로프가 프린시펄 승급했을때도 기가 막혔지만 잰더 패리쉬는 더더욱 그랬으므로... 그래, 욕망이 들끓는 작품이라면 뻣뻣한 나무토막 패리쉬보단 차라리 느끼한 티무르 아스케로프가 낫다 싶었다. 미안해요 노비코바.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난 슈클랴로프님과 노비코바의 이 작품 듀엣 영상을 보았을때도 큰 감흥이 없었고 '둘이 엄청 노력한다' 는 생각만 들었던 터라... 나에게 노비코바는 별로 섹시한 느낌이 들지가 않아서 그냥 표 안 바꿈. (나 노비코바 무척 좋아하는데 ㅠㅠ)



첨엔 배역 발표 전이라 혹시나 세르게예프를 비롯해 볼만한 무용수가 나오려나 싶어 앞줄 끊었었는데... 하여튼 그래서 앞줄에서 봤다. 이번에 끊은 발레 표들 중 젤 앞줄이다. 슈클랴로프님이 가버려서 이제 악착같이 앞줄 끊는 짓은 별로 안 하고 있음 ㅠㅠ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영상보다는 확실히 무대가 낫다. 하지만 나를 확 사로잡는 매력은 덜했다. 그리고 이건 딱 프랑스 안무가에게서 나올법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작품이 나왔을때인 90년대에 봤다면 확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90년대에 나왔던 육체와 욕망을 다룬 작품들에서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에이즈 시대에 대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는 그 시기와 그 주제에 많이 끌렸었고 사실 미샤를 처음으로 떠올리고 글을 구상했던 때 그는 바로 그런 시기에 발레단을 운영하고 안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녀석은 80년대 초의 시골 가브릴로프에 갇혀 있어 ㅠㅠ) 하여튼 그 시기에 나온 작품들 중 내가 많이 좋아하는 건 의외로 나초 두아토의 Remanso이다.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소품이다. (심지어 내가 두아토 안무작 중 유일하게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Le Parc는 물론 다르다. 그리고 뛰어난 작품이다. 시선을 빼앗기도 하거니와 유머도 넘친다. 마지막의 에로틱한 듀엣은 무대로 보니 좋았다. 걱정했던 티무르 아스케로프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잰더 패리쉬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샤프란은 너무 기다란 거 빼고는 역할에 어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다 보고 나니 '슈클랴로프나 비슈뇨바가 추지 않는 한 다시 보지는 않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작품 보는 내내 남성적 시선이 좀 불편하게 느껴졌다. 욕망에 눈뜨는 여성이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체적으로 욕망을 탐험하게 된다는 주제를 표방하고 있긴 한다만 전반적인 안무도 그렇고 배경도 그렇고 어딘가 내내 피상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란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영상을 볼 때보다 무대를 보니 더 그런 느낌이었다.



료샤는 정말 안 졸았다. 이게 막간 휴식 없이 1시간 40분 지속된다는 사실에 그는 고뇌하였고 1장에서는 좀 지루해 했으나 본격적으로 남녀들이 유혹을 펼치는 2장부터는 재밌게 보았다. 마지막의 에로틱 듀엣에 대해선 살짝 설명만 해주었는데 그걸 보기 위해 그는 열심히 기다렸다(뭐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렇고) 유명한 공중키스(여자가 남자의 목에 두 팔을 감은 채 격렬하게 입을 맞추고 둘은 빙글빙글 풍차처럼 돈다. 이때 남자 무용수의 손은 여자를 받쳐주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오로지 키스만으로 허공에 수평으로 뜬 채 빙그르르 돈다. 이거 볼때마다 '남자 목이랑 허리 뿌러지겠다... 여자 복근 엄청 생기겠다' 이런 생각이 든다 ㅋㅋ



료샤도 공중키스 씬에서 입을 벌리고 보더니 끝나고 나오면서 '우와 저 남자 좀 짱이다. 역시 키도 있고 덩치도 있어서 그런지 네가 좋아하는 얼굴만 예쁜 슈클랴로프 따위보다 훨씬 힘도 세고 남자답구나. 그래서 여자를 목에 매달고 막 도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발끈해서 나는 '뭐야! 슈클랴로프도 저거 췄어! 똑같은 거 췄다고! 목에 매달고 돌았다고!' 하고 외쳐주었다. 료샤는 '쳇... 걔가 추면 이입 안될거 같음' 이런다. 근데... 사실 이게 료샤 말이 좀 맞는게... 나는 슈클랴로프가 이 바람둥이 유혹자를 추는 게 정말 이입이 안됐다. 아무리 바람둥이 연기를 해도 누나들에게 휘둘리는 청순한 로미오처럼 보여서... ㅋㅋㅋ



커튼콜 사진 두어 장. 몇장 안 찍었다. 앞줄 오른쪽 사이드 자리였다. 그래서 무대가 비스듬하게 찍혔다. 대충대충 찍어서..... 이때 료샤는 또 '거봐 슈클랴로프 아니니까 앞줄인데도 사진 안 찍네' 하고 놀렸음. 야! 그것이 팬심이란 말이야!!! 바보멍충이!!!! (얼마나 놀림받을지 뻔히 알기에 블라디보스톡에서 볼뽀뽀받은 얘긴 절대 안 해주고 있음 ㅋㅋ)










...



날씨가 안 좋아서 너무 슬프다고 하자 료샤가 '이런 곳에서 평생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야?' 라고 한다... '그래도 너네는 백야 있잖아 ㅠㅠ 우리는 여름 완전 수증기 찜통이야' 라고 하자 '맞아 우리는 여름 좋아' 라고 또 납득한다. 하지만 곧이어 '너네는 볶음너구리랑 맥심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잖아' 라고 함 ㅋㅋ



내일은 드디어 레냐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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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4. 23:25

요 며칠, 료샤놈, 부셰의 오믈렛 2017-19 petersburg2017. 10. 4. 23:25






어제. 공연 보러 가서 숙면 취한 녀석.





아까 포스팅했던 부셰의 오믈렛 :)






으르르 이 수염 난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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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4. 20:31

내내 이런 날씨 ㅜㅜ 2017-19 petersburg2017. 10. 4. 20:31




우아아아아앙 ㅠㅠ


패딩 입고 다닌다아아 ㅠㅠ 흐흑


오늘 추석인데 보름달 보기 글렀어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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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빵집 부셰에서 연어 오믈렛이랑 크루아상, 홍차로 아점 먹고 있다. 여기는 모든 것이 맛있다.










안에 연어가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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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깐 한적했으나 오분 후, 열두시 넘자마자 몰려드는 사람들의 줄! 빵 사러 오는 사람들에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 여기는 정말 맛있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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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때문에 새벽에 제대로 깨어났고 한참 뒤척였다. 잠이 너무 안 왔다. 호르몬 주기와도 겹쳐서 그런 거였다. 진통제를 주워먹고 8시쯤 다시 잤고 10시 반쯤 깨어나 계속 누워 있었다. 아침에 새로 잠들었을 때 아주 생생하고 복잡하고 또 감정적으로 격렬한 꿈을 꾸었다. 심지어 동료가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꿈에 자신의 흐느낌 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꿈에 나온 회사 동료가 걱정되어 톡까지 보냈다. 꿈자리 안 좋으니 조심하라고.... 울 엄마는 내가 이런 말 하면 할머니 같이 군다고 하시지만 그래도 이따금 꿈이 맞을 때가 있단 말이야 ㅠㅠ



바깥 날씨는 아주 꾸무룩했다. 어제까진 예보에서 분명 오늘 기온은 낮아도 구름은 약하고 해가 난다 해서 수도원에 갈까 했었지만 그날이 시작되어 몸 상태도 나쁘고 또 원체 흐려서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기에(저녁에 비온다고 예보는 되어 있었다) 다 포기했다. 1시 넘어서 기어나갔다.





(이 꾸무룩한 날씨 ㅠㅠ)

(맨 위 오페라 글라스 사진이랑 왜이리 느낌이 다르냐면... 그 사진은 dslr로 찍은 것이기 때문...

극장 갈때만 카메라 들고 갔다. 어제랑 오늘 몸이 힘들어서 그냥 폰으로만 찍었더니 찍은 사진도 별로 없고 화질도 그냥저냥...)




...




호텔에서 10분 거리의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본치 카페에 가보았다. 여기는 페테르부르크 알파벳이라는 일러스트 북을 그린 소피야 콜로프스카야가 멋지게 그려놓고 추천했던 곳이다. 예전에 간판은 자주 봤는데 들어가보진 않았었다. 내가 러시아에서 기대하는 카페와는 다르게 너무 현대적이라서 ㅋㅋ 점원은 너무 시크해서 친절한 느낌이 없었지만 카페 자체는 좋았고 특히 창가에 앉아 글쓰기가 편한 곳이라 왜 콜로프스카야가 여기를 좋아하는지 알것 같았다. 앉아서 아침에 꾼 꿈 이야기를 약 5장 정도 자세히 적었다. 나중에 단편 같은 걸로 쓸 수 있을만큼 상징과 글감이 넘쳐나는 꿈이었다.



본치 카페에서 스메타나 곁들인 아주 얇은 블린 석장과 생강차를 먹었다. 탄수화물을 좀 먹었더니 정신이 좀 들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도 서양배로 때웠다... 카페에서 나와 건너편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일본라멘집인 야루멘에 갔는데 가라아게 카레 시켰다가 너무 맛없어서 피보고(차라리 오뚜기 3분 카레가 낫겠어!!!) 계산서 갖다달라 했는데도 너무 한나절이라 결국 나가면서 카운터에서 직접 계산하고 팁은 안 줬다.



방에 돌아와 좀 쉬면서 디카페인 차 우려서 도착했던 날 호텔에서 준 초콜릿 상자를 열어 두 알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는 화장을 좀 고치고 6시 즈음 호텔을 나섰다.




...






(다시 와서 반가운 마린스키 신관의 깃털 막과 스와롭스키 크리스탈 장식들)




오늘은 마린스키 신관에서 블라지미르 바르나바가 여름 백야축제 개막작으로 안무했던 3막 발레인 '야로슬라브나, 일식'을 끊어두었다. 바르나바는 슈클랴로프랑 스메칼로프의 절친인 젊은 안무가인데 모던 발레를 안무한다. 예전에 이 사람 단품을 몇개 봤고 최근 호평을 들었던 '글리나'(clay)도 무대에서 봤는데 별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볼까말까 하다가 이번 여행 기간엔 발레 레퍼토리 체가 딱히 풍성하지 않아서 그냥 보기로 했다. (흑, 도착 전날 슈클랴로프님이 노비코바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췄지 엉엉... 진작 말해줬으면 휴가를 앞당겼을 거 아니니 엉엉)



하여튼 이 공연은 혼자 볼 생각이었는데 내가 오늘이랑 내일 다 발레 본다니까 료샤가 자기도 따라왔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이 안무가는 현대발레 안무가이다. 그나마도 네가 (나 덕분에 알게 된) 백조의 호수나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같은 발레와는 다를 것이다. 재미없고 뭔 말인지 모를 수도 있다... 등등... 그러나 료샤는 '이고리 원정기 얘기잖아! 그거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배운단 말이야! 너보단 내가 더 잘 알아!' 하면서 잘난척하며 따라온 것이다. 아아... 나는 분명 경고했어!



료샤는 1막 내내 졸았고 2막에선 좀 좋아했고(왜냐면 중간에 약간 야할듯 말듯한 장면이 나와서) 3막에선 또 졸았다 ㅠㅠ 나도 1막은 좀 지루했고 2막이 제일 재미있었고 3막은 그냥 그랬다. 주인공인 이고리 대공과 그의 아내 야로슬라브나가 나오는 장면들이 별로 매력적이지 못해서.... 역설적으로 2막은 얘들보다는 적군들의 샤먼 의식과 괴기스러운 마법의 초원이 나와서 더 볼만했음.



이 발레는 70년대 소련에서 안무된 작품을 바탕으로 바르나바가 재안무한 것이다. 내용은 러시아 역사에서 유명한 이고리 대공의 원정기와 그의 아내 야로슬라브나의 비가를 재구성한 것인데 영웅 서사시라기보다는 인간(특히 한 남성) 내부의 야망과 정복욕, 그리고 헛된 파괴와 비극을 다루고 있다. 보면 딱 러시아 현대 발레 느낌이 난다. 보리스 티셴코의 음악도 딱 소련 작곡가 스타일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별로 내 취향이 아니었음. 보고 있자니 음악과 무대 미술에 안무가 먹히는 느낌이었다.



바르나바는 물론 열심히 했고 내가 좋아하는 스메칼로프가 주역인 이고리 대공을 춰서 근사해보이긴 했지만 작품 자체는 탁월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줄곧 어우러졌고 장엄하고 웅장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자아냈지만 가장 중요한 춤과 주인공들의 드라마가 약해서 아쉬웠다. 바르나바는 주인공 내면의 투쟁과 거대한 비극을 다루고 싶었다고 인터뷰했지만 내게 그건 피상적으로 남아서 아쉬웠다. 팔다리 길쭉길쭉하고 키크고 체격 좋은 스메칼로프는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춤도 그렇고 이고리 대공 역에 딱 맞았고 잘 추기도 했지만 슬프게도 그게 다였다. 아무리 무용수가 뛰어나도 작품 자체가 그 정도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도 스메칼로프가 나올때는 군대들도 나오고 전투도 나와서 좀 나았는데 야로슬라브나가 나타나 느릿느릿하게 온몸을 꼬고 비틀며 독백하고 고통에 몸부림칠때면 '언제 들어가니 ㅠㅠ'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니 작품 타이틀로 등장한 배역이 이래버리면 이미 낭패...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내 개인적 취향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사랑의 전설에서 메흐메네 바누가 몸을 꼬며 고뇌하는 장면도 안 좋아했음 ㅋㅋ 그러나 이 작품에 비하면 그리고로비치의 메흐메네 바누는 엄청나게 탁월하다!)







(그래도 커튼콜 사진 두 장. 이번엔 맨앞줄이 아니고 3층 앞줄을 끊어서 오케스트라 핏 앞까지 뛰어나가지 않았음.

사진도 대충... 스메칼로프는 붉은 칠 검댕 칠을 해서 얼굴도 제대로 안 나옴 ㅠㅠ)



...



하여튼 나는 안 졸았고 그래도 열심히 보았다. 료샤는 실컷 졸고 나서는 나에게 '너 뭔말인지나 알아들었냐? 노어로 계속 노래부르던데 그거 다 이고리 원정기 얘기인데!' 하고 오히려 나에게 쿠사리를 준다.



'내용이야 대충 다 알아들었다, 나도 대학 시절 이고리 원정기 노어로 읽었다'고 하자 그는 '헉 그거 옛날 노어로 되어 있는데 어케 읽었어?' 하고 깜딱 놀랐다. 전체는 번역본으로 읽었고 노어로는 발췌 텍스트만 읽고 시험봤는데 머리 쥐나는 줄 알았고 수업시간엔 졸았고 그때도 야로슬라브나의 비가 읽으며 '으악 머리야' 했다고 말해주자 료샤는 킥킥 웃었다. 졸았다고 쿠사리들을까봐 먼저 공격하는 이놈...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료샤가 쫓아온 것에 감사했다(차를 가져왔으니까 ㅋㅋ) 차 안에서 료샤는 '오늘 나온 놈도 좋아하지 않았어? 얼굴 보니 전에 너랑 딴거 볼때 나왔던 놈 같아. 그때도 네가 사진 찍지 않았어?' 하고 물었다.



나 : 응, 유리 스메칼로프도 좋아해. 되게 옛날에 에이프만 발레단 무용수로 있으면서 내한공연했을 때부터 좋아했어. 


료샤 : 흥, 그래도 그 슈클랴로프 놈보다는 안 좋아하지.


나 : 그건 그렇지만... 왜!


료샤 : 그러니까 1야루스(3층)를 끊었지. 슈클랴로프 녀석이 나왔음 이렇게 지루한 발레라도 분명 맨앞줄 가운데 끊어서 가산 탕진했겠지!


나 : 우와 예리하다!!!!



내가 그날 때문에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진통제를 털어넣고 있자니 료샤가 혀를 찼다. 도대체 몸이 괜찮을 때는 언제냐고 묻는다 -_- 야! 우리 나라는 10월 초에 5도까지 내려가진 않는단 말이다 ㅠㅠ 그리고 사내놈이 뭘 알아! 네가 일생에 한번이라도 여자처럼 피를 흘려보았느냐!!!! 흑흑...



하여튼 그래서 료샤는 나를 데려다주고는 자라고 하고 가버렸다. 맥심 한 잔쯤은 타줄 용의가 있었는데 나보고 얼굴이 너무 창백하다고 하며 자라고 한다. 그럼 피가 줄줄 나오는데 얼굴에 홍조가 돌겠냐 ㅠㅠ 나는 사실 저녁을 안 먹어서 배고파서 이놈이 괜찮다고 하면 뭐라도 테이크아웃해서 들어오려 했는데... 이놈이 나보고 아파보인다고 매우 걱정을 하며 '어서 자야 한다'고 난리를 쳐서 착한 친구답게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방에 와서 배고파서 과일접시에 남아 있던 파란 사과를 반쪽 먹었다. 무지 시고 맛없어 흐흑.. 그래서 미니 초콜릿도 한개 먹었다.



으앙.... 나 아직 청동기사상도, 푸쉬킨 동상도 안 보러 갔다. 뻬쩨르 와서 이런 건 처음이다... 흑, 제발 내일은 날씨가 좋았으면... 그리고 아픈 것도 가셨으면 ㅠㅠ

(그런데 찻잔은 샀다... 이게 뭐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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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보름달도 보실 수 있길!

(여기 날씨를 보니 올해도 난 보름달 보긴 틀렸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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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3. 22:42

본치 카페 2017-19 petersburg2017. 10. 3. 22:42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본치 카페에서 매우 늦은 아점을 먹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다. 기온은 살짝 더 높은 듯한데 내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습한 바람도 많이 불고 패딩 걸치고 나왔는데도 꽤 추웠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려고 수제 생강차 시킴. 생강, 사과즙, 꿀, 레몬 등이 들어가 있는데 꽤 맛있고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다.





입맛도 없고 들어오면서 근처 일본라멘집에서 밥 먹을 생각이었기에 그냥 블린 시켰다. 스메타나 곁들인 걸로. 맛있었다. 블린이 뜨겁지 않은 게 옥의 티였다.





본치는 살짝 우리 나라나 다른 나라 카페 같다. 널찍하고 밝고 나무로 되어 있고 통유리가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글쓰기 괜찮은 곳인데 와이파이를 잡으려면 러시아 전화번호가 있어야 해서 그것만 아쉽다.



여기 앉아서 아침에 꾼 꿈 노트를 자세히 적었다.






역시 러시아 카페답게 바깥은 환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적당히 어두컴컴한 홀이 있다. 나는 환한 쪽을 좋아하므로 창가에 앉았다. 저 안쪽은 친구들이랑 같이 오면 들어가 있기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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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와서 자주 들르던 근처의 야루멘에 갔다. 일본라멘집인데 오늘 첨 카레 시켰다가 완전 피봤다. 카레 진짜 맛없고 밥도 막 덩어리로 나옴. 너무해.... 그래도 텐동이나 라멘은 괜찮아서 여기 동양인들 엄청 우글거리는 곳인디 -_-




대충 밥 먹은 후 호텔 방으로 돌아와 좀 쉬고 있다. 저녁에 공연 보러 가야 한다. 쉬다가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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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3. 17:58

요런 날씨임 + 꿈 2017-19 petersburg2017. 10. 3. 17:58







어제의 날씨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창밖을 보니 오늘도 만만치 않을 듯.



아침에 두어시간 깨 있다 다시 두시간 정도 잤는데 꿈을 복잡하게 꾸었다. 무한증식하는 양수괴물, 새들, 무용수, 인공지능, 날아오르기, 벽. 찢어냄. 장면전환. 노동탄압. 조직의 횡포. 체포되어 공중에서 바다로 투하되는 처형을 당하는 노조 주요인물과 나. 날아오를 수 있는 나. 물에서 끌어내려고 갖은 힘을 다했지만 실패해서 죽어간 사람들. 그리고 나는 정말 소리내 흐느끼다 깼다.



꿈 노트를 자세히 적고 나중에 글로 써봐야겠다...



아파서 진통제 두알 먹었음. 조금만 더 누워 있다 일어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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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도시 :)



아스토리아 로툰다 카페.






아아 욕조 있는 집으로 다시 이사가고프다 ㅠㅠ






(원래 내가 좋아하는 장미향 배스밤을 사려 했는데 점원이 이거 신제품이라고 꼬셔서 사보았음)







(녹으면 이렇게... 핑크색과 연한 붉은빛 마블링이... 확실히 이런 건 파란색 계열이 예쁘긴 하다만 ㅋㅋ

이놈은 좀 클린코튼 향 비슷한 게 났다. 나쁘진 않았으나 나는 장미향 쪽이 더 좋긴 했음)





(그려놓고 보니 꼭 가운데 손가락 같아 ㅠㅠ 아니에요 세어보세요 검지에요 ㅋㅋ)




흐흑 료샤에겐 말로는(특히 러시아어로는) 이길 수 없어 ㅠㅠ



그치만 그 수염 에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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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앞의 이삭 광장에서 찍은 호텔 전경. 빨간 차양들만 나왔지만^^;)

 



어제 완전히 녹초가 되어 뻬쩨르 도착. 어제는 료샤가 시간이 안돼서(얘는 왜 항상 내가 오는 날이랑 출장이랑 겹치는 거야 -_-) 그냥 호텔 픽업을 요청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공항에서 호텔 가는 교통비는 아끼지 않게 됨...



어제 픽업을 나온 기사는 젊은 남자였는데 내게 러시아어 발음이 매우 좋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그 얘기를 오늘 료샤에게 했더니 이 자식이 '그래 맞아 너는 발음이나 억양 자체는 괜찮아. 근데 우다레니예-강세-가 틀려. 그리고 갈수록 문법도 얼버무려!' 라고 한다 흐흑... 진실이므로 뭐라 할 수도 없음 엉엉)





호텔에 도착한 게 밤 열한시 무렵이라 씻고 어쩌고 하다가 새벽 한시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여섯시간 시차가 나니까 하루를 꼬박 샌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 피곤했다. 시차 때문이라기보다는 언제나처럼 잠든지 네시간 만에 깼다가 도로 자고 아침부터는 한두시간마다 자다깨다 반복했는데 피로가 쌓여서 자고 또 잤다. 열시 반쯤에야 억지로 일어났다. 꽤 추웠다. 다음주부터 난방을 해준다는데 잘못 걸렸어 흐흑... 춥잖아. 생각해보니 예전에 페테르부르크 기숙사에서 살때도 이맘때가 젤 추웠다. 난방 해주기 직전인데 날씨는 이미 초겨울!



조식도 포함 안되어 있고 제일 저렴하고 환불 안되는 방을 예약했다. 맨날 늦잠자고 게으름부리고 아침은 조금밖에 못먹으니 조식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기도 하고... 그러나 이 호텔은 조식이 아주 근사하므로 살짝 아쉽다. 한번쯤 돈내고 먹어볼까 했지만 꽤 비싸고 작년 겨울에도 먹어봤으니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늘처럼 한시가 다 되어 나섰을 때는 더더욱 조식 포함 안 시킨게 잘한 일임 ㅠㅠ



...



나왔더니 가랑비 흩뿌리고 엄청 춥고 쌀쌀하고 음습함. 긴 티셔츠에 카디건에 니트 재킷을 입고 재킷에 달린 후드까지 덮어쓰고 스카프 둘렀는데도 추웠다. 청바지 한장은 안되겠구나 ㅠㅠ 일단 도보 10분 거리의 고스찌에 갔다.




여기는 런치메뉴가 있어서 좋다. 올리비에 샐러드와 양배추 수프, 비프 스트로가노프, 녹차를 골랐다. 합쳐서 380루블! 팁까지 합쳐도 8천원! 게다가 맛도 뛰어나다. 이 동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스토랑/카페라 올때마다 자주 들르는 곳이다. 료샤와 레냐도 여기를 좋아한다. 오늘은 미니 나폴레옹 케익도 디저트라고 같이 주어서 더 좋았다. 시큼한 맛이 감도는 양배추 수프도 무척 맛있고 따끈했다. 식전빵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아아 맨날 시골에서 식판밥이랑 컵밥만 먹었지 엉엉...





훈제치킨이 들어간 올리비에 샐러드. 여기 올리비에 샐러드 무척 맛있다. 소박하면서도 느끼하지 않다.





옛날엔 안 좋아했지만 지금은 매우 좋아하게 된 양배추 수프. 시큼한 맛이 매력. 생긴건 꼭 미역국에 두부 띄워놓은 것 같다만... 저 하얀 건 스메타나(사워크림). 안에는 잘게 썬 감자도 들어있고 여기는 특이하게 삶은 달걀 반쪽도 들어있다! 발음법 표기상 '시치' 'shchi' 라고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시이'에 가깝게 발음된다. '쉬'와 '시' 사이 어딘가에 있는 발음인데 이거 발음이 나에겐 좀 어렵다 ㅠㅠ 어떨땐 되고 어떨땐 안된다. 오늘은 그만 '쉬'라고 발음해서 점원이 '아하, 양배추 수프요?' 하고 알아맞췄다 흑...



...



밥을 먹은 후 네프스키 거리를 따라 좀 걷다가 너무 춥고 비까지 와서 그냥 물건만 좀 사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발샤야 코뉴셴나야 거리의 로모노소프 샵에 가서 찻잔 한세트랑 접시 하나를 샀다. 엄청 조금 샀구나! 하고 자가칭찬... 을 하기는 어려운게 찻잔이 쪼끔 가격대가 있었음(그래도 우리 나라 들어오는 것에 비하면...)



그리고는 항상 첫날에 하는 의식대로 네프스키에 있는 카톨릭 성당에 초 켜러 갔는데 공사 중이라 못 들어갔다 ㅠㅠ 근처의 러쉬 매장에 가서 입욕제를 산 후 버스를 타고 호텔로 되돌아왔다. (공항 면세점 붐벼서 취소했었으나 호텔 방 욕조를 보고 머리가 멍해져서 결국 사버림. 이게 뭐야 엉엉.. 면세가 더 쌌는데...)



방에 돌아와 입욕제를 풀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노곤하고 좋았다. 아아 욕조 있는 집에서 살고파라.... 화정으로 이사온 후부턴 집에 욕조가 없고... 시골의 2집도 오피스텔이라 욕조 없다 엉엉... 나는 욕조가 좋은데...



...





목욕을 한 후 호텔 로비 카페로 내려가 다즐링과 메도빅을 시켜놓고 글을 조금 썼다. 어머나, 한동안 못 쓰던 글조차 여기 오니 몇줄이라도 쓸 수가 있네 엉엉어엉엉 역시 나는 회사 때문에 글을 못 쓰고 있는 거였다... 아름다운 도시의 아름다운 카페에 앉자 글이 써진다!!! (하지만 비싸다는 것이 함정!)



(이삭 성당 앞 장미가 아직도 피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추워져서 다 져버렸을 줄 알았는데 아직 덜 시들었다!)




글을 쓰며 료샤를 기다렸다. 료샤는 주말에 노보시비르스크(!) 출장을 갔다가 오늘 돌아오는 거였다. 노보시비르스크도 여기서 비행기로 몇시간 걸린다. (그래도 얘는 비즈니스석 타잖아 흐흑) 사무실에는 안 가고(왜냐면 얘는 자기가 보스니까ㅠㅠ) 집에 가서 가방 풀고 옷만 갈아입고 카페로 왔다. 6월초에 프라하에서 헤어졌으니 4달 만이었다.



앗! 뭔가 바뀌었다! 헤어 스타일! 맨날 짧게 잘라 세우던 스타일이었는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나는 긴 머리를 좋아하는 편이라 맨날 머리 한번 길러보라고 했었음 ㅋ) 그것까진 좋은데... 수염도 세트로 기르고 있는 거였다! 끄악.... 남자는 수염이라며 자기 되게 멋있지 않냐고 자뻑에 취해 있다... 너 수염 안 어울려 ㅜㅜ



료샤는 날 보자마자 볶음너구리 타령을 해댔다... 너 그게 진짜 맛있었구나... 매운데도...



그래서 밖에 나가 저녁 먹는 대신 그냥 방에 올라왔다. 료샤는 방을 보더니 '웬일로 네가 이렇게 좋은 방을 얻었냐!' 라고 한다. '몰라, 호텔에서 업그레이드해줬어. 젤 싼 방 했는데..' 라고 하자 '비수기라 그렇지. 누가 이런 구질구질한 시즌에 여길 오냐!' 하고 비웃는다 흐흑....



좋은 방이라 하는 이유는... 이 방에는 소파가 있어어!!! 3인용 소파 1개 2인용 소파 3개!!!! 기다란 테이블도 있고... 그리고 옷장 칸은 따로 문이 있고!!!!!!게다가 6층이다.






료샤는 볶음너구리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컵라면보단 사실 라면 버전으로 볶아먹는게 더 맛있지만 그래도 맛의 큰 차이는 없다. 그래서 료샤에게는 볶음너구리를 끓여서 손수 비벼주고(!! 나는 진정한 친구!), 나는 카페에서 메도빅도 먹고 으슬으슬해서 차에 꿀과 레몬까지 타서 먹었더니 밥 생각이 없어서(사실 먹을 것도 없다. 이번에는 료샤랑 레냐 줄 것만 챙겨오고 나 먹을 건 유부우동 작은 컵라면 하나 가져왔는데 별로 먹고 싶지 않았다) 그냥 어제 호텔에서 웰컴 선물로 차려놓았던 과일접시에서 서양배를 먹었다. (이미 아침에 서양자두 두알이랑 미니사과 한알을 먹었음)



료샤가 하필 자기가 좋아하는 배를 먹냐고 투덜투덜... 파란 사과 아니면 포도, 키위도 있는데 왜 배를 먹냐고 한다. 이 자식아, 볶음너구리 사다줬잖아! 서양배 별로 맛도 없구먼 ㅠㅠ 난 저녁 대신 먹고 있는데!!!



(그 과일접시엔 원래 이런 것들이 있었으나 아침에 자두랑 미니사과는 해치웠음)

(맨 위에 있는 것이 료샤가 탐내던 서양배 -_- 뒤집어놓아서 동그래 보이네)



그러자 자기는 볶음너구리 먹으면 매우니까 과일접시의 배를 보고 아 저거 먹으면 되겠다 하고 나름대로 계산을 했던 거라고 한다 ㅠㅠ 그러나 내가 맥심을 꺼내서 보여주니 불만이 쏙 들어갔다. 열렬한 볼뽀뽀와 사랑 고백을 받았다 ㅋㅋㅋ (누누이 말하지만 얘는 맥심 믹스만 갖다주면 사랑 고백을 쏟아놓는다 ㅋㅋㅋ 료샤에게서 사랑 고백을 받고프다면 맥심을 준비하세요)



그래서 오늘 사온 (비싼) 찻잔을 심지어 이놈의 맥심 타주는 용도로 개시하였다. 흑... 나도 아직 안 마셔본 새 찻잔... 심지어 인스턴트 커피믹스로 개시....



(맥심으로 개시된 나의 새 찻잔. 맨 아래는 마침 할인 중이어서 산 접시)



료샤는 행복해하며 볶음너구리를 해치우신 후 맥심을 마시고 나는 서양배를 먹고 물을 마시며(뭐야 이게 ㅋㅋㅋ) 편안한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아 방 업그레이드해주니 참 좋구나(들인 돈은 다 까먹고 방 업그레이드해줬다고 좋아하는 역시 조삼모사 토끼 ㅠㅠ)



료샤는 더 늦게까지 놀고 싶어했다. 나도 더 놀고 싶었지만 얘도 출장 다녀왔고 내일 아침엔 또 조찬 미팅 따위가 있다고 해서 '이제 들어가랏!' 하고 등 떠밀어 보냈다. 료샤는 '쳇, 간만에 좋은 방 얻어놓고 내쫓냐!' 라고 툴툴댔지만 진실은 '아 조찬 미팅 가기 시러ㅠㅠ' 임. 조찬 미팅까지 가야 한다면 제발 수염 깎고 가라고 슬슬 달래보았지만 그는 자신의 멋있음을 과시할 거라면서 수염 안 깎을 거라고 한다 ㅠㅠ 수염도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안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고 ㅠㅠ 료샤는 원망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레냐랑 한통속이라 한다. 레냐도 '아빠 수염 싫어' 라고 했단다 ㅋㅋㅋ



하여튼 수염모드로 나타난 료샤는 조금 전에 돌아가고 나는 이제 오늘 메모를 적고 있다. 날씨는 아주 안 좋고 바깥 구경은 별로 안 했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아아 회사를 안 가니 이렇게 좋은 것을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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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 23:16

차 마시며 친구 기다리고 있음 2017-19 petersburg2017. 10. 2. 23:16



밤에 자다가 너무 추워서 깨어나 이불을 두겹으로 접어서 덮고 잤다. 아직 도시 난방이 시작되지 않았다. 제일 추운 시기이다. 밤 기온 5도, 체감 3도. 낮 기온 8도, 체감 5도. 가랑비가 흩뿌려서 더욱 음습하다.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의 흐리고 비오는(ㅜㅜ) 날.



늦게 일어나 고스찌에 가서 아점 먹은 후, 네프스키 거리 조금 걷다가 도로 호텔로 돌아왔다. 너무 피곤했다. 내일은 공연도 끊어놨고 그날 시작 직전(이 망할놈의 호르몬 주기는 꼭 이럴 때 맞춰서 옴)이라 힘들어서 다른데 안 가고 그냥 호텔 로비의 카페에 내려와 차 마시고 있다. 차를 안 마셨더니 머리가 아파서.



내가 좋아하는 카페. 아스토리아 로툰다.



다즐링 마시며 메도빅 먹고 있음. 두통이 좀 가신다. 글 쓰려고 노트북도 가지고 내려왔는데 결국 이렇게 블로깅이나 하고 놀기만 할 거 같아 ㅎㅎ



료샤가 저녁에 여기로 오기로 했다. 레냐는 학교도 가야 하고 월요일이라 엄마네에 있어서 주중 늦게나 만날 것 같다. 어제 내가 밤늦게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냐는 공항에 갔다가 약혼녀 쥬쥬의 호텔방에서 자고서 등교하겠다고 찡찡대어 료샤를 당혹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ㅋㅋㅋ(어머 얘 좀 봐~ 약혼자 9세 ㅋ)











내가 사랑하는 아스토리아의 빨간 차양. bravebird님과 엽님 모두 이 차양 아래에서 처음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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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 19:33

나가려는 중 + 나와서(고스찌) 2017-19 petersburg2017. 10. 2. 19:33





너무 피곤해서 방해하지 마시오 붙이고 열시 반까지 잤다. 일어나서 쌋고 가방 풀고.. 벌써 한시네... 아점 먹으러 나가려는 중. 낮 기온 8도 ㅠㅠ 흐림.



...








나와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고스찌에 옴. 여기는 런치 메뉴가 좋다. 380루블(8천원 미만)에 샐러드, 수프, 메인, 음료를 먹을 수 있고 맛도 좋다.



매우 춥다. 흐리고 음습한 전형적 뻬쩨르 날씨이다. 패딩 가져온게 다행인데 오늘은 니트 점퍼 입고 나와 춥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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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 07:13

잘 도착 - 사랑하는 도시 2017-19 petersburg2017. 10. 2. 07:13






매우 고생 끝에 잘 도착... 사랑하는 도시에 다시 왔다.







비수기라서 그런가 아님 일주일 이상 묵어서 그런가, 젤 저렴하고 환불도 안되는 방 예약했는데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다. 옹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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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 06:54

아주 긴 하루 2017-19 petersburg2017. 10. 2. 06:54




위의 세장은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은 모스크바 공항에서 페테르부르크행 비행기 기다리면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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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 13:29

탑승, 이륙 기다리는 중 2017-19 petersburg2017. 10. 1. 13:29






비행기 탔다. 바글바글!!!


비도 온다 ㅠㅠ 바행기 안 흔들리게 해주세요...



아에로플롯에서 슬리퍼, 귀마개와 안대, 립밤이 든 촌스런 파우치를 준다. 작년에 비해 추가된 립밤. 근데 치약이랑 칫솔은 여전히 안주네.. 가방에 챙길걸 ㅠㅠ


..



비도 오고 하늘길이 혼잡한지 연착 중이다. 40여분 정도ㅠㅠ 모스크바에서 환승할땐 가방도 다시 찾아 부쳐야 하는디.. 많이 지연되지 않으면 좋겠다.



..



그래도 오늘 세가지의 착한 일을 했다.



1. 정류장에서 마주친 남자애들 : 85번 타야 하는데 그 정류장엔 85-1만 와서 우왕좌왕. 내가 어디로 가야 하은지 알려줌. 안 알려줬음 85-1 타고 엄청 돌아갈 뻔.



2. 공항버스 타려는 어떤 여자분이 5만원짜리밖에 없고 카드도 안됨. 버스기사는 5만원 안거슬러줌. 내가 만원짜리로 바꿔줌.



3. 비행기 옆자리 앉은 분들이 음료가 든 컵를 버리고파 하는데 전부 러시아 승무원이라 어떻게 얘기할지 난감해해서 내가 불러서 부탁해줌 :) 그러나 나도 버벅거려서-물건 주문이나 이런 부탁 잘 못함 ㅋㅋ- 승무원이 '네?' 하고 되묻고는 내가 컵 가리키자 끄덕이며 버려줌



세가지 착한 일을 했으니 뱅기 안 흔들리게 해주새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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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10. 1. 09:35

으윽 일찍 와봤자였어 2017-19 petersburg2017. 10. 1. 09:35






공항은 도떼기 시장..



일찍 도착했으나 러시아항공이라 카운터 오픈을 늦게 해서 마냥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ㅠㅠ 8시 반에 왔는데 카운터는 10시 10분 오픈이라 함 ㅠㅠ 이럴땐 국적기가 그립다 ㅠㅜ



시간 모자랄까봐 롯데면세에서 주문한 러쉬 비누는 전화로 취소함. 신라는 모바일로 대기표를 받을수 있다 해서 거기로 몰아둠.





줄서서 기다리며 차 한잔 파운드케익 한쪽 먹음 ㅠ



으으으으...







아악 뻬쩨르 다음주 내내 비온대 ㅠㅠ 꺅 ㅠㅠ


료샤는 자기네 날씨 늘상 그런걸 뭘 실망하냐 한다ㅠㅠ 넌 늘상이지만 난 피같은 돈과 시간 짜내서 가는 거잖아ㅠㅠ 제발 비야 오지 마라ㅠㅠ


..



두시간 후 추가



허헉 정말 사람 많아.. 간신히 앞열 자리로 바꾸긴 했는데... 간밤에 엄마가 부탁하신 립스틱 사느라 면세점 전쟁 치르고 셔틀 타고 외항 탑승동 왔는데.. 이 망할 신라면세, 모바일 대기표 된다해서 몰아놨더니 오류나서 안됨 -.- 대기표 뽑았더니 내 앞에 95명 끅... 50분 기다리라 함



찾자마자 뱅기 타야 할듯...



..



또 추가



다행히 25분만에 찾음. 안내대로 50분 후에 갔으면 차례 지나고 다시 첨부터 대기표 뽑아야 할뻔.



아윽 너무 피곤타....



그래도 약간 시간 남아서 게이트 앞에 앉아 있음. 배도 고프고 피곤해...



비행기 안 흔들리게 해주세요. 이번엔 모스크바에서 경유할 때 고생 안하게 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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