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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운하는 베네치아나 암스테르담과는 다르다. 셋 중 가장 늦은 도시. 하지만 가장 문학적이고 환상적인 도시. 전자의 두 도시가 상업과 교역으로 역사 깊은 곳이었다면 페테르부르크는 한 사람의 권력자, 한 인간의 의지에서 태어난 도시, 애초에 견고한 디딤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늪 위에 세워진 도시, 물과 안개와 바람과 진창을 돌로 메운 도시, 인간의 의지로 세워진 도시,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비인간적인 도시, 언제나 악마와 홍수와 멸망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도시이다. 바닥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 




이 도시는 운하 때문에 북방의 베네치아라고 불리기도 하고 암스테르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세 도시를 모두 쏘다녔고 운하들 사이사이를 걸어보았다. 베네치아의 좁다랗고 꼬불꼬불한 운하들은 여기서 손을 뻗으면 건너편의 건물 벽이 만져질 것만 같다. 햇살로 씻겨나간 듯 밝고 화려한 색채들. 온통 빛들. 거기에 이곳의 어둠과 추위는 없다. 암스테르담은 베네치아보다는 춥다. 운하도 훨씬 널찍널찍하다. 온통 힙한 느낌이지만 문학적인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페테르부르크의 운하는 그 두 도시와는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디에도 같은 도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도시에 대해 형용할 수 없는 애착과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당연하고도 두려운 이질감을. 나는 서울에 대해서도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생의 극히 일부만을 보낸 도시가 그토록 강력한 마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에 경이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아래는 내가 쓰는 글의 주인공인 미샤가 도시와 운하, 자신에 대해 하는 말 일부이다. 이전에 저 파트를 좀 발췌해서 올린 적이 있다. 페테르부르크.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 운하.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6096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이상한데. ”



 그는 심각하게 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팔 안의 몸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느껴졌다. 미샤의 몸에는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었다.



 “ 세상이란 게 뭔데. 소비에트 연방?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




 
 그는 키로프라고 하지 않고 마린스키라고 했다. 레닌그라드 대신 페테르부르크라고 얘기한 것처럼.



 “ 우리 주위의 모든 것. 전부. ”



 “ 레닌그라드. ”



 미샤가 결론을 내리듯 단호하게 말했다. 트로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레닌그라드. ”



 그는 미샤가 이 도시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의 깊이에 전율했다. 물 위에 돌로 지어진 도시, 학살과 절망의 도시, 피와 바람의 도시, 허위와 모방의 역사로 가득 찬 옛 수도, 이제는 모스크바의 광휘에 밀려나 퇴색하고 있는 도시를 향해 그런 절대적이고 강력한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 나하고 레닌그라드는 같을지도 몰라. ”



 미샤는 트로이의 귓가에 입술을 마주 댄 채 따스한 숨결을 내쉬며 말했다.



 “ 뿌리가 없어. 돌이킬 수 없이 안이 비었어. 파이프처럼. 운하의 검은 물이 그 안으로 차올랐다가 어디론가 빠져나가. 그래서 사람들을 잡을 수가 없어. 친구를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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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