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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면서 추웠는지 계속 몸을 오그렸고 꿈도 많이 꾸고 여러차례 깨어나곤 했다. 아침엔 기침이 도져서 괴로워하며 꿀물을 타서 치아바타 반조각을 꾸역꾸역 먹은 후 감기약을 먹었다. 그리고는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 각종 자료가 든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가서 택시를 불러 타고 여의도까지 갔다. 강바람 때문에 그쪽은 더욱 춥다.

 

 

주말 새벽에 여의도에서 들어올때는 도로가 텅텅 비어 있어서 20여분만에 주파했지만 역시 아침에는 자유로 부근이 밀려서 45분 가까이 걸렸다. 요금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지하철로 가면 1시간 40분 가까이 걸리니 그냥 자비로 택시비 부담하고 몸이 조금이라도 편한 게 낫다 싶었다. 돌아올때도 택시 탔다.

 

 

오늘과 목요일에는 예산 세부 심사들이 진행된다. 물론 우리 회사 예산은 수많은 커다란 사업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는 심의가 진행되는 회의실엔 들어갈 수도 없고 임원만이 그쪽에서 들어오라고 하면 급하게 들어가야 한다. 을은 항상 그렇다.

 

 

오늘따라 회의장 안에서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최종 검토자료도 오늘 새벽에야 완성되어 아침에 송부되어 왔기 때문에 국회에 도착해 복도 테이블에 앉아 휴대용 프린터 연결해놓고 자료를 출력해야 했다.

 

 

새벽까지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6시 반쯤 끝났다. 3~40%밖에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목요일 오전부터 심사를 재개하고, 그날 오후에 의결 절차를 거친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목요일 아주 늦게까지 심사가 계속되고 의결은 그 다음날로 밀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차라리 오늘 새벽까지 하더라도 아예 몰아서 다 해버리고 목요일엔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었기에 일찍 끝나도 찜찜한 기분이었는데 이런 일을 많이 해본 상사는 '맨날 늦게 끝나는데 오늘 하루라도 빨리 끝났으니 나는 즐거워' 라고 한다 ㅠㅠ 어차피 오늘 늦게 끝나도 목요일에도 늦을 거라면서 ㅠㅠ

 

 

작년부터 계속 껄끄러웠던 관계인 임원과 내내 같이 있었다. 지지난주에도 그랬고 지난주 금요일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업무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겉으로는 이야기를 잘 받아주었다. 어떻게 보면 참 사회적인 가면을 잘 쓰고 있었다. 마음 속은 아직 뒤틀려 있었지만. 내가 이것저것 잘 받아넘기자 임원은 잠시 둘이 남았을 때 이 업무 잘 해내고 나서 국제사업 등 그런쪽 부서장이 되면 좋을 거라고 말을 했다.

 

 

나는 알고 있다. 그가 어쨌든 자기 딴에는 선의로 이야기하고 있고 이 발령을 냈을 때도 본인으로서는 '정말로' 나를 위한, '선의'라고 믿고 있었다는 것,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오늘도 그분은 내 짐을 옮겨주기도 하고 택시를 타고 들어가라고 잡아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배려를 해주었다. 아마 나에 대해서는 약간의 미안함과 선배로서 후배를 대하는 약간의 호감과 기대감, 그리고 감정적으로 잘 터져버리는 골치아픈 직원 등등의 이미지가 뒤섞여 있는 상태일 것이다. 아마 그분은 자신의 행동들과 자신의 언어들이 나에게 어느 정도의 상처와 충격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작년에 나를 무척 힘들게 했던 다른 한명, 잠시 함께 일했던 부서 상사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사악했고 지금도 부하직원들을 쥐어짜내고 괴롭히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으며 타인들을 자신의 도구로 생각한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보면 나는 후자에 대해 더 분노하고 상처입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전자 때문에 더 상처받고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후자에 대해서는 완전히 경멸하고 미워할 수 있고 아무려면 어때 하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는 정도의 관계이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저분도 무척 힘들었겠지. 작년에 특히 못볼 일 못 겪을 일을 다 겪었겠지' 라는 측은지심(망할놈의 측은지심 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이 복잡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동시에 마음 속에서는 " 나는 저 사람에게 그냥 계속 '화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고집부리며 화난 상태로 남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과 '계속 화나 있는 게 당연하고 그 분노를 한순간의 인간적인 온기 때문에 잊어버리기엔 너무 억울하잖아' 라는 생각이 공존하며 소용돌이친다. 그리고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런 식의 감정과 상처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도 든다.

 

 

즉,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것이다.

 

 

임원과 상사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택시를 타고 돌아오니 밤 8시가 되어 있었다.

 

 

내일은 서울 사무실로 출근해 종일 일하고 목요일은 다시 국회로 가서 종일 보내야 한다.

 

 

생각을 많이 하지 말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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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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