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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너무너무 피곤해서 자정 전에 뻗었고 새벽에 몇번 깨긴 했지만 그래도 8시간 넘게 잤다. 꿈이 좀 정신사납긴 했다. 동생, 쥬인도 나오고, 회사사람들도 나오고... 나중엔 초현실적인 귀신 같은 것도 나왔다(숄을 두른 아주머니의 몸이지만 목이 없고 그 몸 위로 머리 대신 기도하는 모양의 손이 떠 있었음!) 오늘 에르미타주에서 달리 특별전을 보려는 계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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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기어내려가 조식을 먹었다. 아아... 바깥에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고 매우 흐렸다... 날씨는 아주 별로였다. 고로 이런 날씨에는 박물관에 가야 한다 ㅠㅠ


언제나처럼 러시아 박물관(루스끼 무제이) 갈까 하다가 호텔에서 그래도 가까워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에르미타주에 간만에 가자 싶었다. 최근 2~3년 동안은 안 갔었다.


싸락눈 맞으며 얼어붙은 눈과 진창을 밟으며 뒤뚱뒤뚱(많이 껴입고 양말도 두개 신어서ㅠㅠ) 걸어서 에르미타주에 갔는데~ 행운이었다. 오늘이 에르미타주 설립기념일인 듯!!! 첨엔 러시아인만 공짜인가 했으나 모두가 공짜! 티켓 사면서 돈 냈더니 공짜라는 거였다. 아니 이게 웬 떡이냐! 원래 외국인 요금은 더 비싼데~!!! 살다 보니 이런 일이!!!!


그래서 신나게 들어갔고 무거운 코트와 목도리, 장갑, 우산, 카메라, 화장품 파우치 따위를 모두 코트 보관소에 맡기고 전시 보러 올라갔다. 내가 항상 보러가는 3층 전시(인상주의, 마티스, 루오, 피카소 등등... 인상주의는 별로 안 좋아한다만 같이 있음)는 잠시 제너럴 스태프 빌딩으로 옮겨갔다고 했는데 피곤해서 오늘 그리로는 안갔다.


대신 그 3층에서 살바도르 달리와 초현실주의 특별전시를 하고 있어 매우 좋아하며 안내원 여럿에게 길을 물어 그 전시실에 갔다(에르미타주가 원래 미로 같아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 찾기가 참 힘들다) 그런데 아쉽게도 달리 그림은 대여섯점, 조각 두어점 뿐이고 나머지는 초현실파 다른 화가들 그림이었음... 뭔가 사기당한 기분... 달리는 사춘기 때 좋아했던 화가인데 아직 마음이 남아 있긴 했으나... 그림 넘 조금 왔음 흑... 뭐야!


그래도 공짜니까...


오늘은 특별전시가 여럿 있었다. 각국 동전의 역사 전시도 있었는데 이것도 재밌었고, 러시아 왕궁 인테리어 특별전도 있었다. 물론 나는 이게 재밌었다.. 샹들리에, 가구, 램프, 의상 등등(ㅜㅜ)


에르미타주는 자주 왔던 곳이라서 2층의 서양미술 메인 전시들은 대충 지나갔다. 루벤스, 푸생 등 좋아하던 화가 그림 좀 다시 보고... 마지막으로 가장 좋아하는 전시실인 렘브란트 방에 갔다... 오랜만이에요, 렘브란트. 오랜만이에요, 하만, 다나에, 이삭,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님, 그리고 돌아온 탕자 안아주는 아버지.


다 보고 뮤지엄 샵에 들렀다가 카페에서 까르또슈까 한개와 그린필드 티백 담가주는 홍차 한잔으로 에너지 보충하고 나왔다. 이미 오후였고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런데!!! 정문까지 줄이 늘어서 있었다. 무료입장이라 그런거였다! 낮에 일찍 가서 줄 안섰던 거였음. 오오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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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을 밟으며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마린스키 공연까지는 시간이 약간 있어서 좀 쉬고 컵우동으로 대충 저녁 먹었다.


추워서 기모스타킹 두개 껴신고 울스커트와 니트 스웨터, 패딩 차림으로 버스 타고 마린스키에 갔다.







마린스키에서는 어제 유리 그리고로비치 90주년 + 프로코피예프 120주년 기념으로 석화(돌로 만든 꽃, 까멘느이 쯔베똑)를 오랜만에 다시 올렸다. 그리고로비치도 어제는 나왔던 모양... 어제가 프리미어였고 오늘은 둘쨰날이었는데 난 갑자기 오게 돼서 첫날 공연은 아니고 둘째날 표 있는 걸 득템했다. 사실 며칠 후의 라 실피드 볼까 하다가 무대에서 본 적 없는 석화를 택했는데...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갔다.  


석화 리뷰는 내일이나 모레쯤 따로 올려보겠다. 그냥 간단한 인상은...


음, 역시 난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는 취향에 맞지 않아. 어쩐지 내겐 공허하고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동작들은 격렬하고 아크로바틱한 경우에도 그냥 도식적으로 느껴지고... 시대적 영향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나는 그리고로비치 취향이 아니다. 예외는 백조의 호수 정도인데 그것도 무대 미술과 로트바르트(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역할 확장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백조의 호수는 유일무이한 차이코프스키 음악이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지)


그리고 사랑의 전설과 석화는 여러 모로 비슷한 느낌이었다. 좀 성격 다른 형제나 자매 같았음.


그래도 주인공인 석공 다닐라를 내가 귀여워하는 알렉세이 티모페예프가 춰서 반가웠다. 연인 카테리나는 옐레나 옙세에바, 산의 여왕은 예카테리나 체브이키나, 악당 세베리얀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 그러나.. 슬프게도 이 발레는 내용 자체가 단조롭고 인물들도 너무 전형적이라... 인물들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 아쉬웠음. 뭐 그래도 하얀 루바슈카에 파란 바지로 러시아식 의상 입고 팔짝거리는 티모페예프는 귀여웠다...(슬프지만 우아한 맛은 없음...)


** 커튼콜 사진 몇장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5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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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걸어가며 폰으로 찍은 마린스키 구관과 신관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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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버스 타고 돌아왔다. 해가 빨리 지니 캄캄한데다 기온이 좀 오르자 눈이 막 녹으면서 진창과 얼음밭으로 변해서 밤중에 운하 따라 걸어오기는 위험해서.


씻고 정리했더니 어느덧 자정이 다 되었다. 박물관과 극장에 다녀왔더니 꽤 피곤하다... 이 메모만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내일도 눈이 온다고 예보가 나왔는데... 눈아 오지 마라 흐흑... 길이 너무 진창이야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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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